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20세기를 훨씬 더 밝게 경험했다. 미국은 점령당한 적이 없다. 미국은 점령이나 분할로 많은 시민을 잃거나 상당한 크기의 국토를 빼앗긴 적이 없다. 미국은 신식민지 전쟁에서(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굴욕을 맛보았지만 패배의 결과로 고초를 겪은 적이 없다. 최근에 벌인 일들에는 양면성이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인은 여전히 자국의 전쟁이 <선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그 결과 미국은 오늘날 선진국으로는 유일하게 군대를 칭송하고 찬양하는 나라다. 이 같은 정서는 유럽에서는 1945년 이전에는 익숙했지만,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많은 미국인 평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에개 지난 백년이 주는 메시지는 전쟁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이렇게 해석하는 함의는 2003년 이라크 침공 결정에서 이미 감지되었다." (토니 주트, 재평가)


"서구의 전쟁방식은 사실 도덕과 무관하기 때문에 그만큼 치명적이다. 즉 관습, 전통, 종교, 윤리 등과 같은 군사적 필요성과 관련이 없는 요소들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오래전부터 전쟁을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라 여겼으며, 방해가 되는 자는 누구든 억누르거나 모욕을 가하기보다 아예 제거해 버리고자 했다."

"그리스 특유의 전투 방식 - 개인적 자유 허용, 철의 규율, 무적의 무기, 평등한 동지애, 개인의 창발성, 전술적 적응성과 유연성, 중장보병의 육박전에 대한 선호 - 은 그 자체로 그리스 문화 전체의 잔혹한 측면을 이룬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 <살육과 문명>

서구 특유의 문명이 서구의 전쟁 방식에 스며들어 있고, 그래서 서구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단 것.



"니키아스는 전략가로서 원정 실패의 핵심 원인이 된 실수를 저질렀다. 쉬라쿠사이를 점령하려면 기병이 꼭 필요했다. 아테나이군이 처음부터 기병을 보유했다면 쉬라쿠사이는 항복할 도리밖에 없었다. 외부에서 어떤 도움을 얻더라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니키아스 본인이 원정대 출발 전에 기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테나이군이 기병 부대를 원정대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것은 특히 놀라운 일이다......아마도 이러한 착오는 판단을 잘못 내린 탓이 아니라 목적을 잘못 설정한 탓이었을 것이다. 니키아스는 시켈리아를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억지로 이 작전에 참가한 뒤에도 최소한의 행동만 하고 제대로 된 교전은 피하려 했다. 니키아스는 아마 쉬라쿠사이를 직접 공격하는 심각한 상황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으리라. 그러다가 그는 전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자신에게 작전에 필요한 병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니키아스는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심하면 더 좋지 않은 결과도 맞이해야 했다......펠로폰네소스 전쟁 내내 아테나이인은 기대를 저버린 장군들에게 가차없는 모습을 보였다. 위대한 페리클레스조차 정책과 전략의 결과물이 시민들을 분노하게 하자 모욕당하고 처벌받았다. 니키아스는 분명히 귀환하자마자 심한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니키아스는 자신의 명성과 안위를 염려해 아테나이인에게 자기 뜻대로 철수하거나 아니면 1차와 같은 규모로 추가 원정대를 보내라고 요청했다. 니키아스는 애초에 아테나이인이 원정에 나서지 못하게 막으려고 꼼수를 부리다가 실패한 경험에서 아무 교훈도 배우지 못한 듯하다. 아테나이인은 이번에도 니키아스의 바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추가 함대와 병력을 보내기로 결정했고 니키아스를 해임하지도 않았다."

도널드 케이건, <투퀴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

시켈리아 원정의 잘못은 전쟁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계획이 문제였다는 것




미국의 두 거물 우파 학자의 전쟁 인식은 기분 나쁘게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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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위 정도만 살펴보겠다.

(5월 첫째주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을 너무 뒤늦게 올린 거라 지금 순위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1~2. 팀 마샬, 지리의 힘 1~2










최근에 팀 마샬의 <지리의 힘 2>가 새롭게 출간되어 저자의 전작도 동시에 베스트셀러 1, 2위를 차지했다.

1편은 읽고 있는데, 서문이 책 전체의 메시지와 주제의식이 잘 느껴지게 잘 쓰였다. 내용도 좋다.


2편도 읽을 것 같지만, 과연 이게 역사 분야인지는 모르겠다.

이것도 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요소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팀 마샬의 책은 지리를 가지고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긴 하나 그것이 주는 아니고 보다 현재의 지정학적 요소에 더 집중한 책이니 역사보다는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게 더 타당하다.

3. 굽시니스트, 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나는 이 사람 만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다.

재미도 있고 내용도 알차니 계속 시리즈가 나오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겠지만,

이 책이 학적 결과물로는 보이지 않기에, 나는 읽어볼 생각이 없다.









4.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몇 년 째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가지 않는 책이다. '이거 읽고 있으면 남들에게 좀 있어 보이는 책'의 한 예? 나도 고3 때 처음 읽고 대학교 수업을 위해서도 2번 읽어봤는데, 읽을수록 그렇게 탁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읽어볼 만은 하지만, 크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것뿐만 아니라 <호모 데우스>도 마찬가지. 이런 빅 히스토리 류의 책을 원한다면, <옥스퍼드 세계사>를 권한다.

더불어 유발 하라리의 다른 책 중에선 <극한의 경험>과 <대담한 작전>을 더 재밌게 읽었다.
















5. 롤랑의 노래

이 책이 완역된

게 참 신기하고 나도 읽고 싶은데, 이 책도 역사 분야인지는 모르겠다.

호메로스 <일리아스>가 트로이 전쟁을 모티프로 산고 있다 해도 아무도 그 책을 역사라고 하지 않듯이, <롤랑의 노래>를 역사라고 하는 건 좀 뜬금없다.









6. 도미닉 프리스비, 세금의 세계사

안 읽어본 책이라 뭐라 하긴 그렇지만,

이 책도 어떤 학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많이 공부하고, 글도 재밌게 썼을 테고, 나도 이걸 읽으며 여러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될 테지만, 과연 세금과 역사와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당장 책의 논의를 집약하고 자신의 주장을 일괄하는 서문도 없다. 재밌는 사례 모음 이상이 아닐 것 같아 나는 안 읽을 것 같다.








7. 유홍준, 한국미술사 강의 4

아직 안 읽은 책이다. 입문서라고 하니, 일단 담았다가 나중에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지면 읽어봐야겠다. 그런데 책 소개에서도, 이 책은 한국 미술의 역사(histroy)가 아니라 한국미술 이야기(story)라고 하듯이, 이 책을 역사 분야에 집어넣은 것은 실수인 것 같다.








8.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오랫동안 읽히는 역사 교양서이지만,

나는 이 책 안 읽었고, 읽어볼 생각도 없고, 읽어도 본격적인 서평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역사 전공자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이 책을 쓴 목적 자체도 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으니 따로 얘기할 필요 없고, 나는 다른 더 좋은 책이 있으니 안 봐도 그만이다.

이 책 말고 묵직한 읽을거리를 원한다면, 앞서 말한 <옥스퍼드 세계사>나 <케임브리지 콘사이스 세계사>를 추천한다.
















9. 김산해, 최초의 여신 인안나

김산해 선생은 수메르 신화를 오래 연구한 학자이고, 나도 그가 번역한 <길가메시 서사시>를 좋게 읽었기에, 이 책도 보관함에 담았다. 하지만 이 책도 신화 분야이지 역사라고 하기는 어렵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확실히 역사책이지만 이 책은...글쎄










10. 한영준,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서양 편

지도 퀄리티만 좋다면 한번 구매할 가치는 있을 듯하다.

근데 나는 이미 아틀라스 시리즈가 있기에 딱히 사고 싶지는 않다.







11. 황현필, 이순신의 바다

역사 선생님이고, 유튜브까지 개설해서 강의를 하시는 분이 쓴 이순신 책이다. 역사 교사들의 책은 늘 인기인 것 같다. 우선 오랜 강사 실력으로 다져진 스토리텔링 능력과 쉬운 글쓰기, 그리고 아주 명쾌하고 속시원한 설명 때문이겠다.

사실 명쾌하다는 것은, 어떤 결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의와 관점들, 고려사항들을 묵과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선악의 구도를 딱 잘라 나누거나 이론의 여지를 주지 않는 내용의 책들은 기피하는 것이 좋다.

읽지도 않은 책에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저자 자신의 편향성 문제도 그렇고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임진전쟁으로는 이미 읽어볼 책들은 구비한 상태이고.







12. 벤저민 카터 헷,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법학과 역사학을 동시에 전공한 사람이 쓴 히틀러 집권에 관한 책이다. 나도 정말 관심이 많은 주제이다.

그래서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책을 보유 중이지만(기본 서적인 <히틀러국가>,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 문화사 서적인 <대중의 국민화>),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담아본다.
















13.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 책은 추천하는 책이다. 과학사, 지구사 관련으로 가장 먼저 읽어볼 만한 입문서이면서 재밌고 술술 읽힌다.








14. 노승대, 사찰 속 숨은 조연들

한국 신화를 다룬 책인 것 같다. 이쪽에 관심있다면 읽어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5. 무적핑크, 삼국지톡 4

무적핑크 같은 만화가가 삼국지를 다루었으니, 작가 특유의 그림체와 유머로 재밌는 삼국지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나름 공부도 되겠지만, 이런 책은 역사 공부용보다는 재미용이 더 알맞지 않을까 싶다.








16. 벌거벗은 세계사: 사건 편

TVN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의 강의들을 텍스트로 엮은 것이다. 전문가들이 나와 특정 사건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니, 얻어가는 것도 있을 테지만 목차만 봐도 느껴지듯이 체계성은 없을 것 같다.








17. 조선시대사 1

20. 조선시대사 2

이 책이 꽤 생각보다 순위가 높다. 나도 가지고 있기는 한데, 그렇게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 1권 첫장의 조선정치사 개괄은 그리 도움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조선시대 국가, 국제정세, 사회, 인간군상에 대해 다양한 주제를 알 수 있으니, 한 번쯤은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18.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올해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70년이다. 한중일의 관계와 외교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직접적 기원을 보자면,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각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한 이 책은 그것의 세계사적 성격과 유래, 영향 등을 다루었다. 이 책은 읽어볼 만할 것 같고, 나도 꼭 구매해서 읽을 것이다. 하타노 스미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와 역사문제>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19. 김수환, 혁명의 넝마주이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통해서 소련의 아방가르드를 재해석한 이 책은 아직 정확히 무슨 책인지 파악이 안 된다. 역사철학도 있는 것 같고, 역사, 철학, 미학, 문예비평이 복합적으로 섞인 책 같다.

나중에 발터 벤야민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때가 있다면, 읽어봐야겠다.









21. 발레리 한센, 1000년

발레리 한센의 책은 <실크로드>를 읽어봤는데, 매우 배우는 게 많았던 교류사 책이었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내 관심 저자가 되었는데, 절판된 <열린 제국>도 흥미로워 보이고 <1000년>도 주제도 흥미롭고 주장과 다루는 대상도 흥미롭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22. 처음 읽은 식물의 세계사

마이클 폴란의 <욕망하는 식물>은 이 책과 비슷한 주제로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이 책은 과연 어떨까. 읽어보신 분들이 감상평 좀 남겨주셨으면 좋겠다.









23. 세키 신코, 지리로 읽는 세계사 지식 55

또 지리 - 세계사 책이다. 몇달 간격으로 같은 주제의 책이 이렇게 쏟아지는 건 뭔가 웃기다.

이 책은 목차만 봐도 딱히 깊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55가지 주제를 택했으나, 그 주제들이 세계사에서 정말 중요한지 의문이 가고 지리적 요인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될 사건들도 지리로 환원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24. 곰브리치, 세계사

세계사 공부가 목적이라면, 굳이 이 책은 안 읽어도 된다.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는 여전히 추천하는 서양 미술사 책이나, 세계사는 최근에 나온 다른 더 좋은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25.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

이 책도 역사는 아니다. 신화, 문학 카테고리에 들어갈 책이지.















25위까지를 봤는데, 이 중에서 역사책이라고 할 만한 건 절반 정도이며, 그중에서도 본격적으로 깊이 있고 학적으로도 볼 만하다고 판단하는 역사책은 다시 절반 정도인 7권(사피엔스,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조선시대사 1~2, 1000년,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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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5-2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김민우님^^
 
쇠얀 키에르케고어 - 불안과 확신 사이에서 비아 문고 5
매튜 D.커크패트릭 지음, 정진우 옮김 / 비아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목적은 키에르케고어의 모든 저작을 개괄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할 법한 몇 가지 핵심 개념들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매튜 D. 커크패트릭은 개인과 윤리의 '토대' '체계' '내용'으로 나누어 쇠얀 키에르케고어의 문제의식, 그 해결, 실천적 의미 등을 개략적이지만 핵심을 위주로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키에르케고어의 물음은 하나로 귀결된다 - "당신은 진정으로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답할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거나, 자신의 직업, 성격, 국적 등등. 그러나 키에르케고어가 봤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직업, 이름, 자기 앞에 직접 드러난 현재 상태, 관습(이런 것을 포괄하여 "직접성"Immediacy으로 개념화한다) 등을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며 살아갈 뿐이며, 이렇게 외적인 행위나 지위로만 규정된 삶은 자기 자신의 상실로 이어지며, 개인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 규정할 때에는 자신이 중시하는 것,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다.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것. 키에르케고어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토대"이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버렸고, 자기 규정의 토대를 상실했다. 자신을 의미있게 만드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토대의 상실의 결과는 불안과 절망이다. 이는 인간의 외적 행위와 내면적 본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생기게 된 특수한 문제이다. 이 문제의 원인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배향이라면, 문제의 해결은 당연히 하나님으로의 귀향이어야 한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신 없이 세계를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실재(Reality)"를 확립한다. 여기서 키에르케고어가 기독교의 '우상' 개념을 재해석하여 진술하고 있음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실재'는 신 없는 세계에서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가 되고자 하는 인간"이 불안과 절망을 버티기 위한 버팀목으로써 창조한 어떤 규정이다. 그러나 "그 실재는 근본적으로 유한"하며, 그에 따라 "결국 붕괴한다." 신이 될 수 있다는 인간의 신념과 삶의 방식은, "올바른 방향을 지시해줄 어떤 방향등도 존재하지" 않은 "어지러운 자유"에 불과하며, 그 무한한 자유 속에서 인간은 자기 마비에 걸린다. 실재의 귀결은 "실재의 체계화"이다. 자신의 유한함을 버티지 못하는 인간은 유한성을 잊기 위해 스스로 만든 실재로 진리로 삼아 거기에 의존하고, 실재로 세계를 일관적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교인은 다를까? 키에르케고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그리스도교인이 더 절망적이다. 그리스도교인은 영원한 진리와 하느님의 은혜를 값싼 은총으로 둔갑시켜 버리며, 고정된 종교 형식을 만들어냄으로써 하나님을 인간적 종교적 실재에 가두고 허위의 심리적 안정만을 구한다. 이 안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저속한 물질적 요구를 총족시켜줘야만 하는 민원 창구인으로 전락한다. 이는 최악의 범죄이다. 이렇게 절망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환상적 실재에 매몰된 개인은 "자신을 상실해" 버리고 "우리는 자신의 진실한 내면을 망각한다."


방향을 잃고 자신을 상실한 상태는 확실히 "곤경"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어의 대답은 간단하다. 너 자신, 즉 개인(단독자)이 되어라". 이는 두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는 '실재'에 기초한 삶을 거부하는 "탈구축(De-Construction)이며, 둘째는 결단을 통한 자아의 창조라는 "재구축(Re-Construction)이다. 실재의 기만성을 인정하고 하느님을 거부하고 거짓된 토대에 기반한 삶을 거부하는 이 이중의 거부를 통하여, 그리고 "자아와 진실로 마주"함을 통해서, '나'는 진정한 '나'가 된다.


나 자신이 되는 과정은 고독하며 고통스럽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듯한 경험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제게도 저 자신이 확연치 못했습니다(nec mihimet ipsi vel ipse conspicuus, 7.1.2.)" 키에르케고어가 말하는 탈구축과 재구축은 나 자신에 대한 성찰, 즉 나를 낯설게 볼 것을 요구한다. 내 삶은 무엇에 기초하여 움직이고 있으며,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원칙들은 무엇인가? 나를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나를 상실하게 만들지는 않는가? 변화는 반드시 나 자신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외피만 바꾼 것에 그친다. 그리고 이것은 단독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고백록> 8권 회심 직전의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모든 것에서 벗어나 홀로 되어(essere solo)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무엇으로 나를 재구축할 것인가? 단독자의 삶, 단독자이기를 거부하는 삶,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누구의 도움이나 압력이 개입될 수 없고 개입되어서도 안 되는 단독자의 의지적 선택의 영역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나 자신을 바라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키에르케고어를 반쪽만 이해한 꼴이 될 것이다(혹은 아예 이해하지 못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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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6-1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Redman 2022-06-11 07: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하라 2022-06-1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민우님 축하드립니다. ^^
기쁜 소식과 함께하시는 행복한 주말 되세요~~

Redman 2022-06-11 07:56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매달 감사합니다. 이번주 주말 잘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6-11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민우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토니 주트의 <재평가>로 평가해보는 읽지 않아도 될, 읽지 말아야 할 저자들


한나 아렌트

"아렌트는 현대사 최악의 박해, 특히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독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자신의 청년기에 대해서, 특히 남쪽과 동쪽의 불운한 사람들과 관련하여 매우 독일적인 편견을 지니기도 했다. 아렌트는 1944년에 쓴 글에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럽 망명자들의 신문을 이렇게 경멸했다. <먼 유럽에서 벌어진 아주 사소한 국경 분쟁을 두고, 이를테면 테셴이 폴란드에 속하는지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하는지, 아니면 빌뉴스가 폴란드가 아니라 리투아니아에 속하는지를 두고 머리가 빠지도록 걱정하고 있다.>"


"거드름 피우는 고급 독일적 특성은 아렌트가 미국의 유대인과 불편한 관계를 갖게 되는 데에도 일조했다."




























루이 알튀세르

"알튀세르의 설명은 마르크스를 작은 부분들로 자르고 거장의 해석에 적합한 텍스트만 고른 다음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최고로 난해하고 이기적이며 비역사적인 해석으로 재구성했다. 실천은 마르크스주의나 철학, 교육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 주된 죄과는 실수를 인정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알튀세르에게는 이 점이 중요했다. 알튀세르는 프랑스 공산당의 당원이었고 그 조직의 당혹스러운 역사를 인정하되 혁명적 전지(全知)라는 그 주장에서 무엇이 남았든 그것을 훼손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 스탈린과 소련의 행보는 마르크스주의와 관련없이 그저 스탈린의 실수일 뿐이란 것


"알튀세르는 최근 역사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알튀세르는 생애의 끝에 가서야 마키아벨리와 여타 서구 철학의 고전을 발견하게 된 것처럼 보이며, 심지어 마르크스의 저작도 불충분하게 일부만 알고 있다고 인정한다. 알튀세르는 또한 정치 분석에서는 초보라고 할 정도로 순진하다. 알튀세르는 생애 마지막 20년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아무것도 잊지 못한 것 같다. <부르주아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얘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도, 소련 진영의 반체제 인사들을 경멸하고...<믿지 못할 잔혹한 굴라크 이야기를 퍼뜨렸다>고 멸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튀세르는 상상으로 만들어낸 범주들을 필사적으로 끄적거리는 중세 시대의 2류 스콜라 철학자를 닮아갔다. 그러나 가장 모호한 신학적 공론이라도 대개 중요한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 알튀세르의 몽상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알튀세르의 몽상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난해한 정치적 변증론일 때를 제외하면 이 세상에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에릭 홉스봄

"홉스봄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룰 때마다 당의 공식 논평을 생각하게 하는, 알 듯 모를 듯 무미건조한 언어로 한 걸음 물러섰다."


"프랑수아 퓌레는 언젠가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하여 프랑스 공산당을 떠난 것이 <내가 한 일 중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고 말했다. 홉스봄은 남기로 결정했고, 그 선택은 홉스봄의 역사적 직관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21세기에 무엇인가 이로운 일을 하려면 우선 20세기에 관해 진실을 말해야 한다. 홉스봄은 악을 직시하기를 거부했고 악을 악으로 부르기를 거부했으며, 스탈린과 그가 한 일의 정치적 유산은 물론이고 도덕적 유산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홉스봄이 미래 세대에 급진파의 바통을 전달해주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좌파는 오랫동안 자신들 안에 있는 악마 공산주의자들과 대면하기를 회피했다."


"에릭 홉스봄은 우리 시대의 역사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재능을 타고났다. 그러나 방해 없이 휴식을 취한 홉스봄은 우리 시대의 공포와 수치를 알지 못하고 잠을 잤다."

-> 시대의 공포와 수치를 외면한 채 역사가의 허물만 쓴 방관주의자 홉스봄


























존 루이스 개디스

"<냉전의 역사>가 미국의 시각으로 심히 편향되었다면, 이는 자료의 불균형 탓일 리가 없다. 이 책은 단연 편파적인 시각의 산물로 드러난다. 개디스는 사과할 줄 모르는 승리주의자다.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한 이유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었다."


"존 루이스 개디스가 쓴 냉전의 역사를 냉전이라는 주제를 흥미롭고도 지속적으로 타당하게 만드는 것의 대부분을 놓치는, 순진하게도 자화자찬하는 설명으로 치부하고픈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 실수가 될 것이다. 개디스의 해석은 현대 미국에, 다시 말해 나머지 세계는 물론 자국의 역사와도 이상하게 분리되었으며, <벽난로 옆에서 듣는 해피엔딩의 동화>에 굶주린 걱정 많은 나라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냉전의 역사>는 미국에서 역사로서나, 책 표지의 추천 문구에 들어 있는 칭찬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새로운 위협을 처리할> 방법을 가르치면서 주는 교훈에서나 널리 읽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울적하다."


"개디스의 책이 미국 내에서 냉전의 성격과 냉전이 종결된 방식, 냉전이 미국 안팎에 남긴 끝나지 않은 근심스러운 유산에 관하여 오해와 무지가 널리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읽어야 할 저자들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은 카뮈가 앞서 썼던 글들의 요약이고 발전일 뿐만 아니라 카뮈의 관심사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현재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중요하지 않은지를 일깨우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지침을 잃어버린 지식인의 상태를 꿰뚫는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이 직관 덕에, 카뮈의 윤리학은, 그 한계와 책임의 윤리학은 특유의 권위를 얻게 되었다. 당대의 프랑스에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 도덕적 권위이며, 이는 <최초의 인간>이 왜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책은 비록 완성되지 않았고 다음어지지 않았을 수는 있겠지만 여러 점에서 훌륭하다."


"전자기기 너머의 청중이라는 찬미의 거울 앞에서 멍청하게 멋이나 부리며 자신을 높이는 미디어 지식인의 시대에, 카뮈 특유의 정직함은, 예전에 학교 선생이 말했던 <너의 본능적인 정숙함>은, 거짓 복제품이 판치는 세상에서 걸작 수제품이라는 진정한 작품의 매력을 지닌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쓴다. 카뮈는 <작품으로써 프랑스 문학계의 매우 독창적인 면모를 이룬 도덕가들의 긴 계보를 잇는.......현대의 계승자를 대표한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는 자신을 받아준 나라들에서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경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다룬 3권짜리 훌륭한 저작인 이 책은 1967년에 파리에서 폴란드어로 출간되었고 2년 후 영국에서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가 발행했으며 지금은 여기 미국에서 노턴 출판사가 한 권짜리로 다시 찍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경향>은 현대 인문학의 기념비적 저술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


"코와코프스키가 보기에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계급투쟁에 관한 명제들 때문이 아니고,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붕괴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이행의 약속 때문도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프로메테우스의 낭만적 환상과 완고한 역사적 유물론의 독특한 혼합이었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실패한 예언자이고 그의 가장 성공적인 제자들은 독재자 집단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기획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에 속하는 몇몇 사람에겐 비할 데 없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산당의 통치에 희생된 나라들에서도 당대의 지성사와 문화사는 마르크스 사상과 그 혁명적 약속의 매력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많은 진보주의 정치의 뿌리 깊은 <구조>였다. 마르크스주의의 언어는, 아니 마르크스주의 범주들에 기생하는 언어는 사회민주주의부터 과격한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온갖 정치적 저항에 형태와 암묵적인 통일성을 부여했다."


"시장의 승리와 국가의 후퇴를 성원하는 자들, 오늘날의 <평평한> 세계에서 경제적 주도권의 무한정 확대를 축하하라는 자들은 지난 시절 이렇게 살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잊고 있다. 이들은 갑작스럽게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가 믿을 만한 안내자라면, 희생양은 아마도 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일 공산이 크다. 디지털 방식으로 마스터 테이프를 다시 만들고 공산당의 자증스러운 상처가 없는 마르크스주의 테이프를 재생하고자 꿈꾸는 자들로 말하자면, 결국 모든 것을 망라하는 통치 <체제>로 귀결될 것이 빤한 포괄적인 사상 <체계>란 도대체 무엇인지 빨리 자문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앞서 보았듯이,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글을 읽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토록 유례없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미국에서 30년 넘게 사실상 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관한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다. 그 과정에서 사이드는 일신상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공적 봉사를 수행했다. 사이드의 죽음으로 미국의 공적 생활에는 큰 빈자리가 생겼다. 누구도 사이드를 대신할 수 없다."















아서 케스틀러

"소련의 허상을 깨뜨리는 데에는 그 무엇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한 공헌을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한낮의 어둠> "이 소설의 한 가지 매력은 공산당의 작동 방식과 공산당의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포착하고 확인했다는 데에 있다.....이 책은 대중 독자층에게는 공산주의를 가혹한 독재정권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실과 논거, 재판을 조작하는 거짓말이자 사기로 제시했으나, 식별력을 더 갖춘 지식인 독자층에게는 공산주의를 가혹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기묘하게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것으로 제시한다."


"케스틀러가 야경봉보다 변증법을 강조한 것은 공산주의가 그렇게 많은 범죄를 저질렀어도 본질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케스틀러가 공산주의의 최악의 모습을 감출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케스틀러는 불편한 존재가 되었고, 분열과 갈등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지식인이란 바로 그러한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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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5-19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논쟁이 많을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꼭 읽어보고 싶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책 내용 중 읽지 말아야 할 저자 한나 아랜트는 백퍼 동의합니다.
하지만 에릭 홉스봄과 특히 존 루이스 개디스는 잘 수긍 되지 않습니다. 전 존 루이스 캐디스의 <역사의 풍경>을 안 읽어본 분들께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추천하고 싶습니다. ㅎ
전 오히려 에드워드 사이드 책을 읽을 필요 없는 책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
하여튼 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Redman 2022-05-19 20:48   좋아요 2 | URL
이 책은 정말 마구마구 추천하고 다니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단 한 개의 글도 허투루 넘길 게 없습니다. 대가다운 균형잡힌 시각과 체계적 글쓰기가 인상적입니다. 내용도 마찬가지고요. 올해 제가 읽은 첵 중에 이 책을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Redman 2022-05-22 07:43   좋아요 1 | URL
읽지 말아야 한다는 건 저자가 한 말은 아니고. 이 책을 읽은 저의 결론입니다 ㅋㅋㅋㅋ 홉스봄의 저작들은 여전히 의미있긴 하지요. 개디스의 냉전사 책은 안 읽더라도 역사의 풍경은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도시락 싸들고 다닐정도로 좋아하시는군요 ㅋㅋ
 

제5장 유가 윤리 중심의 정치사상

제4절 맹자의 인정 사상

제5절 순자의 예치사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사상가들은 고유의 인성론을 전개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로부터 그에 맞는 정치체제를 구상하고 정책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경우, 정치사상은 인성론 - 정치체제론 - 정책론으로 나뉘는데, 이들을 다시 범주화하면 형이상학적 인성론과 실천학(정체, 정책)이 될 것이다. 인성론은 정치체제의 형이상학적 근거이다.

서양에서는 플라톤과 루소, 마르크스 등이 그러하다. 플라톤의 <정체>politeia는 좋은 정치체제를 논하기 위해 좋은 정치 지도자란 누구이며 좋은 시민은 무엇인지를 논한다.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자연적 인간의 타락을 논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체제 구상을 담은 책이 <사회계약론>이고, 그 사회에서의 인간의 교육방법을 논한 책이 <에밀>이다. 루소 역시 인성론 - 정치체제의 순서를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간주하며 공동체 속에서의 조화를 붕괴시키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체제를 비판하며 다시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구상했다.






중국 정치사상사에서 인성론을 논한 유명한 논자들은 바로 맹자, 고자, 순자이다. 맹자의 사상은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로 알려져 있으며 고자는 인간의 품성은 후천적으로 형성되며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현대에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론은 아마 고자일 것이다. 하지만 고자의 사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고 이 책에서도 거의 논하지 않는다. 그래서 맹자와 순자의 인성론과 그에 따른 구체적인 정치 실천을 류쩌화의 논의를 따라 집중적으로 보고자 한다. 맹자에서 순자 순으로 정리하겠다. (원전 번역은 모두 류쩌화의 책에서 인용)


맹자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선한 마음을 타고난다고 말한다. "사람의 본성이 선함은 물이 낮은 데로 임하는 것과 같다." 그는 사람이라면 "차마 참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갖고 있다며, 이 마음을 다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사심'으로 개괄한다. 맹자는 공자의 인의예지 관념을 돌출시켜 4대 윤리의 범주가 이 사심이라고 주장한다.(사단) 이는 맹자의 중요한 공헌인데, "인륜관계가 사람의 본성에서 나온다는 맹자의 이 한 가지 주장은 유가 윤리 관념사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지닌다...[윤리의 위반을 하늘의 뜻이 아니라] 맹자는 인성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맹자는 성선으로부터 인간동류설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인에서 민에 이르기까지 성선이라는 공통점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같은 부류이다. 인간동류설에는 두 가지 함의가 있다. 첫째, 인간은 자연세계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둘째, 모든 사람을 내재적으로 통일시켜주는 요소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요임금의 옷을 입고, 요임금의 말을 읊조리며 요임금의 행동을 하면 요일 따름이니" "사람은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 수양을 통해 선한 본성을 지키는 사람이 군자요, 선한 본성을 잃은 사람이 '소인'이다. 맹자에게 있어 성인의 기준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니라 인의의 준수이다.

맹자는 정치적으로 인정설을 주장했다. 이것은 그의 성선론을 정치현실과 결합해서 발전시킨 이론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차마 참지 못하는 정치'가 있다. 이 마음이 정치로 발현되면, '차마 참지 못하는 정치'가 이루어진다. 인정仁政의 목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능히 생활하도록 하고, 능히 삶을 충분히 누리고 죽음에 이르도록 하고,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위로 족히 부모를 섬길 수 있어야 하고, 아래로 족히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양혜왕 상)는 것이다. 이 같은 목표는 춥고 굶주리고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며 효를 행하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의 암담한 현실에서 나온 것이리라.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을 차마 참지 못하고 인정을 펼치려면, 다음과 같은 구체적 정책들을 시행해야 한다고 맹자는 주장했다. 1) 백성의 항산 보장, 2) 정해진 제도에 따른 부세와 요역, 3) 가벼운 형벌, 4) 빈민 구제, 5) 공상업 보호 등. 이렇게 인정을 펼치면, 그 정치는 왕도이다. "왕도는 맹자의 인정론이자 정책이었는데, 그 요점은 보민, 덕의 실행, 민심에의 복종이다."


다음으로 순자이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한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 본성이 선천적으로 악한 행위를 지향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인간 본성의 선악을 구분하지 않았다. 순자의 인간론은 인간의 자연성과 사회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자연 속 존재이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일정한 군체를 결성하고 일정한 조직을 갖추며 "집단생활"을 이룬다. '집단'이란 오늘날의 사회성과 유사한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집단을 공동체로 바꾸면 더 이해하기 쉬워질 것 같다. 순자는 인간이 사회 속의 인간임을 논의의 밑바탕에 둔 것이다.

인간의 자연적 본성(性)은 그 자체로 악하거나 선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의 성이 사회 속에서 표출되면, 정(情)과 욕(欲)이다. "성은 하늘이 이루어놓은 섯이다. 정은 성의 본질이다. 욕은 정이 감응한 것이다. 욕한 바를 얻고자 갈구하게 되면 정은 어쩔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성, 정, 욕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감각기관의 욕망: 이는 자연적 본성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

2) 이익을 좋아함: 이익은 감관의 욕망과 함께 자연스러운 요구를 넘어서는 주관적 욕망이기도 하다. (참조: 사람의 정이란 먹는 데 집짐승을 바라고, 입는 데 화려한 의상을 바라고, 행차하는 데 가마와 말이 있기를 바란다. 게다가 남은 재물을 축적하여 부유해지기를 바라는데, 세세연년 족함을 모른다. <영욕>편)

3) 배타성과 질투심

4) 영에를 좋아하고 치욕을 싫어함: 영예를 좋아함이란 기본적으로 권력욕이다.

여기서 감관의 욕망은 자연적 본능이지만, 나머지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회성의 표현이다. 이들 각각은 선악을 논할 수 없지만 "이 본성 가운데 악의 기초적 인자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본능이 외부로 확장해갈 때 비로 악으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주관적 욕망의 추구가 극에 달할 때, 사회 질서와 공동체 생활을 무너뜨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순자의 성악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즉, 이러한 성정욕에 순응하면 인간의 욕망이 정상적인 사회 질서와 충돌하여 이를 파괴하게 된다. 사람의 본성이 외부행위로 드러나면서 다른 사람이나 사회 질서와 충돌하는 자연성과 사회성의 모순을 순자는 지적한 것이다. "순자는 본성에 순응하면 '사양' '충신' '예의문리'와 대항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의미에서 보면 인성은 악한 것이다."

순자는 인간의 파괴적 정욕이 수습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인성의 개조를 주장한다. 개조의 방법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이 성인의 "인위"이다. 이는 예와 법을 말한다. 예는 유가적 관념이지만, 법은 법가와도 이어진다. 순자는 도덕과 제도를 동시에 강조한 것이다. 개조의 두 번째 수단은 스승의 교육이며, 세 번째는 환경과 습속의 개조이다. 마지막은 수신이다.

맹자의 사상 속에서 정치체제는 도덕으로도 충분히 작동된다. 그가 본 인간은 성선을 핵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자가 봤을 때 진정한 문제는, 인간의 욕망 추구와 사회 질서 사이의 모순이었으므로, 단순히 도덕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도덕(예치)에 제도(법치)를 거론한 것이다.

"예와 법은 인성을 교정하는 공구인데 성인이 만든 것이다. 또 성인의 예, 법, 제작은 사회적 모순에 기초한 것이다. 이들 모순은 사람의 본성, 욕망과 자연 및 사회 사이의 모순, 충돌을 바탕으로 전개된다...모순은 먼저 욕망의 무한성과 물질의 유한성 위에 드러난다...모순은 또 욕망의 평등성과 사회관계의 불평등성 위에서 드러난다." 예로서 이 모순을 다스려야 한다. 그것은 우선 사람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며, 또 사회적으로 구분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 예에 근거하여 제도(법)가 성립되어야 한다. (순자의 법 사상에 대하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정리하겠다)

순자의 예치는 경제적인 부분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일종의 이상국가론이 부국부민론인 것도 당연힌 것이겠다. "순자의 인식이 다른 유가들보다 깊이 있는 곳은 바로 그가 심각하게 경제 문제를 정치의 기초로 생각했고, 또 그것을 정치의 좋고 나쁨의 표식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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