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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평점 :
1.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 대통령 아들때문에 중학교 입시를 안보게되었다고 몇몇 급우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 시험을 보면 자기들이 원하는 중학교에 갈 수있었는데 은행알 색깔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걸 못견뎌 우는 거다 . 나는 안 울었다 . 우연히 내가 가고자했던 학교에 당첨되었으므로 .그때 처음으로 인생이 랜덤으로 운명지워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 살아보니 사실 뭐 별 거 아니었지만 ...
그렇게 맘에 드는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학교 생활은 그저 그랬다 . 그렇게 중학교 이학년인가가 되어 어느 날 등교길에 버스를 탔는데 너무놀라운 광경...우리 반이었던 용혜가 버스 안내양이었다 . 당시에는 차장이라고 불렀다 . 용애는 랜덤으로 가야하는 그 어느 중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버스차장이 되었던 거다 . 왜 그랬을까 ? 나는 용애를 아는 척 하지 못했다 . 겨우 일 년 지났을 뿐인데 아주 멀고 먼 존재가 된 것 같았다 . 용혜도 나를 아는 척 하지 않았다. 그 일은 아주 오래도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
2, 오래 전
나처럼 좀 늦게 대학에 나타난 두 친구가 있었다 . 그 친구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노동 일선에 섰다가 검정고시를 거쳐 진학한 거라고 했다 .노동...검정고시...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 그 중 한 친구 옥계는 여동생이 진부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시외버스 안내양 생활을 한다했다 .옥계는 봉제공 생활을 해서 돈을 벌었다는 거다 . 그리고 방학이 되자 아르바이트로 강릉에서 임계까지 오가는 시외버스 안내양을 한다했다 . 나처럼 그냥 멀리 가서 낯선 생활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고 인생 굽이굽이 걸어오다 거기까지 온 옥계...놀러오라는 말에 그애를 찾아 동해운수인가, 거기 종점으로 찾아갔다 .옥계는 커피를 뽑아주고 강릉까지 공짜로 버스를 태워줬다 . 그때는 용혜때만큼 놀랍지는 않았다 .옥계는 대학생이었고 그건 아르바이트 였으니까.....
3.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이 인생 우여곡절 끝에 잘 살게 됐다 . 그런데 남동생은 그 고비를 제대로 못 넘겨서 평생 시내버스 운전을 하게됐다 . 그래도 아이 낳고 아내랑 사이좋게 살며 일찍 타계한 친구의 오빠대신 아버지도 모시고 살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 장례식장에 가니 평생 버스운전을 한 민호는 이제는 좀 늙어버린 얼굴로 술에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반겼다 .그리고 호상이니까 막 소리지르며 문상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 근데 내 동창은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동생을 흘겨보고 있었다 . 내 동창은 대학도 나오고 남편 직장에서도 점잖은 손님이 많이 왔는데 버스운전사 동생이 상주노릇을 무식하게 하는 게 마땅치 않았나보다 . 뭐라고 자꾸 핀잔을 주었다 .나는..그날 마음이 아팠다 ....
4. 요새
내가 활동하는 공동체에는 수원여객버스노동자들이 많다 . 그 분들 주소를 보게 되었는데 그 흔한 아파트에 사는 분이 몇 분 안되었다 .대개 그냥 무슨 동 몇 번지이거나 무슨 빌라 A동 203 호 , 그런 식이었다 . 그분들은 노조를 만들려했고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려고 했다 . 그런데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그분들을 몰아내려고 안간힘이었다 . 그분들은 광교산 입구 공원 앞에 텐트를 치고 아주 오랜 기간 농성을 했다 . 버스노동자가 권리를 찾겠다는 데 사업주측에서는 그걸 극구 뜯어말렸다 . 그리고 오랜 투쟁 끝에 원하는 것의 아주 일부분만 이루었다 . 나는 그 추운 날 텐트에서 먹고자는 그분들 보면서 무력한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
5.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에 타보셨나요 ?
<안건모>라는 분은 버스운전 노동자였다 . 지금은 <작은책>이라는 잡지 편집자다 .그가 쓴 글은 예전부터 한겨레신문에서 읽었다 . 용혜나 옥계나 민호로 기억하는 고단한 삶을 꾸려가는 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산 것처럼 보인다 .한겨레 신문에는 버스 운전 노동에 관한 것만 나온 듯 한데 이 책에는 자신이 살아온 길을 솔직히 보여주고 있다 . 지금은 직업 때문에 승용차를 타고 다니지만 예전에는 나도 버스를 탔다 . 버스를 탈 때 , 버스운전사들이 너무 차를 함부로 몰고 짜증을 부리고 피곤에 전 얼굴을 한다고 느꼈다 . 그리고 몇 번인가는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렸던 것 같다 .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 지 확연히 알게된다 . 그리고 세상에 이런 무법천지 사업장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 버스운전 노동자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밥먹을 시간, 용변 볼 시간, 시에스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시 휴식을 취할 시간은 주어야하지 않겠는가 ? 그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 버스운전 노동자들은 택시운전과는 또 다른 처지다. 진짜 많은 승객을 타우고 다니는 노동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안 주어서 졸음 운전이나 판단력이 저하되는 피로누적 운전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 인간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처신하면 안된다고 본다 .
예전에 서울 시내버스가 한강으로 추락한 사고가 있었다 . 그때 신문에서는 운전사가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어서 판단력 부족으로 한강에 추락했다고 신문마다 난리도 아니었다 .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쌩쑈였던 것 같다 . 그때 버스운전사는 누명을 쓴 것같다 . 이 책에 나오는 상태대로 버스 운행을 한다면 아이큐와 상관없이 한강으로도 추락하고 고가도로에서도 뛰어내릴 판이 아닌가 ? 나도 졸음운전을 하다가 1 톤 트럭을 받은 적이 있고 피곤해서 서울 가는 쪽으로 빠진다는 게 그만 부산가는 쪽으로 빠져서 오산까지 간 적도 있다 . 노동자도 사람이란 걸 인정한다면 버스노동자들에게 그런 대접을 해주어서는 안된다 . 안타깝게도 싸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려하지 않는 자본가들 그리고 중간 관리자들의 속성은 저열하기 그지없다 .
이 글은 현장 경험을 한 노동자 처지에서 쓴 글이기에 아주 생생한 목소리가 들린다 . <작은책> 역시 일하는 사람들이 쓴 글이기에 노동하는 즐거움과 고통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내가 정말 싫어하는 글이 더럽게 겉멋 든 통칭 <수필가>라는 사람들이 쓴 허황한 내용들이다 . 땀흘리지 않는 자들이 쓰는 계절과 풍경과 사랑에 대한 예찬들.잘못한 자들을 무조건 용서하라는 훈계.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가해자에 대한 비판이나 사과없이 총체적으로 해결되어 마음을 다스리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낙관들. 아니 ? 그게 말이 되는가 ?나같이 차 몰고 다니며 일하는 사람들은 눈온다고 마냥 좋아할 수 없다 .가진 게 없어서 난방비 걱정하는 사람들은 가을온다고 단풍예찬 그렇게 티없이 하기에는 어깨가 너무 무겁다 . 사랑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짜증이 동반되고 급기야는 헤어진다 . 텔레비전에서 사랑타령하는 사람들은 거의 미녀에다 돈많은 집 가업 후계자들이다 . 아니면 뭐 연봉 몇 천 몇 억되는 대기업 사원이거나. 집에 실업자가 누워있고 질병에 시달리는데 '왕후의 밥, 걸인의 찬' 하고 멋져보이는 문구 쓴다고 장땡인지 잘 모르겠다 .가장 웃기는 자장이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 겠지 . 일제식민치하에 살며 낙엽을 태우면 커피 볶는 냄새가 어쩌구저쩌구 .....
이 책이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은 저자가 이 사회에서 가장 고달픈 노동자 생활을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하며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 그는 자본가와 싸움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와 정당한 몫을 당당하게 받아내는 활동가로 거듭난다 . 그건 참 어려운 일이다 . 그러다가 린치를 당하기도 했으니까....그 괴한들은 분명 버스회사에서 고용한 조폭들이었을텐데 진짜 사악한 인간들이다 . 저자가 더 큰 부상을 안 입고 그나마 건재한 건 하느님이 주신 임무같다 . 살아서 싸워 이기라고 ^^
앞으로 진짜 노동자들이 쓴 글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여유 넘치는 유한 마담들이 쓰는 황당 무계한 수필이나 뭣 좀 안다고 거들먹거리는 교수나 백수수필가가 쓴 죽은 글 말고 살아있는 글. 어려운 낱말 마구 섞어서 써서 도대체 뭔 말 하려고 하는 지 아리송한 글말고 입말로 쓴 담박한 글들을 보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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