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왕 이채연 창비아동문고 306
유우석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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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치면서 핑크와 공주와 발레에 푹 빠져 있던 우리 집 쪼꼬맹이가 초등 2학년이 되자 초등부여자축구단에 가입했습니다. 가족들 모두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했는데, 정말 재미있게 즐겁게 열심히 참여합니다. 방과 후 활동 정도인가 했는데 다른 학교 축구부와 대전 시합도 하고, 자기 방에서 혼자 잠들 때마다 눈물을 꼭 보이는 아이가 1박2일 훈련도 다녀왔습니다. 예쁜(?!) 옷들을 벗고 유니폼과 고글과 축구화 착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어린 사람들의 성장이 그렇긴 하지만 이 모든 갑작스런 변화가 사실 처음에는 엄청 놀라웠습니다. 혹시 적응하기에 실패하고 그만 두게 되면 우울해하거나 실망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는데 여전히 좋아하는 활동을 씩씩하고 신나게 하는 아이를 보면 무조건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늘 잘 보이고 싶은 무척 좋아하는 할머니께서 자꾸만 “예쁜 손녀 까맣게 다 타네~ 그러게 여자가 무슨 축구를 이렇게 열심히 해!”라고 가끔 말려 보려 노력하시는 게(ㅎㅎ) 단 하나의 걸림돌이긴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ㅎㅎ) 응원하고 있으니 아직은 딱히 스트레스나 상처를 받지 않는 것 같아 안심입니다. 조금만 더 젊고 체력이 남아 있다면, 저도 여자축구팀에 가입해 신나게 활동해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점이 서글프고 아쉽습니다.

 

[축구왕 이채연]은 아이들을 통해 듣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제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학교 내의 여자 축구부 활동과 아이들 간의 인간관계, 심리묘사, 성장하는 순간들을 알려주고 보여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특히나 저자가 실제 초등학교 교사로 교내 여자 축구부 감독을 맡은 경험을 바탕으로 쓰신 거라 섬세하고도 유쾌한 이야기들이 가득입니다.

 

“여자 축구부원을 모집합니다. 준비물은 공을 사랑하는 마음!”

 

꼭 ‘여자들’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나 처음 배우는 일에는 서툴게 마련이지요. 재미있는 부분은 아이들이 열심히 훈련하는 대견한 모습들과 축구를 좋아하게 되는 심경변화, 경기를 치를 때마다 한 팀이 되어 노력하는 과정의 가치를 느끼고 성장하는 모습입니다. 역시나 ‘성장물’은 감동입니다. 학대도 체벌도 우승 강박증도 없이, 재밌으니까 하고, 아쉬워도 크게 같이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니 독자인 저도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여자 축구부의 경기를 보며 열심히 열심히 응원하는 남자 축구부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라 잠시 현실에서의 악의와 대립과 비난이 잊히기도 합니다. ‘왕’이라는 전근대적 제목을 붙이지 말지, 하는 작은 불만도 살짝 생길 정도로 참 바람직하고 행복한 교육일상입니다.

 

“잘 못하면 어때? 재밌잖아!”

 

우리 집 꼬맹이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자꾸 개입되어서 더 그렇겠지만 진심으로 마음이 뭉클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읽는 내내 아이들을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이든 현실이든 아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길, 그러한 매일이 좀 더 즐겁고 행복하길, 어쩌면 원하는 승리를 한번이라도 경험해 보길,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저자처럼 사랑 가득한 눈으로 지켜봐주고 함께 해줄 수 있는 어른들이 많기를 애타게 기원했습니다.

 

한편 한국 사회에서도 구분과 편견을 넘어 이토록 신나는 활동을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남녀노소들이 더 많아지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책표지를 보자말자 “이거 내 책이예요?”라고 눈을 반갑게 빛내던 꼬맹이와 함께 읽고 얘기 나누기에 참 반가웠던 책의 건승을 응원합니다.

 

주기적으로 국가별 금메달 개수만 세면서 일희일비하지 말고, 원하는 국민들 모두가 매일 각자의 일상에서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더 넓은 운동장을 마련하는 일에 ‘국력’이 더 진지하게 쓰이길 바랍니다.

“채연아, 어때? 우리 축구 한번 해보자!”

설마 설마 했던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인연은 내 뜻과는 상관없이 엮이는 거였다.

“어? 어......”

난 또 너무 쉽게 끄덕이고 말았다. 이상하게 지영이와는 모든 것을 같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도 아니고 축구다. 남자아이들이 풀풀 풍기는 땀 냄새를 끔찍하게 여기는 내가 축구를 할 수 있을까? 27-28


한동안 힘들어하던 안곰샘은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유명한 축구 감독을 보게 되었는데, 그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축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할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34


축구는 움직임의 운동이야.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움직임! 주변의 움직임을 재빨리 포착하고 나도 그에 맞게 움직이는 것! 상대의 움직임과 나의 움직임에 민감한 사람이 축구를 잘 하는 거야. 50


잊지 마. 남의 움직임에 나의 움직임을 맞춘다. 옆줄, 앞줄 흐트러지지 않게 달리는 거야. 이건 축구가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더 중요해. 혼자서 잘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59


움직임과 패스의 상관관계는? 패스는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하는 거야. 움직임은 상대와 나 사이의 공간, 즉 패스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지. 많이 움직이는 만큼 공간도 더 많이 생긴다. 69


운동장을 달리며 온 신경을 공에 집중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내 숨소리와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만 느껴질 뿐이다. 경기가 끝나면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지만 마음만은 축구공처럼 단단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축구를 생각보다 더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88


축구는 매력적이다. 정말이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하보다 축구가 훨씬 좋다. 골을 넣었을 때 발등에 공이 맞은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분명 그 느낌을 안다. 135


이 책은 기성용 선수만큼이나 발랄한 여자 아이들이 펼치는 축구 이야기다. 세 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스물네 명이 된 우리학교 여자 축구부를 떠올리며 썼다. 169


“선생님이 지금 쓰는 동화에 우리 전국 대회 나가는 걸로 되어 있는데......”

“선생님, 그러면 우리가 부담스럽잖아요!”

“알았어. 그런데 전국 대회 나가면 학교 수업 빠져도 되는데......”

“와아!”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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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과 정의 -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보다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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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에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와 한국전쟁과 이승만 정권과 유신독재와 군부독재와 문민정부를 다 목격하고 귀천하신 조부모님들께, 이제는 조손인 나도 못지않은 격동과 격랑의 세월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고 말씀 올려도 될 듯한 기분이 든다. 병리적이고 억압적인 구조의 말로로서 당연하고 필연적인 흐름이겠지만,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이 단출한 단일 사건인양 보일 정도로 얼마 전부터(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되겠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적폐와 병폐들이 죄다 드러나기 시작"하는 분위기이다. 어느 한 구석 온전히 맑고 반듯한 곳이 없다. 적발로 갑작스럽게 노출된 퀴퀴하고 음습한 부분들이 마치 볕에 타들어가는 병증 환자의 비명처럼 스스로의 초조와 불안과 공포심을 날카롭고 무자비한 무기들로 바꿔 휘두르는 모습이다.

 

군주의 덕목이란 ‘필요에 따라 선악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적혀 있는 마키아벨리즘은 너무 많은 이들이 인용하고 배우지 않고도 잘만 추종해서 구태여 나까지 성실하게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권력을 얻는 유일한 길이 기만과 계산과 조작에 있다고 믿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그 면면을 보면, 그러한 동력이 인정과 평가 욕구라기보다는 타인에게 권력을 자의적으로 남용할 때 느끼는 쾌락과 본인들이 현재 가진 권력으로 누릴 수 있는 다른 권력으로의 확장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검사란 직업은 최고로 짜릿하고 흥미로운 직업군이다. 검찰은 수사를 할지 말지도 결정할 수 있고, 기소를 할지 말지도 결정할 수 있고, 구속을 할지 말지도 결정할 수 있고, 구형을 하려면 얼마를 할지도 결정할 수 있고, 재판 후에 형 집행을 어떻게 할지도 결정할 수 있고, 이 모든 권한을 다 가지고 있는 거니까.

 

게다가 전관 오면 사건 봐주는 행위에 대해 아무런, 정말 아무런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듯하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에도 자신들이 99%는 제대로 하고 1% 정도 외압이 들어오거나 선배가 부탁하면 봐주는 건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공정’이란 개념 자체의 부재와 엄청난 자기 합리화가 조직적으로 내재화되어 있는 형국이다. 영장 한번 꺾어 주고(?!) 몇 억씩 보장받는 살맛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검찰총장 직속의 무슨 무슨 권한실조 위원회들 몇 개 만들고 개혁의 얼굴을 하지는 말길 바란다. 시민독자인 내게 떠오르는 개혁할 몇 가지 중요한 사안들도 1. 기소독점 2. 수사지휘 3. 공판 4. 현직 검사 비리 외부 감찰 5. 공수처 분리 6. 자격 정년제 7. 전관예우금지 정도는 된다.

 

상식적으로 누군가 자신에게 ‘개처럼 산다 혹은 일을 개같이 한다’라고 하면 마땅히 모욕감을 느끼고 그러한 비하 표현(개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단지 인간 사회에서 개의 비유를 통해 인간을 비하하는 그 표현 지점을 말하고자 한다)의 저급함과 성급함을 지적하며 억울한 부분을 밝히는 것이 당연한데, 스스로 “우리는 개다. 물라고 하면 물고 물지 말라고 하면 물지 않는다.”고 한 발언은 여러 가지로 섬뜩하고 위험한 냄새가 난다. 판단력과 사고력과 직업윤리의 부재 혹은 그런 것들은 1도 염두에 두지 않는 합법적 범죄자다운 대범함,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교묘한 회피 의식과 발 빼기는 빼먹지 않는, 여러모로 문제가 심각한 발언이라 본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입마개와 목줄이 느슨해지자마자 충견답게 명령을 기다리는 대신 물라는 명령 없이도 알아서 물고 싶은 건 물었고 더 나아가 그런 행위를 통해 누구를 물어야 하는가를 주인에게 몸소 가르치려 들었다.

 

개의 정치적 입장 배한봉

 

개들이 짖는 소리를

개소리라 한다.

그것은 개들의 대화이기도 하고

개들이 달을 보고 하는 뻘짓이기도 하다.

 

사람끼리 가끔

개소리한다고 할 때가 있다.

사람 안에 개가 들었다는 말이다.

 

개들도 그럴 때가 있을까.

 

개 안에 사람이 들어

울부짖으면

사람소리 한다고 개들끼리 수군거릴까.

 

그러면 그것은,

욕설일까,

정치일까,

철학의 한 유파를 형성할 수 있을까.

 

벽에는 커다랗게 얼굴 사진을 새긴 포스터가

일렬횡대로 붙어 웃고 있다.

 

벽보 앞을 지나가다 나는

개 짖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정치적 혐오일까, 무관심일까, 참여일까.

 

골목 앞, 신들린 무당집 개가

아무나 지나갈 때마다

컹컹컹, 컹컹 자꾸 묻는다.

 

‘늘공(직업 공무원)과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전투‘는 늘 늘공의 승리로 끝난다.’ (임은정 검사). 현직 검사가 단호하게 재검증해주니 알고는 있었지만 끝까지 인정하기 싫었던 현실을 눈을 깜박이지도 못하고 쳐다봐야 하는구나 싶은 실감이 든다. 대한민국의 ‘관료마피아’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각국의 마피아보다 더 대단한 결속력과 응집력을 가지고 결정적일 때마다 실패 없는 실력행사에 나선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국민들이 있을까 싶은 세월이 이미 오래다.

 

특히나 근래에 <대한민국 검사집단이 사는 법, ‘칼이란 이렇게 휘두르는 것이다!’>란 다큐를 거의 매일 실시간으로 소름끼치게 목격했으며, “찍히면 다 죽는다!”를 충실하게 보여 준 숨 가쁜 표적수사와 화력 집중 쇼 덕택에, 경멸하는 전직 대법원장의 적법한 처벌을 고대하는 한편, 존경하는 또 다른 전직대법관이자 저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사법농단과 사법개혁’의 길 위에서 자꾸만 생각이 벗어나는 것을 막아보려 애썼지만, 어느 새 머릿속엔 도검난무 화려한 검찰개혁에 대한 당위성과 절실함이 커져만 갔다.

 

김영란 전대법관이 “판사생활 동안 ‘사건에는 정답이 있고 판결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왔는데 대법원에 와보니 판결은 선택이 되기도 했다.”고 한 ‘용감한’ 고백(거의 대부분의 유책인들이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현실에서 비웃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존경한다.)은 검찰의 노골적이고 거칠 것 없이 자유분방한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정의’의 막강 행보에 짓밟혀 어느 카페 한 구석에서 들려오는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느껴질 정도이다.

 

임은정 검사가 ‘개별 전투’에서는 질지라도 결국 ‘전쟁’에서는 시대정신을 담은 행보가 승리를 거둘 것이라 위로를 건네지만, ‘일치단결한 프로 칼잡이들’을 외부에서 개혁시킬 동력 약세와 ‘칼잡이들의 갑작스런 자기반성과 자체개혁’이란 망상스런 기대 사이에서 희망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알아서 미리 패배한 겁쟁이일 뿐인가. 내가 영원히 틀리고 임은정 검사의 확신이 모두가 볼 수 있는 불꽃처럼 명약관화 불타오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법의 본성은 기존 질서를 지켜나가려는 데 있으므로 계층화된 사회질서 또한 지켜나가려 할 것이다. 22

 

때로 형식적 평등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쪽을 유리하게 보호하면서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111

 

삼성 엑스파일 사건 판결의 다수 의견이 정당행위의 해석을 종래의 해석보다 훨씬 더 좁혀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정치적 성향에 따른 선택인데도 그 결론에 대한 책임은 결국 고 노회찬 의원만이 지게 되었다. 200

 

정치적 판결이 다루는 문제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가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정치적이고 정책적이어서 '민주적 공론의 장'에서 깊이 있게 토론되도록 하는 길을 찾아야 하는 문제들이다. 217

 

판사들이 큰 그림을 가지고 결론을 선택한다는 것은 원래 사법부가 의도하지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판결의 결과들을 분석하여 보면 어떤 성향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중략. 그렇다면 입법을 하는 경우뿐 아니라 만들어진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에도 세계의 미래와 법의 미래를 생각해 보고 상상해 보는 일들은 필요하다. 생각과 상상을 그치고 주어진 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계산된 알고리즘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226

 

시종여일 독보적으로 어조가 차분해서 설득력과 신뢰도가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는 전대법관 김영란님의 글 [판결과 정의], 혼자 읽고 고민하기엔 너무 크고 복잡한 정치/사회관계를 다루는 주제이니, 책모임이나 토론모임이 생기고 공론화되는 과정을 거쳐 [김영란법]처럼 법률 정책화할 수 있을 정도로 곱게 다듬어지길 진심으로 고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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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의 후손
박숙자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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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책제목과 저자를 짝 지어 외우는 그런 학습 방식이 어떤 교육적 의미와 효과가 있었는지 참 어리석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지만, 당시에는 그저 외우라니 열심히 외웠다. 그런 학창 시절이 지나고 나니, ‘정보’로 알고 있는 책들의 목록은 길었으나, 실제 읽어본 책은 드문 그런 어른이 되었다. 박숙자님의 [하멜의 후손]은 내게 그런 ‘책정보’ 중 하나인 [하멜표류기]를 떠올리게 했고, 나는 [하멜의 후손]이 더 재미있을 것이 분명하나, 과거의 기행적인 교육의 폐혜를 하나 극복해보겠다는 ‘사명감(?!)’에 [하멜표류기]를 먼저 읽어 보기로 결심했다.

 

표류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하멜과 그 일행은 애초에 목적을 가지고 조선을 향한 것이 아니라,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태풍으로 인해 제주도에 표착한다. 병영에 체포 구금되었다가 서울로 압송되어 임금 알현하고(요즘은 난민관련부서가 있지만 당시는 왕조의 특성 상 모든 결정과 재가는 임금이 직접!) 여수로 가서 탈출을 시도하고 그런 고난의 나날을 보내는데 이는 소설의 구성과 내용과도 거의 유사해서, 현실에서나 소설에서나 비슷하게 기구하고 딱한 삶으로 표현된다.

1653년 8월 16일, 악몽과 같던 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토록 견고하고 아름답던 스페르베르호가 암초에 몇 번 부딪혔다고 해서 그렇게 어이없이 부서지다니! 선원 64명이 이 배를 믿고 넓디넓은 바다를 항해하며 삶의 터전으로 삼고 아끼며 사랑하지 않았던가? 한정된 공간에서 같이 먹고 생활하며 서로 의지하는 가운데 다투기도 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던 동료들이 파도에 떠밀려 해변에 시체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 하멜은 기가 막혔다. 54

 

하멜은 결국 13년간 조선에 머무는데, 이때 쓴 글이 하멜표류기이며, 이는 하멜이 관심 가는 주제로 자의로 글을 쓰고자했던 것이 아니라, 밀린 월급을 청구하기 위한 증거자료로 제출할 목적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횡령과 배임과 세금유용이 판치는 21세기 대한민국을 목격하고 사는 입장에서 17세기에도 꽤나 분명한 구체적 증거자료를 요청한 점이 부럽기도 했다. 보고서 성격이라 무미건조하고 사실 위주로 쓰여서 기대한 것처럼 흥미롭거나 재미가 있지는 않다는 평가가 주이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점들도 있었다. 어쨌든 17세기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의 모습이란 처음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우린 스님들과 사이가 가장 좋았는데 그들은 매우 관대하고 우리를 좋아했으며, 특히 우리가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의 풍습을 말해 주면 좋아했다. 그들은 외국 사람들의 삶에 대해 듣기를 좋아했다. 만약 그들이 원하기만 했다면, 그들은 밤새도록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을 것이다. 49

 

50~60년 전에 그들은 담배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때 일본인들이 그들에게 담배 재배술과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일본인들은 그 담배씨를 남반국에서 가져왔다고 말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남반코'라고 부른다. 이 나라에서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여자들은 물론 네댓 살 되는 아이들도 담배를 피운다. 123

 

또한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난민허가 받기가 가장 어렵다는 대한민국인데, 효종이 하멜과 일행들에게 "그대들의 신변을 보호해주겠고, 여생을 마칠 때까지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지원해주겠다."는 평생지원을 약속한 것이 조선의 복지에 대한 공부가 없는 나로서는 그저 놀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멜과 동료들이 목숨을 걸어가며 탈출을 시도한 점이 거부감 없이 잘 이해가 된다. 고향에 가고자하는 마음이야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두 책을 번갈아 읽다보니 일반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이유말고 하멜이 조선을 떠나야했던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물으며 상상하며 쓴 책이 [하멜의 후손]인 것처럼 느껴졌다. 가장 큰 차이점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설에서는 하멜이 무당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 후손이 살아가는 모습까지 보여 준다는 점이다. 그러니 하멜을 제외하고는 모두 허구의 인물들이다. 소설이지만 개인사뿐만이 아니라, 역시 배경이 근대사의 큰 역사적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서 시기라 역사적 정보가 풍부하여 역사이해 참고도서의 역할도 하는 장점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사투리를 쓰는데, 이는 걱정했던 것보다 가독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나의 할아버지 남건열은 1936년에 출생하여 일제 때 유년기를 보냈고, 해방과 나라의 분단 그리고 끔찍한 6.25 전쟁 등, 변화무쌍한 시대를 다 거치신 분이야.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다복한 인생을 사셨지. 물 건너 삼신리 선이의 딸과 결혼하여 오동리에서 조용히 살았어. 그분의 부친 남민석, 그러니까 나의 증조부가 일본에서 가져온 돈으로 마련한 논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군색하나마 단란하게 삼 남매를 길렀지." 207

 

오랜만에 역사소설과 역사서 두 권을 뒤적이며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정설은 아니라고 하지만, 만약 하멜과 그 일행들의 후손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독성이 좋은 역사소설이라 부모님께 한번쯤 권해드리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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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이금하 1
명전우후 지음, 이지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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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플레이에서 드라마를 방영한다고 해서 2편을 연이어 보고 책을 펼쳤다. 꼭 드라마를 먼저 봐서는 아닌 듯한데,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들이 실제 인물들인 것 마냥 생동감과 존재감이 대단했다. 역자의 표현력도 중요한 공로가 있을 것이다. 17세, 고교시절, 첫사랑. 연애소설……. 이런 내용을 지금에 와서 잘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의심(?!)도 들었지만, 어쩐지 10대 시절을 실감나게 떠올리게 해주는, 혹은 그 시절의 느낌을 다시 비슷하게 느껴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쌀쌀한 날의 달달한 간식이나 선물 같은 이야기를 읽어 본 기억이 없는 듯해서(단지 기억을 잘 못하는 것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주책없이 설레면서 읽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일은

바로 너와 함께 천천히 늙어가는 일

소소한 행복들을 내내 간직해두었다가

나중에 흔들의자에 앉아 천천히 이야기하고 싶어


그 나이에 느낀 감정이 변하지 않고 계속 간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고, 만약 계속 간다면 그것 또한 무척 행복한 일이라고.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신을 만난 후부터 당신은 어디에나 존재해요.


표지 색감을 보면 나이가 든 나로서는 살짝 억울해서 클리셰처럼 느껴고 싶을 만큼 대비를 이룬다. 푸릇푸릇한 청춘이라 파릇파릇한 표지. 예상과 달리 1권을 당황할 만큼 오래 시간을 들여 읽었다. 484+488(1, 2권 페이지 수)이 적은 분량은 아니지만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술술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국가도 시대도 캐릭터도 모두 다른데 어쩐지 얼마 읽지 않아서부터 자꾸만 나의 10대와 그 세계의 친구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20여년이 지나서 그때 받은 편지들(편지를 봉투와 함께 모으는 습관이 있다)이 갑자기 떠올라서 찾아 읽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멍하니 잠시 쉴 시간도 필요하고, 마음이 조금 답답해져서 창을 열면 서늘해진 가을바람이 창가를 타고 마음에 들어와 머물러서 회환과 오한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했다.


진짜 두려운 건 자신한테 지는 거야……. 자신의 길은 자신이 결정해야 해. 다른 사람이 네 감정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쉽게 실망하고 상처받게 돼.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일인데 나는 지금 왜 굳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는 걸까?

 

과시는 자신감 결여의 표현이다. 내가 믿지 못하는 건 도대체 무얼까? 허뤄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점점 늘어났다.

 

일 년 중 단 하루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세월이 이토록 오래 무탈하게 쌓여갔는데, 아직도 남아서 떠오를 여지가 남은 장면들이 그 세월을 살아남았을 줄이야. 다른 어림직도 계산도 아무 것도 없이 오롯하게 순정한 감정들로만 채워진 관계들, 그런 친구들이 소중하고 좋아서, 만나서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한 만큼 헤어지는 게 매번 아쉽던, 그래서 혹시 소식 모르고 떨어져 있어야 하는 일이 생길까봐, 그럴 경우,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에 꼭 어디서 만나서 생사를 확인하자, 이런 약속도 나누었다. 아무도 그 당시에는 그 약속을 어길 거라 생각지 못했(을 거라 미루어 짐작)지만, 나는 결국 해외에 있으니까,란 핑계를 핑계 삼아 그날 그곳에 나가지 않았다.


반지로도 사랑이 떠나가는 것을 붙잡아 둘 순 없어

누가 좀 말해주지

사랑이 이처럼 쉽게 끝나버린다는 것을​


매번 수화기를 들면 의례적인 안부 인사를 전하고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고 나면 금세 침묵이 찾아왔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적당한 화제를 찾을 수 없었다. 미래는 너무 멀고, 현실은 너무 무거우며 과거는 너무 제한적이었다.

 

“감정이란 게 매몰 비용이야. 꼭 그 사람의 모든 게 다 좋아서 이러는 건 아냐. 그저 너무 많은 걸 쏟아 부어서 회복하기 어려운 것뿐이야.”

“매물 비용인 걸 알면서 계속 투자하겠다?” ……

“응 그게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니까.” ……

“다 털리고 파산하긴 싫으니까.”

 

“나도 그런 말을 했었지. 근데 사랑하지 않을 때 했던 말들은 다 무효야.”


사랑스러운 만큼 질투와 시샘이 나는 눈부시고 뜨겁고 아련하고 눈물 촉촉한 그 해 여름이야기가, 실제로 어느 해 출근길 마지막 횡단보도를 못 건너고 눈물이 쏟아지던 황망한 그 시간을 리플레이 시키는 바람에, 내게는 무릎을 꿀리는 막강한 위력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는 내내 겁이 났다. 잃어버렸든 버려버렸든 그 이야기, 그 시간.


그녀의 삶은 마치 새롭게 펼친 일기장처럼 공백의 상태였다. 하지만 어제 쓴 글씨가 너무 진해 종이에 배겨서 오늘 펼칠 이 페이지에 패인 흔적이 남았다. 자칫 지난날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될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이야기로 그 모든 것을 가릴 수 있진 않을까?


나뭇잎이 분분히 덜어지던 그 계절, 듣고 싶었던 약속을 끝끝내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가을에는 더 이상 선택을 미룰 수 없었다……. 선택의 저울 앞에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따라 자신의 판단의 추를 움직여야 하는 걸까?...... 어차피 닥칠 일은 언제고 닥치게 마련이고, 떠나간 것은 결국 구름과 연기처럼 희미해지기 마련이었다.


일 권을 읽고 나서 접힌 귀들을 다 펴보니 내용이 이러하다. 호되게 감정의 소용돌이를 빠져 나왔더니 2권은 다른 의미로 당황스러울 만큼 재밌게 편안하게 읽혔다. 어쩌면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고(혹은 하고 싶지 않고), 잘 이해가 되지 않던 그 때의 나를 이제야 이해해보고자 천천히 일 권을, 허뤄를 알아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각자의 기억은 각자의 것이고, 기억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미화되고, 자신에 관해서라면 언제나 변명할 이유가 자동 생성된다는 점을 익히 아는 지라, 내가 아무리 절실하게 '작은 진실들'을 알고 싶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해 새로 알게 된 내용도, 극적인 반전과 더불어 새롭게 이해되는 사건도 없지만, 난, 혹은 내가 사는 이야기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 하나를 지켜내는 일도 참 자주 실패하는 나약한 존재란 생각은 든다.


이제 우리 각자 높이 날아오르는 거야. 지난 일은 그냥 지나가 버리도록 내버려둔 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 버렸잖아.

 

그만하자.

헤어지자.

잊어버리자…….


첫사랑의 추억이 강렬하고 잔뜩 남아 있는 독자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어야 할 것이고,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를 믿는 분들은 더 조심하셔야 한다. 볕이 눈부시지만 한 줄기 바람에도 마음이 긁히는 가을이라 더 그러하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았다. 만남도 헤어짐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수많은 인파 속에서 당신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고 해도 말이다......"

 

난 너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너와 함께 이 길을 끝까지 갈 꺼야.
........................................

 

*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혹은 치아'로 번역되어야 할 부분이 '이빨'로 표기되어, 저항을 해보았지만, 몰입에서 강제로 빠져 나와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닌 분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표기법'이 문제가 아니라, '이빨'에선 왜인지 매번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고질병이 있다.

 

이토록 대단한 번역 작업을 하셨는데, 이런 웃기는 이유를 들어 지적을 해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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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생긴다. 유괴/납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웠던 ‘스톡홀름 증후군’ 증상을 내가 가질 줄이야. [루거 총을 든 할머니]는 연쇄살인범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주인공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공감과 애정을 느낀다. 102세가 될 때까지 ‘자력구제’에 의해서 목숨을 지키고 살아남아야 했던 여성의 이야기가 기막히고 슬프고 무서운데 ‘재미있고 통쾌하다’. 폭력적인 내용들이 묘사되는 부분에서는 심장이 막 떨렸지만, 적지 않은 분량인데 어느새 끝이다. 102년을 살아낸 한 인간의 삶이 펼쳐지는데, 지루하기는커녕 전력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호흡이 멈추고 끝에 이르는 극강의 흡인력을 가진 작품이다.


첫인상은 한 세기를 시난고난하며 살아 온 눈물콧물 다 빠지는 분위기일 거라 짐작했는데, 일단 이렇게 웃길 수가 없다! 격변하는 현실 속 파란만장 인생을 이렇게 묘사하는 필력이 압권이다. 나는 곧 이 ‘할머니’에게 반했다. 살아오며 직/간접적으로 겪은 모든 체증을 빵!빵 날려 주는 처음 만나는 주인공 유형의 여성이었다. “Dam, that woman's fine!(Luther)” 이런 분위기가 여태 재밌는 줄 모르고 살았던 프랑스 소설의 유쾌함인가, 뭔가 막 엄청난 손해를 본 것처럼 억울한 기분이 살짝 들었다.

 

배경은 무려 제1차 세계대전부터 시작한다.

인생은 짧아, 이것아......

세상의 규칙 따위...... 아무 상관없다고......

살아야 해...... 할미 말 들어!"

"아내를 때리고, 고문하고, 파괴하는 남편은 법으로 처벌받지 않아......"

"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내보일 수 있니?

정의와 법은 정략결혼처럼 서로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야."

하지만 뤼시앵은 설득력 있는 반대 논리를 펼치는 대신, 보다 충격적인 논리를 선택했다. 요컨대 베르트의 따귀를 갈겼다. 부족한 지성을 크게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여자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선조들의 방식. 남자들은 늘 그런 식으로 위기를 모면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바꾸겠는가?

"자, 이제 알겠어? 아내에게 응당 자상하게 대하는 대신 구타를 일삼으면, 아내가 당신 무덤을 파면서 신바람이 난다는 걸? 이래도 자기가 얼마나 잘못된 남편인지 깨닫지 못한다면야."

"그날 이후로 그 더러운 나치 놈이 매일 밤 내 머릿속에서 맴돌거든. (...) 레지스탕스들은 나와 똑같은 일을 하고서 훈장도 받고, 용감하다고 떠받들리지만 말이다."

"난 그걸 전쟁범죄라고 보는데. 아니면 전쟁에 의한 정당한 범죄거나. 내 행동이나, 전장을 피로 물들인 우리의 용감한 병사들의 행동이나 다를 바 없다고."

1952년엔 여자를 노예화하는 것은 하등 범죄가 아니었다. 그들을 일명 가정주부라고 불렀으니까. ​

"어, 그래. 우리 여자들은 말이야. 선택의 호사를 누리지 못해. 우린 무엇보다 애 낳는 기계라고. 물론 그것도 모든 기능이 정상일 때 얘기지만! 출산과 살림, 우린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못해! 하지만 난 달라. 이젠 시대가 바뀌었고 난 평등을 원해. 그러니 당신도 집세를 부담해." ​

"여자가 권리만 주장했다하면 그 즉시 생리대를 들고 나오니, 이거 원. 저질에, 비루하고, 생산적이지 못하기 짝이 없네."

전쟁 속에 태어나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베르트는 불평등과 불법으로 덕지덕지한 사회를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과격하고 과감하고 충격적으로 파괴해 버린다. 마치 ‘좋은 게 좋은 건 니들이나 좋은 거지’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는 남자의 머리통을 루거 총으로 날려버리는 행위로 대표되는데, 이때 머리통이 날아간 남자들이란, 1. 강간범인 나치군인, 2. 가정폭력범이자 위선자인 첫째 남편, 3. 성적으로 모욕을 일삼고 불임을 폭력의 정당화 수단이자 공격의 수단으로 삼던 두 번째 남편, 4. 부부강간과 미성년자 강간범 세 번째 남편, 5. 제 쥐꼬리만한 재능을 이유로 여성을 마구 착취해도 된다고 비하를 일삼던 네 번째 남편, 6. 스스로를 구원자라 여기던 망상증 다섯 번째는 스스로 죽음, 7. 베르트의 유일한 사랑인 루터를 인종차별의 희생자로 살해한 인간쓰레기들이다.

 

 

나는 법치주의에 반하는 삶을 살지 않았고, 앞으로도 가능한 그럴 것이지만, 소위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처벌을 받지도 않는 ‘백 번 죽어 마땅하고도 남을 인간들’이 한 개인의 인생에도 이렇게 끝없이 등장하는 일이 과연 픽션뿐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하고 두렵다. 미제의 역사적 범죄들에 대한 연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일본군성노예로 고통 받은 한국의 할머니들의 삶이 피할 수 없이 교차된다.

그래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덕분에 나는 울기보단 자주 크게 웃으며 책을 끝까지 읽었고, 마지막 베르트의 선택을 절대적으로 존중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긁히는 듯 아팠다. 그 모든 위태로운 시절을 견뎠으나 끝내 유일한 사랑을 멍청한 인간들의 생각 없는 폭력으로 잃고 만 베르트의 힘겨운 인생이 절망적이게 숨 막혀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 베르트 못지않은 한 세기를 살아낸 수많은 할머니들이 한 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지도 못하고 한 분 두 분 떠나시는 현실이 몸서리쳐지게 죄스러워서 그러했다. 그분들도 이처럼 단 한번이라도 속 시원한 순간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페미니즘 스릴러’라는 소개는 작품에 훨씬 못 미치는 명칭이다. 설마 한 인간의 전 생애를 설명하는데 페미니즘과 스릴러로 충분하겠는가. 치장도 포장도 불필요한 날 것 그대로의 화법과 사건 전개, 마치 내 삶에 부끄러움이란 한줌도 없다는 할머니 심정을 녹취한 듯한 문장들이다. 프랑스어 원서는 모르겠으나 역자의 필력 또한 대단하다는 존경심이 든다. 이 책이 승승장구 반향을 크게 불러일으키길 바라는 마음 한편에는, 한국 사회의 온갖 위선들이 교양과 전문지식의 탈을 쓰고 또 힘을 받아 떠들어 댈 일이 눈에 선하다. 그래도 나는 확신한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독자들이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방식의 통쾌함을 경험할 것이라고.


독자에 따라 이 소설의 결말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열린 결말인지 해석이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 통상 희극보단 비극이 깊이 공감할 힘이 있고, 독자를 변화시킬 여지가 있다고 믿지만 역시 맘 깊숙하게 슬픔이 차오르고 한동안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02세를 생존한 베르트를 알게 되고 그를 보내고 이제 나와 우리의 현실 속에서 ‘제대로 생존하기 위해’ 갈 길은 까마득하지만, 법을 고치고 제도를 정비한 후에도 차별적 요소들이 더 이상 사회에 만연하지 않도록 끝장을 내려면,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작을 업데이트하는 일은 매번 살짝 힘겹다.


표지의 색감이 불행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생명력이 가득하고 아름다워 한참을 보았다.

 

 

"내 사랑...... 허브티와 위스키를 준비해둬, 곧 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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