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폐쇄 - TBS와 뉴스공장을 위한 변명
송지연 지음 / 새빛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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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왜 사람들은 아침마다 그 프로그래을 들었을까?

왜 하나같이 방송이 그렇게도 많은 시민에게 일상이 되었나?

그리고, 왜 그 목소리는 공영방송에서 사라져야만 했을까?

이 질문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한국 언론 구조에 던진, 가장 본질적이고도 뼈아픈 질문으로 남았다. (-39-)



"교통방송이 정치방송을 한다."

"시민혈세를 낭비할 수 없다."

"조례 폐지는 시민의 명령이다."

TBS를 없애는 데 내세운 논리는 이 세 문장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안제, 누구에게 물었는가?

"정말 TBS를 없애도 괜찮은가?"

"이 방송이 그렇게 불편한가?" (-74-)



2023년 11월 27일 .TBS가 민영화를 공식화 한다는 기사가 발표됐다.'민영화'라는 단어가 TBS 내부에 나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123-)



질문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전략은 교묘했다. 그는 '공영방송','세금','고액개런티' 라는 단어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TBS의 존재 자체를 비도덕적이고 비효율적인 구조로 환원시키고 있었다. 이 프레임의 핵심은 하나였다.

"시민의 세금이 김어준 개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즉,TBS는 공영도, 언론도 아닌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이미지, 이 정치적 언어의 교묘함은 실제 예산 구조나 방송 시장의 논리와는 완전히 무관한 매우 감정적인 정치기술이다. (-170-)



송지연 작가는 방송작가이자, 전구언론노동조합 TBS지부장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방송작가로 TBS에 입사하였고, 18년 동안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활동하였으며, <TV민생연구소>,<더룸>,<김어준의 뉴스공장> 등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2022년 11월,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편파방송이 문제가 되어서, 서울시의회는 TBS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조례를 폐지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문제는 김어준을 좋아하는 이들을 분개하게 했으며, 뉴스공장 관계자들 또한 분노하였다. 30여년 동안 이어진 TBS가 김어준이 방송한다는 이유로,조례를 통과시켜서, TBS 지원을 끊어버리는 조례를 통과하였고, 뉴스공장을 사랑하는 이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자는 소리까지 나왔다.



책 『tbs와 뉴스공장을 위한 변명-공장폐쇄』에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왜 어려운 경영을 하였고, 최악의 상황에 놓여졌으며, 그 과정에서 있었던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폐지되었고, 이제  유튜브 <겸손은 힘들다> 로 꾸려지고 있다.



나는 뉴스공장 을 보지 않는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부터 ,김어준에 대한 호불호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지인들이 뉴스공장을 아침마다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대법원 판결까지 간 이 사건은 결국 뉴스공장이 폐지되는 것으로 끝났다. 



서울시의 언론 탄압의 대표적인 경우이며,그 안에 숨겨진 비화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방송작가로서, 그 당시의 현장 상황을 적어 놓고 있었다. 김어준이 해마다 받아가는 고액 개런티 20여억이 서울시 시민의 세금으로 나간다는 것이 문제가 있고,그 방송이 공영방송으로서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말하고 있다.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시장으로 당선되고, 서울시의회가 국민의 힘당에 의해 다수가 가져간 상황에서, 뉴스공장은 폐지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특히 뉴스 공장을 시청하는 대부분의 이들이 세월호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김어준 언론을 좋아하는 층으로 되어 있었고,보이지 않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치적인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이 사건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은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서, 그 당시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을 정리하는 기분이었고,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준 김어준의 모습이 이제 변질되어 왔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뉴스공장의 청취율, 시민만족도 조사, 수상실적이 있었음에도,그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고,  폐지 이후 언론은 조용한 상황이며, 김어준의 고액 개런티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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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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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더 많으면 상황이 나아질까?아니면 더 나빠질까? 우리는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수많은 기업과 정부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보 기술은 Ai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의 투자가 마크 앤드리슨과 같은 몇몇 선도적인 기업가들은 Ai 가 마침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 (-18-)



순진한 정보관의 믿음과 달리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정복한 이유는 정보를 현실의 정확한 지도로 바꾸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정보를 활용하여 많은 개인을 연결하는 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능력은 거짓, 오류, 환상을 믿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57-)



문서와 기록 보관소 덕분에 중앙에서 세금을 부과하고,재판하고, 징집하는 것이 더 쉬워진 면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관료 권력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워지면서 대중의 입장에서는 정부에 영향을 미치거나 저항하거나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관료제가 사람들에게 하수도, 교육, 안전을 제공하는 선의의 힘이었을 대도 여전히 관료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격차를 넓히는 경향이 있었다. 관료제 덕분에 중앙정부는 국민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고 기록할 수 있었지만, 국민은 시스템 자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110-)



다시 말해 ,과학혁명은 무지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책의 종교들은 자신들이 오류 없는 지식의 원천에 접근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기독교인에게는 그것이 성경이었고, 무슬림에게는 쿠란이었고, 힌두교도에게는 베다였으며, 불교도에게는 티파타카였다. (-170-)



카리칼라는 게타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릴 때도, 파르티아 제국에 전쟁을 선포할 때도, 로마시민권을 수백만 명의 브리튼인, 그리스인, 아랍인들에게로 확대할 때도 로마 시민들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로마의 자정 장치들은 이미 무력화 된지 오래였다. 카리칼라가 외교나 국내 정책에서 오류를 범해도, 원로원이나 공직자들은 반란을 일으키거나 황제를 암살한다면 모를까 달리 바로잡을 방법이 없었다. (-217-)



소련의 집단화 역사는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왜냐하면 그것은 유럽의 마녀사냥 광풍처럼 인류 역사에서 앞서 일어난 재앙들과 닮은 점이 있는 비극인 동시에, 데이터의 '과학'을 맹신하는 21세기 기술이 어떤 위험을 야기할지 예고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251-)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컴퓨터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 만흔 사람들이 컴퓨터는 오직 숫자 계산에만 능숙할 것이라고 믿었다. 컴퓨터가 언젠가 복잡한 언어와 법, 화폐 같은 언어의 산물까지 능수능란하게 다루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과학영화에서나 통했다. 하지만 2020년대 초에 이르러 컴퓨터는 텍스트 뿐만 아니라 음성,이미지, 코드 등 다양한 형태의 언어를 분석하고 조작하고 생성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303-)



컴퓨터는 특정한 안구 운동 패턴을 토대로 집중하는 순간과 주의가 산만한 순간을 구분하고, 세부에 집중하는 사람과 맥락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우리 눈동자를 통해 우리가 새로운 경험에 얼마나 열려 있는지와 같은 성격 특징들을 추론하고, 독서부터 수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 수준을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잘 훈련된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시선 패턴을 보여주는 반면 초보자의 눈동자는 목적 없이 배회한다. (-345-)



유기체가 아닌 컴퓨터는 죽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한 죽음은 유기적 현상이며 비유기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고대 아시리아인들이 문서를 '죽인다' 고 말햇을 때 그것은 은유에 불과했다.하지만 컴퓨터가 유기체보다 문서에 더 가까운 존재이고 그래서 '죽임을 당하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면, 칸트주의자 컴퓨터는 인간을 죽여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까? (-401-)



사회가 점점 더 많은 결정을 컴퓨터에 맡길수록 민주주의의 자정기능, 투명성, 책임성이 약화된다. 선출직 공무원이 자신이 이해할 수도 없는 알고리즘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는가?이에 따라 '설명을 요구할 권리'라는 새로운 인권을 성문화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466-)



16세기에 스페인, 포르투갈,네덜란드의 정복자들이 역사상 최초의 세계 제국을 건설할 때는 범선과 말,화약 무기(총과 대포)로 원주민을 제압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영국, 러시아, 일본이 패권 경쟁을 할 때는 증기선, 기관차, 기관총 같은 산업 기술에 의존했다. (-517-)



엎마전 안동 모 고등학교에서,기간제 교사에 의해 시험지 유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인터넷이 발달하고, Ai가 등장하고, 정보통신망이 깔려있는 지금에도, 구시대에나 통했던 일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학부모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하교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태임, 법적인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유발하라리가 쓴 『넥서스』는 ai가 우리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인간이 해오던 일을 대신하는 지금 현재의 모습에 대해서, 우리가 고대부터 지금까지 지식과 지혜를 어떻게 모으고 다루어 왔는지 짚어 나간다. 우리 사회 곳곳에 기술의 진보로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유발하라리는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호모사피엔스의 지혜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서, 서술하고 있었으며,정보 네트워크 시스템에서 그 원인응 찾고 있다.특히 지식의 궁극적인 목적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만들기 위함이다. 질서와 관련해서, 종교가 만들어졌고, 문화가 만들어졌으며, 과학기술이 발달했으며, 표준화가 진행되었으며,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다. 



민주주의는 고대 로마에서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고대에 소규모의 지역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거쳐온 경과, 역사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세계는 민주주의 국가들보다,왕정, 독재국가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고대의 세계의 역사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오스만제국, 페르시아 제국이 여기에 해당된다.



21세기도 마찬가지다.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은 기술과 과학이 발달한 나라들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높이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기준에 대해서,유발하하리는 세로운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정의하고 있다. 정보통신이 발달한 나라가 민주주의가 발달할 수 있으며,중국과 같은 폐쇄적인 나라들은 민주주의가 발달하기 힘든 나라로 손꼽힌다. 중국은 인테넷이 발달하였지만, 전체주의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중세시대에 마녀 사냥이 흥했던 이유다. 마녀사냥은 보편적으로 독재,왕정국가에서나 일어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또 다른 국가의 형태는 전체주의 국가다. 중국과 북한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과학적 진보로 인해 인간의 살 하나하나를 통제,관리, 감시할 수 있다.인공지능과 로봇, 센서로 ,인간의 행동이나 소지품을 검사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의 1984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인간이 해오던 결정과 역할을 인공지능,AI가 대신함으로서, 책임에 대한 부재, 투명성, 자정작용이 사라지게 되면서,기존의 민주주의 체제는 약해진다고 보고 있다.기술의 진보,Ai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또다른 모순과 역설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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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 -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
제임스 홀리스 지음, 정명진 옮김, 김지용 감수 / 21세기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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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홀리스는 이러한 궁극적인 자기 수용에 이르는 길이 매우 어렵지만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가장 확실한 응원자이자 후원자가 될 수 있을 때, 우리는 융 Carl Jung 이 말하는 개성화 Individuation 의 길 위에 굳건히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개성화는 개인을 개인적 순응에서 벗어나게 하고, 따라서 집단성에서 벗어나게 하나. 그것이 개인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죄의식이며, 그가 속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죄의식이다. 그는 자신을 대신할 때속물을 제공해야 한다. 즉 그는 집단적 영역에서 자신의 부재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동등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35-)



권력 콤플렉스는 우리 모두에게서 찾을 수 있다.이는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혀가면서까지 높은 곳을 추구하라고 강요할 것이다. 또한 권력 콤플렉스는 그 사람이 오래된 결핍을 복원시킬 조건을 재구성하도록 이끌 수도 있다. (-93-)



나르시시스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내적 빈곤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무척 노력한다. 그들은 자랑하고, 자신의 평판을 부풀리고, 으스대며 다른 사람을 얕잡아본다.아니면 , 약간의 무시와 비판에도 무너져내리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데 대해 죄의식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모든 행동은 우리가 핵심적 진실 즉 그들의 자아감이 공허함에 기반하고 있으며 초기 아동기의 무관심한 방치나 불충분한 미러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설계된것이다. (-94-)



믿기 어렵겠지만 학대당한 아이는 나중에 자신도 모르게 학대하는 파트너를 찾거나 아니면 전혀 활기가 없어 쉽게 통제되는 사람을 찾을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하든 그것은 아동기에 '소화되지 않은 사건'에 의해 결정된다. 혹은 자애가 있는 부모에게서 자란 사람은 다른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끌리며, 돌봄과 조력이라는 익숙한 역할을 재현할 것이다. (-164-)



무론 사람들은 자신이 진지하게 경험을 통해 검증한 것이라면 문엇이든 확언할 권리를 누린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불안과 모호한 모순을 누르려는 일종의 정신병이다. 인격 구조가 성숙할수록 , 개인이나 문화가 불안이나 모호함, 모순을 인내하는 능력 또한 더욱 커진다. 어찌보면 이 불안이나 모호함,모순은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246-)



대신 우리의늬 공통적인 조건에서 위안을 찾으려 하던 노력은 비타민이나 운동, 성형수술, 낙천적 사고방식, 옳은 행동 등을 통해 삶을 연장하고 ,노화를 피하고, 미래의 어느 날엔 아마 복제를 통해서 죽음 자체를 물리칠 수 있다는 환상 쪽으로 옮겨갔다. (-304-)




세번째 꿈에서 우리는 변화의 요소를 발견한다. 새롭고 창의적인 표현의 경계에 있는 음악이 등장할 대, 역사의 잔해들은 생동감을 얻고 영혼의 생명력을 얻는다. 의식적으로, 꿈을 꾼 사람은 음악이 그에게 지니는 본질적 가치와 음악이 그에게 의미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352-)



사람은 더불어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면서 ,사회를 만들고,서로 협력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이 모여 살면서,과학이 발달하고,공동체가 커지면서,도시가 발달하였다. 수백만 명이 한 곳에 모여살아갈 수 잇는 상황이 되었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으면,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난다. 나와 타인의 가정환경이 다름에서, 열등감이나 컴플렉스가 사람들 살이에 표출되어 버린다. 자신을 파괴하거나, 타인의 분노를 부채질한다.

동물과 달리 인간의 삶에는 규칙이 있고, 법이 있으며,도덕적인 원칙이 있다.하지만, 그 틈새는 항상  기만과 교만이 존재한다.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스스로 자괴감과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나르시시스트 들은 그런 사람들을 이용하며, 자신의 목적과 욕망을 채우려 한다. 한 사람은 점점 더 고통스러운 순간에 직면하고, 지옥같은 나날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반대로 나르시시스트, 리플리증후군은 그런 삶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이 책에서, 개성화란 나르시시스트들에게 힘들어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주하는 심리적 치료와 연결되는 용어로서, 자신의 삶을 보호하고, 자기 수용으로 나아가는 것, 성숙한 자아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시켜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나에게 이로움이 될 수 있다. 스스로 극복하고, 나를 아끼며 자기를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을 때, 스스로 자기 극복이 가능하며, 성숙한 자아를 만들 수 있다. 이유없는 죄책감과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간다면,자기 스스로 파괴하려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잇고,자기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며,혼자 있을 때, 사유하는 시간이 있을 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자기 독백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이런 상황에 대해서, 융의 심리학을 통해 심리 치유와 자기 회복을 돕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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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 프로메테우스의 꿈과 좌절
테리 이글턴 지음, 박경장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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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종말론적 환상이던 것이 오늘날 엔 엄연한 현실주의가 되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라는 전통적인 좌파 구호가 이보다 더 단호하게 양극단인 적이 없었고, 이보다 덜 수사적 과장이었던 적도 없었다. 이처럼 참담한 상황에서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대로 "마르크스주의는 필연적으로 다시금 진실이 될수 밖에 없다"

부와 권력의 엄청난 불평등, 제국주의 전쟁, 강화된 착취, 점점 더 억압적인 국가 등,이 모든 것이 오늘날 세계를 특정 짓는다면, 그것들은 또한 마르크스주의가 거의 두 세기 동안 행동하고 성찰해 온 문제이기도 하다. (-28-)

계급투쟁은 본질적으로 잉여를 둘러싼 투쟁이다. 따라서 모두에게 양이 충분하지 않은 한 계속될 것이다. 어떤 개인의 잉여노동을 다른 사람에게 이전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 물질적 생산이 조직된다면 언제든지 계급은 출현한다. 이른바 원시 공산사회처럼 잉여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을 때는 모두가 일을 해야 하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노역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계급도 있을 수 없다. (-72-)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항상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기대할 필요가 없다면, 마르크스의 목표는 성취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사회주의는 시민들의 눈부신 미덕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함께하는 거대한 축제 속에서 서로를 감싸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마르크스의 목표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주는 기제들이 실제로 사회 제도 안에 설치되기 때문이다. (-128-)

공산주의 노동자들이 함깨 모일 대, 당장의 목적은 지도와 선전 등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새로운 필요, 즉 교제할 필요가 생기게 되어, 수단으로 보였던 것이 목적이 된다. 담배 피우기, 먹고 마시기 등은 더 이상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이어 주는 수단이 아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사귐, 제휴, 대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인간의 형제애는 공허한 문구가 아니라 현실이며, 노동으로 다져진 모습에서 인간의 고귀함이 빛을 발한다. (-172-)


마르크스가 자주 비난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의는 도덕적 요소를 선호하고 물질적 요소를 무시한 역사연구에 대한 비난이었다. 여기에 맞는 용어는 도덕이 아니라 도덕주의이다. 도덕주의는 '도덕적 가치' 라 불리는 것을 그것이 위치한 역사적 맥락에서 추출해, 일반적으로 절대적인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진실된 도덕적 연구는 인간이 처한 상황의 모든 양식을 탐구하는 연구이다. (-214-)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점 중 하나는 유지하기 가장 힘든 곳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것이다. 레닌은 볼셰비키 봉기에서 이런 아이러니를 알아차렸다. 잔인하게 억압받고 반쯤 굶주린 사람들은 혁명을 해도 잃을 게 없다고 느낄 수 있다.다른 한편,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들을 반항하게 만드는 후진적 사회 조건은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하기에는 가장 최악의 장소이다. (-258-)

마르크스 비판자들은 때로 그의 작업에서 이른바 프로메테우스적인 기질-무제한 인간 진보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에 대한 믿음-에[ 주목했다. 실제로 그의 저작에 그런 흐름에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는 9세기 유럽의 지식인에게서 예상될 법한 일이다. 1860년 무렵에는 비닐봉지나 탄소 배출에 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더욱이 자연은 때로 정복될 필요가 있다. 꽤 빠른 시일 내에 많은 방파제를 건설하지 않는다면 방글라데시는 사라질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302-)

1. 마르크스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2. 마르크스주의는 도그마가 아니다

3.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이 아니다

4.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다

5. 마르크스주의는 경제 환원론이 아니다

6. 마르크스는 기계적 유물론자가 아니었다

7.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강박증이 없다

8. 마르크스주의는 폭력 혁명을 옹호하지 않았다

9.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를 믿지 않는다

10. 마르크스주의는 급진적 운동에 기여했다

이 열 가지는 리스트는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대표적이 비판을 나열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이자 문학 평론가 테리 이들턴의 답이 각각에 추가하여 설명하고 있다.

책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이 쓰여진 시기는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를 마주하면서, 그가 생각하였던 마르크스주의가 21세기 이후 탈산업화시대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으며, 마르크스 사상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본질을 하나하나 짚어 나가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마르크스 주의에 대해서 정리해 볼 수 있었고,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를 돕고 있다. 잉여 자원이 생겨나면서,사회계급이 만들어진다. 그로 인해, 지구의 호모사피엔스에게 충분하게 자원이 돌아갈 때까지 계급 투쟁은 이어진다는 것을 엄시하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았고, 환경 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환경을 보호하고, 탄ㅁ소배출에 대해서 신경쓰지 안않았고,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활동도 도드라지지 않았다. 플라스틱이나, 비닐과 같은 썩지 않는 물질들이 우리 사회를 좀먹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시기다.미세플라스틱 쓰레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 주의는 시대를 넘어서서,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의 사상은 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조지 부시 때,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마르크스주의자의 관점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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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 - 철학자 박구용, 철학으로 시대를 해석하다
박구용 지음 / 시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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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문장을 쓰는 지금은 2024년 12월 10일입니다. 나는 지금 우리가 "반혁명과 혁명이 극단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사건"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



그의 관점을 간단하게 말하면'혁명이 아니라 개혁'입니다.그는 전통과 관습에 기초한 점진적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전통을 파괴하지 않아야 안정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반면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는 추상적인 이사이나 이념 만을 추구하며, 전통적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한다고 보았습니다. (-33-)



80년대에 전두환이 계엄령을 선포할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병사와 중간 간부들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권 교체도 정권 교체지만 가해자들이 처벌 받은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



우리나라 보수 언론은 필요에 따라 공리주의와 자유주의를 마음대로 오가는데요. 그들의 입장에서 같은 편이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박수 치고, 상대편이 하면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합니다. 문제인 정부 시절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해 논란이 생기자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바가 있었죠., (-100-)



자기 입장이 극단적 표현이 바로 '격노'입니다. 전통 심리학에서는 화를 내면 화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지부조화에서 비롯된 불쾌감을 인지 왜곡으로 해소하기 위해 화를 내는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화가 화를 부르고,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합니다. (-132-)



이미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역사주의 비판의 세례를 받은 이후의 학자로서 나는 역사상실을 부추기는 탈현대적 이론 만이 아니라, 현재의 단순한 진보적 역사주의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철학을 제안했습니다. (-169-)



직업으로서의 정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국가에는 관료직이나 재화 등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공적 재원이 잇습니다. 이런 공적인 재원을 획득, 유지 ,확산,행사하려는 행위가 좁은 의미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입니다. 그러니 사적인 재원과 공적인 재원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인간은 다 권력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이것을 '힘에의 의지'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202-)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파르헤지아스트라고 합니다.미셸 푸코에 의해 주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게 되는 파르헤지아 Parrhesia는 고대 그리스어로,'진실을 말하는 용기'라는 뜻입니다. 고대에서 중세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톹치권자에게 가장 주요한 것이 수사학, 레토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39-)



철학자 박구용은 전남대학교 찰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책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을 쓴 시점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외치고 난 이후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진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보수세력과 보수 언론의 문제점,그리고 그들의 자가당착적인 시대적 과오를 되짚고자 한다.



2024년 12월 3일, 계엄을 윤석열 대통령은 외쳤다.하지만 국회 해산 명령이 떨어졌고, 그는 2025년 탄핵되었다. 철학자 박구용은 이 책을 통해서, 촛불 혁명의 당위성을 언급하고 있으며,우리가 나아가야 할 철학이 어떻게 정치와 엮이며, 혁명과 반혁명의 충돌과 갈등이 우리 미래 세대에 어떤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그는 12.3 계엄을 혁명과 반혁명의 극단적인 충돌을 보고 잇다. 지진이 일어날 대,두개의 판이 충돌하는 것처럼,사회적 지진도 보수와 진보, 두개의 판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보수는 때로는 공리주의를 추구하고, 때에 따라,자유주의를 병용해서 사용한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 세력과 언론 또한 ,때에 따라서,공리주의를 선택하고, 민주주의를 병행하여 쓰고 있다.이런 모순이 우리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 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철학은 헤겔의 법철학을 기초로 한다. 우리 사회가 왜 7공화국으로 바뀌어야 하는지,제 7공화국을 어떻게 준비하고,권력이 우리 삶에 이롭게 나아가려면, 국민의 의식 수준이 어떻게 정치와 권력에 반영되어야 하는지 그 준거점을 이 책을 통헤 확인할 수 있으며, 소크라테스의 죽음 뒤에 숨어있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가 다시 21세기 우리 삶에 필요하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정치와 철학이 서로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되어 졌을때, 우리 삶은 새로운 변화와 국민이 요구하는 올바른 개혁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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