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아가일 때,

18 개월 까지는 아이를 보기로 하고 일을 그만두었는데

그래도 집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논문 대필이라는-.-;;)

 

당시에는 전동타자기를 썼는데 타자기 앞으로 아가가 아장아장 걸으며 다가온다 .

발끝으로 밀어내면 또 오고 밀어내면 또 오고 .....

 

그래서 생각 끝에

맥주 한 모금 혹은 두 모금을 먹였다 .

그랬더니 술기운이 들자 아가는....

낄낄 웃으며

이리 우르르 뛰고

저리 우르르 뛰고

그러다가 결국은 쓰러져 잠들어 아주 오래오래 잤다.

덕분에 어미는 돈을 벌고

가족들에게 그 당시 얘기를 하면 다같이 명랑하게 웃다가 쓰러졌다는

엽기 가족이야기가 전설처럼 .....

 

 

이 얘기를 들어서 기억하는 딸은 중얼거린다 .

-두고 봅시다 .......

 

 

(무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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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달에 10 만원씩 내서 2 년에 한 번

여행을 가는 <놀다죽자>여행 클럽에 가입했다 .

친한 여성 두 명과 비용을 모으는데

여행 가기로 합의했는데 막상 못 갈 사정이 생기면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

그래서  돈이 아까워서 그냥 간다 .




몇 년 전에는 터키에 갔는데

이스탄불에서 첫 밤을 자게 되었다 .

나는 여행을 갔다 오면 부룩부룩 살찌는 걸 경계 한다 .

거의 기름진 음식에 대개 세 끼 꼭 먹게 되고 

우리나라처럼 나물이나 김치 같은 게 별로 없으니까 그렇다 .

더 중요한 건 그냥 ..안 먹어도 비용환불이 없으니까

꼭꼭 먹는다는....-.-;;




그래서 여행갈 때 런닝화를 꼭 가져가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치 금강산호텔 박왕자씨처럼...명복을 빕니다 .-.-;; )

숙소 근처를 (전화번호를 꼭 적어 주머니에 넣고 간다 )

1 시간가량 걷거나 뛴다 .




마침 이스탄불에서 첫 아침...

2 월 아침은 느리게 해가 뜬다 .

운동복을 입고 뛰기 시작했다 .

아직 사람이 없는 어둑신한 상점들의 거리를 뛰면서 ...

나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야 ..흡족해하는 참에....




저쪽 골목에서 우리나라 똥개 스타일의 커다란 개들이 떼로

나/타/났/다/

그리고 내가 뛰니까 자기들도 뛰면서 나를 따라왔다 .

쫒아왔다 .

컹컹거리면서 ......

개새끼들이!

컹컹컹컹!(코리아 형제 나라에서 온 저 여자는 왜 뛰는 거야 ? )

마치 ‘나는 전설이다’ 에 나오는 좀비들처럼......




나는 울면서 몇 킬로인지 뛰어서 어떤 모스크 문 열린 데로

뛰어 들어갔다 .

개들은 더 이상 쫒아 오진 않았지만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는.....




원래 개를 무서워하는데

이스탄불의 거리 개들은 목줄도 없고

온몸에 털이 엉겨 붙은 ,

그러나 오스만투르크의 영광을

달리기로 커버하더라는....




지금도 내가 개 싫다고 이 이야기를 해주면

어른들이나 청소년들이나 아가들이나

낯선 거리에서 냅다 울면서 달리는 나를  상상하면서

막 웃는다...웃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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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흠좀무

 

딸이 수시 준비를 하는데 어떤 학교는 추천서를 2인에게 받아서 내라고 한다 .

담임교사가 1 통은 써주지만 나머지 한 통은 누구에게 받을 것인가 ?




딸은 전에 민노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했는데

탈당하는 바람에 청위사람들과 관계가 다 정리되고 말았고

무극 절에도 한 이년 못 갔으니 주지스님에게 써달라는 것도 우습고

친한 목사님께는 얼굴이 없어서 못 써달라겠고

중학교 담임에게는 인사 한 번 못 갔으니 그렇고

내가 아는, 사회적 지위가 좀 되는 사람들은 다 받고 싶지 않은 대상들이고

가족은 안 된다니  제쳐놓고

딸아이를 가장 칭찬하는 분은 경비하는 아저씨들인데

왠지 그건 아닐 것 같다 ...-.-;;




딸은 생각 끝에 홍세화, 진중권, 심상정, 노회찬, 정태인, 우석훈,

서준식...이렇게 자신이 사숙한 분들에게 메일을 띄워서 추천서를

부탁해보겠다고 해서  잘 해보라고 했다 .

흠좀무....




2 . 님좀꽝

 

딸이 뭔가 일처리를 하는 걸 보면 99.9% 맘에 안 든다 .

나도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맘에 안 드는 자식이었을 것이다 .

짐작컨대 99.8%.




그래서 딸에게 ,

“ 요번 일은 님좀짱, 이라고 하고 싶은데 님좀꽝이다.”

하고 평가를 내리면 주댕이 댓빠리 나온다 .




어제는 딸에게,

“ 너 라온, 그 아이디 버리고 부모 양성쓰기해서 ‘박임좀꽝’으로

아이디바꿔라. ”했더니 ,

“좀꽝이 어머니! 이제 그만 주무세요 . ” 한다 .




3. 구글 검색

 

친구가 뇌출혈로 아주대병원에 입원해서 수술받았다 .

병문안을 하고 나오는데 문득, 오래 전에 알던 선배가

아주대 간호사였던 게 떠올랐다 .

그래서 집에 와서 구글 검색으로

<아무개, 아주대병원, 연세대 간호과, **아파트>로 검색어를 넣었더니

아주대간호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나온다 .

사진 확인해보니 맞다 .

그래서 메일 보내고 답장 받고...

선배는 깜짝 놀란다 .




7 년 전에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아주대 장례식장 이용했는데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생각 못했는데

17 년 만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

그때 담선을 포대기에 업고 찾아가 만나곤 했는데

이제 담선은 주민등록증이 나오고

우리는 50 대 중년 여성이 되었다 .

나는 돌아온 솔로, 그 선배는 여전히 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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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봉




일요일 아침 일찌감치 일하러 나가려 세수를 했는데

면봉이 단 하나 남았다 .

썼다 .




1시간쯤 지나 딸에게 문자가 왔다 .

-엄마 ! 면봉 어딨어 ?

-엄써.

-헉~ 그럼 귓속 물은 어떡해 ?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




묵묵부답.

나중에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까 ,

-화장솜을 이용했어.난 그렇게 어리지 않아 .




2. 쌀어묵




생협 쌀어묵은 데워서 그냥 먹어도 맛있다 .

며칠 전 저녁도 못 먹고 늦게 들어왔는데

밥 차려 먹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쌀어묵을 봉지 째 데워

포크 하나 들고 컴 앞에 앉아 먹었다 .

이 쌀어묵은 지름3센티 정도 원반형으로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다 .

거의 다 먹었는데 딸이 제 방에서 나오면서

“ 엄마! 이거 쌀어묵 냄새 ? 설마 엄마 혼자 ?”

하길래 남은 것 다섯 개를 포크로 꿰어 고정시켜 바닥에 놓고 꽉 눌렀다 .

“ 엄마! 이럴 수가!”

“ 넌 살 날이 많이 남았잖아!”




3. 팔공산 기돗발




예전 수강생 어머니를 만났다.

그 어머니는 얼마 전 밤 9 시에 북문 농협 옆에서 2만원주고

전세 버스 타고 대구 팔공산까지 갔다고 한다 .

그리고 거기서 자정 넘어 한밤중 백팔 배 절하고

아들 원하는 대학에 붙게 해달라고 기원한 뒤

버스 타고 돌아오면 새벽 6 시라고 한다 .

그래서 고3 아들 아침밥 해먹여서 등교시켰단다 ....




나는...

딸아이가 공부하는데 피곤하다고 하면,

-그럼 내가 공부할테니 네가 돈벌어와라.




수능이 빨리 끝나면 좋겠다고 하면,

-나는 십 년 넘게 수능 공부하는 데 일 년 갖고 뭘 그래 ?




무슨무슨 대학에 못 가면 어떡하냐고 끌탕하면,

-나는 지방대나와도 별 상관없던데 ......




자정에 아파트 정문 앞으로 데리러 나오라고 전화하면,

-넌 혼자서도 올 수 있는 애잖아. 기운내!




4. 나쁜 걸, 이상한 걸, 싸가지 없는 걸,




친구가 어떤 기이한 단체에서 일을 한다 .

이게 왜 기이하냐면 겉으로는 뽀대나는 교육사업인 척 하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사설 +봉사 +사교육업체 트랜스포머 >이기 때문이다 .

그런데 그 단체 책임자 여성이 급여를  열흘 밀리는 건 예사고

두 달 밀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원래 봉급생활자건 일급생활자건 급여는 정해진 날짜에

따박따박 줘야  경제생활을 설계할 수 있는 거다 .

또 사정이 있어서 못주면 ‘사정이 이러저러하다’ 고

양해를 구하는 게 노동자 인격을 존중해주는 첫걸음이다 .




얄궂은 건 그 책임자여성이 내 친구보다 젊고

명랑하고 똑똑하고 부유하고 행복한 처지라는 사실이다 .

예전 내 성질 같았으면 당장 전화해서

“ 이 나쁜 여성아! 진보입네 떠들면서  노동자 급여 날짜도 못 챙겨 주냐 ?”

고 단칼에 ....그러나 갑신정변 이후로 나도 많이 퇴화해서

그냥 여기에 욕하고 만다 .




“ 이 나쁜 걸, 이상한 걸, 싸가지 없는 걸아!

노동자 임금은 좀 제때 주고 살아라. 너같은 것들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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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7 년 전에 77 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서민병원에  입원하셨다 .

병원 측에서 심장 수술을 하면 좀 더 사실 수 있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펄쩍 뛰셨다 .

살만큼 살았다고 그냥 놔두라고 하셨다 .

그리고 눈감으시기 하루 전날, 일요일 이었는데

앨범 갖고 오라고 하시더니 사진을 골라 영정 사진으로

액자에 담아오라고 하셨다 .

동생이 친분있는 남문 사진관에 가서 억지로 문을 열게한 다음

확대해서 액자에 끼워 보여드렸더니 흡족해하셨다 .

 

그리고 아버지는 남아있는 통장을 다 나에게 주시며

사이좋게 나눠쓰라고 하셨다 .근데 많지 않아서 내가 다썼다 -.-;

아버지는 당신 수첩에서 장례식에 부를 사람 명단을

일일이 체크해주셨다 .-.-;;

 

그리고 다음 날 (월요일 ) 낮 1 시에 돌아가셨다 .

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 사신 건 많은 부분 삶을 긍정적으로

사신 덕분같다 . 아버지는 좀처럼 속을 끓이지 않는  법을 아셨고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으며

선경도서관을 자기 사무실처럼 이용하셨다 .

 

내가 어린 시절엔 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고 북문에서 남문 아버지 가게까지 가며

상점 간판을 역순으로 사라고송, 점과제욕뉴, 시낚울서...하는 식으로

읽으며 한글을 깨쳤다 .

아버지는 말년에 새벽 세 시면 일어나 한겨레신문 지국에 가서

신문 두 부를 가져와 한 부는 우리 집에 넣어주고 한 부는 통독한다음

우리 집으로 와서 그 날의 시사토론을 하는 거로 낙을 삼으셨다 .

 

우리 형제들도 어린 시절엔 아버지 자전거를 틈틈히 타는데

다리가 짧아서 엉덩이를 실룩하면서

페달을 밟던 어린 동생이 이제는 아버지랑 똑같이

머리카락 숱 적은 사십 대 남자가 됐다 -.-;;

나는 아버지 자전거를 타다가 신풍학교 옆 도랑에 처박혀

(예전에 복개가 안 된 도랑이었다)

핸들이 비뚜러진 자전거를 간신히 끌고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

 

유산도 안 남겼다고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가장 고마웠던 건 딱 한 달 아프고 돌아가셔서

자식, 며느리 고생 안시키신 거다 .

 

 

2. 바보새끼들

딸이 지난 주 수시시험을 보러 서울에 갔다 .

외숙모 휴대전화를 빌려들고 아침 6시반에 전철을 타고 갔다 .

학교에 8 시에 도착한 딸이 전화를 했다 .

" 엄마! 여기 엄마랑 안 온 애는 나 하난가봐 . "

" 아니 ? 전부 바보새끼들이라니 ?전철 타고 가서 걸어가면 학교 보이는데

왜 엄마 손은 붙잡고 간다니 ? 우리 삼촌들은 개성에서 서울까지도

기차타고 가서 중학교 입시를 봤다고 하더라 . "

" 예~ 어머니!안 바보새끼는 시험보러 들어가겠습니다 . "

 

나중에 수강생들에게 물어보니 세 명 모두 어머니나 아버지랑 함께 갔다고 한다 .

이유는 ? 점심 사멕이려고 아니면 기도하려고 ......@@

 

3. 시골집

월요일에 벗들 세 명과 의왕에 있는 '시골집'이란 밥집에 갔다 .

한 벗이 거기가 무지 싸고 맛있다기에 간 건데

6 천원 선불이 뭐가 싼 건지 모르겠고

그 밥상을 왜 줄을 서서 받아먹으러오는 건지 모르겠더라 .

우리 쌀을 쓴다고 쌀 포대를 쌓아놓긴 했는데

그건 뭐 당연한 거 아닌지 .......

갈치구이를 <무한리필> 해준다는 게 그 벗들 마음을 끌었는지는 모르지만

줄서서 뭐 먹는다고 서있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

참! 처녓적엔  명동칼국수랑 금강섞어찌개, 카사돈가스집에서

줄서서 먹었던 기억이.......-.-;;

 

4. 조카

내사랑 조카들!

남동생네 아기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그애들 놀리는 재미에 산다 .

여섯살 짜리 조카가 전화했다 .

" 고모!"

" 왜 ? 이쁜이 ?"

" 저 자장면 먹고 싶어요 . 언제 오세요 ?"

"고모 지금 일하는 건데......"

" 언제 끝나시는데요 ?"

" 한 삼 년 걸려 . "

"(제 어미 보고 )엄마! 삼 년 있어야 끝난대.(끊는다 )"

 

5. 광교산

친구들이 광교산 가자고 전화했다 .

오전에 잠깐 다녀오려고 나섰다 .

친구들은 등산복입고 배낭메고(이 속에 물이랑 오이, 배가 들었다)

등산화 신고 나왔다 .

평소대로 치마입고 납작한 슬리퍼 신고 나온 나를 보고 째려본다 .

왜 ? 내가 신풍학교 ,수여중 다닐 때 슬리퍼 신고 올라가던 앞산이 팔달산

뒷산이 광교산인데 등산화는 무슨......

이제는  등산 후 거기 백운보리밥집 보리밥도 지긋지긋하다 .

그냥  집에 와서 물말아서 오이지 반찬이랑 된장찌개해서 한 술 먹고 말았다 .

 

6 . 남산

지난 주 후암동 수업 11 시 반에 마치고

그 집 어머니와 남산 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빙빙 돌며 내려와 국립극장 거쳐 그 집까지 내려오니 두 시다 .

고속도로는 안 막혀서 좋았는데

내년 일 년 더 신으려던 샌들은 외피 다 벗겨지고 거덜났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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