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자오광의 <중국사상사> 1권의 마지막 편은 불교의 전래와 그 사상사적 전개를 서술하며 끝이 난다. 제4편은 "서언: 이역의 풍"과 일곱 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불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은 4절 "불교의 동방 전래와 그 사상사적 의의 (1)"부터이다. 이번주에는 4~6절을 읽었다. 나는 이 부분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나는 이 절에서 다루는 문제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다.


바깥쪽의 낯선 개념과 사상 체계가 안쪽으로 유입되었을 때,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안쪽은 바깥쪽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안쪽과 바깥쪽이란 표현은 강명관의 책 <안쪽과 바깥쪽>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외래 사상을 수용할 때 기본적으로 드는 궁금증들이다. 이 문제를 조금 더 확장해보자. 외래 사상의 수용자는 기존의 전통적인 가치를 습득한 사람이다. 그 수용자는 이 전통적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체제교학으로서 인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있는가. 아니면 전부 다 뒤집어 엎어 버리려 하는가. 이건 외래 사상의 수용에서 첫 번째로 살펴볼 물음이다. 다음으로, 외래 사상을 수용할 때 수용자는 그 사상의 핵심 개념을 무엇이라고 이해하며, 이때 전통적 가치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수용자는 자신의 관심과 목적에 따라서 외래 사상을 수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상이 어떻게 수용되는지 그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고 발전한 종교이기에 사회를 규정하는 가치나 우주에 대한 이해에서 고대 중국과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7세기 이후 들어서 불교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 의해 수용되어 지배적인 사상의 위치에 올라서기에 이르렀다.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인도의 불교가 어떻게 중국에 받아들여졌는지를 거자오광의 <중국사상사>에서 갈음할 수 있다. 중국의 불교 수용사는 근대 동아시아 세계의 서양 사상 수용을 고찰할 때 유용한 사례가 될 것이다.


낯선 이역 인도에서 발흥한 종교를 처음 접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낯섦이었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중국 신도들에게 비췄던 불교의 우주 사회 인생에 대한 사상 중에는 기존 중국 사상에서 들어본 적이 없거나 확립된 적이 없는 내용들이 사뭇 들어있었다. 다시 말해 우주의 허황함, 생존의 고통, 삼세의 윤회, 그리고 진실을 추구하고 고통으로부터 해탈해 윤회의 수레바퀴로부터 벗어나려는 언뜻 보기에 일상적이 아닌 듯한 방법과 수단 등이 그것이다." 불교의 인생관, 가치관, 윤리도덕 규범은 전통 중국에서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을 규정한 가치나 규범과는 매우 달랐다. 지식인들과 상층 계층은 4세기 이전까지 불교에 대해 냉담했다. 하지만 하층민 사이에서 급속도로 전파되었던 불교 교리는 상층 문인들의 사상 세계에도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이 낯선 사상 체계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전통적 사상과 유사한 부분을 먼저 찾고자 하였다. "불교적 참회 방법은 중국에서는 오히려 도교의 '과실을 뉘우치다'와 '과실을 인정하다'와 같은 개념과 섞이게 되어 자신의 도덕이나 윤리에 대한 반성 행위로 변하게 되었다." "도가의 형이상학적 내용은 불교의 사상과 가장 근접하여, 초기 불교를 이해하는 언어 환경이 되었다." 중국의 수용자들은 불교의 언어 속에서 도가의 편린을 발견하여 이해하려 하였고, 이러한 방법론은 "중국 전통의 언어로 불교의 교리를 번역하고 해석하는" '격의'를 생기게 하였다. 예를 들어, "道"로서 "보리"의 개념을 나타내고, 無로써 空의 개념을 대신했으며, 열반의 개념을 '무대(無待)'로 담았다. 이는 모두 노장의 언어와 불교 언어를 배합한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전통적 언어 환경으로 불교의 관념을 담아내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었다. 즉, 도가나 도교의 개념으로는 불교의 공, 열반 등의 개념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양자는 공통점만큼이나 고유의 특수성도 있는데, 배합이나 격의로는 이런 고유한 특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불성에 관한 명제는 기존 중국 언어 환경으로는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형이상학적 본원에 대한 명석한 단계적 사고가 결핍되었으며, 또한 언어의 정밀함과 정확성도 부족하였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어 가면서 중국의 수용자들은 점차 이런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도안과 구마라집 등은 정확하고 유장한 언어로 불경을 새로 번역하였다. 또한 지둔, 축도생, 혜원 등 불교에 대해 더 심오한 이해에 이르게 된 사상가들에 의해 중국 전통 사상과 불교가 융합하게 된다.


이것이 중국 사상계에 어떤 변화를 낳았는가? 먼저 한어 어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기존의 無로 이해하였던 空이 내공, 외공, 공공, 대공 등 18개의 공으로 분류되어 표현될 정도로 중국의 언어는 점차 세밀해지고 정교해졌다. 그리고 교리 논쟁은 명석한 단계적 사고를 발전시켰다. 불교는 층층의 단계적인 추리로 상호 고리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구체화하고 정밀한 논리를 개발한다. 이러한 방식이 중국의 언어로 흡수되면서 부족한 언어의 정밀함과 형이상학적 사유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수 세기에 걸친 지난한 불교와 중국 토착 사상 간의 융합은 다음의 문장으로 집약할 수 있겠다. "사상과 문화의 융합은 결코 간단하거나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외국으로부터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이 중국에 들어오면 초기 단계나 가장 표면적 단계에서는 직접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외래 지식, 사상, 신앙의 자극으로 인한 부단한 화합 과정 중에 중국 본토의 본래 사상은 점차 자체의 가치와 의의를 확인하면서 꾸준히 자극을 받는다. 아울러 외래 지식, 사상, 신앙과의 충돌 과정 중에서 점차 자신의 내적 함의와 한계를 드러낸다." 이것은 중국뿐만이 아니라 외래 사상을 받아들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전개되는 과정이다. 여기서 '중국 본토의 본래 사상' 자리에 다른 말을 넣어도 위 문장은 성립된다.


그런데 중국 토착 사상 못지 않게 불교가 직면한 도전도 만만치 않았다. 그 도전이란 중국의 유구한 문화 전통의 압박이었다. 이 압박은 담론 권력으로서, 세속 권력의 강제적 역량, 문명지역 주민의 습관적 이해와 해석 방식, 문명의 역사적 전통의 권위 등으로 나타났다. 외래 사상이었던 불교는 중국에 받아들여졌으나, 혈연/ 가정윤리/사회책임을 중시하는 중국의 전통 가치와 인생관을 바꾸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고, 불교는 오히려 이런 전통 윤리를 보호하는 진영으로 녹아들었다. 불교의 우주에 관한 지식과 도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불교는 유구한 문화 전통을 가진 중국과 중국의 언어 환경에서 자신을 변호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본래 형태를 바꾸어야만 했다. 불교는 아직 사회의 생활양식을 규정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7세기에 이르면, 중국에서 불교가 사실 이미 중국 사상계에 상당히 섞여들었고, 불교의 사상도 상당히 한화되었던 것이다." 불교는 번역과 수용의 역사를 거치면서 중국의 사상으로 토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시간을 뒤로 돌려 19세기 동아시아 세계를 봐보자.


근대 동아시아는 서구의 충격에 직면하여 서구의 지식과 사상이 급속도로 흡수하게 되었다. 이 충격에 대한 반응으로 막말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 등의 지식인들은 society, freedom, individual 등의 낯선 서양 사회과학 용어를 새롭게 '사회', '자유' '개인' 등의 단어로 번역하였다. 이들은 기존에 있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으며, 아예 없던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도 하였다. 근대 일본이 만든 번역어는 근대 조선에 수용되었다. 그런데 근대 일본과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사상과 개념을 받아들일 때, 기존의 전통 가치를 기준으로 하여 수용하였다. 특히 조선의 경우에는, 성리학이라는 체제교학의 프리즘을 통해서 서양의 지식을 이해하였다. 처음에는 단지 소수의 지식인들에 의해 수용되었던 서양의 사상은 19세기 말 제국 열강들과의 폭력적인 만남과 그로 인한 동아시아 전통 체제의 위기를 통해 더욱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이는 전통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 조망, 나아가 아예 이 가치를 하려는 시도에까지 이르렀다. 불교라는 사상이자 종교는 중국에 현지화되어 지배적 사상에 자리에 올랐다면, 한국에서 서양의 종교와 사상은 어느 위치에 있을까? 그것의 현지화, 즉 지배적인 사상이 되어 삶의 양식을 규정하는 사상이 되었는가의 문제는 이미 완료되었는가, 혹은 진행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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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홀릭 - 헤어나올 수 없는 필기구의 매력!
박상권 지음 / 인간희극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지우개, 연필, 샤프, 볼펜, 닙펜, 만년필, 색연필, 형광펜 등 정말 필기구의 모든것이 들어가 있다. 저자가 일일이 직접 써보고 각 브랜드별, 종류별로 필기구의 특징과 장점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니,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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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 지역이 도시민의 주택 단지가 된다는 것은 직장과 주거지의 거리가 더 멀어짐은 물론 인종과 계급에 의한 주거지 분리가 더 가속화됨을 의미한다." 


"교외의 주거 단지화가 계속되면서 교외 자체는 사회학적 모자이크에 따라 분할되었다. 도시를 떠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양식 거주지'를 더욱더 세밀하게 갈라놓음으로써 인종, 계급, 교육, 연령대 등등에 따라 교외 지역이 분할된 것이다. 집합적으로는 이질적인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개별적으로는 동질적인 사회학적 특성을 갖춘 사람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1980년대에는 출입자를 통제하는 경비실을 갖추고 집주인들의 '공동 이익 개발'을 내세운 주택 단지가 번성하기 시작하였고, 각 공동체를 옆 지역과 구분해주던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학적 장벽은 경비원을 배치한 가시적인 물리적 장벽과 개별 집주인들의 위원회로 보완되었다."


"아파트 평수가 커지고 전세가가 급등하면 그중 극히 적은 세대만이 단지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이 지역을 더욱 상층 중산층화하는 것이다."


"광범위한 재개발 계획과 대규모의 주택 소유가 연동되는 이러한 메커니즘은 좀 더 부유한 계층이 이주해 오고 빈곤한 계층이 이 지역을 떠나게 됨으로써 고전적인 사회 변화의 경로를 밟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주택 시장의 자유화로, 호화 아파트와 사무실, 오피스텔 등이 혼합된 주상 복합 형태의 건물이 상당히 늘어나게 되었다...이 호화 아파트는 주민의 승인 없이는 출입이 거의 불가능한 감독이다."


"외부에 대해 매우 배타적인 이곳의 일상 공간은 출입이 통제되는 일종의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의 형태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미국의 대도시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주거양식은 사회 전체적으로 거주형태를 획일화시킬 뿐 아니라 점점 더 파편화된 도시를 만들어낼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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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의는 제1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임진전쟁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전쟁은 국가 혹은 주권체 사이의 일어나는 일이니 어느 정도 책임 소재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전쟁이라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야기하는 사건이 특정 국가, 특정 관념, 특정 개인의 책임일 수는 없다.

‘왜?‘라는 물음과 ‘어떻게?‘라는 물음은 논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우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어떻게라는 물음은 특정한 결과를 낳은 상호작용의 연쇄를 면밀히 살펴보도록 이끈다. 그에 반해 왜라는 물음은 제국주의, 민족주의, 무장, 동맹, 거액 금융거래, 국가의 명예, 동원의 역학 같은 범주별 원인들을 조사하도록 이끈다. ‘왜‘ 접근법은 특정한 분석적 명확성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실상을 왜곡해 허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허상 안에서는 인과적 압력이 꾸준히 증대하고, 사태를 내리누르는 요인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정치적 행위자들이 그들의 통제 바깥에 있는 오래된 세력들의 한낱 실행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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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 쇼조,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 싸웠나> 제2장 일본사회에서의 이단의 '원형'

  • "천황은 신들의 후예인 것에 의해서만 '신성화'되지만 정작 그 신들은 천황의 '신성화'를 위한 배경=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pp.72-73)

  • "천황도 신들도 상대적인 조건부의 신성자에 지나지 않는다." (73p) -> 궁극적 존재자의 부재

  • "질서화가 가능한 것은 영의 체계가 아니라 주술적 제의의 체계뿐인 것이다. 제사장=영매자는 당연한 것이면서 '이 세상'의 것인바, 주술적 제의의 체계는 현세적 질서에 다름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정치질서에 지나지 않는다. 천황제의 '제정일치'란 그런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치'의 관념과 의식의 자각적 독립이 없는, 그런 의미에서 비정치적인 질서원리인 것이다. 그렇게 주술제의적인, 정치적인, 비정치적인 현세적 통합체로서만 체계적 질서화가 생겨난다."(76p)

  • "구체적인 제사행위와 그 계승만이 '확실한 것'으로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제사의 의례 혹은 점술의 방법 절차는 존재하지만 그 의례나 절차가 '올바른' 것인지 어떤지를 되묻는 일은 원리적인 형식에서는 행해지지 않는다."(78p)

  • "제의체계 전체와 관련하여 그 체계를 안쪽으로부터 흔들고 목적의식적으로 그것을 변혁하는 데에 도달하려는 질의 해석은 생겨나지 않는다."(79p)

  • "이 경우에 '취해야 할 태도'로서 일반성을 가지고 언명할 수 있는 가르침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삿된 마음이 아니라 곧은 마음을 가지고 제의점술에 접하라'는 주관적 심정의 태도에 대한 가르침이다."(80p)

  • "거기에선 결코 도그마는 태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또한 '객관적'으로 타당해야 한다고 '절대적'으로 확신된 규범체계에 따라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일도 일어날 수 없다." (82p)

  • "따라서 매우 역설적이지만 정치사회의 통합에서 제의 이상의 규칙체계가 필요해지자마자, 그것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세계적 사상의 여러 체계가 아주 간단히 수용된다." (82p) -> 국체의 무한포용성과 세계적 사상체계들의 잡거성

  • "그러나 동시에 수용된 사상체계가 한번 제사공동체로서의 국민적 통일을 때려 부술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자마자 그것은 즉각 '가이쿄'(外敎) '아다시카미'(他神)로 이단시된다."(pp.82-83)

  • "고전적인 천황제의 의식형태 아래서 일어날 수 있는 이단이란 주술제의적 통합체계의 중심을 점하고 있는 '공적 주술제의'의 권위성을 위협하는 것이었음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그렇게 위협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모두 이단인 것은 아니다. 초월자를 규정하려고 하지 않는, 말하자면 '사상적 무관심'의 사회에서는 사상 그 자체의 이단성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구체적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공적 주술제의'의 권위를 폄하하는 경우에 비로소 이단이 된다." (pp.84~85)

  • "이리하여 천황제 사회는 갈수록 무사상의 사회가 되어간다."(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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