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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국어 표현력 사전 - 말과 글의 힘을 키우는
박수미 지음 / 다락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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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 유용할 것 같아 관심이 갑니다. 단지 소개된 내용 중 ‘열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현재 사회적 인식 변화와 관련 범죄가 떠올라 불편하고 안타깝습니다. 흔히 호감이 가는 ‘여성‘에게 끈질긴 구애를 할 때 응원?하는 표현으로 널리 쓰였는데, 자칫하면 범죄가 될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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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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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려령 작가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꼽히는 [완득이]의 분위기만 해도 사회와 생활 저변의 소재들이 가득한,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의상을 입고 있지만, 무척이나 강렬한 에너지로 쓰인 원칙과 도덕을 추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김려령 작가 작품들도 예외없이 그의 폭넓은 시각에서 비롯된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한 성숙한 의견을 개진하며, 묵직한 주제에 진지하게 집중하고도 다소 도발적인 소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는 필력이 늘 돋보인다고 느꼈다.

이렇듯 언제나 무척 대중적이랄 수밖에 없는 서사를 맛난 화법으로 다루는 능력은, (썩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통속을 예술로 완성시키는 김려령 작가만의 능수능란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가는 '증조할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것이 자양분이 되었다고 하는데, '증조할머니'를 뵌 적도 없는 나로서는 그런 행복하고도 따스한 양육의 경험이 몹시 부러웠다.

마치 막장아침드라마 소재와 같은 이 책의 얼개에 다소 멈칫하고 자신 없어하면서도 읽어 보자고 한 결정은 그러한 작가에 대한 믿음에 순전히 기인한다.

 

사랑은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것이다. 어느 날 그곳에서 불현듯. 69

 

결혼, 실패, 여행지, 일주일, 재회, 사랑, 전처, 위기, 비난, 상처, 고난, 극복.

 

마치 드라마의 회 차처럼, 전개되는 이야기는 등장인물들 개개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서술, 관계 속에서 얽히고설키는 인간 군상에 대한 섬세한 통찰, 늘 궁금하고 어렵지만, 누구도 정답을 알려줄 수 없는 사랑의 여러 모습들. 그리고 숨 막히는 속박이 될 수도 있지만, 한층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사랑,이라는 관계의 양면성. 이 모든 생각들이 책을 읽는 동안 복잡한 마음과 함께 머릿속에 떠다녔다.

 

이 모든 사건들의 전제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뒤흔든 '일주일', 독자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 수도 있는 '일주일'이 발단이 된다. 또한 이는 가장 흥미진진하고 결정적인 소재로서, 소설 전반에 걸쳐 한 번의 동일한 경험이 설레는 사랑의 시작으로, 삶을 위협하는 함정으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실마리로 탈바꿈하며 달리 해석된다.

누군가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경험으로서의 일주일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 과정을 실제로 겪는다고 상상해 보면, 너무나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없어 화가 나기도 하고 헛된 싸움이란 생각에 허무하기도 하는 등 실로 다양한 감정을 맛볼 것 같았다.

 

대개는 '첫 눈에 반한다'라거나, '사랑에 빠진다'와 같은 경험에 별반 공감이 쉽지 않은 나로서는, 더구나 연애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가시적으로 증폭시킨 것이기도 해서, 가끔 어떤 연애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는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각자의 상처와 좌절과 비틀린 마음과 고조되는 갈등, 언론의 부정적 기능과 사회적 몰이해에 휘둘리는 고난 등의 배경과 사회 환경 전반이 더 생생하게 아픈 느낌이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오래였고 혐오만 남은 부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이런 명료한 표현은 어떤 칼날 같은 말보다 정말 서글프다.

 

결국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늑함과 따뜻함이고 그러면서도 자유를 보장받는 것일까. 이런 이상적으로 들리는 관계 설정일지라도, 현실적으로는 그런 상대를 알아보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고 관계를 성립하고 함께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촘촘하고 생생하고 온갖 개성이 끊임없이 부딪치는 전투일까 싶다.

 

인간의 성장과 관계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위치 매김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오래되고도 매번 어려운 질문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어른 혹은 성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사랑,' 혹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묻고,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매번 이 질문들 앞에서 답이 궁색하다.

 

부부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함께하는 거였다. 그러므로 잠시의 혼자도 용납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늘 붙어 있는 아내로 인해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로웠다. 사람들은 아내가 곁에 있는 그의 곁을 피했다. 유철은 늘 발목에 긴 끈이 묶인 것 같았고, 저 앞에서 정희가 그 끈의 끝을 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216


목적지를 두고 가면 늘 헤매서 차라리 길이 보이는 대로 가다가 좋은 데를 발견하면 그곳을 목적지로 삼는다는 여자. 그렇게 정처 없이 다니면 숙소는 어떻게 찾아와요? 택시요. 꼭 그녀의 방식대로 즐긴 여행이었다. 그렇게 가다보면 신기하게도 궁전이 나왔고 탑이 나왔고 공원이 나왔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집이 나왔다. 56


도연은 사랑하므로 희생한다는 자기희생성 낭만을 경멸했다. 그런 사람들은 희생한 자신에게 숭고함을 부여하고 절대적 존재로 인정받길 바랐다. 희생을 사랑으로 갚아야 하는. 나한테서 돌려받을 희생 말고 날 위해 그냥 떠나주는 희생은 손해라서 안 되니? 희생으로 장사해? ()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거, 그게 사랑이야. 68-69

 

아프지 않기도, 다치지 않기도 바람으로만 존재하겠지만, 아프거나 다칠 수는 있어도 모욕당하거나 비참해지지 않는 배려와 존중이 있는 인간관계는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그 정도의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사랑이라고 하지만, 나도 상대도 죽음으로, 혹은 그와 같은 고통으로 몰아넣는 집착. 새삼 참 두려운 일이구나 싶다.

 

작가가 건네는 무척이나 어려운 사랑, 결혼,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너무 궁금하다. 내공 깊은 분들이, 그렇지 않더라도 되도록 많은 이들이 감상이나 서평을 올려 주면 무척 반가울 것이다.


사족: 글자로 디자인한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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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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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속도와 집중력이 잘 맞아 달리는 소설 작품이 있는 한편, 자꾸만 멈춰야 하는 소설이 있다. 지루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누가 쳐다보지 않아도 흠칫 놀라며 울음을 꾹 삼켜야 하는 작품도 있고, 속절없이 눈물이 주룩 흘러내리고야 마는 작품도 있다.

 

[경애의 마음] 이 소설은 일면식이 없는 작가가 내 삶을 조용히 바라보고 담아낸 듯한 느낌을 주는 글이었다. 잘 알려진 시구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만, 흔들리지만 꿋꿋하고, 담담하고, 굳건하고, 담백한 그렇게 보내는 사랑, 이별, 아픔, 인생.

외롭지 말자, 같이 견디고 같이 나아가자,

잊지 말자, 지지는 말자,

따뜻하고 조심스럽고 공손한 위로.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176

 

나는 이 문장에 왜 그리 깊이 흔들렸는지 모르겠다. 가장 절망했을 때 필요한 것이 잘 자고 잘 먹는 거,라는 공감이 있어서인가. 왜냐면, 전혀 못 자고, 전혀 못 먹는 고통이 분명 있으니 말이다.

 

참 이상하리만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선하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나도 평생 이런 착하고 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래서 뉴스의 폭력성과 가학성에 진심으로 놀라고 충격을 받는다. 이렇듯 선한 이들이 풀어가는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와 가치관들, 수없이 많은 배울 점들이 있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기우에 미리 한 가지 지적하자면, [경애의 마음]이 개인연애서사가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의 삶이 그렇듯 소재가 다양하고 의미가 풍부하다. 특히, 부당함에 강단있게 맞서는 파업과, '조선생'으로 명명되는 동료가 들려주는 노동 윤리와 설화들은 가슴이 뻐근한 감동을 안겨 준다

 

정신적 독립을 이루려면 경제적 독립이 전제되어야 하듯이, '일자리, 밥벌이'라는 것이 '마음'의 문제에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일은요, 일자리는 참 중요합니다. 박경애 씨, 일본에서는 서툰 어부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만 능숙한 어부는 안개를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안개가 안 끼도록 잘 살면 됩니다. 지금 당장 이렇게 나쁜 일이 생기는 거 안 무서워하고 삽시다. 나도 그럴 거요.”30

 

이 조용하고 따뜻한 소설은 의외로 공을 들여 시간을 들여 읽어야 머릿속에서 제대로 완결을 보여 준다. [경애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그 시간이 지나야 각자의 목소리로 정리될 것이다.

 

나중에 깨달은 일이지만, 이 책을 읽고 포스트잇을 많이 붙였다. 그만큼 적어서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읽어 보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그 인용을 일부 올린다.(스포일러 주의!^^)

 

처음에는 작고 깨끗하고 포근해 보이는 눈이지만 얼어붙었을 때에는 얼마나 쓰라린 느낌을 주는지. 그건 사랑이 사라지면서 남기는 날카로운 상처와 같았다.9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27


사랑이 시작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해했는데, 사라지는 과정에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 35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대체 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실감하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끝이 만져진다면 모를까. 느끼는 것이고 상상하고 인식하는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끝을 말해. 60


설거지도 빨래도 요리도 하지 않는 일상에서는 오로지 오늘만 있는 것 같았다.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없고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사이에서 되도록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만 있었다. 96


그러니까 인생은 손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냥 포기해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번뇌와 갈등, 고통, 어떤 조갈증, 허기 같은 건 지병처럼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다. 143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에는 육체 너머의 것이 있다는 것, 어떤 사랑은 멈춰진 기억을 밀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 사라진 누군가는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의 인생에서 다시 한 번 살게 된다는 것. 161


각오는 그렇게 대단치 않은 것들이 버려지는 가운데 무언가가 무언가를 거스르는 마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169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고. 285


"그래서 그놈, 아니, 그 사람에 관한 마음은 어때요?"

"그냥 있죠. 어떤 시간은 가는 게 아니라 녹는 것이라서 폐기가 안 되는 것이니까요, 마음은." 297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원은 그렇게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적극성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시흥의 창고에서 생각했다. 307


이별이 분노나 실망감, 적의 같은 단일한 감정으로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품고 살아가기가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간순간 전혀 반대의 감정이 몸을 부풀려 마음을 채우기에 아픈 것이었다. 316


요즘 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그걸 했던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 시간의 의미가 타인에 의해서 판결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320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349

 

 

[경애의 마음]으로 위로 받은 마음에는 한 가지 질문,을 가장한 소망이 남는다.

 

누구도 누구를 아프게 다치게 하지 않고 순하게 순하게 살 수 있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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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을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 신라 경주 10대들을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김경후 지음, 이윤희 그림, 유홍준 원작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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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보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26년 전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1권이 출간되었을 때, ‘먹자 놀자 잊자관광여행이 아니라, 낯설지만 동경할만한 인문교양여행이 가능한 가이드로 삼아 친구들과 함께 훌훌 여행길에 오르고 싶었던 오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회로 그치지 않고 그 오랜 세월 꾸준히 발간해 주신 답사기 시리즈들은 감사와 경애의 대상이 되었으며, 늘 새롭게 마음이 설레는 기분을 전해 주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이토록 깊이 있는 대중교양서를 지명되어 받게 된 10대들에게 부러움과 축하를 전한다. 독자인 나도, 그리고 작가도 바라는 바대로, 10대들이 역사와 문화유산을 좀 더 생생하게 알고 느끼고 진정 사랑할 수 있기를, 재미난 이야기로 친근하게 받아들이기를, 부모와 자녀가 마중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온 가족이 다 함께 우리나라 국토박물관으로 답삿길을 떠나기를, 함께 기원하고 응원한다.

 

어린 시절 경주는 천년도읍이라는 무게감도 역사감도 실감나지 않는, 그저 너도 나도 그 장소에서 찍은 단체사진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한 세대가 지나 친지,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 등장한 수학여행사진은, 모두 다른 학교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장소 같은 느낌의 단체사진으로 귀결되곤 했다. 각자의 사진을 다 모으면 우리 시대의 일면을 보여주는 한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면 함께 웃었다. 어린 시절 여행에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이 아닌지라 역사를 전공한 답사 전문가 친구와 함께 한 두 번 정도 더 여행을 떠났지만, 그런다고 경주를 더 잘 이해하고 문화유산을 사랑하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현재 10대들의 현장학습과 수학여행은 인증사진들 이외에 어떤 체험이 되고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유홍준 작가의 제안에 따르면 제일 중요한 것은 물론 좋은 선생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주제를 정하고그에 맞게 살펴보는 것이다. 논문을 읽는 것과 같이 진지하고 담담했던 답사기와는 좀 다르게, 만화로 등장한 유홍준 작가와 함께 이번 기회에 다시 경쾌하게 경주로 떠나본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10대가 아닌 나도 이제야 경주를 조금 이해하고 감상할 기회를 만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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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이나 사진으로라도 꼭 확인해야할 유물들

 

1. ‘세상에는 이렇게 귀엽고 가깝게 느껴지는 불상도 있구나.’ 선덕 여왕 시절의 가장 사랑스러운 유물인 삼화령 아기 부처. 아기 부처의 발가락이 왜 새까말까요?

2. 선덕 여왕 시절의 가장 푸근한 유물. 남산 불곡 감실 부처님


3. 남산에는 절터가 147군데, 불상이 118, 탑이 96기나 있거든요. 온산에 흩어져 있는 불상과 석탑들을 만나다 보면 남산에 깃든 옛 신라인들의 바람과 소망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지요. 32


4. 선덕 여왕의 정치적 힘을 보여 주는 당당한 유물. 황룡사와 황룡사 구층 목탑. 불교를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여왕의 의지를 잘 알려 주는 유물.


선덕 여왕 12년인 643년에 자장 스님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여왕을 찾아왔습니다. “황룡사에 구층 목탑을 지으십시오, 여왕님. 불교의 힘으로 주변 적들의 침입을 막으십시오. 목탑의 한 층마다 일본, 말갈, 당나라, 거란, 탐라, 예맥 등 적의 이름을 적어 놓는다면 이 아홉 나라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옵니다.” 35


5. 신라의 과학을 보여 주는 유물. 돌로 만든 천체 미니어처, 첨성대


조그마한 건축물로 1년의 날과 달과 절기, 그리고 태양의 움직임과 별까지 다 나타내다니 정말 기가 막히지요. 41

 

1235년 고려시대 침입한 몽골군이 경부와 황룡사 구층 목탑도 불태우고 100톤이나 되는 황룡사 대종을 바닷가로 옮기려다 물에 빠뜨렸다는 얘기는 한참 잊어버렸다 덕분에 상기했다. 동해 바다에 가라앉았다고, 지금도 파도가 거센 날이면 바닷 속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하는. 건져 올리지 못한 우리의 아픔이라 어릴 적과는 달리 이 이야기에 마음이 아프다.

 

6. 문무대왕릉과 그 앞 바다


나는 어지러운 운을 타고 태어나 전쟁의 시대를 만났다.(...) 갑자기 깊은 어둠으로 돌아간들 무슨 한이 있겠는가.(...) 지난날 영웅도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나무꾼과 목동 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곁에 굴을 파게 될 뿐이니, 나를 장사 지내는데 쓸데없이 재물을 낭비하지 말라. 그러면 훗날 웃음거리로 기록될 뿐이다. 공연히 사람을 수고롭게 한다 해서 죽은 영혼이 구원될 리도 없다.” 51


7. 감은사와 감은사탑


본래 명작은 해설이 필요 없는 법이지요. 그저 거기에서 받은 감동을 되새기면서 즐거워하면 그만인 거지요. 만약 감은사 답사기를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허락된다면 나는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쓰고 싶습니다. ‘!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감은사에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할 거예요. 58-59

8. 에밀레종


불교에서 종소리는 바로 부처의 목소리입니다.(...) 이 세상에 진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종소리를 상상해 보세요. 이 상상을 우리 눈앞에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성덕 대왕 신종입니다. 우리에게는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에밀레종은 1,200년 동안 매일 아침 여섯 시마다 어슴푸레한 경주의 어둠을 깨웠습니다. 65

 

무게가 있으면 맑기 어렵고, 맑으면 무게가 있기 어려운 법이지요. 하지만 에밀레종 소리는 그 모든 걸 갖추었습니다. 소불 선생은 이 소리를 엄청나게 큰 소리이면서 이슬처럼 영롱하고 맑다.”라고 표현하였지요. 66

<em> </em>

그 모양은 산처럼 우뚝하고 소리는 용이 읊조리는 것과 같아 위로는 하늘에 이르고 아래로는 지옥에까지 통하여 보는 사람은 신비로운 기운을 칭송하고 종소리를 듣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75

 

9. 석굴암


우리 문화유산이 모두 사라져도

석굴암만 남아 준다면

우리 민족의 긍지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본존불은 평화로우면서도 장엄합니다.(...) 그 앞에 서면 돌로 만든 조각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이 세상의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순간을 그려 낸 것 같지요. 인간다운 따스함이 있지만 인간이라기에는 신만이 가진 기품이 있고, 신의 기품이 있지만 인간다운 느낌이 들어요. 107

 

10. 우리나라 문화재의 얼굴 불국사.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이 놀라운 곳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간 수학여행이 새삼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여기야말로 진짜 내가 찾아다니던 곳이야.”(...) 나에게 불국사는 돌고 돌아 다시 오는 그런 곳입니다.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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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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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도발적인 소재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자식들이 한번쯤 눈물 지으며, 혹은 상한 속을 감추며 상상해본 소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페인트]: 페어런트 인터뷰: 부모 상담, 즉 부모 될 이들을 자식 될 이들이 상담을 통해 정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춘 태도로 NC 센터를 찾아온 이 예비 부모(pre foster)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11

 

아이들을 통솔하고 보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가디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줄여서 가디라고 불렀다. 11-12

 

이곳의 다른 가디들 또한 모두 아이들에게 헌신적이었다.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좋은 부모를 만나게 해 주려고 노력했고, NC의 꼬리표를 지워주려고 노력했다.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기를, 편견에 찬 시선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랐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16

 

그러나 그런 도발적 통쾌함만이 오래가는 소설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마음이 먹먹하고 눈이 뜨거워졌으며, 더 자주 부끄러웠다. 소위 기성세대가 되고 나니, 상상한 것 이상의 죄책감과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가끔은 너무 자주 찾아온다. 절반은 내 자신의 과오로, 절반은 다른 동시대의 기성세대들의 작태로 인해.

 

성인이 된 후 이곳을 벗어난 사람들이 어떤 차별 속에 사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NC의 아이들은 부모 면접을 통해 서둘러 센터를 떠나려고 한다. 물론 마음씨 좋은 새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애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취하며 가족이라는 그럴싸한 가면은 뒤집어 쓴 채 살아간다. 12-13

 

“NC 출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말도 안 되는 부모 밑에서 살아가는 게 더 어렵죠.” 13

 

태어날 때 만나야만 부모니? NC의 아이들은 모두 열세 살부터 부모를 가질 수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우린 버려졌다는 뜻이죠.”(......)

너희는 바깥세상 아이들과 달리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이야.” 22

 

사생활이라는 이름 하에 감춰지고 처벌받지 않고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수많은 폭력들에 오랜 세월 분노하고 가능한 작은 변화를 위한 후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래세대를 구해내기에는 요원한 세월이 유구하다. 그런 현실이 매일 반복되고 혹은 더 가혹해지고, 매년 몇 명의 아이들이 결국은 죽음에 이르렀는지 통계가 나오고, 그런 현실을 알지만 여러 이유로 눈을 돌리고 행복을 과장하거나 가장한 채 살아가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다는 것도 서글프다. 최선을 다해 있는 힘을 다해 잘 하려고 노력하며 사는 이들도 수없이 많을 텐데, ‘전체를 아우르는 바람직한 변화란 참으로 느릿느릿 육중하다.

 

부모가 키우기 원치 않는 아이인 경우 국가에서 운영하는 메디컬 센터에서 아이를 낳고 그와 동시에 NC 센터에 맡겼다. 그런 부모들이 늘면서 당연히 NC에도 아이들이 늘었다. 26

 

그러나 정부에서 받는 혜택만을 노리고 무분별하게 부모 면접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방임하고 학대하는 부모가 생겼고 더 끔찍한 일도 일어났다. 보다 못한 정부는 NC 아이들의 입양 가능 연령을 상향했다. 싫은 것과 잘못된 것을 말할 수 있는 열세 살 이상의 아이들만이 부모 면접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령 제한으 높이자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NC 센터에 관심을 보였다.(......) 힘들여 아이를 키워야 하는 시간이 보통보다 십 년 넘게 단축되었다는 것과, 양육 수당과 연금을 앞당겨 받을 수 있다는 혜택. 29-30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부모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면, 아니,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바깥세상 아이들은 뭐라고 할까? 39

 

행복에 겨운 새끼들이지. 낳아서 키워 주고 돌봐 줬는데 부모가 귀찮다? 나쁜 자식들이야, 진짜 이렇게 말이야.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어.”

부모들도 저 녀석들을 귀찮아하지 않을까? 저 녀석들에게 짜증도 내고 화도 내지 않았을까? 나는 절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41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고 상대를 원망하기 전에 그 상대를 그렇게 만든 진짜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지만 이 인과 관계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42

 

17세 주인공은 젊은이답게 이 작품 속에서 빠른 성장을 한다. 그의 성장에 여러 영양을 주고 받는 인물들과의 대화는 작가가 섬세하고도 치밀하게 배치한 덕에, 가끔은 어린 시절의 내가 소환되기도 하고, 젊은 내가 불쑥 튀어 나오기도 하고, 그리고 기성세대인, 그러나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나를 맞닥뜨리게 되기도 했다. 성찰과 반성의 이야기들인데, 문학적 얼개와 속도감과 자연스러운 전재 방식을 전혀 거스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가며 농수산물을 사 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나는 그냥 나다. 물론 나를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할 테지만,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키워지지 않았다 해서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 아닐까?(......)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특권 의식을 느낄 만큼 그리 대단한 일일까? 그렇게 소중해서 매일같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44-45

 

누군가가 나를 꿰뚫고 있다는 기분은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감사한 경우도 있다. 나를 잘 알고 있음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배려하는 모습이 그렇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게 말하고 또 쉽게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상대가 전부라고 믿는 오류를 범한다. 그런 사람 중에서 진짜 상대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기 마음조차 모르는 인간들인데. 61

 

아이는 부모의 필요에 의해 태어난 존재들 같아요.”(......)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하면서 사랑을 가장한 억압과 통제 같은 거요?

저보고 어떤 부모를 선택하겠냐, 묻는다면 저는 자기감정에 솔직한 부모라고 답하겠어요.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사람은 싫어요(......).” 76-77

 

제목과 소재가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 속에서 작가가 기성세대를 대시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 자신이 밝혔듯이, 우리 모두 처음 살아보는 인생, 처음 맡아 보는 역할, 연습도 단 일회의 리허설도 여유가 없는 매일의 현실에서, 조금 더 살아 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아주 운이 좋은’, 그래서 모든 것이 그날따라 잘 풀려나가는 경우일 것이다. 부모가 된 이들, 그들은 그럼 어떤 존재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통찰도 신랄하고 서글프다. 그리고 결국엔 위로로 남는다.

 

부모가 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아이를 맞이할 준비란? 준비를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육아서를 전혀 읽지 않은 부모보다 한 권이라도 읽은 부모가 더 낫다는 건 사실인지도 몰랐다. 그만큼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이고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증거일 테니까. 그러나 그런 준비들이 역효과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아이가 아닌, 부모의 계획대로 만들어지는 아이도 있을 테니까. 91-92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거야.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 나아가서는 인생까지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 105

 

모두들 얼마나 훌륭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는지 자랑하기에 바빴다. 자신들도 뒤늦게나마 그런 부모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없다는 건 불행한 일이니 우리가 따뜻한 가족이 되어 주겠다, 선심 쓰듯이 말했다. 자신이 부모에게 상처받았다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108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111-112

 

우리가 원하는 진짜 어른은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믿고, 자신들이 모르는 걸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112

 

가족이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먼발치라는 말의 뜻은 시야에는 들어오지만 서로 대화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거리,라고 한다.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의 마음 속 거리가 아닐까. 서로를 바라보지만 대화는 할 수 없는 거리 말이다. 160-161

 

우리가 부모를 선택한다는 것은 부모가 아기를 낳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자기 아기에 대해서 엄청난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보다는 잘났으면 좋겠다는 마음 정도는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 환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183

 

곳곳에 굳은 결심을 하고 애를 무한정 쓴 인격체들이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도 있다. 늘 부럽지만, 내 삶에 언젠가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만 남는 깨달음들. 그래도 할 수 있는 누군가들은 이런 수준에 도달해 주면 좋을 듯하다. 그런 삶을 사는 동시대인의 존재 자체가 다른 이들의 희망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원칙과 규율을 칼같이 지키는 것보다 힘든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었다. 113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건, 그게 누구든,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나를 이루는 요소라고 믿는 것들이 정작 외부에서 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리듯, 내가 나를 알고 친해지기까지, 그렇게 스스로를 이해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159-160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아픈 과거를 겪었지만 끝내 스스로를 놓아 버리지 않았고, 끔찍한 기억이 스스로를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185

 

하나와 해오름은 명령이 아닌 질문과 반성을 할 수 있는 부모였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일어나는 마찰로 어려움을 겪게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나와 해오름은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두 사람은 부모 준비가 끝난 사람들이었다. 189

 

어른으로서 이런 말,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어 있고,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 힘 있는 자들은 끊임없이 연약한 존재들을 짓밟지. 특권 의식을 누리려는 거다. 힘 있는 자들만이 아니다. 힘이 약한 사람들도 그런 특권 의식을 지니고 있어. 자신도 약하면서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들을 짓밟는 거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 누구나 기피하는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 등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193

 

어른으로서의 우리는 부끄러움을 줄이는 방식으로 살아 보고, ‘미래세대는 제공된 현실적 조건들과 미숙한 어른들로 인한 어려움에지지 말고 희망을 키워 나가고, 의도적으로 남을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서로를 좀 더 자주 용서하고 좀 더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대화의 창구들이 많아지고 쉬워졌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세상에 나가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지레 겁먹을 필요가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싶다. 그 속에서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195

 

모른다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모르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으니까. 삶이란 결국 몰랐던 것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긴 여행이 아닐까? 196

 

마지막으로, 절절한 작가의 말을 옮긴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남에게선 좀처럼 듣기 어려운 말.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스스로에게 해주는 수밖에.

 

누군가 내게 왜 청소년소설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이유를 듣고 싶다. 유년 시절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라고.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하면 돼. 괜찮아, 잘될 거야.(......)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어 주신 당신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전한다. 당신의 가슴 속에도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에게 한번 말을 걸어 보길 바란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가끔은 스스로에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 진심으로 격려해 주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당신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니까.

 

2019년 봄 이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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