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걸 -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나카이 토시미 지음, 카타기리 모토코 그림, 고은진 옮김 / 해피니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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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정하면서 느끼는 건데 어려운 책 보다는 쉽게 읽혀지고 재밌는 책을 찾게 되는 듯 하다. 자기계발서들을 많이 읽게 되는 요즘 나와 꼭 닮은 해피걸(동그란 얼굴 뭉텅거리며 묶은 머리)이 나오는 책을 펼치자 난 벌써 행복에 감전된듯 유쾌한 그녀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20대, 여자는 행복해야 된다.!" 솔직히 이 문구가 마음에 걸린다. 이 문장으로 인해서 관심을 더 가지게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격지심인지 "난 30대인데 30대는 행복해지면 안되는거냐?"고 반발심에 책을 더 펼치게 되었던 것이다. 건드리면 안되는 책을 살짝 건드리게 되는 모험을 하는 것은 아닌지 소심한 성격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림을 먼저 보고 "~해야한다"는 지침서를 보게 되는데 이미 그림을 보면 말하는 요지들이 눈에 확~들어오게 된다. 피식거리며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어쩜 이렇게 묘사를 잘했지?' 하는 생각에 멀리 있는 주제가 아니어서 단계들을 뛰어넘어 하나의 습관으로 굳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늘 그렇지만 그때뿐이다. "다 옳은 말이야. 그래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해" 하면서 반짝 결심을 하고 주옥같은 문장들은 마음에 새겨보기도 하지만 책을 덮으며 스르르 무너지고야 마는 나의 결심들. 이것들을 독에 담으면 넘쳐흘러서 주워담기도 힘들 것이다. 거기다 밑빠진 독일 것이다. 무엇이든 마음에 담는 것이 중요한데 이젠 나이가 들어 머릿속에 담기도 힘이 드니 원....  

사실 반성을 많이 하며 읽은 책이다. 늘 불평불만만 해 온 나, 남의 행복에 배가 아팠던 나, 하나라도 자랑할게 있으면 말 하지 않고 못배기던 나, 잘못했을때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던 나, 칭찬에 인색했던 나, 내가 가진 모든것이 남들보다 떨어진다고 바꾸었으면 했던 나, 누군가가 날 챙겨주기 바라기만 한 나, 눈 맞추며 밝게 인사하지도 못하던 나, 상대방의 이름은 기억도 못하면서 내 이름 기억못한다고 기분 나빠하던 나, 남과 경쟁하는게 내 인생의 절체절명의 일인듯 양보라고는 눈꼽만큼도 안했던 나, 소원을 빌라고 하면 늘 이기적으로 내가 잘되기만 빌었던 나, 청소하는 것도 귀찮아 게으름을 피웠던 나, 내 인생의 최고의 선물은 시간임을 망각하며 살고 있는 나, 이렇듯 열거하기도 벅찬 '나'의 모습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얼마나 이기적인 모습인지 그래도 이런 나를 위해서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져 나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티비를 보면 광고에서도 타인을 도와주는데 몇초 하며 보여주는데 말 이쁘게 하고 타인을 도와주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그리 인색하게 살았던 것일까. 나에게 피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지구끝까지라도 쫓아가서 혼낼 생각을 하면 다행인데 속으로 끙~하면서 험한말만 하는 인생이라니 허비하는 시간이 참 아깝다. 

세상에서 태어나는 아기들 그 누구도 축복받지 않은 아기는 없을 것이다. 나도 세상에 태어나 엄마품에 안겼을때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시지 않았을까? 요즘에야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찍어놓기도 하고 육아일기를 써서 보여주거나 초음파 사진도 보여주곤 하지만 우리때야 그저 돌 사진 한장 있으면 감지덕지, 일하신다고 바쁘셔서 흔하게 같이 찍은 사진도 없지만 부모님에게 난 자랑스럽고 장한 딸일것이다. 그래서 난 행복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해피걸을 통해 잊었던 부모님의 기대와 꿈이 생각났다. 어깨를 짓누르는 기대말고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마음말이다. 이렇듯 잊고 있었던 행복을 깨우쳐주는 시간을 선사해준 해피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행복할 일도 없는 늘 똑같은 일상에 지쳐갈 때쯤 모든 것이 행복해야하고 감사해야 할 일임을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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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상처 받았니? - 말은 기술이 아니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개정판 … 상처 받았니? 시리즈 1
상생화용연구소 엮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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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하는 말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 법이야"라는 말을 정말 자주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을까? 성격이 소심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늘 고민하고 혹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괴로워하며 잠자기전 천정을 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나' 그렇기에 이 책은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표지를 보니 의자에 앉아있는 주눅든 아이가 꼭 나인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릴때는 그렇게 활발하던 내가 왜 이렇게 소심한 성격이 되어 버렸을까. 좋게 이야기 하면 배려를 많이 하는 것이고 안 좋게 이야기 하면 늘 어두운 구석을 좋아하는 드러내길 거부하는 성격. 버스에 앉아 있으면 앞에 붙여진 광고스티커를 보게 된다. "성격개조, 성격을 고쳐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가보고 싶은 생각을 가끔 했었다.  

책을 보며 항목을 체크해 나가니 내 말하기 습관은 부정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이지도 않은 아주 어중간한 상태에 있었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대답과 다른 그 때의 상황에 맞게 표현한 답을 보면서 아~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에 따라 심리상태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문제, 누가 지적해 주지 않던 문제가 여기에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럴땐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준 사람이 어디 있었나. 그저 시험에 나오는 밑줄 몇번을 그어가며 외우고 중요포인트만 머릿속에 주입시켰던 학창시절,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좋게 나오길 바라는 이것이 부모님이 그렇게나 바라던 나의 모습이었고 사람됨이라는 것은 그저 '착하다'는 한마디로 인성교육은 끝이었던 것이다.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어른에게 공손하고 아랫사람을 따뜻히 보살피며 내 할일을 미루지 않고 늘 겸손하고 바른 모습을 보여줘야만 '참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시대를 살면서 요즘의 개성드러내기나 나를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특별한 능력도 없는 것 같은데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고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언제까지나 내 성격탓만 하기에는 남아있는 세월이 너무 창창하지 않은가. 집, 직장, 친구들간의 공간에서 내 위치만 지키면 되던 내가 결혼을 하고 보니 맞닥드리는 문제가 시댁과의 관계였다. 70대인 시아버님의 며느리의 무조건적인 희생은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나도 부모님이 계신데 왜 시댁만 중요시 되고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이것을 당연히 생각하시는 아버님의 생각은 지금도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내 의견을 정확하게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을뿐이다. 이것이 내가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부부관계에 있어 다툼이 있을때 무조건 여자가 참아야 한다는 말을 친정엄마는 늘 하신다. 당신이 그렇게 살아왔고 아직은 딸 가진 죄인이라고 생각하시기에 무조건 시댁에 이쁨 받았음 하시고 사위와 딸이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런 말씀을 하시지만 참고 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기에 내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따지다 보면 큰 싸움이 되기 일쑤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오면서 일상은 엉망이 되니 그저 참는 도리밖에 없는것인지. 진정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저 내 할말만 하는 것이 대화가 아님을 주고 받는 말속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겼을때만이 '대화'라고 이름지을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배워간다. 

내 잣대로 바라만 보았던 세상이 내가 잘못 바라보아서 비틀려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다니. 하지만 지금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당장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신발을 잃어버린 애가 신발을 찾았을때 같이 찾아주기 위해 날아가버린 점심시간에 대한 억울한 마음을 뒤로한채 "다행이다, 신발을 찾아서"라고 듣기 좋게 말하는게 정답이 아니다. "신발을 또 잃어버리면 또 같이 찾자. 너도 내가 뭐 잃어버리면 같이 찾아 주면 되잖아"라며 함께 할 수 있었음에 아무런 사심이 들어가지 않은 말을 해 줄 수 있을때 한층 성숙한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다음에 같이 찾아줘야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 두 아이의 순수한 행동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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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표 이야기 -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정표.김순규 지음, 이유정 그림 / 파랑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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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고 싶어요"

정표가 마지막까지 참으며 하지 않은 말이 있다면 아마도 이 말이었을 것이다. 이 말을 내 뱉으면 희망이란 놈이 도망갈까 겁이 나서 불행이 나를 비켜가지 않을까 저어하여 내뱉지 못한 이 말을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을때 정표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살을 도려내는듯 가슴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 몸에서 낳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정표의 일기를 보면서 부모님의 절규를 보았고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게 된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진 한 아이의 소망을 보았다. 내가 쉽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감사해야 하는 것임을 나에게 가르쳐준 정표의 일기는 억지로 학교에서 시켜서 하는 일기가 아닌 영혼이 담긴 글들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종종 여주인공이 병에 걸리면 한번씩 등장하는 "백혈병", 애처로와 보이고 죽이지 말고 살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보았던 드라마들. 아름답게 포장된 주인공들과 달리 보이지 않은 곳에선 그저 드라마이길 바라며 병과 사투를 벌이며 이겨내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렸을때 나도 아프면 종종 엄마에게 짜증을 냈었다. "왜 낳았냐고, 오래 살기 싫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 지금은 그저 미안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내가 한 말들을 다 잊었길 바라며 "부모님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애써 자위하며 모른척 하는 중이다. 이런 내게 정표는 왜 그랬냐고 그러면 안된다고 가슴을 치며 이야기한다. 어째 난 13세 정표보다 이리 못나기만 한 것인지. 부모님의 기념일에 이벤트를 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생신때 직접 상을 차려드려야 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못했었고 하나하나 누리게 해 주시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 해 본적은 한번도 없으니 겉만 컸지 속은 아이보다 나은 구석은 찾아볼 수가 없다. 누구에게 충고듣는건 싫어하고 타인의 단점은 너무나 잘보는 이것이 잘난 것 하나 없는 나의 본모습일 것이다.  

주위에서 흔하게 걸리는 병을 보면 무슨 무슨 '암'이 많은 것 같다. 병상일기를 보니 엔젤 병동엔 왜그렇게 끊임없이 소아환아들이 오는지 어른들 보다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은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어진다. 몇년 자원봉사라는 것을 할 때 백혈병 소아환아들을 위해 봉사를 다니는 단체들과 함께 할 일이 몇번 있었는데 혈소판 헌혈을 하고 소아환아들을 위해 봉사하는 그들을 보며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 아이가 혈소판이 필요하다고 했을땐 아는 분(청각장애우)을 보내드렸으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움이 되질 못했었는데 우리나라의 법이 왜 그런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이었고 그 아이(미안한데 아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가 하늘나라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장이 썩어간다고 혈소판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집으로 정기적으로 "생명사랑"이라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서 오는 팸플릿이 있다. 자세히 읽지 않고 대충 보며 던져놓았던 나의 행동이 생각나 부끄러워진다. 살고 싶다는 아이의 소망과 꿈이 담긴 글들이었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했는지. 이젠 그 팸플릿을 볼때마다 정표가 생각날 것 같다. 무슨 무슨 약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왜그렇게 많은지. 골수를 기증 받았는데도 왜 정표와 나는 같은 하늘을 바라볼 수 없었는지 책을 읽는내내 끝으로 갈 수록 초조해졌다. 불행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빠르게 나를 덮쳐누르나 보다. 정표의 글뒤에 엄마의 글은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지금은 어찌 지내고 계시나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정표와 함께 있고픈 엄마의 마음이 담겨진 글이라 숙연해지는 마음으로 읽었다. 많은 이들이 정표이야기를 읽고 힘을 내 희망적인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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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블로그 - 익명의 변호사
제레미 블래치먼 지음, 황문주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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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 익명의 변호사

발신: 고소공포증있는여자

날짜: 3월 30일 오전 2시 40분

"지금 행복합니까?" 

익명의 변호사의 블로그를 엿보면서 나도 메일을 보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떤 내용을 보낼까 고심하다가 이렇게 써 보았다. 로펌에 일하는 매니저 외에는 인간취급도 안하는 사람에게 난 이렇게 묻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익명의 변호사에게 답변이 온다면 어떻게 왔을까. 아마도 "나에겐 돈이 많이 있습니다. 한끼 식사로 몇 천달러를 쓸 수도 있지요. 마트에서 손님이 주는 돈을 받거나 장사를 하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어요. 그런 나에게 행복하다고 묻는 겁니까? 미쳤군요"라는 답변을 들을 것 같다. 이런 답변을 받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최고의 자리를 탐하고 있지만 그에게서 풍겨오는 외로움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만 어디까지나 그도 인간임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을 감시하고 판단하는데 있어 오로지 개인적인 감정으로 비서의 사탕을 집어가는 사람에게 "내 비서고 내 사탕이야" 라고 비록 블로그에서 소리치지만 이런 모습은 꼭 어린아이 같아 오히려 이런 인간적인 모습에 '쿡'하고 웃음이 나게 된다. 솔직히 싸우다 보면 옛일까지 들춰지고 좀 유치하게 싸우지 않는가. 그래서 '익명'이라는 것은 속 마음까지도 표현할 수 있어 오히려 더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도박만 중독성을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도박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컴퓨터도 부팅을 하고 자리에 앉으면 몇시간을 훌쩍 넘기며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는 것이 힘들어지고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클릭 한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많아 대단히 유혹적인 공간임에 틀림이 없다. 익명의 변호사 역시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면 이렇게 블로그에 빠져들 수 있었을까. 보이지 않는 존재끼리의 대화는 짜릿한 느낌마저 들고 속내 풀어내며 로펌에 일한다는 대단한 자부심, 고용 변호사와 비서, 인턴들을 휘두를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가진자로서의 여유로움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름을 밝힐 수 없어 "쭉쭉빵빵", "벽장의 레즈비언", "가수지망생", "아부쟁이" 등으로 표현한 방식은 그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어떤 인물인지 상상할 수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살아가는 동안 내가 로펌에 일할 일은 없겠지만 나도 그곳에 등장한다면 그에게 난 어떤 별명으로 불리우게 될까 고민하다가 결정한 것이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자"다. 인라인 스케이트, 스키 등을 타지 못하는 나를 보면 아마 이런 별명으로 쓰고 있지 않을까.  

세상에 비밀이 어딨나. 이렇게 일기형식으로 풀어내다 보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많을텐데 "설마"하며 블로그를 드나드는 그는 단조로운 인생에서 약간의 스릴까지 맛볼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스릴이 독자에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늘 몰래카메라에 노출될까 두려워 하고 개인 정보가 유출됨은 물론 비밀보장에 익명성은 바랄 수도 없는 곳에 살면서 나를 완벽하게 숨겨줄 수 있는 공간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오히려 방문자가 늘어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블로그란 존재는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일기장 같은 곳이 아닐까. 어린애 같은 행동을 했다고 써도 누군가의 욕을 쓴다고 해도 '나'라는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므로 '익명' 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기에 오히려 나약하고 인간다운 모습에 오히려 정을 느끼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익명의 변호사가 별종이긴 하다. 이것은 본인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머저리'보다 방이 조금 크다는 걸 좋아하다니. 대체 이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 것일까? 만날 수 있으려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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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강남엄마
김소희 지음 / 상상하우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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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들어온 말들 중 "제 먹을 밥그릇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을 들어보적이 있는가? 아마 나이가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고 요즘 신세대라면 "그런 말이 어딨느냐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인생은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나의 밥그릇이란 것이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어서 인생이 빛나길 내심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시절을 보내고 어느정도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시절에 오니 내 밥그릇이란건 엄청 작기만 하고 내가 갖고 갈 수 있는 삶이란 것이 그리 향기롭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밥그릇"이란 말은 그저 지어낸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이가 크게 자랄 수 있게 탄탄한 길을 닦아주는 강남엄마들의 존재는 "이런 부모가 있다는 것은 참 복 많은 것이다"라는 자조와 함께 '왜 난 이런 부모를 만나지 못했을까, 난 그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아주 마음까지 심란해진다. 

'치맛바람, 바짓바람'에 대해 매스컴을 통해 듣게 되면 기분 좋게 듣고 있게 되지는 않는다. 자격지심인지 없는자의 푸념인지 모르겠으나 "돈 많으니 저럴수 있지"라며 고개를 외로 꼬며 보지 않게 된다. 물론 저자는 소위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돈이 많아서 그곳에 사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전셋집을 살아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질적으로 우수한 그 곳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식의 교육에 대해 아무리 심한 치맛바람을 펄럭인다고 해도 손가락질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한달 한달 살아가기도 빠듯한 우리에겐 700만원이라는 돈을 들여서 외국에 나간다는것은 너무나 요원한 일이기에 맘으로야 좋은 학원에 보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하루살이 인생 같은 우리의 "그냥엄마"의 삶이 너무 고달퍼서 그와 대조적인 "강남엄마"에 대한 나쁜 편견을 가지게 된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에게 뭘 못해줄까. 하지만 사정이 이렇기에 그저 한숨만 푹푹 쉬어댈 뿐이다.  

내 어릴적엔 부모님들은 돈 버느라 바빠 운동회는 커녕 학교에 오실 시간도 없었는데 학원 보낼 형편은 물론이고 어학연수는 꿈에도 꿀 수가 없었는데 어쩌면 내게도 이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목이 메인다. 나는 자식에게 이렇게 해 줄 수 있을까 생각만 해 보는 것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만큼 "강남엄마"를 닮고 싶어하기 때문이니까. 손가락질하고 지탄하지만 부러워서 욕심을 부려보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작용하니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더 서글퍼지지만 공부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고 싶기에 부족한 듯 살아도 모든 것을 가지고 살 수 없는 것을 알고 그래서 무엇이든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며 자랄 수 있는 그런 아이로 자랄 수 있게 해 주고 싶다. 세상이 너무 각박하여 내것만 아는 이기주의가 아닌 타인의 아픔에 슬퍼할 줄도 아는 아이 말이다.  

악기 하나 다루지 못한다고 해도 이 음악이 어떤 울림으로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고 영어학원이니 논술학원을 보내지 못한다고 해도 강남엄마 못지 않게 훌륭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없는 부모에겐 '한'이라는 것이 남겠지만 말이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를 키운다는 강남엄마이고 보면 이 말에 웃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아파하고 크지 못하는 아이들을 볼때 그저 몸 건강히 잘 자라주는 것이 내 아이에게 바라는 큰 소망이었음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가 태어났을때 바란 것이 무엇이었는가? "대통령이 되길 바랬나? 아님 외교관이 되길 바랬었나?" 아닐 것이다. 그저 "손가락 발가락이 다 있는지, 아이는 건강하냐?"고 물었을 것이다. 내 욕심에 아이를 둘러싼 울타리를 만들지 않았는지 자세히 바라보기 바란다. 아이가 많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고 하지만 너무나 많은 길을 보게 되면 정작 자신이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어릴때 가졌던 큰 꿈이 자라면서 조그맣게 변해 버리고 내가 원하지 않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는 일은 참 서글픈 일이지만 인생이 '강남엄마'가 바라는 삶만이 사람냄새 풍기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허리 한번 펼 시간이 없는 고된일을 하는 힘든 일상이지만 여기서도 기쁨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사'인것을 성공한 삶만이 인간적인 삶이라고 강요하는 삶은 지양해야할 것이다. 강남엄마가 아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그에 못지 않게 크고 넓을테니 말이다. '엄마'라는 단어를 아이가 떠올리게 되었을때 가슴서늘함이 아닌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최고의 엄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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