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오프라윈프리 리더십여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 남아공에서 가장 가난한 집 소녀들을 뽑아

전액 장학금을 주어 교육시켜 남아공 여성지도자로 키운다는 것이다 .

거기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돈 한 푼 안내면서 말만 많은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었다 .

“그러는 당신은 타인을 위해 뭘 해봤는데 ? ”




2 . 브래드피트+안젤리나 졸리




영화 ‘가을의 전설’을 본 날부터 브래드피트를 좋아했다 .

배역은 그냥 이미지일 뿐이지만 내 눈에 그의 메소드연기는

존재 그 자체인 것처럼 보였다 .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는 뭐가 매력적인지 잘 모르다가

브래드피트와 결혼한다기에 정말 초현실적인 화학결합이구나 싶었다 .

그런데 안젤리나 졸리에 대한 보도를  보았더니 존보이트의 딸이며

빌리 밥 손튼과 두 번째 결혼 생활중 제 3 세계 아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 그리고 입양을 잘 이해하지 못한

빌리밥 손튼과 이혼하고 브래드 피트와 3 혼을 한 다음

또 입양하고 제 아이들도 낳고 여전히 제 3 세계에 가서

봉사한다는 것이다 .

안젤리나 졸리가  여배우로서 보여주는  ‘섹시’ 한 이미지보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수없이 타인에게 베푸는 모습을 보면

예쁜 여자들은 다 머리가 가볍다는 선입견은

진짜 선입견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3. 마돈나




마돈나의 노래와 복장을 보면 흠~작정하고 이미지를 만드는구나

싶기도 했다 . 그런데 마돈나가 말라위 어린이를 입양하고

오프라윈프리처럼  수백만 달러를 들여 말라위에 여학교를 세운다는

보도를 보고 속내가 따로 있을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4.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면 저것이 진정 사람인가 싶기도 한데

이디오피아, 수단, 베트남등 제3세계를 방문해 구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에  그 존재감이 더욱

뚜렷해졌다 .특히 암 투병중이던1992년 9월에 기아와 질병으로 가득한

소말리아를 방문, 전세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고 호소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주기도 했다 .

지금도 ‘로마의 휴일’을 보면 사람이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또 그렇게 아름다운 행실을 하기도 하는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

그래서 우리가 오드리 헵번을 기억할 때면 외모보다 행실이

더 아름다운 천사가 천국에 갔구나 할 것이다 .




5. 신애라+차인표




한 번도 신애라나 차인표가 뛰어난 영화배우라고 느껴본 일이 없다 .

하지만   두 사람이  제 아이가 있는데도 입양을 하고 외국에 나가

봉사를 하고 외국 아이들에게 생활비를 기부한다는 보도를 보고

그들을 달리 보게 되었다 . 비록 신애라가 ‘뉴코아’전속 모델을 한다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보기도 했는데

그 흠을 그렇게 가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




6. 김장훈




김장훈더러 ‘기부천사 ’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 자신은 집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타인에게 기부하면서 그 기부금을 갚기 위해

또 열심히 공연한다는 말은 신선한 발상이라고 느꼈다 .

금액이 얼마가 됐건  김장훈은 베풀면서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




7. 정혜영+션




지누션의 ‘말해줘 ’를 즐겨 부른 적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힙합을  하는 가수들은 좀 내 취향이 아니었다 .

그런데 션과 정혜영 부부가  재테크는 별로 안하면서

100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기부한다는 말을 듣고 지누션의 음악이 가진

오묘한 예술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




8. 최진실

 

몇 날 며칠동안 최진실은 각 케이블 TV를 장식했다 . 

사람들은 국민배우가 죽었다고 슬퍼한다 .

그 여자가  얼마나 고생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얼마나 외로웠으며 악플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불행한 선택을 했다고

악플러들을 처단하자는 여론을 이끌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

최진실이 진짜 왜 죽었는지는 최진실만이  알 것이다 .

하지만 최진영 말대로 ‘건물 100억과 집 30억 밖에’ 재산이 없다면

좀 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쉰 살이며 아직 결혼을 안 해(혹은 못해)자식도 없는 벗이 전화를 해서

‘나는 재산도 없고 남편도 자식도 없는데 자기가(최진실이)

20년 동안 외로웠으면 나는 이미 외로움에 절어서 말라죽었겠다 ’ 하고

툴툴거렸다 .

누구 외로움과 슬픔이 더 지독한지는 수치로 계량화하기 어렵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진실이 인문학을 공부하고 사회와 연대하여

사는 길을 택했더라면 130 억이나 되는 부동산을 두고

아직 어미 손길이 절실한 자식들 곁을 떠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엄마네

 

 우리 어머니는 고향은 울진이고 '해주 오씨'였다 .

왜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 어머니는

'해주오씨'가 똑똑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다 .

어쨌든 우리 어머니는 똑똑한 분이었다 .

시절을 잘 만났다면 고등교육을 받고 남들  앞에 나서는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

 

그런데 엄마네  가족(해주오씨네)들은 모두 목소리가 컸다 .

그리고 감정 조절이 잘 안되어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

남이 듣기 싫어하는지 어떤지 고려하지 않고 하고싶은 말을 '직빵' 으로 했다 .

그리고 보증서달라는  말을 잘 하고 돈 빌려달라는 말도 취직 부탁도 서슴없이 했다 .

그런 다음에 만나면 상대에 대해 서운했던 점을  필터에 거르지도 않고

바로 뱉어서 분쟁을 야기하거나 술마시고 용기 백배 한다음 욕을 하며

싸우고 울고 뒤집어졌다 .

 

그런데 다음에 제사나 명절이나 잔치에서 만나면

지나간 분쟁은 다 잊고 또 웃고 떠들고 술마시고 가문 단위로 놀러갔다 .

물론 비용을 대는 잘 사는 친척이 있었다 .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런 모든 교류는 '0' 이 되었다 .

내 DNA는 오씨와 임씨 절반일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오씨' 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

참! 어머니네 어른들은 거의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

 

2 . 아버지네

 

아버지는 개성에서 인삼농사를 짓던 중농이고 '안동 임씨'가문인데

가문이라기도 낯간지러운 게 전국에 2,497명(2000년  통계)이라니

지금도 별로 늘었을 것 같지 않고 아마도 안동김씨 가문을 도와 종노릇을 하다가

조선중기에 족보를 만든 기층계급일 것 같다 .

 

우리 가문에는 (-.-;;)뛰어난  사람도 별로 없고

집안에서도 미국가서 수학박사라는 5촌외에는 출세한 사람도

소름끼치는  악당도 없는 그냥 그런 집안이다 .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표현) 얼마나 '개성사람' 스러운지

모이면 절대로 큰소리를 안 낸다 .

보증서달라는 소리는 하는 걸 들어본적도 없고

굶는 게 뻔해도 친척끼리 돈빌려달란 소리로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

또 돈 있다고 티내는 사람도 없고  좋은 일했다고 신문에 난 사람도 못봤으며

명절이나 잔치에도 넘치도록 뭘 사오거나 감동을 주는 퍼포먼스라는 것도 절/대/ 없/다 .

 

또 하나 명절이나 제사에 모이면 다른 가족 애들 성적도 묻지 않고

승진 상황도 묻지 않고 남의 연봉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

식사도 한 끼만 먹고 게임을 절대로 안하며 바로 일어나고

붙잡지도 않으며 방학이나 휴가에 친척끼리 놀러가지도 않는다 .

집들이 하는 것도 못봤고 가문단위로 여행같은 건 있/을 /수/도 /없/다 .

당연히 싸움도 없고 서운한 것도 없고 기대도 없고

정도 없다 .

 

내 DNA는 오씨와 임씨 절반일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임씨네 사는 방식' 이 재수없어서 가기가 싫다 .

임씨가 아니었던 홍씨 백모님이 오라고오라고 해도

사촌들 오촌들 다 면대하기 껄끄러워서

좀처럼 가지 않다가 올 봄에 구순 백모님 별세하시고

초상집 다녀온 뒤 내 동생들 외에는 임씨네하고

좀처럼 만나지 않는다 .

 

3. 박씨네

 

딸의 아비는 삼대 독자 외아들이어서 서발 막대 휘둘러도 아무도 없다 .

그래서 잘 모르겠다 .

 

4. 섞어찌개

 

얼마전 끝난 '엄뿔' 이나 요새 하는 '너는 내 운명' 같은  복합가족 시스템에서는

살아본 적도 없지만  그런 집 며느리하라면  정주영네라도 못할 것 같다 .

오래도록 딸과 둘이 살았고

동생들은 이웃에 살아도 같이 두끼를 먹지 않고 같이 여행도 가지 않는다 .

 

그러나 복합가족 체계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미덕이 있다 .

싸우기도 하고 흉도 보고 비교당하고 열통도 터지지만

왜그런지  정치적이고 음모 가득한 서스펜스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

그런 드라마 주인공 혹은 조연으로 살다보면

참을성, 친화성, 능구렝이처럼 넘어가는 법을 배울 것 같다 .

우리 모녀는 오래도록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서

강한 충격에 약하다 .

누가 언짢게 굴면 그냥 문을 닫거나 가벼운 중이 절 떠나는 게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

 

중앙당게에 보면 참 쓰잘데기 없는 일로 싸운다 .

진보신당이 가져야 할 가치와  곧 닥쳐올 엄청난 경제 쓰나미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할 시점인 것 같은데

지엽적인 문제로 피를  흘린다 .

 

재수없는 '아버지네 ' 같은 방식도 문제지만

상대 가슴에 무수한 상처만 남기는 야생의 담화방식을  못 고치는'엄마네' 같은 경우도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

 

5. 좀비정권에서 살아가기

 

오늘도 뉴스를 들으면

1997 년, 어린 거 데리고 집도 절도 없이

빚만 잔뜩 진 채로 하루하루 수강생 끊어지는 소식을 듣던

그 아득하도록 암담한 날들이 떠오른다 .

이제는 내성이 생겨서  수강생이 '0' 이 되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 같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생명이 들려준 이야기
위기철 / 사계절 / 199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토담이, 그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오해했다.

자신은 헌것만 받고 형이나 동생에게만 새것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고 있는데 ‘죽음’이 나타나 부추겼다. 너의 어머니는 너를 싫어한다고 .

그 결과 자살까지 생각했다. 노끈을 찾는데,

그때 토담이의 ‘생명’이 와서 죽음을 몰아쳤다.

생명은 토담이네 엄마가 토담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고 여러가지 얘기를 해주며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지켜야하는지 알려 주었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우리 동화를 들려주었다.

어느 부자가 돈만 좋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았다. 그리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이 장난을 쳤다. 그의 얼굴에 저승꽃을

피게 했다. 그리고 그 부자에게 가서 생명을

돈으로 사라고 했다. 그래서 공지를  붙이고

생명을 산다고 하였다. 그래서 어떤 젊은이가

생명을  판다고 하여 샀다. 또 다음 날도 와

생명을 팔고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팔았다.

그래서 부자가 어디에다 쓰는지 궁금하여 따라가

보았다. 그런데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더니

부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부자는 자기 생명을 다시

가져가는지 알고 들어가  젊은이를 찾다가

죽음을 찾았다.  부자는 속은 줄 알았다.

죽음은 그때 부자의 생명을 가져갔다.

부자는 늘 어리석다. 재산을 자기 자식에게 주든가

또는 불우이웃돕기를 하면 어디 덧나나?

자기가 열심히 일해선 번 돈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들은 대개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해결된다고 착각한다 .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미 얘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어 - 거미 박사 남궁준 우리 인물 이야기 10
김순한 지음, 이민선 그림 / 우리교육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 박사 남궁준은 처음에는 거미에게 관심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미에 관심을 갖게 된 일은 서울의 헌책방에서부터 이어졌다.

남궁준은 우연히 책방에서 거미에 대한 책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서 한 마디가 남궁준을 거미박사로 인도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거미 박사가 한 명도 없다.’ 라는 말이 남궁준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남궁준이 사는 곳은 눈을 뜨기만 해도 거미가 보이는 곳이었다.

그래서 남궁준은 거미박사가 되는 일을 선택 한 것이다.




남궁준은 우리들이 본받을 만한 인물이다. 거의 흔하지 않은 그 거미를

남궁준은 꼭 보겠다고 결심을 했고 그 거미를 보기 위해 끝까지 그 꿈을 포기 하지 않고

이루려는 그 생각이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 아이들은 어려운 일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

금방 포기를 해 버린다. 그러나 포기를 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다가 그만하려면 대충 살아 !하고

쉽게 그만 둔다. 그러나 남궁준 선생님은 끝까지 노력을 했고 결국 에는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도 지금도 거미를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다.

거미는 징그럽고 독거미는 무섭고 털이 복슬복슬하고 으~~! 생각만 해도 섬득하다 .

그러나 남궁준은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니 귀여웠을 거다.

개를 사랑하면 똥도 사랑하게 되는 법이니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미 개 낮은산 어린이 6
박기범 지음, 신민재 그림 / 낮은산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할머니가 개를 키웠다. 이 개는 암컷이다.

근데 할머니는 가난하기 때문에 감자가 새끼를 날 때마다

팔 수 밖에 없었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 낳는 강아지들은

다 팔아야 해서 이 암컷은 슬퍼한다.

팔려 나갈 때면 끙끙대며 울기도 한다. 읽는 나도  그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 개가 그럴 때 불쌍해 보였다.

할머니가 죽었을 때 이개도 이틀이나 굶어서

그 옆에서 죽었다. 참 불쌍했다. 또 강아지를 낳느라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감자야, 수고했어!”




이 감자가 정말 불쌍하다. 나도 개를 키워 본적이 있는데

감자의 슬픔은 인간의 슬픔과 동일하다 .

새끼를 잃은 슬픈 마음도 이해할 것 같다.

만약에 가난해서 자식을 못 키우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이 강아지도 나랑 똑같이 슬펐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가끔 보면 가난해서 자식들과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들도 불쌍하지만 어른도 불쌍하다.

가난해도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자식들과 같이 모여서 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