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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맞춤법을 틀리는 남자는 덜 떨어져 보여."
언젠가 작가지망생 친구가 말해줬던 내용이 떠올랐다.
(아마 직업병인 것 같다고 했는데 평소에 인터넷 용어로 문자를 보내던 나는 그 이후로 표준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가 누군가를 싫어하게 할 수도, 어쩌면 호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현수처럼 착한 스프에게 호감이 가기보다는 비호감을 느꼈다.
사람마다 매력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기술된 상태의 착한 스프는 외관상으로나 내면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편은 아니다.
오히려 박정우씨야말로 많은 여자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스타일의 남편감이 아닌가?
어떤 면에서 드라마를 쓰는 작가이기에 현실과는 대조되는 구도의 선택을 보여준다고 생각 할.수.도 있다.
좀 더 어렸다면 나 역시 '픽션스러움'으로 넘겼겠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사람의 마음이란 그리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충분히 현실적인 이야기구나 싶었다.
박정우씨는 그가 가진 재력이나 능력을 떠나서 그 '한결같음'이 여자에게 결혼을 결정하게 되는 안정감을 준다.
반면 착한 스프는 남성적 박력도 없고 상대를 안정시켜주기는커녕 본인 자체가 불안정한 상태이다.
물론 그가 지닌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면은 현수 말고도 많은 여성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놓고 봤을 때 현수의 그 고집스런 사랑은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떤 분야든 그렇겠지만 사랑은 특히 그 어떤 논리도 부여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예술적 소재가 되는 것인가 보다.
사랑에 있어 성공이 있을까?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해지므로 경솔히 대답할 수가 없다.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입장과 시각에서 사랑을 하기에 내용과 진행방식이 중첩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빨리 안정을 찾은 홍아의 껍데기는 정말 부럽다.
하지만 현수를 가장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점은 본인의 감정에 대해 잘 알고 솔직했다는 것이다.
대체 다들 어떻게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지가 궁금할 정도로 사랑에 대해선 열등생이라고 자조하는 만큼 현수의 뚜렷한 자아가 부러웠다.
얼마나? 어떻게? 무엇을? 이 사랑을 설명하거나 완성하진 못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보통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혹은 스스로도 본인의 감정을 알지 못해서 늘 엇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는 동안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하필이면 그때'등등의 안타까움이 연발 터져 나왔다.
현수 말고도 현이, 아빠, 홍아와 착한 스프, 조언자 모두 작품의 초반과 후반에 캐릭터 반전이 일어난다.
그나마 묵묵한 등장인물이 박정우씨였기에 더욱 그에게 심정적으로 기대게 되더라.
어쩌면 나에게 사랑이란 묵묵함, 한결같음으로 정의되나 보다.
작품 내에서 '작가란 이래야지'하는 고정관념에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현수를 타박하는 상황이 종종 있다.
그와 대조되게 후반부에서는 현수의 현저한 변화를 보여주어 사람과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게 가장 가슴이 아팠다.
TV를 보지 않아서 하명희 작가의 드라마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작품 명을 보니 인터넷 기사로 몇 번씩 오르내렸던 기억이 난다.
인기가 많다고 생각했던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책은 과연 얼마나 특별할까?
대단히 획기적인 캐릭터와 상황설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소재의 특별함을 기대한 적은 없다.
통속적인 소재가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신속한 재미를 끌어낸다기 보다는 잔잔한 감정이입을 유도하여 결말의 효과를 부각시킨다.
독자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소설 내내 계속 제공한다.
하물며 결말에서는 아직 다하지 않은 현수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내게 감명 깊었던 부분은 평범한 일상을 녹여내어 독자의 공감력을 끌어낼 줄 아는 기술력에 있었다.
마치 현수가 나인 것처럼 느껴져서 누군가에게 읽어준다면 "네 얘기지?"라고 할까 봐 차마 읽어줄 수 없을 정도로 흡사한 부분이 있어서 읽는 내내 침잠하는 기분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의 한 부분에 우리의 모습이 녹아있고 그 대사에 우리가 들어있다.
상황을 판단하기 보다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작가인 것 같다.
나이가 드니 작품에 대한 내용보다 작가의 인물에 대한 태도에 마음이 쓰인다.
하명희 작가는 모두에게 '괜찮다'라고 말해 주려고 작품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 마음이 충분히 전해져서 위로가 된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