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되어
김아직 지음 / 사계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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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말대로 잃어버린 양말짝들은 집 안에서 발견되었다. 돌돌 말리고 먼지가 잔뜩 묻은 채로 언제나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것이 잃어버린 양말 이론의 시발점이다.”

 

물총을 든 컬러풀한 인물의 표지에 중년의 선입견이 또 발동해서, 작고 두껍지 않은 외양의 흥미로운 청소년 문학인가 했는데, 작품의 강렬함은 추리 미스터리 원작의 공포 액션 영화를 본 것처럼 느껴졌다.

 

먼지가 우주 내 모든 존재의 전생이자 미래라는 천문학적 낭만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니, 먼지 자체가 괴생물처럼 느껴진다. 얼핏 물살이(물고기)처럼 들리는 이름 - 강유어 - 의 주인공은 괴생물과의 싸움에서 이름이 복선인 듯한 무기를 찾아낸다.

 

강유어의 동생 강유슬이 실종되었다. (...) 최초 발견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건물 내부에 흙먼지만 수북했다고 한다.”

 

스케일도 큰 추리 미스터리가 호러 스릴러로 느껴진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을 먼지로 만드는 괴물이, 강유어의 현실에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 내 현실에도 있어서, 사회의 그늘을 넓히고 정의를 꺾고 삶을 일그러트린다. 가족과 사회에서 점점 비가시적이 되고 밀려나는 이들에게, 괴물 타르디그는 낯선 존재이기만 할까.

 

오하석이 있는 취업의 세계도, 아빠가 있는 가족이란 세계도 유어가 뚫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더럽고 치사한 기분을 그 세계들 곁에서 먼지처럼 떠돌았으니, 유어는 이제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나고 싶었다.”

 

세상이 망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들의 세상은 벌써 망한 상태가 아니었나 하는 슬픈 생각을 했다. 더구나 K- 장녀, 맏이라는 주인공에게 지워진 저주와 난치병”... 물리는 방식이 끔찍했지만, 어느 쪽이 더 끈질기게 무시무시한 병증인지가 자꾸 헷갈린다.

 

한 줌의 흙먼지로 인류의 형이상학과 전통들, 앞으로도 집 한 칸 내줄 것 같지 않은 도시들, 오하석의 젊음을 쥐어짜다가 마흔 중반쯤 되면 폐부품 취급할 게 뻔한 자본주의, 그 전부를 엿 먹이고 해체시키는 먼지 혁명이었다.”

 

유어는 달아나지 않았다. 외부에서 계속 자신을 쫓아오던 모든 버겁던 요구들과 생존조건들에 시달리다가, 처음으로 뒤쫓고 사냥하는 입장이 도리어 반가웠다고 한다. 그 해방감이 시원하기보다 서글프다. 가족과의 완전한 절연을 위해 동생을 구하자는 선택이 아프다. 목숨 정도는 걸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듯.

 

인수공통 질병의 위험은 날로 더 커지고, 미래는 모르겠고, 위기 경보는 계속 울리는데, 나도 사람들도 살던 대로 살고 있다. 사회의 그늘을 훌쩍 뒤집어 보여주는 이 작품은, 역시 추리 미스터리보다 더 진한 공포감을 전한다.

 

유어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하루가 저물었다. 또 먹고 살아야할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종종 웃었는데, 계속 짠했다. 구해야할 세상은 무엇일까. 계속 미안할 기성세대로서 유어처럼 살아갈 현실의 미래세대를 대책 없이... 힘껏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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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 공감부터 설득까지, 진심을 전하는 표현의 기술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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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logue: 고대 그리스어 dia(통과하다, 사이로)logos(, 말씀). ‘말을 통과하다’ ‘사이로 말하다말이란 서로를 통과해서 나간다.

 

연습, 실전법, 실용적인 팁들... 이라니 기대가 크다. 휴일이 끝나고 나면 당장 써먹을 일이 한 가득일 테니.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그럴 수 있길 바라지만, 매번 어려운 일이다.

 

불쑥 포기하고 싶어지면 말 자체를 안 하고 싶다. 그러니 다시 배워야지. 나이가 들수록 지금 부족한 면면이 점점 더 나빠질 거란 예감이 든다. 책을 읽는 건 어쩌면 아직은 그런 퇴행에 저항하고 싶다는 의지일거다. 오늘은 다정하고 차분한 이 책에 의지해본다.

 

우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명확하면서도 날카롭지 않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정하지만 만만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하기에만 모든 문장이 집중된 것이 아니라, ‘글쓰기와 교차되고 비교되고 병렬적으로 함께 설명되는 것이 뜻밖이고 재미있다. 강의를 편안하게 잘 하는 저자라서 책 읽는 시간도 긴장이 덜 하고 편안하다.

 

덕분에 말보다 글이 편하고 - 여러 가지 이유로 - 말보다 글이 더 중요하고 유용하다고 느끼는 나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글처럼 말도 차분하고 더 친절하고 감정이 한 차례 정리된 방식이면 대화의 변화가 짐작보다 클 것이다.

 

진심을 담아 고유의 목소리를 전달해서 공감을 얻어내는 능력이란 인간적 가치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핵심 자질이니까요. 그야말로 대체하기 힘든 인간다움이니까요.”

 

글이나 말이나 제대로 표현하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같거나 유사하다. 어휘력은 물론이다. 며칠 전 우연히 친구로 보이는 4명이 진짜, 짱이다, 대박, 찐이네의 표현을 돌림노래처럼 이어하는 것으로 공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비언어적 표현 - 표정, 몸짓 등 - 도 중요하지만, 덕분에 그 네 가지 표현은 안 쓸 결심을 했다.

 

저자의 의견과 설명으로만 이어지지 않고, 한 주제의 끝에 관련 팁을 주는 구성이 좋다. 도움이 되는 책의 목록을 읽다보면, 장바구니에 담아 두고 잊어버린, 읽기 전인, 책들이 기억나서 잃은 기억을 찾은 듯 기쁘다.

 

실용적인 글쓰기를 하는 저자는 흔히 가치 있고 의미 있고 긍정적인 것들이라 여기는 태도 - 공감, 자기중심성 등 - 의 함정이나 부작용에 대해서도 지적해준다. 세상엔 쉬운 일이 참 없다는 생각도 들고, 진심만으로 부족한 관계와 사회가 버겁기도 하지만, 그래서 잘 알아차리고 알려주는 책이 귀하다.

 

위로의 핵심은 디테일한 표현력에 있는 게 아닙니다. 비루한 표현이라도 쌓이고 쌓여 언젠가 연결되길 바라는 간절함에 있습니다. (...) 뻔한 말로라도 위로해주고자 하는 진심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에게 반드시 가닿으니까요.”

 

상대와 나를 함께 높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바꾸려는 의지이기도 한 호칭의 문제, 비폭력대화의 핵심과 방식을 고민하고 연습하고 실천하는 것, 상대와 나를 존중하고 존엄을 지키면서 싸우는 방법, 막상 상황이 닥치면 쉬울 리는 없지만, 누구나 배우고 익혀서 써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격려가 다정하다.

 

제안하는 방법들 중,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방법부터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연습과 실천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남이라는 걸 잊지 말고 부정하지도 말고, 초능력이 없으니 꼭 말로 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하고, “일일이 하나하나 말해야정확히 전달되고 이해된다는 것도 명심하고.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예를 많이 들어주어서, ‘그래, 해보지 뭐하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동기가 생긴다. 곧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할 휴일의 오후에, 위로와 의지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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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Do You Want? 왓 두 유 원트? - 선택, 결심, 변화를 이끄는 결정적 질문
김호 지음 / 푸른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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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당하는 것에 저항할 뿐이다." (어빙 보윅Irving Borwick)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오래... 생각 속에서만 업데이트 되고 있다. 삶을 만드는 건 딱 두 가지라는데,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기 싫은데 하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온 걸까. 어떤 계기가 필요한 진짜 욕망일까. 변화가 조금 두렵고 그만큼 기대되니 궁금한 책이다.

 

코칭은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을 돕기 위한 대화입니다.”

 

용도와 형식을 분명하게 해주니 읽는 방식과 찾아야할 조언도 확실해져서 좋다. ‘질문 선집이자 질문 독해집이고, 코칭 노트와 세션과 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도 질문이고, 주된 내용도 제대로 된 필요한, “변화이 계기를 만들어내는질문들을 찾아보는 과정이자 훈련이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때로 불편한 질문, 정답이 없는 질문도 마주해야 합니다.”

 

난해하거나 아주 낯선 내용이 없어서 생각이 더 많아지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내가 외면하거나 회피하거나 여러 이유를 찾아가며 유예한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덮어두고 있는 질문의 답, 구체화, 현실화에 대해 스스로에게 어떤 죄책감도 들기 때문이다.

 

- 그 계획은 얼마나 구체적인가요?

- ‘...하고 나면I will do when...’이라는 덫에 걸려 있지는 않나요?

- 해봐야 안다

- 고민만으로는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여러 번에 걸친 작은 실험들이 꼭 필요합니다.

- 매번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사나요?

- 타협할 수 있는 질문 - 약속 - 인가요?

 

내가 태어난 사회에 속한 삶이란, 사회가 전하는 시나리오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잘 맞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려워도 자신만의 시나리오 - 질문과 계획 - 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태생적으로 주어지거나 한순간에 생겨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를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 강연이 아닙니다. 노트를 펴고 내가 나와의 인터뷰에서 물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를 적어가야 합니다.”

 

호흡을 고르고, 다시 처음부터 책 내용을 따라 생각해본다. 정말로 원하는 것이 그것이었는지, 막연하게 원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는지.” 내 삶에서 중요한 관계들을 생각하며, 관계 속의 나 말고 나는 무엇인지. 선택의 여지가 있는지 등. 질문이 더 많아진다.

 

우리는 결정을 미룬 채 위험을 관리한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위험을 마냥 미루고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패가 달갑지 않고, 그에 따른 기회비용도 아깝다. 실패를 경험할 여유가 있는 상태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대체로 이런 이유들로 시도가 어렵다. “변화가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감당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니 일상이 루틴이길 바라고, 작은 돌발조차 큰 스트레스로 느껴진다.

 

책에서 내가 가진 문제점들을 확실하게 지적해줄 때마다 -시도 속에서 불안감과 불확실성은 벌금이 아닌 입장료일 뿐입니다 - 무척 아프다. 왜 우물쭈물하는지 변명의 여지가 없어진다. “받아들여야 할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한 질문도 시나리오도 언젠가 폐기되고 말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질문을 바로 만나게 하는 무섭게 확실한 책이다.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가 생겼을 때, 다시 펼쳐 읽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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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의 정해 - 중용의 깊은 뜻 쉽게 알기
윤서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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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은 유교(儒敎) 철학의 근본정신을 가장 함축성(含蓄性) 있게 표현하면서도 조리(條理)가 정연(整然)하여 앞뒤가 하나로 관통(貫通)하는 책이다.”

 

철학과 세계관의 기록이 대개 그렇듯이, 짧은 기간 완독은 무척 어려운 책입니다. 하지만 그 점이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꾸준히 살펴보고 차근차근 배우면 좋겠습니다. 읽기 전엔 한자 번역의 정도를 걱정했는데, 한자가 완전히 낯선 세대가 아니라면 읽으면서 반복되는 표현과 한자어들이 점차 눈에 익게 될 거라 기대합니다.

 

어떤 사람이 중용(中庸)대학(大學)의 구별을 물은 것에 대하여 주자(朱子) 말하기를 이를테면 중용(中庸)을 공부하여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道理)를 찾는 것은 단지 (대학(大學)) 지각(知覺)과 식견(識見)을 지극히 하여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경지에 이르는 치지(致知)의 공부 같은 서이요, (중용(中庸))에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곳이라도 삼가며 (를 등급에 맞도록) 마름질하고 자신을 살피는 것은 또 단지 (대학(大學)자기의 생각을 진실하게 하는 공부와 같은 것이다.”라고 답하고(...).”

 

위태로운 것(人心)은 편안해지고, 숨겨지고 가려진 것(道心)도 환하게 드러나서 일상적인 거동과 말이나 행동이 저절로 중도(中道)에 지나침이나 미치지 못하는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

 

중용이 가진 의미가 무척 좋아서, 잘 배우고 싶고, 더 나아가 그런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축약본이나 다른 해설서보다 정해본을 읽고 공부하고 싶을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빠르고 너무 감정적이고 너무 적대적인 표현과 태도가 많은 시절에, 함께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은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으며, 지나침이나 미치지 못함을 없는 (상태의) 이름이요.”

 

“‘은 평범한 일상생활의 도리(道理)이다. (...) 본분을 따르고, 괴상하고 이상한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몰론, 중용(中庸)에서 전하는 중도는 현대 사회에서 별 고민 없이 명명하는 중도라는 정치적 입장과는 다릅니다. 첨예하고 어려운 문제들에는 적당히 무관심하고 외면하고 참여하지 않은 속 편한 입장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 어디쯤인지 알기도 어렵고, 알아보기도 어렵고, ‘란 동양철학사상 가장 어려운 길이 아닐까요.

 

중용(中庸)에서 바르고 좋은 도리를 가려서 굳게 지켜 나가는 것아는 것이 분명하여 의혹이 없으며 마음이 바르면서 잡스러움이 없는 것을 이르는 것이요 (...) 핵심이 되는 큰 줄거리를 제시하고 깊은 뜻을 열어 보여 준 것이 이 중용(中庸)처럼 분명하고 또 극진(極盡)한 것은 아직 없다.”

 

- 인의예지(仁義禮智) 본성의 바탕

- 천하에 공통되는 지(), (), ()의 삼달덕(三達德)

- 사람이라면 마땅히 실행해야 하는 오륜(五倫), 즉 오달도(五達道)

- 일상적이면서도 바꾸어서는 아니 되는 아홉 가지 실천원칙의 실행

 

중용에 관한 여러 정의와 해석을 오랜 세월 여러 버전으로 들었습니다.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도, 이 책이 정해본이니 가장 정확한 뜻을 제시할 것이지요. 모든 독서가 그렇지만 독자의 연령과 상황에 따라 새롭게 해석될 가능성이 큽니다. 공부와 실천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공통이니 거듭 배움의 기본을 생각해봅니다.

 

비록 도통(道統)을 전하여 주고받는 것에 대하여 감히 함부로 의견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처음 배우는 사람이 혹 중용(中庸)에서 얻는 것이 있다면 먼 곳을 가고 높은 곳을 오르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비가 오기 전 모임도 축하도 여행도 끝내고 지친 채로, 하루 더 남은 비 많이 오는 일요일에 마음 편히 벽돌책을 펼칠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울뚝 거렸던 감정도 너무 집중되었던 만남과 관계와 대화도 오래된 경전을 읽는 동안에, 식어가고 흐려져서 털어낼 만하게 옅어집니다.

 

사람이 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음이 지극할지라도 진실로 옳은 것을 가지고 스스로를 고쳐 나간다면 변화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오늘은 시작이니, 30강 중에, 서론과 192쪽을 읽고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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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선배 - 8번의 실전 개국노트
이태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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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날, 한 친구의 지원학과를 그제야 문득 물어보았다. 약학과를 간다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뜻밖이라서 이유를 물었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자체 개발하는 약이 없고, 한국인에게 잘 맞는지 부작용은 어떤지 아무 임상 실험 데이터로 없이, 수입하는 약만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약학을 전공해서 한국인에게 잘 맞는 약을 개발하고 싶다는 친구의 꿈이 존경스러웠다. 고민도 없이 재미있을 것 같은 공부만 하고 싶던 나를 반성했다. 그렇게 약학을 택한 친구는 진지하고 열심히 공부했고 유학도 갔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자체 약개발은 비용부담으로 늘 기피되었다.

 

친구였지만 잘 알지 못했고, 덕분에 깨우친 현실에 고마워하며 존경했지만, 어떤 길을 걷고 삶을 사는지 자세히 챙겨듣지는 못했다. 이제 서로 중년이 되어 알아본 소식에는 어머니의 고향인 남쪽 지방에서 약국을 개원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가장 많이 경험한 약국은 부모님이 오래 다니신 동네의 오랜 이웃 같은 약국과 대형병원과 연계된 복잡하기 그지없는 대형약국이다. 공동체에 관한 특별한 관심과 뜻을 품고 개원한 약국들도 있고, 서점을 겸하는 약국도 있다. 세상엔 짐작과 상상보다 다양한 약국이 있을지 모른다.

 

이 책 제목을 보면서, 오랜 친구가 생각났고, 안부만큼 약국을 개원해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삶인지가 궁금했고, 친구의 아내가 결혼 전, 살고 싶은 지역을 골라 약국에 취업해서 몇 년씩 살았다는, 무척 부러웠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약국과 약사를 배울 기회라고 생각해서 반갑게 책을 펼쳤다.

 

약사로서 20년 이상을 보내오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경험을 해보았다. (...)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다양한 개국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매번 새로운 약국을 찾기 위한 노력 그리고 그 약국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상실감을 견디기 힘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용은 내 짐작보다 역동적(!)이다. ‘약국이라는 직장 세계와 약사의 분투기처럼 읽힌다.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약국들이 있고, 약사의 목표 또한 그러하다. 어쩐지 평온해보이는 직업이라는 선입견이 훌훌 사라졌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나마 까맣게 잊었던 의약 분업때의 이야기도 현장 이야기로 배울 수 있어 좋다.

 

대형약국의 특징은 카운터가 조제도 하고, 한약도 팔고, 건강 상담을 하면서 고가의 비타민과 건강 보조 식품 등을 판매한다는 것이다. 옆에 서 있는 초짜 약사들은 간단한 부외품이나 상담이 필요 없는 일반약만 분주하게 판매하는 게 하루 일과로 상담력이 없는 약사는 설 자리가 없는 그런 약국이었다.”

 

클리닉 약국에 근무하게 되었다. (...) 환자 맞춤으로 처방하는 병원으로 기본 당뇨약의 활용에 대해서 원 없이 공부했었다. (...) 당뇨 주사제 또한 다양하게 사용했다. (...) 약 이외에도 많은 것들에 대해서 배우게 됐다. (...) 조제와 상담에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고, 어떤 병원 처방을 받는 약국이라고 해도 개국하는 데 걱정이 없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약국에서의 근무 경험을 가지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개국을 한다. 행동력과 추진력이 놀랍다. 그 과정의 이야기가 낯선 분야의 직업이라서 전혀 모르던 세계를 내게 보여준다. 예전 친구 덕분에 깨달은 것처럼.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참 피상적이라는 자각도 함께.

 

1인 사업장이고 창업이라는 점에서 개국은 물론 운영의 어려움도 온전히 약사가 지는 것이 냉혹하다. 컨설팅 브로커도 있다니 세상은 참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저자의 고군부투가 기록으로 남았으니, 개국을 고민하는, 도움이 간절한 약사들에게는 분명 생생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나는 친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렇게 조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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