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정지혜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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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이니,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된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다. 표지 디자인을 미리 알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역시나 놀랐다.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서러운 아이 얼굴 같아서 무섬증이 사라졌다.


 


 

이 집에 혼자 남겨지길 간절히 바랐다. 오랫동안 간절히 바랐다.”

 

서글픈 사연이 쓸쓸한 이들에게로 옮겨가며 이어진다. 간신히 봉합된 상처처럼 아프다. #지은의방 의 지은의 상처는 결국 통증이 사라진 흉터가 되지 못했다. 서늘하게 놀라야할 드러남에서도 나는 등장인물을 애도하고 싶었다.

 

사람의 냉기는 겨울의 한파보다 더 매서웠다. (...) 옷을 껴입어도 해결되지 않는 한기에 마음은 늘 시렸다.”

 

가족이란 혈연으로 구성되는 것만이 최선도 유일한 방법도 아니지만, 한국과 같은 사회는 여전히 사회 구성원의 출생과 성장을 가족(개인)에게 일임한다. 복불복으로 만난 가족이 남보다 못한 상태의 미성년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기다리면 된다. 반드시 때가 올 것이다. 나만 행복해질 수 있는 때가. 저 사람들에게 나의 고통을 되갚아줄 수 있는 때가. 복수를 결심한 순간 침대 모서리에서 잃어버렸던 거북이 인형을 발견했다.”

 

사랑이 부재한 곳에서 만개한 호러는 너무 짙어서 어두운 슬픔이다.



 

나는 죽은 사람들을 본다. 그중에 내 동생도 있다.”

 

분위기는 달라졌지만, #강과구슬 에서 이야기는 연결된다. 첫 편이 지독하게 외로운 것에 비하면, 관계가 따뜻하고 다정해서 기분이 한결 가볍다. 그렇지만 악의는 더 강하고 사건은 더 충격적이다.

 

불안이 너무 커지면 스스로 마음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불안은 미끼가 되어 불순한 것들을 끌어모은다.”

 

아직 어린 사람이 더 어린 동생과 타인을 지켜주려는 마음, 결심, 행동은 나이만 어른인 독자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외면과 방관은 너무나 쉽고 가벼우니까. 버릇이 되면 죄책감도 옅어진다.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자꾸 보이지만 그것도 괜찮다. 그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면 나도 한이를 볼 수 없게 되니까. 그 애를 내가 지켜주어야만 하니까.”



 

외롭고 슬퍼도 아이들은 자란다. #이설의목야 에서는 전작의 꼬맹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결혼을 했다. 한 시절과 한 문턱을 넘어선 존재로서 다른 슬픔과 어려움 없이 살아가기를 응원하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버리지 않았는데 나는 엄마를 버리길 원했다. 내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신념에 찬 영웅들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철저한 계획 하에 도움을 제공하진 않지만, 각자의 처지에서 선택한 최선이 누군가를 - 설혹 이미 죽은 이라고 해도 - 돕는 전개가 믿음직한 기도 같다. 한 사람의 내부에 선함의 총량이 묵직한 것 같아서 긴장이 다 풀린다.

 

남을 돕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살아온 사람들. 마음에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며 살아온 사람들.”




 

솔직하게는 이야기들이 더 이어지기를 바랐다. 다른 인물들의 사연도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도 궁금한 것들이 많다. 내 생각의 한 타래는 목야에서 오래 서성거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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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 3 창비세계문학 100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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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나? 어떤 이의 의지가 역사의 운명을 결정했는가?”

 

2차 세계대전은 한반도의 운명도 바꾸었다는 점에서, 작품 속 인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약속이, 신념이, 철학이, 사상이, 조약이 변하고 깨지고 무시되고 소멸되는 시간의 흐름이 주춤거림이라고는 없는 무자비한 광풍과 같다.

 

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바로 그 신념의 소유자들을 잡아 가둔다. 외부의 적과 싸워 이긴 후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전쟁은 하나가 아니며 애초에 그 끝을 누구에게도 약속하거나 보장하지 않았다. 상대를 달리하는 전쟁은 또다시 새로운 인간들의 삶과 운명을 부수고 짓밟는다.

 

선생님은 삶이 곧 자유라고 하셨죠. (...) 온 우주에 흩어진 그 생명이 제 위력을 무생물의 노예 상태보다 더 무서운 속박의 건설에 쏟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 그 인간에게 현재 우리가 지닌 동물적 자기확신과 계급적, 인종적, 국가적 이기주의가 남아 있다면 (...) 그 인간은 결국 온 우주를 은하계 강제수용소로 변화시키지 않을까요?”

 

이성과 합리성과 절차적 정당성 모두를 무력화시키는 전쟁 중에 결백할 수 있는 이들은 매순간 권력을 잡은 이들, 승자들뿐이다. 이들은 자신이 승자인 동안에 수많은 죄인들을 양상해내고, 그 폭력의 방식으로 전체주의를 강화한다. 한때 삶을 살았던 이들이 이유도 없이 처형되고 기록도 없이 지워진다.

 

운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명한 감각이 찌를 듯 선명하게 일어났고, 여기에 무언가 이상하게도 사랑스러운 것, 감동적인 것, 훌륭한 것을 상실하고 있다는 슬픔이 섞여들었다.”




 

인간에 대한 수많은 낙관주의가, 지식이, 이상이, 상상이 버려질 농담이 된다. 이는 한때 한반도에서도, 내 세대의 많은 친인들도 꿈꿨던 내용들이었으나, 비슷한 조롱을 받고 현실의 이익 앞에, 혹은 이익을 매개로 한 패거리 권력에 수없이 패배했다.

 

1945815, 일본이 항복을 시인한 것은 맞으나, 한반도가 광복을 만난 건지는 문득 의아하다. 그럼에도 국가가 경축하는 이 날의 의미는, 이 책에서 만난 잊히지 않는 메시지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개인을 찌그러뜨리는 속박을 이기는 자유(를 향한 추구), 살해와 학살을 서슴지 않는 가혹한 운명의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아 이어지는 삶. 그리하여 잊히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전해온 가치들. 그 이름들을 기억하는 한 그만큼 희망의 바람은 불어온다. 인간은 그렇게 인간으로 남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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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 2 창비세계문학 99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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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에 경악하고 당신네들을 보면서는 사랑과 희망을 품는 것 같겠지. 하지만 내 말 믿는 게 좋을 거요. 우리의 모습에 경악하는 이들은 당신네들의 모습에도 경악하기 마련이오.”

 

인간의 세상이 지옥이 되는 것은 오직 인간의 선택과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따랐다고 해도 일조한 죄악은 면제받지 못한다. 물론 열정적으로 참여한 이들은 대개 당시의 선택이 이라고 믿는다. 굳게 믿을수록 결과적 재난은 크다. 을 실현시키는 방법으로 전쟁을 택했을 때는 필연적으로 그렇다.

 

사람들은 이 작은 선, 선하지 않은 선 때문에, 이 작은 선이 이 작은 선을 악이라 여기는 모든 것과 벌이는 전쟁의 이름으로 많은 피가 흐르는 광경을 목격했다.”

 

인간의 뇌가 보이는 확증편향과 자기정당화는 현대사회의 보편상식이 되어가는 듯하지만, 안다고 예방과 경계가 늘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사후에 인정하는 것에도 저항감을 보인다. 그러니 비슷한 역사적 과오가 반복된다.

 

자신의 선을 위해 싸우는 이들은 이 선에 보편의 외관을 부여하려 애쓴다. (...) 보편성을 잃은 선, 분파와 계급과 민족과 국가의 선은 자신에게 불리한 모든 것과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거짓 보편성을 부여하려 애쓰게 된다.”

 

그러나 인류는 어떻게든, 아무리 소수든 이에 맞서 싸워왔다. 지는 싸움인줄 알면서도 싸우는 경우가 더 많았고 많다. 대개 존엄과 자유의 가치에 동의하지만, 자신을 대리한 결정과 통제를 해줄 타인을 바란다는 점이 모순적이다. 그런 면에서 열광과 믿음과 기대는 너무 뜨겁고 너무 비이성적이다.

 

자신이 마음이 어지러운 것은 (...) 자신은 여전히 괴물이 아닌 인간이라는 점이 그의 마음을 괴롭혔던 것이다. 이제 그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파시즘의 시대에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목숨을 부지하는 삶보다 더 쉬운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가끔 인간의 역사란 건 큰 파도에 쓸려가는 해조류처럼 무력하게도 느껴진다. 생각대로 뜻대로 배운 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대개는 의지보다 운명이 더 힘이 센 것 같아서. 그런 덩어리진 움직임은 전체주의의 양분이 된다. 인간에겐 그래도 원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여기 소각장의 불빛 속에서, 수용소 광장에서 사람들은 삶이란 행복 이상의 것임을, 삶은 그야말로 고통임을 느꼈다. 자유란 행복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유는 지난하며, 가끔은 고통스럽다. 자유는 삶이므로.”



 

점점 더 가스실에 가까워지는, 배반과 버림받음과 이별과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슬아슬한 시절을 읽는 일은 처연한 슬픔을 마주하는 것처럼 축축했다. 이렇게 많은 죽음이 그토록 어리석은 지도자들과 선동적 무지함에 촉발되었다는 점이 모욕적이다. 그로부터 무엇을 배운 2024년 현실인지를 생각해보니 더욱 모욕적이다. 마지막 3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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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 1 창비세계문학 98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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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을 다룬 작품들을 읽은 후 떠오른 질문들은 대개 비슷했습니다. 인간 문명 따위 무슨 소용인가.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전체주의 권력이 할 줄 아는 건 최저질 농담 같은 장면을 제조하거나 최악의 비극을 초래하는 것일 뿐인가.

 

1천일 넘게 종군기자로 2차 대전을 기록한 기자가 소설의 형식으로만 전할 수 있었던 비극의 심연과 질문들을 드디어 3권의 한국어 번역본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노예 상태가 되는 인간은 운명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이지 그 본성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비극과 폭력과 마주할 때마다 낯 뜨거운 인간의 면면을 다룬 책을 계속 하염없이 읽고 싶어질 줄은 몰랐다. 같은 소재를 다룬 다른 책들 중에는 꾸역꾸역 기진해가며 읽은 책도 있다는 점에서 - 물론 이유는 책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 이 책은 가독성에서는 단연 최고다. #강추

 

기자가 소설을 이렇게 잘 쓰는 건, 리얼리티가 리얼리즘을 이겨먹는 현실을 직접 관찰했기 때문일까. 안 그래도 문학을 논픽션으로 읽는 버릇이 강한 나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와 전개를 르포 기사처럼 흥미롭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렇게 전쟁과 희생자들은 숫자가 아닌 실체가 된다. 넘어져 다친 피부처럼 자주 기분은 쓰라렸지만, 기진하거나 힘이 들지 않아서 세 권이나 되는 분량을 아까워하며 넘겼다.

 

비쩬까, 내가 철조망 뒤에서 뭘 느꼈는지 넌 알까? (...) 이 짐승 우리에서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어. (...) 그건 주위에 온통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뿐이었기 때문이야. 게토에선 말처럼 차도로 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악의에 찬 시선도 없었기 때문이야.”

 

이들은 좋은 사람이어서, 또 나쁜 사람이어서 나를 놀라게 한단다. 모두 동일한 운명을 겪고 있는데 각각 다르다니 정말 이상하기도 하지. (...) 나는 사람들이 낙관적이면 낙관적일수록 더 작은 것에 연연하며 이기적으로 구는 모습을 본다.”

 

책소개로 미진한 글쓰기일 것이나, 내용 소개를 생략한 감상과 단상을 이어나가보기로 한다. 글은 딱히 내용 구분이 없는 1, 2, 3권 분절로 이어질 듯하다. 한 가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메모해 두는 편이 좋다. 소련(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는 (적어도 내게는)필수다.

 

잘 읽힌다고 - 심지어 속도감과 재미도 적지 않다 - 는 했지만, 사람을 효율적으로 잘 죽이겠다고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이 늘 역겹다. 그 길로 향하는 온갖 착각이 애통하다. 기분이 아니라 매번 속이 뒤집힐 것 같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고유하다. (...) 삶은 그 고유성과 독특성을 폭력으로 지워 없애려는 곳에서 고사枯死한다.”

 

영혼은 기나긴 고통을 겪는다. 수년을, 가끔은 수십년을, 돌 하나하나를 쌓아 제 무덤의 봉분을 만들 때까지, 스스로 영원한 상실의 감정에 도달하기까지. 일어난 일의 힘 앞에 굴복할 때까지.”

 

작가는 대비와 대조를 부각하는 논쟁 대신, 인간 유형들을 섬세하고 날카로운 관찰 기록과 같은 문장들로 소개한다. 만나고 싶지 않은 이를 마주한 듯 때론 섬뜩했지만, 어떤 시스템의 강제 하에서 살아가느냐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생각하니, 삶과 운명을 결정지은 그 순간들만이 비릿하다.

 

경험으로 확인된바, 이런 캠페인에서 주민의 대다수는 최면술에 걸린 듯 권력의 모든 지시에 복종하게 된다. 주민 집단 속에는 캠페인의 분위기를 만드는 소수가 있다. (...) 남의 불행을 보며 기쁨을 느끼는 자들이다.”

 

무덤가에 서 있는 인간들의 낙관주의가 얼마나 강한지 놀랄 많하다. 미친, 때로는 불결하고 때로는 비열한 희망의 기반 위에서 이 희망에 상응하는 복종, 때로는 가련하고 때로는 비열한 복종이 생겨났다.”

 

파시즘(전체주의)에 관한 경고는 다양한 형태로 전해져왔다. 이 책 역시 삶과 생존의 차이만큼 극명한 세계의 차이를 그려낸다. 파시즘이 승리한 세계에 저항을 멈추면 어떻게 되는지. 파시즘이 주적인 인간’, 특히 어린이와 여자들과 노인들을 어떻게 죽이는지. 몹시 따갑지만 견딜만한 글이다. 2권으로 간다.

 

전체주의는 폭력을 거부하지 못한다. 폭력을 포기하면 전체주의는 파멸한다. (...) 초강도 폭력이 전체주의의 근간이다. 인간은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결론 속에 우리 시대의 빛, 미래의 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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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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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결혼식장까지만 데려다 놓으면 시키는 대로 다 잘할 거고, 더 이상 불평하지 않을 거야.”

 

나병이란 단어를 오랜만에 보았다. 창작된 세계지만, ‘무언가를 이유로 격리와 차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목격하는 일은 어렵고 불편하다. 이 작품에서는 사건과 관련된 스토리를 깊게 만드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장치로 쓰인다. 어쩐지 범인보다 더 깊은 사연을 가진 인물일 듯했다.

 

정식으로 약혼한 몸이었으니, 이는 결혼만큼이나 구속력을 지닌 계약이었다. 그 계약에서 빠져나오느니 차라리 인생 자체를 포기하는 게 쉬울 것이다.”

 

상속 재산이 많아도 어린 여성은 거래와 협잡의 도구로 이용되는 흔한 풍경이 새삼스럽게 분하다. 이베타 드 마사르도 그런 목적의 혼인을 앞두고 있었으나 상대인 고령의 신랑이 살해당한다. 약혼자를 의심할 법도 한데, 작품 속에서는 그런 의심조차 살 수 없는 존재, 마치 덫에 걸린 사냥감 같은 역할이다. 대신 사랑하는 남성이 용의자로 몰린다.

 

이 모든 일에 대해 그녀는 그야말로 부재하는 증인이었다. (...) 그녀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값비싼 상품에 불과했다.”

 

단서를 따라 영민하게 움직이는 캐드펠 수사를 따라가는 재미는 전작들과 유사하게 즐겁다. 느린 속도감도, 특이할 바 없는 인물들도, 모두 현실감을 더한다. 한 매듭이 풀렸나 싶은데,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드러나고, 기대하지 않던 유형의 인물이 얽혀있는 것이 기분 좋은 도보여행 같다.

 

저는 거짓말을 하지도, 거짓으로 뭘 꾸며내지도 않습니다. 원하신다면 언제라도 진실을 말씀드리지요.”

 

예외없이 범인은 밝혀졌고, 캐드펠 시리즈에서는 현대사회에 부재하는 사필귀정의 방식이 있어 대리만족이 된다. 원칙과 질서와 정의와 공정은 얼마나 지켜지지 않는 것들인지. 그럼에도 이 추한 세상이 이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차라리 기적이랄까.

 

죽은 영웅은 이미 스스로의 장례를 완성했으니 이제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려야 하리라.”

 

무척 궁금했던 망토 속에 자신을 감춘 인물을 드디어 만났다. 그의 선택이 서글프고 사려 깊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죽음을 맞는 방법에 대해 여러모로 고민이 많이 드는 나이라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마지막 권이다. 덕분에 병가 같은 휴가에 즐거웠다. 21권까지 순탄한 출간이 이뤄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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