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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있는 여자
장혜진 지음 / 별빛들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아비도 없는 처지에 부모까지 한순간에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은 명옥은 더 이상 세상에 바랄 것이 없었다. 명옥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처녀 귀신이 되려는 마음을 품고, 엄동설한의 숲으로 향했다. (-11-)
밤은 점점 길어져 연중 가장 길다는 동짓날 밤에 이르렀다. 명옥이 돌보는 설의 병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고, 설은 곡기를 끊은 지 이미 여러 날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몸에 기운이 없어 밤이면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다. (-35-)
양어머니의 숨에서 죽음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부터였다. 예전에는 커다란 냄비도 번쩍 들던 양어머니였지만, 어느 날부터는 무 하나도 제대로 자르지 못했다. 한 번은 시장 한복판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여자는 그것이 감히 자신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려는 것 같아 화가 났다. (-73-)
소설 『스스로 있는 여자』를 통해 우리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각각 어떤 운명이 주어지는지 예측하거나 상상하게 된다. 삶이란 결국 내 앞에 놓인 환경과 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무언가가 부재하거나 결핍될 때, 하루아침에 내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작가는 바로 그 지점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별빛들신인의 『스스로 있는 여자』에는 단편 소설 세 편, 「설」, 「먹이」, 「멀리서 온 거짓말」이 수록되어 있다. ‘설’은 명옥의 달이 되었다. 고아였던 설이 앞에는 가혹한 운명이 펼쳐진다. 신의 딸이자 산신 할멈을 모시지 않아 불행한 운명을 살아가게 된 명옥 앞에 설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독자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과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평소 명옥의 모습과 삼신할멈이 그녀의 몸을 빌렸을 때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명옥의 춤사위를 지켜보는 설의 마음은 늘 가슴 한 켠이 미어지곤 했다.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이 소설은 다름 아닌 우리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지금은 차마 말할 수 없었던 행위들, 동물과 다를 바 없었던 20세기 초 우리의 삶은 오직 생존만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유교적 가치관에 철저히 길들여졌던 시절, 천주교가 들어온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각자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것은 전쟁과도 다름없었다. 이 소설의 특유의 스토리 구조 속에서는 일본 소설에서 자주 느꼈던 공포와 스릴러,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구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별빛들신인선, #지나간것과지나가고싶은것, #스스로있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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