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필요한 11가지 약 이야기
정승규 지음 / 반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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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이 살다가 <, , >를 읽으며 처음으로 -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 원주민을 몰살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유럽인들이 가축들과 함께 살며 면역력이 생긴 ''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2020,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만으로 인류 문명이, 전 세계가 동시에 멈추는 비현실적인 현실도 목격하게 되어 경악을 금지 못했습니다.

 

치료제를 애타게 기다리고는 있지만 변이가 많은 바이러스에 관연 잘 대응하여 인류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안정화될까 불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집콕을 하며 이것저것 찾아 읽다보니 1720년 흑사병, 1820년 콜레라, 1920년 스페인 독감, 2020년 코비드19 판데믹, 이렇게 100년 마다 인류는 바이러스로 인한 큰 재앙에 직면하며 살아가고 있었더군요.

 

더구나 조사에 참가한 분들의 80% 이상이 이런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과 판데믹 상황에 대해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하니,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까지 이른 것에 저 또한 개안을 한 기분입니다.

 

어쩌면 아무리 원해도 코로나 판데믹 이전의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불안하고 갑갑하고 코로나 블루마저 오는 시기에 적절하게 유익하고 귀중한 책 소식 전해 주셔서 정말 반갑습니다.

 

늘 멈추지 않고 노력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기억하고 감사하고 일상을 잘 견딜 용기를 얻습니다.

 

문학적 내용까지 있다고 하니 천천히 즐겁게 읽으며 위로까지 받을 수 있는 좋은 책일거란 생각을 합니다.

 

모두들 무탈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번성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본 기대편은 이후에 서평으로 대체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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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엄마의 캠핑카 - 미대륙 9,000킬로미터 세 남매 성장기
조송이 지음 / 가디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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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자녀에게 제일 좋은 것들을 원하는 만큼 다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기도 하겠지만의외로 아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가장 행복한 순간은 부모와 함께 지치도록 노는 일일 수 있다몸으로 놀아 주는 부모와의 시간이 길수록 아이들의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리는 말이다그러나 나이가 어릴수록 무한 체력인 양 지치지 않는 아이들과의 몸놀이는 부모의 체력의 한계를 무자비하게 알려 주는 쉽지 않은 활동이기도 하다.

 

저자는 워킹맘이라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했고 휴직을 한 후에도 대화의 길이나 깊이가 원하는 만큼 나아지지 않는 환경에 처방전을 내리 듯 여행을 계획한다아이디어도 대단하지만 실행력은 더 굉장한 분이다육아와 여행을 결합시키는 일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었을 테지만이 정도 규모의 여행은 한편으로는 속 시원한 일탈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한 모험엄청난 불안을 동반하는 시도임에 분명하다.

 

아이들은 아직도 부모 손을 타는 어린 나이다유학을 다녀와 영어에 능숙하거나 미국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이 모든 것을 돈으로 커버할 정도의 경제력은 당연히 없다무엇보다 아빠가 함께 갈 수 없다그래도 일단 해 보자하고 나서 후회할지언정 일단 해 보자하다 하다 못하겠으면 울면서 귀국 비행기 타면 되지나를 받아 줄 나라가 있고 가족이 있고 집이 있다애가 셋이어도아이가 어려도경험이 없어도 심지어 아빠가 함께하지 못해도 …… 할 수 있다아니일단 해 보자.”

 

자녀는 떠나보내기 위해 키운다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순리라 믿는다자녀 양육의 목적은 떠나보냄이지만 이 험한 세상에 그냥 내던져 둘 수는 없기에 잘 떠나보내려고 이토록 죽을 둥 살 둥 최선을 다해 키운다이번 여행도 더 멀리 안전하게 떠나보내기 위해 튼튼한 날개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리라.”

 

아빠도 엄마도 없는 시간결핍이 아이를 성장시킨다그날 첫째의 뒷모습은 두고두고 기억되는 한 장면이다.”



아이 셋을 데리고 캠핑카로 해외여행을 떠나 9,000킬로미터를 보고 온 이야기는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고 매일이 새로운 경험과 느낌으로 펼쳐진다굳이 비교를 하나하나 해보지 않아도 아이들도 엄마도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우려보다 재미와 즐거움이 가득해서 응원하던 독자인 내 마음도 어느 순간부터 편안하고 즐거워진다적절하게 잘 포착한 모든 순간들의 사진들 또한 여타의 여행기와 겹치면서도 색다른 느낌과 모습들을 볼 수 있어 특히나 생생한 간접 경험의 효과를 더한다.

 

미국은 국립공원이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생각해 낸 나라이다자연이라는 창조주의 위대한 서물을 마구잡이로 개발하거나 가진 자들이 사유화하여 특권층만이 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모든 사람이 자유로이 이용하고 즐길 수 있게 국립공원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23

 

순간 머릿속의 온갖 잡생각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는 폭발음이 들렸다자연의 웅장함이란 이런 것일까한번 분출할 때 14,000 - 31,000리터의 물리 높이 40-60미터의 장대한 물줄기로 폭발하는 모습은 나와 같은 인간의 존재를 한없이 작게 느껴지게 한다. 177

 

퀸즈 가든 입구에서 내려 트레일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탄성이 절로 나온다일반적으로 등산은 높이 올라가야 전망이 좋은데캐니언은 위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초입 전망이 가장 좋다눈으로 보고도 믿기 않는 초현실적인 풍경에 감탄만 나올 뿐이다종일 내린 비 때문에 황토색의 후두Hoodoo(암석이나 바위가 풍화작용으로 촛대 모양이나 바위기둥처럼 된 것)가 습기를 머금어 색깔이 더욱더 진해졌다게다가 푸석거리는 먼지도 없어 공기도날씨도풍경도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다. 233

 

태양이야 매일 뜨고 지는 것이지만 대협곡의 지평선 너머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어슴푸레한 그랜드캐니엄의 붉고 푸른색에 지는 해의 녹진함까지 더해져 찐한 다크초콜릿 같은 맛이 난다. 239

 

여행사들이 세계적으로 파산하고 언제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기대조차 무한 연기된 시절에 읽자니 부러움 또한 차오른다몇 해 전 서울-강릉-포항-통영-담양-부여-강화도 일정으로 가족들과 캠핑카를 타고 여행한 것이 생각보다 가깝고 편해서 아쉬울 정도로 빨리 끝난 떠오르면서이렇게 여행을 꿈도 못 꿀 상황이 될지 모르고 막내 꼬맹이가 조금 더 크면 가자고 가족들과의 해외여행을 미뤘던 것이 마구 후회가 된다그렇더라도 우리 가족이 저자처럼 미대륙을 용감하게 쌩쌩 달리지는 못했을 테지만계획을 미루는 일이 막급한 후회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중이다.

 

한 번 뿐인 인생 속히 가리라녹슬어 없어지지보다는 닳아 없어지자.

 

여행을 마치고 책으로 엮어 내고 저자는 다음 목표를 이미 정해서 페달을 굴리고 있다고 한다서울에서 출발해 할머니 댁이 있는 거제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어느 계절에 떠나실 지는 모르겠지만 가족 모두의 무사건강을 응원한다어쩌면 다음 책으로 또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를 주실 지도 모르겠다.


엄마엄마오늘은 여기가 제일 재미있었어천연 어드벤처 코스야통나무에서 아슬아슬 빠질 것 같으니까 심장이 더 쫄깃쫄깃한 거 같아이건 실제라서 슈퍼마리오 게임보다 훨씬 더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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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헌의 사주 강의 : 상 이동헌의 사주 강의
이동헌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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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궁합’ 실제로 어떤 역학과 철학이 있는지는 모르지만단어만큼은 아주 익숙하다태어난 년시를 보고 기질과 운을 설명하는 것이 사주이고궁합은 두 사람의 상성을 알아보는 것정도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재미삼아 보는 별자리 운세나 한때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기기도 했던 타로를 본 적은 있지만믿음이 부족해서 오래 기억하거나 찾아보는 일이 버릇이 되지는 않았다몇 해 전엔 친구가 새해에 토정비결 운세라고 12달과 총운이 아주 길게 분석된 자료를 보내 주어 읽어 본 적이 있었고오래 사귄 상대와 결혼을 결심한 친구가 집 안에서 본 궁합이 상극이라고 말리는 것을 무릅쓰고(?) 결혼하는 과정의 어려움에 대해 들은 것이 기억이 남는다.

 

퇴직하신 부모님이 평생교육원 강의들을 들으시다 사주명리학이 가장 인기 강의라서당신들도 들어볼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고 하셔서사주는 명리학을 이론으로 한다는 것을 처음 듣게 되었다결국 부모님은 경쟁률을 뚫지 못하셔서 수강 기회가 없었지만친구 분 중에 한 분이 엄청나게 두꺼운 강의 교재를 구경 시켜 주시며 무척 어려운 내용이라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명리학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우주와 인간을 대상으로 평생과 순간의 운을 다 살펴 보는 이론이 어렵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차에 외향이 정말 벽돌책과 같은 묵직한 사주 강의 세트를 읽을 기회가 생겨 부모님과 함께 얼마나 이해할까 걱정은 일단 접고 대략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살펴보자고 시간을 들였다.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사주명리학 공부의 시작이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205


사주명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양


음양의 기본의미는 순환이다없는 데서 무언가가 생겨나서 성장해서 최고점을 찍은 후에 점점 쇠퇴해져 다시없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성장하고 쇠퇴함을 반복하는 것이 음양이다. 27

 

오행은 각각의 요소가 고정된 것이 아닌 서로서로 '생극'과 '왕쇠'라는 상호 작용력을 가진다앞에서 오행의 변화 순서가 일정하고도 반복적이라고 말했는데그 순서를 따를 경우 상생이라 말하고그 순서를 뛰어넘을 경우 상극이라고 말한다. 35

 

사주명리학을 오래 했다는 분들이 음양만큼이나 잘 모르는 부분이 좌표론이다좌표론이란 말 그대로 사주팔자 천간 네 자리지지 네 자리로 구성된 2행 4열을 하나의 좌표로 본다는 얘기다. 196

 

사주팔자의 종류가 518,400가지라고 자주 말씀드렸다. 201

 

사주를 완성형이나 운명형으로 생각하지 말라공식으로 삶의 과정을 단정 지으려고도 하지 말라사주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그 생물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언제뭐 했고'가 아닌 '어째서 그걸 했고'가 되어야 한다그렇게 계속해서 적용하고 생각해 보시라그럼 다 보일 것이다. 244

 

사실 사주는 남자인지여자인지를 알고 사주팔자를 보고 대운을 보는 순간 그 사람의 삶의 큰 틀은 모두 나오게 되어 있다사람이 산다는 게 옷 입고 밥 먹고 어딘가에서 자는 것뿐인데 이것으로 옷은 잘 입을지밥은 잘 먹을지어디서 잘지가 나오는 것이다. 335

 

실제 사주를 열어 보고 말씀드리면 더 정확하겠지만 찾아낸 원인과 반대되는 노력을 하면 대부분 해결된다반대되는 노력이란무언가를 자꾸 시켜서였다면 아무것도 시키지 말고 그냥 두면 되는 것이고아무것도 시키지 않은 게 원인이라면 뭐라도 자꾸 시키면 된다그 밖에도 지금까지 자신과 자식의 관계를 돌아보고 그 반대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아이는 곧 원래 인간이 그 나이 대에 살아야 할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347

 

4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살아남고 변화한 사주명리학이라니저자가 아주 친절하게 역사와 체계와 노하우까지 별책부록으로 만들어 설명을 잘 해주고는 있으나역시 잘 이해하기는 어려운 느낌이다특이 오행과 간지 부분은 이해하기기 어렵다벽돌책의 두께만큼이나 노력을 들여야 통달하게 될 일이지만일단 통독을 해냈다는 만족감은 든다공자도 <주역>을 묶은 가죽끈이 닳을 때까지 반복해서 읽으셨다고 하니 내용도 변화도 활용도 도전적인 학문임에 틀림없을 듯하다새삼 사주명리학의 전문가들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주명리학 원론에 대한 이해는 부족해도 실 사례들을 수많은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들어서 이야기한 내용은 무척 흥미로웠다역학적 사고에 대해 배운 점도 재미있었다만약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무척 세밀하고 꼼꼼하게 가이드하는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기질을 분석하고실제 사주팔자를 풀이해보는 연습 과정도 아주 많아서 진지하게 연구하는 텍스트로서 재미있으면서도 유용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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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유치원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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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을 열고 잠시 어리둥절했을 만큼 이토록 어여쁜 가제본은 처음이다.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이라 가제본을 읽으면서도 이런 충분한 호사를 누리는 기분.


누구나 때때로 긴장을 풀고 하고 싶은 말도 잘 하면서 사는 일은 중요하지만,

본인 긴장을 푸는 일에 그치지 않고 배려가 부족한 태도와 말을 하는 이들은 늘 있었지만,

오늘따라 감정이 요동쳐서 막 짜증이 나려는 순간, 자가 치료처럼 이 책을 집어든 선택을 칭찬하고 싶다.

 

두 권이라면 한 장씩 떼어다 큰 그림으로 만들어 벽에 붙여두고 싶다.

색감도 질감도 디테일도 내용도 감성도…… 늘 이런저런 부작용이 따르는 치료약 따위 저리가랄 만큼 완벽하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부글거리던 머릿속이 사르르 식는다.


마크 표시 보이세요? 거름(compost) 만드는 용도 표시랍니다. 


손과 앞치마에 살짝 묻은 클레이,  뒷 허리춤 옷주름, 책장 책들이 나오고 들어가고 높고 낮고 기울고 

하나하나 경탄하며 봅니다. 


이번에도 허리춤 올라간 윗 옷, 아이들 높이에 맞춘 손잡이, 

용무가 급한 아이들의 자세, 유리창을 비워두지 않고 당근 드시는 누군가(?) 

감탄이 한숨처럼 나옵니다.


적당히 어질러진 식탁, 당근 달라는 아이 의자가 뒤로 넘어간 것이 백미입니다. 


가제본이라 판형이 조금 작은 듯해서 시선을 바짝 대고 이러 저리 요모조모 열심히 보았다.

현장 취재 나가셔서 사진 찍은 거 다 모아서 베끼신 거 아니에요, 여쭤보고 싶을 만큼 디테일이 섬세하고 그런 부분들 덕에 그림동화 캐릭터들이라는 걸 싹 다 잊고 몰입해서 여러 번 보았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틀린 그림 찾기처럼, 같은 배경에서 뭔가가 달라졌을까 왔다갔다 넘기며 보고.


8시만 되면 열심히 울고 있는 뻐꾸기 시계가 반갑고,  

선생님께 칭찬받은 클레이작품 코끼리가 당당하니 수납장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기쁩니다. 


창비아동도서를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한다는 것은 자타공인이고, 안녕달 작가의 책은 특히나 그러하다. <안녕>을 볼 때도 아이들이 웃는 동안 다 큰 어른들(?)인 나와 동생이 가장 먼저 눈시울을 붉혔다.

 

이전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차분히 그림을 보면서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듣고 상상하고 느끼는 마치 명상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었다면, <당근유치원>은 유치원과 아이들과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모두 등장하고 - 나무와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보랏빛 새들도 - 아이들이 행복하고 떠들썩하게 재잘거리는 귀여운 대화들이 조잘조잘 귀엽게 수다스럽고도 적확한 입말들로 표현되어 있다.



당연히 아이들을 기르는 부모님들도 해야 할 말들이 있으시고, 유치원 선생님들도 안전과 교육을 위해 때론 큰 목소리로 말을 하셔야 한다. 그림들만으로도 행복한데 입장에 따라 읽어도 재미난 내용이 한 가득이니 떠들썩한 봄날 같이 즐겁고 행복한 그림책이다.

 

새로 등원한 얼굴이 빨간 아이가 엄청난 역할을 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으레 다들 하는 아이다운 행동들을 벗어나지 않는 너무나 평범하게 귀여운 캐릭터이다. 긴장과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아주 편안하게 웃으며 지켜볼 수 있는 ‘우리 아이가 조금 달라졌어요’ 같달까. 귀엽다, 귀엽다, 아휴~ 귀엽다.


우리 집 작은 꼬맹이는 예전 유치원 선생님이 매일 화려하고 귀엽고 기발하게 머리를 묶어 주셔서 얼마나 신나고 기뻐했는지 모른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똥손이라 아이에게는 그 기간이 멋 부리기가 가능한 유일무이한 시절로 남았다. 바쁘신데 노고를 더할까 조심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중단하셔도 아무 원망(?)도 안하겠다 말씀 드렸더니, 아들만 둘이라 해보고 싶었던 소원 풀이하는 거라 말씀하셔서 가족들 마음속에 기쁨과 환호의 함성이…….

 

마지막으로 내게 특별한 감동을 더한 이 책의 미덕은 안녕달 작가님의 시선이 아이들에게만 모이지 않고 아이들이 모두 귀가한 후 선생님들의 남은 업무와 표정에 차분히 머물러 주시는 것이다. 한참 선생님들의 표정과 몸짓을 바라보니 마음이 달달하게 풀어진다. 무대 뒤, 이면, 끝까지 남는 이들을 빠뜨리지 않고 이토록 따스하게 표현해 주시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작가님의 태도와 시선이 존경스럽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그리고 자식이란 관계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모두 다 귀한 개별적 인격체이다.



아이들이 무탈하고 즐겁게 보내는 일상을 유지하느라, 하루 종일 누구의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가르치고 사랑까지 해주는 많은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 연봉에 따라 급수가 정해지는 직업 세계에서 때론 부당하고 억울하지만 그래도 계산으로는 다 설득할 수 없는 감성과 의미를 담아 교육 환경에서 애쓰시는 분들의 현실도 좀 더 잘 알아주시면 좋겠다. 가해자 당사자에게만이 아니라 직군 전체를 성급하게 일반화해서 비난하고 욕하는 일은 너무 천박하고 잔인한 게임이니 하루 빨리 중단되길 바란다.


당근유치원의 다람쥐 교장선생님은 

말씀도 없이 하루 종일 온갖 뒷정리와 청소와 그 외 필요한 일을 쉬지 않고 하십니다. 

저도 이 장면에서는 못 찾아 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마치 돈만 밝히는 속물 의사들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전문 의료직을 존경하면서도 경멸했던 우리 사회가 코로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의료종사자분들 -의사, 간호사, 연구자, 그리고 의료진들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다른 모든 업무 지원을 해 주신 직원분들 등등 - 이 자기 이익과 갈등과 심지어는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도 ‘일단 사람들을 살리자’는 간단한 이유로 기꺼이 달려 나와 애쓰신 모습들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울게 되어도 웃게 되어도 차분해질 수 있게만 되어도 늘 참 좋은 안녕달 작가님의 그림책이다. 생일을 맘대로 옮길 수만 있다면 앞으로는 신간이 출간되어 읽게 되는 날로 정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도 마구 엉클어져서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했을 지도 모를 나 자신이 그림책을 읽고 보는 것만으로 좀 더 괜찮은 사람의 시간으로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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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에 묻다
이주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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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잔잔한 일상과 심리에 대해 귀 기울여 듣는 기분이다가, 이제 겨우 30여 쪽이 지났는데 같은 방식으로 두 건의 사망이 발생했다는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랐다제목의 묻다가 장소가 앞에 나오니 땅에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겠지만어쩌면 질문을 묻다란 중의적 표현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이런 전개라면 땅에 묻는’ 사건이 더 발생할 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내가 그런 존재라는 막연한 의식만 있었지 구체화되지 않아 

그것을 소리 내어 누구에겐가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신에 타인에 대한 방어의 몸짓으로서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소아정신과 선생님이 의심할 만큼 지극히 내성적인 데다 더해서 의도적으로 소리 자체를 내지 않았더랬다.

 

주인공 민주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읽는 것이 쉽지가 않다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식의 상처를 이미 받았고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이어지지만아이는 마치 트라우마에 걸린 당사자처럼 조심스럽게 성장한다지극한 사랑을 주는 대상도 있지만 그 결합은 탄탄하지만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어린아이가 화자로 묵직한 사건의 한 가운데에 있을 것 같아 자주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평범한 타인뿐이 아니라 전문가인 의사를 완벽하게 속일 만큼 영악한 괴물이 되어 버린 이유를 

스스로 합리화하자면 고모와 고모부고종사촌 언니 둘, 4명의 식구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정확하게 두 개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표현하면 환희와 환멸이었다

어린 나의 정서는 어디로 향해야 했을까?


민주와 민주의 친부모이들의 사연을 알고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설명되어야 한다하지만 저자는 현상만을 반복해서 묘사하고 감정의 색깔조차 조심스럽게 혹은 흐릿하게 두고 있어서 원인을 짐작하거나 추리해내기가 막막하다.

 

내가 알아서 안 되는 일이 뭘까?’

 

그녀는 무엇을 의심하는 건가?

 

나의 부모는 누구고 왜 고모네 집에서 살게 되었고 고모부는 왜 나를 그다지도 미워했나?

 

아이는 자라고 변하게 마련이라 어느 덧 민주는 말도 하고 감정 표현도 하고 학교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무탈하고 평범하게 한다단짝 친구도 생기고 미래와 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실패하는 법 없이 진학하여 대학에 간다심지어 동아리활동도 즐겁게 하고 사랑에도 빠진다이렇게 지내는 동안 더 이상 어디에도 묻을’ 일은 일어나지 않고어린 민주에게 드리웠던 심적 고통과 어둠이 흩어진 것만 같아 한참을 마음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고모 집에서 사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는 항상 암울함과 더 알아서는 안 되는

그래서 스스로 알려는 노력 자체를 안 하고 싶고 어둠으로 숨기려는 기운이 늘 존재했다.

 

교감이라는 건 영혼이 서로 교통한다는 말인데 

피차에 자신이 가지고 이는 비밀을 상대방에게 들키기 전에 말머리부터 돌려야 하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입을 열지 않는 것이 현명하리라는 걸 서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의 시간들은 민주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는 절대 이야기 하지 않는 고모의 닫힌 입과세상에서 유일하게 애정과 신뢰를 느끼는 대상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아이의 타협과 유예로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의 진실을 똑바로 알아야 하잖아?”

 

질문은 민주의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고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놀랍게도 이런 영향력은 살아 있는 것으로 결국 밝혀진 민주의 생부와 그가 신출귀몰하게 오랜 세월 제공한 물리적 뒷바라지를 포함하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사연에서 으레 동반될 감동적이거나 희생적인 이야기는 전혀 없는 점이 특이하게 느껴졌다문학에서 어떤 신파나 감동을 최우선으로 삼거나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비극적 역사나 환경과 맞물리는 사연들이 등장하는 소설 속에서 이토록 건조하고 사무적인 관계 역시 놀랄 만큼 생경하다저자의 스타일일 수도 있지만저자가 주목하는 것이 다른 부분일 거란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의 등이 깜깜한 산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고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해 연민이 생겼다

동질감이었다

다음에는 분노했다

나는 산으로 그를 따라가 묻고 싶었다

산속에 어느 길이 당신이 가는 또 다른 세계로의 길인가?

 

끝까지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이 완전하게 부재하는 생모아이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헷갈리는 생부그리고 그 생부의 놀라운 행적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마지막 장까지 다른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되는 고모의 행동이다그리고 밝혀진 또 다른 살인 사건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시장기가 몰려왔다

죽고자 하는 것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 것인가를 깨닫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뭐라고 하면 좋을까역사탐사기획보도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적은 종종 있었지만 감정이 흔들리거나 강렬한 인상을 받거나 하는 느낌이 없었다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타입의 신기한 글이다마지막까지 하나쯤은 다들 이상한 등장인물들을 추리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했다그런 인간 유형들이 지극히 더 현실적인 것인가일상에서는 실제로 드라마같이 모두 다 설명되고 이해되는 그런 일들은 드문 것인가.

 

그래저 찬란한 산 중턱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내가 산다니까.’

 

유일하게 적을 두고 살아 온 집마저 타인들의 손과 발에 의해 파헤쳐지고유일하게 친밀감을 형성한 고모와도 이별하고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사람을 밀어 낼 것만 같은 곳에서 주인공 민주가 남아 있다냉장고와 창고의 식재료들만으로 그저 숨 쉬며 버티고 있다막바지에 몰려 확인해본 통장엔 따스한 체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돈이 입금되어 있고마지막 순간까지 민주는 한 번도 큰 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이야기의 끝과는 상관없이 모든 것은 그대로 무등산에 묻혀 있는 것만 같다.

서늘하다 못해 손발이 시린 기분이다.

뜨거운 차라도 마셔야 속이 풀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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