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양장)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1월
평점 :

우리는 관람객이 그림 약 1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게 쳐져 있는 정강이 높이의 방지선을 따라 서성이며, 관리해야 하는 다음 전시실로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보티첼리가 가장 유명인사인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으로는 더 많은 피렌체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이 들어차 있는 조금 작은 세 번째 전시실이 있다. (-16-)
이 모든 것이 매우 흥미롭지만, 나는 우리가 1300년경에 그려진 두초의 <성모와 성자> 로 부터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 내내 어떤 그림과도 마주 서서 제대로 들여다 볼 기회가 없던 터라 나는 4500만 달러라고 알려진 이 그림의 가격을 화제 삼아 아다의 주의를 이쪽으로 끌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나 아다는 내가 그런 저속한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 슬퍼할 뿐이다. (-21-)
미술에 관해 내가 아는 모든 건 부모님에게서 배웠다. 대학생 때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한 어머니 모린은 자신의 아마추어적 열정을 형 톰과 누이 미아 그리고 나에게 전도했다. 우리는 적어도 1년에 몇 번씩 시카고 미술관으로 모험을 떠났다. (-26-)
메트에 소장된 작품들 중 가장 슬픈 그림은 베르나르도 다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일 것이다.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엄청나게 슬픈 광경이지만 유난스럽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그리스도의 몸은 위엄을 잃지는 않았지만 축 늘어져 있다. 온화한 우아함이 우러나오는 분위기로 보아 그는 용감하게 고통에 맞섰던 듯하다. 마리아와 요한은 생각에 잠겨 땅에 앉아 있다. 두 사람은 무엇보다도 지쳐 보인다. 미친 듯 흘러간 하루가 끝나고, 남은 건 죽음 뿐이다. 죽음이라는 그 단도직입적인 사실, 불가해한 수수께끼,거대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최종적 단호함만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다. (-49-)
덴투르 신전은 이런 나의 배경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1970년대에 댐 공사로 나일강이 범람랬을때 이 멋진 건축물은 총 8백 톤에 달하는 사암으로 해체되어 뉴욕으로 옮겨졌고, 이후 메트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때 미술관은 센트럴 파크가 내다보이는 장엄한 홀을 새로 지었고, 고대의 신전이 그 안에 설치되어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조화롭고 절제된 모습의 신전은 건물과 분리된 채 멀찍이 서 있는 입구 문과 짝을 이루고 있는데 두 구조물 모두 태양을 형상화한 원과 원을 중심으로 펼치듯 뻗은 하늘의 신 호루스의 매 날개로 장식되어 있다. (-102-)
박력 넘치는 조각상의 주위를 돌며 나는 예술가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감탄할 뿐이다. 예술의 위대한 기적이 행해졌고 아름다움의 새로운 모습이 세상에 더해졌다. 감탄스러울 뿐만 아니라 감동적이다. 눈을 지그시 감은 <은키시 주술상> 은 다가오는 위험한 세력들에 대적하는 의지를 불러 일으키려는 듯이 내면에 몰두하는 강력한 기운을 뿜는다. 이 조각상은 폭력, 불행, 질병 등 끊이지 않는 일상적인 농간으로부터 송에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126-)
돌이켜 보면 그 장면은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 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까지 펼쳐진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농부 몇몇이 오후의 식사를 즐기는 모습 말이다. 배경 중간쯤 교회가 있고,그 뒤로 항구 그리고 황금빛 들판이 아스라한 지평선까지 굽이쳐 펼쳐진다. 화면 앞쪽에는 큰 낫으로 곡물을 거두는 남자들과 그것을 한데 묶느라 허리를 굽힌 여자가 보인다. 맨 앞쪽 거두는 남작들과 그것을 한데 묶느라 허리를 굽힌 여자가 보인다. 맨 앞쪽 구석에는 일을 하다가 배나무 아래에 앉아 식사를 하는 아홉 명의 농부들이 다소 희극적이면서도 애정을 담아 묘사되어 있다. (-164-)
공식 명칭 '아랍,튀르키예,이란 ,중앙아시아 및 후대 남아시아 미술'부서에서 장장 3개월간의 휴일없는 근무가 시작됐다. 수습 기간 이래 미술관 한 구역에서 이렇게까지 정기적으로 일한 적이 없었고, 다시 한번 완전한 몰입감을 느꼈다. 옛 거장들의 명화를 곰곰이 감상하던 때는 주로 예술의 신성한 측면, 그 고요함과 불가사의한 침묵에 관심을 가졌었지만, 그 이후로는 메트의 세속적인 매력을 담당하는 호기심 많은 관람객과 사교적인 경비원들에게도 관심을 간혹 내어주고 있었다. 이슬람 전시관에서 나는 이 두 지층이 서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고민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만났다. (-211-)
경비원으로서 특히 흥미로운 작품은 색색으로 포장된 80키로그램에 달하는 사탕 더미로, 관람객들이 그 작품을 만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져갈 수도 있었다.이 작품은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가 에이즈로 쇠약해져간 자신의 배우자를 표현한 초상화다. 초상화의 주인공과는 달리 그를 기념한 작품의 무게는 끊임옶이 다시 채워진다. (-271-)
그렇다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수간들은 위안을 준다. 힘이 나게 한다. 그리고 순수하다. 빈센트의 <붓꽃>을 보고 있자면 가난과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들에게서 벗어나 그 생기 넘치는 단순함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화가의 염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몸을 돌려 우리 앞에 놓인 것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은 오고야 만다. 빈센트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운이 좋다는 사실에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다. 내 이야기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315-)
책 『나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유투버 김지윤 박사가 패트릭 브링리와 인터뷰를 한 동영상을 보고 난 이후였다. 두 사람이 한 권의 책 『나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테마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그 모습은 진솔하였고,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다. 1983년생 패트릭 브링리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 미술관에 자주 견학하였고, 미술에 대한 관심, 예술가를 관찰하면서, 메트로 폴리탄에서 본 그림 <곡물 수확>의 영햐을 받아서, 경비원에 일하기로 마음 먹었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그가 결혼하였던 2008년 당시 공교롭게도 형이 사망하였다.
뉴욕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러시아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이어 세번째로 큰 박물관이며, 해마다 700만명의 해외 관광객이 찾는 곳이었다. 경비원도, 600명이상이라 하니 그들이 하는 일을 상상한다면,위대함을 넘어서 경이롭다 할 수 있다. 관람객수로 보자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5,000년의 중국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만의 국립고공박물원에 이어서, 뉴욕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이 세번째로 손꼽히고 있다. 그가 메트로폴리탄 경비원이 된 이유는 2008년 형 톰의 죽음이 큰 영향이었고,자신이 해야 할 일은 미술관 경비원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그가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곳곳의 예술 작품을 보면서, 지구의 빅히스토리를 한 곳에서,자유롭게,깊이 볼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되었다.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고,그림을 깊이 이해함으로서, 메트로폴리탄 경비원으로서,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리게 된다. 고대 이집트의 문화와 예술을 메트로폴리탄에서 볼 수 있었으며,댐이 잠기게 되면서, 고대 신전을 해체하여, 메트로 폴리탄에 옮겨 전시하게 된다. 미국의 막대한 자금력과 자본,문화에 대한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간으로서는 빵점이지만, 예술가로서는 최고의 찬사를 유지하고 있는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생을 다 바쳐서 모든 것을 해 온 것을 돌아볼 때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엿볼 수 있다 . 10대 청소년에게 미래의 직업이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메트로 폴리탄에 경비원으로 취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과 꿈이 되고 있으며, 메트로 폴리탄으로 취업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미숤관 경비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