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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비 김창숙 ㅣ 우리시대의 인물이야기 4
정종목 지음, 한병호 그림 / 사계절 / 2006년 2월
평점 :
김창숙은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동 사월리에서 태어났다.그의 아버지는 이름있는 양반으로,장차 집안을 이어갈 창숙에게 많은 기대를 하였지만,창숙은 공부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창숙의 아버지인 하강공은 창숙을 칠봉산의 일곱 개의 봉우리 중 가장 곧고 높게 뻗은 직준봉을 보여주며 그 이름을 따서 창숙의 호를 '직강'이라고 지어주었다.
창숙이 열 일곱이 되던 해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창숙은 처음에는 술을 마시며 비틀거렸지만,곧 마음을 다잡고 나라를 위해 일하기로 마음먹는다.창숙은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결국 창숙이 걱정하던 한일병합이 되고 만다.이 대목에서는 나도 답답했지만 창숙도 답답하고 억울해서 매일 술꾼이나 노름꾼,장사꾼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윷놀이에 넋을 놓았다.그러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어머니는 그런 창숙을 꾸짖었다.
창숙은 그 이후 새사람이 되어 예전에 아버지가 읽던 책을 읽으며 장가를 가서 자식도 여럿 낳았다.창숙은 고종 황제의 장례식에서 동료인 성태영과 김정호와 함께 뜻을 모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에 참석하기로 마음먹고 파리에 보낼 독립 호소문을 가지고 중국으로 떠났는데,이미 한 발 늦은 상태였다.그래서 하는 수 없이 창숙은 중국의 독립지사들과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세워서 일한다.
창숙은 국내에서 독립 운동 자금을 모으려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고,자신의 스승인 면우 선생이 제자들과 책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고국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선뜻 큰 돈을 내놓겠다는 사람도 없고,일본 순사의 감시가 너무 삼엄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다.그리고 그 곳에서 김구에게 나석주와 이승춘이라는 젊은이를 소개받는데, 그 중 나석주는 동양 척식 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총으로 일본 직원과 경찰 몇명을 총으로 쏜 뒤 남은 한발로 스스로 자결했다.
그런데 그 무렵,창숙의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다.그래서 영국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에 들어갔는데,그 곳에서 창숙은 일본 영사관 안 철장으로 끌려간다.그리고 대구 경찰서에서 심한 고문을 받은 창숙은 두 다리가 마비되었고 대전 수용소로 옮겨졌다.그러나 창숙의 병세가 너무 심해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다시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대구 형무소에 갇힌다.그리고 또 병원에 있다가 다시 절로 옮겨 요양을 한다.그리고 8월 15일,우리나라에게 드디어 광복이 찾아왔다.
광복 후 창숙은 조국의 젊은이들을 바르게 교육시키고 싶다는 꿈을 이루려 1946년에 고려 때부터 있었던 성균관 대를 계승해 학장이 된다.그러나 6.25 전쟁이 터지고,이승만과 자유당의 독재정치가 계속되고,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치루는 사이,김창숙은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 갔다.결국 김창숙은 1962년 5월 10일 국립 중앙 의료원에서 숨을 거두어 수유리 4.19 묘지에서 백련사로 오르는 곳에 묻힌다.
김창숙을 포함한 독립 지사들은 정말 대단하다.보통 사람 같았으면 순사에게서 계속되는 감시를 받으며 형무소로 잡혀가 고문을 당하는 것이 싫어서라도 그렇게 독립운동에 앞장서지 않았을텐데,이들은 서로 앞장서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섰다.특히 나석주가 마지막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자결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보통은 그런 일을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어쨌든 처음에 성균관대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인데,김창숙이 만들었다고 하니 헷갈렸는데 알고 보니 김창숙이 성균관대를 계승해 설립한 것이었다. 소년 소녀들은 역사중에 옛날도 아니고 현대도 아닌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이 가장 애매하게 알기 마련인데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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