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를 통해 본 한국사회 영웅의 조건

정희준 |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경향신문



ㆍ그대, 우리 콤플렉스의 거울 우리의 자아도취

‘김연아 신드롬’이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국정을 포함한 사회 주요 현안까지 싹싹 쓸어 뒷구석으로 치워버리는 수준이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영웅’은 모두 스포츠에서 탄생했기에 (아마도 2006년 몰락한 황우석이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운동선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별로 새로울 게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연아라는 운동선수에게 열광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과거와 비슷하면서도 꽤 다르다. 우리가 그를 주목하는 지점과 열광의 작동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영민기자
김연아에게 빠져 든 상당수는 스포츠팬이 아니고 피겨스케이트팬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럼에도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트에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던 우리 국민들을 붙들어 앉혀 ‘피겨공부’까지 하게 했다. 당연히 우리가 김연아에 환호하는 이유는 분명 ‘스포츠적’인 것만 아니다.

과거 등장했던 한국 사회 영웅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오랜 세월 지지리도 못 살았던 약소국이었던 탓인지 우선 무조건 ‘세계적’이어야 한다. 바로 ‘국위선양’ 코드다. 사실 세계 어느 문화권이나 영웅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외국에선 소방수, 교사나 신체적 불리함이나 역경을 이겨낸 학생선수 등 ‘세계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인 경우가 많은 데 반해 우리는 민족의 탁월함을 세계만방에 알린 선수들만 선택했다. 가발 외엔 세계에 내놓을 게 없었던 1960~70년대, 세계무대에서 한국인의 우수성을 증명했던 김기수, 김일, 양정모, 홍수환, 차범근은 우리 국민의 움츠러든 가슴을 펴게 했다.

스포츠를 통한 국가주의적 자기만족이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요~’라는 자기최면까지 가능케 됐고 여기에 가속도까지 붙었다. 앞뒤 안 가리고 영웅을 찾아 나선 우리에게 걸린(?) 인물이 바로 하인즈 워드와 추성훈이다. 우리가 멸시하고 핍박해 내쫓은 ‘튀기’가 유명하고 돈도 많은 ‘미제’가 되어 돌아오자 우리는 ‘한국인의 피’라며 열광했다. 그래도 쑥스러웠던지 갑자기 과거를 반성하자는 국민적 반성운동(?)까지 벌이며 우리의 모순됨을 합리화했다. 우리는 또 재일동포 추성훈이 한국에 있을 때는 거들떠도 안 보다가 그가 일본에 돌아가 성공하자 갑자기 돌변해 그를 ‘우리편’이라 우기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뒤틀어진 자화상이다.

90년대 이후엔 새로운 조건이 하나 추가됐다. 바로 ‘경제효과’ 코드다. 딱 10년 전 박찬호와 박세리는 외환위기 당시 달러벌이(?)의 선두주자로서 나라를 ‘국난’의 위기에서 구출할 인물로 묘사됐다. ‘월드컵4강 신화’조차 ‘축구4강에서 경제4강으로’라는 엽기적 논리로 곧장 전환된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경제강박’에 빠졌는지 잘 알 수 있다. 여기에 이어달리기 하듯 등장한 박지성, 황우석도 ‘국위선양+경제효과=영웅’이라는 한국 사회 영웅공식을 또 다시 증명했다.

김연아를 위시해 최근 등장한 박태환, 장미란, 최홍만, 추성훈 등에게서 우리는 영웅공식의 변화를 본다. 세계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이들의 모습에서 국가적 색채는 많이 희미해졌다. 우리가 한·일간 대결구도보다는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 관계에 더 집중했던 것부터가 그러하다. 또 우리는 이들을 경제효과로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 빈 공간을 채운 새로운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이들의 인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몸이다. 이제 근대화의 짐을 벗어 버린 우리는 탈근대적 우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조선이 개화하면서부터 우리 내면에는 왜소한 신체에 대한 민족적 콤플렉스가 자리해 왔다. 서구문물을 흠모했던 이광수는 조선인은 눈동자가 풀렸고, 팔다리는 늘어졌고, 가슴은 새가슴이라서 그 용모가 궁색하다고 묘사했다. 잡지 ‘개벽’은 조선인은 원래 어릴 때부터 업혀 길러진 데다 꿇어앉는 습관 때문에 다리가 짧고 양복을 입어도 폼이 안 난다고 하면서 운동을 해야 다리가 길어진다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손기정이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자 윤치호가 황인종의 자랑이며 백인의 종 우월성을 타파한 것이라며 감격해 마지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조선시대 양반은 절대로 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뛰는 것을 천하게 여겼다. 어느 사학자의 말처럼 양반은 다리가 짧아야 했고 길면 상놈 취급당했던 것이다. ‘롱다리’ ‘숏다리’ ‘농다리’ 농담 시리즈가 괜히 나왔겠는가. 다른 이들을 다리 길이로 품평(?)하는 우리의 버릇 속엔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롱다리’는 민족의 염원이었던 것이다.

탈근대시대 스포츠영웅은 바로 이 민족적 콤플렉스를 날려버리는 치유의 장이 되었다. 장미란은 역기를 장난감 들 듯하며 천하를 제패했고, 최홍만은 그의 하드웨어 자체만으로도 경외의 대상이다. 박지성은 지칠 줄 모르는 ‘산소탱크’를 장착하고 세계 최고의 팀에서 풀타임을 소화해 낸다. 떡 벌어진 가슴을 가진 6척 장신 박태환은 체급별 종목이 아닌 수영에서 신장 2m를 넘나드는 백인 선수들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체급에 상관없이 서구 선수들을 압도하는 신체와 힘과 기량을 지닌 우리 선수들을 보며 열광하고 행복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수들이 보유한 몸의 힘과 ‘사이즈’에만 흡족해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아름다움이다. 강철 같은 ‘갑빠’와 역삼각형 ‘등판’을 가진 박태환과 추성훈의 몸은 강력한 터보엔진을 장착한 근육질 스포츠카 같다. 그러나 동시에 매끄럽고 아름답다. 이들의 몸은 한 세기 전 조선인의 몸도, 근대화시기 이상적 남성형인 이대근, 백일섭의 몸도, 수영장 가서도 셔츠로 몸을 가리는 삼촌의 몸도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스포츠영웅에서 몇 걸음 더 진화한 것이 바로 김연아다. 우리가 그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지만 나는 경기력에도 경외감을 갖는다. 3회전 점프는 고도의 순발력과 근력이 버무려진 엄청난 점프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런 점프력이 그 가냘픈 열여덟살 몸매에서 뿜어져 나온다. 이런 게 바로 모순이다. 초절정 몸의 완결판이다.

이제야 우리는 아름다움으로 승부하는 선진국형(?) 스포츠에서 세계적 선수를 갖게 됐다. 이제까지 우리는 한국을 세계에 빛낸 많은 여자선수들을 보았고 자랑스러워했다. 여자골프, 양궁, 쇼트트랙, 탁구, 유도 그리고 ‘우생순’까지. 그러나 우리는 이제까지 이런 몸매를, 이런 ‘요정’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세계적 요정’이다. 항상 웃는 얼굴이 예쁘면서도 귀엽다. 그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데다가 날씬하고 또 (두둥~) 길기까지 하다. 그래서 젊은이들과 중년 여성들도 그의 몸을 즐겁게(?) 이야기한다. “피겨도 잘 타는데 몸두 너무 예뻐요~” 하면서 말이다. (재밌게도 중년 남성들은 다르다. 대부분 스케이트 잘 타고 얼굴도 예뻐 좋아하는 것이지 몸매가 예뻐서는 아니라며 극구 부인한다. 그대, 짐승들이여~)

이렇듯 요정 김연아는 수많은 열혈 광팬들을 양산해 내기 시작했는데 김연아에 대한 ‘팬덤’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지난주 김연아팬을 지칭하는 ‘승냥이’들은 그랑프리 파이널대회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오른손으로는 미친 듯 ‘클릭질’을, 왼손으론 휴대폰 붙들고 ‘전화질’을 해댔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극한의 신체기능을 구사했음에도 결국 표를 구하지 못한 승냥이들은 절망에 빠진 서로를 위로했다. 극적으로 표를 구한 김연아팬들은 크고 작은 배너와 꽃, 곰인형을 준비해 가져갔는데 이틀 동안 곰인형만 1000개가 넘게 던져졌다고 한다.

그런데 인형들을 택배로 주문해서 다른 입장객들에게 나눠줘 이를 던지게 했다고 한다. 팬이라면 자기가 선물을 사서 전달하든 던지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꺼번에 많이 주문하면 싸서 그런가? 요즘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 들고 다니기 싫어서 그런가? 이는 자신의 애정과 사랑을 표현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우상의 인기를 물량공세로 증명하고 과시하려는 뒤틀어진 욕망의 표출이다.

팬들이 경기장에서 보여준 일방적이고도 폭력적(?)인 응원 행태도 이를 방증한다. 자기만족과 과시를 위해 경기장으로 쳐들어간 이들은 피겨스케이팅에서 필수적인 선수와 관중 간의 소통은 물론 관전예절조차 무시했다. 한 외국선수의 말처럼 그들은 ‘미친 듯한’ 괴성과 비명을 지르며 카타르시스의 수준을 넘어 자아도취에 빠졌다. 그들은 김연아의 아름다운 경기를 보러 간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김연아 인기의 크기와 강도를 확인하고 즐기기 위해, 또 외국인과 카메라 앞에서 과시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진군한 것이다.

선수에 대한 배려나 예절이 실종된 일방적이고도 호전적인 응원 덕에 전에 없이 긴장한 김연아는 실수 한 번 안 하던 트리플 살코에서 엉덩방아를 찧었고 장기인 트리플 러츠는 돌다 말고 내려왔다. 골프스윙 하려는데 카메라셔터 누르고 바둑대국장에서 비명 질러대는데 잘 할 선수 있을까. 결국 팬들이 김연아에게서 홈어드밴티지를 뺏어 가버린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팬덤보다는 ‘팬질’이라는 표현에 더 가까웠다.

한 방송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기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수영이 아니라 박태환을, 역도가 아니라 장미란을, 피겨스케이팅이 아니라 김연아를 좋아한다. 그런데 김연아에겐 자신의 사랑을 표하는 정도가 아니라 증명하려 한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다 보면 스토커가 나온다. 김연아 팬들을 보면 어째 좀 불안하기만 하다.

<정희준 |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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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암이 의심스럽다는 진단을 받은 때가 2003년 11월 중순이다. 뒤에 알고 보니 이미 임파선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담당의사 말로는 이렇게 전이된 환자들 가운데 5년 생존율이 20-30% 정도라고 한다. 용케 5년을 잘 살아왔다. 

 2003년 12월 말부터 세 차례 항암 색전술을 받고 이어서 스물 네 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때마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나마 입맛 당겼던 음식이 어머니가 해 주시던 콩죽이었다. 한 번은 시골에서 어머니가 직접 해 오셨고, 한 번은 아내가 시골 가서 쑤어왔다.  손바닥만큼씩 썬 두부에 비개 붙은 돼지고기 넣고 고춧가루 듬뿍 뿌려 끓인 두부찌개도 떠올랐다. 맵고 짠 두부찌개는 먹을 수 없고 콩죽만 몇 번 먹었다.

초기 항암치료 받고 나서 3년여 동안은 운동요법, 명상요법, 식이요법을 정성껏 잘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 그렇게 해보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어느 정도 살았다 싶을 즈음 빵가게 앞을 지날 때 마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빵 냄새를 참아내기 힘들었다. 슬그머니 빵을 사먹었다. 내가 세운 원칙을 어기는 짓이었다. 한두 번 먹고 나니 빵 특유의 냄새만 아니라 혓바닥이 옛 기억을 되찾아 난리였다. 안되겠다 싶었다.  아내가 거칠고 거무스레한 우리 밀 식빵을 사서 배낭에 넣어 주었다. 그것도 천천히 꼭꼭 씹으면 먹을 만 했다. 그렇게 제과점 빵 유혹을 벗어났다.  

 그 다음에는 붕어빵이 문제였다. 우리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20여분 걸린다. 늘 걸어 다녔다. 중간쯤에 붕어빵과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다. 어느 날 1천원에 네 마리 주는 붕어빵을 한 봉지 샀다. 한 달에 한두 번으로 늘어났다. 붕어빵을 들고 길에서 한 마리씩 꺼내 먹는 맛이 빵 못지않다. 신호등에 걸리면 집에 들어오기 전에 네 마리를 다 먹을 수 있다. 바로 파란불이 켜지면 시간이 모자란다. 그럴 때는 다음 파란불까지 기다리든가 아니면 아파트 담장 모퉁이 당단풍 나무에 기대서서 먹었다. 들고 들어가면 한 마디 들을 것이 뻔하고, 아이들 보기에도 창피하지. 그런 것도 못 참느냐고.  

 붕어빵을 먹다보면 어렸을 때 먹어본 풀빵 맛이 떠오른다. 껍질과 속에 넣은 팥 사이에서  말랑말랑하고 보드랍던 감촉을 느낀다. 강원도 홍천 서석장은 끝자리가 4와 9일일 때 서는 5일 장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196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장날이면 장터를 몇 바퀴 돌다가 끄트머리에 있는 풀빵 장사 앞에서 맴돌곤 했다. 풀죽 쑤려고 만든 것 같은 밀가루 물을 주전자로 풀빵 틀에 돌아가면서 따른다. 구멍하나가 지금 국화빵보다 배는 컸다. 아래쪽이 다 익으면 나무막대에 굵은 철사 줄을 꼬부려 만든 꼬챙이로 콕 찍어서 홀딱 뒤집는다. 저러다가 익지 않은 밀가루 물이 쏟아지지 않을까, 삐져나가 땅에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무색하게 제자리에 착착 들어가 앉는다. 조마조마하며 지켜보다 입안에 고였던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 앞에서 기웃거리다 보면 장보러 온 엄마를 만날 때가 있다. 잘하면 풀빵을 얻어먹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그때 풀빵에는 속에 팥도 들어있지 않았는데도 입에 착착 들어붙으며 살살 녹았다. 그 맛이 조금 뒤 신앙촌 크림빵이나 삼립빵 속에 발라놓은 하얀 크림을 앞 이빨로 삭삭 긁어먹는 것 못지않게 환상이었다.  

 초등학교 때 말고는 풀빵 먹던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20여년이 지난 뒤 1980년대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 엮음으로 나온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에서 다시 풀빵을 만났다. 이 부분이다. 

 “그 당시만 해도 도봉산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서 일이 끝나고 밤늦게 도봉산 집까지 가려면, 미아리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서 내려서 한 시간 남짓 걸어야만 했다. 

 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 값을 털어서 1원짜리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은 주린 창자를 안고 온종일 시달린 몸으로 다리를 허청거리며 미아리까지 걸어가면 밤 12시 통금 시간이 되어 야경꾼에게 붙잡혀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다시 도봉산까지 걸어서 집에 당도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사이에 파출소 순경들도 사정을 알고 그냥 통과시켜 밤 한 시, 두 시가 지나 집에 돌아오는 일이 버릇처럼 되었는데, 이것은 그 뒤 그가 죽을 때까지 3, 4년 동안 계속되었다“

전태일이 사주었던 풀빵은 한 개에 1원짜리였다. 요즘 국화빵만한 크기였나보다. 서석시장에서 팔던 풀빵은 좀 커서 10원에 네 개였다. 전태일의 일기.수기.편지 모음집인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에 보면 풀빵이 국화빵이고 국화빵이 풀빵이었다. 

전태일이 버스비를 아끼려고  걸어 다니면서 풀빵 사주던 이야기는 지금도 거의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노동운동사 강의를 할 때 종종 인용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을 읽은 때는 1984년이었을 것이다. 1983년 6월 초판이 나온 다음해이다. 나중에야 <<전태일 평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태일평전은 그전에 읽었던 광민사판 문고본 <<노동의 역사>>,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민중교육론>>, 조금 뒤에 읽은 쟝세노의 <<실천을 위한 역사학>>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 민중의 역사를 연구하고 교육으로 돌려주자고 마음먹게 만들었던 책 가운데 하나였다.    

 전태일을 따라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인 1960년대로 다시 들어가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가난한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 뒤 실제로 ‘목구멍에 풀칠’하던 배고픈 노동자들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1946년 10월인민항쟁이 일어났던 대구에서 일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귀환동포와 식량문제가 다른 지역보다 더 컸다. 식량난에 따라 식량폭동 일보 직전에 이르고 있었다. 청송군 같은 산간지역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나왔다. 대구에서는 전매청 연초공장에서 담배를 말아 붙이는 풀을 직공들이 먹어치우자 붉은 물감을 섞어서 내놓았다. 물감 탄 풀까지도 몰래 먹으며 허기를 달래다 쫓겨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도청의 농산부장은 “장에 고기도 있고 잡곡도 있지 않은가? 굶어죽는다니 별말이다”고 했다고 한다. 10월인민항쟁의 도화선이 된 9월 총파업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서울의 철도노동자들이 가족수당과 물가수당 인상, 일급제 반대, 식량배급 증대, 해고 절대반대, 임금인상을 요구하였다. 미군정 운수부장 코넬슨은 "인도사람은 굶고 있는데 조선 사람은 강냉이라도 먹으니 행복하다"고 했다. 프랑스혁명 때 마리 앙트와네트가 했다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지”하는 말을 외우고 다니다 내뱉는 듯한 말들이다. 지금이라고 그런 말들이 없을까. 먹고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끊임없이 ‘좋은생각’을 들먹이는 말들도 다를 바가 없다. 

학교도 아닌데 막강한 동문을 형성하고 있는 조중동문같은 ‘일보’들이나 뉴라이트나 이명박 정권처럼 이승만과 박정희 중심으로 현대사를 보는 것은 홍보지 역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담배 풀로 목에 풀칠하던 노동자들, 풀빵으로 허기를 달래던 배고픈 노동자들 자리에서 그들의 눈으로 그 시대를 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   

 얼마 전 강의를 갔다 오다가 기차에 도수 낮은 안경을 두고 내렸다. 책볼 때 쓰는 안경이었다. 부랴부랴 서울 전농동 네거리 가까이 있는 아는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마련했다. 버스를 타고 오다보니 답십리지하철 네거리 옆에 붕어빵을 파는데 1천원에 6마리 한다고 써 붙였다. 다른 곳에서는 밀가루 값이 뛰었다고 네 마리 하던 붕어빵을 세 마리 준다. 6마리짜리는 얼마나큰지 언제 다시 와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 뒤 대방역 옆에 있는 서울여성프라자에 강의를 갔다. 길옆에 붕어빵 장사가 있다. 여기서도 1천원에 6마리이다. 좀 작기는 작다.  부부가 둘 다 말을 못하는데 열심히 붕어빵과 마른 호떡을 구워 팔고 있다. 3천원어치 18마리를 샀다.

역사를 보는 관점을 이야기할 때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은 붕어빵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그때 사가지고 간 붕어빵을 나눠주고 먹으면서 강의를 했다. 붕어빵은 생긴 모양이 붕어 같고 이름도 붕어빵이지만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붕어가 아니다. 붕어가 들어 있다면 그것은 붕어빵이 아니라 붕어튀김이 맞다. 빵과 튀김은 다르다. 그렇듯이 교수니 박사니 하면서 그럴듯한 폼으로 말과 글을 번지르르하게 늘어놓더라도 그 속에 담긴 의도가 무엇이고 누구의 이해를 반영하는지 한 번 더 꼼꼼히 따져보자고 했다. 붕어빵을  먹으면서 보니까 더 실감이 난다고 한다. 

  80이 20에게, 90이 10에게 지배당하는 사회에서 붕어빵이 20과 10을 비춰보는 투시경이 될 수 있을까. 80과 90을 비춰보는 자성의 거울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아파트 옆 당단풍 나무 아래서 붕어빵을 몰래 먹곤 했던 것이 단지 유혹을 못 이겨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별 변명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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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이 많아요
존 마스든 지음, 김선경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맞은 적이 없다 . 그러나 어머니께는 꽤나 맞았다 . 그래서 만일 아버지에게 맞았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해보고 마리나를 이해할 것 같았다 .

마라나네 학교 영어 선생님인 린덴 선생님은 일기를 쓰라고 한다. 마리나는 신경성 언어결핍증에 걸렸다. 처음에 마리나는 일기장을 백지로 남겨두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꽤 많은 말,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쓴다. 그러나 선생님은 일기장의 내용 확인은 안 한다고 한다. 친구들, 선생님들과 함께 지내며 마리나의 학교 여름방학이 훌쩍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의 주소를 알아냈다. 랜덤 선생님이 아빠의 주소를 가져오신 것이다. 마리나는 아빠를 찾아 떠났다. 아빠는 교도소에 계셨다. 마리나가 어렸을 때 황산을 뿌린 죄이다. 그 때문에 마리나도 신경성 언어결핍증에 걸린 거다 . 어느 덧 아빠가  마리나를 불렀다. 마리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할 말이 너무도 많아요."

다른  나라에서는 어른이 아이를 때리면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그런 법이 없어서 아이들이 너무 맞아서 심하면 TV에도 나온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가장 말을 잘 듣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한다. 마리나의 아빠는 마리나에게 황산을 뿌려서 감옥에 갇힌 거다 .. 우리나라에 그런 법이 생긴다면 거의 모든 부모들이 감옥에 갇힐지도 모르겠다. 마리나는 언젠가는 그 상처를 치유하겠지만 그걸 겪는 동안은  너무 불쌍하다 . 가능하다면 자식을 때리거나  상처주지 읺고 키워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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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다 - 러쉬노벨 로맨스 172
타카토 루카 지음, 이마 이치코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이거 만화아니고 소설인데 왜 만화 서점에 진열된거에욧 ?반품하고 싶은데 포장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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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의 눈 힘찬문고 20
론 버니 지음, 지혜연 옮김, 심우진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오스트렐리아라는 영화가 나와서 자기네 나라가 얼마나 좋은지를 광고했다 . 하지만 원주민들은 처참하게 도륙당했다 . 비록 애버리진에게 사과는 했다지만 백인들은 왜 그토록 샬육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음...우리나라도 만일 동남아나 아프리카 같은 데를 식민지로 가진다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구답은 아프리카 마을에 사는 원주민 소년이었다. 어느 날 사냥을 나가던 구답은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소리는 백인들이 쏜 총소리였다. 구답이 집에 가자 가족들은 이미 죽어있었다. 그중에서도 여동생인 유당만 유일하게 살아남아 있었다. 두 아이는 백인을 피해 다니면서 먹을 것을 구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두렵고 끔찍했지만 차츰 가족의 죽음을 견딜 수 있게 되고 혼자서도 잘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구답과 유당을 키워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백인이 또 찾아온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작전을 자기 시작했다. 우리에 있는 백인들의 양을 밖으로 보내게 한 다음 백인들이 양들을 찾으러 갈 때 백인을 물리치자는 거다. 그 작전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수의 백인이 와서  원주민들을 총으로 죽였다. 도망을 나온 구답과 유당은 그 마을을 벗어나 계속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호주 애버리진은 옛날부터 백인들에게 많은 고통을 겪었다. 비록 지금은 백인이나 흑인이나 원주민들은  같은 대우를 받지만 백인들은 아직도 원주민이나 흑인을 차별한다. 우리나라 사람도 자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을 차별한다. 유명한 하인스워드도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지만 그도 옛날에는 한국 친구들에게 많은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백인들이나 좀 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은 타자를 필요할 때만 쓰고 필요 없으면 바로 버린다 .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

원주민이나 흑인들은 자유를 얻고 싶어한다. 하지만 백인들이 부려먹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 지구의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평등해야 한다. 누구만 잘나서 먹고살고 누구는 굶주리고 일만하는 세상을 없애야 한다.그런게 이루어지는 세상이 오기는 올 것인지 암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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