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 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
백낙청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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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변혁과 사회통합으로 중도주의를 실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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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 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
백낙청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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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2025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87 체제, 제 6공화국의 헌법에 맞춰져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이 발생하였고, 수많은 대학생 광ㅈ부시미의 죽음을 불러일으켰다.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29일까지, 대한민국은 박종철군의 고문 치사사건으로 인해서, 들썩거렸었다.



백낙청 교수는 6월항쟁 직후 새로워진 시대에 부응할 새로운 노선을 정리하는데 힘써왔다. 그 때 당시 세개의 노선 '부르주아민주주의(BD)','민족해방(NL)','민중민주주의(PD)'계열이 현존하였다. 그들의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서, 와해되었다가 통합되고 있으며, 여전히 대한민국은 그들이 남긴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극심한 사회 갈등과 이념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낙청 교수는 새술은 새 부대에,즉 변혁과 중도주의로서, 새로운 100년 대걔, 새 대를 열어야 한다고 보았다. 결국 한반도의 변혁과 중도주의의 확장이 선행되어야 대한민국에 변화가 찾아오고, 새 시대를 열수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미중 갈등 안에서,샌드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보건데,. '창조적인 3결합'이 이루어진 변혁적 중도주의가 해법이 될 수 있음을 놓치지 않고 있다. 국내의 대부분의 현안들이 이분법적 논리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단순논리에 따라서,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오판을 낳을 수 있으며,어리석은 판단으로 귀결된다. 대한민국이 마주하고 있는 분단체제 극복보다 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국민통합과 사회 통합에 있다. 서로가 헤게모니 싸움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권력을 쥐게 되면, 마월폐견식 논리에 따라서, 세상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려 한다.결국 여당이 야당이 되고,야당이  집권 여당이 되어도, 여전히 사회 갈등과 사회적 반목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손꼽는 이유다. 이제는 남북 대결과 국내의 이념대결에서 벗어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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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 최현숙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
최현숙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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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인 나는 실제로 바쁜 엄마의 구멍난 집안 살림을 대강이라도 채워줘야 하는 사이었다.놀기도 좋아하고 공부도 재미있어하며, 저녁이면 엄마의 '일수놀이'수금을 대신하면서 돌아다니느라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바빴다.



절약에 관해서라면 엄마의 영향이 막강하다. 그럭저럭 살 만했다는 내 느낌과 달리, 돈 안 버는 남편과놔 다섯 자식을 둔 엄마의 가계에 대한 느낌은 전혀 달랐다. (-24-)



이혼 후 재혼한 신자, 동거커플, 혼배성사 없는 결혼, 동성애 등이 이번 시노드의 주요 의제였다고 한다. 서로 간에 합의하고 타인들이나 사회에 합리적인, 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해 단죄하고 낙인하면서 그 남성 노인들의 교회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천주교의 내일은 얼마나 오래 걸려야 올까? (-63-)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풀어낼 것이 만거나 풀어내고 싶은 욕망이 클 수 있다.남부끄럽고 ,기가 막히고, 풀어냈다간 주변이 한바탕 난리가 날까봐 겁나고, 그래서 더더욱 자기 안에서 정리가 안 된 사연과 감정들이 뒤죽박죽 엉켜 있다. 구구절절한 사연과 맥락 속에는 한과 미움과 분노와 억울함과 응어리와 수치심과 자책감이 징그럽게 얽혀 있지만, 그 틈틈이에는 애틋함과 당당함과 미안함과 용서 또한 이미 있다. 한 치 앞을 모른 채 사건과 사고에 휘둘려야 했지만,지나놓고 보면 새옹지마구나 싶기도 하다. 한 바탕 부글거리더니만, 풀어놓고 나니 남의 이야기 같단다. (-107-)



실버타운이든 요양원이든 장애인이든, 노인이든 , 시설은 엄마 말대로라면 감목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효율 없는 존재들을 시설로 밀어넣을 수밖에 없고, 다음 차례로 자신들이 밀려들어갈 것이다. 모든 노인이 집과 동네에서 죽고 싶지만, 모든 자식들은 노인을 집과 동네에 줄 수 없다. 노인을 비효율이자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이 아수라장에 ,모두가 가해와 피해로 연루된다. (-154-)



세리머니용 복장과 장식과 표정과 언어들.차이와 이질과 갈등에 대한 직시를 비껴가자며 합의한 잔치와 수서들이 늘 불편하다. 그러니 두 아들 모두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게 된 것이, 순전히 개인적으로는ㄴ 간편하다. 물론 우울이 없을 수 없지만, 우울에 장식보다는 우울의 이유나 내용을 묻는다.그 답은'자식 결혼식에 가지 않은 여자'에 대한 타인의 시선, 사회적 낙인 때문이기에 우울은 곧 털어진다. 또 하나의 모성 이데올로기다. 그럼에도 지난 새벽에 혼자 눈물을 흘리며 감성적이 된 이유는 무어실까? 큰 아들과의 관계 단절로 인한 남은 눈물이다. 그래,아직 눈물과 감성이 남아 있구나.나쁘지 않다.이번 작은 아들의 결혼 과정에서 큰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 (-193-)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요양보호사,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일를 하고 있는 작가 최현숙이다. 이 책은 구술생애사를 쓰게 된 이유,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야 했던 이유, 두 아들이 있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들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다.



그녀는 25년 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고 있다. 모성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하여, 오롯이 여성 단독자로 살아간다. 남들의 시선에 의존하지 않은 삶, 자신의 삶에 대해서,책임지며 살아오고 있는 자유를 추구하는  삶 그 자체다.



그녀는 민주 노동당 여성위원장이며,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이라고 한다.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스스로 선택하였고, 1957년생으로서,자신의 삶에 대해서,후회하지 않는다. 사회가 만든 규범과 사회적 틀 안에서,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스스로 선택하였던 이유는,자신에게 당당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만든 굴레와 족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그 마음 언저리에는 세상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감출 수 없었기 때분이다. 사람에 대해서,미워하는 것도,사원망했던 순간들도, 사회가 개혁하지 않았고, 틀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 25년간 함께 살았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접고,경제적인 면으로 보거나, 육체적인 면,정신적인 면,성적 이데올로기에서, 스스로 단독자로서, 홀로 서기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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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15소녀 표류기 2
최현숙 지음 / 이매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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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주인공은 출신 , 배경, 생애 이력 ,노동의 경험이 다르다. 2014년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고, 간병과 요양과 유통 등 최저 임금 언저리의 시급 노동자로 살고 있다. 나머지 네 사람은 모두 요양보호사협회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2~4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다. (-9-)



지난 4월 17일,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이 600일을 넘겼지만 53세의 중증 자애인 송국현은 결국 불 속에서 죽었다. 언어 장애로 화재 신고를 할 수 없었고, 지체 장애로 방을 기어 나올 수 없었다. 장애 3등급에게는 활동 보조 서비스가 없다. 자고 나면 송전탑에 떠밀려 밀양의 할매 할배들은 조상의 터전과 평생의 보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다. (-10-)




그렇게 머리채를 잡힌 채로 질질 끌려서 그 집에 가보니, 단칸방에 사과 궤짝에다 그릇들을 엎어놓고 가는데, 아들까지 둘이나 있는 거야. 큰애도 아직 초등학교를 안 들어갈 나이였어. 자기네 사는 꼬라지랑 애들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나를 끌고 간 거지."니 년에 머에 홀려서 남의 서방이랑 붙어 먹고 지랄를 하는가 모르지만, 니 눈으로 똑똑히 봐라, 이 썅년아,씨팔년야! " 그러구 시작을 하는 거야. (-54-)



나중에 안 영감 장모가 돌아가셨는데,그 초상집에 우리 큰오빠가 문상을 왔어. 혹시라도 제대로 본부인하고 이혼을 하게 되고 여동생을 결혼이라도 시키게 될지 모르니까.일단 잘해놓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겠지. 본부인도 아무 말 없이 인사를 주고받더라도,특이한 관계지만 별다른 시비는 없었어. 그러다가 안 씨 남동생이 일찍 죽은 거지,쉰아홉에 자식들 시집 장가도 못 보내고 일찍 간거야.(-101-)



어무이 손님 중에 신문기자 하나가 죽을 병이 걸려서는 온갖 비싼 약을 다해도 못 낫다가는 울 어머니 병굿을 받고는 싹 나슨 거여. 그르니 그 기자가 우리 어무이를 신문에 낸다고 혔는디 우리 아부지가 그걸 못허게 혔어.어디 세상에 방 낼 일이 있느냐 그거제, 나중엔 결국 신을 누르고 이를 안혔어. 그르니 집안이 풍파가 많이 나는 거고 재산도 줄고 그런거여. 아부지한티는 안 한다고 하고는 아부지 몰래 나가기도 허고 그렸어. 아부지가 장사를 주로 다니니께 틈이 많은 거제. (-147-)



그러다가 서방이 또 사우디를 갔어. 이젠 정신을 차린다고 간 거제. 근디 그때면 이미 나는 시기가 많이 있었던 거여. 아그들을 핵교 보내놓고 아파트 방문 창문 다 잠그고 전축을 크게 틀어놓구는 , 팬티만 입은 채로 미친 사람같이 뛰고 난리를 쳤어. (-194-)



서울예전 성악과에 국악부와 서양악부가 있는데, 나는 성악과 국악부에 판소리를 전공했어. 공부엔 별 관심 없어서 성적도 좋지 않았어. 그 학교는 특히 여자애들은 실력이 안 되서 돈으로 들어오는 애들이 많았어. 보결인 거지,.지금 말하면 촌지를 상납하는 거야. 그런 걸 엄마가 다 알아보고 돈도 마련하고 한 거야. 아뻐는 내가 보결로 들어간 걸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몰랐을거야. (-259-)



구식정미소였는데, 내가 말해서 현대식으로 싹 개조를 했어.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반대를 하더니, 비용을 내가 낸다고 하니 물러서더라구. 결혼 전에 벌어놓은 돈을 따로 좀 갖고 있었거든., 싹 개조를 하고는 그 일대 농가들 벼니 뭐니 일거리들을 내가 직접 섭외하고 영업을 뛰어서, 아우리가 맡게 됐어. 근방 구개면, 공근면, 서원면 곡식들을 다 우리 소멸한 거지. 정미소 개조한 덕에 돈을 많이 벌었어, 그런데 그렇게 번 돈이 모두 시어머니한테 들어가는 거야. 들어간 내 돈은 아무도 얘기를 않하고. 그런데다가 한 3년 정도 해보니 정미소가 사양길이라는 판단이 들기 시작하더라구. (-281-)




편 사업 힘들어지면서 내 우울 증세가 시작됐지만, 그때는 병은 아니었어. 결정적으로 병이 되고 아예 쓰러져버린 건 남편이그동안 부동산을 담보로 시댁 빚보증을 서준 거를 뒤늦게 알게 된 때였어. 그게 1998년이야.만으루 서른아홉 되는 해 4월이었어.아홉수가 그렇게 무섭더라구. 우리 식구 사는 것두 벌써 힘들던 땐데.나 뫠 빚보증 선 게 차압이 들어오구 난리가 나면서야 내가 알게 된 거야.어떤 거는 보증 서서 준지가 9년이 됐더라구. (-302-)



책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은 세 사람 장기태, 이기순, 이윤숙 의 여성의 생애를 구술을 통해서, 인생을 녹아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각자, 삶에 대해서, 세 편의 이야기,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 장기태

“사람은 겉을 봐도 신은 마음을 보는 거여” · 이기순

“도대체 내가 멀 잘못했냐구!” · 이윤숙



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기억하고, 기록해 나갔다. 지금과 달랐던 시스템, 주먹구구식이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데 급급했다. 경쟁이 지금보다 치열하지 않았고, 배움에 있어서, 불평등이 존재하였던 그 때 당시, 여걸이라는 표현,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지금 우리 시대에,집에서, 직접 자기 손으로 아이를 받고, 탯줄을 직접 자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과거의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있는 집안도 쫄땅망하기 쉬운 세상이었다. 모으기는 힘들어도, 빚보증이다,뭐다 하면서, 밑바닥에 물 붓기나 다름 없는 삶을 살았다. 투자한 돈으로 얻은 재산이 내 몫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강조하는 삼강오륜은 지금의 정서로 보자면, 있는 자들의 행패이자., 독재나 다름없었다. 며느리가 투자한 정미소에 대해서, 시어머니가 번 돈을 가져간다는 것은 그 시절에는 가능했다.



억울해도 따라야 했던 그 시절이다. 촌지가 먹혀들었던 그 시절, 빚보증을 서왔지만, 까마득하게 모르고 살았던 그 때 당시였다. 믿었던 가까운 사람에게 , 돈 문제로 시시비비가 많았고,그것이 서로 친인척이 등지게 되고, 원수가 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죽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았다. 그 때에 비해서 편하게 살아오고 있건만 ,우리는 여전히 상대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서로에 대해서,아픔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살아간다는 것, 아프다는 것, 슬픔과 우울,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감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삶의 굴레다. 구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그 안에서,우리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 1940년대~1950년대에 살았던 그들의 살은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겨우 가난을 벗으려고 헤매다가 견디며 살아온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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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심장, 유럽을 걷다 - 다섯 나라로 떠나는 클래식 입문 여행
이인현 지음 / 북오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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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의 본질, 독일,오스트리아 음악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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