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물질의 습격, 위험한 시대를 사는 법 - 일상의 편리함 속에 숨은 화학 물질 중독, 피할 수 없는가?
계명찬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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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닷컴 / 화학물질의 습격 : 위험한 시대를 사는 법 / 계명찬 지음



봉투만 뜯어 끓이기만하면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나 가공 식품들, 렌지에 돌려 데우기만하면 먹을 수 있는 수 많은 음식들, 내가 어릴적과 비교하면 정말 편해진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지만 그것은 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 없이 기업들이 쏟아내는 안전성 광고를 철썩같이 믿을 때나 드는 순진한 생각일지 모른다.

처음 환경호르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했던 것은 아이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보다 빠른 뼈 성장으로 인해 병원을 찾았을 때 환경호르몬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동안 편하다는 이유로 먹고 사용하던 모든 것들 속에 숨어있었던 화학물질이 내 아이에게 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한동안 꽤 많이 힘들어했었다.

요즘은 엄마들이 정보에 빨라 화학물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안다고해서 주변에 넘쳐나는 화학물질로부터 내 아이와 가족을 지키기에는 사실 역부족일 때가 많다. 그만큼 집안에서 사용하는 물건에도 수 많은 화학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나는 화학물질과 관련된 책을 볼 때마다 정말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문구를 자주 떠올리곤한다. 정말 환경호르몬으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힘이 되어야만 한다. 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었던 나의 무지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엄마들이 더 많이 알아야 가족을 지킬 수 있다라는 생각밖에 안드는 것 같다. 물론 아빠들도 알아야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 구조상 집안일이나 가족의 음식을 챙기는 것이 엄마들의 몫이기 때문에 나는 엄마들이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역시 이 책을 읽을수록 이렇게나 많은 화학물질 더미속에서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드는것 또한 당연한 것 같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게 되는 환경호르몬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영수증과 영화표 속에 들어있는 비스페놀A와 포장용 랩과 종이컵 안쪽의 코팅재로 쓰이는 폴리에틸렌, 단단한 플라스틱 제품인 폴리카보네이트, 페트병 소재, 컵라면 소재, 바다를 오염시키고 우리 밥상을 병들게 하는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설명과 불소수지 제품들, 화장품과 향수, 샴푸, 세제에 들어있는 파라벤이나 합성 향료 속에 들어있는 유해성분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천연 제품이라고 다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물건을 직접 고를 일이 많은 주부로서는 놀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다가왔고 그런 환경호르몬으로 인해 파생되는 질병들이 PART 2에 자세하게 나온다.

집안에 숨어있는 화학물질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과 안전한 조리기구 선택방법과 사용방법을 알려주고 있어 주부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평소 환경호르몬에 관심이 있어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책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 속에 노출되어 있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간편하고 편리해서 사용했던 수 많은 것들이 얼마나 인체에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된다면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사용했던 것들을 줄일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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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의 빨간 수첩
소피아 룬드베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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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예출판사 / 도리스의 빨간 수첩 / 소피아 룬드베리




아흔여섯의 도리스는 혼자 살고 있다. 가족도, 반려 동물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도리스,

방문 요양사가 방문해야 집안일과 끼니를 챙겨먹을 수 있는 도리스는 식탁에 자신의 물건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을 하나의 의식처럼 치르고 있다. 그 속에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빨간 수첩.

빨간 수첩안에는 도리스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 하지만 그 이름들 위로 그어진 밑줄과 '사망'이란 단어로 마무리 된 수첩은 도리스가 살아가는 현재만큼이나 쓸쓸하게 다가온다.

함께 사는 가족도 없는 아흔여섯의 도리스의 즐거움은 멀리 떨어져 미국에 살고 있는 손녀 '제시'와의 화상통화이다. 화상통화를 통해 제시와 그의 가족들을 보며 다르지 않은 매일 속에서 잠깐이나마 즐거움을 느끼는 도리스, 이제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 속에서 도리스는 빨간 수첩 속에 쓰여진 이름들이 자신의 삶에 미쳤던 이야기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오가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랑하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궁핍해진 생활에서 어머니는 맏이인 도리스를 '도미니크 세라핀'이라는 부유한 여성의 집 하녀로 보내게 된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하녀로 가게 된 상황에서 도리스는 어린 마음에 자신을 하녀로 보낸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 미워하게 되고 먹을 것 걱정은 없어졌지만 엄격하리만치 깨끗함을 요구했던 세라핀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세라핀은 매일마다 파티를 열었고 그 파티에 모이는 수 많은 사람들로 인해 도리스가 상처받는 일들도 있었지만 젊은 화가 '예스타 닐슨'을 만나게 된다. 그 후 세라핀은 도리스만을 데리고 파리로 가게 되고 장을 보고 오던 중 한 중년남자로 인해 도리스는 하녀로서의 삶에서 살아있는 마네킹이라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얼굴이 예뻤던 도리스에게 예쁜 옷과 악세사리를 걸치게해 백화점에 마네킹으로 세워 부유한 사람들에게 옷을 팔았던 장 퐁사르와의 만남은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그 시대 돈을 벌며 나름 성공을 거머쥐게 되었고 그런 생활 속에 도리스는 '앨런 스미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몇 달의 사랑 후 한마디 없이 그가 사라지게 되고 이어진 엄마의 부고 소식과 함께 어린 시절 헤어진 동생 '앙네스'를 만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독일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점점 일거리는 줄어들게 되고 갑작스럽게 사라진 앨런이 자신이 있는 미국으로 와달라는 편지를 보내오고 도리스는 동생 앙네스와 함께 짐을 꾸려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앨런을 만나게 된다는 희망과 자신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줬다는 고마움을 느끼며 배에서 만난 일레인에게 영어를 배우며 도착한 미국에서 도리스를 기다린건 앨런이 아니라 앨런이 보낸 심부름꾼이었으니 도리스가 받아본 앨런의 편지는 일년전에 보낸 것으로 도리스가 답장을 보냈을 땐 이미 앨런은 병으로 위중한 어머님을 위해 결혼을 한 상태였다. 이들 자매는 연고도 없는 미국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될까...란 궁금증은 계속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 후의 삶 또한 평탄하게 이어진 것은 없어 파란만장한 도리스의 삶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했다.

'내 이야기를 쓰면 소설로 열두권은 나올거야' 요즘 사람들은 이런말을 안하지만 나는 어릴 때 부모님 세대에서 이런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으며 자라왔다. 한국전쟁 세대인 부모님만해도 격변이 심했던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한 세월을 견뎌냈으니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여겨질까 싶었는데 도리스의 삶은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가니 도리스의 빨간 수첩을 통해 다가온 소설 한권은 짧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한 권 속에 들어 있는 도리스의 삶은 결코 빈약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슬픈 일들도 많았지만 그런 일들을 회상하는 도리스의 이야기는 그저 담담한 어투로 전해진다.

책을 읽기 전에 꽤 다양한 일들을 마주하게 되겠구나란 생각을 했었는데 읽고 난 후에는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도리스 인생이 꽤 가슴 깊이 다가와서 아마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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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 3,500km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다
이하늘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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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를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부부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읽게 되었던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그전까지 PCT, AT, CDT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나는 <와일드>라는 책을 처음 접하며 몇천킬로나 되는 고행길을 알게 되었고 그 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와 관련 책들이 나오면 호기심에 들춰보곤 하였었다. 아무래도 직접 가지 못함에서 오는 아쉬움을 달래는 수단으로 책 속의 여정을 함께하며 대리만족하고 있는 느낌이 크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 속에서 기운을 얻게 되고 세상을 더 넓은 눈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 매번 색다름을 느끼게 된다.

처음엔 신혼여행을 AT로 선택했다는 짤막한 글을 보고 매료되어 읽기 시작하다가 우억!하게 되는 대목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푸른향기에서 출간됐던 4300km라는 책의 저자인 양희종씨가 이 책을 쓴 이하늘씨의 남편이라는 것이었다. 와일드를 읽고 PCT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었던 차에 한국인인 양희종씨가 쓴 PCT 여행기를 발견하게 되었고 훅 빨려들어가듯 매료되어 읽었기에 더 반갑게 다가와졌던 것 같다.

남편인 양희종씨가 PCT, CDT를 걸었고 트리플크라운의 마지막 관문 AT를 남겨둔 상황에서 부부의 AT 여행기는 시작된다. 남편에게는 트리플크라운의 완성이라는 계획이, 아내에게는 쓰루하이커라는 계획이 붙어 더 의미있었던 AT 정복기!

확실히 처음부터 PCT에 대한 글을 읽어 강렬함이 남아있었기에 AT의 풍경이 그리 멋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습하고 비가 많이 오며 숲 속의 사진이 많아 그랬는지 사진에서 느껴지는 강렬함보다는 그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이 보내오는 따뜻한 격려와 도움, 배우자에 대한 고마움등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늘 곁에 있었지만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다.

가끔은 '안정되어 있던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시작할만큼 걷는 것이 인생에 과연 중요한 것일까?'란 생각과 '나라면 과연 용기내어 시작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은 역시 내가 시작하지 못함에서 오는 부러움과 그들의 용기에서 굉장한 에너지를 느끼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하루에 25km~30km 걷느라 느끼고 생각할 틈도 없을 것 같지만 그 곳에서 보게되는 대자연과 문득문득 드는 깨달음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 되었을 것이다.

CDT의 반을 걸었고 AT를 완주했으며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활약한 후 PCT로 돌아간 그녀의 여정을 다음번 책에서도 꼭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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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락엽이 아니다 아시아 문학선 20
리희찬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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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 / 리희찬



작년 북한의 실상을 고발한다는 내용의 <고발>이란 소설을 통해 북한 소설을 처음 접했다. 북한이 처해있는 여러가지 정치적, 경제적, 외부적인 요인이나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밝은 내용은 아닐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내용이 꽤 묵직하고 나름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북한이란 곳이 주는 흥미로움에 들었던 첫 소설이 너무나 사회적이어서 이 책을 봤을 때도 호기심에 덥석 집을 수가 없었더랬다. 더구나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라는 다소 철학적이기까지 한 제목에 다가서는 것부터 몇번의 고뇌가 뒤따랐던 소설이었는데... 막상 읽기 시작했을 땐 의외로 너무 재밌어서 중간에 놓을 수가 없었다.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는 북한 소설인만큼 대한민국에서는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단어 옆에는 괄호로 표시하여 우리말 뜻이 붙어져 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데 그렇게 생소했던 단어 속에서 북한이 고향이었던 아버지가 쓰시던 단어 몇개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왠지 뭉클하고 반갑기도 하였다.

삼십여년을 부부로 살아온 홍유철과 진순영의 아들을 걱정하는 대화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대학 박사원에 다니던 시절 홍유철과 진순영의 풋풋한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가 진순영이 전혀 관심도 없던 홍유철에게 끌리게 된 배경을 재미나고 맛깔나게 표현하고 있다. 본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살던 순영이 가망없는 병에 걸려 입원한 어머니 간호를 하던 중 어머니가 홍유철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죽음이란 단어에 자신의 생을 정리하던 어머니를 웃게 만드는 홍유철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데 홍유철이 병문안을 와서 어머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릴 적 주거니 받거니했던 만담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빵 터지는 부분도 있었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해 어제 재미있는 이야기도 오늘은 흥미거리를 주지 못하는 시대에 홍유철이 쏟아내는 우스개소리는 대한민국에서는 자칫 재미없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실없이 들리지 않고 오히려 순수하게 다가와 뭔가 의외성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홍유철과 진순영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어느 곳이나 자식과 부모간의 공통 분모로 다가왔고 학업에 대한 그들의 고민 또한 대한민국 부모들이 걱정하는 그것과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라서 거센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전쟁을 치르는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부모, 자식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일생에 대한, 퇴직 후 노후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는 글은 예상했던 것과 달라서 기존에 읽었던 소설과는 많이 다르게 다가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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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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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 우리가 함께 듣던 밤 / 허윤희 에세이



꽤 어린 시절부터 내 방엔 TV가 있었다.

요즘 시절에 생각해도 꽤 이른 잠자리 독립을 했던 내 방엔 자그마한 컬러 TV가 한대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 어린 시절에도 나는 TV보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은은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귀기울이며 듣는 라디오를 더 좋아했었다.

내가 라디오를 처음 들었던 계기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농사일 중간 짬이 날 때마다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제5공화국 라디오 드라마나 정오 뉴스 등을 익숙하게 들었던 기억에 경직되고 따분한 정치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들려주며 알맞은 노래 선곡을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가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기억은 생생하다.

그러다 한참 사춘기 시절엔 초저녁부터 시작되는 철수 아저씨의 팝송 프로와 해철 오라버니의 민감한 사항에 대한 소신 발언을 심장 쫄깃해하며 듣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감하곤 했었다.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해 라디오 듣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운전을 할 때만 듣게되는데 오랜만에 들어도 역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들의 편안하고 달달한 목소리는 지치거나 우울하거나 힘들었거나 외롭거나 즐겁거나 슬픈 사람들의 마음을 잘 달래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며 기분을 더 업시켜주는 만능 선물 상자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가 듣던 밤>은 심야 라디오 DJ인 허윤희씨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방송을 하며 방송엔 미처 소개되지 못했던 글이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사연들을 묶은 에세이다. 무엇보다 라디오 DJ와 애청자들이 보낸 수 많은 사연들이 실린 에세이란 점이 어릴 적 라디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가슴 달달하게 다가왔다.

세상을 살다보면 나만 굉장히 불합리한 것 같고 나만 처절하게 외로운 것 같고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몇배나 힘든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하는 시기가 있다. 아마 그 어떤 것으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자신의 틀을 깨는게 훨씬 더딜테지만 라디오를 듣는 것으로 타인의 삶이 담긴 사연을 통해 나와 다른 환경, 다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또한 내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내가 지금껏 느꼈던 왠지 모를 불안과 불합리들은 그저 불편한 나의 주관적인 감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것들을 통해 내 안에 틀을 하나씩 깨며 앞으로 전진하게 되는 밑거름과 발판이 되어주었던 것이 나에게는 라디오였다.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내 자신의 틀을 깨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지금보다 한뼘 더 자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사연들 속에서 나는 또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자란 나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애청자들의 사연과 그 사연에 대한 허윤희 DJ이의 생각이 담긴 글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사춘기 감수성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소개된 사연 중 오랜만에 예전 살던 동네 빵집을 찾았던 주인공은 잊지 않고 자신을 기억하는 빵집 주인아주머니의 걱정스러운 한마디와 가는길에 힘들어도 끼니 거르지 말라며 갓 구운 빵을 챙겨주시는 따뜻한 마음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 사연을 읽으면서 그저 그 사람은 그 자리에 묵묵히 있었던 것 뿐인데 들쑥 날쑥한 내 기분에 그 사람을 오해했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에 사소한 말다툼 후로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문자를 넣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하지 않는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괜한 자존심에 먼저 연락할 수 없었던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주었던 사연,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직도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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