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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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술집은 어떤 분위기일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우리네 술집처럼 시끌벅적하고 사람냄새가 나겠지. 나도 술 보다는 술자리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즐긴다. 조금은 흐트러지고 힘들다고 이야기 해도 되는 곳이기에 어깨 탁탁 쳐주면서 "인생 다 그렇지"하며 나의 인생도 툴툴 털어지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외상은 어림없지"는 술집 이름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간판이 있다면 '재밌네'하며 한번쯤 들어가 봤을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의 술집.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장소의 특성상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책의 내용은 단골인 '깨진술잔'에게 주인인 '고집쟁이 달팽이'가 술집의 이야기를 써 달라고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나눠진 페이지마다 사람들의 노곤한 이야기, 인생이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다. 두꺼운 노트를 다 채운날 떠날 것이라고 말하는 '깨진 술잔',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몇 편 되지 않는데 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숨겨둔 것일까. 몇 페이지의 여백을 남겨두지 않았다고 분명 이야기 했으니 전해주지 않는 이야기에 궁금증만 커진다. 술집의 특성상 거친 표현들이 난무하고 술에 의해 풀어놓는 이야기는 "정말 진실일까?" 의구심이 들게 하지만 책 한권이상 된다는 인생이야기 하나 없는 이가 어디 있나. 그래서 타인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가 보다.

이 책에는 문학 작품을 인용한 말이 많이 등장한다. 잘 모르는 나로서는 약간 지루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는 설마, 정말? 놀라면서 읽게 되는 흡인력이 있다. 너무나 억울한 사연. 그러나 그것이 평생 족쇄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 이 일들이 나의 발목을 잡기에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속 시원할 듯 하여도 여전히 이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이다. '깨진술잔'의 나이는 인생을 어느 정도 겪은 나이이기에 한번쯤 타인의 삶을 기록해 보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되겠지.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뱉어내지도 못하면서 어찌 남의 생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인가.  

간간이 등장하는 그의 독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기록은 하지 않는다. '팸퍼스 기저귀 사나이'는 이것이 못내 불만이다. 자신의 사연을 적은 노트조차 빼앗고 싶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아내와 다시 로맨스를 시작하고 싶기에 그 기록이 세상에 알려지는게 싫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뱉어내고 싶지만 세상에 드러남과 동시에 치부같이 느껴져 삭제하고픈 강렬학 욕구 또한 느끼게 된다. 마음의 응어리 늘 쌓여가는 이것들을 풀 곳이라고는 '외상은 어림없지'였을 것이다.  

나도 이곳에 가면 뱉어낼 이야기를 술술 말할 수 있을까. 술 한잔 쯤 마신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절대 외상으로 술 마실 생각은 하면 안된다. 아마 문 나설때까지 엉덩이를 걷어 차일것이다. 몽페로는 돈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 이렇게 벌을 준다. "돈을 낼 것인가? 엉덩이를 걷어 차이겠는가" 하고 말이다. 여긴 실명이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익명성. 난 어떤 익명으로 기록을 남기게 되려나. 잠시 고민해 본다. 마침표가 없어 책을 읽는데 호흡조절이 많이 힘들었는데. 이것 또한 '고집쟁이 달팽이'에겐 불만사항이다. 대화에선 따옴표도 없고 마침표도 없다. 이래서 어찌 읽으라는 것인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이라고 하지만 크게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이라 잠깐의 아프리카 술집에 머무르고 가는 것에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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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무슨 영어야?! - 맨날맨날 틀리는 그 영어만 고치면 영어가 된다!
Chris Woo.Soo Kim 지음 / GenBook(젠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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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만 느껴지고 평생을 파고들어야 될 것 같은 사명감을 드높이게 되는 영어. 왜 영어를 쓰는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는지 조금 속상하기도 한 인생이다. 어학연수다 유학이다 뭐다 해서 비행기 타고 날아가는 사람들 보면 살짝 배가 아프기도 하고.(사촌이 땅 사도 배가 좀 아플것이다) 한국에선 한글만큼이나 영어를 볼 수 있다. 생활전반에 걸쳐 집안 곳곳에 꼬부랑 글자가 없는데가 없다. 그러니 무식한 티 안내려면 기본적인 영어는 필수코스~ 그러나 이것이 만만하지가 않다. 평소 대화는 한국어로 하고 따로 영어를 공부한다는게 외우고 책 덮자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데 이제는 땡큐, 쏘리 단어마저 쓰라고 하면 자신있게 쓰는데 무리가 올 정도이니 조금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토익, 토플 무지하게 해야하는 우리나라. 세계적인 수준이란다. 지금은 밥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아이를 가지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엄마 이것도 몰라?" 이 소리 한번에 소심한 나의 심장 빵~터지지 않을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편? "아빠 이것도 몰라?" 소리 같이 들어야 한다. 자녀 교육에 모든 권한을 일임하고자 하는 신랑. 나는 목소리를 높인다. "같이 해야한다"고. 그러나 돈 버는게 힘들고 고달프다고 변명을 하면 그래..다독이면서 "쉬세요" 하지 않겠나. 무식한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나도 갈고 닦아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야 함을 뼈져리게 느낀다. 언어에 능숙하지 않다고 자식이 부모를 무식하다고 생각하면 가정교육의 문제일수 있겠지만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작아지는 느낌에 절실히 조여오는 사건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막연히 생각하던 콩글리쉬를 제대로 아주 재밌게 표현하여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May I have your sign?" 혹 나처럼 사인 가져도 되냐고 생각한 사람 있는가? 그럼 다행한 일이다. 덜 부끄러우니까. 이 말은 간판을 가져도 되냐?는 표현이란다. 간판가져가는 모습 상상해 보기 바란다. 뭐 사무적으로 쓰일때야 이 문장이 쓰이기도 한다지만 연예인에게 쓰기에는 올바른 표현이 아닌 것이다. 이유도 모른채 웃음거리 되기 쉽상이다. 뭐 이정도야 싶은 사람? 그럼 또 다른 표현 하나 짚어주겠다. 만약 영어 선생님이 내일 수업에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하면 나? 돈 박박 긁어서 노프북 컴퓨터 사서 들고 간다. 이렇게 나 따라하는 사람, 같이 웃음거리 된다고. 말 그대로 공책이란다. 컴퓨터를 가리키는 경우엔 notebook computer라고 이야기 한다고 하니 이런 사태는 무식을 탈피하여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참 재밌다. 영어란 모름지기 재밌어야 파고들 의지가 생기는데 이 책은 나를 아주 흥미롭게 이끌어준다. 가끔 표현을 찾아서 보는 재미도 가져볼 수 있겠고.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외국인을 만난적은 두 번정도 생각이 난다. 학교 다닐때 이모 식당에 갔더니 외국인이 식사를 하시던데 나에게 분명..분명 나이를 물었다. 그런데 아차~미국식 나이로 생각하지 않고 한국나이를 이야기 한것. 아 지금도 소심한 성격에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긴 문장으로 멋드러지게 만들어도 되겠는데 완전 짧게 핵심만 이야기 했으니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때의 상황이 그랬다. 학교에서 아무리 영어를 배운다 해도 나의 실력은 그정도. 입은 얼어붙어 더듬더듬 가슴은 콩닥콩닥 그랬다. 나의 어머니는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고등학교 다니는 딸이라 내세우고 싶으셨을텐데. 또 한번은 호주로 신혼여행 갔을때 있었던 일이다. 나리타 공항에서 티켓을 끊는데 창가에 앉을 것인지 다른쪽에 앉을 것인지 못 알아들으니 집요하게 묻는데 나중에는 한숨을 푹 쉬면서 아주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 다행히 신랑이 뒤늦게 알아듣고 "window"라고 했다. 아~정말 망신스러운것 보다 일본인의 그 불친절한 행동에 따지고 들 언어실력이 안되어서 더 화가났었다. 그래서 그 때 "영어 공부 열심히 하자" 생각했는데 그 때만 반짝이었고 흐물흐물 뒷전으로 팽개쳐 두었으니 큰일이다. 의지부족이다. 국제적으로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사는게 헐렁해서야 험난한 세상 어찌 살아갈지 앞날이 안개속을 헤매인다. 

중학교까지 배운 영어 실력이면 회화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아직 말문이 열리지 않은 것이라고 하니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할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흥미를 유발하고 관심을 끌고 있으니 옆에 두고 자주 자주 열어 보아야할 책인 셈이다. 이렇게 꾸준히 한다면 내밀기 꺼려지는 영어에 대해 손을 뻗어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듯 하니 나처럼 영어를 포기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해 주고 싶다. 같이 해 보자. 영어 잘하는 사람 쳐다보면서 입만 크게 벌리고 넋빠진 사람처럼 바라보지 말고 말이다. 턱만 빠진다.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지금 동기유발 제대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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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 - 대통령과 언론, 그리고 나의 백악관 시절
애리 플라이셔 지음, 이승봉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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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이 재선이 되어 임기중인데 애리 플라이셔는 이 책을 왜 쓴 것일까? 검열을 거치고 나온 책이라 문제될 소지는 없겠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이 책이 지금 나온 이유를 모르겠다. 언론비서관이라는 일에 지쳤다고 해도 개인에게 무척 영광스러울수 있는 일인데 300회의 브리핑을 끝으로 왜 백악관을 떠나고 싶었을까.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일까? 내 일이 아닌데도 괜히 아까운 자리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감히 밟아 올라갈 수 없는 위치이기에 많이 부러운 모양이다.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들려주는 이 책의 내용은 정치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시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보게 되지만 부시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어쩌면 저자가 원하는 것이 이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잠깐 한다) 약소국의 자존심으로 괜히 비틀리는 생각들. 강대국이라는 자존심과 우월주의, 몇몇 나라를 휘어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속이 뒤틀리게 한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많은 것이 바뀐다. 강경대응 "이 빌딩을 무너뜨린 자들도 곧 우리의 말을 잘 듣게 될 것"이다는 유명한 연설을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911테러 때 전세계는 경악했을 것이다. 테러라니 어느 곳 하나 마음 편하게 있을 때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저렸다. 누가 어떤 마지막 말을 했다더라. 몇명이 희생되었다더라. 먼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하는 이야기였지만 그 희생자가 '나'가 아니란 법도 없었으니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이후 비행기 타는 것을 많이 꺼려하게 되었으니 '테러'의 공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서움을 안겨준다. 

강대국인 미국이 움직이면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다. 책의 내용도 주로 그런 내용을 다루었는데 911, 탄저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정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연이어 터진다. 그래서 여기에 대응하는 단호한 결단력을 발휘하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을 많이 담고 있다. 이라크 파병문제로 우리나라도 시끌시끌. 말들이 많았다. 

백악관 입성을 어린애마냥 들떠 좋아하는 애리 플라이셔는 대통령을 따라 해병 1호기나 공군 1호기에 탑승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여 그의 설레이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언론과의 생활은 그다지 순탄하지가 않다. 똑같은 질문을 계속 하고 엉뚱한 질문(아프가니스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냐?)으로 덫을 놓는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많이 버겁다. 늘 겸손하고 팀으로써 일을 해 나가는데 프로정신을 보이는 그도 가끔 기자의 의도대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본인의 잘못이므로 기자들의 전화를 받으며 양동이에 쓸어 넣는 일이 힘겹기만 하니 "나라를 위해 쏴야 할 총알을 내 발등에 쏜다"며 자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인간적인 모습. 백악관을 떠나지만 분명 이 일을 사랑하고 기자들과의 설전을 즐겼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 정말 최선을 다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건 중심으로 다뤄져 있었다면 긴박감과 흥미를 유발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 책은 그저 덤덤히 이야기 하듯이 나열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문맥의 흐름을 놓치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대변인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대통령의 이야기이기에 이 책에 완전히 빠져들기 보다는 냉철한 생각을 유지한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내 책상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30피트 정도 밖에 떨어져있지 않다"는 말을 보건대 그는 부시 대통령과 함께 일하게 됨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영광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로지 이건 저자의 생각일뿐이니 빠져들기 보다는 한발짝 떨어져서 보는 것이 좋겠다.  

언론비서관의 삶이 어떤지 살짝 들여다본 시간들. "매일 매일 얼마나 말을 많이 할 것인가. 얼마나 말을 하지 말 것인가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것"의 어려움이 있는 대변인의 백악관 생활의 낯선 곳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유익한 시간이었음을 밝혀둔다. "매트릭스"(대변인 경호상 코드)는 300회의 브리핑을 끝으로 백악관을 떠났다. 하지만 그 기억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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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
김영미.김홍길 지음 / 북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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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한국 선원들이 불행한 건 한국에 있어야 하는데 여기 소말리아에 있기 때문이야"

김영미 피디와 동행한 소말리아 현지인 D의 말이다. 내 조국인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나. 한국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왜 소말리아에 있게 되었을까. '제 628 동원호'가 2006년 4월 4일 해적들에게 나포되었다. 불과 1년전이지만 매스컴을 통해 나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떻하나.."하는 막연한 생각만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내 일이 아니라지만 이렇게 무심했었던가. 책을 보면서 같이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며 그 사람들의 아픔이 내 가슴에도 계속 머물렀다. 

이 사람들이 생과 사를 넘나들때 난 뭘 했었지? 결혼식을 준비하고 허니문의 달콤한 행복감에 빠져있었을 때다.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왜 나포되어야 했는지 이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을 사람들에게 나역시도 아픔 하나를 얹어주었으니 유구무언이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나포된 2006년 4월 4일부터 2006년 8월 9일 대한민국에 발을 내딛기까지 김홍길씨의 일기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117일간의 기록을 보여준다. 여자의 몸으로 위험한 지역인 소말리아까지 들어간 김영미 피디의 강단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들을 놔 두고 다시 나와야 할땐 가슴이 찢기는 아픔을, 가족을 두고 오는 듯 절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목소리가 될까봐 차마 전화 못했어요. 제 마지막 목소리가 여운이 될까봐 차마 전화를 못했어요"

가족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마음. 말끝마다 모두 죽인다며 총으로 위협하고 마약풀에 쩔어 사는 해적들이 얼마나 끔찍했을 것인가. 10살짜리도 총을 들고 구타를 일삼으니 정말 딱 죽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이하의 대접, "다음날 풀려나려나?" 다음날 하던 것이 117일까지 잡혀있을 것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다면 더 견디기 쉬웠을까. 오히려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목숨마저 보장 받지 못하는 곳에서 해적들을 죽일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적들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남성용 사각팬티를 입은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배안에 있는 것은 있는대로 다 끄집어 내왔구나" 라는 생각에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김영미 피디가 해적들이 있는 곳 "하라데레"에 도착해서의 상황이다. 보트를 타고 동원호에 가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는 김영미 피디를 보면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나 싶어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명감이라 하여도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닐텐데. PTSD(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앓는 나포된 사람들. 치료를 다 끝내지도 못하고 생존을 위해 다시 배를 타야만 하는 상황은 비록 몸은 고국에 돌아왔으나 여전히 소말리아에 머물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다. "잊어라"라는 말밖에 해 줄게 없어 가슴이 너무 아파온다. "잊어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흑인만 봐도 도망치게 되고 꿈에서조차 계속 되는 악몽은 여기가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리라. 그곳에서조차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적이 없었거늘 고국에 발을 딛고 있어도 여전히 소말리아에 있는 그들이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라는 절규.

그러나 가족들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디에서 울음한번 실컷 내 뱉을수가 있을까. 김홍길씨는 콩고로 떠났다고 한다. 선장의 "배를 좌초시켜라"라는 쪽지를 보고 견디기가 힘들었다는 그. 울면서 김영미 피디와 인터뷰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왜 오랫동안 아무 조처 없이 내버려두었을까" 그 해답을 얻지 못해 절규하는 듯 하여 차마 볼 수가 없다. 117일간의 악몽, 과연 그동안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궁금해진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사람들을 기억해 주는 것 이것 하나뿐이라 죄송한 마음만 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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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권현숙 지음 / 세계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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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책 제목만 보고선 '왜 도시로 올까, 죽기전에 좋은 경치 보고 싶어 시골로 가지 않고'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도시는 갑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내 '사람이 그리워 도시로 올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을 달리 하게 된다. 나도 그럴 것 같으니까. 죽는것도 서러운데 나 죽는길에 아무도 없다면 그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나의 죽음은 편안하기를 많은 이들이 가는길 지켜보기를 기대해본다. 아울러 죽는 모습이 추하지 않기를.  

'죽음'이라는 단어는 멀리하고 싶지만 시시각각 나를 맹렬히 쫓아오는 녀석이다. 살아있지만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나의 발걸음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일상적이다.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까 내 가까운 사람도 죽을 것이란 것을 알면서 애써 부정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 가까이에 죽음이 다가오면 대비하지 못한 충격으로 마음을 추스릴수가 없어진다. 그래 '죽음'이란 아무리 연습하고 마음에 준비를 해 두어도 막상 닥치면 나를 끝간데 없는 곳으로 추락시킨다. 실감나지 않기에 그냥 어디론가 여행갔다고 생각해도 믿어버릴 것 같은 이 낯선세계는 책 속에서는 손만 뻗으면 잡힐 듯 너무 가까이에 있다. 

날카로운 칼에 손이 베인 듯 6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죽음'이라는 소재가 등장함으로 가슴졸이고 아파하며 읽게 된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가 뒤죽박죽 섞여 주의깊게 읽지 않으면 문맥의 흐름을 당장 놓치고 말게 되어 한자 한자 뚫어지게 쳐다보며 읽었다. 글들이 너무 솔직하다. 죽어가는 육체를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여자에게 욕망을 느끼고 세상을 겪어 본 사람의 땀내나는 경험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읊조리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진다. 그래서 역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순수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인생은 그런것"일테니까. 자조하게 된다.

'죽음'과 함께 존재하는 '사랑'은 삶의 이유가 될테지. "세미노마"에 걸린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아니 남성 성기에 생기는 지독한 암을 가진 남자가 사랑을 한다. 죽지 않기 위해선 수술을 해야한다. "도대체 사랑이 거세된 인간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뭐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수술을 하든 하지 않든 이 남자에게 사랑은 거세 되었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의 앞에 나타난 여자는 과연 구원의 의미일까. 흔해빠진 사랑이야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 사랑에 마음이 아프다. 왜 꼭 인생은 이렇게 뒤죽박죽인 것일까.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을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던져준다. 늦게야 찾아오는 구원. 서로가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내용들중 유일하게 한곳을 같이 바라보는 남녀의 이야기에 가슴 한 구석이 저려온다. 실제 찾아오지 않은 '죽음'이지만 남자의 삶이 '죽음'과 같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왜 인간은 죽기 위애 도시로 오는가" 저자의 의중은 제쳐두고 나만의 감상에 빠져들 뿐이다.  

솔직히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도 그 해답을 모르겠다. 각 글마다 죽음은 자리하고 다른 죽음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느것하나 명쾌하게 '이것이다'라고 정의 내려진 글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슴속에 남아있는 울림은 무엇이란 말인가. 떨쳐내지 못하는 이 존재는 무엇일까. 나에게 둘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이 삶의 자국들을 오롯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는 이 힘을 나는 '인생'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잔잔하게 흐르는 글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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