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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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시골이 바로 그의 귀신들의 땅이었다. ‘귀신()’이라는 이름은 황량함을 가리킨다.”

 

한반도보다 더 덥고 더 습한 곳에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살았다. 습식 더위를 몸이 견디지를 못한다. 피부가 보호기능을 잃고 면역체계가 엉망으로 과민하게 날뛴다. 그래서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곳들과 것들이 많다.

 

친구들이 꼭 읽으라고 칭찬을 거듭해서 번역서 두 권을 사두었다. 하지만 낯선 배경의 이야기를 펼치는데 거의 일 년이 걸렸다. 첫 장을 읽으면서도 두려움이 컸다. 전혀 모르는 세계란 두려움과 긴장을 불러일으키니까.

 

원래 지명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였는데 오히려 저주가 되었다. 지명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라는 글자는 너무나 조용하다는 걸 의미했다.”






제목이 전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내용은 빼곡하게 짐작을 넘어선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귀신, 그중에서도 죽음과 귀신 이야기가 넘쳐난다. 귀신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으니 무섭지는 않으나, 귀신을 먹이고 부르고 믿어야하는 이유들이 뭘 잘못 삼킨 듯 속을 쓰리게 한다.

 

귀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잔인한 것은 인간이었다.”

 

평생 귀신보다는 인간들이 무서웠다. 귀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모든 나쁜 일들은 모두 인간들 짓이었지만, 여전히 악귀같은 인간이라며 귀신에 비유하곤 한다.

 

죽인다고 해서 다 죽는 게 아니라는 걸 수메이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어떤 것도 소용이 없었다. (...) 이것이 그녀가 살아야 하는 가장 큰 동기였다. 살아 있어야 남편이 죽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악귀 같은 인간들, 그들에 휘말려 다른 종류의 잔인한 존재가 되거나 귀신이 된 인간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낯설다고 느꼈지만, 얼핏 일가족의 이야기 같지만, 읽은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이야기는 익숙한 어떤 고통과 확장된 역사와 사회의 문제들을 드러낸다.

 

우리는 너를 안아 준 적이 없다. 너를 때리기만 했다.”

 

몰랐지만 그래서 천진하게 잔인했던 내 어린 시절의 여러 발화들이 생각나서 속은 점점 더 쓰려왔고, 역사와 형편을 몰라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속상하게 했을 대화들이 재생을 거듭하는 영상처럼 생생해졌다.

 

엄마는 문맹이라 글을 읽을 줄 몰랐고 쓸 줄도 몰랐다. 그래서 말이 많아졌고, 쉬지 않고 말을 했다.”

 

세상엔 왜 이리 거대한 폭력이 생겨났고, 소멸되지 않는 태풍처럼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일까. 누가 그 회오리에 에너지를 여태 공급하고 있는 걸까. 죽음으로 끝을 내지도 못하는 삶을 살다 귀신이 되는 삶들이 아프다.

 

“‘발전을 외치는 것은 원래 있던 전통적인 것들이 모두 좋지 않고 열등하며 도태되거나 개량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스포일링을 피하시고, 이 작품 세계의 광장에 잘 도착해서 풍경을 마주할 때까지 지치지 말고 끝까지 읽어 나가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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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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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들을 올 해 후반에 성실하게 펼쳐보고 있다. ‘언젠가란 약속을 믿지 않기 때문에 - 스스로에게 한 경우라도 - ‘무조건 읽기 시작이란 계획(?)을 세우고 따르는 중이다.

 

잘 읽히는 드라마여서 편하게 재밌게 읽었다. 인물들 간의 무게중심이 헷갈리긴 했지만, 애초에 경중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란 생각도 한다. ‘주인공에 이입하고 집중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독자, 내 탓일 뿐.




 

당신은 왜 그렇게 죽음과 살해를 좋아하는 거야?”

 

조부모님이 사셨던 시대이니, 그리 멀게 느껴지지도 않지만, 요약된 역사나 단편적인 일화들로 채워나갈 수밖에 없는 지난 시절이기도 하다. 역사소설이나 역사서 읽기를 좋아하는 건 퍼즐 판을 채워나갈 기대를 늘 하기 때문일지도.



 

낯선 세계의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로웠고, 끝난 적 없는 전쟁에 새삼 선뜩했다. 동시에 국가 간 전쟁이나 제국주의 침략이 아니더라도, 아니 늘 일상인 폭력에 노출된 현실이 극화보다 더 참담하다.



 

짧지 않고 적지 않는 스펙트럼의 역사를 한 권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담아낸 마무리가 반가운 동시에, ‘인물들이라는 무늬가 너무 도드라지고, 체험기라기보다는 식민지 조선 관찰기 같았던 성긴 문양이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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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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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믿어야 살 수 있어서 누군가를 믿게 된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다 읽자마자 다시 읽고 싶은 작품, 창비 계간지 연재부터 읽었으니 이미 두 번 이상 읽은 내용도 있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 도대체 몇 단어를 사용했는지 강박적으로 세어보고 싶은 놀라운 세계다. 이런 창작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창경에서 찍은 어릴 적 사진이 잔뜩 있는 나이의 독자라서,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몰랐던 여러 겹의 역사를 환상 여행한 듯도 하다. 이 작품을 경험하는 층위는 여러 겹이고, 세월이 지나면 더 두터워질 것이다. 내 경험과 문학 세계를 마구 혼동하며 갖가지 감정을 맛보았다.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기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사진 속 젊은 아버지가 영정 사진 속 아버지보다 낯익어서 그리움이 쓰라리다. 첫 줄을 읽기 시작하면 바로 몰입되는 작품임에도, ‘그 시절을 떠올리느라, 왜 늘 날씨가 좋은지 모를 기억인지 상상인지의 장면들에 사로잡혀 호흡을 잊곤 했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낙원이겠지. 잃어버린 모두를 되찾는 곳이 바로 낙원일 테니까.”

 

내 기억은 생각을 거듭할수록 납작하게 줄어든다. 이해 영역 밖의 천재들, 작가들의 능력은 그 반대다. 기억이든 이미지든 하나가 떠오르면 시간을 두고 백만 개를 겹쳐 기어코 한 세계를 창조해낸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매번 편안한 숨을 쉬며 쉴 수 있다.

 

스포일링 당하지 마시고 고요히 혼자서 이 책을 만나보시기를, 그리하여 잘 쉬어 가시기를 권한다. #사랑해요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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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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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하다. 초반 적응과 파악하는 시간이 지나면 무서울 정도로 스토리에 몰입된다. 이번엔 꽤 따끔거리며 저항감을 주는 설정이라서, (혼자서)성질을 불쑥 부리기도 했지만, 스토리텔링의 힘은 강력하다.

 

롤라가 무엇인지 개념과 구성과 작동 방식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결조건인 문학이다. 과학을 조금 알아서 동시에 몰라서 느끼는 반발심도 이 작품을 즐기는 재미다.



 

어쨌건, 하고 싶은 일은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고 도덕적 부담조차 없다는 무서운 가상 세계를 열심히 상상해본다. 어릴 적부터 순간이동 초능력만을 탐냈던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조건에 혹하고 만다.

 

공용 극장 롤라 말고, “자신의 실제 인생을 두 번째로 살게 된다는 개인용 극장인 드림시어터에 몹시 끌린다. 이번 생에서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한 이들이 그리워서, 결말은 같을 지라도 꼭 다시 만나고 싶고 보고 싶어서.



 

일견 근미래 SF 같아 보이지만, 실은 지치도록 반복된 욕망과 주제다. 절대 명령인 생존. 현재 인간의 몸은 일회용이지만, 작품의 설정처럼 현 존재를 모두 정보로 전환하여 영생할 수 있다면, 다음 세대로의 번식은 불필요하다.

 

그 방식을 구원이라고 부를 지는 다른 논쟁의 문제이고, 과학기술이란 매력적일수록 접근 기회가 불평등하다. 과학적으로도 몸을 뺀 나머지를 정보로 전환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진 실체는 몸뿐이니까.

 

같은 논리로 실제와 똑같은 가상현실이란 모순이다. 동일 존재가 차원적으로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다. 물론 이건 최신과학기술에 대한 정보부족과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일 지도 모른다. 양자역학도 아직 이해 못하면서 뭘.

 

마지막 설계는 충격적이었다. 기발하도록 아름답지 않아서 일종의 상처를 입었고, 가만 생각해보니, 야성을 깨우고 적극 저항하기 위한 대처상황으로 완벽했던 것도 같다. 잘 녹지 않는 사탕처럼 오래 입 속에서 굴려볼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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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재미있다! 세계명작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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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란 언제까지나 지켜지는 게 아니거든. 더구나 자유에 대한 우리의 꿈은 자칫 부서져 버리기 쉬운 거야.”


어릴 적 아동문고로 읽은 작품을 잊고 살다가, 아이들이 십대가 되자 초등학생 때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 뒤늦게 아쉬웠다. 어릴수록 경계가 낮은 상상력이 이 작품을 충분히 만끽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새롭게 펼쳐든 작품은 도입부터 중년 독자의 눈을 질끈 감기게 한다. 인류 역사 내내 가차 없이 저질러진 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의 죽음은 문학 속이라도 심장에 전해지는 충격이다.


상대를 죽여서 범죄를 은폐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가하는 둔중한 경고처럼, 작품은 죽음 이후와 이상의 메시지를 전한다. 다만 용기를 배우고 따르기란 쉽지 않아서, 죽음으로만 완벽한 이상세계에 도착할 수는 없다.


얼핏 고단한(?) 이 구조는 용기가 없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자신감을 잃은 이들에게 다시 힘을 얻고 기회를 주도록 격려한다. 겁먹은 동생 칼의 모습을 많이 지닌다는 점은 비난 받을 약점이 아니라, 성장할 여지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걸까!”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불행들을 모두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너무 힘들거나 때론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촉발한 이유나 계기는 분명 있겠지만, 인간의 의도는 때론 기막히게 하찮거나 무의미하거나 용맹무지한 탐욕이다.


어른들은 다 피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비극들에 지혜롭게 답하거나 해법을 제시하는 대신 절망하기 일쑤다. 모르니 고통스럽다. 그래서일까, 린트그렌이 명확하고 단선적인 구도를 설정하지 않는 점이 고맙고 뭉클하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면 ‘사람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누구나 겁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그런 자신과 타인을 비난하고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그리고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아주 많이 숙고해야 한다. 망가진 것들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나 수명을 가진 존재들이 다치게 하거나 죽게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해가 떴다가 지고, 달이 뜨고, 별들이 반짝이고, 그 모든 것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아.”


마침내 동생 칼이 형을 업고 낭길리마로 한 발을 내딛은 것처럼, 진짜 “사랑”이란 무섭고 겁이 나지만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것이다.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살아갈 현실이 이 모양인가 자책과 통증이 떠나지 않는 나날이다. 이렇게 아프지만 다시 만날 수 있어 감사한 작품이다.


“그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더듬더듬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한강 작가 [여름의 소년들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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