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다치지 않게 (10만부 스페셜 에디션) -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해
설레다(최민정) 글.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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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라고 생각한 나만 모르는 재출간작들을 간혹 만난다.

친구가 극찬을 하며 추천하여 늦은 밤 들여다본 책<내 마음 다치지 않게>는 이미 10만부 판매를 축하하고 있었다노란 토끼가 나와 다독여 주는 이야기들이라니 노릇노릇해지는(?) 기분이다.

 

설토캐릭터는 설레다 토끼!라는 뜻이다.

휴식과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이 책의 많은 페이지들은 언제든 문득 펼쳐 보아도 적절한 위로로 거듭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좁다란 박스 안에 억지로 몸을 집어넣으려는 고양이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산만한 덩치로 손바닥만한 상자 안에 굳이 들어가겠다는 고양이의 고집중략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라면고집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그리고 지키고 싶은 외로움이 아닐까요?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걱정하는 일은 지금 진행 중인 일보다 과거의 일이나 미래의 일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어떤 일도 길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어른들의 마음도 힘내라고만 하거나 탓하지 않고 섬세하게 위로해 주는 내용이 있어 저자와 도서에 신뢰감이 더 붙는다.

 

마음속에서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를 만나 살뜰히 챙겨주어야 합니다.

자책이나 결심다짐 그런 것들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이의 주양육자들 중에 누가 원해서 즐겁게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고 절제를 못하고 부당한 화풀이를 쏟아 붓고 싶을까한계까지 참고 참고 스스로를 밀어 붙이다 그만 그 상태에 도착해버린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상태까지 가지 않기 위한 방법이 두 가지 있지요.

자기애를 갖는 것 그리고 우울함이 차올랐을 때 제때 버리는 것중략.

그렇게만 해 준다면 자신에 대한 무심함으로 익사하는 일은 막을 수 있겠지요.

 

내 마음은 언제부터 무거워지기 시작했는지어디에 금이 가고 있었는지어쩌다 이렇게 떨어져 나갔는지 궁금하지만 일단 얼마나 떨어져 나갔는지부터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나부터 먼저 잘 살피는 일이 중요한 일은 맞는데가능한 기회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늘 허둥거리는 일상이 짠할 뿐이다.

 

그래도 싫다면 원하지 않는다면 바꾸고 고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가끔이라도 어른인 나를 먼저 살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은 쉼과 회복을 준다.

분명히!

 

지나간 상처일지라도 아직 흉터로 남기 전까지는 언제 다시 투욱’ ‘투욱’ 벌어질지 모르니까요그러니 흉터로 남을 때까지그 흉터가 점점 흐려질 때까지 마음을 잘 덮어두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어릴 적엔 멋져 보였던 단어들이 실은 허구라는 것을 충격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그 중 한 단어가 자립이란 단어이다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혼자 살 수 있는 방법도 없다혼자만 만족할 수 있는 삶도 없다(드물다). 그러니 같이 있어도 더 외로우니 혼자가 되겠어!’란 말은 혼자이기 싫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말이다혹시 눈에 띈다면알아볼 수 있는 분들은 가능하시면 이들을 다독여주는 일도 참 멋진 일이라 믿는다.

 

인연의 끈은 내가 타인에게 던져 준다고 해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타인이 나에게 걸쳐 둔다고 해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서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바라보아야 인연의 끈이 오래도록 튼튼히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삶은 우연한 만남의 연속으로 채워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별은 결국 만남 사이사이에 찍혀 있는 쉼표가 아닐까요?

 

곁에서 머물며 상대가 하고 싶은해야만 하는 말을 잘 들어 주세요.

필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어릴 적부터 성격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들을 다소 조심스럽지 않게들 하고 주고받던 시절에 성장한 지라오랫동안 내가 보이는 반응들 중 많은 것들이 성격’ 때문이라 판단한 경우들도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반복적으로 특정 시간대에 짜증이 더 잘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잠시 그 반응들을 살펴보다보니, ‘성격 반응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뭐 대단한 가치관에 어긋나는 일을 만나서도 인격적으로 공격당한 느낌이라서가 아니라허기가 져서혈당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그냥 배가 고팠던 것이었다.

 

그 후로 어쨌든 후회할 말이나 행동은 분명 더 줄었을 거란 생각에 가끔 나는 어차피 답을 알고 있으니 짜증이 날 때마다 살짝 기쁘기도 하다.

 

그러니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잠깐멈추고 심호흡하고 잠시 생각을 해보는 일은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다물론 그런 짜증까지 걱정하며 받아주고 이해해줄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더 좋을 일이지만.

 

노란 포스트잇에 위로의 글귀들을 적은 컨셉이라고 한다노란색 좋다.

심리학적으로는 노란색이 불안한 심리를 더 뾰족하게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말랑하고 따뜻하게 예쁘지만은 않은 이 책은 일러스트가 기분 좋은 긴장과 놀람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나는 꽤 여러 번 놀랐다.



남들이 가는 길이 곧 옳은 길이라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순간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일들은 꽤 많습니다그럼에도 중압감을 견디고 다수로부터 자신의 소신을 지켜낸 이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냅니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이 이 길을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고,

그토록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굳건히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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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해주니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 공부에 자신감을 심어주는 엄마의 똑똑한 대화법
한혜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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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 방식과 진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참 궁금한 시절입니다.

 

철저히 평가 기준에 맞춰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충실해 보이는 시간표와는 달리 처음부터 영상만 나오는 수업교사의 집중력이 떨어진 듯 사적 이야기의 비중이 거슬리는 수업출석 체크가 가장 중요한 것인 듯한 분위기의 수업수업 준비 자료가 부실해 보이는 수업이런 수업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인가요적어도 당분간은.

 

가정 내 분위기에 따라 아이들의 학력은 물론이고 학습 방식에 있어서도 엄청난 차이는 불가피해보입니다성적 때문에 막 초조하고 불안하여 하는 말은 아니지만, ‘잠시가 아니라 상시가 될 수도 있는 수업 방식이라면 계획 단계부터 고민하고 고려되어야할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마치 티저 영상을 구경하듯 이뤄지는 수업방식이란 느낌을 떨칠 수 없네요.

 

아이들의 반응은 참 예측과 환원하기 어려운 것이 학교 공부에 대한 강조도 부담도 압박도 기대도 심지어 적극적인 격려도 없는 가족 분위기인데우리 집 꼬꼬맹이 초3은 유독 심각하고 진지한 반응을 보입니다뭘 이해 못하겠다싶으면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게 낯빛이 어두워지고 한참을 애를 쓰다 해결이 잘 안되면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합니다덕분에 어른 가족들이 얼마나 놀랐는지……왜 그러는 것이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슬쩍 슬쩍 물어본 정보들을 취합해보면잘 모르겠다 싶은 내용이면 눈물이 나고 울고 싶어진다고 합니다본인이 생각해도 좀 너무 많이 운다 싶을 때도 있다고 합니다어른들은 그런 심정이 드는 것이 안타까워 공부를 도와주거나 가르쳐주려는 생각은 못하고 ㅎㅎㅎ 이유를 찾아보고 이해하려 노력해봤습니다당사자가 잘 모르겠다는 문제를 외부에서 파악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공부 자존감은 다음의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극대화되는데자율성유능감관계성의 세 가지 측면이다자율성은 타인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원칙을 정하고 학습하고자 하는 욕구이며유능감은 자신이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고관계성은 부모와의 관계가 견고할수록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생각 습관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바로 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때 들었던 말생각보다 점수가 나오지 않아 속상해할 때 들었던 말과 같이 평소 공부에 대해서 들어왔던 말들이 아이들의 생각 습관을 만듭니다.



아이에게 막말을 하고 뒤돌아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공부장벽을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내가 공부와 관련하여 어떤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공부와 관련한 나의 편협한 신념은 무엇인지 돌아보며 나를 먼저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중략변화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안 그러신 분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1,000여 명의 아이들을 만나고 대화한 저자가 옮겨 놓은 막말들을 읽으니 섬뜩하고 끔찍합니다.



이런 말들을 듣고 컸다면 저는 정신이 완전 망가졌을 듯합니다.

이런 폭력적인 말들 속에서 탈출하여 스스로를 구하고 멋진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터인데,

정말 존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아이들에게 재미있다의 기준은 무엇일까요바로 자신이 잘하는 것입니다중략아이들의 유능감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원칙은 간단합니다잘하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면 됩니다자신도 잘하고 싶고인정받고 싶고그래서 때로는 실패가 두렵기도 한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만 해도 아이들의 유능감은 살아납니다.

 

우리 모두는 나에 대해 알고나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하지만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아이들은 성장을 회피하고 도전을 거부하게 돼요

 

친밀감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쌓아가는 거예요중략잔소리와 대화의 차이는 바로 친밀감 화법에 있습니다.

 

우린 사실 누구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사랑하게 된 고약한 운명에 걸려든 것인지도 모른단 생각을 합니다그리고 가족이란 바로 그 운명에 휘둘리는 다사다난한 서사의 무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온전한 공감은 불가능하다고 해서 포기하란 법도 없습니다저는 상대를 잘 알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온갖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억지로 공감을 끌어내 보려는 그런 노력들이 뭉클합니다그 노력을 뒷받침하는 사랑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가장 서글픈 장면은더 이상 그런 노력을 할 마음이 안 들 때무언가 툭하고 끊어지고 분리된 상태로 멀어지는 관계를 볼 때입니다주워 담을 수만 있다면 제가 잠시 보관해 주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눈물이 따라 툭떨어질 듯한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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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언니의 방구석 극장
양국선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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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장르와 구성보다 저자 소개를 읽고 아마도 저자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해서 책도 읽어 보고 싶었다좋아하는 일과 함께좋아하는 일 속에 사시는 분들에 대한 부러움이 작용했을 것이다.



더구나 추천글을 보니 영화평론도 아니고 - 전 전문가들의 영화평론은 어쩐지 예전부터 별 재미가 없습니다. - 영화사용설명서이고등장하는 영화들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들이 많다신이 난다.


취향이 강한 편이란 말도 들었지만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영화를 가리며 적게 보는 편이 아니라 시간을 낭비하며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 더 낫다는 태도로 살았고나름 여름휴가에 보는 영화연말에 보는 영화새해에 보는 영화 등의 다양한 목록도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는 개봉작을 영화관에서 두 편 밖에 관람하지 않은 특별한 한 해를 보냈다그러다보니 여름쯤에는 보상심리였는지 뭐였는지그야말로 방구석극장이 생활화되고결국 넷플릭스에서 더 찾아볼 이유가 없어질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보았다.

 

어쩌면 방구석극장이 더 오래 이어질 지도 모르는 시절지난 가을쯤에 그 굴레에서 빠져나와 이번엔 영화 볼 틈이 없어서 서글픈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이럴 때 영화에 관한 책을 읽고 한숨 돌리며 조금 더 분별력 있는 시각을 갖추려 노력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위로해본다서로를 소모하고 소비하는 태도 말고 제대로 된 취향으로 만들어 나가는 단정한 감상법을 익히고도 싶다영화와 삶을 나누는 저자의 이야기에 대해 한껏 기대하며 읽었다.



너무 예쁜 사람들이 나와서 어찌나 자연스런 연기를 하는지 아마도 입을 벌리고 봤을 듯한 <8월의 크리스마스>이다. 20대였고 유학 가기 전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본 영화였고한 친구가 단역으로 출연했다그 친구를 못 찾아 다시 봤지만 두 번째에도 지나친 몰입으로 친구를 못 알아봤다너는 어디에…….


특별한 애정과 추억이 담긴 영화라 일단 반가웠고내게 기억된 색과는 전혀 다른 상황과 감정을 저자가 떠올리시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당시 영화를 감상하던 내 연령과 상황이 감정을 읽어내는 결을 달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아주 오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영화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반가운 한편그 주제가 너무도 묵직하여 오랜 생각에 빠져들었다정답이 없이 부딪혀야 하는 일들은 늘 두렵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 ‘나이든 부모와 자식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화두는 개인을 넘어 사회문제로 확대되고 있다나도 팔순의 노부모와 매일매일 어려운 숙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느낌이다한없이 크고 항상 나를 지켜줄 것 같았던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어제와 오늘이 달라지고어제는 할 수 있던 일도 오늘은 할 수 없을 때그리고 나와 가족에 대한 기억을 서서히 잃어갈 때 우리는 여전히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Vis ta vie. 

네 인생을 살아라.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내가 소장하는 영화들 중 하나이다정확한 이유가 이것이다라고 정리할 수는 없지만자꾸 다시 보게 된다다 아는 내용인데 볼까 말까하다가 영화가 시작되면 꼼짝없이 끝까지 보고 만다심지어 매번 긴장되고 두근거리기조차 한다기억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더 긴장이 되는가 생각해본 적은 있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지치는 날이 있다.

어떤 엄청난 사고가 생겨서 방방 뛰고 머릿속은 헝클어지고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뜨거워지는 그렇게 힘든 날 말고그저 그렇고 그런 날 말이다.

  

나에게 좋은 영화란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다.

두 번 본다면 세 번도 볼 수 있고 평생도 볼 수 있다.

혼자 오롯이 나의 감정에만 집중해서 한 번을 더 볼 수 있고

그래서 평생 그 감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를 혼자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혼영의 미학이다.

 

워낙 겁쟁이라 꽤나 먼 미래에나 영화관에 가게 될 것 같다.

그리 오래 된 것도 아닌데 놀이터 가듯 편하게 하서 마냥 느긋하게 지내던 모든 순간들이 그립다.

 

우리가 쉽게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얼마의 돈이 필요한 것인지,

그 행복의 기준이라는 것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놓은 것인지,

입고 먹고 살고 머무는 것이 행복의 요소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장르가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들뜨는 기분을 좋아하면서도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좋아하는 보수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책도 영화도 이런 두 가지 선호가 모두 동기가 되어 선택하고 감상하게 된다이 책 읽기가 즐거웠던 이유는 내게 익숙한 이 두 취향들에 잘 들어맞는 작품들이 골고루 등장해서 더 반갑고 재미있었다영화를 좋아하고 전공하고 영화와 함께 살아가는 저자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모르는 정보와 내용들도 추억을 환기시키는 익숙하고 반가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멋진 책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사소한 일로 감정이 휘둘려서 짜증이 일고 마는 불쾌한 경험을 하고 숨 고르는 시간에더 이상 반가울 수 없는 분의 말과 글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적절한 위로를 받았다. 2월 첫째 날의 선물 같은 안배였다.

 

왜 나는 콩나물 50원 어치의 분량에 대해서 구멍가게 주인과 싸우고 분개하지만

수천 명을 죽인 독재자에 대해서

수십억을 횡령한 기업인에 대해서 분개하지 않는가.”


박완서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콩나물 때문에 짜증이 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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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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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연작판화집 <변덕>(Los caprichos)에 실린 제43번 에칭

El sueño de la razón produce monstruos.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라는 설명이 붙은 그림이 반갑다이 동판화는 프라도미술관이 소장한 고야의 작품으로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뜬다.”라는 제목으로 오래전부터 좋아한 작품이다. 18세기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작품이고 유럽이 무대이긴 하지만시대와 장소를 차치하고도 메시지는 여전히 유의미하다책에 쓰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성과 결별한 상상은 터무니없는 괴물을 낳을 뿐이로되이성과 맺어진 상상은 예술의 어머니가 되어 온갖 경이를 창조하나니.”

 

계몽주의신계몽주의이성중심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등의 사조 유행을 거치며 한 때 한국학회에서도 이성 비판이 유행을 거칠게 탔으나비이성과 반이성의 행위결과들에 언제나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 온 나로서는 이성과다로 인한 문제들을 다루는 일은 미래세계나 SF식 설정에 대한 비판처럼 느껴졌다.

 

그 세계에서 사람들은 장소신념사회국가언어는 물론이고 심지어 더욱더 중요한 명예도덕판단력진실 등으로부터도 쉽사리 분리되었다저마다 자기 삶의 참된 이야기에서 떨어져나가 엉뚱한 가짜 이야기를 발견하거나 날조하려 노력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우리한테 닥친 크나큰 시험인데우리가 만들어놓은 집단적 망상이우리 스스로 풀어놓은 초자연적 괴물이 우리 세계를우리의 사상문화지식규칙을 공격하는 거예요.

 

지금까지도 나는 온전히 이성적이거나 지나치게 이성적인 사람들을 만나 그들로 인해 힘들거나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 ‘합리적 이성은 적어도 내게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평가될 항목이다임마누엘 칸트가 <영원한 평화>*를 저술하고 발표한지 얼마인가소설 속에서만이 아니라 저자가 생명의 위협을 몸소 느끼며 겪었던 전쟁도여전히 현실의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는 인간들의 모습은 최고 수준의 반이성을 입증하는 자명한 증거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이야기 속에 갇힌 수감자 신세모든 가족은 가족사의 포로모든 공동체는 또 그들만의 이야기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고모든 민족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역사의 피해자가 된다세계 곳곳에서 이야기끼리 맞붙어 전쟁을 벌이는데양립할 수 없는 둘 이상의 이야기가 같은 공간을 차지하려고말하자면 같은 지면을 차지하려고 싸우기 때문이다.

 

현실의 종교는 어느 입장에 설 수 있을까무신론자로서 냉정하게 종교적인 내용들을 상식적으로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사실 인정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 근본주의적인 유학자세례 받은 천주교 신자계를 받은 불교 신자삼위일체설로 학위를 받은 기독교 신학자 그리고 무신론자들이 다툼 없이 어울려 살았던 환경 탓도 있겠지만오래전부터 나는 종교인들의 가장 멋진 모습은 늘 행동에서 만나곤 했다.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이 계셔서 행복했고 자랑스러웠고 신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나는 그분들 모두를 존경하며 살았다김수환 추기경님 말씀은 책의 어디를 넘겨봐도 언제나 여전히 명징하게 울리고법정 스님이 비구 법정이란 이름 하나 자신의 몸 위에 올리고 불타올라 온 생명들과 섞이실 때는 어느 사회 개혁가의 삶보다 깊은 감동을 받았고올 해도 새해 첫 날엔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읽었다.

 

반가운 출간 소식으로 다시 오신 이해인 수녀님이 일부 신자들이나 친지들은 수녀들이 다 좌파라고도 해요좌파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약자 편이라고 제가 정정해주죠.”라고 속 시원하게 전해 준 이 말이꽃노래보다 더 지겹고 실체도 없는 세간의 이파저파 타령에 얼마나 통쾌한 울림을 주던지.

 

어쨌든 종교의 이런 저런 모습들이 공존하지만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내용들 중 하나는 현실에서 종교로 인해 생사의 위협을 겪어낸 저자가 펼쳐내는 두 철학자 - 12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이븐루시드와 가잘리스 의 종교 논쟁이다이해인 수녀님의 일갈처럼 이 논쟁 역시 다 읽으면 속이 시원하다.

 

매번 쓰는 글마다 줄거리 전달력이 거의 없다고 해도 이 방대하고 떠들썩한 책의 내용을 조금은 언급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이 책의 제목 2년 8개월 28일 천일 하고 하룻밤 더 은 귀양을 사는 이븐루시드에게 찾아온 마족의 공부에게 철학자로서의 들려 준 수많은 이야기로 보낸 시간이다공주의 이름은 두니아세계라는 뜻이다.

 

내 몸에서 세계가 태어날 테니까그리고 내가 낳은 아이들이 세계로 퍼져나갈 테니까.

 

또한 2년 8개월 28일은, 800여 년이 지난 20세기폭풍우가 몰아치고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비이성이 난무하는 재앙의 시간이기도 하다.

 

두려워하라내가 삼라만상을 불사르며 심판하리라.

 

진정한 사랑도인류애도복수심도또 다른 전투도영혼의 구원도운명과 본성도 저자가 세상 모두를 뒤져 모조리 가져온 캐릭터들과 모티브들을 다 이해할 수도 은근슬쩍 버무려놓은 다른 소설들 역시 모두 분간해내기 어려울 만큼 풍성하다.

 

처음 듣고는 이런 장르는 명칭 자체가 이율배반 아닌가 싶었던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신화에 버금가게 비현실적이고 엉뚱하고 재밌고 풍자가 가득한 창작물이면서도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는 문장들이 보인다전투와 전쟁과 욕망과 혼란의 모습들은 모두가 권력 관계로 묘사된다약소국과 여성을 유린하는 기득권의 모습가난하고 국력이 약한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는 금융 국가의 모습들.

 

어떤 공동체든 그곳이 어떤 곳인지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한마디로 어떤 상황인지 합의조차 할 수 없다면 이미 위기에 빠진 공동체입니다.

 

나는 이 지구가 결국 온 인류를 거부하리라는 사실을 미리 보여주는 실험 대상에 불과할까?

 

두려움은 두려워하는 자를 변모시키는구나.

 

광기와 분노에 휘둘리고복수와 두려움으로 자멸하고자신들이 만든 가짜 신을 위한 헛된 전쟁으로 삶을 허비하고 이 모든 혼란의 끝에 인간은 다시 평화를 찾는다물론 그 평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지는 다른 문제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진혹은 숨긴 어두운 기억들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것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주체인 자신을 직시해보라고 저자는 말을 건넨다그리고 참 반가운 말잠든 이성이 깨어난 이성의 시대가 파괴와 죽음 대신 생명과 생성의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 희망한다


가장 중요한 정보 전달자이자 이야기 공유 기능을 하는 언론이 가장 먼저 이성의 시대를 맞이해주면 한결 희망적이리라 생각하지만……신뢰도가 무한바닥인 언론 환경에 사는 처지라 의지처가 마땅하지 않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최고의 희망은 그들의 회복력즉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낯설고 터무니없는 일을 직시하는 능력이다.

 

다시 고야의 동판화의 메시지를 생각해본다판화에서 잠든 인간을 깨워 펜을 쥐어주며 글을 쓰라고 재촉하는 부엉이의 역할처럼이야기가 현실을 비춰주는 참다운 거울이 되었다고 이븐루시드는 생각했다이 우아하고 유려한 혼란이 가득한 소설에서 저자는 자신이 속한 세상과 인간들을 사적 관계만이 아니라 관찰 대상으로 비춰보고 이야기로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입장도 인류의 입장도 이해해보려 했을 듯싶단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고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비로소 이해하는 참으로 이상한 종족인 인류가 만난 재능 많은 이야기꾼들 중 한 명인 헤밍웨이는 용기란 핍박 속에서도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저자 살만루슈디Salman Rushdie는 그렇게 살았다그 와중에 위트와 농담도 잃지 않은 걸 보아 참 위대한 인간이자 작가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고상상 속에서마저 나는 핍박의 낌새만 확실해져도 품위를 저버리고 목숨을 구걸할 듯싶어 참담하지만기준을 높이 두고 선망하고 바라보고 발돋움을 하는 일은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은가한다아직은 거부감 없이 저 아래로 추락하여 수치심 없이 하질의 인간이라 그만 인정하고 마냥 편하게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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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5년 미카엘 축제기간에 출간된 이 저작은 현실 정치를 가능케 하는 원리를 논구하는 철학적 기획이다자유로운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도덕적 인격이기 때문에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에 대해 도덕적 우월성을 가질 수 없고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에 의해 지배될 수 없다즉 이 국가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입각한 국제연맹을 결성하며 모든 국가들의 역사적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면서 세계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 철학자 칸트의 이 세계평화론은 후일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의 태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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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강경수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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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들이 ’ 도심에 출몰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 없이 사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뉴스 보도의 현란하고 역동적인 동영상 화면에 무척 공감하며 정신없이 보다 보면 사람들 놀랐겠다그런 생각으로 결론이 나지요.

 

단일종으로 78억을 넘긴 인류는 매일 지구의 자원들을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배고프지 않을 만큼 필요할 만큼만 먹는 것도 아니고 낭비가 아주 심합니다.

 

계속 낭비할 수 있도록 지구 표면을 열심히 깎아 온갖 작물들을 경작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자연산의 풍미를 즐기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에 들어가 온갖 것들을 캐내옵니다.

 

그래서 겨울을 날 식량이 부족해지고 새끼들을 먹여 기를 식량이 부족해진 야생동물들이 밭작물을 먹거나 도심으로 내려오면욕해서 쫓거나 죽입니다. 일일이 대처하는 일이 번거롭고 위험도 따르니 예방을 위해 기간을 정해 적극적으로 사냥을 나가서 일가족을 몰살시키기도 합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린다는 보도도 경고도 북극곰의 서식지가 줄어든다는 걱정도 최근이 아닙니다서글프게도 장담하건대 정확한 조사를 한 적은 없지만 빙하가 다 녹고 북극곰이 바다에 빠져 모두 죽어도 그게 뭐 별일이냐고 할 인구수가 더 많았습니다.



조사가 없었는데 어떻게 아냐고 묻고 싶으시지요충분히 많은 이들이 문제 삼았다면북극 빙하만이 아니라 히말라야 만년설알래스카 빙하그린란드 빙하가 녹아내리고남극 대륙 기온 상승이 일어날리 없으니까요.

 

북극곰은 동족 사냥을 시작했고 남극 펭귄은 진흙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2020년 여름 2개월 동안 관측 결과 그린란드 빙하는 6000여 톤이 녹았습니다땅 속에 갇혔던 탄소들이 바다로 흘러내려와 태평양 바다의 탄소 농도와 염도가 올라갔습니다당연히 해양생물들도 재난을 맞았겠지요.

 

물론 탄소만 재등장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만나 보지 못한 그래서 면역력이 없는 바이러스나 세균들도 엄청나게 퍼지고 있을 것입니다신종코비드19가 인류의 최종악당보스면 참 좋겠습니다만…….



표지 그림을 알아보고…… 차마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쓰레기통에 오기까지의 과정이후에 겪을 일들이 말릴 수도 없이 주르륵 지나갔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그래서 속상한 일들도 참 많은데 다 알아도 바꿀 수 없는 일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을까요.



"고작 한 줌의 흙을 몸에 발랐을 뿐인데 자신에게 돌을 던지던 인간들이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저 곰을 쫓아 주게영원히 이곳에 얼씬도 못하게북극곰은 언제나 말썽이야."



"녀석도 이번에 혼났으니 사람들 곁으로 안 올 겁니다영원히……."

 

언제나 말썽인 존재는 누구인지,

영원히 사라질 존재는 누구인지,

누가 더 빨리 사라질지,

 

...

 

 

이제는 누구도 정확히 모를 일입니다.


이 책은 기후위기 혹은 기후재앙의 상황에서 북극곰의 처지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반응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다 읽으면 아이들은 북극곰이 불쌍해서 마음 아파하고 어른들은 사람사는 일의 부끄러운 모습들에 참담한 심정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은 그럴듯한 것보고 싶은 거짓에 열광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을까요?

 

사실을 직시하고 문제 해결에 다 함께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이들과는 환경문제와 기후위기에 대해 어떤 대화를 나누면 좋을까요?


텀블러에코백다회용물건채식레시피북친환경제품유기농식품……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데 다른 무엇을 가장 먼저 실천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정말 원하는 미래란 가장 솔직하게 말해보면 어떤 모습일까요?


정답과 희망은 어디쯤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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