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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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글을 처음 읽었을 땐, 기운 빠진 일상에 속상하고 서글프고 마음 아픈 감정을 더하는 건 아닐까, 그럴 기력이 없는데 책을 펼치기 좀 망설여진다, 그런 선입견이 있었다. 2020년에도 말로 다 못할 고난과 불행을 짊어지는 이들이 있는데, 무려 1917년 암울하기 그지없던 그 시절이 배경이다. 그에 더해 여성은 혼자 외출하는 일도 힘든 시기, 마치 근래 한국사회에서 국제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타국 여성들을 구매하는 일이 역전된 그런 계기로 이들은 사진결혼을 하고 하와이로 이주한다.

 

그런 심정적 이유로 조심스레 살그머니 열어 본 책에는 특정 시대와 살아가는 일에 대한 내 진부한 고정관념과 인상을 뭉개버리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책장은 2배속으로 플레이하는 화면들처럼 넘어 갔고, 상상 이상의 스토리와 등장인물들의 실존감과 입말 전개의 생생함에 사로잡혀 완작 대하드라마를 몰아서 시청하듯 그렇게 끝까지 읽었다. 책을 읽었는데 마치 영화 스크립트, 대본을 읽은 후처럼, 영상을 보고 음성을 들은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남았다.

 

한인 미주 이민 100년사를 다룬 책을 보던 중 세 명의 여성을 찍은 사진을 보고 책 한권을 마치 본인이 취재한 다큐멘터리인 양 창조해낸 작가! 시시한 찬사 따위 덧붙일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인터뷰와 북토크 많이 해주셔요.

 

좀 전에 읽기 시작한 것 같은데 다 읽은 게 아깝고, 급류를 탄 듯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는 결말에 이르러 짐작도 못했던 비밀이 밝혀지는 짜릿한 내용에 이른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선물을 하나 더 받은 것처럼 엄청 재밌고 인상적이라 아무나 붙잡고 얼른 폭로하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러야 했다. 이런 걸작을 흠집을 낼 수는 없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버들’과 ‘홍주’의 목소리가 귀 곁에 머문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언젠가 하와이를 방문하게 된다면 나는 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설렘으로 그곳에 도착할 것 같다.

​이주민들과는 조금 입장이 다르기도 하지만, 무척 안타깝고 섭섭하게도 이번 대한민국의 총선은 해외거주민의 표결 없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미처 관심을 갖지 못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해외 각국의 한인 사회에서 살아간 백여 년이 넘는 세월, 그리고 여전히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피해를 입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아프게 상기해본다.

 

가끔은 더 이상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심호흡을 하며 간신히 평정심 비슷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버티는 날들, 울게 되지 않고 웃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365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힌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럴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겐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이 있으니까.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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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이는 멍멍이 - 개를 위한 사랑 노래
에이버리 코먼 지음, 염혜원 그림, 김희경 옮김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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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집에 있기 너무나 힘들어하는 꼬맹이를 위해 책선물을 한다. 이 와중에도 무럭무럭 자라는 애교쟁이 강아지 동생에게 읽어주며 잠시 한 때 즐겁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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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이단자들 - 서양근대철학의 경이롭고 위험한 탄생
스티븐 내들러 지음, 벤 내들러 그림, 이혁주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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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이단자들: 서양근대철학의 경이롭고 위험한 탄생』

​(원제 HERETICS!:

THE WONDROUS (AND DANGEROUS) BEGINNINGS OF MODERN PHILOSOPHY)

 

철학자들이 아니라 ‘이단자들’이라니, 이 도발적인 제목만으로도 흥미가 솟구치는 책이다. 더구나 만화책! 이단적 요소를 살펴보자면...... 역사적으로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많은 문제의식들이 필연적으로 과학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이단적인’ 정보로 읽혀질 수도 있겠다. 물론 당시의 가설과 설명은 직관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이는 철학자들의 탓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과학은 ‘관찰 장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에 책상 앞에 앉아 우주에 대해 세운 가설이 바로 얼만 전 망원경의 발전으로 확인된 점은, 내게 금세기를 통틀어 가장 신비롭고 경탄스런 일이었다. 시간여행을 해서 미래를 보고 온 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아신 건지요......

 

특히나 이 책은 문과/이과, 철학/과학의 구분이 확고하고 그들 사이의 거리가 극과 극처럼 멀다고 생각한 이들에게 ‘이단적인’ 새로운 사고의 틀을 보여주거나 통합적 사고방식의 매력을 엿보게 해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익한 책이기도 하다. 동글거리는 그림체는 시종일관 귀엽기만(?) 하고 설명은 뭘 더 이상 어떻게 하나 싶게 쉽고 재미있다.

책의 첫 페이지는 화형당하는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이다. 이런 끔찍한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독특하고 특별한 책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철학사를 통시적으로 이해하는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우여곡절을 겪던 과학혁명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며 science가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자연과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학문’ 그 자체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도 알아야한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철학자로 분류되는 학자로서 당시 천동설을 부정하는 주장을 하여 로마교단에 의해 이단아라는 낙인이 찍혔으며 종교재판소에서 산 채로 화형을 당하는 처벌을 받는다. 우리가 잘 아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시 사형은 면하지만 저서는 금서로 지정되었고 평생을 가택 연금 당했다. 물론 두 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학자들이 성서와 종교의 권위에 그릇되게 도전한 죄목으로 사형당하고 처벌을 받았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이들 중에서도 독실한 종교적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도 많다. 일례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다소 시적인 구절로 잘 알려진 학자인 파스칼은 실은 자신의 준엄한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데카르트의 ‘더 이상 의심하려야 할 수 없는 방법론’에 따라 이른 결론인 데카르트식 합리론을 끝내 수용하지 못했다.

 

“우리는 한낱 생각하는 갈대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위대함은 단지 무한한 신 앞에서 자신이 무가치하고 비참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에 있을 뿐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듯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란 표현은 이 발화에서 어느 날 뚝 떼어져 구전되었고, 그 의미는 원 발화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역사를 다 알고 바라보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가 다소 어리석어 보인다면, 이 당시로부터 300년도 더 넘은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더 이상 공개 사형이나 처벌을 당하는 일은 없지만, 여전히 종교의 절대적 권위를 신봉하고 모든 교리 내용을 무조건 수용하여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하며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농담이거나 개그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진화론을 하나부터 처음부터 완전히 부정하며 분노에 찬 비난을 쏟아내는 발언들을 나는 꽤 최근에도 목격한 바가 있다.

 

이 모든 대립과 이해와 시행착오들에서 세월이 충분히 지나면 결과적으로 사실이 드러나고 수용되는 단계에 이르겠지만 한 학자에게서는 통합적 사고로 존재할 수 있었던 종교와 과학이 공공 영역에서는 과격한 대립을 그치지 않고 인명을 살상하기에 이른 역사는 이토록 격렬하고도 길(었)다.

 

존 로크, 라이프니츠, 파스칼, 데카르트, 뉴턴, 보일 등등 이들 모두가 철학자이자 과학자이자 수학자이다. 나를 포함해서 문/이과로 분리되어 학창시절을 보낸 독자들에겐 그 경계가 여전히 상당히 클 지도 모른다. 나는 물리학과였지만, 가능한 모든 교양수업을 철학과 전공으로 채웠고, (과학)철학을 전공해서 철학과 대학원을 다녔는데, 그때가 20세기 후반이었음에도 늘 신기한 부류로 분류되곤 했다. 결국 개인적 한계로 배운 것들이 잘 통합되어 업적이 되지는 못했지만.

 

21세기에 만난 이 만화책은 기분이 좋아질만큼이나 재미있 흥미로울 뿐더러 그 장점만큼이나 생각과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대단한 힘 또한 갖고 있다. 올 해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보낼 선물 중 하나는 이 책으로 하려 한다. 모두가 반가워할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스피노자가 한 것이 맞습니까?

 

당시 한 학부생이 질문을 했는데 지도교수와 아무리 열심히 뒤져봐도 스피노자 저서에서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전공이 아니라 그 뒤에 잊고 지나갔지만, 문득 궁금합니다. 국회도서관을 검색해도 자료가 없었는데 마치 전국민이 당연히 다 아는 듯한 신비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자료에 대해 아시는 분은 댓글로 이 기회에 저를 계몽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국교가 지정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넘어 천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종교사업의 민낯이 끊임없이 드러나는 시절을 핑계 삼아 다음 구절을 함께 읽어 보고 싶어 적는다. 이는 특정 종교에 대한 지지나 비난에 의도를 두고 있지는 않다.

 

성경이 신성한 이유는 단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선지자들은 철학자나 과학가자 아니었고 심지어 신학자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들이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해 말한 바가 반드시 참은 아니다. 하지만 선지자들은 놀라운 덕과 생생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메시지는 감동적이었지만 내용은 단순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참된 종교의 의미는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롭고 자비로운 행위를 하는 것에 있을 뿐이다. 다른 모든 것, 기성 종교의 모든 의식과 예배는 신앙심과 아무 관련이 없다. 스피노자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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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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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길게 쓸 수밖에 없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 파스칼

 

“너는 단편소설을 쓰고 싶었던 거잖아. 짧아져야 감동적인 거야. 너저분하게 늘어놓아서는 안 돼. 단편소설은 시를 쓰듯이. 알았냐?” - 소설을 잘 쓰려면. 57

 

800-900쪽이 장편 소설도 반갑게 읽는 옛날(?) 사람인 나로서는 어쩌면 장편소설에 더 익숙할 지도 모르지만, 경애하는 몇몇 작가들의 소설집에서 읽은 단편소설들의 매력은 충분히 즐겁게 읽기도 했다. 이 저서에서 다루는 작품은 일반적인 단편 소설보다도 훨씬 짧은 초단편소설, 플래시 픽션이나 엽편 소설이란 불리는 -1,000자 혹은 2,000자 내외- 작품들이다. 나는 이 책에서 플래시 픽션을 처음 읽는 셈인데, 운이 좋게도 25편이나 실려 있어 분위기와 형식에 익숙해지기에는 충분한 분량이었다. 읽으면서 익숙해질수록 매력이 더 잘 보인다.

 

그나저나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이란 여섯 단어로 이루어진 소설을 헤밍웨이는 참 기발한 천재인 듯. 단순한 글자 수만이 아니라 이렇게 최소한의 상황, 비유, 인상을 활용하는 ‘플래시 픽션 Flash Fiction’이다. 어쩌면 아이들도 나도 만약 정말 소설을 기어코 쓰고 싶다면, 이 방법이 해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고 마침내 희망을 찾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결코 흔하지 않은 소설론이다. ‘소설들’을 보여줌으로써 ‘소설’을 설명하는 방식이랄까. 기존의 작법서를 읽을 엄두가 안 나는 이들, 읽어봐도 거기 쓰여 있는 언어의 형식들과 소통할 수 없는 이들에겐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좋은 책이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이 책을 읽고 바로 소설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정관념이 시원하게 깨어지는 경험은 더운 날 시원한 물 한잔처럼 그런 상쾌함이 있는데, 이 책의 내용 중 특히 구성에 관한 개념이 그러했다. 이야기에 시동을 거는 첫 부분을 ‘발단’이라 명명하고 속도를 기대하지 않고 비교적 차분히 읽어가는 내용이라 늘 생각했는데, 작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9회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서 던지는 공이 소설의 ‘발단’이라고 한다. 마치 ‘절정’이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한데, 저자는 ‘소설의 시작과 이야기의 시작’을 구분한다. 또한 ‘절정’은 절벽이 되어서는 안 되며 결말로 가는 길을 반드시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것! 따라서 최종 승부는 절정이며 결말은 환호라고 한다. 따라서 훌륭한 절정은 결말로 가는 좁지만 분명한 길을 마련해둔다고 한다.

 


<변신>, 인간이 벌레가 된 이야기, <좌와 벌>, 한 청년이 노파를 살해한 이야기, <안나 카레리나>, 한 여자가 자살한 이야기. 이렇게 한 줄로 말할 수 있잖니, 그런게 소설이야. 56

  

한 마디로 줄여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설이다. 한 마디로 줄여 말했는데 그게 재미있어야 영원한 소설이다. 61

 

우리 집 꼬맹이들이 자신들이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며 고생한(?) 이야기들과 기분들을 이야기책으로 만들어서 남길 거라고 하는데, 그 얘기를 듣고 부러운 기분이 가슴 속에서 뜨겁게 솟았다. 소설이 무엇인지, 소설작법이 무엇인지, 그런 걱정 안 하는구나. 기성/기존의 절차와 형식에 대한 존중/존경은 있어도 해될 것 없으나 확실히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위한 새로운 창작의 길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뭐, 결과는 꼬맹이들 창작물을 읽어보고 난 뒤에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지만.

 

늘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 아버지가 대학교 교수였는데도 불구하고 - 정보 부족으로 문예창작과가 아니라 국문학과에 들어가서 기대한 분위기가 아니라 당황했다던 오래 전 친구가 생각났다. 벌써 소설을 출간했는데 내가 과문해서 모르는 것인지, 어딘가에서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꿈을 찾아 그 길을 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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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돌에 쉬었다 가는 햇볕 한 자락
장오수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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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창작품이란 없다고 하지만, 어떤 작품들엔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이 아니라 일상의 애환들이 진하게 묻어 있는 글들이 있다. 때론 이런 글이 좋고 때론 저런 글이 좋은 것은 늘 그 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라 감상이란 언제나 상황에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일상을 잃어버렸거나 혹은 유보했거나 아님 그저 낯선 다른 일상을 살 뿐이지만, 어쨌든 병리적 이유와 과정으로 맞닥뜨린 시간에는 ‘평범했던 일상’이라는 것이 그리워서 울컥 마음이 쏠린다.

 

 


특히 장오수 시인의 일상이 스며든 시어들을 많이 등장시키는데 이는 현재의 내 일상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은 일상도 불러들인다. ‘섬돌’은 조부모님이 계실 때 본가의 고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기억 속엔 늘 햇볕에 따뜻하게 달궈진 반짝이는 모습으로 떠오른다. 이렇게 밖에 기억 못하던 그 장면이 시인의 언어로 시집의 제목으로 나타나 반가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보았다.


인간과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이마다 자연의 모습들이 끼어든다. 그 중에는 부부싸움도 있다. 마치 새벽 찬바람이 싸움을 화해로 바꾸는 역할인 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전개가 포근하다. 다른 작품에선 작가의 경륜이 느껴지는 시선이 드러나 있고, 때로 그 시선은 시의 형식이지만 지나온 세월과 고단함과 감정과 일상과 미래에 대한 준열하고도 객관적인 독백으로 흐른다.


62편의 적지 않은 3부작 시집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군더더기도 화려함도 없이 짧았다는 느낌이 드는 시집이기도 하다. 부분적으로는 시인의 깊이와 층층을 다 이해하지 못한 나의 독자로서의 얕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다음에 다시 읽으면 다른 이야기가 들리기도 할 것이다.


하루 만에 만 명씩 확진자가 늘어나는 나라, 하루 밤에 수백명씩 사망하는 나라, 그리고 끝없는 격리, 격리……. 이 모든 것이 가짜뉴스도 아니고 오보도 아니고 하루만 겪는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점이 오늘도 충격적이고 끔찍하고 두렵고 화가 난다.

 


내 일상도 남의 일상도 귀하디귀한 그리운 대상이 되어버린 지금, 시인이 겪어온 일상도 내가 지나쳐 온 모든 시시한 일상도 참을 수 없이 아깝고 간절했다,는 기분으로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읽었다.


* 포스팅에 올린 시들은 전문이 아니라 모두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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