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 정글 1
캔디스 부쉬넬 지음, 서남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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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에 엄마의 립스틱을 몰래 발랐던 기억이 난다. 없는 솜씨로 삐죽삐죽 입술보다 더 크게 그려서는 그런 내 모습이 이뻐 보여서 흐뭇해 했지만 그 모습을 보고 기겁하신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여자아이라면 한번쯤 이런일들 있을 것이다. 얼마전 영화 "마음이"를 보니 엄마흉내를 내면서 붉은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는 여자아이가 나왔는데 꼭 나의 어린시절을 보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아련한 옛 추억에 잠시 젖어들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왜 그렇게 빨리 자라 엄마처럼 이쁘게 화장을 하고 싶어했을까? 어른이 되면 삶의 무게만 어깨를 내리누르는데 말이다. 참 순수했던 어린시절이었다. 그에 반해 립스틱 정글의 책 표지는 너무도 강렬하고 섹시한 느낌이어서 어린아이가 흉내나 내던 입술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내용일까 설레이면서 봤으나 책을 덮은 지금은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던 세 사람의 여인들이 생각나 입술이 나를 덮쳐오는듯 온 몸을 꼭 죄어 오는 느낌이 든다.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 빅토리 포드, 잡지사 CEO 니코 오닐리, 영화사 사장 웬디 힐리 이들 중 어떤 인생이 나아보일까. 과연 모두들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풍족하게 돈을 쓸 수 있다고 해서 꼭 성공한 삶이라고 이야기 할 순 없을 것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못 믿고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급급하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을 벌고 있는 그들이고 보면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어이없다며 실소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한다며 상대도 해 주지 않을게 뻔하다. 그들에게 나의 존재는 무시해도 좋을 아주 평범하고 먹고 사는 것조차 걱정해야 하는 한심한 사람으로 보일테니까. 하지만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성공이 가늠되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난 그들에게 과감하게 "나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은 못하지만 "내 나이 40대가 되었을때 손안에 쥔 행복이 아무것도 없다면 정말 슬프지 않겠느냐"고 반박도 해 주고 싶어진다.  

세 사람중 그 누구도 완벽한 모습을 한 이는 없다. 그저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을 할 뿐이다. 어쩌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모습은 외롭다는 다른 형태의 몸짓으로 보인다. 디자이너로서 한단계 자신을 발전시키지만 그녀의 작품세계를 이해 못하는 냉혹한 사회의 질타에 내몰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삶에 대한 동정을 받는 빅토리,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돌보는 남편을 대신해 가족을 부양하는 웬디, 더 큰 회사의 CEO 자리를 노리며 도약을 하려 하지만 남편과의 밋밋한 결혼생활로 바람을 피우는 니코의 모습은 어쩌면 내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들은 평범하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상황들만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다. 가진 돈이 작아도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어도 손 따스히 잡아줄 가족이 있다면 마음의 풍요로움은 채워질텐데. 40대가 되어 내 인생의 한고비를 돌아봤을때 성공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내가 있을 자리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 또한 불행한 삶일테니 너무 많은 것을 움켜잡으려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은 선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실력으로 남자들을 누르고 당당히 일인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그녀들의 모습을 기대해서 인지 이런 모습은 내게 공감을 주지 못하고 가슴만 아프게 할 뿐이다.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바란다면 더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내보일수 있을때 삶을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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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삶의 여백에 담은 깊은 지혜의 울림
박완서.이해인.이인호.방혜자 지음 / 샘터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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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적이 언제였던가? 상대방과 말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대화'가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같은 공간에서든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서든 상대방과 말을 나누긴 하지만 진심어린 '대화'는 나눠보질 못한 것 같다. 한발짝쯤 물러서서 나를 방어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긴 하지만 주의깊게 내 온 마음을 열어 받아주진 못했다. 무슨 전쟁에 참전할 것도 아닌데 갑옷을 입고 방패와 창을 들고 나를 방어하는 모습이라니 '이런말을 하면 상대방이 이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나에게 상처되는 말을 하지 않을까' 전전긍긍 고민하느라 머리가 다 아플지경이다. 

상대방과 깊이있는 교류를 하기 위해선 들어주는 연습을 먼저 해야한단다. 상처입고 이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고 보면 내 말 들어줄 사람도 없는 것 같긴 하다. '대화'를 나눠 보지 못한 나에게 이 책은 진정한 "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름만 대면 누군지 다 아는 사람들. 하지만 솔직히 난 방혜자님과 이인호님은 처음 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 해 보고 나의 무지함에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그러고 보면 난 세상과도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살아왔나 보다.   

여성상위시대라고 하지만 아직은 남성들이 더 인정받고 활개를 치는 세상이다. 내가 여자이기에 가슴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다. 사회에서 알아주는 저명한 분들의 대화라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고 계실까 궁금해질텐데. 이분들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고 겪으면서 사회적 문제나 미래의 모습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셨다. 소소한 문제보다는 큰 사회적 문제들을 많이 걱정하고 계시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을 벗어나지 않으니 내가 있는 곳 보다 멀리 계신 분들이 아니란 것에 안도하게 된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 보다 사회에서 어느정도 유명세를 타고 계신 분들이기에 감히 가까이 가지도 못할텐데 이렇게 모여 앉아 어린시절부터 현재의 자신의 상황에 대해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나도 곁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듣는 듯 편안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불혹의 나이도 지나고 어느정도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의 진중함. 삶을 소중히 여기며 소신있게 살아가는 모습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종교적인 문제가 자주 등장하는 박완서님과 이해인님의 대화는 읽기 힘든점도 있었지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큰 마음이 느껴져 고개가 절로 숙여지게 된다. 이해인 수녀님을 뵈니 나도  어릴때 철 없이 "수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때가 기억난다. 아마 수녀복이 입고 싶었을 것이다. 숭고해 보이기도 했고. 아마 수녀가 되고 싶다고 찾아갔어도  끊임없이 절제하고 수양해야 하는 생활의 어려움을 놓고 볼때 견디지 못했으리라. 이렇듯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가는 사람들의 대화는 "평범한 인생에 염증을 느낀다"며 어리광 부리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픈 이야기이다. 물론 하루하루 인생이 값진 것이란 걸 자각하지 못한 나에게도 필요한 책이다. 얼굴에 주름하나씩 늘어날때 마다 인생의 자양분도 늘어나야 할텐데 이분들의 토론같지만 진솔한 대화를 통해 나도 내 얼굴에 책임을 지며 인생을 꾸려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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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찾기
마리네야 테르시 지음, 유혜경 옮김 / 책씨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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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자아찾기'의  내용이려나 했는데 주제가 결코 가볍지가 않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그저 가족이란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자매가 화목하게 지내는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가족의 행복조차 쉽게 가질 수 있는게 아님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느 한 귀퉁이 부서진 가구처럼 아픔 한가지쯤 가지고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 이 책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아닌 둘러보면 내 주위에도 있을 법한 아픔을 가진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을 찾아간다.  그래서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어린시절을 돌아보게 되지만 이 책을 덮은 지금 나도 한뼘쯤 마음의 키가 자란 느낌이 든다. 드라마를 보면 가족드라마들은 으레 불행이 여러겹으로 둘러싸도 거의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일뿐. 저 너머의 세계의 일일뿐이라 현실에서는 언제나 그 문제는 그대로 있고 죽을때까지 이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갈등을 해소하려면 서로가 마음을 터 놓고 같이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수 밖에 없다. 가브리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실 너머가 아닌 현실을 말해주므로 나의 이야기인 듯 열중하며 보게 된다.

가브리엘의 나이 15살 . '나는 15살때 어땠나?'. 어떤 생각들을 하고 살았던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중학생이었고 그저 또래 친구들과 수다떨면서 공부가 나름대로 힘들다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면서 집에서 특권을 누리고 지내왔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가브리엘은 그때의 나와 비교했을때 엄청 조숙하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은 지금의 나도 늘 생각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데 전혀 15살 같지 않은 가브리엘을 통해 나도 부모님이 완벽하기만 바라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베푸는 것과 별개로 그분들도 나름의 삶이 있으셨을텐데 완벽하게 살지 않으신다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정하는건 옳지 않은 생각이란 것을 가브리엘을 통해 배우게 된다. 자신이 등장하는 첫사진을 보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가브리엘. 엄마와의 행복한 기억보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은 가브리엘. 하지만 일만 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늘 바쁘기만한 엄마에 대한 원망만 늘어놓았다면 이 책은 결코 '모습찾기'라고 제목을 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엄마와 함께 빈 자리를 매워 나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먹먹하게 하나 아픔을 통해 한층 성숙한 두사람의 모습으로 희망을 볼 수 있어 마음이 오히려 잔잔해져 온다. 우리가 바라는 해피앤딩은 없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모습이 진정한 가족의 모습으로 가슴에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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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한국인이 정겹다
양문실 지음 / 다할미디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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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나의 시선은 밖으로 밖으로 나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것 보다 타인의 것을 동경하며 살았고 내가 살고 있는 집보다 더 크고 좋은 집만을 바라보고 살았으며 내가 살고 있는 땅보다 복지가 잘되어 있다는 소위 선진국들을 보면서 살아왔다.  잃어봐야 소중한 것을 알게 된다고 했던가. 내가 당연시 하며 누리고 살아온 모든 것들이 소중한 것이라는걸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고개 돌리면 보였던 산과 바다, 문만 열고 나가면 나와 피부색이 같은 그들, 먹고 싶은 것들을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곳에 산다는 것이 큰 행복일 줄이야. 그녀가 찍어 놓은 흑백의 사진들이 정감있게 다가오고 토종 먹거리들조차 군침돌게 하니 역시 난 한국에서 태어나고 살아야할 팔자였나 보다. 

집이 바닷가 근처에 있는지라 집안에서도 저 멀리 바닷가가 보인다. "경치 좋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도 손 닿는 거리에 바닷가를 두고서도 몇번 가보질 못했다. 가까이 있으니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여유로움일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이런 내 자신이 왜이리 부끄러워질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천혜의 경관들을 아끼며 봐도 모자랄판에 너무 밀쳐두고 있었음일까. 오늘따라 어두컴컴해져 저 너머에 있을 바닷가가 보이지 않지만 한참을 보고 있게 된다.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동경은 아마도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한국에서 살지만 영어를 배워야하고 단어들을 씹어가며 외워도 도통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비관하며 해외로 나가면 능숙하게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늘 해외유학이니  이민을 동경해 왔다. 어학연수를 떠나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부럽던지.  나도 그들과 함께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껴왔었다. 평생을 배워야할 외국어의 무게를 잊기 위해서 말이다. 혹자는 "여기서 공부해서 외국인 못지 않게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많다"고 얘기할 지 모르나 이 책을 읽는 지금도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싶은 희망을 가지게 된다. 준비해서 갈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저 희망만 가지고 있지만 외국에 다녀온 사람을 보는 내 시선에는 부러움이 한 가득이다.   

저자가 아무리 무표정하지만 뜨거운 심장을 가진 정 많은 한국인이 정겹다고 부르짖어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시선이 가게 된다. 두 가지 다 해 본 사람만이 어느쪽이 더 소중한 것인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니 한쪽만 가진 나로서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 많은 한국인들 틈에 사는 것이 행복인 것도 알고 비록 명절증후군이 생겨 괴롭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의 소중함 또한 안다. 서울에 있는 경복궁에 조차 발걸음을 해 보지 않은 내가 외국생활을 동경하는 것이 과연 잘못된 일일까. 아니 좁은 국토안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좁을 수 밖에 없으니 더 넓고 큰 곳에서 시야를 키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구구절절 한국에 대한 정감을 드러내는 책을 보고 있으니 그녀가 더 부러워지니 난 청개구리 기질을 타고 탔나보다.   

발을 밟아도 어깨를 부딪쳐도 멀뚱히 쳐다보고 사과 할 줄 모르고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지만 힘들때 기댈 수 있는 마음 터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이 곳이 물론 나는 좋다. 다른 나라에 발길 옮길 수 없어도 작은 나라여서 버리는 땅 없이 고치고 다듬어서 옹기종기 모여서 사는 우리나라가 참 좋다. 마음에 품은 외국에의 동경은 밀쳐두고 말이다. 책을 덮은 지금 어깨가 쫙 펴지고 당당하게 한국인임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니 외국생활의 조금의 동경은 봐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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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유 - Everyone Says
이미나 지음 / 갤리온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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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금부터 사귀는거야"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정해두고 하루, 이틀 손꼽아 보다가 100일을 챙기고 또 하루하루 챙겨가다 몇달 뒤엔 '헤어진지 몇일째야 잘 견디고 있어'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며 보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양은냄비처럼 금세 끓어오르다 또 빠르게 식어가는 사랑의 풍속도에 "이러면 안된다"고 부르짖지만 나 또한 내가 생각한 사랑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과감하게 선을 그어 버렸던 것 같다. "정말 쿨하지 않냐"고 나를 대견해 하면서 말이다. "사랑을 언제부터 시작하자"고 이야기 하는 것도 우습지만 내가 생각한 사랑이 아니라고 헤어졌을땐 그것이 잡아달라는 다른 언어의 형태였음을 그때도 지금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 그래서 이 책은 내 가슴을 울린다. 진득하게 상대를 바라보기에, 가슴앓이 하며 조심스레 다가가기에 늘 빠르게 빠르게 외쳐되는 세상속에 어쩌면 나의 마음까지 동욱의 동희에 대한 사랑에 설레어 오는가 보다.   

사랑의 작대기는 왜이리 엇갈리기만 하는지. 한편의 드라마 아니 영화를 보는 듯 엇갈린 작대기 속에 내 마음만 고동쳐댄다. "왜 받아주지 않니? 아프지마" 하면서. 들리지도 않을텐데 열심히 응원하고 애처로워 하고 마음아파한다. 헤어진 사람에게 쿨하지 못하고 술 먹고 힘들다고 전화하고 나 받아주면 안되냐고 잡는 동희의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이기적인 나쁜남자인 성재에게 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는지 동희가 내 앞에 있다면 바보라고 잔소리를 1시간쯤 해주고 싶어진다. 내가 그러했고 이 시간에도 누군가가 바보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것이므로.  

가벼운 송자씨, 무거운 금자씨, 몸만 좋은 진철, 이름만 전지현, 똥 동희 그러고 보니 다들 별명이 있는데 승민, 동욱, 성재만 별명이 없다. 이렇게 별명을 주어 적어 놓으니 내 머릿속에 어느새 이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잘 울고 퉁퉁부은 얼굴에 부엉이 안경을 낀 동희의 모습은 이쁘지 않아 더 정감이 가고 진짜 전지현이 아닌 이름만 전지현인 뚱뚱한 그녀가 나와서 책을 읽으면서 이웃집 사람같은 정다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닌 주변에 늘 볼 수 있는 사람같아서. 츄리닝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그들이라서 아마 연애사를 충분히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아량도 베풀고 싶어진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싶어 여행을 떠나도 동희의 독백처럼 과자 부스러기도 그대로 책상위에 놓여있을 테고 열심히 걸어다녀도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는 여행길이지만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연락을 끊은채 세상에 홀로 서고 싶다는 마음 누구나 한번쯤 할 것이다. 핸드폰이란 것이 나오고 인터넷이 성행하면서 어디서든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숨을 곳 찾기도 만만찮지만 동희가 떠나는 여행길에 나도 동참하여 거리에서 음악도 듣고 여유로운척 풍경화도 보면서 그렇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사랑이 힘들다고 상처받을까 저어하여 사랑을 시작하지 못한다면 내가 한층 성숙해질 수 있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을 놓칠 뿐이니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것저것 자로 재지 말고 온마음을 열어 진철과 지현처럼 그렇게 사랑했음 좋겠다.  

이미 반쪽을 만났다 해도 사랑의 크기는 무한정 커질 수 있으니까. 상대방의 마음에 내 자리가 넓혀지도록 그렇게 마음속 '나'를 키워가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면 "보고싶긴 한데 이게 사랑인지 모르겠어. 뭐하나 궁금하긴 한데 사랑인지 모르겠어. 목소리 듣고 싶긴 한데 열정적이지 않아서 사랑이 아닌것 같아"가 아닌 집착도 사랑임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나 힘들다. 다시 시작해"라고 슬프게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나의 마음이 식었다고 냉정하게 말하며 그건 집착이라고 말하지 말고 사랑임을 알고 조금은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난 그런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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