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 한국 의료의 커먼즈 찾기
백영경 외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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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사실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중요한 사안들이 있다이때 단편적인 지식 정보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판단해보는 기회를 주는 독서는 특히 귀중한 계기가 된다더구나 주제가 지극히 현실적이며 작금의 생과 사를 다루는 시의성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매일이 불안하고 내일도 불안한 시절에그래서 계획과 정책과 실행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한 때에 도움이 되는 책이 출간되어 심신의 불안과 체증이 다소 해소되는 듯했다.

 

목차만 봐서는 분야별 의료 전문가들과의 대담 내용이 다 인가 싶지만아주 기본적인 팩트부터 현장 상황정책선입견과 세계관에 이르는 통합적인 구상을 담고 있다결론과 대답이 자신의 의견과 모두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 여정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배웠다는 생각이 선명하게 들었다.

 

병원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 있나요?

 

아주 간단하고 평범한 사실이라 미처 그 경험을 대한민국 의료현실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다병원에서 태어나고 사는 내내 의료를 소비하다 병원에서 죽는 우리들. 그래서 물어야 하는 질문,

 

한국 의료는 사람을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습니까?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재벌자본의 의료시장 장악의사파업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현장의 의료, K-방역과 인권의료 사각지대낙인화된 질병 등의 핵심 내용들이다뭔가 억울하고 이상하게도 이렇게까지 정확히 아는 것이 없었나 싶은 기분이 자주 들었다. 읽다 멈추다를 반복하고 생각과 호흡을 천천히 하며 책을 읽다 보니 두서 없이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코로나 확진자수가 0을 기록할 때도 있었던 여름 한 때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프로를 시청하게 되었다임상 의학이 아니라 예방 의학 전문가이자 국립암센터에 근무하는 기모란 교수의 답변으로 진행되었다역학 조사공공 의료에 대한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듣는 기회였다지방의 병원 부족과 특히 그에 따른 산모와 신생아 사망률 증가라는 결과에 비추어 서울에는 카페보다 병원이 많다는 통계청 자료는 놀라웠다.

 

아무래도 AC(After Corona) 시절을 살며 새롭게 만들어야할 의료 체계는 보건 의료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판데믹이 언제든 가능한 국경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대에 큰 질병과 감염병은 최대한 사전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예방책을 예상하지 않으면 손 쓸 도리가 없어질 것이다이제 의료는 복지가 아니라 안보의 영역에 들어선 듯하다. 어쩌면 코로나 판데믹을 거치며 존망을 위협 당하는 국가가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명목상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라는 중국의 의료가 거의 민영화되었다는 사실도 코로나를 겪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인구 1200만 명이 사는 우한시에서 코로나 확산 시기에 환자를 받은 병원은 단 3나머지는 다 영리병원즉 민간병원이었다고 한다전 국민 건강보험이 없을뿐더러 국가가 의료문제를 포기한 상태라는 의견도 들었다끔찍하다.

 

대한민국이 공공성이 튼튼하고 강한 국가라 생각해본 적은 없다안타깝게도 내 생각만이 아니라 현실도 그러하다공공의료시설 비율 OECD 국가 평균은 73%, 의료 불평들이 심각한 미국은 27%, 일본은 22%, 한국은 10%이고서울은 시립국립 병원이 4%이다대전광주울산은 광역시임에도 공공병원이 없다민간 병원의 년 수익은 보통 1조이며병상은 3000개 정도이다병상 하나에 3억 이상을 벌어야 한다그러니 평소에 활용할 수 없는 음압병상을 만들어 두고 1년에 3억씩 손해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병상 부족이 연일 보도되지만 병상이 환자를 고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의료진이 더 필요한데 감염내과를 제대로 갖춘 공공병원이 없으니 인력을 배치할 수가 없다의사에 비해 수련과정이 필수가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개원할 수 있는 치과와 한의사 배출 인원이 늘고 있고, 2022년에는 치과전문의가 1만 명에 이를 것이라 한다꼭 필요한 치료분야이긴 하지만현재 판데믹을 헤쳐 나갈 의료진 모집 분야에서 제외되는 직군이 치과의사와 한의사이기도 하다.

 

공공의료와 보건의료에 필수적인 공공의료병원과 중앙감염전문병원국립의약학계열전공의료진들의 증축과 증원이 시급해 보이는 형편이라 실제적인 관심과 고민과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쉽지 않을 난제임에는 분명하다가족 친지들 중에 분야가 다른 의료진들이 세 명인데모두가 타당한 이유로 의견이 다르다그리고 충분한 예산이 있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를 한 차례 뒤흔든 지난여름 의사파업. 정부의 공공의대 도입 방침에 반대해서 벌어진 전공의 파업 사태로 의료 공공성의 문제가 한국사회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나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리 자료를 뒤져봐도 한국의 의료 공공성 문제는 당위의 수준에서 더 이상 전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아무 도움도 안 되는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욕설들이 가장 눈에 띈다정부의 정책과 사업은 시민들 의견과도 의료진 의견과도 다른 노골적인 의료산업의 거대한 육성으로 향한 듯하고 예산도 공감도 없이 첨단기술 논의들만 꽤 진지하게 제시하고 있다관련 예산 확보도 없는 듯하니결국에는 손 털고 거대 민간 자본에 맡기겠다는 작정인가 싶기도 하다.

 

재난이 불평등하게 작용하는 인권의 문제이듯질병 역시 늘 불평등하게 작용하는 영역이었다건강과 의료는 유전자와 세포의 문제가 아니라가정직장사회국가 안에서의 사람들 간의 관계의 모습들이 연계된 주제이며오늘날은 기후재앙환경 정의의 문제로 영역을 확장해야 전체적인 모습이 비로소 완성되는 분야이다그런 줄 몰랐다고 할 분들이 없을 듯해 쓰고 나니 민망하지만 어쨌든.

 

의료 문제의 가장 큰 근원은 공급자와 수요자의 지식 차이가 현저하다는 것입니다이를테면 커피는 맛없으면 사람들이 안 가서 그 가게는 자연히 문을 닫게 되지만 병원은 공급자가 수요자를 창출할 수 있어요. MRI사진 보면서 의사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 누가 그걸 거절할 수 있을까요최원영

 

양약도 기본적으로 70킬로그램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니까요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몸무게 가이드가 나와야 합니다윤정원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민간의 역할우리가 바라는 의료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공공병원이라는 하드웨어에 치중하기 쉬운 논의를 비판적으로 살피며 결국은 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 강조놓치기 쉬운 소수자와 여성을 위한 의료의 영역좁은 의미의 의료라는 틀 깨기그간의 공공의료 논의와 정책 방향을 비판적으로 검토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시면 정말 중요한 정보와 주장들이 많으니 꼭 읽어 보시기 바란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있고스스로도 그러한 낙인을 내면화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아픔을 숨기고 살아갑니다이지은

 

돌봄이......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 필요한 삶의 필수 요소라고 이해해야 합니다필요한 모든 사람이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정의로운 상태일 것입니다김창엽

 

특히 하나마나한 얘기들만 주구장창 언론에서 반복되는 이유를 속 시원히 짚어주는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든다추상적인 차원의 공공성은 동의하기 쉽고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은 껄끄러운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또한 대담 형식은 더욱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주제를 다루는 느낌을 주었고 분명 따라 이해하기 더 쉬운 장점이 있었다.

 

어느 문제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지만특히나 의료 문제는 한쪽 끝을 잡아당기니 한국 사회 전체의 모든 묵은 문제들이 끝없이 딸려 나오는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아무 보탬도 안 되면서 쓸데없는 유포되는 저속한 정보들에 휘둘리지 말고 좀 더 진지하고 구체적인 태도를 갖추는데 적어도 내게는 무척 유용한 길잡이가 된 책이다대부분 그렇듯이 잘 될까 염려 가득하고 복잡한 심정이지만 읽기 전보단 훨씬 더 객관적인 불안의 내용을 갖게 되었다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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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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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jamo97/222187817065

 

외부 활동이 더 어려워져서 유난히 길 듯한 올 겨울, 차분히 가족들과 함께 책 읽는 시간을 갖고, 반드시 코로나 시절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질문, 어떻게 살 것인가, 각자의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며 읽고 싶은 책이다.

 

마치 작금의 인류에게 시의적절하게 격려와 용기를 전해 주려 온 것만 같은 작가이다. 모든 문학상을 거부하고 은거하면서 창작 활동을 한 그의 단단한 시간들을 작품을 통해 느끼며 짙어가는 우리의 불안 또한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격리와 유배가 아니라 은거와 배움과 성찰의 좋은 기회라고 그렇게 생각도 마음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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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일기 - 공포와 쾌감을 오가는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
김민철 외 지음 / 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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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파킨슨 법칙이라는 경제학 용어를 아십니까?

일을 완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주어진 시간에 비례해 늘어난다는 이론이지요.

마감하는 인간들은 모두 뼈저리게 공감할 겁니다중략.

마감이란 닥치면 해결되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저도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닥치면 이 아니라 닥쳐야’ 해결되는 일이더군요. 38

 

무시무시한 제목이다.

 

타협 불가 마감이 있는 거대 프로젝트 직접 참여하는 인원만 100여 명 에 참가한 살벌했던 그 해가 폭설처럼 떠오른다. 1년짜리 프로젝트인데 잘 마무리되어야할 시기에 이르러 팀원들에게 개인적인 불가피한 사정들이 마구 터졌다근로기준법인권 그런 거 없는 세상에서 누워 자는 수면은 격일로 하고 밤새 하는 카페에서 더블 에스프레소와 얼음물 들이 마시며 일하다 의자에서 졸며 아침을 맞았다.

 

그해를 어찌 살아남아 마감하고 사표 쓰고 공기 좋고 조용한 곳(?)으로 일하러 일 년 간 떠났다일단 수입이 20분의 1로 줄었으니 2년 평균 연봉을 따지면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은 세상 미련한 일이다.

 

이후에 혼자 마감을 지키면 되는 일은 10여 년이 넘게 한 번도 연기하거나 어긴 적이 없어 냉혈마감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한 거라곤 없이 땀 흠뻑 흘리며 수명을 불살라 지키는 마감인데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소음 하나 없이 적요한 공간에서 숨만 조용히 쉬며 작업하는 동안 테이블과 의자 주위로 머리카락이 투둑.투둑빠져서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이어진다이런 경험 없으시다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어쨌든 재깍거리는 환청이 들리면서 누군가의 피가 얼어붙을 것 같은 제목이다.




출판사가 계약금을 보내놓고 기다리는 동안 첫 문단만 스물두 번 쓰고 나머지 시간은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면서 현실에서 안간힘으로 도피한 저를누구보다도 혐오하는 것은 저 자신입니다그런 저 자신을 위해 변명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중략왜 글쟁이들은 항상 돈 안 된다마감이 끔찍하다업계 상황이 치사하다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글을 끊지 못할까요중략너무 걱정을 마세요마감은 끝나거나 안 끝나거나 할 겁니다책도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하겠지요하지만 우리 인생은 언젠가 확실히 끝납니다우리 그냥 사랑을 해요이 우주를가련한 중생을마감 늦는 작자들을요숨바에서 온 편지

 

진심으로 그 심정을 다 이해하지만 결론에 대해서는 반만 동의하겠습니다.

 

그때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첫 마감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무엇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그 마감 앞에서 혼자여야 한다는 걸절대적인 고독이 필요하다는 걸그것은 누구와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서도 안 되며 심지어 누구에게 엿보이거나 들켜서도 안 되는 나만의 내밀한 직면이어야 한다는 것.

 

인생이 한 방으로 결정 날 수도 있는 대한민국의 입시 풍경이다권여선 작가의 글 스물에도마흔에도 마감 이라 뭔가 더 심오한(?) 상황인가 했다그래도 이런 풍경과 심정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통적이고 대중적인 마감의 경험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나는 곧 마흔이었고마흔은 일곱 살과 다를 바 없이 세상이 하라고 시키면 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나이였다불혹의 다른 이름인 부록처럼본문의 삶을 못 가진 나 같은 인간은 기꺼이 부록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마감을 한다는 것은 끝내기로 한 것을 끝냄으로써 약속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크든 작든 그건 내 삶의 흐름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일과 같다삶의 시간을 이쪽과 저쪽으로 구획 짓는 일이다마감 이전에는 내 모든 것이었던 하나의 세계를 그곳에 놓아두고 떠나는 일마감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고했던 자신을어쩌면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더 나아졌을지도 모를 그 세계에서 단호히 끄집어내 그 너머의 세계로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마감이란 말 앞에서 언제나 깊은 경외와 두려움을 느낀다.

 

권여선 작가의 글만 자꾸 되읽고 쓰고 있다이리 될 줄 아예 몰랐던 건 아니지만……어쩔 수 없다.

 

사랑하는 일을 계속해서 사랑하려면 목부터 곧게 펴야겠다고 생각했다사랑하는 일로 나를 해치고 싶지 않다무너진 몸으로 글 쓰는 일을 지랄이라 폄훼하고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할 걸 알기 때문이다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향한 사랑이 애증으로 변하는 것은 슬프고 고된 일이다

알콩달콩하고픈 마감에 나는 항상 앓고 닳고

 

웃다가 눈물도 나고 다시 웃기고마지막 문장에 홀린 기분이다. 강이슬 방송작가의 작품들을 막 찾아보고 싶으다.

 

주어진 일을 그저 일로서 맞이하는 것과그 일에서 나도 모르는 다음의 나를 얻어내는 것은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나아지고 싶다이 일로 인해 또 한 번의 다음이 있다면 좋겠다아직은 모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또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마음을 잃지 않고 지금의 직업을 넓게 유지하고 싶다. 168

 

읽기 전에 미처 생각 못했던 것인데다양한 분야다앙한 직종은 마감 역시 다양하구나하는 것이다또 저만 몰랐나요그리고 마감 상황보다 더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저자들의 생각이다내 마감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 궁금하다.

 

나는 어떤 마감 스타일일까?

 

1. 사랑이 넘치는 박애주의자

"마감이 우리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가요우리 그냥 사랑을 해요."

 

2. 자신에 대한 신심이 깊은 Believer

"마감요내일의 내가 하겠죠!!"

 

3. 살아있고고로 마감하는 데카르트 형

"마감이란 그런 겁니다살아있다마감을 한다."

 

4.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소작농형

"마감 때만 되면 자꾸만 '딴짓'이 하고 싶어져요."

 

5. 믿는 구석이 있는 베짱이형

"마감이 어디 있어내가 원고 주는 날이 마감이지!"

 

좋은 욕심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걱정을 하며 산다고중략인생을 윤택하게 하는 수고와 부지런함은 실은 실패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오는 거라고 했다쓰는 동안 이유 모를 불안함에 뒷목이 서늘해질 때마다 삶을 더 괜찮은 쪽으로 끌어당겨주는 걱정의 힘을 믿었다더 잘하고 싶어서 나는 지금 불안한 거라고그러니까 걱정 없이 마음껏 걱정하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휘리릭 읽으며 발췌한 책들도 그냥 읽었다 쳐주자며그런 후한 막바지 기준으로 분류해도올 해 읽자고 했던 책들 중 9권이 덩그러니 남았다그리고 다시 읽지 않겠다고 기증할 책들이 4상자에 가득하다.

...


그래 이제 그만 마감이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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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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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작가의 비밀 노트



그냥 작가의 노트라고만 해도비밀 노트라고만 해도충분히 궁금할 텐데,

무려 상상력 천재 작가의 비밀 노트이다

최상급의 마케팅 기획이 아닐 수 없다.

 

뭘 열심히 하고 싶지 않은 귀차니스트라고 해서 순간 친하게 느낄 뻔 했지만,

그런 작가가 있을 리 없다속지 않겠다!

 

사실 별로 안 궁금했는데(라고 쿨하고 싶지만)…….

 

재밌는 기록과 기억들은 역시 기대만큼이나 담겨 있다.



결국 인생이란 이 물음과 대답 두 가지로 집약되는데

정말이지 너무 노골적이어서 멋도 정취도 없습니다.

어지간히 비범한 사람이 아닌 한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보통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거나 우연히 잘되면 그걸 좋아하는 일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그걸 자신의 삶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모르니

또 골치가 아파질 수밖에요.

 


온갖 가지 걱정이 가득한 모습에 별 걱정 다해야하는 자신이 투영되어 마음이 징징 울렸다.

좀 더 읽다 보니 이건 생존 투쟁의 기록 같다.

어찌 되었든 자신을 다독이며 견디자는 일상의 매 순간이 이어진다.



내가 살아보니세상에 가장 힘겨운 일이 평범과 일상혹은 평범한 일상인 듯하다.

알고 보면 다들 매일 고군분투 중인데 안타깝게도 결국엔 각개전투로 승부를 봐야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살면 살수록 존재하는 것의 슬픔이 짙어 진다안 그러신 분들도 계시다는 걸 알지만 제가 잘 만나 뵌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요시타케 신스케는 상상력의 천재가 아니라 잡념의 천재쓸모없는 일들을 실패 없이 해치우는 천재 작가가 아닌가 싶다부정적인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테러 사양!

 

작가의 일상과 독자인 나의 일상이 닮았다는 것은 어떤 안도와 만족과 기쁨을 준다.

그래서 두 번째 읽을 때는 새롭게 생긴 애정을 담은 시선으로 웃으며 읽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신스케의 천재성은 같은 소재들을 진지하게 받아 들여 흘낏 봐도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 얼마나 소소해서 알아차리기 힘든 일인지…….

그런데 좀 더 살다 보면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어느 새 충분히 연습을 마친 그런 나이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시간이 좀 더 천천히 변하는 것 같고 복달 대던 마음도 배짱 좋게 쉬엄쉬엄 살자고 속살거린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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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속성 - 사람은 어떻게 시장을 만들고 시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레이 피스먼.티머시 설리번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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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완벽할 수 있는 방식은 단 하나뿐이지만 정보가 불완전할 수 있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경제경영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가뜻밖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호감이 생겼다한 학기 배정된 윤리학 수업 중에 윤리학의 태동이 경제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이다혹시 저만 몰랐나요.



내가 오래 이미지로만 이해했듯이 경제는 상거래 기술만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애초에 경제관념이 필요했던 이유는 인간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둘러보고 재화가 한정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나눠 쓸 것인가이것이 경제학의 최초의 과제였던 것이다나눠 써야할 근거와 방식을 정하려니 윤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무지와 오해로 인해 속물적이고 천박해 보이던왜 굳이 대학 내에 학문 대접 받으며 존재하는지 정확히 몰랐던 경제학이 순식간에 삶에 근원적이고 중요하고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와 역사를 가진 주제로 격상되었다인간을 살리는 일살림살이 일인 가정이건 국가이건 글로벌 공동체이건 를 이해하려면 경제를 알아야했다.

 

게다가 경제학은 언어로 수학을 사용한다인류 사회에서 어떤 근거(윤리)로 한정된 재화를 최선의 방식으로 나누어 최적의 생존을 도모할 것인가란 주제를 수학으로 표현하다니감동적이고 감탄스럽다.


폴 새뮤얼슨은 경제 분석의 기초를 통해 경제학을 더 이상 말이나 추측이 아니라 엄밀한 수치와 공식에 근거한 과학적 학문으로 자리 매김하는 수학 혁명을 이끌고경제학이 세상을 지배하는 길을 연다.

 

경제학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을까수학 혁명과 게임 이론일반 균형 이론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진실은 그것과는 무관한 잡동사니에 가려 있기 마련인데경제학자들은 그 잡동사니를 걷어 내는 데 필요한 도구로 수학을 사용했다.

 

달리 말해 그들은 수학 덕분에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아가 그처럼 군살을 걷어 내는’ 수학적 접근 덕분에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세상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를 제시할 수 있었고이후 여러 세대의 기업가들은 이론의 뼈대에 근육을 붙이는 식으로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도구를 확보했다.

 

수학을 도입하는 이 변화 덕분에 경제학은 결국 세상을 장악할 수 있었다.

 

최초나 근원 타령하는 환원주의적 이야기는 그만하고 책으로 돌아오면저자들은 현재현대 사회의 전자상거래에서 플랫폼공유경제에 이르는 경제의 변화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묻는다그리고 그 이유가 기술(테크놀로지때문이 아니라고 한다즉 기술결정론을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재배치한다특히나 지난 반세기 동안 희소한 재화가 배분되는(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얻는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착상(아이디어), 즉 경제 이론이 변화를 주도한 동인이라고 논증한다.

 

기술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기술은 우리가 겪어 온 변화의 여러 동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기술 못지않게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일련의 혁신과 통찰이다그 혁신과 통찰이란 지난 반세기 동안 학술적인 경제학 연구에서 출발해 희소한 재화가 배분되는(즉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얻는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착상을 말한다그러한 착상들은 겉으로는 단지 기술의 변화로 보이는 것들의 밑바탕에서 경제적인 틀을 짜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저자들은 일군의 경제학자들에게 의견을 구해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장 중요한 경제학 논문들을 엄선했다고 한다얄팍한 연구 기간을 돌아봐도 이런 통시적 관점과 고찰은 어느 이론이든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고 시각을 선명하게 하는데 언제나 성공적인 도움을 준다.



즉 이 책에서는 경제 이론들이 현실 세계를 어떻게 설명해 왔는지그리고 역으로 그 이론들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그럼으로써 위대한 현대 경제학자들의 획기적 착상들이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어떻게 현실에 적극 개입하고 시장을 설계해 실험하고 우리 삶과 세상을 변혁하기까지 이르렀는지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경제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유일무이한 절대적 무대는 시장이다그러다 보니 터무니없는 오용과 왜곡들도 가득한 대상이기도 하다초기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 적용되었다고 오래 널리 믿어져 왔던 가장 유명한 구절자유 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 Free market and an invisible hand.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언급한 내용은 이것이다어떻게 이 구절에서 마치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신탁을 받은 듯이 시장에 대한 온갖 루머들이 양산되어 왔는지 경이로울 뿐이다.

 

누가 이런 번역을 했을까……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 아름다운 문장들로 쓰였다는 평가를 받는 명저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들을 때마다 슬프다.



이에 비견할 수 있는 것으로는 스피노자와 멸망 하루 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구절이 있다대한민국 국회도서관에도 없고 네덜란드 철학자도 금시초문인데한 때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은 다 알고 있(다고 믿)었다한 학부생이 근거를 찾아 줄 수 있냐고 해서 지도교수와 하루 종일 원서들을 뒤적거렸던 어느 슬픈 날이 떠오른다애초에 누가 조작 배포한 겁니까.

 

다시 정신 차리고저자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도 크게 시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고 본다하나는 시장을 만악의 근원으로 보는 시장혐오주의다른 하나는 시장을 만병통치약으로 보는 시장근본주의.* 극단적이라는 점에서 둘은 서로를 지탱하는 한 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주의라고 하는 것들 중 지나치게 말끔한 이분법을 이루는 것들  - 즉 고민도 숙고도 없으니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들 - 은 애써 이해하려하지 말고 그냥 내다 버리자그게 낭비 없는 현명한 상책이다(순전히 사적 경험입니다).

 

이에 저자들은 혁신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구축된 시장들과 그 영향력이 우리 삶을 완전히 에워싸고 정체성에게까지 미치고 있으니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에 사용당할 것인가시장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라 본다

 

시장이 순전히 이롭기만 할 때는 거의 없다

세상은 시장이냐아니면 포로수용소식 명령과 통제냐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시장이 모든 사회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효율의 낙원이 도래하더라도 반드시 모두가 평등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시장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효율이라는 미덕이 소리 소문 없이 은연중에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변하게 되면

사회로서의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다른 가치들이 냉대를 받는다.

 

기업을 경영하든 창업을 하든 투자를 하든 집을 사고팔든 온라인 쇼핑을 하든 매일같이 우리는 오늘날 진행 중인 거대한 사회적 실험의 최첨단을 살고 있는 셈이다시장 혁명은 단지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마저 바꿔 놓을지 모른다이렇듯 시장이 주도하는 급변하는 경제 환경과 불확실한 미래를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려면 우리에게는 매 순간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힘과 안목이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길을 알려 주는 유익하고 간단명료한 이용 약관이다.

 

재밌는 내용들이 한참 더 이어지는데순전히 분량을 적합하게 줄여 쓰지 못하는 능력부족으로 글을 맺습니다.

 

곳곳에서 위트와 재치가 담긴 문장들로 진심으로 재밌어 하며 읽을 수 있게 배려하는잘 읽히는 <시장의 속성The Inner Lives of Markets: How People Shape Them-And They Shape U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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