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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평점 :
반지하방에서 사는 젊은이들...그들은 만화를 그린다 . 진짜 만화를 그려서 먹고 살 수는 있는 걸까 ? 아니,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살 수는 있는 걸까 ? 우리나라같이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다가 망해가는 조짐이 완연한 나라에서 미술이라는 걸 해가지고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는 걸까 ? 아주 슬프게도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배정된 예산은 여당에서 추진하는 운하의 또 다른 이름<4 대강 유역 정비사업> 이라나 뭐라나의 수십 분의 1 수백분의 1 도 채 안 되는 예산으로 살아가야 한다 . 일단 문화 콘텐츠라는 건 눈에 보이는 생산력이 없기 때문은 아닐는지 .
어쨌든 중고생들이 확실하게 국영수를 못하면 부모는 흔들린다 . 얘를 음악이나 미술 혹은 운동(스포츠)을 시켜야하는 건 아닐까 ? 내가 직접 해보지 않아서 음악이나 미술, 어느 계통이 더 돈이 덜 드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학교 다닐 때 보면 음대 애들이 더 부유해보였다 . 왜냐면 트럼펫 하는 애를 알았는데 외제 트럼펫이 국립대 등록금의 열배 정도였던 것 같다 . 그렇게 수백만원짜리 악기에 레슨비를 또 내야하는 음악보다는 도화지에 물감과 재능과 열정만 있으면 가능해 보이는 그림이 좀 더 저렴해보였던 게 사실이다 .
요즘은...어느 집 자식이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음...성적이 좀 덜나오는구나 , 정도로 짐작한다 . 원근법도 잘 모르고 데생도 잘 못해서 학교 다닐 때 일반선택으로 미술 감상이나 미술비평, 사진학 같은 걸 들었던 나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존경한다 . 그러나 고호나 이중섭이 살다 죽은 경로를 보면 그림은...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 물론 모네처럼 물질적 고생 별로 안한 작가들도 있지만 ......
그래서 일본만화작가도 아니고 우리나라 만화작가들이 단행본을 내면 마음이 싸아~ 해진다 . 내가 아는 집 아이 아버지가 만화가인데 (지금은 교수가 됐다)그 집이 초창기에는 굉장히 어려웠단 증언을 들어서 만화가는 왜 그런지 무척 궁상스런 직업으로 인식 한다 . 그런데 최규석이 <리얼궁상만화>라는 걸 그렸다 .2008 년 12 월에 읽어보니 진짜 궁상이다 .그들이 사는 <습지>에 나도 몇 년 살아보았는데 내가 살던 곳은 물이 들어오진 않아서 최악은 아니었다 .최규석의 친구 최군(작가 자신인 듯), 재호, 정군, 몽찬, 녹용(친구라기 보다는 기생자)은 그 반지하 습지에서 그 나름대로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 거기에는 자본에 의한 집중포화를 이겨내는 힘이 있다 . 그냥 처음부터 빈곤을 받아들여서 가능한 건지 아니면 언젠간 그 빈곤을 듣고 일어설 젊음이 있기에 ‘은이라도 주고 살 젊어 고생’으로 치환하는 저력이 있는 건지 아니면 빈곤 자체가 삶의 한 형태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 그 모든 것이 다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들은 그 나름대로 습습한 명랑을 이어가는 것 같다 .
그런데 만일 그들이 서른 살, 마흔 살이 되었을 때도 그들이 88 만 원 정도의 수입도 보장받지 못하는 예술노동자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그 정도밖에 못 버는 만화 작가들도 있을 것 같다 .영화 노동자들도 월 100 만 원 버는 게 힘들다지 않더냐 ? 초등생이 사는 어느 집에 가보아도 <마법 천자문>,<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 는 있지만 최규석 만화가 굴러다니는 건 못 봤다 . 내가 알기로는 어느 집에 책이 굴러다녀야 그 작가가 먹고 살 여지가 있다는 걸 의미 한다 . 어느 집에 가 봐도 공지영 책이나 김훈책, 황석영 책이 굴러 다닌다 . 그러면 그 작가는 먹고살 만하다 . 어느 집에 가서 공선옥 책이나 최규석 책이나 우석훈 책이 보인다면 ‘오호~ 이 책을 보다니...’ 하고 감동할 판이니 이 작가들이 곤궁할 건 뻔하다 . 하물며 다른 작가들은 말해서 무엇하리 .
<습지 생태보고서> 는 한 마디로 재밌다 . 지지리 궁상은 궁상, ‘리얼궁상’이 맞는데 그들에게는 젊음이라는 ,예술이라는, 삶의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전망이 보인다 . 녹용이 시니컬하게 비웃어도 <쭉쭉빵빵 이쁜이>들이 좀 남다른 스타일의 만화가들을 잠깐 갖고 놀아도 그들은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 그 좌절하지 않는 힘을 최규석은 조용히 만화가 가진 힘으로 보여준다 .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벼랑위의 포뇨’를 그리는 것처럼 아주 좋은 환경은 아니더라도 우리 젊은 작가들에게 그런 작업환경을 제공할 예산 지원을 해주는 일이 그렇게 힘든가 ? 전부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모두 일본 만화만 보고 죄다 번역 소설과 번역 인문학서적과 번역 자연과학 서적만 읽는 세상은 너무 재미가 없다 . 예술가만 연구자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돈도 안 되는 일에 허송세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없다 . 하지만 과거 어느 나라든지 모두 반도체를 만들고 운하만 파가지고 좋은 나라가 된 건 아니다 . 가능하다면 이 재밌는 만화를 그리는 젊은 작가에게도 발표할만한 지면을 더 많이 주고 더 많은 비평이 성행하며 더 많은 독자가 책을 돈 주고 사보길 바란다 . 그래야만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습지생태에 관한 보고서, 건조지 생태에 관한 보고서 , 사막에 관한 보고서를 볼 수 있지 않겠나 ? 최규석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리얼한 <궁상만화>를 그리겠나 ? 바라건대 최규석은 좀 더 좋은 만화를 그려 나같은 만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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