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색칠 명상 - 신개정판, 세상 시름 거뜬하게 이기는 명상과 컬러링
변건영 지음 / 밥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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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Mandala)는 산스크리트어로 본질(mandal)과 소유(la)가 합쳐 이루어진 글자로, 우주의 본질을 담고 있는 안내도이자 그림을 가리킨다.


 

아이들이 아무런 조건과 제약 없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색칠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집중하는 반짝이는 눈빛들과 오므라든 입 모양도 귀엽고 눈부십니다. 명상의 기본이 곁 생각 없이 지금, 여기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것이라면, 아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명상 능력자들인 셈이지요. 명상을 처음 접한 것은 틱낫한 승려를 만나면서이고 덕분에 최초의 선입견을 깨고 개안을 한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으로 지금까지 영향과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기회로 기복 소원과 세속적 욕망으로 끓어 넘치는 한국불교 말고도 다른 불교 형태와 방식과 내용들이 있다는 것을 배웠고 덕분에 그 세계에 대한 이해의 가장자리가 넓어지는 운 좋은 혜택도 받았습니다. 특히 티벳의 역사와 불교에 대해 완전한 무지 상태에서 새롭게 배우게 되어 가늘지만 긴 인연이 서울에서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틱낫한 승려와의 시간들 중 소중하지 않은 한 순간이 없지만, 마지막 날 참가 지원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커다란 만다라를 함께 만들어 나간 것은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강렬하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종교적 경험이 아니라 즐겁고 자연스럽게 배우는 색칠 명상! 도안을 처음 보았을 때는 2차원 평면 종이 위에 원과 사각형이 다소 지루하면서도 어지럽게 그려져 있네, 하는 시큰둥한 느낌이었는데, 귀가 얇고 특히나 좋아하는 이들의 말은 세뇌 수준으로 쏙쏙 알아듣는지라, 설명을 들을수록 2차원이 다차원으로 밋밋함이 복합 시공간으로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고, 함께 색칠하는 단계에서는 즐거우면서도 기분 좋게 집중할 수 있고 정답이 없으니 무한 상상력으로 마구 색깔을 난발했는데, 다 끝나고 나니 문양과 색채와 신비롭게도 어울리고 오묘하게 멋진 것도 같고 완성된 작품이 가진 위엄과 권위가 존재감이 확실해서 크게 공헌한 바도 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어 잠시 우울하고 시름에 겨운 자신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 일이 완전히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이 없다는 말이 실감날 만큼 운 좋게도 융의 심리학(Jungian Psychology) 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되어 다시 만다라를 상기할 수 있는 기회도 만나게 되고, 현대에 이르러 정신심리의학자인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이 만다라를 심리치료에 소개 활용한 내용을 알게 되면서 반가움과 기쁨이 더해졌습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유용한 방편이 있게 마련인데, 제게는 만다라 색칠명상이 더 없이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었고 기억이라, 굳이 명상수련의 방식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없이도, 더욱 자연스럽게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과 자주 하면 좋겠다 싶은 놀이입니다. 평생을 불교 신자로 차분하고 엄숙한 사찰 참선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도 좀 더 다채롭고 일상적일 수 있는 만다라 색칠명상을 권해 보았습니다. 아직 도안들이 처음 상태 그대로 모셔져 있어 언제나 처음 시도해 보시려나 궁금해 하는 매일입니다.

  ​

만다라의 철학과 역사와 의미를 학구적으로 익히고 그 내용을 풍부하게 알아야 한다는 부담과 의무감 없이 그저 다양한 도안들을 만나보고 술술 넘기며 구경하다 마음에 드는 하나가 있으면 색연필을 꺼내서 그저 색칠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자신을 토닥토닥 위로하는 기분으로, 잘 했어, 잔 견디고 있어, 멋져, 이렇게 가벼운 위로를 던지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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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행복과 인간관계 - 행동에 변화를 주는 강력한 힘
강영석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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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공부는 했어도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운 바가 없다.

흔히 무슨 무슨 ‘비법’이라는 책들에서 들려주는 설득력이 강한 이론들이 아니라 수많은 스토리텔링 예화들이 있어서 일단 처세술이나 계발서의 이론을 새로 습득하는 느낌이 전혀 없고 술술 잘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책처럼 느껴졌다. 가독성이 좋은 것에 더해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 방식이 더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밑줄 긋고 애써 외어야하는 수고가 없이 이야기 자체로 기억되는 방식이 어쩌면 더 오래 기억될 거란 기대도 장점으로 생각된다.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는 말이 있다. 만남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관계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중략. 따라서 이 책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론을 기술하려는 서적이 아니라 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을 다루는 실제에 중점을 두었다. 9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마음속 어딘가가 아니다. 지도 위의 어딘가도 아니다. 그곳은 너와 나 사이의 공간이고 우리가 그 공간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 공간을 더 편히 여길수록 행복도 더 커진다.” 중략. “사람이 없다면 천국도 갈 곳이 못된다”는 레바논 속담도 우리의 행복에 사람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26

레바논의 문화에 무지해서 이런 속담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런 한편 사람이나 인간관계처럼 양면성이 강한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행복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지만, 그 행복을 망치거나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때로는 선택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냥 별 생각없이 가끔 이런 표현을 하며 살았던 것도 같은데, 흔히 하는 이야기로 “거리감이 느껴진다”거나 “멀게 느껴진다”란 말이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감을 표현하는 말이구나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이의 경계, 바운더리는 피부가 끝이 아니다. 내게 딱 붙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 공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아마 서로 그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관계의 필수적인 기술일 것이다.

 


우리가 전달한 말과 문자 메시지는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서는 자명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극히 애매하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의사불통으로 인해 생겨나는 오해와 갈등에 대해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무감각과, 배려가 없음을 탓한다. 39-40

나는 늘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정확하고 쉬운 방법이 구두든 문이든 언어를 통한 것이라고 얘기해왔고, 비언어적 소통방식을 어려워했으며 그런 감각이 확연히 떨어지는 편이다. 소위 말하는 눈치는 절망적일 정도로 없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말과 문자가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서만 자명한 것이라고 지적하는 구절을 읽고 갈등이 생긴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나는 충분히 설명한 것 같은데 왜 이해를 못하는지 아니면 이미 전에 대화를 나눈 것인데 왜 기억을 못하고 엉뚱한 얘기를 하냐고 반발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어쨌든 지금 와 생각해보면 역시 다소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으며 이해심이 부족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중략. 세속적인 안목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사물이 오히려 진정한 도움을 준다는 뜻의 무용지용이라는 말도 있다. 중략. 윤구병은 잡초로 보이는 풀들을 잔뜩 뽑아버렸는데 알고 보니 그 잡초가 제각기 이름을 지닌 약초이고 반찬거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 이유가 없는 풀은 없다는 결론을 얻고서 [잡초는 없다]는 책을 출판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데도 쓸모없어 버림받거나 업신여김을 받아도 마땅하거나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70

나무와 잡초의 세상에서는 다른 판단 기준이 없어서 표현 그대로의 역할을 하는 것인 사실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노동력과 가치에 대한 효용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확실하고도 냉정해서 마음이 무겁다. 실은 측정 가능한 모든 요소가 대상 인간의 가치 판단 기준이 된다. 연령, 외모, 성별, 국적, 인종, 결혼 유무, 가족관계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또한 원칙적으로는 차별받지 않아야할 차별금지조항들이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경우에 있어 정량적으로 계산되고 환산되는 판단기준들이다. 씁쓸하고 쓸쓸하다. 그래서 인간 세상의 모든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SNS에서 널리 퍼진 ‘명절 잔소리 메뉴판’에는 ‘대학 어디 지원할 거니?’ 5만원, ‘살 좀 빼야 인물이 살겠다’ 10만 원, ‘취업은 언제 할 거니?’ 20만 원, ‘이제 결혼해야지’ 30만 원,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 50만 원이라고 적혀 있다. 또 명절 잔소리 메뉴판의 맨 아래에는 “걱정하는 마음은 유료로 판매하고 있으니, 구입 후에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75-76

내용은 대략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본 적은 없는데, 마치 끝나지 않는 영원한 스트레스 극강 질문들인 것 같다. 이러한 배려 없는 질문 공세들이 ‘덕담과 애정과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다니 그 고착이 더 무시무시하다. 어렸을 적 생각한대로 훌륭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떤 모습이 될지 스스로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처지이긴 하나, 새삼 어른 노릇 부모 노릇이 어렵다는 생각이다. 의도가 선하든 아니든 상대방이 받아들이길 불편해하면 적어도 그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가능한 오래 잊지 말아야겠다.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 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 81

전혀 몰랐던 내용이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남루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전차에 치였는데, 운전수가 노숙인이라 판단해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뺑소니를 쳤고, 역시 노숙인으로 생각한 택시들의 잇단 승차 거부로 가까스로 병원에 갔으나 병원 2곳에서 진료 거부를 당했고 결국 빈민구제를 위한 무상병원에 방치된 이야기이다. 신분이 증명되어 친구들과 친적들이 달려 와 병원을 옮기려 했으나 위와 같은 말을 남기고 사망했다고 한다. 1926년의 일이지만 참으로 야만스럽고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일무이하게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을 설계했고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아니라면 인류의 보고로서 영원히 보전될 작품들의 건축가가 인간 자체보다 옷차림이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바람에 이렇게 세상을 떠나다니. 지금은 신분증이나 지문조회를 할 수 있으니  혹은 그런 천박한 판단은 하지 않을 정도로 인류의 정신도덕윤리문화가 진화해서 덜 비극적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단지 지금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 외에, 다른 사람과는 그 어떤 일도 도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85

이 책의 목차를 보고 무척이나 궁금했던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의 내용이다. 당연한 말인 듯도 싶지만 무언인가 머릿속이 복잡하기도 하다. ‘지금’에만 집중하고자 하는 이들이 집중할 줄 말라서 혹은 하기 싫어서라기보다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체적인 사안들이 분명히 있지 않나 싶은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좀 더 충실한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비록 모두 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런 선택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유일한 방법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들의 고유한 인성과 자아는 존중과 인정이라는 밥을 먹어야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88

존중과 인정은 관계가 미리 성립해야 가능한 행위 작용이므로 존중과 인정에 관한 의지와 욕망이 구체화되고 확립되기까지의 인간관계에서의 태도와 경험이 전적으로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래 전 자주 논의에서 등장한 ‘인정투쟁’이 가물가물 기억이 나려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누군가의 미소가 촉발시키는 강력한 감정적 경험은 뇌의 생화학 작용을 변화시킨다.” 웃으면 혈압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들며, 뇌에서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세로토닌, 엔도르핀 등의 호르몬 분비가 촉진되는 것을 의미한다. 93

진화의 과정이 참 대단하고 효율적이고 신비로운 것이, 바로 이렇게 인간의 뇌에 직접적인 화학반응명령을 내리는 가장 강력한 장면이 갓난쟁이, 아기들의 미소와 웃음이다. 다른 종과는 달리 출생 후 아무런 생존 능력이 없어서 그야말로 전적으로 타인에게 생존을 의탁해야하는 인간의 아이들은 그래서 아마 이토록 강력한 생화학 기술을 진화시켰을 것이다. 무장해제와 동시에 죽도록 사랑해주고 필요한 것은 다해 주리라는 마음이 윗 세대들의 뇌에서 무럭무럭 피어나게 만드는 명령!

...... 미소는 받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지만 주는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미소가 없어도 될 정도로 부유한 사람은 없고, 미소가 주는 혜택을 누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 역시 없습니다...... 그러나 미소는 돈으로 살 수 없고, 구걸할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으며 훔칠 수도 없습니다. 미소는 누군가에게 주기 전까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펜하임 콜린스 회사의 광고문> 94

일부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과연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점은, 사실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갖가지 감정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혹은 대가도 없이 위계적 관계 속에서 소위 ‘어른들’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 필요한 미소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여전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행복과 인간관계>에 대한 내 생각은 복잡하고 어렵고 어수선하다. 미소 혹은 웃음은 인간의 중요한 능력이자 판별 지표임에는 분명한데, 어쨌든 현실 사회에서는 이 또한 여러 권력 관계 속에서 복잡한 역할과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읽어나가며 생각 속에서 이어나가고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나 보다. 단락단락 생각이 멈추고 만다. 언제나 손쉬운 날씨와 컨디션 탓을 해본다. 그래도 책을 잘못 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 처음에 장점으로 밝혔듯이 에피소드들의 패치워크처럼 한 권의 책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여러 말솜씨 좋은 사람들에게 느긋하고 편안히 들은 기분이 든다.

잘 아는 것도 같은데 어느새 진지하게 생각해본 지 오래인 인간관계, ‘무엇이다’라고 제대로 한번 명쾌하게 알아낸 적도 없지만 그렇게 되길 원했었고, 그렇게 되리라 근거 없이 기대했었고, 역시 어느새 인가 인생의 옵션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빠져버린 ‘행복’.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이전에는 구체적으로 엮어 본 적이 없는 인간관계와 행복을 아주 구체적으로 짝지을 수 있는 상황들을 한번 정리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조금 생긴다. 내가 아는, 내게 중요한, 내게 유의미한 인간관계들과 구체적 행위를 통해 가능한 행복감! 어쩐지 작은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설레고 꽤나 수확이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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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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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참 신기하다.

​그저 하늘의 상태일 뿐인데 이렇게나 사람들의 감정이 움직이다니.”

 

영화 포스터와 책 표지가 똑같은 작품이 있었나.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정말 예쁘다.

 

속도감 있는 짧은 대사, 표정, 배경톤, 목소리톤, 감정톤, 리듬, 효과음, BGM 등의 모든 요소들이 사라지고 문자 그대로가 전달되는 스토리로서 남은 부분이 독자 각각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무엇보다 ‘맑음 소녀’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상상 능력이 필요하다. 대사들은 짧지만 섬세한 독자들은 충분히 대사 속에 감춰진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집중할수록 장면들이 상상 속에서 영상과 음향을 구비하고 아름답게 완성되는 유쾌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이 더 강한 인상을 주는 매체이긴 하지만, 영상을 본 유무가 원작소설을 즐겁게 경험하는 일에 아무런 제약도 조건도 되지 않는다. 사랑스럽고 순수하고 솔직한 소년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가 가장 궁금했고 흔치 않아 감동적이고 경이로웠던 [날씨의 아이]이다.

 

-요컨대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정말 한심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자신의 한심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그 소년이 나타났다. 엄청나게 천진난만하고 무방비하게, 하나하나의 말과 사건, 풍경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감동하면서. 갑작스레 동아리 후배를 돌보라는 명령을 받은 듯한, 귀찮은 마음과 호기심, 약간의 뿌듯함. 나츠미 씨, 나츠미 씨! 지금도 바이크 뒤에 앉아 내 이름을 불러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런 기묘한 따뜻함과 새로운 뭔가가 시작된 것만 같은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바이크가 가르는 비 섞인 바람이 오랜만에 흔쾌했다. 67

 

“봐, 이제부터 맑아질 거야.”

“뭐?” 중략. 소녀가 살며시 빛나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다. 옅은 빛이 소녀를 비추고 있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소녀의 갈래머리를 훅 들어올렸다. 점차 빛이 강해졌다. 소녀의 피부와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났다. 설마. 91

 

히나 씨는 정말 즐거운 듯 깔깔대고 웃었다.

“너는 정말 진지하다니까.”

또 놀림당했다.

“그래서 고맙다고, 호다카.”

.쿵! 머리 위에서 소리가 나, 히나 씨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주 큰 빛의 꽃이 반짝이다가 흩어졌다.

“……아름답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옆얼굴에서 나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날씨는 참 신기하다, 나는 생각했다. 그저 하늘의 상태일 뿐인데 이렇게나 사람들의 감정이 움직이다니.

히나 씨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다. 145

 

[날씨의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만의 감수성을 그대로 전해주는 신비로운, 초자연적인 현상과 풋풋한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아직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않는 주인공들, 그런 만큼 아직 완벽하게 성장하지 않은 그들은 그 나이에 찾아오는 성장통을 앓게 되고 그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자그마하고 아름답고 순수하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호다카는 살고 있던 섬마을에서 빠져나와 무작정 도쿄로 향하며 배에 올라탄다. 특별한 목적이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사실은 그냥 가출한 것이어서 살짝 웃기네 하며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 행해 도중 배에서 위험한 상황에 우연찮은 도움을 받게 되고 그 남자 스가에게 호다카가 밥을 사면서 작은 규모의 편집 프로덕션 회사에 취직까지 하게 된다. 호다카의 업무 분야가 도시 괴담, 우주인설 같은 다소 황당한 주제들인데, 나름 취재를 해서 잡지를 만드는 일이라 그 와중에 ‘100% 맑음 소녀’에 대해 듣는다. ‘맑음 소녀’뿐 아니라 ‘비 소녀’도 있다는 취재 대상자의 말에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지만 알고도 오락거리로 그런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배운 호다카는 마침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 준 소녀가 바로 그 실재하는 ‘맑음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상과 가까운 이야기들은 아니다. 그래서 좋은 한편, 이런 이야기들이야말로 영상 효과가 ‘무척이나 적절하게 효과적’일 거란 생각이 자꾸만 비집고 들어온다. 단, 이 대목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점은 맑은 날씨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것! 우리가 자부심을 가지는 것과는 별도로 인간의 인내심과 생존능력은 별로 대단하지 않아서 삼일만 물을 못 마셔도 폭동이 일어나는데, 3년간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환경이라면, 그리고 그 비를 그치게 할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내 희생이 아니라 타인의 희생이 필요한 경우라면, 품위와 품격과 이성과 도덕과 윤리는 증발하듯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옛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하는 예화가 아니라는 점이 서글프고 두렵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화된 것을 축하하며 기뻐하며 본 순서가 아니라서인지, 이 작품에 대한 나의 독자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장면들보다 이미 습득한 애니메이션 장면들이 이렇게 저렇게 떠오르고 끼어들어 마치 원작이 애니메이션의 컬러북인 것 같은 전도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혹은 책을 읽다가 일러스트레이션 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A가 B보다 낫네 못하네 이런 결론은 아니다. 그냥 다르다! 그리고 각각의 경험에서 받는 감상은 정서의 길이에 따라 단면적에 따라 경도에 따라 다른 모든 요건들에 따라 다를 것이다. 덕분에 몇 배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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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esis 2019-11-28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blog.naver.com/kiyukk/221721325116
http://booklog.kyobobook.co.kr/kiyukk/1974702
http://www.bnl.co.kr/blog.do?b=46081158
http://book.interpark.com/blog/kiyukk73/5898897
https://blog.aladin.co.kr/739190168/11321452
 
세상에 맛있는 게 이렇게나 많다니 - 카페, 레스토랑, 빵집, 디저트까지 세계의 미식을 만나다
장완정 지음 / 밥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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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대단하신 저자!

60여 개국을 방문하고 열 두 나라를 엄선하여 만든 미식과 문화 이야기.

 

책을 펼치자 첫 번째 내용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뉴욕 카페> 이야기가 나와서 눈물이 왈칵 고인다(추억에 더해진 노화와 호르몬의 친화 과정일까).

 

“비 오네요.” “비 그쳤네요.” “비 또 오네요.” 매일 이어지는 예의 바르고 무의미한 대화에 신물이 나고, 한 겨울에도 파아랗게 생존하는 잔디의 생경함과 신선함도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영국의 우울한 일상에 진절머리가 나는 겨울이었다. 첫 해에는 영국인들이 하루에 섭취하는 알코올과 초콜릿 양에 놀라 이 중독자들 뭔가 싶었는데, 날씨에 관한 한 못지않게 우울하고 지루하고 한기를 뿜으면서도 건물 내부는 건조한 참 불편한 기후에 살다 보면, 어느새 초콜릿과 알코올에 손을 뻗게 된다(확인한 공식 연구 자료나 근거는 없지만 기후 덕에 문학과 음악이 광범위하게 계발되었을 거란 의심이...... 자주 밖에 나가서 뭘 할 수가 없다. 운이 나쁘면 갑작스레 쏟아지는 주먹만 한 우박에 맞아 사망할 수도...... 우산도 비바람에 서너 번 찢어 먹다 보면 어느새 더 이상 안 사고 태연하게 안 쓰게 된다. 나의 최초의 낮술도 이런 날이었다. 우박이 뭘 다 때려 부수는 소릴 들으며 3시에 이미 깜깜한 실내를 벽난로 불로 밝히고 한 잔 두 잔.....).

 

지내던 학교의 기숙사는 온갖 알러지별 선택 메뉴와 베지테리언과 비건 메뉴도 구비되어 있었고(주방 셰프의 스트레스 지수가 매일 극한까지 올랐지만 우리는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했다. 그 와중에 초청 교수 한분은 생식 다이어트를! 필수재료 베이비 코코넛을 갑자기 어디서 구하냐는 비명이 다이닝 홀에 울려 퍼지던......), 식재료 자체가 친환경 유기농이라 확실히 장수할 듯이 건강하고 다채로운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점점 더 우울을 더해가는 날씨를 이겨낼 만큼 위로가 될 (내 기준에서)훌륭한 맛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매일 갑갑증이 더해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할 수 밖에 없는 곳을 떠나 “진짜 날씨(real weather, 뭐라 번역해야할지 솔직히 모르겠다)”가 있는 곳으로 그냥 무작정 떠나고 싶어서 구름이 스모그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던 어느 날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한 겨울에 더 춥고 눈 많은 동유럽으로 왜 가는 거냐는 동기들과 친구들의 염려를 뒤로 하고, 이것저것 지긋지긋한 영국을 떠나 도버해협을 건너니 마음이 막 가벼워졌다.

 

급히 인터넷 예약을 한 ‘붇다’ 지역의 숙소로 가서 짐을 내리고 눈이 잔뜩 덮인 상큼하고 아름다운 거리를 총총 걸어서 ‘페스트’ 지역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체감상 백만 년 만에 겨울과 가장 어울리는 그냥 여기 머물다 세상 뜨고 싶게 설레는 장소에서 못지않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식사를 했다. 그곳이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 부다페스트의 ‘뉴욕카페’이다. 저자가 이 카페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을 ‘흠칫’이라고 적은 표현이 정말 흥미롭다. 내 경험은 ‘화들짝’이란 느낌에 더 가까웠지만, 공통된 점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제어할 틈도 없이 ‘깜짝’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박물관인지 전시관인지 호텔인지 카페인지 정의 내리기 어려운 장소이고 실은 이 모든 것이 종합예술처럼 복원되어 완벽하게 조화로운 장소이기도 하다. 주문을 하고 나면 마치 관람료 무료인 전시회에 초대받은 기분으로 눈에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다. 저자가 미식만이 아니라 문화 여행의 내용을 선별해서 담아 둔 의도에 잘 맞게 이곳은 헝가리의 대표적인 케익 셀렉션과 커피를 마시는 카페이면서 19세기의 벨 에포크로 떠나는 시간여행의 플랫폼이자 종착역이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미식 여행에 영국식 애프터눈 티와 크림 티가 나와 흠칫&화들짝 놀랐다. (영국과 미식이라니, 세상에 이렇게 어색한 조합도 있나 싶지만, 맛이란 그야말로 개별적인 취향이니 이런 인식 또한 나의 개인적인 원한(?!)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일 맛있는 영국 레스토랑을 알려 달라고 하면, 나는 아직도 주저 없이 OO 타이레스토랑을 권한다.) 크림 티의 본산인 데본에서 오래 살았고 옆 동네(?!) 콘월을 들락거리며 현지조사여행(field trip)을 한 나로서는 크림티만 떠올려도 피곤과 목마름이 동반 연상되지만, 그렇다고 샌드위치와 스콘을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다. 고된 시간들에 짧은 휴식과 열량을 충실하게 제공했던 담백하고 든든한 샌드위치와 스콘 또한 지역에 따라 조리법에 따라 먹는 방법에 따라 즐겁고 행복한 훌륭한 식사이다. 크림이 먼저인지 잼이 먼저인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자신의 소소한 취향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흔한 재료이지만 아마 한국에서는 적어도 판매하지는 않을 듯한 영국식 오이 샌드위치도 한번쯤 추천하고 싶다. 생오이 향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빵 사이에 당당히 단일 재료로 들어간 오이의 모습에 순수하게 진심으로 놀랐지만, 특히 고령층 영국인들이 설탕 가득 티와 생오이버터 샌드위치를 어떻게 즐기게 되었는지 유래를 듣는 것도 잔잔한 재미이다.

 

다음은 소소하고 잔잔한 영국이야기와 대비되는 황홀한 프랑스 빵, 바게트 이야기이다. 워낙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당시에는 물가도 훨씬 싼 터라 기회만 있으면 빠ㅎ리에서 지내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센강 근처에 세모난 공간의 플랏(flat, 아파트?)을 임대해서 머무는 내내 매일 산책을 다녔다. 미술관을 가든, 카페 거리를 가든, 중고 서점을 가든 시간은 빠르고 아쉽게 지나갔다. 당시는 꽤 엄격한 채식주의자라서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채소 일색의 오믈렛이 거의 유일했지만 전혀 섭섭하지도 부러울 것도 없었던 것은 바로 프렌치 브레드, 빠ㅎ리의 바게트 덕분이었다. 밀가루, 물, 이스트 소금만으로 이토록 맛있는 음식을 만들다니! ‘전통’ 바게트를 드실 기회가 없었던 분들은 제가 완전 헛소리를 한다고 하셔도 드릴 말은 없지만, 기회가 있다면 꼭 제발 반드시 ‘전통’ 바게트를 드셔 보시길 바란다. 정말 딱 이 네 가지 재료로만 구워낸 바게트인데 심지어 향기도 취할 듯 어지러울 정도로 강렬하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바게트가 입에 닿는 순간부터 최초 3초 정도는 의식을 잃게 된다. 늘 간도 딱 맞게 구워져서 다른 부재료가 필요 없지만, 가끔은 실험(?!) 삼아 토마토나 치즈나 올리브를 곁들여 먹는 것도 별미이다. 세계적인 미식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를 소개하는 부분에 저자가 왜 바게트 얘기만 끝까지 하고 마쳤는지 아무런 불만 없이 완전히 이해한다. 수상 경력이 즐비한 베이커리뿐만이 아니라 루브르 뒷골목이나 강변 중고노점상들 근처에 멈춰 서서 무심히 하나 사먹어도 하나같이 맛있던 빵! 혼자만의 뻥이 아니라 빠ㅎ리 여행을 하는 친구들에게 실험(?!)해본 결과 검증이 잘 된 사실이다. 그러니 빠ㅎ리에서 길 가다 눈에 띄는 아무 베이커리에서 빵을 주문하게 될 경우에도 두려워 마시라. 덕분에 영국에 돌아 온 후로 샌드위치를 먹을 때마다 서럽고 속상한 마음이 한동안 들었다. 물론 더욱 슬픈 일은 한국에 산재한 ‘파리바게트’의...... ‘파리크라상’의 바게트가 조금, 아주 조금 더 바게트 비슷한 맛이 난다......

 

다른 국가의 다른 맛있는 베이커리 이야기들이 내용 가득이다. 어지럽도록 맛있는 향이 가득한 빵집에서 메뉴를 고르기 직전처럼 보기에 참 행복한 글과 사진으로 채워진 책이다.

 

4장에서는 내게 참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트러플’ 이야기가 나와 열심히 읽었다. 나는 커리의 향신료를 포함해서 강렬하다고 하는 향이 포함된 음식들에 거부감이 전혀 없고 발효 청국장부터 소위 양말 악취가 난다는 치즈까지 절대 못 먹겠단 생각이 든 적이 없다. 세상에서 단 한 가지 식재료, 화이트 트러플 오일을 빼고. 대단한 미식가여서 미식 재료들을 찾아 챙겨 먹는 건 절대 아니며, 진정한 미식은 쉽고 일반적인 제철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희귀하거나 고가의 재료에 관심이 있지도 않다. 그저 경로를 정확히는 모르나, 내게 도달한 화이트 트러플과 오일, 재료가 담긴 포장과 예술적인 유리병과 속재료 중 뭐가 더 비쌀까 싶은 낯선 식재료를, 이왕 생겼으니 매뉴얼대로 가열도 하지 말고 살짝! 그 대단하다는 풍미와 향을 느껴보자 했는데...... 그토록 깊고 진하고 쾌적하고 풍미가 남다르다는 재료 앞에서 철저히 거부당했다. 비염 알러지가 있기는 하지만 급성악화로 향과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참을 수 없이 역했다. 생전 처음 식재료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적어도 트러플 중독으로 파산할 일은 없다는 어쩐지 쓸쓸한 위안도 들지만 왜 이런 것인가... 궁금하기 그지없다. 이 책에 쓰인 내용으로는 의문이 해결될 것 같지가 않다. 트러플을 만나 행복한 사람들의 표정과 이야기만 가득하니 말이다. 없어도 그만이지만 알러지도 아니고 현재까지 유일하게 역해서 섭취 불가능했던, 남들은 죄다 황홀하다고 하는 식재료라 정말 진심으로 궁금하다. 트러플 버섯이 체외 분비성 물질 페로몬은 분비한다고 하는데, 인간은 탐지가 불가능하고 돼지만 강렬하게 반응한다는데, 인간과 돼지 간에 유전자나 장기 교환도 하는 마당에(인간의 의료복지를 위해 행해지는 동물실험의 잔인함과 정당성을 미화하거나 희화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어쩐지 나만 인간으로부터도 돼지로부터도 소외되는 기분에 두 배로 쓸쓸하다.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로 끝낼 책이 아닌데...... 최근 금전 뒷거래로 인해 권위도 신뢰도 잃어버린 미슐렝 관련 이야기는 건너뛰고 싶다 하더라도 저자가 엄선한 12나라의 달콤한 이야기들과 막강 셰프들과 진정한 장인들과 먹방만이 아니라 관련된 전통과 역사를 품어 한층 더 넓어진 유럽의 미식의 세계는 더할 수 없이 흥미롭고 감칠맛이 가득하다.

 

차오르는 침을 삼키며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까마득히 잊혀졌던, 친구네 고향마을, 피치니스코에서 로마로 향하던 어느 구불구불 산길에서 만난 한산한 레스토랑에서 내어 주던 따끈한 콩스프의 충격적인 맛이 다시 떠오른다. 맛있는 콩스프 따윈 세상에 절대 존재할리 없을 거라 확신하며 산 세월을 한 번에 날려 주던, 멈추지 못하고 마셨던 한 그릇. 저자처럼 유럽에서 틈틈이 나도 이렇게 외치고 싶었던 순간들 중 하나였다. “세상에 맛있는 게 이렇게나 많다니!”

 

결국은 베이커리가 아니라 콩스프 얘기로 마무리.....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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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선하게 명상하고 싶다
김태형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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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도, 저자가 처음으로 만난 강사도 그렇고, 힘들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냐마는, 극단적으로 고된 시기들이 있었고 선택과 명상 구도에 대한 태도 또한 악착같고 독하게 수행한다. 그래서인지 특히 나처럼 판단의 기준이 ‘better than before’면 대부분 만족하는 독자에게는 상당히 낯설고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이어진다. 예를 들면, 사찰이나 교육원에서 집중적으로 ‘죽더라도 호흡을 하다 죽어야겠다’는 식의 목숨 걸고 전력을 다해 구도를 했다는 대화 내용이 나온다. 호흡이라 봐야 바른 자세 심호흡 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그 정도로도 통증이 완화되는 경험에 감지덕지하는 나로서는, 호흡을 통해 기운을 직접 느낀다거나 명문혈이 열린다거나 단전이 자리 잡게 한다는 이야기는 다른 세상의 경험으로 들린다.

 

“중략. 명상의 첫걸음마는 숨 쉬는 습관을 교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중략. 최소한 이것에서 저와 함께 명상에 드는 시간만이라도 몸과 영혼을 존중하고 아껴 주는 마음으로 정성껏 호흡해 보세요. 따지고 보면 공기보다 더 소중한 음식도 없는 거니까요.” 22-23

 

“이명 현상이 찾아오고 심신이 무기력해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현실 그 자체가 명상의 동력원이 되는 거란 말씀이지요. 그 스트레스를 호흡으로 활활 태워서 기운이라 불리는 에너지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23

 

“능력이라는 말보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기능이 회복된다는 표현이 더 좋겠네요. 호흡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가는 거지요.” 31


“절실한 마음으로 호흡에 몰입해 보란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거지요. 사람이 진정으로 절박해진다면 저처럼 생사를 갈음하는 운명까지도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무슨 일을 하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몰입해 보는 겁니다.” 70

 

늘 그렇지만 이젠 같은 얘기를 듣는 것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를 매번 인지하는 것도 지치지만,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니다. 결국 나는 절실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그렇다면 제대로 된 호흡과 명상 수행은 극단적인 생사를 걸어야할 경험이 있는 이들만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건가 슬쩍 마음이 엇나가려 하는 기분이 들었다.

 

“명상은 마음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다 되는 거예요. 안 될지도 모를 거란 가정은 일절 하지 마세요. 정심으로 꾸준히 호흡에 임하면 누구나 다 기본적인 선까지 갈 수 있는 겁니다.” 72-73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요가를 처음 배우는 친구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야말로 강사가 불가능한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닌가, 이러다 큰 부상을 입는 것은 아닌가, 별별 생각이 몸보다 더 자신을 괴롭혔지만 그냥 울면서 매일을 다녔는데 한 달이 지나자 함께 하는 수강생들이 한 달 꼬박 나온 것이 대단하다고 첫 날 이후로 보이지 않는 분부터 많은 이들이 한 달 못 채우고 그만 두게 된다고 막 축하?!하고 격려를 해주어 놀랍고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이사를 가서도 요가를 중단하지 않고 가능한 거의 매일 수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물구나무서는 자세가 편해져서 자꾸만 팔뚝과 어깨가 우람해진다고.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비딱해지려던 마음을 일단 바로잡고 꾸준히 하는 명상에 나도 희망을 가져볼까 하는 마음이 조금 생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꾸준히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일 공들여 해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명상에 임하기 전에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명상을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서로 아껴 주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거예요. 이기적으로 자기 수련에만 열중하면 명상을 거꾸로 하는 거란 말씀이지요.” 48

 

“중략. 생각과 호흡의 무서움을 아셔야 합니다. 호흡이 깊어질수록 생각에 힘이 실리는 거라고요. 자신의 생각에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 명상가가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이란 말씀이지요.” 99


굉장히 엄격한 윤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물론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법을 위반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기본 중의 기본이 되겠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보단 더 적극적인 윤리적 행동을 요구받고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 나와 상관없이 어려움이나 고통에 빠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자신의 사정에 따라 도움을 주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있지만, 감수할 수 있는 작은 손해라면 자신에게 결과적으로 불이익이 닥치더라도 일단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려는 마음과 행동이 필요하다. 도움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법적 처벌의 대상은 아니지만, 준법만 지켜지고 그 외의 모든 배려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보면 끔찍하다. 도저히 살만한 세상이 아니다. 생명의 기본으로서 가장 중요한 호흡을 통한 명상 수련의 세계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이런 단계의 마음자세를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날 괴롭히는 현실처럼 명상하기 최적의 조건은 없는 거예요. 제가 만만치 않다고 한 건 그 벽을 뛰어넘는 게 힘들단 소리인 거였죠. 명상가에게 있어 뛰어넘을 벽이 있다는 것처럼 소중한 자산은 없는 겁니다. 갈등이 없으면 발전의 동기도 생기지 않는 거니까요. 중략. 사람이 등 따시고 배부르면 깨달음의 세계에 관 둘 일이 없는 겁니다. 스트레스라는 거대한 벽을 만나야 비로소 마음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거지요.” 141

 

“장소에 연연하고 의지하려는 의타심부터 버려야 하는 겁니다. 호흡이 진척되다 보면 시간과 장소는 별 의미 없는 때가 오는 거예요.” 153

 

“그래서 호흡을 배우는 거예요. 명상이란 게 그런 거지요. 잘못한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뉘우치고, 양보하고, 화해하는 마음 그 자체가 굉장히 높은 차원의 기운이고 에너지인 겁니다.” 180

 

예전엔 이런 얘기들 정말 싫어했고 발화자의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살다보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기 되는 일들도 분명 있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를 호소하고 권리를 주장하고 싸워야 하는 때도 분명 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가해자가 이해를 바라는 뒷 목잡는 일들도 버젓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럴 경우 그저 내 탓이요, 내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하겠소, 이런 태도는 당사자 본인에게는 물론이도 또 다른 피해자들을 양산할 아주 위험천만한 태도이다. 물론 저자나 강사가 이런 점을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계속 읽어 나갔다.

 

“저도 무조건적인 포용을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권리를 주장할 땐 열심히 발언도 하고, 싸울 일이 생기면 최선을 다해 언쟁해야겠지요. 하지만 어떤 상황 하에서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를 사랑과 연민으로 감싸 안으면서 맞대응하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원망하는 마음이나 독설, 폭력과 같은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를 버려 내고서 말입니다.” 189

 

다행히 이 구절을 발견해서 안심이 일단 되었지만, 역시 넘사벽 느낌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당장 사랑과 연민으로 감싸 안는 일은 아직 요원하다. 다만 독설과 폭력은 지양할 수 있겠다 싶어 다행이다.

 

“어떤 힘겨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상대방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려 들면 안 됩니다.” 191

 

이것 역시 어려운 일일 것이나 일단 상대의 모든 것을 내 기준으로 다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고 빠른 비난도 삼갈 수는 있겠다.

 

인간은 절대 소외되지 않았다는 지독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외로움이 찾아오려는 순간 본능적으로 무언가에 심취한다는 것이지요. 그 무언가는...... (정신적 염증에 투입되는 )다양한 유형의 중독성 진통제들일 겁니다. 중략. 명상을 하다 보면 진통제 처방을 중단하는 학습 방법이 동원되곤 합니다. 일정 기간을 정해 놓고 자신이 가장 중독되어 있는 혹은 가장 민감해하는 무언가에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겁니다. 금촉 수련이라고 하는데 제가 가장 힘들어하는 과목입니다. 255

 

구체적인 항목은 다를지라도 나 역시 여러 중독사항들이 있다. 어찌 보면 반사회적이거나 불법을 감수하고라도 지속해야할 중독이 아니라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오랜 시간 이런 버릇이나 저런 마음의 의존 형태를 바꾸거나 없애고 싶다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듯이 그런 실행은 성공적이라 할 수 없이 지지부진하다. 그런 경우 역시 행동을 바꾸기 힘들고 작은 실패를 거듭하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생각과 판단을 왜곡하는 일 또한 외부의 평가 없이도 자행한다.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고 겉모습을 더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악순환도 발생한다.

 

책을 읽으며 생각이 깊어지는 과정에서 괜히 또 반복되는 심리적 좌절과 자괴감만 무거워지는 것이 아닌가 후회가 생기기도 했지만, 어려운 문제 해결의 기본은 다른 한편 늘 기본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저자 역시 자신의 경험을 특수하고 초월적인 것으로만 결론 내리지 않고, 결국은 이미 알고 있는 가장 성실하고 중요한 기본으로 마무리하는 느낌이다. 결국은 대단하고 특출한 비법이 아니라 평범하고 끈기있게 자신을 계속해서 바로 세우며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 가장 힘이 많이 들고 그 과정에서 배움이 크다는 것.

 

호흡 공부는 안 했어도 세파에 시달리면서 수많은 고뇌와 마음앓이를 하신 분들이 첩첩산중인데 말입니다. 진정한 명상가들 말이지요.

 

선하고 올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되는 일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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