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 키우는 장내 미생물 - 바이러스 공포 이겨내는 방법
김세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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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면역력에 관한 관심은 늘 있었고 이런 저런 조언과 정보를 바탕으로 섭식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아주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그러다 코로나 이후 불확실한 감염의 위험에 언제 노출될지 모르니 면역력이 부디 잘 저항하고 견뎌주길 바라는 마음도 커져만 갔다.

 

상당한 기간을 유기농 채식을 했고 현재는 때때로 적당히 하긴 하지만 온 가족이 당연한 듯 유산균을 매일 따로 섭취하고 있다그렇지만 장 트러블이 종종 발생하고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변비를 오가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게다가 가족들 수만큼 알러지 수가 있고종류도 다 달라서 식재료를 잘 구별하고 체크하는 일은 일상이다나이 탓이라고 무심한 듯 받아들이고 매일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며 대사증후군과 질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가족 구성원들도 있고우울증 약을 무척 오래 먹다 중단하다 하는 이도 있다연령에 상관없이 신진대사가 저하되어 잦은 부종과 염증 수치가 올라 고열 증세를 보인다거나 하는 일도 있다.

 

가족들 모두 대체의학이나 대체식품을 별로 신뢰하지 않아서 그냥 최선이라 믿는 담당의사에게 정기검진과 약 처방을 받는다아마 평생 이런 저런 약들을 복용하면서악화되지만 않을 뿐 낫지는 않는구나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는 미래가 빤히 보인다.

 

자주 듣는 이야기에 따르면 집중적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꾸면서 식습관도 평생 실천 가능한 건강식으로 바꾸어야 대사질환류의 질병들과 이별할 수 있다고 하는데군대식 기숙병원이 아니라면식습관 생활습관만이 아니라 정신개조를 당하지 않는 한은 가능한 이야기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이렇게 가족 구성원들이 다양한 병증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가 인스턴트식품을 자주 먹거나 소금 섭취량이 높거나 한 것도 아니다그래서 우리 가족끼리 가끔 하는 이야기지만 감칠맛 최고인 반조리식품과 저장식품들외식음식간식들을 즐기지도 못하고 앓을 병은 다 앓는 상황이 때로 무척 억울하다.

 

그래서 이 책 소개글에 장 건강이 면역력과 대사질환개선 그리고 우울증에 미치는 영향들을 설명하고건강을 찾고 유지하기 위해 따라할 수 있는 제안들이 있다니 반갑고 기대가 높았다암투병하시는 분들 생각하면 할 말은 아닌 듯도 싶지만확실한 치료법이 있는 단일 병명이면 차라리 낫겠다 싶은 적도 꽤 있다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분들이 경중에 따라 다르지만 다들 대사질환들로 분투하고 계실 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지면 당장은 당면한 고위험질환이 아닌 듯싶다가도사라지지 않고 거의 매일 몸에 달라붙어 있는 통증낯선 음식이나 환경은 신기하기보다 염려가 앞서는 알러지들결국은 시술 정도는 필요한 심장질환 등 대사질환은 결코 덜 위험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은 질병이고 경우에 따라 치료도 개선도 쉽지 않다.

 

이렇게 만성질환에 시달리다 지친 분들이나 말기 암으로 병원 치료를 중단하는 분들의 약해진 틈에 파고들어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가짜 정보를 퍼뜨리고 이익을 취하는 악랄한 이들이 있다심정이 이해되어 더욱 안타까운 이런 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가짜의학정보 소매상들이나 쇼닥터들이 주류 미디어에서 설치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들이 줄어들고 실력과 공신력 있는 분들이 연구 발표하고 많은 실증 사례들이 증명하는 유용하고 유익한 제안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의학적 설명들과 사례들과 치료법들은 책을 직접 읽으면서 담당 의사에게 상담도 해보고 배워 가야할 분량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10계명이라 명명한 생활 실천 제안들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비슷하게 지키고 있는 항목들과 새롭게 시도할 것들, 그리고 못할 듯한 항목들로 나누어 보았다. 새 바이러스들의 공격은 계속될 것이고 인간의 미래는 어쩌면 변이를 감당할 수 없는 치료약 개발이 아니라 면역력 쪽에 생존의 가능성이 더 높을 지도 모른다. 이전의 '정상 생활'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면 모두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새로운 습관을 익히고 건강을 관리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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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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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된 작품들 중에서는 당시의 인상적인 느낌을 일깨워주듯 반가운 이미 읽은 작품도 있지만새로 알게 되어 흥미로운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일단 마구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하루 종일 책만 읽고 살아도 되면 좋겠다 싶게 시간이 아쉽다그 중에서도 제일 반가운 작가는 정세랑!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주목한 문학초점의 내용이다.

 

하필이면 사랑이 일목 대상인 일목인처럼물거품이 될 각오가 선 인어처럼.

목소리를 드릴게요.”

 

벌써 10마음이 쏙 드는 장르를 마음에 쏙 들게 써서 들려주는 이 작가가 one hit wonder로 사라질까봐 신간이 나올 때의 기쁨과 환희와 휴지기의 염려와 불안을 번갈아 맛보며 살아온 시간이 이만큼 흘렀다언제나 신간 소식을 살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이 책은 <창작과비평봄호에서 다뤄주지 않았다면 한참 뒤에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나는 장편 소설을 더 좋아하는 취향이다프리다이빙을 하듯 한 장소를 정해 깊이 잠수하는 그 느낌을 원하고 좋아한다그래서 정세랑 작가의 작품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이 단편집을 고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초창기부터 근래 발표된 작품들까지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기란 꾸준히 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믿는 나로서는짧지만은 않은 8년 동안 작가의 세계관도 스타일도 한결같은 점이 참 대단해 보인다.

 

이류니 삼류니 하는 평가를 받든 말든 SF 창작물을 글을 알게 된 이후 쭉 좋아하는 독자로서, SF 소설들의 흔한 분위기를 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자신이 제안한 미래와 세계를 멋지게 보이게 하려고 현재와 현실을 여지없이 비난하고 부정한다그런 후에는 끝 간 데 없이 묵직한 세기 말 분위기나 어서 빨리 세계인류공동체로 인지하지 못하면 모두 다 끝난다며 무식한 인간들을 계도하려는 미션에 사로잡혀 내내 고함을 지르는 분위기혹은 손 쓸 수 없이 이미 망가져버린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의 신성한 임무를 강요하는…… 읽고 나면 과식이나 배탈로 복통이 날 듯 한 내용들이 생각보다 많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라 재밌어하며 또 찾아 읽을 나의 취향에 솔직하게 좌절한 적도 꽤 있었다.

 

그러다 분위기가 이 장르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첫인상을 주는 따스한 표지의 정세랑 작가의 SF를 처음 읽으면서마치 독소 배출과 정화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 같았다늘 반갑고 매번 참 좋은 이 작가의 글에 대한 느낌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착하고 아름다운 진짜 재밌는 꿈을 신나게 꾼 것만 같은 SF 세계?

 

작은 하늘색 알약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동시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나의 이런 졸문으로 인해 정세랑의 SF는 유치하고 얄팍하다고 혹여나 생각하는 분들은 없기를 바란다정세랑처럼 여성과 자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서술해내는 작가는 드물다그러면서도 거대담론이나 주류윤리를 퍼붓지 않고 더없이 사랑스럽게 감정을지지 않으려는 노력을정당방어를 하듯 살아가는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는 세계가 제일 중요한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인물들을 매번 더없이 사랑스럽고 애틋하게 등장시킨다.

 

생각해보면지렁이들이 내려오기 전에 끝나지 않은 게 신기하다.

우리는 행성의 모든 자원을 고갈시키고 무책임한 쓰레기만 끝없이 만들고 있었다.

100억에 가까워진 인구가 과잉생산 과잉소비에 몸을 맡겼으니멸망은 어차피 멀지 않았었다.

모든 결정은 거대 자본에 방만히 맡긴 채 1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바꾸고

15분 동안 식사를 하기 위해 4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플라스틱 용기들을 쓰고

매년 5천 마리의 오랑우탄을 죽여 가며 팜유로 가짜 초콜릿과 라면을 만들었다.

재활용은 자기기만이었다.

쓰레기를 나눠서 쌓았을 뿐실제 재활용률은 형편없었다.

그런 문명에 미래가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언니가 죽는다 해도 언니가 죽어서 딱 좋은 정도로 숙성된다고 해도 먹지 않을 정도로 언니를 좋아해요.

그런 낭비를 할 만큼 좋아한 사람 없었어요지금까지

 

공격성과 폭력성이 없는 남성 캐릭터들 - gentle - 역시 마음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활짝 열리고 호감이 듬뿍 솟는다세상과 사람들을 망치는 몸튼튼 머리텅텅 저질스런 캐릭터들이 난 정말 지긋지긋하다남자다진짜 사나이다류의 남자다운 특성은 정세랑 세계에선 악역을 제외하면 없다.

 

누구와도 좀처럼 말다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좋아했어요.

농담으로라도 비열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배려하고 신경 써주는 사람이라 좋았어요.

오빠는 자주 아팠는데그래서인지 제가 조금이라도 아픈 날이면 귀신처럼 알아채곤 했었어요.

오빠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았더라면 좋아한다고 더 일찍 말했을 텐데.

 

세계를 조망하는 폭이 넓고저항의 메시지도 음악처럼 은근하고 한결같이 이야기 전반에 흐르고인간과 세상에 대해 작가가 포기하지 않는 낙관이 반갑다그리고 억지로 덧발라진 어색한 전개도 없어서 정말 재미있다분명 현실과 일상에 밀착된 다큐처럼 생생한 이야기들이 어느새 신선한 SF로 옮겨가 있다정세랑 작가의 상상은 그 아이디어가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독자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가득 해서 낯설지 않다.

 

첫사랑이 조금 더 많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대개 사랑이 바래는 것은 소중한 순간들을 잊고 서로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므로

이제 잊히지 않는 기억들로 사랑은 유지되었다.

 

능력과는 별개로 정신적 문제가 있지 않으면 광신자로 묘사되기도 했던 초능력자가 뜻밖에 제일 코믹한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고행성을 운영하는 대단히 지성적인 식물체인 나팔꽃 언니 호칭이 정말 정겹다 는 미소로 맞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예쁜 캐릭터이다정세랑 작가는 나팔꽃 언니를 절친처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분명하다.

 

담백한 문장들에 마음이 넘쳐흐른다상상이라도 절절하게 그리워한 누군가를 볼 수 있다면알고 보니 다 거짓이고 불가능한 일이었더라도 기꺼이 속아서 달려가는 그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11분의 1>을 읽고 나니 예전에 <피프티 피플>을 읽고 난 뒤처럼 눈물이 또르륵 흐른다<목소리를 드릴게요>는 하루 빨리 영화나 드라마로 재탄생되었으면 좋겠다아동도서도 아니고 만화도 아닌데기쁘고 반갑게 꼬맹이들이 가장 짧은 단편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을 재밌게 읽고 신나한다행복한 시간이다.

 

완벽한 풍경이었다.

하루를 더 살아남는다 해도.

그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다시는 내다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완결성이 사람에겐 필요한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메달이 필요하듯이.

 

어서 어서 다음 신간을 하사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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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창비세계문학 5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설준규 옮김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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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셰익스피어 400주기가 훌쩍 넘었다비극 속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모든 것을 걸고라도 해야 할 일을 시도할 것인가로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간에 대해 깊숙이 들여다보는 이 작품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그 쓸쓸하고 황망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열광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고 공연되는 독보적인 작품이다.

 

오래 전 영국 유학 당시 문학 전공이 아니었음에도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한 중고서적에서 상당히 오래된 셰익스피어 전집을 구매한 적이 있었다세월을 오롯이 품은 외관이 비밀의 방을 열고 들어오라는 듯 더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문제는 내게 익숙한 시대가 아니라 셰익스피어 집필 당시의 영어로 쓰인 문장들이라 영문학을 전공한 영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결국 끝까지 읽어 내지 못했다단어들이 생경해서 자주 찾아봐야하는 언어 수준으로는 천재의 자유자재 언어 구사와 시적 효과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부동의 책장 장식으로 존재하는 클래식한 판본을 볼 때마다 아쉬워하다 설준규 교수가 무려 십 여 년에 걸쳐 상세하고 깊이 있게 번역했다는 소개에 다시 제대로 읽어 보고 싶어 졌다.

 

세상 관절이 다 어긋났어저주스러운 악연내 굳이 태어나 이를 바로잡아야 하다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때로는 우유부단해서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하는 인물어쩌면 독자가 가장 공감하고 싶지 않거나 어려운 캐릭터일지 모른다물론 그 지난한 과정을 읽어 가면서 인간의 삶이란 것이 이렇지이렇게 사소한 일들에 좌절하고 사소한 실수들로 전체를 망치기도 하는 것이지라고 마음이 편해질 가능성도 있지만이런 태도와 시각의 변화는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좌절과 포기와 인정을 거듭하는 경험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획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시대적 한계에 갇히는 메시지로서만 의미가 평가되는 것은 부당하다흔히 하는 말로 속이 다 썩어문드러질 지경인데도 괜찮은 척 견디는 모습이 지금에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빈부격차와 불공평부정의에 휘둘리는 일도 여전하다인간으로 사는 한 왜 살아가야 하는지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현재에도 별 다를 바 없이 되살아나는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악몽 같은 질문들이다.

 

얼핏 모순처럼 혹은 단순히 구도 상의 대비처럼 강조되어 보이는 점은스토리와 갈등 구조의 강렬함과는 별개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련의 장면들 속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햄릿의 인간 유형과 행동이 오히려 그 이유로 인해 시대를 거듭하며 해석과 분석과 설명과 평가를 재생산해 오면서 절대 사멸하지 않는 생명력을 얻어 날이 갈수록 명작과 거작의 칭호를 굳히고 있다는 것이다마치 햄릿을 유명하게 만든 것이 작품 밖에서 작품을 읽고 의미를 풍부하게 만드는 독자들의 임무가 된 것처럼 말이다회자되는 바대로 바로 그렇게 자유롭게 쏟아낼 수 있는 참여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고전을 부지런히 찾아 읽고 그래서 햄릿은 명작이 되고 걸작이 되어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짧은 한 문장이지만분분한 해석이 시도되는 To be or not to be는 죽느냐 사느냐”, “존재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그리고 이번 책에서는 설준규 교수에 의해 이대로냐 아니냐로 번역되고 해석되었다나 역시 햄릿의 복잡한 상황과 난감한 선택들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된 이후로는단순히 이전에 통용되었던 (내가죽느냐 사느냐라고 묻는 질문은 아니지 않을까…… 이것만으로는 뭔가가 부족하다란 느낌을 가졌다.

 

그렇다고 이제 내 안에서 위 문장의 해석이 아주 명쾌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삶의 방식지속이냐 변화냐좀 더 진지한 철학적 숙고존재를 이어가는 것이 맞는가 아닌가이런 부가적 해석이 덧붙었다고 정리된다어쩌면 햄릿의 유의미한 현대적 가치는 이 한 문장을 붙들고 거듭 질문하고 고민하게 하는 힘에 있을 지도 모른다.

 

이대로냐아니냐그것이 문제다어느 쪽이 더 장한가포학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으로 받아내는 것아니면 환난의 바다에 맞서 무기 들고 대적해서 끝장내는 것죽는 것-잠드는 것그뿐.” 육신이 상속받은 가슴앓이며 수천가지 타고난 고통을 한번 잠들어 끝낸다고 한다면그것은 간절히 원할 만한 대단원죽는 것잠드는 것-잠들어혹 꿈이라도 꾸면-그래그게 걸려이 뒤엉킨 삶의 결박 풀어 던졌을 때저 죽음의 잠 속에 찾아들 꿈 떠올리면우리는 망설일 수밖에-그런 까닭에 이리도 긴 인생이란 재앙이 빚어지는 것누가 견디랴 세상살이 채찍질과 멸시를압제자의 횡포세도가의 오만불손을홀대당한 사람의 아픔느려터진 법집행을관리들의 방자함인내와 덕 갖춘 이가 하찮은 자들에게 당하는 능멸을벌거벗은 단검 한 자루면 만약 자신을 청산할 수 있을진대누가 견디랴 무거운 짐고단한 삶에 짓눌려 툴툴대며 진땀 흘리랴다만 죽음 뒤 그 무엇저 미발견의 나라국경 넘으면 길손 돌아오지 못하는 저 나라가 두렵기에의지는 갈피를 잃고미지의 고초를 향해 날아 달아나느니 차라리 지금 겪는 고초를 견딜 따름하여심사숙고 탓에 우린 모두 겁쟁이 되고하여결단의 타고난 혈색 위로 사념의 창백한 병색이 드리우며드높은 뜻 품은 중차대한 계획도 이런 까닭으로 물길 틀어져 실행이란 이름을 잃고 마는 것.

 

끝없는 언어유희동음이의어의 적극적인 활용자유자재로 말을 구사하는 햄릿은 마치 셰익스피어 자신이 적극적으로 투영되었거나 혹은 동일한 인물처럼 겹쳐진다주석이 없었다면 온갖 의문들로 머리가 채워지다 길을 잃고 말 수준이다그 점에서 이 친절한 번역서는 각주에 있어서도 더할 수 없이 친절하며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완독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번역가의 능력인지 한글로 읽은 햄릿은 이래도 되는 건가 싶게 가독성이 증가해서 마치 단막극을 감상한 것처럼 짧은 시간에 끝이 났다그 속도감이 의아해서 잠시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단순하고 냉정하게 살펴보면 친족을 살해하고 연인을 방관하고 격정으로 인해 자신도 파멸시킨 인물임에도 한 사람에게 드러날 수 있는 다각적인 면이 워낙 처절하게 부각되어서인지 여러 명의 전형적인 자아들을 소개받은 느낌이 남았다웅장하고 우렁차게 완전한 비극으로 끝난 이야기고민에 빠져 머뭇거리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모든 이들이 사라지고 적막한 무대만이 이미지로 남았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살아서 밝혀낸 것이 없음을 햄릿은 죽어 가는 순간에도 안타까워했을까죄 없는 사람들도 죽였는데 그들에게는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을까그리고 죽어서도 자신의 억울함만을 위해 아들을 고통과 파멸로 몰아넣은 유령의 정체는 햄릿의 판단처럼 정말 아버지가 맞는 것일까단 한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호레이쇼 역시 부탁을 제대로 들어 주지 못했을 텐데 햄릿은 그래서 죽어서도 억울했을까아니면 살아서 겪은 갈등과 괴로움이 너무 커서 죽어 가는 순간 비로소 편안해졌을까.



찬사 받는 정당한 영웅도 마땅한 권리를 자력으로 찾아 온 권력자도 추앙받는 인격자도 행복한 삶을 누린 젊은이도 아니었던 햄릿이제 내 나이에서 바라본 그의 캐릭터는 가엽고 안쓰럽기 그지없다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과정의 오류는 얼마나 잦으며해야 하는 일 중에서도 할 수 없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비극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장치로서의 햄릿이라는 인물을 파악하고 남긴 요한 볼프강 괴테의 말이 식은 무대처럼 무섭도록 스산하게 죽음으로 가득한 적막한 결론을 잠시 다독여준다.

 

엄청난 책무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는 한 인간에게 부여되었음을 셰익스피어는 그리려했다중략아름다운 꽃들을 품어야 했을 값진 화분에 한 그루 참나무가 심어졌고뿌리가 뻗어나가자 화분은 산산조각이 난다사랑스럽고 순결하고 고결하고 극히 도덕적이지만영웅이 되는데 필요한 정신의 힘들은 지니지 못한 한 인간이 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짐에 깔려 무너진다중략불가능한 일을그 자체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을 수행하라고 그는 요구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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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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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며 거짓말의 정체와 진실의 정체가 가장 궁금하였다특히나 나처럼 눈치 0단인 사람남의 일에 관심이 적어 관찰력을 키울 기회가 적었던 사람은 도무지 거짓말도 진실도 알아차릴 수가 없다그래서 거짓말은 소망성취 용이고 진실은 드러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사적인 관계에 도움이 되는 팁을 주고자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충격적인 사회적 사건들과 결과적 부정의에 대한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상호작용본성통념을 분석하는 강렬하고 진지한 내용이다마치 가벼운 읽을거리를 집어 들었다가 상념과 편견이 박살나는 기분을 맛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다가 평소라면 관련성이 적은 특정 사회의 일에 대해서는 당장 굳이 읽어서 알아 두고 싶은 생각이 잘 들지 않는데글래드웰의 글은 완전히 새로운몰랐던 소재들을 엮어내는 재주가 탁월해서인지 이러저러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나 역사적 인물들 - 히틀러와 동시대 다른 유럽 국가의 수반들 - 에 관한 사례에서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보다 못한 판단결과에 아연실색하게 되었다.

 

백인 남자 경찰관이 샌드라 블랜드라는 흑인 여자 운전자의 차를 멈춰 세운다.

차선 변경 깜빡이를 켜지 않았다고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운전자가 담뱃불을 붙인다.

감정이 고조되고 장시간 입씨름을 하게 된다.

이 둘의 대화는 경찰차 계기반 위 비디오카메라에 녹화된다.

경찰관이 샌드라 블랜드를 차 밖으로 끌어내는 장면에서 끝난다.

사흘 뒤 샌드라 블랜드는 유치장에서 목숨을 끊는다.

 

저자는 묻는다이런 비극은 왜 생겼는가. 충격과 혼란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답변이지만 실제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인류는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자 할 때는 말을 거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낯선 사람이 아는 사람이 되기까지 대가나 희생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마치 동어반복처럼 헷갈리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좀 더 읽어 나가면 우리가 판단할 때 오류를 범하게 하고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들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중앙정보국 간부들은 스파이를 파악하지 못하고판사들은 피의자를 파악하지 못하며총리들은 적수를 파악하지 못한다사람들은 낯선 이의 첫인상과 씨름한다사람들은 몇 달씩이나 낯선 이를 이해하기 위해 씨름한다누군가를 한 번만 만나도 씨름하고낯선 이를 여러 번 만나도 씨름한다사람들은 낯선 이가 과연 정직한지 평가하기 위해 씨름한다낯선 이의 됨됨이를 놓고 씨름한다낯선 이의 의도를 놓고 씨름한다혼란스러울 뿐이다. 69

 

그러나 아무리 물러서서 생각해봐도 샌드라 블랜드와 같은 오해와 비극적 결말은 불가피하게 치를 수 있는 대가라고 쿨하게 접어줄 수는 없는 종류이다.

 

또한 타인을 신뢰하는 본성 또한 포기할 수 없다모든 타인들이 살인자라고 가정하면 누구도 집 밖을 나갈 수 없게 된다그렇다면 다시수반되는 위험이 아무리 끔찍할 지라도 여전히 진실이 디폴트 값이 되어야 한다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 사회가 작동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속 시원한 해결법이 모든 문제에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편인데도 마치 인간이란 인간 사회 속에서 실은 옴짝달싹못하고 살아가다 오해로 인해 판단미숙으로 인해 망가지고 파괴되기도 하는 존재인가 싶어 마음이 갑갑해진다.

 

그리고 신뢰가 결국 배신으로 끝나는 드문 경우에 진실을 기본 값으로 놓은 것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비난이 아니라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177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학생을 제대로 맞히는 데 우연보다는 훨씬 유능하다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학생을 제대로 맞히는 데는 우연보다 훨씬 무능하다우리는 이 모든 동영상을 살펴보고 진실진실진실을 추측한다무슨 말이냐 하면 면담 시에 진실을 말하는 이를 잘 알아보고 거짓말을 하는 이를 몰라본다는 것이다우리는 진실을 기본 값으로 갖고 있다우리의 가정은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101

 

심호흡을 하며 읽어 내려오다 보니 설마 중간에 빠뜨리고 읽었나 싶어 책을 뒤적여볼 정도로 글래드웰은 당혹스럽고 현실적인 조언을 최선의 결론인양 전한다.

 

우리는 몇 가지 단서를 설렁설렁 훑어보고는 다른 사람의 심중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여긴다낯선 이를 판단하는 기회를 덥석 잡아버린다물론 우리 자신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우리 자신은 미묘하고 복잡하며 불가해하니까하지만 낯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만약 이 책에서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를 설득할 수 있다면이런 사실일 것이다낯선 사람은 쉽게 알 수 없다. 75

 

질문은 이어진다그럼 우리 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타인과 의사소통을 이어가야 하는 현실에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결국은 태도의 문제인가조심스럽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낯선 사람은 일종의 위험입니다제가 주장하는 것처럼우리는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그 사람이 친절한 사람인지 위험한 사람인지재미있는 사람인지 지루한 사람인지걱정에 시달리는 사람인지 행복한 사람인지 판단을 하지요하지만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합니다우리는 그런 식의 판단을 내리는 데 굉장히 서툽니다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런 약점이 있다고 해서 낯선 사람과 대면하는 걸 마냥 피할 수만은 없겠지요세상에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들은 대부분 과감하게 다른 사람과 말을 터보면서 시작됩니다그 첫걸음은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16

 

돌고 돌아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것처럼 초조하게 읽으며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엉클어진 끝에 어쩌면 나는 이 천재적인 글 솜씨를 가진 작가가 전하려는 말이 많은 이들이 실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그래서 억울하다는 말은 아니다이유가 무엇이든 실천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도 없는 행위의 부재일뿐이니까.

 

단지, 다음번에 내가 닥친 상황 속에서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이 전한 충고들을 기억할 여유가 있다면 알면서도 이전에는 왜 실천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한번 쯤 열심히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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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상구 -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4
제정임 엮음 / 오월의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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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완전히 자연 물질에서 자유로워지는 발명품이 플라스틱이었고 이에 대한 찬사도 대단하였다가볍고 편리하고 깨지지 않는그런데 이런 이유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한 결과 사용 후 버린 쓰레기가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의 환경문제가 되고 말았다효율과 편리와 맞바꾼 대가가 감당 불가능해진 것이다.

 

특히나 판데믹에 이른 코로나 전염병을 겪으면서 이전에는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게 줄이려 노력했던 일회용품의 사용문제는 대안 없이 증가했고 그 해결책 또한 난감한 지경이다물론 안전은 중요하지만 과연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것만이 정답이었는지...... 설혹 대안 없는 정답이었다 하더라도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으며사용 가능한 자원은 유한하고 우리의 생산과 소비는 언제나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선 안 된다.

 

언급하는 것이 사족처럼 느껴질 만큼 현대의 생산소비 체계는 수용 한계를 초과했다는 것이 분명하고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실천이나 인식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우리에겐 제대로 작동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석유화학 제품인 플라스틱비닐 등을 줄임으로써 기후변화 원인인 탄소배출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친환경 대체상품을 개발사용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쌀빨대를 개발한 중소기업 연지곤지의 김광필 대표는 요즘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다중략그는 현재 한달 3억 5000개 정도의 쌀빨대를 만들어 호텔과 카페 등에 납품하고 있는데 내년 초까지 월 10억 개 이상 생산이 목표라고 말했다김 대표에 따르면 김 대표에 따르면 플라스틱 빨대가 개당 5-15원인데종이빨대는 대략 3-5쌀빨대는 10배 가량인 50원이다하지만 가격이 비싸도 친환경 식품소재를 쓰겠다는 구매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중략쌀빨대의 장점은 약 2시간에서 10시간이면 자연 분해가 된다는 점이다.

 

<마지막 비상구>란 제목은 일견 물러설 곳이 없다는 비장함과 어쩌면 비상구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동시에 암시하는 이 책은 2017년 9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연재된 탐사보도 에너지 대전환내일을 위한 선택을 묶은 것이다.

 

이 책은 이론서나 윤리적 논설이 아니라 원칙이 명백하고 상세한 취재팀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선명하고 귀중한 자료이다현장으로 가자외국을 빼곤 직접 달려가 발로 뛰며 확인하자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자익명 처리가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 모든 취재원의 이름나이경력 등을 최대한 드러내 독자의 이해를 돕고 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자데이터로 뒷받침하자통계나 기록 등 근거로 쓸 수 있는 자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 긁어모아 분석하자.”

 

이런 원칙 하에서 채적된 자료들은 원전 재난의 위험성과 미세먼지 등 화석연료의 폐해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가장 생생하고 정밀하게 알려주었다이제는 객관적인 수치로 등록된 정보에 따르면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이기도 하고,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할 때 채택한 배출전망치(BAU) 방식을 선진국들은 사용하지 않습니다이 방식은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비해 겉으로만 효과가 커 보이는 착시효과를 가져오니까요.

 

주제와 목적이 분명한 만큼 이 책에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탈원전탈석탄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논란을 규명하고 에너지 정책의 대안을 모색한다전국 곳곳에 있는 현장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에너지 구조기후위기기후변화에 관한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은 물론이고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점은 대안까지 제시했다는 것이다이 책의 가치는 더 널리 알려지고 곱씹어야 될 만큼 크다그 중에서도 전문가가 아니면 설득력있는 주장을 하기 어려웠던 원자력발전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용을 살피기 전에 희망적인 결론을 거칠게 표현하자만이 책은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과 기후 붕괴와 원전 재앙을 피할 마지막 비상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긴 시간의 노고가 제대로 정리되고 발표된 점이 정말 다행이다.

 

이런 비상구에 도착하기 위해 우선 이 책에서는 우리 시대의 대한민국의 그릇된 신화 중에 하나인 원전은 싸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것은 허구이며원전은 비싸고 위험한 에너지라는 사실을 밝혀낸다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첫손 꼽히는 원전 밀집 지역이라는 위험까지 안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보호책이 없다는 사실도 짚어낸다.

 

논쟁이 필요 없는 사실을 얘기하자면사용후핵연료의 방사선량이 자연 상태로 줄어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최소 10만 년이고이 고준위 핵폐기물 사용후 핵연료 의 안전한 영구 처분 방법은 아직 어느 나라도 찾지 못했으며한국 역시 최종 처분 방식에 대한 결정을 미룬 채 각 원전 근처의 임시 저장 시설에 계속 쌓아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핵발전소가 있는 다른 나라들에는 10만 년 동안 핵폐기물을 보관할 땅이 있을까.

 

취재의 생생한 입말로 표현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원전 인근 동네에서 지진을 겪은 후 매일 생존배낭을 챙기며 불안에 떠는 초등학생핵발전소 부근에서 수십 년 물질을 했다가 무더기로 암에 걸린 해녀들원전에 쌓인 핵폐기물 근처에 살다 자녀 몸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까지 검출되자 원전 가까이 산 죄라며 가슴을 치는 어머니의 탄식석탄발전소가 들어선 후 조개와 게가 탄가루 투성이가 되고 주민들은 줄줄이 폐질환으로 숨지는 현장. 2030년이 되어도 석탄 화력이 국내 발전원 1위라는 모순된 사실이 지적된다. 몇 문장으로 표현된 내용에는 당사자들이 겪어야 했던 아직도 그 환경에서 머물러 있는 그리고 언제 끝날지 치료가 될지 모르는 고통과 괴로움이 날 것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이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문제이며 핵을 발전원으로 사용하는 인류 공동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회피하는 한수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촘촘하게 국민의 세금으로 원전을 홍보하기 위해 언론과 지역 사회를 관리해오고 있었다는 내용들도 기록되어 있다그 구체적 사례들이 엄청나서 한결같이 태연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원전 광고 협찬비용원전 옹호기사로 얽힌 언론사들에 전해 진 비용대학 학보사들퀴즈 프로그램그리고 돈 받고 쓴 무수한 기사들……종편 채널들이 단연 두드러졌고, SBS, MBC, KBS 공영방송들 모두가 공범에 해당된다당연히(?) 조중동문화일보 국민일보 매일경제도 부지런히 돈을 받고 원전 홍보 기사를 쏟아 붓 듯 써주었다또한 월성 1호기의 계속 운전 허가를 위해 미국 시찰을 하고 수명 연장 가동을 지지하는 기사를 남발했으며 기어코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모든 돈은 국민들이 매달 내는 전기요금에서 나왔다

우리는 합의한 적도 없이 공멸의 미래에 투자한 것이다.

 

2017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간 전력사업기반기금에서 원전 홍보비로 나간 돈은 824억 1200만원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취재팀은 정보공개청구로 원전 홍보내역을 확보해 친원전 논조 보도와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지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확인한다중략지역주민들에게 관관을 보여주고 초중고생 견학 프로그램도 이루어졌다중략지난 5년 간 본사 및 전국 5개 원전본부(고리한울한빛월성새울)에 총 4만 5297명을 초청해…… 총 18억 4749만 2000원을 지원했다참가자 중 학생은 9644지역주민은 9165명이었다.

 

이런 전 방위적인 방해와 왜곡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전환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이 책에서 가장 기대한 점이 이러한 대안을 선명하게 보여주는가를 확인하고 배우고 싶은 것이었다멀리로는 독일스웨덴덴마크스페인 등에서 빠른 속도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도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프랑스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사옥 전체를 재생 에너지 발전소로 만든 애플 등의 기업들태양광 고속도로제로 에너지 하우스 등이 예시되어 있고가까이로는 제주도의 공풍화 정신과 이익 공유 구조 등 단순한 이론만이 아니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분명히 현실화되고 있다이와 더불어 재활용 기술과 현황시설과 건물과 교통수단의 에너지 효율화 방안 등해보지 않고 절망하거나 돈 받고 오도한 비난들을 차치하고도 시도해볼 수 있는 사례들은 많다.

 

바람이 많아 살기 힘들었던 제주 마을이 바람 덕에 돈을 벌고 있다동복리의 풍력발전기 중 15기는 지방공기업인 제주에너지공사가 운영하는 육상풍력단지 소속이고 나머지 1기는 마을 주민 807명이 공동으로 운영한다풍력단지가 들어서는 지역에 주민들이 자체 운영하는 발전기를 세워 수익을 낼 수 있게 한다는 정책에 따른 것이다중략동복리사무소 사무장에 따르면 2메가와트 용량의 이 발전기에서 연간 약 4억원의 순수익이 나온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 IPCC는 지금처럼 북극 빙하가 계속 녹으면 

2100년쯤에는 지금보다 최대 1미터까지 해수면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전 세계 인구 중 33퍼센트가 해안선으로부터 100킬로미터 이내에서 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면해수면 상승이 끼칠 위험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부디 이 책에서 들려주는 생생하고 정밀한 내용들이 추후 정책에 구체적으로 반영되기를예산이 뒷받침되어 실행력을 가지기를 희망해본다이것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제안이다.

 

이 책을 다 읽어 가는 즈음 문득 떠오르는 책과 저자가 있다<한국탈핵>, 김익중 교수님이다. 2013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다행히 시간 여유가 있었던 지라 어둠을 가로질러 늦은 저녁 강의를 찾아갔었다후쿠시마 이후로 몹시 불안하고 혼란스럽던 터라 사실과 전망을 제대로 배우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김익중 교수는 이전에도 많은 강의를 하시는 강행군을 마다않으셨는데이 책과 강의가 좋았던 이유는 <마지막 비상구>처럼 탈핵이 가능하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었다명석하고 정열적이고 명쾌하고 헌신적인 운동가이자 명강사이시니 이 책의 부제가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라고 붙은 것은 거짓도 과장도 아니다함께 읽으면 여전히 참 좋겠다 싶다.

 

그 때 이후로 몇 해가 흘렀고멈추지 않는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취재와 통계를 통해 드러난 현실은 아득하다필사적으로 현실을 가리려는 해당 국가의 안감힘과 주류 메이저에서 결코 다뤄주지 않는다는 불리함에 기인할 것일 수도 있지만코로나와 같은 광범위한 전염병의 판데믹 상황이 기후변화에 기인한다는 공감대가 80%에 이른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핵발전소에 대한 진실은 공감이 부족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공공자금을 쏟아 부어 친원전 이데올로기를 주입해온 결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들의 원전 찬성 여론은 여전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현상은 현상을서 존재하는 것이니 당장 어떻게 할 수 는 없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무척이나 깊은 울림을 준 인용구를 소개해본다.


인간은 합리적인 생물이 아니라 나중에 합리화를 도모하는 생물이다. 

인지부조화. 리언 페스팅어


악을 의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저지르는 데에 악의 본질이 있다.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


나도 잘 하는 일은 아니지만 내 사정과는 별개로 어쨌든, 배운다는 것 즉 배워서 알게 된다는 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을 알게 되어 자신이 달라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과거의 잘못과 작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지배력이 큰 언론사들이 자본의 입맛에 맞춰 에너지 전환의 진실을 왜곡하는 상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저희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언론이 이 문제에 바르고 강한 목소리를 내주고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해 주신다면 더할 수 없이 기쁘겠습니다.

 

희망과 절망과 좌절과 격려 사이를 오가며 이 책을 다 읽고 나자말자 시의적절하고 반갑게도 이런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손을 놓지 않고 여전히 꾸준히 노력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경남환경운동연합 환경단체들은 29일 보도 자료를 통해 "오는 30일 삼천포 1, 2호기가 폐쇄된다. 38년간 온실가스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악명을 떨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며 "지금 당장 석탄화력발전소를 멈추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석탄화력발전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온실가스의 국내 배출 28%를 차지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퇴출 대상 1위가 됐다"며 "정부가 규정한 석탄화력발전소 설계수명 30년을 훨씬 넘겼다"고 삼천포 1, 2호기의 폐쇄를 적극 환영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42911465691328&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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