고행의 순례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1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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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어디에서고 세속의 권력자들과 종교계의 권력자들은 여태껏 이 땅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온 법과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상호 긴밀하게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은 국민이건 신민이건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에게서 나온다. 그럼에도 동서고금 권력 다툼은 권력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권력에서 가장 먼 이들의 삶을 가장 크게 흔들고 망친다.

 

여름에 1권부터 읽으며, 작품 배경과 세계관에 점점 익숙해지던 캐드펠 시리즈의 10권을 겨울에 다시 만난다. 21세기의 권력 다툼의 풍경이 기막히고 저질스러울수록 작품 속 세계의 갈등과 스토리가 더 농밀하게 읽힌다.

 

성당에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경건한 순례자들 같았지만 한두 명쯤 의심스러운 구석이 엿보이는 자들도 눈에 띄었다.”

 

이전 스토리에서 고생하신(?) 성녀님이 다시 등장해서 반가웠고, 죽음으로 더 번다해지는 존재가 되는 처지가 애틋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이면 사연도 많아지고 사건도 깊어진다. 순례 행렬이 길어지는 장면들이 긴장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또 다른 살인을 예방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수도원장님께서 절 보내주시기만 한다면요.”

 

캐드펠 시리즈의 내용은 냉담한 하드코어적인 면이 있다. 아니 인류 역사가 대체로 살해로 점철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 점이 역사 추리 소설인 이 시리즈가 한층 더 설득력 있는 재밌을 제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니프리드 성녀가 슈루즈베리에서 몇몇 이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요 며칠은, 성녀보다 미약한 자비심과 그보다 못한 지혜를 지닌 자들에 이해 잉글랜드 전체의 운명이 결정된 중요한 날들이기도 했다.”

 

각자가 믿는 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을 이유로 행동하고, 그 모든 선택과 결정과 행동은 어딘가에서 언제인가 모두 수렴한다. 작품 속 시대에는 종교와 신과 선한 끝을 믿을 수 있어서 한편 부럽기도 했다.

 

그 이상을 깨달았지요. (...) 오래 지체될 수도 있고 이상한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죄에 대한 응보는 확실히 온다는 점을요.”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고, 변화는 오직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다. 다만... 아주 잠시 독서 여운을 즐기며, 인간의 계산을 벗어난 섭리가 역사 속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을 펼치길 종교도 없이 기도하고 싶어졌다.

 

본디 기적이란 번개가 그렇듯 인간의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지 않은가.”

 

뜻밖에 출생의 비밀(?)로 끝나는 마무리가 이어지는 시리즈를 더욱 고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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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인터넷 - 지구를 살릴 세계 최초 동물 네트워크 개발기
마르틴 비켈스키 지음, 박래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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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연결이라는 방정식을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일생을 바쳐 해온 일이다.”

 

이 책 덕분에 사진이나 전시 자료로는 만날 수도 알 수도 없는 인간 아닌 존재들을 경이롭게 다시 만난다. ‘분류라는 방식은 개별 존재가 가진 고유함을 거의 모두 지워버리고, 건조한 명명만 남긴다.

 

이러저러하게 살 거라고 생각한 두터운 오랜 무지를 걷어내고, 살아있는 동물들에 붙인 인식표가 전하는 데이터로 비로소 알아내고 이해한 동물들을 집단이 아닌 존재로 새롭게 배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구나 자기만의 개인적 역사가 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구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장소에서 다채로운 사건을 경험한다.”

 

생물이 버겁고 두려워 사물 쪽으로 오래 걸은 내 발걸음, 그래서 이 책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특별하게 더 안도가 된다. ‘지구생태학global ecology’이란 단어 앞에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생존공간을 떠올리며 설렌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외면하고 심지어는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가진 것을 잊고 마는 인간의 습성(...).”

 

정보를 저장, 공유, 보관할 수 있는 동물 인터넷Internet of Animal”이라는 아이디어, 겉보기에 고립된 섬이 실제는 모든 생물다양성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발견, 그 세상에서 동물은 인간이 투영하는 물리적, 정치적 경계를 넘어 상호작용하고 있다.”

 




그런 동물들을 인간이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라, 동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흥미로움을 넘어서는 놀라움이다. 특히 자신의 무리를 떠나 백로와 여행하고, 인간 가족을 입양하는, 황새 한지의 스토리는 동화 같은(?) 야생 스토리이다.

 

가제본에 담긴 내용은 1, 4, 10, 15, 18장이다.* 아주 재밌는 에피소드와 발견으로 채워진 과학이야기라서 순식간에 읽었다. 맛있는 요리를 딱 한 입만 맛본 것 같아서 많이 아쉽다. 출간본에 실린 더 많은 내용들이 무척 기대된다.

 

* 생물학, 단지 더 아름다워서/탐험하고 실패하고 틀린 것을 발견하기/누가 누구를 길들이는가?/인식표, 작고 가볍고 튼튼하게/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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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쿼크 - 강력의 본질, 양자색역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김현철 지음 / 계단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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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고갱Paul Gauguin

 

고전물리학은 이제 지겹고, 전자기학은 재미가 없고, 양자역학은 잘 모르지만 불편했다. 작은 습관 하나 바꾸는데도 지칠 정도로 힘이 드는데, 인간으로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무용한 세계를 배우는 일이 불편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양자역학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면서 물리학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관련 과학책을 읽는 일은 덥석 반가워지지 않았다. 이 책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수식이 없는, 재밌는 과학사 같은 양자역학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얇지 않은 책이 도전일 거라 생각했는데 술술 읽힌다.

 

물론 관련 물리학 지식이 있으면 - 관심이 있으면 더 좋다 - 채워가고 보충하며 이해하는 기분으로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수식 없는 이야기책 같은 구성이라서 누구나 읽고 즐길 수 있다.자연에는 네 가지 근본적인 힘이 있다”*는 것은 꼭 기억하시길.

 

* 중력, 전자기력, 강력(상호작용), 약력(상호작용)

 

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져 있지만, 쿼크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양성자 바깥으로 끄집어낼 수도 없었다. 세 개의 쿼크는 영원히 양성자 안에 머물렀다.”

 



물리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면 과학이 아니다. 아무리 수학적으로 정합하다고 해도 그렇다. 아인슈타인의 예언 같은 추론은 인류가 우주를 깊이 들여다보고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기계(과학기술)가 탄생한 후에야 인정받았다.

 

낯선 입자strange particle인 쿼크의 발견도 마찬가지다. 입자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가속기, CERN(핵물리 연구를 위한 유럽 위원회)같은 명칭을 알아차릴 것이다. 간략하게 알고 있던 발견의 역사를, 이 책 덕분에 처음으로 상세하게 배울 수 있었다. 인물들과 연구들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쿼크가 등장하면서 그제야 비로소 강력의 모습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쿼크의 색깔강력의 근본 이론인 양자색역학(quantum chromodynamics, QCD)을 세우는 데 주춧돌이 된다. (...) 양자전지역학에서 전자기력의 원천이 전하이듯, 색깔은 양자핵역학에서 강력의 원천이었다.”



 

물리학자들이 우여곡절을 겪는 시간을 편안하게 읽는 호사를 누리며,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실재하는 입자로 쿼크가 자리매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물론 영원히 강입자 속에 갇힌 사실을 증명할 명징한 수학적 방법은 아직 없다.

 

그러니 이야기꾼인 저자가 다음 책에서 풀어낼 다섯 개의 쿼크로 이뤄진 중입자관련 이야기들이 더 궁금하다. 물리학의 난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수학언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책을 펼쳐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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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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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동시에 악한 여자. 누군가를 한없이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살인마저도 불사할 여자. 미치광이들의 언어를 아는 여자.”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실화이자 소설이자 생존기이다. 정보 없이 읽기 시작한 문해력 낮은 독자지만, 나는 곧 뼈가 시린 실화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정교하게 극화된 작품이라도 투박한 실화가 가진 어떤 힘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감사의 말에서 이 소설의 많은 사건들이 실화라고 했을 때 서늘하게 놀랐지만 바로 납득하고 일면 반가웠다.

 

그리고 곧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건 더 강렬하고 잔혹하게 생존한 이들이 존재했던 시간들에 대한 절감이기도 하고, 나는 평생 삶을 대체로 피상적으로 살겠구나 싶은 한탄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두들겨 팸과 죽음과 지루한 전쟁이 이어져온 땅인가, 여기는. 원칙도 기술도 통하지 않는 생존의 위기는 얼마나 잦았던 곳인가, 이곳은.



 

오직 그러한 시대만이 가능하게 한 여덟 가진 인생을 산 여자가 혼란스러워하지 않아서, 생존에 유능해져서,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서, 나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더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러나 안도를 한다. 별 시답지 않은 이유들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이들이 만든 것들에 불을 지르는 위험하고 몹쓸 상상을 하기도 한다.

 

가본 적 없고 가볼 수 없을 곳의 삶을 정신없이 흥미롭게 엿보면서, 어떤 기괴한 환경에서도 피워 올려 만개한 큰 꽃송이처럼 실재하는 사랑을 읽는다. 물론 이 작품 속 사랑은 생존의 시절에 뒤지지 않는 격렬한 피맛을 풍기며, 목숨을 걸고 속이거나 지키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 속 생존은, 생존을 이유 삼아 여타의 모든 인간다움을 홀가분하게 버리고 택하는 비릿한 태도를 내세우지 않는다. 내 삶의 안온한 가치들인 느긋하고 게으른 변명들을 정확히 깨트리는데, 이번 생에 내가 따라할 수는 없음에도 통쾌한 기분이 든다. 대개가 믿고 싶은 거짓들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할 필요가 있었다. 진실을 진실로 들리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너무 많은 어리석은 이유들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이들은 너무 많았다. 그 역사는 지금도 비슷하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죽게 될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세 명의 군인을 죽인 것만은 확실한 범죄인가. ‘그렇지 않을 수 없었다고 나는 할 줄도 모르는 법리적 변호를 하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그래서 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8자 화환을 만들어, 그녀가 선택한 삶의 마지막 장소를 방문하고 싶어진다. 읽는 내내 당신이 살아남기를 바랐다,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기꺼이 당신과 함께 우리로 불리고 싶다고 그런 말들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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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산 수색대 - 제12회 스토리킹 수상작 비룡소 스토리킹 시리즈
김두경 지음, 아인 그림 / 비룡소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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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옷산은 말 그대로 버려진 옷이 산처럼 쌓인 곳들이다. 미래 설정 SF지만, 이미 인류의 현실이 된 상황이다. 패스트이건 명품이건 의류 산업은 생산 과정에서도 환경오염이 극심하지만, 유통 과정에서 소비자에 닿지 않고 버려지는 옷의 양도 엄청나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낭비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이런 폐해에 관한 인식은 참 많이 달라졌다. 그 자체는 희망적이지만, 유의미한 변화는 행동과 실천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는 것이 큰 고민이다. 글로벌 산업을 규제할 힘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각성한 소비자의 불매 운동만이 유일한 해법일까.



 

우리 집 십대들이 살아갈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무거워 이 작품의 신박한 소재인 그래픽 옷이 더욱 더 기발하게 느껴졌다. 이런 아이디어를 가진 작가님 천재! 물론 생산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탄소를 배출하는지도 꼼꼼히 계산해볼 일이다. 새 과학기술에 쉽게 혹하지 않는 것도 중요!

 

태어나보니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이 이미 있는 세대의 아이들은 어디서건 게임에 익숙하다. 그런 면에서 옷산 수색대라는 게임 형태로 현실을 드러내고 진실을 고발하는 접근 방식도 경이로운 아이디어다. 아동 청소년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고 재밌게 환경문제를 생각하게 할 아주 유용하고 귀한 작품이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빠른 해법, 정답, 추진력 강한 해결사를 바라게 된다. 그런 기대와 욕망은 동시대인들이 다수 참여하는 본질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영리한 사기꾼이나 탐욕스런 이익추구 집단에 현혹될 여지를 준다. 팬데믹처럼 전염병이 창궐하는 절박한 상황이라면 조바심이 더 커진다.



 

많은 문제를 유발하고, 해법을 알아도 외면하거나 충분히 실천하지 않는 기성세대에 속한 독자로, 현실에서도 문학 속에서도 아동 청소년들에게 미안하다. 칼디와 기자의 행태를 보면서 내 행동도 반추하며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남과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결심, 친구에 대한 정의와 믿음이 더 눈부시다.




기대와 달라서 더 큰 울림을 주고 경각심을 높이는 결말이 참 좋다. 이 문제는 해결이 아주 어렵고 문학 속에서도 망상 같은 결론을 만나면 더 힘이 빠질 것 같았다. 그보다는 계속되는 희망을 단단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로 마음이 뜨거워지는 완벽한 마무리이자 메시지였다.

 

우리가 아는 이상 절대로 진 건 아니야! 그러니까 잊으면 안 돼. 우리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야 해. 언제까지나 칼디가 이길 순 없을 거야. 분명 그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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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매 페이지에서 독후활동지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내용이 알차고 유익하다. 어른들도 꼼꼼하게 주제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 꼭 살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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