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오아물 루 그림,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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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 탄생 120주년을 맞아 1946년 프랑스어 초판본이 수록된 '어린왕자'를 새롭게 출간했다고,  


중국 출신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인 오아물 루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삽화 30여점이 함께라고,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번역가'로 유명한 김석희씨가 맡았다고,


번역된 원고 뒤로는 프랑스어 원서가 함께 실려 이중언어의 차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하여


평생 단 하나만! 이라는 조건이 붙은 명품을 손에 넣은 듯 그렇게 책을 열었다.



습관이 중요해


'습관'이 뭔데?


어느 날이 여느 날과 다른 것, 어느 시간이 여느 시간과 다른 것은 습관이 있기 때문이야.


오래된 습관들조차 산산 조각난 일 년을 보내고 이 뜻을 이제야 이해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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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 클래식 클라우드 26
이길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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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재색겸비를 갖춘 책들이랄까군더더기도 과장도 없는 팩트 제공에 적절하고 반가운 사진과 그림편집 방식까지 눈에도 마음에도 반갑고 어여쁘다그러니 책 읽는 일에 힘이 덜 들고 즐거운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분에 적극적으로 책장을 넘기는 일조차 힘겹다면 [루터] 읽기는 오디오클립도 제공되어 있어 여러모로 좋은 배움의 기회이다.

 

저자와 저서와 대표적인 업적을 줄긋기로 외우던 교과서의 단편 지식으로 만나애써 제대로 공부해본 대상이 아니라 아는 바가 거의 없었던잘 아는 것 같은 인물들 중 한 명이 루터이다몇 해 전인가 [위대한 여정]이란 영화로 유럽의 종교 개혁 당시의 분위기를 엿본 적이 있지만 그 역시 제한적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정치혁명이나 과학혁명에 비해 저평가된 역사적 사건들은 무수하다그 중에서도 조선의 한글창제를 떠올리게도 하는영향을 미친 범위와 역사를 보자면 종교만이 아니라 문화지식혁명과도 같았던 루터의 종교 개혁은 인류사에 좀 더 진한 필체로 기록해 두어야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종교인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집 안 분위기라 아주 어릴 적엔 할머니께서 차분하면서도 곱게 차려 입으시고 미사 보러 간다.”고 하시면 누굴 보러 어디를 가시는지 궁금하기도 했다좀 더 커서 그 표현이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로만 통용되던 성서와 미사예식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보러’ 갈 수 밖에 없었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종교적 깨달음을 얻은 것 마냥 놀라기도 했다.

 

지금도 글을 모르는 분들이 계시니 천주교가 선교 전파되던 그 시절엔 마치 중세 유럽처럼 한동안 미사를 보러 가서 말씀을 듣는 것 이외에는 접근이 어려운 시절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그렇게 미사는 동서양에 거쳐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은 그저 보러’ 가는 그들만의 잔치였다.

 

그러니성서를 독일어로 번역 유통함으로써 비로소 많은 이들이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든 루터의 업적은 저평가할 수 없는 위대한 개혁사의 기록이자 역사적인historic 인물의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밖으로 나가 가정의 아낙네들거리의 아이들,

시장의 보통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보아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잘 보았다가 그런 식으로 번역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고

내가 자기들에게 독일어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제임스 레스턴루터의 밧모섬

 

보통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이 말하는 식으로 번역하라는 것은 현대라면 도서정가제로 인한 판매수익을 위해서라도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으로 파격적인 사고의 전환이고 실행이었을 것이다더구나 스스로 성서 번역을 하면서는 삽화들을 넣어 메시지를 전하고 찬송가 역시 쉽게 읽히고 따라 부를 수 있게 한 옥타브의 음계로만 작곡했다고 하니루터는 단지 독일인답게(?) 성실한 것만이 아니라 천재적인 미션 수행자로 보인다.

 

이렇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쓰는'이가 세상을 바꾼다!

이런 맥락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달리 표현해 독서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번역된 성서를 펴내어 누구든 읽게 함으로써 종교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 독서를 통한 소통의 승리다.

 

문득 새 시를 한 편 쓸 때마다 시장 상인들을 찾아가 자신의 시를 들려줬다는 두보가 생각난다. "뭔 소리냐"는 핀잔을 받으면 "좋다"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시 호흡을 좀 고르고업적으로 달려가기 전에 당시 전반적인 유럽의 상황을 차분히 살펴보면 루터라는 역사적인 인물의 성향과 결심과 목표가 더 선명하게 이해된다.

 

페스트는 유럽에서는 14세기 처음 발발했고, 1340년대에 대략 2500만 명의 유럽인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당시 유럽 인구가 7500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 그중 3분의 1이 이 병으로 죽어 간 셈이다정작 이 병이 페스트라는 이름의 균 때문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알려지게 된 것은 무려 500년 정도가 지난 뒤였다수많은 이들이 죽어 갔지만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얼마나 갑갑했을까?

 

2020년 말에 잠시 확인해보니 어느 날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들 중에 9초에 1명씩 사망한 분들이 있었다고 한다지금도 상황이 더 좋아지진 않았을 것이다작금의 현실과 겹쳐져 페스트에 당하던 유럽사회의 모습이 더 이상 과거에 종결된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다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도구들이 부재해서 더 두렵고 종교와 미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비해지금은 그래도 백신과 치료제를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 형편이 조금 나아보이긴 한다하긴 그 정도 여유라도 있으니 온갖 패악들이 여직 그치지 않는 것일 테다.

 

중세라는 유령의 숲에서 루터는 죽음과 질병에 대한 공포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영원한 구원을 갈망하는 신앙인이었다루터는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하여 지속해서 신을 찾았다남들보다 몇 배 이상 많은 시간을 고해실에서 보낼 정도로 그는 신에게 집착적으로 매달렸다하지만 그때마다 신은 엄중한 심판자의 모습으로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을 뿐이다오죽하면 그는 그러한 심판의 신을 저주했다고까지 했을까.

 

결국 루터가 갈구한 구원은 철저히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것이었다전통적 신앙 방식이 주는 편안한 형식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양심의 불편함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다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신과 담판을 지어야 했다어쩌면 그의 이런 불안한 양심이 그로 하여금 세속적 출세가 보장되는 법학도의 길을 걷지 않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을 것이다그를 둘러싼 죽음의 그림자가 세속인으로 살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즉 루터는 전쟁과 기근과 질병이 절정에 달한 엄혹한 시절에 태어나 문득 이 세 가지가 인류사에서 중단근절된 것이 있었던가 싶다만 지긋지긋한 클리셰처럼 당연히 귀족들은 부어라 마셔라 화려한 삶을 살면서 현생의 부도 천국의 자리도 우리끼리 차지하자는 욕망이 가득한 불평등한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자꾸만 이 시대상이 고치지 않고도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듯해서 소름이 돋는다죽음을 신의 형벌로 선전하며 대중의 의식을 조작하고 통제하려는 행위가 여전히 예수천국 불신지옥 등등으로 온존하니 그 오랜 세월이 무색하다.

 

그런 기독교 계급이익공동체에 반해 루터에게는 오히려 인간개인나 자신양심이라는 근세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자각이 생겼다그들의 신에만 의지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삶보다 불안하지만 현명하고 올바른 성서 제대로 읽기와 번역과 유포를 통해 성서에 충실하고 인간을 구원하는 목적에 보다 적합한 종교를 향한 루터의 선택과 여정이 뭉클하다.



루터는 성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513년부터 성서학 교수로 비텐베르크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탁월한 소통 능력 덕분에 교수 루터는 큰 인기를 누렸다그는 강의 시간에 독일어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당시 대학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라틴어였지만루터는 일반인이 사용하는 독일어에 가끔 욕설까지 섞는 파격을 마다하지 않았다이러한 행동은 학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계산한 것이었지만그의 불같은 성정도 한몫했을 것이다그 어려운 스콜라철학마저 루터의 입을 통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이런 인기 덕분인지 유럽의 많은 학생들이 비텐베르크대학에 입학하고 싶어 했고, 1515년부터 1520년 사이에는 그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이 점 역시 대학을 세운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에게는 매우 흐뭇한 일이었고루터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된 주요 이유였다.

 

선구자나 개혁가가 고난과 핍박을 받는 이야기들은 읽기가 우울하고 힘겹다다행히 루터는 자신의 노력이 가장 큰 동력이자 이유이지만 소통능력이 탁월하고 독일어를 사용했음에도 명강의로 평가받고 필요한 지원도 확보했다니 읽는 마음도 편안했다역사 속에 이런 일이 당연한 듯 더 많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즈음 그는 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제대로 푸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게 되었다성서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신의 뜻이 아주 분명하고 선명하게 담겨 있는 책이다성서만이 성서의 메시지를 풀어내는 최고의 근거가 되었다루터에게 성서란 전혀 어렵지 않으며 노력하여 기록된 문자와 그것의 문법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면 성서의 메시지는 분명히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 루터는 확신했다.

 

이렇게 루터는 비텐베르크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캐릭터를 완성해 갔다성서를 원문으로 읽으며 얻은 자긍심과 권위까지 갖추게 된 루터는 중세의 한복판에서 매우 낯선 주체적 개인이 되어 갔다.

 

외부의 영향이나 다른 계산다른 목적의 동기 부여 없이 연구 대상만을 보고 제대로 탐구해보는 드물고도 귀중한 기회 역시 가능했다루터의 능력으로 이룬 일이겠지만가짜뉴스가 바이러스 확산 속도보다 더 빠르게 유통되는 기막힌 현실에서사실과 진실이 정답이자 가장 힘이 세다라는 역사적 사례를 읽게 되어 기운이 난다.

 

누군가 알려 준 내용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원전을 읽고 내용을 확인해서 성서에 기록된 신앙의 핵심을 정확히 깨우치고 그것을 다시 글로 옮겨 전한 것이 오랜 세월 모르고 살았던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의 전체적인 모습이자 요체였다.

 

다시 한 번 ~카더라…… 아무리 폭력적이고 악의적인 내용일 지라도 망설임 없이 유통되는 작금의 사태에 비해 남들이 오도하는 말 말고 내가 직접 읽고 확인하고 오류를 고쳐 세상에 전하는 일그 바로잡음이 역사를 바꾼 중요한 실천이라 믿는다.

 

지금의 우리가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려면 '루터'라는 한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곤란하다그보다는 그가 어떤 시대어떤 문화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런 일을 했는지를 반복적으로 되물어야 할 것이다결국 인간은 역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저물어 가는 중세의 끝자락에서 올곧게 한목소리로 신의 은총을 기리는 주체적 자아를 외친 루터를 잊어서는 안 된다아울러 성서를 읽으면서 찾아낸 진리를 이웃으로 확장하려 했던 그의 투지도 기억해야만 한다



드디어 조각지식정보들이 온전히 자리를 찾아갔구나 싶어서 읽고 나니 기쁘다이 책이라면 도전한 누구라도 힘들지 않게 잘 읽고 배울 수 있을 듯해서 또 기쁘다이제야 영화의 제목이 왜 [위대한 여정]이었는지 감정 이입이 좀 된다시대를 도저히 거스르며 나아간 긴 여행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사건과 깊은 의미에 감동받을 수 있어 벅찼다참 오랜만에 거대담론의 분위기에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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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여행지리, 파리 문화예술 탐방기
이두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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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고 저자의 생각이 얼마간 짐작된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이 책도 그러한데 여행가이지만 누구보다 더 파리의 지리역사감수성까지 상세히 담아 주려는 에너지 가득한 시도가 빼곡하다당연히 도시 공간으로서만이 아니라 파리의 문화와 예술 콘텐츠들을 아우르는 작업이기도 하다


신난다제 여행을 가서는 한 줄도 글을 쓰지 않으면서 남의 여행기 읽기를 무진장 좋아하지만 힐링 여행기는 안 읽는다.

 

그 장소를 몇 번을 갔건 얼마나 오래 살았건 그곳을 안다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한 때 틈만 나면 영국을 벗어나고 싶어서 기회만 있으면 가서 머물려 했으니…… 횟수로도 여러 번어느 해 겨울은 센 강 옆 세모난 아파트를 세 얻어 셰익스피어앤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까지 왔다 갔다 하릴 없이 강변을 걸어 다니며 지내기도 했다.



부지런함과 기록의 부재로 온갖 가지 장면들만 난무하지 그토록 배울게 지천이라는 곳에서 뭘 배우진 못했다인상주의 화가들 작품 몇 개 구경하는 것 말고는 오르세Musée d'Orsay에서도 스케치하는 화가 지망생들 작품들만 내내 구경하며 멍 때리기만 한 것 같다어차피 거대한 규모의 오르세나 루브르Musée du Louvre는 나 같은 길치가 다니기에는 아주 위험한 장소이다그나저나 유리 피라미드 뭡니까왜 그런 겁니까.

 

어느 날은 파리10대학에 유학 중인 친구와 에펠탑에서 야경 보며 수다 떨고 있는데 직원이 조용히(?) 승강기 멈추고 조명 다 끄고 퇴근해서 어둠 속 회전계단을 더듬어 1층까지 내려와서 탈출(?)한 적도 있다꽤 오래 걸렸습니다에펠탑은 높은 건축물이 맞습니다. 여행의 취향은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게 없어서 당시에도 파리에서 머무는 일은 땅을 발로 꼭꼭 밟으며 걸어 다니는 속도에 맞추어 곳곳에 기록된 역사적 의미를 떠오르는 대로 새기는 재미가 컸다.

 

집시들이 다 사라진 몽마르뜨도 한산했고 해질 무렵의 샹젤리제 역시 천천히 걸어 지나기에 최적으로 설레는 곳이었다노트르담 대성당Place du parvis de Notre Dame은 완공된 게 아니었나 싶게 몇 해에 걸쳐 갈 때마다 공사 중이었고…… 그땐 욕 많이 했는데 작년에 화재로 첨탑이 전소되는 장면을 보고 정말 슬펐다성탄절이 가까워질수록 연주회가 많아져서 가끔 중간에 적당한 성당에 들어가 잠시 들으며 몸을 녹이기도 했고뱅쇼Vin Chaud를 여기저기서 맛보다 어느새 알코올중독처럼 매일(?) 마시게 되었다.




어디서 사먹든 빵과 오믈렛은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지만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별 매력도 없던 파리가 언제 다시 갈지 모른다 싶으니 라고 조용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고 그립다그리운 건 그 시절과 사람들일 지도 모른단 생각이 이어서 들지만어쨌든마음이 살살 에이는 것을 불안하게 감지하며 이러다 훌쩍거리는 거 아냐싶은 주책없는 생각도 하며 천천히 읽었다.




파리의 역사는 기원적 3세기경부터 시테 섬을 거점으로 시작되었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강 중류의 거주지란 뜻의 루테티아(Lutetia)라고 불렀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도시로 성장하였다.

시테 섬은 센강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요새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3세기부터 이름 붙여진 파리(Paris)’는 이 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갈리아 부족인 파리시(Parisii)에서 유래하였다. 19

 


프랑스어로 공을 뜻하는 불(boule)은 프랑스 빵을 통칭하기도 한다.

일찍이 음식 문화에서 빵이 주류를 이루었던 프랑스에서는 제빵사를 밀가루를 공 모양으로 반죽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불랑제(boulanger)라고 불렀다.

빵은 무게와 길이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한다바게트(baguette)는 긴 빵을불은 둥근 모양의 빵을 의미하며바게트와 불 중간을 바타(batard)라고 한다버섯 모양의 빵은 생피뇽(champignon), 길고 통통한 빵은 파리지엔(parisien), 바게트보다 가늘고 짧은 빵은 플루트(flute)라고 한다. 39

 

가장 관심이 있는 건 여전히 파리의 역사 조금과 빵밖에는 없는 건가.

보고 싶은 풍경도 여전하다.

편애와 편식은 아직도 나의 모든 출발이자 도착이다.

 

두근거림과 설렘이 없어진 건 여행을 멈췄기 때문이다란 생각이 확신범처럼 들었다이전에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다녔던 경우는 거의 없지만 즐거움과 죄책감을 매번 저울질하다 긴 비행이 필요한 비즈니스가 아닌 여행은 그만하자고 결정한 것이었는데 어쩐지 삶의 활력도 재생과 보충을 멈춘듯했다언젠가는 심장이 정말 뛰고 있는 건가 진심으로 의심(?)이 되기도 할 만큼 그렇게 설레는 일 또한 사라져갔다.

 

아니었는데 지금도 아닌데이 모든 게 다 코로나 때문이에요, 라는 선동들도 꽤 들리는데나도 코로나를 핑계 삼아 아몰라 작전으로 예전 소원처럼 여행을 하다 길 위에서 삶을 마쳐보도록 할까사춘기도 갱년기도 아닌데 이런 무책임하고 도발적이고 발작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새해가 365일 중에 5일밖에 안 지났는데 참으로 위험하고도 멋진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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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 이택광 묻고 지젝 답하다
슬라보예 지젝.이택광 지음 / 비전C&F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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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 이런 유의 문구들을 참 많이 보며 살았다너무 뻔하고 흔한 말이라 그 뜻을 진지하게 새기지도 않았다2021년만큼 하루하루의 현재도 미래도 모두 만들어가야하는 시절이 실제로 닥칠지 몰랐다. 2020년과 2021년은 인류사에서 시공간적 격차가 가장 크고 뚜렷한 경계를 그었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비전이 나와야 합니다.

신기원의 순간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야만주의로 퇴보하고 말 거예요.

 


2021년 1월 4일자 통계로 미국은 무려 2천만 명이 넘게 확진되고 35만 명이 넘게 사망했다이 와중에 아직 대통령임이 분명한 트럼프는 통계 숫자가 가짜뉴스라고 떠들고 선거결과를 놓고 조지아주 주지사에게 협박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2위에 올라 선 인도는 자체개발한 백신을 임상 없이 오늘부터 자국민들에게 투여하기로 결정했다.



백신이 얼마나 역할을 할지는 모르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코로나 체제를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건 확실하다. AC(After Corona)의 시대,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이라는 문구가 붙은 사회 각 분야의 논문들이 발표되고 온라인 학술대회들도 앞당겨 개최되는 분위기이고 기업 사장들은 저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인터뷰를 한다혼돈이 가득한 가운데 인류는 하루도 유예할 수 없는 스스로의 생존 조건을 새로 만들어가야 한다.

 


코로나 시절을 보건과 방역으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졌다이 위기는 기회로 삼을 만한 위기가 아닌 듯하다.* 인류가 상대하는 건 감염병이 아닌 듯하다오늘은 전국이 2.5단계에 체제로 전환되었다언제나 기대와 희망은 놓지 않으려 하지만일상도 심리도 이미 5단계쯤으로 살아온 이들도 있을 테고나는 절대 안 걸린다는 신념을 근거로 딴 세상을 즐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그러다 안 걸리심 제일 좋은 일이지만본인 포함 타인까지 감염시킨 경우 사회적 비용과 관련자 개별 보상까지 반드시 감당해주시길 바란다.

 

제 생각일 뿐이고 다행스럽게도 세계적인 석학들은 모두 기회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국가와 협력하는 국가지역 사회와 협력하는 국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가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 국민이 신뢰하는 국가!

또 국민을 신뢰하는 국가가 필요합니다.

 

전 지구적 나눔과 협력이 바탕이 되는 새로운 국제주의 말이예요중략.

이제는 남들과 연대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 됐어요.

길게 보면 내 이웃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기 때문이에요.

저쪽에서 수천 명씩 죽고 있는데 내가 있는 이쪽만 안전할 수는 없어요.

 


한 번에 다 생각하고 줄 세우기에는 벅찬 복잡한 문제들이 줄 지어 있고인류 전체가 으쌰으쌰 합의와 행동에 돌입한다 해도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부지기수일터인데언제나 그렇듯 기존 권력은 뉴노멀을 언급하는 그 순간에도 간절히 구질서를 회복시키고 유지하려 있는 힘을 다할 것이다뉴노멀은 각자도생의 새해 결심으로 이를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 반드시 구조적 변화가 필수적인데그 동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지식도 고민도 모자라서 잘 안 보인다.

 

사라진 적도 없었던 불평등은 확실히 더 강해질 것이고 더 어긋날 힘의 균형은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시민이나 개별 이해당사자들이 관료기업정치조직보다 더 단결하여 더 오래 변화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공학적 계산법을 누가 발표해주면 감사하겠다.

 


그러니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개인적 과제와 대안은…… 일단 열심히 배워서 질문을 계속한다불평등을 심화하는 시도가 눈에 띄면 가능한 방식으로 대항한다그 와중에 뉴노멀을 지향하는 할 수 있는 소소한 개인적 실천을 묵묵히 계속한다공감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아 지지하고 응원한다가능하면 협력하고 연대한다그리고 끈질기게 믿고 버틴다정도이다.

 

제일 쉬운 일 단계책으로 배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형 인간으로 거듭 나기 위해 읽은 2021년 첫 책의 제목은 공교롭게도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이다. SBSCNBC가 기획한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 중에서 1부 철학 파트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편집한 책이다동영상이 함께이니 읽기 쉬운 참 좋은 교재 같다.

 

* 1부 철학, 2부 정치, 3부 생태, 4부 교육 분야이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MFtInytGPb98UUCjJHdsQw


가물거리긴 한데 2012년에 경희대 대강당에서 초청 강연을 끝으로 한동안 슬라보예 지젝의 사회철학을 접한 기억이 없다시의 적절하게 출간된 책이 반갑다다들 제 국가에 제 집에 갇혀 사는 형편이라 언론이 전해주는 것이 정보의 대부분이다각 국가별로 비판과 락다운과 인권침해와 정부정책 등이 다를 것이고 시간이 지나 그 모든 과정들이 어떤 결과로 수렴될지 불안하기만 하다코로나 피해가 극심한 유럽 국가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형편이 궁금했는데 얼마간 해소된 기분이다.

 

한국이 파란만장한 역사를 극복해온 과정이

팬데믹 상황을 버텨내는데 자양분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한국은 말 그대로 우리의 희망입니다.

 

국난극복이 취미인 이들이 한국인들이라는 얘기를 2020년 초여름쯤에 들었다파란만장하게 살아 봤으니 또 할 수 있지하는 건 좀 약이 오른다그것보다는 우린 많이 했으니 이번엔 누구 다른 이들이 해봐라가 훨씬 정의롭게 들린다진심이다.


이 모든 게 다 꿈이고 가상체험이고 잘 만든 신나는 영화처럼 구세주나 영웅이 딱나타나주면 좋겠지만그건 남들은 많이 봤다기에 열심히 원해도 나는 한 번도 못 본 귀신처럼 부질없는 바람이다


끈질기게 견디고 버티고 그래봅시다.

속 시원한 다른 좋은 방법 아시는 분들은 얼른 널리 공유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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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 없는 나의 촉법소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1
황성희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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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有名)하지 않은 존재들의 이름과 사소하고 시시하게 취급되는 일상의 시간들조차 열심히 불러주는 시인이라고 전해 들었다.

 

좋아하는 이들의 말에는 늘 솔깃하니 마음이 울리는 호평을 듣고 나서 만난 시인의 모든 시들이 잘 보이지 않는잊혀진지워진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들을 부르는 목소리로 들렸다시인이 돌아본 모든 존재들이 오래 소외당했거나 가장 쉽게 소외되기 쉬운 아주 사적인 존재들로 느껴졌다그 세상은 고공관찰로 파악되는 말끔한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다.

 

20대엔 모든 시가 반갑고 좋기만 했다이제는 시를 읽는 일에 용기와 체력이 필요하다심지어 아는 시를 다시 읽는 일도 그렇다여전히 읽히지 않는 시들은 황당하고 속상하고 예나 지금이나 절창들인 시들 역시 강렬한 감정을 품은 만큼 난감하고 버겁다.

 

황성희 시인이 시 속으로 데려온 모든 사소한 존재들은 이전까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 무색할 만큼 반짝거린다그리고 그만큼 시들 또한 만물을 주관할 능력을 키우며 성장해가는 듯 풍성해진다인간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미시세계의 원자들에 대해 전 세계가 연구하면서도 일상에서의 실체적인 소외는 못 보거나 안 보거나 한다그래서 사는 일이 너나없이 지치고 서글픈가 싶기도 하다시들을 읽을수록 내 일상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오래 전 융의 심리학 강의를 듣고 기억에 남는 내용들 중 하나가 '우울depression'이라는 말의 공허에 대해서였다잘 생각해보면 우울하다라는 의 실체란 건 모호하기 그지없거나 공허한 호명이다. ‘우울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물어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화에서 우울은 사라지고 신체적 느낌들이 대체된다머리가 아프다배가 아프다다리가 무겁다팔이 저리다…….

 

아예 우울함을 드러내지 않고 하루 내내 슬픈 느낌도 들지 않고 증상을 감추고 가리며masking 자신의 고통을 경시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전혀 우울해 보이지 않는 가면우울증masked depression이 있다공식적인 진단 구분이 존재하지 않지만 상당히 흔한 질환이고오히려 신체 통증으로 전혀 상관없는 진료를 받거나 검진을 받기도 한다슬픔을 느끼고 싶지 않아 강박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마치 한동안 정보폭탄 속에 사는 방식을 선택하니 판단할 시간도 정서적 여백도 없어 오히려 편안했던 2020년의 내 모습 또한 그렇다.



그래도 아프다는 신호는 몸의 어느 부위든 두드리게 마련이고내 경우에는 복통인 듯 아닌 듯 오락가락하는 위통이 달라붙어 있다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우울증을 어떻게 평가하고 진단할 수 있을까불안이나 우울과 꽤 오랜 시간 함께 지낸 자신감에 나는 이번에도 단지 번거롭고 성가실 뿐이지만올 해 역시 생존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그런 시간이 이어질 거란 생각이 들 때마다 명치가 구겨지는 느낌이 든다.

 

[가차 없는 나의 촉법 소녀]의 시들을 읽으(려 노려하)며 마치 기억나는 시절부터의 시간을 누가 억지로 헤집듯 속이 울렁거렸다딱히 반드시 감추고 싶은 기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도 나는 알지 못하는 알려지기 싫은 기억이 떠오를 것처럼 불쾌했다날카로운 사회의식과 발화 방식과는 별개로 시인은 담담하게 자신이 감내한 고통을 이야기하는 정제된 작품들 안에서 시인의 언어들이 단정할수록 내 감정은 경계색을 현란하게 발산했다.

 

제목 때문이었을까. <난동 직전>이라는 시를 며칠 째 잡고 읽고 또 읽었다말이나 글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단 한글자도 떠오르지 않아 마치지 못하는 업무처럼 갑갑했다. 2020년 내내어쩌면 더 오랜 시간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꼭 한번이라도 부리고 싶었던 난동이 새삼 아쉬웠던 심정 때문이었는지, ‘직전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아찔한 긴장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헛다리를 짚었든 둘 다이든 별 상관은 없다.

 

난동 직전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

단 한 가지 결말을 위해 수십 년을 허비해왔다

똑같은 모양에 머무르지 못하고 매 순간 무너졌다

...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무의 멱살이라도 잡아야 했다

한 번 정도는 확실한 것을 붙잡고

흔들어보고 싶었다

 

출발하지 못하는 차들이 비키라고

경적을 울려댈 때면

가장 큰 경적을 울리는 차를 향해

왜 달려들지 않겠나

 

꽉 쥔 주먹으로 차창을 깨는

구체적 사건을 저지르고

피범범 손엔 팡파르처럼

왜 경적을 울리지 않겠나

 

어쩌면 나는

이 한 장면을 위해 급조되었는지 모른다

 

살가죽이 째지고

뼈가 부서지는 타격감을 위해서라면

 

모든 호흡이 매도당하고 낭비되는

쓸쓸함이야 얼마든지

 

아이약한 것어두운 것이런 존재들을 부르는 시인이라 감동하고 감사했는데 이번엔 시인이 불러내는 소녀의 윤곽이 뚜렷해질수록 소름이 끼친다시사 뉴스라면 머리끝까지 화가 날지라도 동요 없이 들을 수 있을 일이 시인의 고민과 문제의식으로 표현되자 마주할 자신이 없어진다제목에 등장한 소녀의 상태를 바로 아는 일도 성장을 보는 일도 두렵다시인은 반복해서 아직 악몽을 꾸는 어린 사람’, ‘자라지 않는 것을 선택이라며 쳐다보기 무서운 그 소녀를 부른다.

 

억지로 눈을 뜨고 끝까지 읽은 상당히 비겁한 모양새이긴 하지만어쨌든 다 읽고 나니 50번의 부름 - 50편의 시 을 통해 시인은 서서히 치유되고 추스르고 화해하고 용서하며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벗어났구나 싶다자신의 언어만큼 용감하고 단단한 분일 것이다단 한 발도 떼기 싫어 다 잊히기만 바라는 그런 순간들이 여러 모로 멀쩡한 어른들에게 얼마나 많은지를 모르지 않는 나이라서 그렇다그런 어른들 말고도 이 시들이 필요한 소녀들은 이 시들을 만나게 될까……어차피 크리스마스 소원은 안 이뤄졌으니 다시 빌어볼까 싶다.

 

시인의 말

...

당신의 시간을 조금 빼앗고

내 방식으로 낭비해도 되겠는가

 

당신의 마음에 나의 상처를 새겨 넣고

조금 흔들어보아도 되겠는가

...

 

지난 며칠 동안 내가 한 일이 이거구나시인의 시를 읽었다는 내 말은 이 말에 다름 아닌 것 같다.

 

말랑할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시어보다는 좀 더 다정스런 산문 글을 읽게 되리란 막연하고 멍청한 기대를 걷어차듯 시인의 에세이를 읽고 소스라치는 경험을 했다가면 우울증을 앓는피에로를 두려워하는 독자가 스티븐 킹의 괴물 피에로(IT)를 마주칠 줄이야황성희 시인의 강함은 에세이에서 절정을 맞는다자신의 일부로 녹아 붙은 태생적인 두려움의 정체를 찾고 시를 만나고 그 괴물의 근원과 시의 구동력이 동일한 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이제 시인은 다시는 도망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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