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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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여름방학을 맞아 무조건 일주일 휴식!이라고 결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신간들을 대여하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처음으로 읽었다파브르의 곤충기 책이 분리되도록 재밌게 읽고 자랐으니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직접 관찰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아프리카로 가서 개미를 연구한 후 120번에 가까운 개작을 해서 1991년 탈고한 작품이라는 책 소개에 얼마나 설렜던지그 시간 이후로 운 좋게도 한국 독자들의 애정을 듬뿍 얻은 베르나르는 섭섭하지 않을 간격으로 계속 자기복제 없는 흥미진진한 책을 출간했고나는 매번 반갑고 기쁘게 열심히 읽었다.

 

그리도 2020년 신작 <기억>이 번역되었다.

 

초판 한정 [렌티큘러표지를 몹시 갖고 싶어 마치 굿즈가 탐나 책을 구매한 느낌이 살짝 들었지만더 궁금한 것은 역시 내용이라고 위로한다. - 늦을세라 구한 기억 1,2편이 드디어 도착했다책을 열어 보기 전 표지를 들고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본다보호필름도 떨어질세라 꼭꼭 눌러둔다하드커버도 오랜만이다새까만 표지에 번뜩이며 사라졌단 나타났다 변형 이미지들이 연속으로 등장하는 표지를 보고 있자니마치 표지의 피험자 뇌 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기억을 헤집어 보는 섬뜩하고 서늘한 기분이 든다나비가 날개를 팔락이고 별이 반짝인다마치 최면단계에 들어가는 것만 같다.

 

당신이라고 믿는 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

 

누군가의 기억을 보게 될 것이고 우리의 기억을 보게 될 것이고 타인의 기억들에 장난과 조작을 가하는 이들을 보게 될 것이고 화가 나거나 어리둥절해지거나 인간이란 기억에 다름 아닌가하는 답 없는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기억이 사라진 누군가는 이전의 그와 동일인물인가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도 들 것이고 기억을 잃어갈 지도 모르는 노년의 삶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할 것이다궁금한 만큼 아까워서 막 빨리 읽어 버리면 어쩌나 싶다.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그토록 쉽게 외부의 힘에 휘둘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우리 뇌를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주물러 변형시키고 그 안에 거짓말을 주입하면 결국 그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으니까.

 

베르나르의 세계관과 문학관과 작품들이 여전히 흥미로운 이유들 중 하나는 언제나 개인이라는 경계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개인의 기억 오류야 사안에 따라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일 경우도 많다내 나이 대 친구들은 벌써 가끔 함께 한 경험들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잘못 기억하거나 해서 기어코 증거가 될 그 시점의 사진들을 가장 성격 급한 누군가가 꺼내들게 만드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진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얘기해 줄 수는 없단다거짓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눈에는 진실이 의심스럽게 보이기 마련이거든모든 것은 기억이다집중력을 잃으면 안 돼과거를 잊고 현재를 살자이건 생존의 문제야기억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현재에도앞으로도.

 

문제는 '기록'이 될 집단적 '기억'에 관한 것들이다잊지 않겠습니다기억하겠습니다는 의례적 발언이여서는 안 된다잊어버리라고기억하지 말라고 간절히 원하고 가능한 교묘히 조작하고 흙칠똥칠을 해서 얻어 낸 망각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집단들이 작동하기 때문이다잊지 않으면, 끈질기에 기억하면 결국엔 진실을 밝혀 낼 수 있다기억하기만 하면그런 문제들이 파일더미를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에 사는 지라 베르나르가 역사적 기록에까지 기억을 확장시키는 내용이 반갑고 고마웠다.

 

용서가 망각으로 이어져선 안 돼요바로 이 지점이 역사에 요구되는 역할입니다죄를 묻는 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의 진정한 의미를 상기시키는 게 역사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뜻이예요.

 

인간은 고통을 느끼는 순간 지성의 영역을 벗어나 감각의 영역으로 들어가요과거는 후회의 원천이고 미래는 두려움의 원천이에요동물처럼 오로지 지금의 순간만을 사는 인간을 만드는 게 내 꿈이죠.

 

끊임없이 생산되는 가짜뉴스들이 지겨운 수준을 넘어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가짜 기억을 주입하고 있다개개인이 매번 팩트 확인을 하는 선택은 거의 불가능한 대응방식이다재생산 속도는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며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빠르다그에 휘둘리는 않는 나 자신의 유일한 방법은 의심이 가는 정보를 바로 받아들이거나 전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일이다가장 괴로운 점은 주변 지인들 중에 그런 정보의 폭탄 공격을 한동안 받고 확증편향이 생기는 경우이다그런 경우 이후의 판단에서 나타나는 오류는 의도한 것도 아니고 거짓을 재생산하는 일도 아니고 자신은 진실이라고 의심하지 않는 정보를 유통하게 된다이와 관련해서 베르나르가 작품 속에서 소개한 거짓기억증후군(False memory syndrome)의 내용을 심각한 기분으로 읽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진실일 뿐 다른 사람들은 다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죠.

멍청이들만 생각을 바꾸지 않을 뿐이야세상은 진화하고나 역시 진화해모르는 사람에 대한 성급한 판단은 우위를 점하고 싶은 조바심에서 나오는 거야.

 

이 사건은 우리에게 한 가지 시사점을 준단다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역사가들이 무엇을 기술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지중략그런 과정에서 약자들은 제도에서 지워지고 강자들만이 살아남았어하지만 자연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아자연은 더할 뿐제거하지 않으니까인간만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을 내놓을 뿐이야.

 

연구하고 탐구하고 현장학습도 마다않는 작가의 작품답게 베르나르는 이 책에서 수없이 많은 왜곡된 역사들에 대해 빼곡하게 느껴질 정도로 언급하고 있다물론 자료 수집 또한 충분한 듯 보인다충분히 동조할 팬의 심정으로 보아도 정말?!이라는 의문이 드는 사례들도 있다인류의 역사에서 왜곡한 역사적 사실들이 아무리 베르나르의 작품이라지만 이 책 한권보다는 넘쳐 나리라는 우울한 자각이 든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에게 영감을 준 것은 그의 얼굴에 떨어진 사과가 아니라 고양이 한 마리였다사과 이야기는 낙하 운동의 원리를 기억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볼테르가 지어낸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 기 드로브(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영화제작자)가 말한 <스펙터클의 사회>에 살고 있어역사는 식료품 같은 소비재가 됐어맛을 내기 위해 달거나 매운 소스를 뿌려야 하는 패스트푸드와 똑같이 돼 버렸다고.

 

역사적으로 왜곡되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서 베르나르는 [최면]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이 책의 목차가 히프노스와 아틀란티스 2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히프노스란 그리스 신화의 잠의 여신이다이에서 파생한 영어 단어가 Hypnosis, 최면이다이때 전생은 하나가 아니며 백 개가 넘는 기억의 방에 차곡차곡 분류되고 보관된 각각의 전생들을 찾아가며 기원전으로, 1만 2천 년 전 아틀란티스로 소환된다. 전공 탓에 플라톤이 바로 떠오르는 점이 잠시 괴롭다. 



다양한 전생을 접하는 르네라는 인물은 역사 교사이며 모든 역사에 흥미를 지닌 탓에 어느 시대에나 놀라울 정도로 잘 적응한다이런 인물이 이끄는 내용 전개가 부드럽고 가독성을 높인다그 와중에 현생에서도 연달아 발생하는 사건들로 여러 장소를 전전하니 지루할 틈이라곤 없어 아껴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몰입해서 술술 읽히는 점이 유일한 단점(?)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대가를 치르는 수밖에 없지.

모든 역사에는 세 가지 관점이 있다나의 관점타인의 관점그리고 진실

 

담나티오 메모리아의 기원은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기록 말살형즉 망각의 형벌은 대역 죄인에 대한 기억을 사후에 모조리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죄인의 사후에까지 계속 적용되는 이 벌은 한 인간에게 내려질 수 있는 최악의 형벌로 여겨진다.

 

현생에서 고착된 기억들기억에 작용하는 작동 원리와 허점들을 지적하며 베르나르가 보여주는 것은 개인의 과거와 집단의 역사에 대한 부조리들이다그 과정에는 소위 소수민족들멸절된 인종들로 대표되는 인물들의 소망 아르메니아폴란드쿠르드족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캄보디아인 등 이 발화되며이들은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대신 부탁하고 소망하는 바를 대변한다.

 

진실을 회복해 줘요과거의 일들이 진실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반박 불가능한 방법을 찾아내야 해요.

 

당신한테는 우리 모두의 역사적 진실을 회복시킬 의무가 있어요우리 모두는 당신이 가진 지식을 채워 주면서 당신을 도울 거예요.

 

자네가 우리한테 와서 물으면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다 얘기해 줄 걸세누구한테 들은 얘기가 아니라공식 프로판간다가 아니라우리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말이야인류는 기억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되네.

 

실제로 현재에 전해지는 주류 역사는 구전을 제외한 문자를 가졌던 승리한 문명들의 흔적이라는 사실은 꽤 예전에 배울 기회가 있었다(Language older than words, Derrick Jensen번역 여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원작이 많이 읽히길 간절히 바라는 명저이다.) 당연히 승자 버전의 역사이고 그 역사의 장면들 또한 역사가들에 의해 다시 한 번 편집되기 마련이다그 중 가장 오래 속은 이데올로기며 현재도 그 명분이 유지되는 역겨운 것이 전쟁의 명분이다전쟁의 실체는 영토와 자원과 노동력 확보를 위해 타인들만 사지로 내모는 대규모 학살일 뿐이다그런데 전시 중에도 이후에도 승리한 자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역사가들은 그런 사실을 철저히 감추고 진실을 뒤바꾸는 노력을 이어왔다희생자를 가해자로가해자는 희생자로기억은 정치의 사활을 좌우하기 때문이다정치인들이 가장 공들이는 것은 유권자들의 기억을 쥐어잡는 것이다.

 

앞으로 교양 없고 무식한 다음 세대가 도래할 일만 남았어교과서 내용을 앵무새처럼 읊어댈 줄만 알고뉴스와 부모의 말을 여과 없이 자기 생각으로 삼고광고와 인터넷에 휘둘리는 세대 말이야그들은 자기 생각도 없고그걸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없어이미 만들어진 생각에 그저 동조할 뿐이지패스트푸드를 먹는 격이야패스트푸드식 사고는 미리 씹어져 나온 음식처럼 맛은 없어도 삼키기는 아주 쉽잖아.

 

대부분이 우울한 기분에 둘러 싸여 살지만 희한하게도 나는 늘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다발현되기까지는 파악할 수 없는 힘. 그래서 나는 과거의 어느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하나의 법령이라도 더 힘겹게 만들어진 현 시대가 분명 자유와 평화가 증가한 시절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이 구절보다는 꼰대가 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프랑스 패스트푸드는 저항도 강하고 맛도 없어 섭취량이 적겠구나 싶어괜시리 꽤 먹을 만한 한국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에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다원체 게으른대다 코로나를 핑계로 동선을 줄이다 보니 한동안 섭취한 식품들이 특정 브랜드몰들로 대부분 한정되었다문득 존재 자체가 브랜드화되는 기분이 들었다You are what you eat.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가 다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그렇게 기억되도록 각인된 것이라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최면을 통해 심층 기억을 뒤지는 일이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가정한다면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역사 교사인 제 눈에 지금 세계는 기억 상실을 앓고 있어요과거의 실수들이 초래한 결과를 망각했기 때문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거죠우리 시대는 모든 것이 전보다 빠르죠망각의 속도 역시 예외가 아니에요.

 

매순간 우리는 우리의 자유 의지와 양심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은중략우리 위에 있는 작가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행동을 결정하고 있다는 말이죠.

 

필사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읽었다천재적인 10대 작가가 쓴 것만 같은 작품을 쓴 61년 생 작가, SF도 어드벤처물도 아니지만 그 모든 장르이기도 하고다른 작가가 선택한 소재라면 별 관심이 안 갔을 아이템들도 거부감 없이 따라 가게 된다


현실과 환상을 버무려 종교와 역사와 정치를 원하는 대로 넘나들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펼쳐 놓은 화려한 구성독자로서 그가 제공하는 것들을 놀이기구 경험하듯 즐기기만 해도 좋다아무리 장편이라지만 역사와종교사회인문지리 백과사전을 맛보게 될 줄이야 즐겁게 황당하다


령 탓에 덕을 본 것인지 손해를 본 것인지가장 나중까지 맛을 잃지 않고 머무는 것은 여전히 사회와 정치에 대한 신랄한 지적들과 풍자이며더 나아가 그 시절을 살아가는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이다해답도 지혜도 모자란 존재라 이번에도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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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호 인플루언서 인문 잡지 한편 2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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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잡지 한편에 대한 소식과 글들에 대한 호평을 듣고 읽기는 했지만 통합인문학에 대한 지식도 독해 능력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인문학 잡지 한 권 읽기가 무척 오래 걸립니다 한 권을 다 읽어볼까구독할까하는 생각은 접어 두었다그러다 반갑고 감사하게 민음사에서 혹 읽어볼 생각이 있지 않냐,고 문의해 주셔서 감사히 기회를 받아 읽게 되었다.

 

통합 인문학이라는 기획 의도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 인플루언서들 -이 참여하였다잡지 팀장영화평론가연구원전문의료인학자사회활동가들과문하여 낯선 분도 있고 성함과 활동이 익숙한 분들도 있다인간과 인간 세상을 다루는 각 분야 인문학자들은 어쩌면 이렇게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들려주고 소통을 하는 방식이 가장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이 글들도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완결되지만읽다 보면 영향을 미치는 요인사회에 끼친 그 영향들의 분석제공자들의 의도활용되는 사회구조 분석 등이 큰 화면처럼 보인다.

 

개인에 따라 반응이 다 다르기 마련이지만나는 내가 부탁하지 않은 조언도 불편하다고 느끼는 편이다잔소리는 물론이고간혹 친절함에서 비롯된 설명조차 늘 반갑지는 않다꼭 듣고 싶어 정중히 부탁한 경우에 상대방이 적절한 조언과 설명을 제공해 준다면 무척 감사한 일이지만한국 사회는 목소리가 크고 일종의 사명감이 넘치는 기운 찬 분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남의 시간과 공간에 끼어들어 심지어 지식체계와 정신구조를 바꾸려는 행동을 하는 사건들이 꽤 발생한다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하고 나면 조심성이 증가해서 잘 피하거나 거절하는 방법도 늘기 마련인데어쨌든 의도와 계기가 무엇이든 이보다 더 강력하게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 모음이라 어떻게 읽을까 긴장이 되기도 했다.

 

인플루언서라는 말이 언제부터 통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인류사에서 늘 다른 이들에게혹은 다수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은 존재했으며이는 대부분 설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그런 점에서 나는 대개 처음에는 저항을 강하게 느끼는 편이지만일관적으로 들을 만한 의견을 지속해서 전하는 이들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지는 않는다단 거북할 정도로 감정에 호소하거나 사생활을 구매해달라고 하는 노골적인 구애는 사절이다또한 명백히 선동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 자체에는 위협을 느끼고 즉각적인 거부감이 든다히틀러 이후로 독일사회의 지식인들은 대중연설에 대한 깊고 뚜렷한 거부감이 있으며그런 행사는 열리지도 않는다.

 

예전에 꼭 강연을 듣고 싶어 학회에서 열심히 부탁드린 독일 철학자 한 분도 수천명이 입장 가능한 대강당 홀에서 하는 강연에 대한 놀라움과 거부감으로 끝내 거절했으며이유들 중 하나는 자신이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가서 하는 강연의 가치가 대기오염에 가담하는 행위보다 가치가 없다,란 이유였다가히 실천철학을 실천하는 이론과 일상의 괴리가 크지 않은 학자였다고 오래 섭섭하기도 존경스럽기도 하였다.

 

인플루언서의 등장과 세력화는 소통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문맹률이 아주 높던 시절 유럽인들은 글도 말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성당으로 가서 미사를 보았다.’ 아주 가끔 현대인들 중에도 미사를 본다란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어 그럴 때마다 아직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건가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어쨌든 활자와 교육의 보급이 보편화되기 전 인플루언서들은 분명 극소수의 엘리트집단이었다그 세월은 아주 길어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아날로그적 방식의 출판과 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들은 여전히 소수였으며생산자와 소비자는 아주 확실하게 나뉘어 있었다.


그에 비해 SNS는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바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긍정/부정적 측면들은 어느 것에나 있지만나로서는 적어도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잘못된 정보가 끈질기게 확인되지 않고 유통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부분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예전에 전혀 사실 무근인 정보가 유행을 타고 돌아다니는데사실이 아니라고 열심히 알리려다 지쳐 그만둔 씁쓸한 기억이 있다이런 환경에서는 인플루언서의 탄생과 소멸 수명이 예측 불가능하게 다양해지고간혹 안타까운 점은 더욱 영향을 널리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싶은 콘텐츠들도 빛을 못보고 묻히는 일이다피드백이나 댓글공유 등 또한 이미 인플루언서인 독자들이 관심을 두는지의 여부가 또 다른 유행과 영향을 만들어내느냐 아니냐로 연결되는 숨 가쁘고 경쟁이 심한 환경임에는 틀림없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적극적으로 도전하고픈 분들주제와 무관하게 이미 인플루언서인 분들혹은 인플루언서들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상호소통을 위한 구독 결정에 대한 고민이 있는 분들이 읽게 되면 더 생생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나올 듯하다.

 

산만한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적어본 것이라 잡지에 누가 되는 건 아닌지 심란하다외모처럼 가독성과 실물감이 좋고 지치지 않을 짧은 분량의 글들이논문처럼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쓰여 있다. 1호는 미처 못 읽었지만앞으로 이어진 흥미롭고 시의적절한 주제의 글들이 어떤 멋진 그림을 그려줄까 기대되는 사랑스러운 잡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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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 육지, 바다, 하늘을 지배한 힘의 연대기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박연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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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전쟁과 패권의 주요 무대는 땅 따먹기’ 게임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아시아권에 속해서 아시아권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산 탓일 것이다가만 생각해보면 삼면이 바다인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바다와 해양 세력에 대한 면면이 익숙할 만도 한데과문한 탓인지독서 편식 탓인지 어쨌든 내게 해양 패권에 관한 역사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다 섬나라 영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슬쩍 슬쩍 들춰본 영국의 역사에는 온통 바다 건너 온 세력들과의 전쟁바다 건너 간 영국인들의 식민지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주 무대를 이루었다자연히 세계사에 대한 내 생각의 지평도 해양으로 슬쩍 옮겨 갔다.

 

신대륙 발견이라는 유럽인들의 편견에 따른 시각에서 만든 명칭과 그 침략 경로를 따라 가다 보면원래 가난한 육지 환경에서 태어나 본토에 별 미련이 없어서인지 항해 거리와 상관없이 먼 지역에 이르기를 서슴지 않는다영국과 유럽의 조상들이 알고 보니 북유럽의 바이킹인 된 것도 가혹한 자연 환경을 떠나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아 떠난 것이 계기였다.

 

자연히 유럽 역사에는 해양 관련 기술에 따라 지배 구조가 결정되었는데 이는 후발 주자인 미국에 해군(marine)이 주력 부대인 것과도 일맥상통하며또한 비효율적인 덩치만 큰 대한민국의 육군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거대화되어 최근까지 유지된 것인가 세계사의 측면에서는 실감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5,000년 동안의 세계사 - 위 표지 아래 부분의 스케일 - 이며이를 세 공간으로 나뉘어 그 흐름을 쉽고 깔끔하게 보여준다위에서 언급한 대로 유라시아에서 오래 지속된 육지의 역사다섯 대륙이 대양을 연결된 바다의 역사항공망과 인터넷 가상공간으로 이루어진 하늘의 역사 순서이다당연히 각 시대별로 육지바다하늘을 지배한 나라가 패권을 장악하였다.



저자가 재밌고 흥미롭게 연결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조금 요약해보면;

 

희망봉을 발견한 포르투갈은 당의 7-8% 정도만 농업에 쓸 수 있었다살기 위해 바다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네덜란드는 청어를 절일 소금이 필요해서 서인도회사를 세우고 해운업을 시작하였다영국은 한랭한 기후와 장작의 부족으로 증기기관을 발명하게 되었으니 산업혁명의 계기는 영국의 추위이다 실감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나 영국에 여러 해 머물러본 경험상 납득이 갑니다자연환경이 참 가난합니다구릉과 들판에 나무가 몇 그루 없고 풀만 가득양 떼와 소 떼가 멀리서보면 목가적인 풍경일 뿐이지만 뭐 먹고 사나 싶은 토양이기도 합니다그리고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비가 오나 안 오나 건물 안에서 난방을 해도 춥습니다그늘에만 들어가도 춥습니다한 여름에도 늘 점퍼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먼저 서유럽과 중유럽에서 여러 민족의 의식이 변하고마지막에는 전 세계의 모든 인간의 의식 전체가 근본부터 달려졌다이러한 의식의 변혁이 진정한 의미의 공간 혁명이다.

 

통시적일 뿐 아니라 세밀한 이 역사서는 세 가지 유형의 서사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각 공간에서 탄생진화명멸한 왕조와 제국의 역사를 재밌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일단 문명의 탄생부터 14세기까지는 육지를 차지한 제국들의 흥망성쇠와 교류가 암기식 교육의 효과로 페르시아로마몽골 제국이 만든 국경선의 변화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 대서양시대라 불리는 15-18세기까지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식민지해상무역이민산업혁명 희망봉 발견콜럼버스와 마젤란 대항해의 시대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의 과학혁명에 따른 물리적 세계관의 변화 - , 그리고 19세기부터 현재까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항공통신글로벌 경제, IT 기업들에 대해 다루며 앞으로의 행방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저자가 아주 쉽게 설명해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세계사가 무척 간명한 큰 그림으로 그려진다반갑기도 하지만 거시적인 시각에서 부각되는 거대 권력과 제국들을 제외한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불가시의 영역으로 밀려난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내가 제국의 후손이거나 현재 패권국의 국민이라면 좀 다르게 혹은 자랑스럽게 느껴지려나.

 

한시도 평화의 휴식이 없이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어져온 인류의 역사에서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든 현재 입장이 패권국이라면 다른 책임과 역할도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잠시 생각해본다그런 의미에서 명실상부 G2국가로 분류된 중국과 미국의 입장과 태도는 자세히 내막을 몰라도 자주 걱정스러울 정도이다오랜 세월 수많은 나라와 민족을 변방나머지 국가(the rest of the world) - 미국 학교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미국인 교사에게 들었다 -로 분류하고명백한 자국중심주의자국제일주의가 제1가치로 삼고 있으며 그런 태도를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현 시점에서 지구상의 패권 다툼은 5G에 있다고 한다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사회의 기반이 되는 것이 5G 전환이기 때문이다이제는 현실 공간보다 훨씬 넓어진 가상공간에 대한 패권의 시대이다앞으로는 화웨이에 대해 미국이 시비를 걸고 공격하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패권 다툼의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싶다물론 먼저 시작되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우주패권 시대도 있다오늘 기사에 드디어 민간우주항공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가능성과는 관계없이 우주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패권 다툼은 주도국들의 자원이 바닥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이다.

 

패권국이 되고 세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부정할 수 없는 것은 결핍이 확장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는 것이다굶는 일이 다반사였던 가난한 유럽은 그래서 거듭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패권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결핍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고 나처럼 게으른 이들은 평화롭고 안온한 삶이 제일이라 생각하지만적극적으로 역사에 뛰어들어 방향을 바꾸거나 정하고 싶은 이들은 어떤 역사의식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까 혹은 있어야할까그에 따라 세계사의 동력과 방향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를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역사서가 재미있어서 읽는다물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성찰을 위해 진지하게 읽는 다른 이들도 계실 것이다다양한 소재들 중 하나를 선택에서 아주 미세하고 흥미롭게 역사를 바라보는 책들도 있고이 책처럼 고공관찰을 하듯 한 눈에 세계사의 흐름을 그리는 책도 있다나로서는 아무리 지루하단 평이 있는 역사서도 몰입해서 잘 읽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지라 모두 반갑다그래도 어떤 책들은 상당한 도전을 요구하는데 이 책은 읽을수록 참 친절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아마도 20년 동안 고등학교 세계사 교사로 일하며 교과서를 집필한 저자의 경험과 고민이 낳은 장점이 가득한 책이라 그런 듯싶다.

 

공교롭게도 인류 문명의 세계사는 현재 재편 중이고 혹자들은 이를 Before Corona, After Corona라고 명명하기도 한다이 때를 핑계 혹은 계기로 삼아 세계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배경 지식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역사적 행방을 고민해보고 싶은 분들은 읽어 보시면 좋겠다무척 재미있고 쉽고 친절하다는 장점을 재차 부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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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제도를 바꿔라
강효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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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접해서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할 수도 있는 문장을 다시 떠올린다.

 

The Personal is Political.

Carol Hanisch

 

기억이 흐릿할 만큼 오래 전에 이 제목으로 쓰인 논문을 읽었는데당시에는 공적 영역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배제된 사적인 상황 역시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중심이었다고 기억에 남아 있다특히나 사생활이라는 명칭으로 관리되지도 처벌되지도 예방되지도 않는 가정폭력의 문제들은 그때도 그렇고 현재에도 진행되고 개선되어야할 대상이다.

 

텍스트에 집중한 이런 해석 이외에도 나는 살아가면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다살아가는 일의 모든 면면이 정치적 결정의 결과이다한편으로는 그럼 개인의 노력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겠구나 기운이 빠질 수도 있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정치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신정이 아닌 다음에야 사람이 하는 정치를 주권자의 합의가 모이면 바꾸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런 세세하고 섬세한 삶의 일면들에 대해 고민하고 바른 정치를 위해 입안 의견을 내고 법안을 만드는 일은 사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일이 거의 적다그리고 우리는 미디어 노출 빈도로 중요도를 결정하는 거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있어서 실제로 생활밀착하는 법안들에 대해서는 찾아보거나 관심을 가지는 일이 거의 없다나도 마찬가지이다당면한 일내 이해관계와 만난 조항들만 건별로 겨우 뒤적여보는 수준이다.

 

그런 와중에, 2016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경험하고 국정농단이라는 말을 강제학습했다권력을 위임하는 대의제와 선출직에 대해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관심과 감시를 잊으면 이런 꼴을 봐야하나라는 자각을 이토록 자극적으로 배운 일은 처음이었다.

 

온갖 비본질적인 소란스러움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중에국정농단보다 내게는 더욱 충격적인 사법농단 소식을 들었다선출직도 아닌 자들이 공적직업윤리가 없는 자들이 마피아처럼 공고한 카르텔을 이루어서 조직보신주의와 출세이기주의를 위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불법과 탈법을 도모한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시행해왔다는 사실.

 

사법체계는 그야말로 특혜도 자산권력도 없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되어주는 사회시스템이어야 한다도덕보다 기대치를 훨씬 낮춘 기준으로 마지노선 위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할 일을 알려주고 바로잡는 일이다. 그 말은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고 법적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리보다 훨씬 낮춘 기준이다. 우리가 윤리적 비난을 가할 수 있는 일 중에는 법적 처벌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많다. 나처럼 적당히 게으르게 사는 인간은 윤리적 기준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가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다그런데!

 

최초로 대법원장 출신이 기소되는 애초에 직에 걸맞는 인물이었는지도 신뢰할 수 없지만 낯뜨겁고 치욕스런 역사를 쓰는 일이 불가역적으로 발생했고, 이후 혼돈의 비바람이 가라앉고 제자리를 잡아가리라 기다렸지만저질 드라마도 아닌데 거북할 정도로 노골적인 행태들 이후에도 이어져갔다사법개혁의 여지와 희망은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 건지 깜깜하기만 하다벌써 수차례 뼈를 깎은 탓에 더 이상 깎을 뼈가 없는 것인지 자체 개혁은 실종된 상태다작은 이익도 아니고 수도승도 아닌 이들이 끈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앞으로도 공고한 이익을 스스로 포기할 리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사법체계와 조직에 원한과 원망이 있어 이런 입장이 된 것은 아니다임명 이후 거의 살인적인 업무량을 견디며 최선을 다해 직무를 다하는 그런 검사가 있고 금수저가 아닌 탓에직업과 재산을 거래하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아직 전세를 사는 검사 지인도 있다 - , 출세와 상관없는 한직을 마다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고 피의자와 피해자의 이후 삶을 염려하는 그런 판사가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어릴 적에 이후 판사가 된 당시에는 야학을 하던 대학생 친척 언니를 따라 다녔다이런 개인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슨 근거로 얘기를 하냐는 비난을 피해보고자 함이다 -.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 말고도 말도 안 되는 강의료를 마다 않고 요청 받으면 시민강좌를 꾸준히 해주시는 분들장애인 단체의 일에 가장 먼저 달려와 주시는 그런 법조인 분들도 계시다.

 

그래서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처음 생각은 1장 공수처 관련 내용을 집중해서 읽고 제대로 배워서 입장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소란스러운 소동에 등장하는 내용 정도밖에 모르고 솔직히 잘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행이 아주 쉽게 써 주신 덕에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말끔하게 기초 지식이 정리된다그런데 문제는 온라인상에서 찾아본 의견들이 너무나 혼란스럽다는 점이다처음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의견 충돌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어째서 이토록 증오에 찬 막말과 욕설이 가득한 것일까무슨 일인지 판단이 도저히 안 되고 어리둥절할 따름이다다만 이들이 폐지를 주우며 삼성그룹을 걱정하는 그런 입장은 아니기만을 바란다그런 장면을 목격하는 일은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부디 이들은 법률적 특혜와 탈법권 권력을 누리며 승승장구하는 분들이길 진심으로 바란다그렇다면 이렇듯 격한 반응 역시 온전히 이해가능하다.



꼭 필요한 개혁의 요구에 시의적절하게 저자가 시대적 소명의식을 담아 실체적인 진실과 제도개혁을 위해 공들여 적은 내용들을 통해 배우고 이해하여 전체적인 조망을 본 듯하다. 소개하지 않은 2장은 못지 않게 중요한 [개헌] 관련 내용이다. 누군가 함께 읽은 다른 분들이 개헌 내용 중심의 서평을 올려 주시면 참 좋겠다.


총선 이후 아직 정비되지 못한 정치권, 20대 국회활동을 업무 실적으로 평가하면 해고해야 마땅할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일하게 될지 일단은 기대해 보려한다. 이제껏 그래왔듯 다른 대안이 없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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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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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제목을 보았을 때는 조부모님이 차례로 돌아 가셨을 때 문의를 드려서 집을 방문해 고인의 유품을 함께 정리해주셨던 그분들 유품정리사 의 이야기인가 했다경우에 따라 황망하고 서글프고 많이 지친 유가족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라 태도가 정중하고 말투도 조심스럽고 차분하고 능숙하게 위로를 건네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참 많은 도움을 받았단 생각에 고맙고 좋은 인상이 남았다.

 

그런데 내용을 보자 그보다 훨씬 더 특수한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때때로 고독사에 대한 기사를 접하기는 하나사후 처리에 대해 진지하게 궁금한 적이 없어서 처음 알게 된 직업이다<죽은 자의 집 청소>를 하는 분들은 특수청소부들로서 범죄 현장고독사자살 현장동물사체 처리와 저장강박증 환자의 집을 작업 현장으로 삼는다안타깝게도 가장 많은 유형은 고독사 현장이라고 한다현장에서 느낀 바도 그렇고 통계상으로도 대한민국 고독사는 날마나 증가하고 있으며작년에는 1056명으로 기록되었다.

 

이를테면 컨트롤 제트(Ctrl+Z)’의 업무를 하는 겁니다소거(消去)작업인 거죠영어로는 언두잉(un-doing). 한 사람의 생전 흔적을 완전히 없애는 거예요쓰던 물건부터남겨놓은 핏자국과 마지막 냄새까지요.” 


이 책의 저자이자 8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김완 하드웍스 대표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인상적인 내용은 누군가가 사망한 장소부재하는 장소를 정리하다 보면 당사자의 존재가 형상화된다는 것이다구체적인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면 성별연령당시의 상황취미정치색 등 그 인물의 삶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오래 방치된 바닥은 으레 기름 막으로 덮여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곧두세워 앞으로 걸어갑니다그 방이 바로 당신이 숨을 거둔 곳입니다당신은 없지만 육체가 남긴 조각들이 천연덕스레 기다립니다.

 

단순히 정리 작업이 육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글 귀아찔할 정도로 충격이 오는 물건들의 의미김완 대표이자 작가는 이 일을 하면서 현실이 허구를 뛰어넘는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한다.

 

상상 밖의 일이란 소설이나 영화처럼 일정한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허구 세계뿐만 아니라현실 세계에서 아무런 의도 없이도 매우 구체적이고 엄연하게 벌어지기도 한다암흑 속의 집 안 상태와 계량기가 철거된 자초지종을 길게 설명하는 동안 그녀는 휴대전화 저편에서 한마디 대꾸도 없이 듣는다침묵은 때때로 상대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를 줄이거나 보탬 없이 그대로 전하는 힘이 있다그녀는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으레 듣곤 하는 잘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 대신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이전엔 그저 기사에 쓰인 감정을 받아 읽듯이 그냥 읽었는데잠깐 멈춰 생각해보니 고독사란 표현은 지나치게 사치스럽다저자의 말대로 이들은 고립사’ 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 듯싶다고립된 사회적 상황에서 죽은 이들저자는 자살이라는 죽음이 개인의 순전한 선택이냐고 묻는다이 도시에서 전기를 끊는 행위는 결국 죽어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타살 권유가 아니냐고체납요금을 회수하기 위해 마침내 전기를 끊는 방법정녕 국가는 유지와 번영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 하고.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전기가 끊겨본 적 없이 살았다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 기분이다직장도 인간관계도 하나씩 끊기고 마침내 전기마저 끊겨 어둠 속에 오롯이 남게 된다면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선택이라는 것이 아직 남은 것일까. 


더구나 자살을 앞두고 의뢰 전화를 하는 이들도 있다니...... 죽음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 직업들 중 하나일 것이다.

 

저는 평소 자살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편입니다존엄한 자살도 있을 것이고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어떤 판단을 내리기가 조심스럽잖아요그런데 막상 자살하겠다는 전화를 받으니까 필사적으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그 길로 119에 전화를 했죠.”

 

부탁하건대언젠가는 내가 당신의 자살을 막은 것을 용서해주면 좋겠다나는 그 순간 살아야 했고당신을 살려야만 내가 계속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나는 아직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우리는 여전히 함께 배를 타고 있다그것만큼은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이다.

 

여름에는 더욱 힘겨운 현장 환경이란 생각이 들지만김완 작가는 현장 동행 취재도 거절할 정도로 이 일은 정신적 외상이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한 차례 작업 후 잠수타는 직원들도 있을 정도로 참혹한 현장을 보고 충격을 받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 트라우마를 대신하는 작업이라고 한다그래서 서구에서는 이 직업을 트라우마 클리닝으로 부른다 한다.


대표 자신도 악몽과 해방감성취감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손끝에 남은 생생한 느낌을 흘려버리고 트라우마를 치유한다고 한다. 

 

사실 내 일은 살아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죽은 사람이 만든 냄새가 가져다줍니다그 냄새를 극적으로 없앴을 때 내 비즈니스는 성공하지요대가로 살아 있는 사람이 나에게 돈을 지급합니다.

 

용서하세요문 앞에 도착하더라도 애써 예의를 갖춰 벨을 누르지는 않겠습니다저 안에서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남긴 것이니까요.

 

평소 고양이를 사랑해온 인간으로 이 참담한 상황에서 털만 보고 종을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기가 막히다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그 속담 뒤에 스며 있는 명예 지상주의와 지독한 인간 본위의 세계관이 늘 못마땅했다이름과 가죽을 남기는 일 따위가 죽음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회사를 설립할 당시에는 뭐 먹고 살지,하다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일이지만지금은 다른 생각과 의미를 가진 일이 되었다고 느껴진다특히나 읽다 보면 일기와 같은 기록물인지 산문시를 읽고 있는 지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저자의 감정이 뭉치기도 하고 녹아 풀리기도 한 듯한 내용들이 특히 그러했다.

 

당신이 하는 일처럼 내 일도 특별합니다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귀중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치우는 일이거든요한 사람이 두 번 죽지는 않기 때문에오직 한 사람뿐인 그분에 대한 내 서비스도 단 한 번뿐입니다정말 특별하고 고귀한 일 아닌가요?

 

여전히 글을 쓰고 문예창작과 시 전공 출신 살지만죽음을 보며 삶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인생을 너무 무겁게진지하게만 보지말자……이 책을 읽으며 화창한 날임에도 문득 사는 건 무엇이고 죽는 건 무엇인가 싶어 기분이 어둑해진다경험이 일천해서인지 나는 지혜와 이해를 얻기 보단 자꾸 어깨가 무거워져 축 쳐지는 기분이 든다.

 

그의 쓰레기를 대신해서 치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내 부단한 하루하루의 인생은 결국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것인가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해답도 없고 답해줄 자도 없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 유품정리사도특수청소서비스도 아직 한국에서 직업으로 독립적인 지위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일들은 왜 이리 느린 것일까직업 개요와 업무 내용이 파악되면 실정에 맞게 바로잡아 등재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하는 일이 분류될 공간이 없다니.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중략고급 빌라나 호화 주택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부름을 받고 다다르는 곳곳에 가난과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검게 색 바랜 빈곤의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져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것 같다내 시선이 오랫동안 가난에 물들어 무엇을 봐도 가난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일까어떤 날은 죽은 이의 우편함에 꽂힌 채 아래를 향해 구부러진 고지서와 청구서마저 가난에 등이 휜 것처럼 보인다.

  

달리 생각해보면 가족은 연락을 끊어도 채권자는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 셈이다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가 아닐까중략돌려받을 돈이 있는 자는 그 누구보다 빚진 자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아 있길 바랄 것이다빚을 모조리 회수하는 그날까지.

 

이러저런 이유들로 매일 사람들이 죽어 사라지고 있다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당연한 일상이기도 했다오늘 아침에도 사망률이 14%를 넘어가는 영국에 거주하는 친구와 애절한 이야기를 나눴다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세상이 실제보다 더 텅 비어 보인다사는 일에 대해 면면들을 알면 알수록 온갖 기대와 희망이 휘발하는 내 감정이 투영된 것뿐일 지도 모른다어쩌면 나이가 들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그래도 어쨌든 세상을 텅 빈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은 자연사가 아니다구인신문을 펴고 마지막 식사를 마치지 못하고 혹은 정리를 하고 준비를 하고 혹은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전화를 옆에 두고 누군가가어쩌면 짐작보다 많은 이들이 떠나려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 쓸쓸한 자각 때문이다저자의 경험처럼 대부분은 가난 때문에 고립되어서함께 먹고 함께 사는 세상 또한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왜 어려운 일인가대답할 첵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혼자 사는 도시인의 사회적 고립 문제는 피치 못한 결과라기보다는 어쩌면 각자가 실리를 위해 선택한 길농촌이 처한 현실에 비하면 덜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중략. ‘인구절벽이란 표현은 도시에서나 통할 위협이지시골 마을은 진작 그 절벽마저 무너지고 흙이 쌓여 봉긋한 무덤 터가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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