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없는 뽑기 기계 - 2020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곽유진 지음, 차상미 그림 / 비룡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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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기 싫어하는 아이가 어디 있을까. 고기 싫어하는 우리집 쪼꼬맹이도 유일하게 좋아하는 고깃집이 뽑기 기계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 가자면 가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이다. 


그렇다고 그 집 뽑기 상품이 대단하게 멋진 것은 아니고 결국 먹지 않는 사탕들만 잔뜩 나오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눈을 반짝이며 동전 주세요~를 공손히 부탁한다.


학교 문구점 뽑기 역시 어른들 눈으로 보자면 아주 조악한 장난감이 대부분이지만, 진지하게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는 아이들의 기대가 반짝이고도 귀엽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고 코로나로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도 선생님도 못 만나는 아이에게 선물하면 좋겠다 싶었다. 더구나 꽝이 없다니 얼마나 신나는 이야기일까!


그런데... 아이가 "뽑기가 좀 이상하네"라고 쓱 읽고 내려 둔 책이 궁금해 내가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 8살 꼬맹이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슬프고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한 겹씩 숨은 이야기가 들려올 땐 눈물이 솟구쳤다.


자식이 있는 부모의 할 일 중 하나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자식이 홀로설 수 있을 때까지 살아있어주는거라 믿는 나로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늘 불안하고 두려운 점이 그것인 나로서는, 한 순간 마음이 무너지고 울음이 나왔다. 불시에 어린 자식들을 두고 떠난 부모도 그렇게 남겨진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탓하며 말을 못하게 된 아이도... 이런 상황을 슬프지 않게 표현할 방법은 없다. 더구나 어제는 4월 16일, 아직도 관련 기사만 봐도 눈물이 절로 흐르는 날이었다.


작가님이 참 대단한 점이 이런 상황 속에서 마치 마법처럼 아이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장치를 만들어 이야기를 건네시는 점이다. 울면서도 진심으로 존경스럽다고 생각하고 또 감사했다. 


특히 떠난 부모가 미칠 듯이 그리운 부재의 순간, 엄마, 아빠의 칫솔이 없는 장면은... 작가님의 섬세한 장치에 감탄하면서도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고 일상적이라서 마음에 충격이 올 정도로 절감했다.


다행히 동화 속에서는 이런 위로와 치유가 있지만, 실제로 혼자 남겨진 아이들은 또 어떻게 오늘을 살아가나, 그런 생각이 가득해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무겁다. 아이를 낳고 문득 든 그런 생각으로 작은 후원을 하고는 있지만, 이럴 때 내게도 마법의 지팡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아이들책이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란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비룡소의 이 책이 왜 대상을 받았는지 그 이유를 듣지 않아도 다 알 것같다.


좋은 책, 감동적인 책, 어쩌면 누군가의 생각과 일상을 바꿀 지도 모르는 책의 출간에 감사드린다. 부디 아이들도 어른들도 조금 덜 아프고 덜 외로운 날들이 더 많아지길 흘린 눈물만큼의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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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영어의 정석
김병용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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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습에 관한 서적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목적에 따라 수험서와 실용서와 학술서 등으로 그 종류도 갖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당면한 특정한 목적을 위한 단기 학습이 아니라 어학으로서 혹은 일상 언어로서 학습하려는 이들에게는 그 복잡하고 다양한 저서들 중에서 무엇을 얼마나 익혀야 원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요원하다는 것이다. 권위 있는 문화원이나 어학원에서 배우는 일이 가장 편한 방법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역시 시험과 자격증에 수업 내용이 맞춰져 있게 마련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 가서 일정 기간 이상 살아 보는 것이다. 그 방법이 간단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나는 철저히 유학에 맞춰서 영국문화원에서 수강을 했고 몇 해를 영국에서 지냈으나 전공과 관련된 영어와 학계에서 사용하는 언어에만 익숙하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일상 영어는 거의 모르는 상태로 지냈다. 물론 의사소통이 어학에만 한정된 행위가 아니라서 “내가 공부하러 와 있는 것만이 아니라 여기서 살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자 비로소 다른 종류의 인간관계와 일상적인 대화에도 관심이 생기게 되고 대화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다고 농담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영어가 가장 익숙한 외국어이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도 하기 때문에 ‘발음만은, 문법만은, 독해만은, 쓰기만은 제대로 할 줄 안다’고 생각하기가 쉬울 것이다. 단지 내 경험일 뿐이지만, 나도 내가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한국 교육 과정에서 전무하거나 누락된 하지만 아주 기초적이고 중요한 사실들을 뒤늦게 배우면서 배신감(?)과 낭패감을 동시에 느낀 적이 여러 번 있다.

 

<생활영어>라는 제목과는 달리 분량이 많고 그 내용 또한 비례해서 묵직하고 진지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기억들 - 어쩌면 다른 분들은 다 알고 나만 몰랐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 이 다시 떠올랐다. 모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어 역시 개인차가 결국엔 가장 큰 결과의 차이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어학준비를 하면서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성격 탓이 크다. 잘 안 들려도 당황하기는커녕 “어차피 난 한국어도 처음 만난 사람,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 말은 잘 안 들리니까.” 혹은 “세상엔 무수한 말투가 있으니까” 이런 식……. 너무 게으르고 무덤덤했던가 싶지만.

 

그 와중에도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안 들리는 말은 할 수가 없고 한국어로 모르는 단어와 주제는 외국어로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 컨텐츠가 없으면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내게 식품영양학에 대해 한국어로 10분간 이야기하라고 하면 한국어로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기 아이 영어 공부 어떻게 하면 좋냐고 가끔 묻는 어머니들에게 여러 번 말씀을 드렸다. “아이가 한국어 단어를 100개밖에 모르면 영어 단어도 그 이상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을 골고루 발췌하는 것이 어려워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해본다. 나는 재밌게 비교하며 배웠고 저자도 마침 시작부터 소개하는 내용이다.

 

한글은 우리가 이미 사용하는 ‘말’에 맞추어 만든 글자이기 때문에 모든 ‘말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자음과 모음의 개수가 정확하다.

 

그에 비해 ‘영어’는 라틴어로부터 시작해서 ‘로마문자’로 정리된 것을 빌려서 사용하는 문자 - 알파벳 -이기 때문에 발화자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말소리와 일치하는 문자가 아니다. 따라서 소리의 개수가 불일치하고 영어 자음과 모음의 개수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영어 모음은 A, E, I, O, U라고 배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갈수록 끝없이 영어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저자 역시 ‘인정하기 싫겠지만 영어 모음은 A E I O U가 절대 아니다. 이들 다섯 글자는 영어 모음 글자일 뿐이고 영어 모음의 개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한다. 정리된 저자의 예를 직접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알파벳 'A'만 해도 8가지 모음을 표현한다.

 

1. [ɑ] : garage[gə'rɑ:dƷ], father['fɑ:ðə(r)] → '아'와 비슷한 소리


2. [æ] : Canada['kænədə], apple[ǽpl] → '애'소리


3. [ei] : maple['meɪpl], ace[eɪs] → '에이'소리


4. [e] : fare[fer], air[er] → '에'소리 '어'는 [r]발음을 하면서 나는 소리


5. [ɔ] : ball [bɔ:l], hall[hɔ:l] → '아'와 '오'가 합쳐진 소리


6. [ɪ] : garbage ['gɑ:rbɪdƷ] , surface ['sə:rfɪs] → 짧은 '이' 소리


7. [ə]: banana[bə'nӕnə], again[ə'geɪn] → '어'소리


8. [ ] : hospital['hɑ:spɪtl], mental['mentl] → 묵음(소리가 나지 않음)


이러니 소리와 글자가 일치하는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인들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불일치를 배우기는 하지만 혼동이 없을 수가 없다. 어찌 보면 가성비가 좋다고 볼 수도 있으나 다르게 보면 이토록 무규칙에 - 적어도 학습자 입장에서는 - 낭비가 심한 언어도 없다.

 

게다가 음성언어는 같은 단어라고 하더라도 앞뒤에 오는 단어나 화자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소리 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문자나 신호 등으로 음성언어를 100% 완벽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또한 문자 언어는 음성언어만큼 유연하지 않아 이 둘에는 많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모국어라면 음성언어를 먼저 배우고 문자를 배우니 문자를 모른다 하더라도 말을 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어는 문자를 먼저 배우고 그 문자들을 통해 음성언어 읽는 법을 배우는데 문자와 소리가 다른, 매우 다른, 자주 다른 영어의 알파벳은 거의 시작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ㄱ’에 ‘ㅏ’면 ‘가’이고, 이런 규칙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발성법을 정확히 가르쳐주고 어이가 말을 배우듯 청각 수업을 먼저 하는 시간과 노력이 부족한 경우, A, E, I, O, U가 모음이라는 지식을 기억하는 한 발음이 될 리가 없고 따라서 회화가 될 리도 없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영국 영어에는 단모음 11개와 이중 모음 5개 도합 16개의 모음이 있다.

 

단모음: /i: ɪ, ɛ, æ, ɑ:, ɔ:, u: ʊ, ʌ, ɚ, ə/ (11개)


이중모음: /aɪ, eɪ, oɪ, aʊ, oʊ/ (5개) 총 16 개

 

영어 모음은 국어와 마찬가지로 단독으로 발음할 수 있다.


단모음과 이중모음으로 나누어진다.


단모음은 다시 길게 발음하는 긴모음과 짧게 발음하는 잛은 모음으로 구분되다.


긴모음: /i:, a:, u:, aw/ (4개)


짧은 모음: /i, e, ae, u, uo, ur, eo/ (7개)


영국 영어의 자음은 미국과 같고 모음만이 다르다. 단모음에서는 /ɒ/ 한 개가 추가되고, 미국 영어의 /ɛ/를 /e/로, /ɚ/를 /ɜ:/로 발음하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영국 영어의 단모음은 12개이다.

 

이중모음은 미국 영어의 이중모음 5개에서 /ɪə, eə, ʊə/ 3개가 추가된다. 그래서 영국 영어의 이중모음은 8개가 된다.

 

결과적으로 영국 영어의 모음 개수는 단모음 12개와 이중모음 8개를 합쳐 총 20개이다.

 

단모음: /i: ɪ, e, æ, ɑ:, ɔ:, u: ʊ, ʌ, ɜ:, ə, ɒ/ (12개)


이중모음: /aɪ, eɪ, oɪ, aʊ, oʊ, ɪə, eə, ʊə/ (8개) 총 20 개

 

한국은 미국영어(?) - 어느 지역인지 제대로 특정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사실 의미 없는 구분이지만, 어쨌든 - 를 미국인처럼 하는 것이 학습 목표처럼 통용되는데, 세상에는 그냥 수많은 영어들이 있다. 유학할 당시 동기들 25명의 국적은 17개였다. 2주일 정도 우리는 누구도 누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물론 미국인과 영국인도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고 같은 단어의 뜻이 다를 때도 있고 표현도 달라서 자기들끼리도 열심히 물어서 소통을 위한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 학회에 가기 위해 이용한 기차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동행한 네 명은 영국인, 이탈리아인, 스웨덴인, 한국인이었는데 아무도 방송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만약 무슨 사고가 난 거라면 우리는 큰 일 난거라고 잠시 두려웠다. 그러니 혹여 한국인만 영어를 못하네 하는 헛소문 때문에 절대 좌절하지 마시라, 여러 해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본 결과 한국인들은 아주 고급스럽고 문법도 잘 맞는 교양 있는 영어를 사용한다.

 

문법은 인지주의 학습이론에 따라,


학습방법은 모국어 익히는 과정을 모델링해서,


인공지능과 언어심리학 학습이론을 참고하여 구성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모두 다 잘 모르지만 게으르게 한번 쭉 통독하는 것만으로도 끄덕끄덕하며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험과 자격증에 더 이상 도전할 걱정은 안 하는 나이가 되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총괄적이고 포괄적으로 언어를 열심히 설명하는 이 책이 친절한 이야기책처럼 잘 읽혔습니다.


다른 독자분들에게도 무언가 유익하고 재밌는 경험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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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론 - 우리 활 바르게 쏘는 법
장언식 지음, 안대영 옮김, 이윤치 해설 / 지식과감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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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넷플릭스 한국드라마 ‘킹덤2’를 보고 인터뷰 내용을 찾아보다가, 사료에 충실히 따르자면 다들 활을 들고 좀비와 싸웠어야 했으나, 화면에 담기에는 칼을 휘두르는 편이 그림이 좋아서 그렇게 설정했다는 내용을 들었다. 물론 우리 민족도 칼을 허리에 차기는 했으나 활쏘기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칼을 허리 뒤로 돌려 매달았다는 것, 그러니 그동안 우리가 늘 보아왔던 칼 차기는 일본 사무라이식이라는 것이다.


 

드라마 제작자는 알지만 화면을 위해서 소품을 달리했다니 이해할만하고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문득 광화문 광장에서 짝퉁 논란을 온 몸에 맞으며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떠올랐다. 뜬금없이 왼손잡이가 된, 그나마 쥐고 있는 칼이 일본도, 입고 있는 갑옷은 중국갑옷, 얼굴 모습은 표준영정과 다른 조각가 본인의 얼굴, 눕혀져 있는 독전고. 고증 능력이 못 미쳤다면 더 조사하고 노력하면 될 일이나 이렇게까지 참담할 만큼 엉터리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싶다.


 

다시 활로 돌아와서...... 다른 동물들보다 현저히 체력이 야간 인간이 사냥감을 잡기 위해서는 가능한 멀리 떨어져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다음 확실히 겨냥 가능한 활이 생각할수록 내게는 가장 그럴 듯한 무기였을 듯하다. 창이나 칼은 그야말로 육박전이라 체력과 체격을 어지간히 키우지 않고서야, 혹은 비슷한 인간끼리의 전투가 아니고서야 생존을 위한 사냥에는 위험이 크고 별 쓸모도 없었을 듯하다.


 

열심히 고증 자료를 찾아본 것은 아니라 대부분 주워들고 생각한 내 짐작일 뿐이지만, 어쩌면 활은 그렇게 가장 먼저 ‘기술’로 발전하고 학습되고 확산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 사시사철 전쟁 중이 아니라면 평시에는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하는 ‘무예’로 철학과 가치가 덧붙여지고 그 역시 중요하게 학습되어 전승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경험이 없고 아마 한국에서 초중고 학내 활동으로 지정해서 ‘활쏘기’를 무예로 가르치는 곳도 없지 싶다. 뜻밖에 나는 일본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친구를 통해, 중학교에 궁예부가 있어 아이가 등록했다는 소식을 몇 해 전 들었다. 올림픽 양궁처럼 점수내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통복장을 하고 다 같이 과녁 앞에 서서 잡념을 없애고 정신을 집중하는 훈련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전통무예로서 전설로만 들어오던 이야기가 일본에서 현실이 되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예비역으로서 사격에 꽤나 자신감을 보이는 제부 덕분에 우리 가족은 사격 체험을 해보았고, 그러다 우연히 활쏘기 체험, 양궁 체험, 국궁 체험까지 해보았다. 크게 재미가 없었던 사격은 제외하고, ^^ 활쏘기 체험은 해보신 분들은 그 기분을 아시겠지만,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재미있고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종목이었다. 한강 활쏘기 체험으로 시작해서 문화센터 활쏘기 체험, 무려 활쏘기 증강현실 체험도 했다. 국궁은 온 가족이 좌절감만 체험했기에 다시 도전할 지는 의문이지만, 양궁은 배울 기회가 있다면 정식 등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코로나가 일상을 모두 강제하기 전 <전쟁기념관> 1층에서 예전 활들을 구경하고 체험한 것이 마지막 활쏘기의 추억이 되었다.


 

물론 사적 체험은 이 책에서 알리고자 하는 ‘무예’로서의 활쏘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익숙하지 않은 전통을 부활시키는 가장 영리한 방법은 재미있게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활쏘기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여러 해 전 영화 <최종병기 활>도 뒤늦게 가족이 모여 보았다. 아이들은 예전 사람들은 활을 정말 잘 쏘았다고 감탄했지만 음...... 배우들의 노고는 차치하고 액션들이 심하게 낯설다.


 

어쨌든 우리 민족이 활을 잘 쏘았고, 전투에서 활을 중요한 무기로 활용하여 전과를 거두었고, 그에 관한 이야기들도 전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장군, 당태종을 물리친 양만춘 장군, 거란을 물리친 고려의 강감찬 장군, 왜적을 물리친 조선의 이순신 장군 등은 물론이고 일제의 침략에 맞선 항일 의병장과 의병들 까지. 그리고 임금들 역시 활쏘기를 평소에 단련의 수단으로 익혔다고 한다.


 

이쯤 되면 활쏘기는 단순한 무기 취급에서 더 나아가 정신과 마음가짐을 담기 마련이었을 터이다. 그리고 이 내용을 좀 더 자세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이 책 <정사론> - 올바르게 활을 쏘는 법을 논함 - 이다.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매년 대사례를 하고, 각 고을에서는 향사례를 했다고 하니, 이는 연 중 큰 행사이며 이를 준비하기위해 거의 매일 단련을 한다는 말이기도 하니, 그야말로 국민스포츠와 축제였을 듯하다.


 

더 나아가 활 속에 담긴 이치, 철학, 수련법 등의 내용이 풍부해서 단지 활 쏘는 체험이 즐거운 우리 가족과 같은 분들만이 아니라 민족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도 유익한 내용일 것이다. 한 가지, 미리 마음을 다 잡아야 할 것은 원저자 장언식 장군이 원전 한문과, 유학 경전과 역사서를 풍부하게 인용하고 계시니, 번역하고 주해하신 내용이 친절하고 섬세하지만 논문에 준하는 진지함은 독자가 잘 감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전설처럼 전해진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하는 단절된 우리 역사의 한 분야의 파편들을 튼튼한 한 줄로 엮어준 것 같은 이 책을 읽게 되어 정신사가 단정해진 좋은 기분이 든다.


 

“천하를 다스리는 도는 과녁을 쏘아 이를 밝히는 것이며 이를 이어받아 쓰는 것이다.”


“治天下之道(치천하지도)는 曰(왈) 侯而明之(후이명지)하며 承之庸之(승지용지)”


서경


 


“천하에 위엄을 세우는 도는 나무를 구부려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드는 것으로 한다.”


“威天下之道(위천하지도)는 曰(왈) 弦木爲弧(현목위호)하고 剡木爲矢(염목위시)”


주역


 

드디어 오늘, 2020년 4월 15일 대한민국총선투표일입니다. 사전 투표한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오늘 결정을 굳히고 투표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자주 실감하고 행사할 수 있는 일이 드문지라 더욱 떨리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늘 투표 때마다 많이 떨리고 조금은 서글프고 그렇습니다. 



투표하러 가시는 길, 하시는 동안, 오시는 길 모두 안전하고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4년만이 아니라 어쩌면 더 오랜 미래를 결정할 지도 모르는, 우리 모두가 직접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투표를 포기하지 마시고 할 수 있으신 분들은 기운 내셔서 잘 다녀와 주시길 응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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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윅 클럽 여행기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허진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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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 다른 작품을 읽고 아름답지만 슬픈 문학의 느낌으로 기억해서, 혼자 읽기엔 힘들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는데, 분량이 많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잘 읽힙니다. 예스러운 원작의 표현에도 얼른 익숙해졌으면 좋겠네요. 초역본 출간이 반갑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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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지방자치를 비추다
정영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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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일정 정도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존재할 것이나 한국 사회는 특히나 어지러울 정도로 급속한 변화를 겪어 온 지라, 조선왕조, 일제 식민지, 한국 전쟁, 공화국 - 독재, 대량학살, 혁명, 국가위기, 탄핵 등등 - 에 이르는 여러 번의 환골탈태시기를 한 생에 모두 살아 낸 분들이 있을 정도로 국가/사회 정체성의 변화가 무쌍했다. 그러니 한 개인 안에서도 사고의 전이나 일상생활 양식의 변화가 더딘 경우도 있고, 자의건 타의건 빠른 경우도 있으며, 이는 사회구성원집단간의 격차를 한 세대에서도 복합적으로 상이하게 만들고, 세대 차에 이르면 소통이 불가능한 극단적 경우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런 배경의 연장선에서 한국 사회는 민주공화국의 공무원들에게 공직자로서의 직업윤리 대신 왕조 시대의 덕목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는 국민/시민들의 의식에 학습된 문화로 자연스럽게 고착화되어 있어서, 법 감정이나 관행을 단순히 시대에 불일치하는 일이라 외면할 수도 없다. 특히나 인기투표의 형식을 크게 빌려 온 선출직들의 경우에는 능력이나 활동으로 평가받기보다는, 호감형 인간이 되는 것이 정책 투표를 하지 않는 많은 유권자의 표심을 모으기에 필수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는 또 다른 극심한 감정노동과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가족, 친지, 지인들을 포함한 인권침해적인 평가와 절박한 상황에 몰린 후보자의 거짓말이나 부정행위를 야기하거나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기도 한다.

 

4대 성인도 하지 못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현대의 공무원에게 기대하는 것은 희망 사항이라기에도 불합리하고 과하다. 어째서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야만 바람직한 것인가. 사람 사는 일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거기서 거기, 비슷하게 마련이라고 하지만 조선 시대 치국 철학과 관직에 대한 청사진을 민주공화국의 공무원과 순치 나열하는 것도 어쩌면 크게 유의미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런 걱정과 선입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영암군수 이종영李鍾英이 다산을 찾아와 ‘정치 잘하는 법’을 물었다. 여섯 자의 염廉자를 군수의 허리띠에 써 주고...... 설명해 주었다.

​첫 째의 청렴함廉은 밝음을 낳는다. 그러니 사물의 실상이 훤히 드러날 것이다.

​두 번째의 청렴함廉은 위엄을 낳는다. 그러니 백성들이 모두 그대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세 번째의 청렴함廉은 강직함을 낳는다. 그러니 상관이 그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이 일화를 소개하는 것은 지도자는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질 것이요,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지 아니하면 비록 명령을 하더라도 행해지지 않을 것이므로 자신의 몸가짐에 대한 스스로의 규율이 먼저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흉년에 백성을 위한 조세 감면을 요구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관직을 떠나라. 상관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관직을 떠나라. 상관이 내게 무례한 행동을 하면 관직을 떠나라.”

 

“상관이 항상 나를 언제 날아가 버릴 지도 모르는 새처럼 여긴다면 내 말을 다르지 않을 수 없으며, 내게 무례한 행동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정치하는 것이 거침없이 순조로울 것이다.”

 

“상사의 지시가 이치에 맞지 않아 받들어 행할 수 없는 일이라면, 사리를 자세히 살펴 행할 수 없음을 보고하되, 그래도 들어주지 않으면, 이 일로 말미암아 비록 파직이나 귀양을 당하더라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

 

첫째는 덕행이 고상하고 지조가 청백함이요.

​둘째는 학문이 통하고 행실이 닦여 경서에 정통한 박사요.

​셋째는 법령에 밝고 익숙하여 족히 의옥(범죄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아

죄가 있고 없음을 결정하기 어려운 사건)을 결단함이요.

​넷째는 강직하고 씩씩하고 지략이 많아서 재능이 현령을 맡을 만함이다.

- 벼슬아치의 자질 네 가지

 

어렵고 - 한자가 꽤 있다 - 방대한 양이고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유명할수록 잘 모를 수도 있다는 공식에 맞게 나는 스토리는 익숙하나 정약용의 삶과 철학을 생생히 느껴본 적은 없었다. 비록 목민심서 원본은 아니지만, 인용된 내용들로만 판단해봐도, 목민심서는 사료적 가치가 클 것이라 짐작된다. 만약 정약용이 중앙에 머무르고 승승장구하는 관료로 평탄한 삶을 살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조선 후기 생활상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아버지가 목민관으로 임지 부임을 하여서 보고 들은 내용, 자신이 ‘어사’가 되어 파악해 본 현실, 유배지에서 목격한 또 다른 지방 백성들의 참담한 상황에 대해 근거 - 팩트 -를 가지고 증언하는 책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의 가치는 그러한 자료를 가지고 탁월하게 분석한 정약용의 능력이며, 이는 조선 후기 경제사, 문화사 연구자들에게는 무척 귀중한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인문학적 사상서로서도 탁월하게 기술된 자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신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 대해 세태에 대해서만 비판을 한 것은 아니다. 아래 내용은 다산 선생이 34세 때 충청도 금정역 찰방으로 좌천되어 근무할 때 ‘퇴계집’을 읽으며 매일 새벽 자신의 생각과 언행을 반성하며 쓴 글이다.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남을 깔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재주와 능력을 뽐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영예를 탐내고 이익을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남에게 베푼 것을 잊지 못하고 원한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생각이 같은 사람과는 한 패거리가 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공격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잡스러운 책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함부로 남다른 견해만 내놓으려고 애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니,

​가지가지 온갖 병통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여기에 딱 맞는 처방이 있으니 ‘고칠 개’가 그것이다.”

 

뭐 이렇게 하나도 완전히 비켜나는 게 없나 싶을 정도로 다산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허물투성이 인간이다. 다행히 공직자가 될 계획이 없었으니 망정이다. 한 때 공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니 그때도 공공복리증진을 위한 직업윤리를 고심하며 전업한 것은 아니고, 초과근무를 거절할 수 없는 회사에서 자정에 퇴근하고 출장을 몇 달씩 가며 초과근무수당이 연봉에 육박하는, 자살이나 과로사 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생활을 더 이상 못하겠다 싶어, 통근 버스가 데리러오고 데려다주는 9-6제 공무원 생활을 하겠다는 지극히 사적이고 영혼 없는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뜻밖에 이사, 부장들, 과장들, 팀장들 포함 200명의 직원들이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거대한 설계팀에 발령받은 것도 의아하고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 ‘우리가 남이가’라고 야유회마다 술잔을 들고 외치며 다 같이 으쌰으쌰하자는 공직 사회에 적응 못해서 그만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저쨌든 다산의 반성 기준에 비추어 이토록 허물투성이 인간이 나라면 공무에 오래 머물지 않은 것이 여러 모로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면 이 모든 덕목을 이루는 ‘배움’ 어떠해야 하는지 책장을 넘기다 이 구절을 발견했다.

 

“배움이란 스승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스승이 있어야 배울 수 있는 것이니,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초빙하여 스승으로 삼은 다음에야 학규를 논할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는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점차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현실에서, 학생들이 본받을 만한 스승이나 제대로 된 본보기가 될 만한 사회의 어른들이나 서로에게서 배우는 기회는 얼마나 될까. ‘사람’이 실종된 듯한 사람 교육 현장에서 입시 대비 ‘교과서 위주의 학습’이란 흔하게 통용되는 구절이 절로 대비되어 떠오르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판데믹이 선언되고 세계가 거의 멈춰버린 시간, 대한민국 4.15총선 선거공보물을 옆에 두고 다음 두 구절을 더 인용해본다.

 

“백성들이 수령을 사모하고, 수령의 명성과 치적이 뛰어나, 유임하거나 같은 고을에 다시 부임하게 된다면 이 역시 역사책에 이름이 빛날 것이다.”

 

재난이 생길 것을 생각하고 걱정하여 미리 예방하는 것이, 이미 재난을 당한 후에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낫다.

 


선거 기간이 되면 매번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할 것같아 내키지 않는 마음을 다잡고 찾아보는 자료가 있다. 범죄/전과 기록인데, 선거란 꼭 뽑아야될 사람을 뽑는 일만큼 꼭 떨어뜨려야하는 이들을 떨어뜨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판결과 형량을 마친 경우 소급해서 단죄하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할 지 모르나, 이번 후보자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던 기소판결 확정 사유들 - 성범죄, 추행, 폭행, 방화, 살인미수/살인, 그리고 동일범죄 10범 이상 등등 - 정말 이들이 처벌과 반성을 통해 새 인생을 각자 찾는 영역만이 아니라 공직 사회에 진출해도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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