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아무도 철거용역을 말릴수 없다

2009 02/17   위클리경향 812호

주거침입·협박·방화 등 ‘거침없는 폭력’… 불법 근절 정부 관리 감독 강화해야



철거용역 회사 직원들이 새총을 이용해 구슬을 철거민에게 쏘고 있다. <김경만 감독 제공>

용산 참사 이전부터 철거용역 회사는 존재했다.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는 말처럼 철거용역의 폭력은 당해본 사람만이 실감하는 무서움 그 자체다. 철거용역은 폭력, 주거침입, 방화, 위협·협박, 성추행 등 철거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동을 거침없이 해왔다. 철거민들의 입에서 ‘깡패’라는 말이 술술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철거용역 회사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1980년대 들어 서울시가 소위 합동재개발사업(재개발사업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재개발구역 안 주택 및 토지 소유자들이 결성한 조합이 시행하고, 주택건설업체가 재원을 조달해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으로 전환하면서다. 상업적인 재개발사업이 시작된 것.

세종대 김수현 교수(도시부동산대학원)가 쓴 <서울시 철거민운동사 연구>에 따르면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정부는 재개발사업에 따른 분쟁은 민간끼리 해결해야 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재개발사업이 정부 주도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철거 용역회사가 생겼다. 철거민운동은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됐고, 재개발조합은 정부의 개입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철거 시한을 지키기 위해 조합은 용역회사에 의뢰했고 용역회사는 폭력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문 용역 등장
김 교수는 “1970년대 초반에도 인부를 써 철거했지만, 1980년대처럼 철거반대 운동이 강경하지는 않았다”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전문적인 철거용역 회사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89년 7월 서울시가 “택지개발사업 지구 내 불법 무허가 시설물의 신규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단속반을 편성함과 함께 용역회사에 의뢰해 경비업무를 맡기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은 용역회사의 본격적인 활동을 알리는 계기였다.


2003년 5월 안양시 동안구청에서 민간 위탁한 용업업체 직원 4명 중 한 명이 단속 과정에서 성기를 노출해 노점상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다. <노점상총연합 제공>
철거용역 회사의 시초는 1986년 12월 설립된 (주)입산개발로 알려져 있다. (주)입산은 태옥건설, 신한환경 등 3개 용역사를 보유했다. 입산개발은 사당동, 돈암동, 동소문동의 철거권을 따내면서 대표적인 철거용역 회사로 성장했다. 입산의 등기부등본에 등재된 이사와 별도로 실질적 사주는 당시 여당의 유명 정치인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또한 서초구 우면지구를 담당한 무창인력과 범양용역, 따이한용역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성업’했던 철거용역 회사다.

이후 입산에서 일했던 이들이 나와 1990년 (주)적준개발용역을 만들면서 철거용역 회사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적준개발용역은 적준토건, 적준환경, 적준산업 등의 철거 관련 회사를 설립했다. 적준은 거산, 인덕 등과 각축을 벌이다 1994년부터 재개발 현장을 거의 독점했다고 전해진다. 적준의 성공으로 이후 협승주택, 동무건설, 일진공영 등의 철거용역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적준의 실세는 조직폭력배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적준이 얼마나 악명을 떨쳤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펴낸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철거범죄 보고서>(1998년 11월)다. 이 보고서는 도시빈민여성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인권운동사랑방 등 12개 업체가 참여해 작성했고, 철거용역 회사의 폭력을 정리한 최초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하나로 뭉쳐서 철거용역 회사의 보고서를 만들 정도로 적준이 철거현장에서 보여준 폭력은 충격적이었다.

‘실행조’ 몰려다니며 철거민 위협
적준의 사원은 10여 명 안팎이지만, 상시 동원 능력은 100여 명이다. 그리고 300여 명 정도 서로 인맥을 통해 일당으로 고용했다. 철거현장에 배치될 때는 50~60명을 선봉대와 기습조로 편성했다. 철거민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는 ‘실행조’로 불린 전문 철거깡패였다. 세입자들의 저항이 거셀 때 투입되는데, 30~50명씩 몰려다니며 폭행했다고 전해진다. 적준은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폭력 47건, 주거침입 55건, 성폭행·성추행 16건, 재산손괴 5건, 위협·협박 10건, 어린이 인권유린 9건, 살인 2건 등을 저질렀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심지어 1995년 4월 봉천6동 철거현장에서는 당시 철거대책위 위원장이었던 주부 전모씨를 집단 폭행 후 팬티를 벗기는 등 성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1997년 9월부터 2000년까지 적준이 철거수주를 한 지역은 서울 철거지역 34개 중에서 17개로 50%를 차지했다.


위_용산 철거민 농성 현장 옆 건물 옥상에서 물대포를 쏘는 철거용역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 경찰의 진압 작전에 용역이 동원된 것이 확인되면서 경찰 관계자들의 형사처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문석 기자> 아래_2003년 11월 서울시에서 노점 단속을 명분으로 용역업체 직원 2000여 명을 고용했는데, 이중 4분의 1 정도가 노숙인이어서 많은 논란을 빚었다. <전국노점상총연합 제공>
입산부터 적준까지 대표적인 철거용역회사의 특징은 계열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이름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똑같은 철거용역 회사였다. 문어발식으로 회사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전국노점상총연합의 최인기 사무처장은 “철거용역이 민간회사나 공공기관의 공개입찰에 참여할 때 회사를 여러 개 내세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비슷한 이름의 회사를 몇 개씩 만든다”면서 “그리고 철거용역 회사는 폭력을 쓰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비난을 피하기 위해 회사 이름을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회사를 등록할 때 내세운 사장들은 흔히 이름만 사장인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철거현장에서 철거용역 회사가 폭력이나 인권유린 등의 문제가 생기면 실질적인 사주는 처벌을 받지 않는 셈이다.

용산 참사를 계기로 철거용역 회사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철거민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유명한 철거용역 회사는 10개 안팎이다. 대표적으로 ▲참마루건설 ▲삼오진건설 ▲다원환경 ▲다원이앤씨 ▲다원이앤아이 ▲호람건설 ▲비조이엔지 등을 꼽는다. 전국빈민연합 심호섭 의장은 “철거용역 회사들이 많지만, 현장에서는 자기들 용어로 부르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기 힘들다”면서 “회사 이름이 자주 바뀌는 것도 현황 파악을 하기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다. 심 의장은 또 “이중 한 업체는 삼성건을 대부분 수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들은 왕십리, 용산 등 대규모 재개발현장에 나타나기 때문에 철거민에게도 익숙하다. 이들은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해 ‘비계구조물 해체공사업’으로 뷴류되는 업체로 철거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유명 철거회사는 10개 안팎
참마루건설은 2004년 4월 설립됐고, 자본금 10억 원 규모의 회사다. 비계구조물 해체공사업, 토공, 부동산 컨설팅업 및 시설경비 및 신변보호 등 업무를 맡고 있다. 박모씨와 정모씨가 대표이사로 등록되어 있다. 삼오진건설은 2005년 7월 설립됐고, 자본금 10억 원 규모의 회사다. 이곳 역시 비계구조물 해체공사업과 시설경비와 신변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대표이사는 김모씨고, 조모씨, 정모씨, 제모씨, 김모씨 등이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이번 용산4구역의 조합과 계약한 호람건설은 1996년 설립된 곳으로 자본금 10억 원 규모의 회사다. 이곳 역시 비계구조물 해체 공사업을 위주로 하고 있다. 대표이사에는 마모씨가 등재되어 있다. 비조이엔지는 2003년 설립된 곳으로 대표이사 김모씨와 신모 이사, 이모 이사 등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곳 역시 비계구조물 해체 공사업을 위주로 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곳이 다원환경, 다원이앤씨, 다원이앤아이다. 회사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 과거 적준으로 이름을 날렸던 다원건설과 관계가 있는 곳으로 보인다.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다원건설의 이사 4명을 고발했는데, 4명의 이사 중 박모 이사의 이름을 세 업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한 회사의 이사가 다른 회사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것도 세 업체가 모두 같은 줄기의 회사로 볼 수 있는 증거다. 다원건설의 박모 이사는 2006년 3월 설립된 다원이앤아이의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또한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최모씨는 2001년 설립된 다원이앤씨의 대표이사다. 또한 1997년 7월 설립된 다원환경의 대표이사는 정모씨지만, 다원이앤아이의 대표이사인 박모씨, 다원이앤씨의 대표이사 최모씨가 다원환경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것.



결국 1990년대 적준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원환경의 경우 철거용역이 아닌 돈이 된다는 폐기물처리용역을 맡고 있다. 다원환경은 다원이앤씨, 삼오진건설, 삼성물산 등 회사의 수주를 받아 폐기물처리 용역을 하고 있다. 철거현장에서 나온 폐기물 처리도 큰돈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참마루건설부터 비조이엔지까지, 이 회사들이 대표적인 철거용역 회사라는 증거는 대한전문건설협회의 ‘시공능력평가 조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시공능력평가액를 통해서 2007년 공사실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철거용역 회사는 2007년 공사실적액이 수억 원에 그친 반면 이들 업체의 경우 수십 억 원에서 수백 억 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재건축, 재개발현장에서 이들 업체의 수주가 많다는 증거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씨는 “폭력을 쓰는 대표적인 철거용역 회사는 20여개 정도로 과거부터 일했던 사람들이 계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과거나 지금이나 철거용역 회사의 외양은 바뀌었지만, 폭력은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일부 업체 공사실적 수백억 원
전노련의 최인기 사무처장은 “이번 용산 참사를 통해서 확인했지만, 철거용역 회사도 문제지만 경비업법도 문제가 많다”면서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 상해, 협박 등의 행위에 대한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처벌 규정도 대단히 약해서 경비업체의 불법행위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 처장은 또 “어찌보면 조직폭력배의 활약이 경비업법으로 포장되어 사회적 폭력을 용인하는 상황으로 나가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철거용역 회사는 대체로 시한을 정해놓고 철거를 진행한다. 철거 시한이 늦어지면 계약에 의해 늦어진 만큼 받을 돈이 깍이기 때문에, 폭력을 써서라도 시한을 맞추는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얼마 전 <재개발, 재건축 탈법 실태 대책 보고서>를 내면서 “주민의 시각에 맞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책으로 ▲추진위원과 조합 임원의 자격요건에 거주 및 1가구 1주택 소유자 요건 추가 ▲추진위원을 공무원으로 간주해 뇌물범죄 및 몰수특례법 적용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의 중앙관리 및 감독체제 구축 등을 제안했다. 철거용역 회사의 불법과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감독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철거현장을 직접 본 다큐감독의 목소리


위_H빔을 장착한 굴착기가 철거민이 있는 망루를 때리고 있다. 아래_철거용역 회사 직원들이 망루에 있는 철거민을 조롱하고 있다. <김경만 감독 제공>
2000년 이후에도 철거현장에는 폭력이 난무한다. 철거민들은 여전히 철거용역 회사의 폭력에 치를 떨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철거현장의 폭력은 여러 언론매체의 기사와 함께 2편의 다큐멘터리로 기록됐다. 1999년 9월부터 2000년 3월까지 상암동 철거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람은 철거되지 않는다>(박홍렬 감독, 2002),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철거용역 회사와 철거민들의 싸움이 진행됐던 고양시 풍동택지개발지구의 싸움을 담은 다큐멘터리 <골리앗의 구조>(김경만 감독, 2005)이다.

박홍렬 감독은 촬영 중 철거용역과 싸움을 벌이다 돌에 맞아서 6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박 감독은 “촬영을 6개월 정도 했는데, 풍동 현장을 촬영하러 들어간 날 철거용역이 들이닥쳤다”면서 “당시 철거민들 대부분이 끌려나갔고, 대학생과 몇명의 철거민이 철거용역과 싸웠다”고 전했다. 또한 “상황이 상황인만큼 나도 싸움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과거의 폭력이 현재도 계속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골리앗의 구조>에는 강제철거 현장의 난리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김 감독과 함께 작업을 했던 다른 감독이 풍동 철대위의 망루에서 생활을 했는데, 철거용역 회사의 강제철거 장면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새벽 H빔이 설치된 굴착기가 망루를 때리고, 새총으로 쇠구슬을 쏘아대는 철거용역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망루에서 이에 맞서 화염병 등을 던지며 맞서는 철거민의 모습도 담겨 있다.

김경만 감독은 필자에게 다큐멘터리에는 들어가지 않은 장면을 공개했다. 철거민의 가족이 망루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음식을 전해주고 돌아가다 철거용역에게 붙잡힌 것. 철거용역은 그 사람을 집단 폭행하면서 망루에 있는 철거민들에게 내려오라고 비아냥 대는 충격적인 상황을 증언하는 내용이다. 망루에 있는 철거민들은 눈 앞에서 자신의 가족이 집단 폭행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것.

당시 풍동 철대위 채모 위원장은 “철거용역들은 화염병, 새총, 개조된 포크레인, 최루가스 등을 사용하면서 철거민을 괴롭혔다”면서 “강제 철거가 있을 때 소방차가 들어와도 철거민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것이지, 불이 난 곳을 끄는 것이 아니었다”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철거용역을 경찰에 신고해도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풀려난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요즘 경찰의 진압과정에 용역업체가 개입된 것이 문제가 된다는데, 과거부터 그랬다는 여러 증거들이 많이 나와 있다”면서 “그런데 왜 이제야 그게 이슈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학업성취도 발표에 전국 희비 엇갈려

연합뉴스





전국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치른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16일 공개되자 각급 학교의 지도를 맡고 있는 일선 교육청들은 일단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져 왔던 지역 간 학력 격차가 엄존한다는 사실이 여과없이 드러나면서 자신들의 기대치와 실제 성적표를 비교.분석하면서 향후 교육 정책의 방향을 모색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다른 지방에 비해 학력 수준이 높을 것으로 기대했던 경기도교육청은 평가결과 초.중.고 모두 하위권에 속한 것으로 정반대의 결과가 발표되자 적잖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일각에서는 `평과 결과가 객관성을 잃어버린 것 아니냐'는 의심 섞인 반응까지 나왔지만 긴급회의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한규숙 경기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은 "이번 결과는 기초학력 미달자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교육정책의 무게를 둬야 하는 시점에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올해부터 기초학력 미달자 관리에 예산을 확대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초.중.고교 모두 중하위권에 머물러 수도권 도시로서의 `체면'을 구긴 인천시교육청 역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국제도시를 지향하면서 인천을 `영어도시'로 만들겠다던 인천시교육청은 지역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전국 13~14위로 바닥권이라는 사실에 학부모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전년성 인천시교육위 의장은 "교육지도자들이 교육 현장엔 없고 각종 행사장에 쫓아다닌 결과로, 매우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라며 "학교 간 경쟁, 교장 평가, 강력한 교육력 제고 방안 등을 통해 학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몰락' 속에 다른 지역들은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는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초등은 전국 하위권인 데 반해 고등은 상위권에 분포된 것으로 나타난 광주시교육청은 "중.고교로 진학할수록 대입 등을 목표로 한 교육이 강화된 덕분"이라고 분석하면서 "다른 지역보다 성취도가 높거나 낮은 이유를 분석해 뒤처진 곳에는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와는 반대로 초.중등은 다소 높은 반면 고등학생의 성취도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대전시교육청도 "우수한 초등학생들이 갈수록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을 분석해 이에 맞는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돈받기로 하고 ‘영아거래’ 20대엄마 검거



대전 둔산경찰서는 16일 돈을 받기로 하고 자신의 생후 29일된 아기를 넘긴 혐의(아동복지법 위반 등)로 생모 고 모(21.여.사회복지시설 기거) 씨와 이 아기를 건네받은 박 모(21.여.대전 산성동) 씨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 씨는 지난 8일 충남 천안시 대흥동 천안역 대합실 안에서 자신의 생후 29일된 남자 아이를 200만원을 받기로 하고 박 씨에게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가출 후 서울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기거하는 고 씨는 지난달 초순 남편 없이 아이를 낳게 되자 인터넷에 "경제적 능력이 어려워 돈을 받고 아이를 넘기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고 씨로부터 아이를 건네받은 박 씨는 정신지체 3급의 장애인으로 실제 돈은 주지 않았으며 아이를 하루 동안 데리고 있다가 박 씨 엄마에 의해 경찰에 신고됐다.

<연합뉴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61kg 감량 성공한 ‘인간극장’ 주인공 이정선의 비만탈출




레이디경향 | 기사입력 2009.02.16 09:44

10대 여성, 제주지역 인기기사 자세히보기





KBS-2TV 인간극장 '나는 날고 싶다'의 주인공 이정선씨(36). 사람들의 시선과 나빠진 건강, 그리고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애쓰는 그녀의 사연은 시청자에게 묵직한 감동을 주었다.





인터뷰를 망설이던 정선씨는 사진 촬영도 무척이나 쑥스러워했다.

얼마 뒤, 이정선씨의 사연을 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그녀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고도비만을 치료하기 위한 '루와이위우회술' 전문의 이홍찬 박사가 그녀에게 무료로 수술을 해주기로 한 것. 위 크기를 20cc 정도로 만들어 소장과 연결하는 이 수술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대사성 질환 수술이다. 고마운 마음들이 모여 지난해 8월 정선씨의 수술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운동과 식이요법, 자기 관리. 한 번의 수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 후는 물론이고 지금도 꾸준히 스트레칭과 같은 운동을 하면서 '치료 중'에 있는 정선씨. '인간극장' 출연과 루와이위우회술 이후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정선씨는 망설임 끝에 말문을 열었다.

이젠 사람 많은 곳에 갈 용기가 생겼어요


병원으로 들어오는 정선씨의 발걸음 소리가 가볍다. 등 뒤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는 익숙한데, 가벼운 화장을 한 얼굴이 낯설어 보인다. 매서운 추위에 두꺼운 겨울 코트를 껴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 봤을 때보다 한결 날씬해진 모습이다. 처음 방송에 나왔을 때보다 60kg 정도 빠진 상태란다. 무엇보다 약간의 비음이 섞인 정선씨 특유의 밝은 목소리만큼 얼굴빛이 좋아 마음이 놓인다. '건강하게 살 빼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는 만큼, 그동안 쏟았을 그녀의 노력이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진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아무래도 몸무게의 변화죠. 음, '인간극장' 촬영 때가 192kg이었고, 지난해 말 옷을 다 입고 쟀을 때 131kg이었어요. 새해 들어 또 조금 빠졌고요."

시원스레 몸무게를 밝히는 정선씨. 어차피 많은 사람이 그녀의 '무거웠던' 몸무게를 알고 있는지라 애써 숨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제는 절대적인 몸무게 수치보다는 상대적으로 '얼마나 줄었는지'에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감량 폭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신경 쓰이는 일이 되었다.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어요. 수술 후 몇 달 동안 했던 수영과 개인 헬스 트레이닝은 사정상 쉬고 있고요. 대신 그때 배웠던 스트레칭을 집에서 시간을 정해두고 하고, 헬스센터를 다니며 매일 순환운동을 하고 있어요."

수술을 받고 나서 몸 상태는 물론이고 생활 습관이나 생각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는 몸이 '웰빙'이 되었다는 것이다.

"식성이 정말 많이 변했어요. 그 전에도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기름 냄새를 잘 못 맡겠어요. 튀김집 앞을 지나가면 머리도 아프고 속도 미식거리는 것 같고요. 수술 전에 의사 선생님께서 '웰빙 몸'을 만들어주겠다고 말씀하실 때, '그런 게 어딨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몸 자체가 변했어요."

사실 정선씨는 이전에도 살이 찔 만한 음식을 좋아한다거나, 먹는 양이 남들보다 많은 편은 아니었다. 덩치가 꽤 있다 보니 주변에서는 당연히 많이 먹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친구들조차도 "너는 남보다 많이 먹지도 않는데 왜 살이 찌냐"며 신기해할 정도였다고. 문제는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그것도 급하게 먹는 식습관 때문이었다.





 
"처음 상담을 받을 때, 선생님께서 '라면 제일 많이 먹었을 때 몇 개까지 먹어봤냐'고 물으시기에 2개라고 했더니 놀라시더라고요. 제가 대여섯 개씩은 뚝딱 해치우는 줄 아셨나 봐요(웃음). '인간극장' 2편을 찍으며 헬스 트레이너와 운동할 때는 감자, 고구마, 닭 가슴살만 먹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오히려 그렇게 먹는 게 안 좋다고 골고루 다 먹으라고 하셔서 지금은 그냥 남들처럼 먹어요. 물론 먹는 양이 많이 줄기는 했어요. 간식으로는 우유나 과일을 먹고요."

체중이 줄면서 건강도 따라서 좋아졌다. 몸이 가벼워지니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도 가슴이 훨씬 덜 답답했다. 전에는 급한 상황에서도 뛰질 못했는데, '뛰어야지'라고 마음먹지 않아도 급하면 저절로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란 적도 있단다. 다만 먹는 양이 줄고 단시간에 살이 많이 빠진 터라 똑같이 생활해도 피로함은 조금 더 빨리 느낀다. 몸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저만이 느낄 수 있는 소소한 변화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집 욕실이 작고 물건은 많아서 제가 앉아 있으면 문을 못 열었거든요. 이제는 제가 살짝 몸을 틀면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세요, 하하.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어요. 엊그제 친구한테 제가 먼저 '영화 보러 가자'고 했더니 놀라더라고요."

영화관은 물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꺼리던 정선씨였다. 자신이 지나가면 저절로 따라오는 사람들의 시선과 "봤어?"라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말 못할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연말 선물로 받은 구두 상품권으로 신발을 사기 위해 친구를 불러 백화점 쇼핑을 갔다. 그녀가 백화점에 간 것은 무려 17년 만의 일이었다.

'나'를 바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감행한 방송과 수술


'인간극장' 촬영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방송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정선씨는 방송이 가진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했다. 프로그램 방영 이후 너무 많은 사람이 자신을 알아봤다. 방송 직후 한 달여 동안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어디에 적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옛날에는 제가 지나가면 사람들의 반응이 한 가지였어요. '비난'의 시선이었죠. 그런데 방송을 보신 분들은 '인간극장 나왔던 아가씨'라며 특별하게 혹은 불쌍하게 대하시고, 또 방송을 안 본 분들은 여전히 저를 '이상하게' 쳐다봐요. 이제 양쪽으로 신경을 쓰게 된 거죠."

방송 이후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 방송국, 신문, 잡지 등 온갖 매체에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는 것은 물론, 일하는 직장에도, 친구에게도 전화가 왔다. 심지어는 운동하러 나가는 동네 공동묘지에서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남에게 싫은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인지라 거절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체중 감량이 성공적으로 끝난 상태라면 또 모르겠지만, 더 이상 보여줄 것도 없었을뿐더러 빗발치는 관심이 무섭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얼마나 빠졌느냐', '왜 많이 안 빠졌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듯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는 높은데 자신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1 정선씨의 수술을 맡았던 이홍찬 전문의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스스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읽었다고 했다. 그래서 수술 해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수술이 잘 끝난 지금은 '앞으로 더 많이 변화할' 그녀를 계속 도울 것이란다. 2 정선씨에게 든든한 가족 같은 의료진들. 이제는 스스럼없이 농담도 건네고, 애교 섞인 인사를 건넬 정도로 편안해졌다.

"수술 후 미음만 먹다가 처음으로 일반 음식을 먹었던 날, 친한 친구가 찾아와 '뭐가 먹고 싶냐'며 '사줄 테니 먹으러 가자'고 하는 거예요. 갑자기 갈비랑 냉면이 생각나더라고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고깃집에 가서 손가락 마디만한 갈비 두 조각이랑 냉면 한 젓가락을 먹었어요. 많이 들어가지도 않고 굉장히 꼭꼭 씹어야 해서 금방 배가 불렀거든요. 그런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쟤 살 뺀다고 수술했다면서 먹을 건 다 먹고 돌아다니네'라며 뭐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날선 반응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차가운 반응과 보이지 않는 부담감이 정선씨를 옭아매는 듯했다. 게다가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과 그럼에도 고군분투 살아가는 정선씨의 평소 모습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그녀를 꿋꿋하고 어머니께 잘하는 '착하디착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다.

"PD께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왜 나를 밖에서는 엄마한테 짜증도 못 내는 사람으로 만들었냐고요. 저는 천사가 아닌데 천사로 여기는 분들이 계세요. 감사하면서도 신경이 쓰여요."

방송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길까봐 걱정을 많이 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살면서 계속 체중이 늘었지만 먹고사는 일이 바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러다 3년 전 교통사고로 갈비뼈와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꼼짝도 않고 누워 지냈더니 급속도로 몸무게가 불어났다. 치료 후 다시 일을 하려고 하니 몸이 받는 하중도 만만치 않았고 허리며 무릎이 아파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다. 우연히 접한 다이어트 센터에서는 후유증만 얻었다.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자신을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것만 같아 괴롭고 실망스러웠다. 이제껏 살아오며 잘 모르는 이에게 모질게 대해본 적 없는 정선씨였지만, 그 때 섭외를 위해 그녀를 찾아온 '인간극장' PD에게 딱 잘라 거절을 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얼마 뒤 찾아온 또 다른 PD는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며 긴 시간 그녀를 설득했다.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도, 주변 생활도 다 방송이 되는 만큼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종합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PD의 약속에 정선씨는 출연을 약속했다. 그동안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만큼, 이번만큼은 평소 걱정스러웠던 건강이 어떤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정밀 검진을 받기 위한 돈과 시간이 부족한 그녀에게는 이 기회가 마지막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덜컥 방송 출연을 감행할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TV를 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정선씨에게 수술받을 수 있는 기회와 새롭게 살아갈 발판을 마련해줬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두를 놀라게 할 만큼 빨리, 그리고 많이 살을 빼고 '이렇다 할'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힘든 과제가 되기도 했다.

부담감과 강박은 내려놓고 잔잔한 행복 찾으며 살고파요


"사실 요즘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새로 일자리를 구하려고 알아보는 중이거든요. 당분간은 병원도 정기적으로 가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해서 낮 시간을 비워둬야 할 것 같아 예전처럼 밤에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어요.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 자리를 비워서 직장이나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는 싫거든요. 그런데 옛날 '190kg 이정선'이 그 일을 할 때는 '참 열심히 산다'던 사람들이 '살 빠진 이정선'이 계속 그 일을 한다고 하니 '고생하고 살 빼서 왜 그런 일을 하냐'며 질책을 해요. 전 살이 빠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제가 다른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 같아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누구나 다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정선씨 또한 자신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경제적 형편이 좋아졌다거나, 자신의 능력이 훌쩍 높아진 것이 아닌데 살이 빠지고 방송을 탔다고 해서 '더 좋은' 일을 한다거나, '더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지금껏 해온 것처럼 성실하고 묵묵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저한테 '대리만족'을 구하고 싶은 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친했던 사람들도 제가 '신데렐라'가 되길 바라요. 하지만 신데렐라는 원래 귀족이었잖아요. 저는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길 원하지 않아요. 살이 빠지고 외모가 조금 나아졌고, 제 건강이 좋아졌고,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해요. 앞으로 꾸준히 노력해서 살을 뺄 거고, 자격증 공부도 하면서 조금씩 저를 발전시켜나가고 싶어요."

그래도 새해가 되면서 정선씨는 한동안 그녀를 힘들게 했던 부담감이나 강박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기로 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편안하게 생각하면서 지금껏 그래왔듯이 열심히 살고, 그리고 '나'를 위한 시간도 가져보려고 한다.

"사실 지금 제가 기쁜 건 살이 빠져서 좋은 점도 있지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나마 생겼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잘 때 빼고는 24시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여유가 생기면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24시간 중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꿈도 생기고, 목표도 세우게 됐어요."

당장 실천하려고 하는 그녀의 목표는 몸무게에 관한 것이다. 올해 안에 두 자릿수에 진입하는 것이 정선씨가 세운 첫 번째 계획이다. 올 12월, 몸무게를 쟀을 때 최소한 99kg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병원에서도 이제는 살 빠지는 속도가 훨씬 더뎌질 거라고 하니 "수술했으니 이제 금방 날씬해지겠네"라는 주변의 말에 괜히 조급해지지 않고 건강하게 체중 조절을 할 생각이다.

또 다른 목표는 여행과 자격증 취득, 그리고 피아노 배우기다.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그동안은 여유도 없고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 많이 다니질 못했다. 가끔은 좋아하는 바다도 보러 가야겠다. 일을 하면서 자기계발도 게을리 하지 않으려 한다. 자격증이 있으면 일을 구할 때 도움이 될 테니 틈틈이 준비를 해서 시험을 볼 생각이다. 그리고 정말로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치는 것, 이 목표를 이루는 데는 아마도 꽤 긴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그래도 목표를 세우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거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게 된 정선씨다.

"살을 빼려고 했던 것도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였어요. 물론 워낙 키가 커서(신장185cm) 평생 평범한 몸으로 살 순 없겠지만요(웃음).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잔잔하고 소소한 행복을 얻으려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10년쯤 뒤에는 하고 싶던 곱창집을 차려 장사를 하고 있겠죠?"

얼마 전 친한 후배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는 세상으로부터 많이 받았지? 힘들지도, 외롭지도 않아 보여"라고. 세상 그 누구나 아프지 않은 이는 없다. 그리고 그 아픔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선씨는 앞으로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공짜'란 없는 세상에서 많이 받았다면, 그만큼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기대와 부담을 짊어지고 정선씨는 오늘도 살아간다.

■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튼 동물기 1 시튼 동물기 1
어니스트 톰슨 시튼 글, 그림 / 논장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커럼포의 늑대는 정말 생생한 기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