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이방인의 산책
다니엘 튜더 지음, 김재성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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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이방인의 시선에 머문 현지인즉 한국인의 외로움에 대해 썼다고 하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기억이 안 나서일 가능성이 더 많긴 하지만 처음 만난 종류의 변별력이 있는 용감한 책이란 생각에 기대가 컸다한국 사회가 백인 남성에게 가장 우호적이고 너그럽긴 하지만모욕당했다고 느끼게 되면 표현한 호의에 정확히 비례하는 혹은 몇 곱절의 반감과 배척도 가능한 사회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여전히 가끔은 믿기지 않는 현실이지만나의 생존과 타인의 생존이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최고조로 인접되어 있는 시절이다아무리 물리적 거리두기일 뿐 심리적으로 우린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해도그건 마치 아주 재미있고 그리운 꿈을 꾼 아침처럼현실에 머물러 주지 않는 위안이다책과 저자를 경애하는 나에게 모든 책들은 거의 실패 없이 위로고 격려이고 지지대이지만읽고 나면 갑갑한 테두리가 쭈욱 늘어난 기분이 들 이 책과 저자가 유독 반갑다.



언제나 경계해야 할 일반화의 오류이기도 하지만어쨌든 수년 간 함께 지낸 경험으로 진지한 영국인의 분위기를 모르는 바도 아니기에 별 기대가 없다가작가 소개에서 크게 웃었다알 듯도 모를 듯도 한 범생이와 사차원의 중간 어디쯤은 어디인가요게다가 내가 과문한 탓이긴 하지만첫 출간이 아니라 이전 출간작들의 제목이 한국 사회에 대한 깊숙한 경험과 고단한 숙고를 느끼게 한다.

 

야근회식 없으며 점심시간 자유로움.” 올해 초 우리 회사 채용 공고에 실었던 문구다중략. ‘여러분은 각자의 삶을 원하는데 여전히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여기서 우리와 함께 일해요.’ 이게 메시지의 골자다.

 

점심시간의 의례 가운데 특히 질색이었던 것은 가장 높은 사람이 쉼 없이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는 …… 아이그럼요” 하며 맞장구를 치는 거였다그것만 피할 수 있다면 감봉도 감수할 것 같았다.

 

부서 술자리도 잦았다그런데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이따금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주말 등산이었다중략서구 개인주의 감수성이 꿈틀꿈틀 올라오면서 분노가 솟구쳤다왜 내 인생을 소유하려고 하지일만 해주면 되는 거 아냐?

 

돈은 정확히 계산해줄 테니 미친 듯 일해 달라, 는 첫 회사를 과로사로 죽기 싫어 탈출한 후긴장이 풀린 탓에 속 편하게 아는 바도 없이 9-6으로 반복되는그야말로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한공사 채용에 덜렁 지원서를 넣었다취업대란에 시달리는 이들의 분노를 살지도 모를 일이나 어쨌든 당시에 간단명료한 이력서와 지원 동기를 보내자 이메일로 면접 일시가 도착했다글로벌 외국기업과 글로벌 한국 대기업이 치고받는 사이에서도 버티고 살아남았다는 경험이 키운 무모함과연봉에 육박하는 시간 외 수당 덕에 당장의 생활비 걱정이 없어서였는지 청바지에 배낭 메고 오신기해구경 나온 듯 찾아가서 어딘가의 한 쪽 파티션에서 부장과장 그리고 대리 두 명을 만나 한담을 나누다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발령 난 곳이 한 사무실에 200여 명이 근무하는 설계팀이었다그때야 뭔가이런 조직 생활할 수 있는 거였어……라는 현타가 왔지만 이미 늦었다생양아치가 될 작정이 아니라면 첫 출근 날 사의를 표명할 순 없는 일이었다.

 

친하지도 않은 타인과의 피부 접촉을 싫어해서 악수는 안 합니다채식인이라 고깃집 회식은 안 가겠습니다햇볕 알레르기가 있어서 여름 등산 야유회 참가 의사 없습니다점심은 시끄럽고 후텁지근한 직원 식당 말고 알아서 도시락 먹으면 안 될까요식사 후 함께 하는 내기 당구 싫습니다술잔을 높이 들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일은 바보스러워 안 하겠습니다.우리가 남이 아니면 뭡니까국회의원 감사일에는 왜 TV를 틀어 놓고 업무를 해야 합니까부장 퇴근 전까지만 일하는 척하는 야근은 하지 않겠습니다, 2팀 부장님은 왜 근무시간에 영어학원에 다녀오시는 겁니까이사님의 주된 업무는 한 달에 한 번 나타나 소리 지르는 일이 다입니까 등등 등등.

 

출퇴근 통근버스가 집 앞으로 와서 태워주고 일은 널널하고 복지 혜택은 완벽하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직원 모두가 야근을 한 것으로 조작해서 월급을 늘려 주고 다 세금입니다친해졌다고 판단되는 직원들은 어지간한 실수에도 미래와 인생 전반을 걱정해주며 퇴사시키는 법이 없는 인정 많은 직장이지만첫 번째 3개월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는 퇴사할 기회를 찾고 싶었다매번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없는 기회라고 만들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격해졌다.

 

하늘이 도와 다행히(?) 인도네시아 장기 출장 일정이 잡힌다는 소식에 나는 당분간 한국을 떠날 수 없는 개인사가 있고그 시기가 지나면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순 뻥을 치며 눈물의 이별식을 무사히 치렀다지금 생각해도 그 공개적인 거짓말에 심장이 화끈거린다스스로에게 불리한 것을 잘 잊는 기억력을 신뢰하기란 힘들지만그건 내 생애 최초의 치밀하고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다뭐 한편으론 탈출 계획이라 명명하고 싶지만.

 

그러니 직장은 달라도 저자가 겪은 예시가 어떤 장면인지 어떤 기분인지 마치 전투 동료를 만난 듯 이해가 잘 된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길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모든 공동체와 공동체적 가치가 아니다아는 바가 별로 없긴 하지만인류가 협동의 결과물로 지금의 문명을 이룩했다(그 문명 전체가 지금 최대 위기를 맞고 있지만)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그러니 공동체에 대한 귀속감과 정신적 가치라는 건 유구한 생존의 문제이기도 했고 여전히 그렇고 미래에는 공감과 연대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 중 얼마 동안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욕망이 무시되는 건 절대 안 될뿐더러나로서는 그런 식으로는 업무는 고사하고 존재를 지속할 수가 없다내가 만약 부양할 가족이 있는 형편이라 떠나고 싶은 마음이 폐부를 찔러도 버텨야 했다면 그 부작용이 어떤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내부로 혹은 외부로사회인으로 처음 겪은 한국 사회 거대 조직에서의 경험과 버티고 견디는 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이후로도 오래실은 지금도 내 처지에 대한 불평의 대부분을 사그라지게 한다.

 

개인으로 존재하고픈 욕망의 핵심은 단지 집단성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게 아니다더 중요한 건 위계적인 문화와 무례한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다회사생활뿐만이 아니다학교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개인적인 질문을 받지 않을 자유청하지 않은 조언을 듣지 않을 자유진로 결정과 옷 입는 스타일과 외모와 사귀는 사람(또는 그런 사람의 부재기타 등등을 조사받고 비판받지 않을 자유그리고 혼자 있을 자유양심을 존중받을 자유를 원한다.

 

나는 살면서 완전한 타인들의 도움을 수없이 받았다아니 그 덕분에 많은 시간 많은 장소에서 살아남았다어떤 경우에는 내게 무슨 축복이 내린 건가싶게 기적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나타나 도움을 준 적도 많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니어지간히 둔한 건지고집스러운 건지하지만 솔직히 현상을 짚어보면 그건 내 운에서 비롯되는 일이 아니다그건 도움을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이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겸손해서가 아니라 확률적 타당성이 비교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후자가 더 높다그리고 다른 식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호의와 태도에서 아주 깊이 배운 바가 있다굳이 위계를 세우고 귄위를 드러내지 않아도집단주의 가치를 설파하지 않아도개인주의자들은 충분히 스스로도 타인들도 모두 존중하면서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 수 있다한국은 정!이라는 정보를 듣고 뭔가 기대했다가아주 튼튼한 자기 울타리 밖의 타인에게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듯 무관심한 행동들에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물론 아무 상관없는 이가 차 밑에 깔리면 사방에서 몰려들어 차 한 대쯤 번쩍 들어 구조하는 멋진 일도 동시에 존재한다단지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아닌 훨씬 더 긴 일상의 시간들에 무심히 가하는 폐해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개인주의’ 전통이 깊은 나라들에는 동료 또는 가족 구성원 간의 상대적으로 약한 결속을 보완해주는 장치가 있다일례로 북유럽 국가는 통상적으로 높은 사회적 신뢰사회적 자본그리고 복지제도를 갖추고 있다그곳 사람들은 어려운 형편에 처한 낯선 사람들을 기꺼이 돕고같은 나라나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 사이의 공유 가치와 평등 의식이 높은 편이며자선활동도 활발하다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바로 이것이 전통적 개인주의 사회 구성원들이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집단주의 사회 구성원들보다 덜 외롭고 소외감을 덜 느끼는 이유다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보다 넓은 공동체를 이루며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희미한 인식이 있어서다.

 

정부와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쳤고 그런 가운데서도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그럴듯하게 부정적인 하나의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이방인의 눈으로 볼 때 사회적 일체감은 월드컵이 열릴 때나 일본 정부가 자극적인 언행을 할 때만 조성되는 것 같다.

 

사회안전망이 약한한 번의 실패로도 인생이 결정 나고 회복탄력성이 낮은 고학력 전직 기업가사업가 노숙인들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사는 일의 고단함을 모르지 않는다한국에서 직장 생활 4년 차에 나는 범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언제나 불안한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고 개인의 노력으로는 거의 대부분이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이었다또한 선택지가 거의 없고 있던 것들마저 계속 줄어들 것이란 실감이었다당장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긴 미래에 나는 경제적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지재정 말고 다른 삶의 면면들은 어떻게 건강하게 채우고 성장시켜야 하는지 계산도 계획도 어려워졌다.

 

한국에서 발달한 자본주의는 대부분의 재물과 대부분의 기회가 몇몇 일가에 집중된 결과 전망 좋은 신기술을 갖춘 중소기업 사주보다는 임대료를 챙기는 건물주가 되는 편이 나은유난히 불공평한 자본주의다냉소를 낳지 않기 어렵다.

 

두어 해 전에 서울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한 옛 친구와 만났다외로운 남자들이 인스타그램상의 여자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프로젝트도 부업 삼아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사용자들은 메시지 하나에 천 원씩 내고 밥 먹었니?” “잘 잤어?” 같은 질문을 받는 모양이었다나는 배를 잡고 웃으며아니 그런 걸 돈 내고 사용하는 사람이 정말 있느냐고 물었다이미 짐작하겠지만사업이 퍽 잘된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미국 힙스터들의 안식처인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커들 업 투 미(Cuddle Up To Me)’라는 업소는 2014년부터 시간당 80달러를 받고 손님을 안아주는 영업을 해오고 있다최고의 만족을 주기 위해 여섯 개의 테마로 방을 구분해놓았으며 선택할 수 있는 자세도 일흔 가지나 된다고 한다성적 접촉은 일절 금지다.

 

온라인에도 진출해(안아주기의 에어비앤비랄까등록된 수천 명의 안아주기 전문가가 손님을 기다린다내 고향 맨체스터의 온라인 커뮤니티 커들 네트워크(Cuddle Network)’에서는 1200여 명의 회원이 정기적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 몇 시간씩 서로를 안아준다(실망하실지 모르지만 나는 안 가봤다).

 

일본에는 비용을 내고 안길 수 있는 카페들이 있는데 상대방의 눈을 1분간 들여다봐주기등 토닥여주기머리 쓰다듬어주기 등 성적이지 않은 선택 서비스도 제공된다고 한다중략여자들이 돈을 내고 잘생긴 남자 앞에서 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곳에서는, 7900엔을 지불하면 미남이 눈물을 닦아준다창업주는 함께 울기’ 행사도 열고 있다.

 

전 세계에 621,585명의 친구가 대기중이라는 웹사이트 렌트 어 프렌드(Rent a Friend)’가 있는가 하면요즘은 대체 가족까지 렌트할 수 있어 엄마 렌트를 필요로 하는 뉴요커들은 시간당 40달러에 밥을 해주고 각종 충고와 정서적 지원까지 제공하는 63세 아주머니 니나 케닐리(Nina Keneally)를 빌릴 수 있다일본에서는 원하면 가족 전체를 렌트할 수도 있다또한 패밀리 로맨스(Family Romance)’라는 곳에서는 친구와 대리 애인을 빌려주는데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 많은 핵인싸로 보이도록 함께 사진 찍는 일에 서비스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정녕 세상의 종말이 가깝다는 징조 아니겠는가).

 

외로움 타개를 도와주는 상품도 있다가격이 200달러에 달하는 중량감 담요는 안기고 보듬어주는 듯한 느낌을 유발해 신경체계를 이완시킬 수 있도록 체중의 7~12퍼센트 무게로 설계됐다”. 중략. ‘남자친구 담요(Boyfriend Blanket)’란 이름을 단 경쟁 상품이 출시되기도 했다본래 자폐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있던 것이지만지난 5년간 구글 검색 횟수와 매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외로움을 덜어주는 약물 개발 연구도 한창 진행 중이다..

 

앞으로는 어쩌면 외로움도 증후군이나 질병으로 여겨져 치유 약물이 개발되는 등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적 해결책이 개입할지도 모르겠다중략가족과 친구들이 퇴장한 공간으로 이미 시장이 진입하기 시작했다상상만 해도 슬프지만정서적 유대를 제공하는 것 또한 차츰 누군가 돈을 받고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다.

 

전혀 모르던 내용이라 SF의 내용인 듯한 이 산업들이 모두 현업 중이란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게다가 중량감 담요불면증에 도움이 된다니 솔깃하다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두고 온갖 보조공학 제품들이 팔리는 것처럼외로움 역시 판매 시장이 커질수록 수익성이 높아질수록 불가역적으로 약물 상품들이 개발 판매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냉정하게 말해보면 타인과 충분한 정서적 유대를 안전하게 키워나가는 일의 수고에 비해 제품들의 가성비가 좋다고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효과가 있어도 없어도 역시 서글프고 씁쓸한 기분이 든다.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중략. ‘그 관현악단에 반드시 입단해야 해’ 하는 심리적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머스터베이션musturbation’이라는 재미있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한국보다 머스터베이션의 손아귀에 꼼짝달싹 못하게 붙들린 나라가 있을까역사적으로 뼈아픈 현대사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고도의 경제성장높은 교육수준해외에서의 인정 같은 성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절감했을 수 있다하지만 그런 지향이 한국인 개개인에게 미친 심리적 영향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이방인의 눈으로 볼 때 부모의 경제적 부담과 자녀의 정신건강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명문대에 보내려는 맹목적인 노력에서부터 한국인의(그게 누구든 어쨌든 한국인이면 된다노벨상 수상 여부에 대한 언론의 집착까지이 나라는 필사적으로 결과에 연연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이런 사회 분위기가 표절자료 위조경쟁자에 대한 고의적 방해 같은 반사회적 행위를 더욱 부추긴다그뿐 아니라 이런 풍토는 대부분의 사람을 실패자로 만든다.

 

must-urbation. 한국 사회에서 불안을 양산하는 많은 원인이 바로 한탕주의 입시에 기인하다는 것을 통감한다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그 이후에도 취업결혼출산육아승진 등등등 등등등 끝없는 지옥의 관문들이 이어진다는 것이다그 와중에 외모 관리도 하고 재테크도 해서 내 집 마련도 빚 내서 해야 한다.

 

중언부언이지만 성취 지향적 요구와 압박은 강하고 사회안전망은 약하니 자살률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는 절규는 맞는 말이다사회적 조건화가 이만큼이나 강한 상황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인지하고 적응하고 망가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단 말인가아닌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많이 오래 하는 이레 우왕좌왕이 있지 않을까 싶다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조바심을 낸다.

 

우리 누구나 장점을 갖췄지만 기막힌 단점도 많다게다가 삶 자체가 본질적으로 부조리한 것이다우리는 모두 결함이 있는 두 사람의 성교를 통해 생겨난 결함 있는 산출물로서무척 중요해 보이지만 다른 시대나 장소의 관찰자가 본다면 무의미하고 사소할 온갖 부침을 헤치고 살다가 결국 죽는다눈 깜짝할 사이 스치고 지나가는 아름다움과 기쁨의 순간들처럼 이런 사실도 받아들일 때 더 행복할 수 있다.

 

이후로도 해외 이민자로서 현지 언어를 대하는 태도의학과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삶과 의미에 관한 관점 등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어진다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시선이 날카로우면서도 종합적이다그리고 뜻밖에(?) 저자는 적어도 사상과 의미 체제 내에서는 꽤나 자유롭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처음 만난 저자가 제목에  표현한 모든 소망을 다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원할 때 굳이 아무도 날 모르는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일상에서 충분히 고독할 수 있기를동네를 지역을 산책하는 길에원하는 깊이만큼 한국 속으로의 산책도 이어지길바라는 대로 이방인혹은 김치 잘 먹는 바보 취급당하지 않고 신기할 것 없는 이민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기를 응원한다그래서 즐겁고 행복한 추억들이 가득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때 나는 오후 4시가 되면 고독한 이방인으로서 영국 숲길 산책을 다녔다거의 매일 나타나 따라오는 붉은 가슴의 작고 통통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다스러운 새도가끔 사냥에 열중하느라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던 여우도짙은 안갯속에서 괴성을 지르며 거대한 위용을 보이던 큰 뿔 수사슴도길가에 현란하게 피어나던 폭스글로브들도마늘 향을 뿜어내던 야생 마늘 흰 꽃들도하늘로부터 새하얀 깃털을 발 앞에 정확히 떨어뜨려주고 강물 위로 내려앉던 흰 고니들도어느 날 부딪쳐 놀라 주저앉은 나를 보고 전리품인 양 눈앞에서 유유히 털 모자를 물어 간 족제비와도 조우했다좋은 일도 기쁜 일도 감사한 이들도 많았지만귀국한 후 몇 해가 지나도록 오후의 햇살과 풍경과 향기와 그날그날 혼자인 내가 한발씩 디디며 맛본 온갖 감정들이 가장 그립게 떠올랐다. Homesick이랄 수는 없으니 nostalgia가 맞겠다여전히 눈물 정도는 고일 만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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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집중의 힘 - 꾸준함을 이기는
하야시 나리유키 지음, 이정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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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약처럼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이다산만하지 않는데도 일의 능률이 저하되는 건 여전히 집중을 못하기 때문일까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다급하게 알아야 한다. 일을 계속해야 하니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해치워야 하고,지치고 긴장을 반복하는 신경에 내 맘대로 독서보다 휴식과 여유를 제공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집중력이란…… 뇌의 메커니즘이다집중력은 두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좋다재미있다는 라벨이 붙은 정보는 자기보상신경군을 자극하여 의욕을 높이고 내 힘으로 해내고 싶다는 마음을 키운다이때 실제 행동으로 옮기면 또 즐거움과 성취감이 더해지므로 더욱더 계속 해보자’, ‘끝까지 해내자는 의지를 북돋운다.

 

이렇게 정보에 긍정적인 경험이 늘어날수록 뇌에 오랫동안 남는다이것이 뇌가 기능하는 메커니즘이다정보는 뇌에서 대뇌피질 신경세포 → A10 신경군 → 전전두엽 → 자기보상신경군 → 변연계의 순서로 이동한다이런 시스템을 이해하고 뇌를 단련한다면 평범한 뇌도 짧은 순간 집중력으로 속전속결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똑똑한 뇌로 성장할 수 있다.



뇌신경외과 의사이자 뇌과학 연구자인 저자가 책 소개글의 솔깃하고 도발적인 내용처럼꾸준함은 언제나 과정에만 머무르기 때문이다꾸준함은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로 시작해서 몰입의 순간을 원하는 때에 내 마음대로 불러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까진심으로 몰입해서 읽었다. ㅠㅠ 결국 내게 필요한 건 동기부여인가 싶을 정도로 몰입해서 찾아보았다.

 

판단력의 진짜 의미는 아주 작은 차이를 순간적으로 구별하는 능력이다.

 

재능은 쓸데없는 행동을 쓸데없다고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여기는 데에서 시작한다중략포기하지 않고 같은 행동을 수없이 반복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미세한 차이까지 구별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날아오는 공도 붙잡는’ 능력까지는 없어도 뇌의 메커니즘은 한 번쯤 배우고 싶어서 흥미로웠다아주 오랫동안 내가 정말 진심으로 원하는 일은 다 이룰 수 있다란 터무니없는 위로 실패 상황에 대처하기 좋습니다진심으로 원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라고 납득하면 됩니다 를 지니고 살았는데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란 내용은 어떤 비법인가 두근거렸다.

 

속전속결 뇌 활용법은 연습이 좀 필요할 듯하고읽다가 뜨끔했던 대목은 이제 나이 탓은 그만하자는 단락이었다좀 자주 하기 시작한 지 꽤 되었다.

 

집중한 척 속이지 마라에서는 난 산만하지 않다집중하는데 능률이 저하된다고 판단한 근래의 상황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진단이 필요한가 고심하게 했다.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고 복습을 해도 잊어버리기 십상이라면나이를 탓할 것이 아니라 공부할 때의 기분과 분위기를 조절해야 한다어제 공부한 것도 금세 까먹어 버려 고민이라면나는 그 일을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미룰수록 집중력은 떨어진다’ 역시생각은 계속하는 중이니까하고 작업을 중단하는 시간들에 대해 반성하게 했다그런데 다음 내용은 반성할 시간에 준비하라…….

 

책상 위가 내 머릿속이다’...... 더 이상 정리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 패스!

 

마감일할당량과의 싸움에선 괜한 자기 동정심이 생겨서 지나온 시간들이 정말 고단하게 느껴졌다하마터면 책 내려놓고 와인 딸 뻔…….

 

끝나간다는 생각 금지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을 어떻게 금지해야 하는지 난감하긴 했지만무슨 의미인지는 수백 번의 마감을 거치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거의 다 끝나간다고 생각하는 순간 힘이 쭈우욱 빠지고 뇌가 잠시 멈춘다.

 

가장 저항이 심하게 들면서도 궁금했던 꾸준함이라는 함정은 생각보다 이해할 수 있는 논리이고 설명이다열심히성실히최선을 다해꾸준히 하는 것은 프로 직업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계약하고 돈 받으면 무조건 합당한 결과를 내어야 한다이 단 한 가지 사실 이외의 것은 모두 학예회에서나 통할 헛소리다.

 

프로필에 써 놓은 지 너무나 오래되어 나조차 잊어버린 문장My main focus is to remain focused. 나는 멍때리기를 즐기지 않는 부류이다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냥 눈을 감고 잠들기를 선택한다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등을 대고 눈을 감고 바로 눕는 그 순간이다비로소 몸이 스르르 풀리면서 노곤 노곤한 느낌이 퍼지고 더 할 수 없이 편안해진다.

 

한때 주변 평가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재주가 있다고 했지만그냥 다른 사람들 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게다가 눈치도 없어서 말해 주기 전까지는 누가 누구랑 연애하는 지도 전혀 모른다그래서 자주 나와 함께 식사와 차와 술을 하러 다닌 커플도 있었다가만 생각해보니 여러모로 편리했겠다는 생각도 든다물론 너무 몰라줘서(?) 답답한 나머지 관계를 알린 순간 내가 기대 이상으로 놀라며 언제부터 사귄 거냐고 물어서 본인들도 당황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문장은 아주 마음에 들고 여전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그러니 요즘 내 상태가 더 괴롭기도 하다FOCUS!


하나는 3일 간격으로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막연하게 같은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상식을 의심하는 자세로 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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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능률이 떨어지는데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만으로는 얼마 못 버티겠다 싶어서 21일 하루만 쉬고 고민해 보자고 생각했는데그냥 주말까지 쭉 쉬었습니다하루라도 쉬면 감당이 안 될 것만 같은 생각에 긴장이 팽팽했는데별 일이 일어나지도 않을 듯합니다.

 

첫 날은 책을 서너 권 읽고 쓰면서 아주 보람 있게(?) 쉬었고 담날도 책 읽고 쓰고 재미나게 지냈고어제는 친구들도 만나고 무지하게 오랜만에 과거로의 시간여행 중인 느낌도 간혹 받으며 잘 지냈습니다이제 일요일새로운 한 주의 시작입니다원래 계획대로(?) 원인도 정리하고 대책계획결심도 해보고 다시 정비 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루틴의 힘>이 처음 출간되었을 땐관심이 없어서일상 속 루틴 만들 필요를 못 느껴서 찾아 읽지 않았습니다이미 너무나 규칙적…… 저는 아주 친한 친구라도 갑자기 제 일상에 뛰어 들어오는 것을 반가워하지 못하는 고약한 성격입니다부모님 말씀으로는 제 성격을 참아 주는 좋은 사람들이 불쌍해하며 친구 해주는 거란 동정 가득한 이해 속에 살고 있습니다물론 저는 제가 성격이 좋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제게 지금 필요한 것은 업무 관련 집중력과 능률을 올리는 것인데<루틴의 힘2>가 관련 내용이란 소개로 절박하게 읽어 보았습니다지금 심정으로는 뭐라도 가능한 모든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저자가 주된 기둥으로 삼고 있는 4가지 핵심 기술은 전문성 향상협업 관계 구축기회 창출리스크 감수에 관한 통찰입니다조직 생활이나 협업의 비중이 낮은 업무라그런 내용들은 슬쩍 읽고 더 관련성이 깊은 내용들 주위로 읽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며익숙한 업무 방식에서 탈피하여 일의 형태를 새롭게 하는 시도라는 대목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익히기 번거로워하던 마음에 살짝 설득력이 있기는 합니다변화가 필요한 때인가그 변화가 부가적인 업무능률 향상으로 방향을 잡아 나갈 것인지 기대가 됩니다고민!

 

하고 싶은 일을 행복하게 하는 분들 빼고 저를 포함한 다른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가끔 만납니다그때도 시간 끌지 말고 어차피 할 거면 재빨리 시작해서 집중해서 완수하는 기술이 더 필요합니다.

 

인간의 수행 능력 연구에 관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 K. 안데르스 에릭슨은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는 서베를린 음악 학교의 바이올린 연주자 30명을 대상으로 '어떤 행동이 그들의 역량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가'에 대해 연구했다에릭슨은 어느 분야에서든 탁월한 경지에 이르려면 1만 시간이라는 '의식적 연습'이 필요하다고 밝혀냈다실제로 이 연구 결과는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연습 시간대와 연습 총 시간 이었다그들은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첫 연습을 시작했으며 하루 평균 4시간 정도를 쏟았다아침은 에너지가 가장 충만할 때고 방해 요소도 가장 적다리추얼(Ritual)이 있다는 것이다리추얼은 특정 시간에 하는 규칙적 행위로거듭될수록 목적이나 에너지 소비를 의식하지 않고 실행하게 되는 행동이다.

 

습관과 루틴은 의지력이고의지력은 쓸수록 고갈 되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자아 고갈Ego Depletion'로 알려진 이 현상은 한 곳에 의지력을 몰아 쓰면 다음 일에 몰두할 에너지가 소진된다는 의미다.



루틴을 설계할 때 초기에 제일 공을 들여 집중 원칙을 세운다집중 원칙은 한 번에 루틴 하나씩만 바꿔나가는 것이다최소 한 달은 루틴 하나를 바꾸는데 몰두하고다음 루틴으로 넘어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Generation Flux유동 세대'라는 용어를 만들어 소개했다유동 세대란 미래의 복잡한 직업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성공 하는 세대를 의미한다그 중에서도 특징적인 유동 세대들은 능숙하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불확실한 상황에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다만 일에 진전이 없다면 너무 오래 견딜 필요는 없어요하는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그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서는 배짱이 있어야 해요그 일에 열정이 있고 의미를 느끼는 지가 기준이 되어야 해요.

 

정말 더 이상은 못하겠단 생각이 확실해지면 그땐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새로운 일 도전이라…….

 

잡지 <와이어드>의 공동 창립자인 케빈 켈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지금 학생이라면 미래에 어른이 돼서 이용할 과학 기술은 아직 세상에 없을 것이다그러므로 지금 제일 절실한 것은 특정 기술의 습득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친 생활 기술의 습득이다. "

 

실은 이런 일도 참 번거롭습니다왜 자꾸 복잡한 활용프로그램들이 나오는지 가끔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이전 버전보다 아주 미미한 변화를 줄 뿐일 때도 많습니다마치 스마트폰의 기능 진화가 멈추고 디자인만 바뀌고 있듯이.

 

행운은 불가사의한 힘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에 따른 구체적 결과물이다중략운이 좋은 사람들은 불쑥 나타나는 기회를 활용할 줄 안다중략매 순간의 가치를 발견할 줄 안다또한 운 좋은 사람들은 뜻밖의 기회에 개방적 태도를 보이며 해 보지 않았던 일도 과감하게 시도한다생소한 주제의 책도 선뜻 집어 들고 낯선 지역을 여행하는 것도 즐기며 자신과 결이 다른 사람과도 교류한다중략당신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돌발 상황에 민첩하고 개방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그런 기회가 나타나면 바로 행동에 돌입하라결말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혁신가들을 살펴보면 경이로울 정도로 생산적이었다그들은 시도하고시도하고 또 시도했다파블로 피카소는 평생 5만 ~ 10만 점 사이의 예술 작품을 창작했다피카소는 어느 작품이 <아비뇽의 처녀들>처럼 걸작이 될지 판단하는 능력이 없었다.

 

파카소의 결과물을 예시로 드는 것이 합당한 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언제나 꿈과 야망이 없었던 나와는 달리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될 일을 하시는 분들은 왜 없겠나 싶습니다.

 

갈수록 예측이 힘든 세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임의적 확률에 유리한 영향을 미쳐야 한다꾸준히 작은 승부를 던져야 한다. 중략. 자원을 한정해 승부수를 던지는 것을 기업가 피터 심스는 작은 승부수라고 불렀다문제는 피할 수 없고그러니 성공의 핵심은 총알을 피하는 게 아니라 빠른 회복력이다.


실패 이력서를 써 보라고 권해요개인적직업적학문적으로 처참하게 망했던 일들을 간략하게 써서 이력 서로 만드는 거죠각각의 실패에서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써야 해요이력서에 성과만 나열했던 학생들이 이 과제를 하면서 얼마나 당황했을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하지만 이력서를 다 쓴 학생들은 실패의 렌즈로 경험을 바라볼 수 있어요중략자신의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뒀는지 판단할 수 있는 방대한 참고 자료.

 

자신의 사회적직업적 연령을 판단하는 기준은 제각각이겠지만이 책을 읽으며 나는 훨씬 더 고령의 태도와 직업관을 가졌다는 느낌은 확실합니다승부수를 던지고 실패를 경험하고 노력해서 성공하고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고단하게 느껴집니다.

 

가히 표본적인 소시민적 사고를 가졌달까평온한 일상이 유지되는 일이 가장 바라는 그림입니다그게 깨지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회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겪어봐서 더 겁을 먹었나 봅니다.

 

일단 뭔가 위험도가 아주 낮은 도전을 하나 해보아야겠습니다성공이든 실패든 처리 비용과 시간이 적은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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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계절
임하운 지음 / 시공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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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관계라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으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다시 만나자우연히

 

혼자 있으면 힘들지 않아?

그런 건 같이 있을 때도 늘 있는 거잖아.

그래도 약간은 다르겠지.

어떻게?

네가 힘들 때 기댈 수 있잖아.

만약에 사라져버리면?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내게 소중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에만 금을 그었다.

그리고 금 바깥에 있는 것들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게는 남의 것까지 챙길 능력이 없었다.

나 하나 살아가면서 버티는 것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부려봤자 결국 상처받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애들은 좋게 말하면 늘 말을 안 듣는다니까.

네가 정말로 나루를 생각한다면 옆에서 없어져주는 게 맞지 않니?

네가 나루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생각해?

뭘 해주지 않아도 같이 있는 게 친구라고 생각해요.

아주머니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순간 좋든 싫든

그 사람은 나라는 존재의 한 조각이 된다고 생각해.

그 한 조각이 엄청 클 수도 있고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을 수도 있어.

그 조각의 크기가 클수록 소중한 사람이겠지.

그 한 조각이 빠져나가면 공허해질 수밖에 없을 거야.

 

누군가를 사랑하면 내가 불행해지는 건 상관없이 그 사람만 생각하게 된다는 거야?

생각해봐세상에 있는 모든 걸 준다그런데 사랑은 할 수 없다그럼 어떡할 거야?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다그런데도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참 이상했다.

그런 큰일에는 누구나 성인군자가 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듯

그들은 그 애의 잘못을 객관적이고 견고하게 쟀다.

이들은 정말로 옳은 것을 좋아하는 걸까?

그저 한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사람에게는 각자의 사정이란 게 존재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을 선택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읽다가 나이가 의식되고 진땀이 나는 책들이 있다.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인지,

우리는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대답해 보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한 기분.

 

오늘은 부끄러움과 미안함과 대책 없음이 들락날락하는 책들을 자꾸 만났다.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을 이해한다.

별거 아니지만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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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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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혀 모르던 실존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에 미국프랑스체코 등의 나라들에서 한국계 공산주의자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라 역사에서 다뤄진 적이나 언급된 적이 없었나 싶다

 

거대한 폭력으로 파괴된 시대의 모습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암울하고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겉보기에는 입지를 다진 의사로서다복한 가정을 가진 이로서어떤 극단적인 어려움으로 음독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나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각자의 내면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다 모르는 일누가 다 알 수 있나 그런 쓸쓸한 생각만 든다더구나 감정을 드러내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고 시대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인생이 두 갈래로 나뉘었고 언젠가 그 사실을 잊었지만 갑자기 떠올랐으며 떠오른 순간 인생 전체가 쏟아져 내리는 기분.

 

정웰링턴은 하나의 삶을 가지지 못했고 하나의 국가도 가지지 못했다

정웰링턴을 아는 사람은 대부분 그를 오해하거나 경계했고 사랑해도 일부분만 받아들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을 아무도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자신이 열외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제와 연결된 감수성을 갖지 못한 열외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역시 그의 문제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문제에 대해 어떤 불의나 분노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어찌 되었든 다 알지 못할 뿐 결과에는 원인()이 반드시 있다고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다뭐 그렇다고 세상의 우연들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막 괴롭히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그래서 <모든 것은 영원했다>란 제목을 보고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니 참 재밌겠다는 기대를 했다원소로서의 우리 모두는 영원했고 우주 전체의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영원하겠지만개체로서의 우리는 대부분 백년도 못 견디고 분해된다.

 

우연이 거듭된다는 사실이 곧 우연이 아니라는 뜻 아닌가

지금 시대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논쟁이 그들에게는 행위의 근본 원칙이 되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아무것도 무의미하지 않았다

모든 행위가 유의미했으며 의미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뜻했고 그것은 영원불명의 법칙이 존재함을 뜻했다그러므로 모든 것은 영원했다.

 

영원불변의 법칙이란 표현이 굉장히 낯설다이런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추상 능력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그러나 나의 감탄과는 별개로 바로 이 법칙은 사회사상의 도그마로 변용되어 전체주의 국가들을 탄생시켰다그리고 정웰링턴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존경하고 한 때 관련 서적을 공들여 읽기도 했지만 몇 문장들을 제외하곤 남은 아는 바가 없는버지니아 울프와 헤겔이 인용된다너무 빨리 읽고 마는 소설은 섭섭하다고 하는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듯예전 전공도서를 막막한 심정으로 한 문장씩 떼어보듯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등장한다예전엔 간혹 한글번역의 독해 난이도가 원어보다 높은 경우들도 있었는데이번에도 자료를 뒤져봐야 하나…… 하하하…… 잠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척이나 세련된 작가가 필력 문제로 혹은 실수로 그리한 건 아닐 테다아마도 그는 텍스트들을 다량 수집하여 사유가 흐르는 곳들로의 여행수단으로 삼는 듯하다동서고금전공불문종횡무진책 말미의 참고 문헌을 보고 나의 추론을 확신했다 .잠시 쉬다 읽으니 의미가 가득한 이런 내용의 글이 반전 매력으로 느껴진다. 제목마저 알렉세이 유르착 <모든 것은 영원했다사라지기 전까지>에서 가져 온 것이다.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라는 부제가 붙었으니 정웰링턴의 처지와 이어지는 영리한 안배이다. 


작가의 글쓰기 방식에 대한 느낌을 아주 거칠게 표현하자면 거짓말을 잘 하기 위해 이토록이나 공을 들이는 소설가참 매력적인 분이다뭐 엄밀히 따지자면사실주의 입장에 근거한 역사서라 할지라도 다 사실일 수는 없다.

 

어쨌든 더 이상 고민하지 말자읽히든 안 읽히든!

 

졸릴 때도 있고 지루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고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그런 기분이 드는 거야끝장이다이번 생은 망했다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저녁마다 밤마다 책을 읽는 걸 멈출 수가 없어.

 

이런 고난과 괴로움을 보상해 주려는 안배처럼 책의 뒷부분 70여 쪽은 작가 자신의 일화와 해석과 관점들을 들려주는데 읽기가 쉬울뿐더러 무척 재미있다김영하 작가의 관점이 기분좋게 차분한 신선함이라면 정지돈 작가의 관점은 훅 끌어당기는 매력이 강한 신선함이다.

 

나는 언제나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매혹당했다관점에 따라 그것을 무능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능력이야말로 가장 과대평가된 덕목이다능력은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안과 밖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며 결국에는 그의 밖에 자리한다그런 의미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유능함이 자신을 증명하는 종류의 능력이라면 불능은 세계를 증명하는 능력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유독 한 친구가 생각났다독박육아로 지쳐가는 정도에 비례해서 분노가 쌓여가던 출산 전까지 아주 유능했던’ 친구가결혼과 임산과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자신이 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한국 사회의 실태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친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Q. 소설에 어떤 신념을 담으려 하나요?


A. 복잡성오해의 여지가 많은 이야기가 좋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이 전부 복잡하잖아요.

소설도 삶처럼 레이어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 B,JOBS잡스: NOVELIST소설가』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성과 돌연변이가 우연과 필연에 대한 논의를 거쳐 역사에 닿는 광경을 보고 싶었다

텍스트는 나보다 먼저 생각하므로 정웰링턴의 죽음 이전에 겹쳐진 픽션의 레이어를 따라 드러난 형상을 보고 싶었다이곳에서 정웰링턴은 죽지 않을 것이기에 생각 역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지진정한 작가는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

그러나 그건 더 이상 이유나 동력이 되지 않는데 갑자기 열차 안에서 떠오른 것이다새로운 독자가.

다른 곳에 있지만 나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고 하지만 내가 아닌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고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써왔는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작가의 관점을 소개하려한다머리가 텅 울릴 정도로 감동을 받았는데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아직 외워지지 않는다노화란 고단한 일이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미래로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다.

아르헨티나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는 말했다.

편지를 쓰는 동안,

우리는 그 자리에 없을 뿐 아니라,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사람과 현재 시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나중에야 서로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편지는 유토피아적인 대화 형식이다.

편지는 현재를 폐기함으로써,

미래를 유일한 대화 공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작년에 단 한통의 꾹꾹 눌러쓴 편지를 그리운 이(들 중에 주소를 아는 이)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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