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2 강리도 - 아프리카를 최초로 그린 세계지도의 탄생
김선흥 지음 / 네잎클로바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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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는 지도 제작을 맡았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중국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동아시아 너무 '오랑캐' 땅까지를 조망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세계사이었다. 중국인들은 곧잘 조선인들을 오랑캐로 보았지만, 조선인들은 '세상의 끝에 무엇이 놓여 있던 간에 (그것을 배제하지 않고) 그 영역과 역사를 독자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강리도>가 전통적인 중화주의를 벗어나 중국 너머의 세상을 자주적으로 지도에 담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국내의 강리도론을 읽다 보면,마치 다른 지도를 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40-)



아프리카 위로는 압착된 지중해가 보인다. 지중해 남쪽 해안으로는 모로코와 이집트, 북쪽 해안에는 이타리아와 그리스가 나타나 있다.유럽 부분에는 약 100개의 지명을 싣고 있는데 지명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지명과 형세가 실린 것은 몽골 시대에 원나라 황실에서 활동했던 아랍 지리학자들의 영향이다.<강리도> 의 국명을 보면 고전적인 라틴어의 맛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스페인의 라틴어 이름 'Hispania'를 강리도는 '亦思船的那(이스반디나)' 로 옮겼다. (-88-)



1991년 말 미국의 워싱턴에 출현했던 강리도가 꼭 10년 만에 ,이번에는 아프리카 남단에 등장하여 다시금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특히 남아공 사람들은 <강리도>가 자국의 산맥과 강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이렇게 가정해 보자.만일 1402년 남아공에서 그린 세계지도에 우리의 해안선 형태가 나타나 있고 지리산과 낙동강 혹은 섬진강이 그려져 있다면, 우리가 그 지도에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지도를 전시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117-)



역사상 최초의 대학은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1096) 도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1088) 도 아닌, 바로 859년 페스에 설립된 알카라윈 al-Qarawiyyin대학이다.이 대학은 또한 여성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대학이기도 하다. 파티마 라는 여성이 상인 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으로 세운 대학이라고 한다. (-163-)



즉,외면적으로는 세계 최강의 강대국인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인정함과 동시에 내면적으로는 상대적 비례로 중국보다 훨씬 크고 위풍당당한 주체성을 자기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강대국들의 틈 속에서 외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에게 통찰과 영감을 준다. 외면적으로는 힘이 지배하는 국제 사회의 현실을 적절히 존중하면서 내면적으로는 주인으로서의 당당한 주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196-)



무튼 <강리도>는 '염지'로써 고대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호수의 존재와 위치를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런데 왜 호수를 그리지 않고 원 안에 정보만 기입했을까?그건 지도를 그렸던 당시의 지리 정보가 아니라, 고대에 그 호수가 그 자리에 존재했었다는 기록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고고학적 정보인 셈이다. 이게 바로 헤딘이 말하는 서기 4세기에 이동해 버린 호수의 옛터가 아닌가. (-266-)



1884년 봄, 한양의 미 공사관에 버나두 라는 미 해군 소위가 부임했다. 이 사람의 임무는 기이했다. 해군에 관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외교 업무도 아니었다. 오직 조선의 민속 자료와 문물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명한 스미소니언 협회의 에이전트였다. 스미소니언 협회는 사실상 미국 정부 기관이다.이 기관에서는 1881년부터 미 해군 요원을 파견받아 해외 문물 수집 기술을 익히게 했다. 훈련을 마친 요원들은 세계 각처로 파견되었다. 스미스소니언에서 훈련을 마친 버나두는 조선에 가기를 희망했다. 1883년 말 정식 발령을 받는 그는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미 군함 알러트호 USS Alert 에 올랐다. 이듬해 2월 14일, 일본 나가사키항에 도착한 후 미군함 주니아타호 USS Juniata 로 갈아타고 3월 1일 제물포에 도착했다. 이후, 그의 요청으로 윤치호는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다. (-312-)



같은 시공간을 살다 간 서양인 중에는 현지 주민과 그 지명, 역사와 문화를 몹시 존중했던 사람도 있다.이제 그 사람을 만나 본다. 2009년 11월 어느 날 <대동여지도>가 미국 위스콘신밀워키 주립대학의 도서관 수장고에서 발견되었다.이 지도는 조지 포크 George Clayton Foulk(1856~1893)라는 미국 해군 장교이자 외교관이 조선에서 입수하여 고국의 부친에게 보낸 것이다.입수 경위는 불분명하다. 조지 포크는 해군무관 발령을 받고 1884년 6월 1일 조선에 들어온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조선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야욕 앞에서 풍전등화 신세였을 때,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특이한 우인이었다. (-348-)



실크로드는 세계의 상이한 지역들 사이에 이루어진 문화와 교역을 배경으로 한다. 유구한 역사를 통해 이룩된 이 문명과 사람들 간의 교류는 다양한 지식의 공유를 가져왔다. 이러한 지식은 철학 ,수학, 천문학,지리학 그리고 지도 제작을 포함한다. 특히,지도는 세계의 문화활동과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그 깊은 역사를 증거하는 네 종의 지도가 있다. 즉,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서기 150), <이슬람 세게지도>(서기 1154) <카탈루냐 지도첩>(1375) 그리고 한국의 세계지도인 <강리도> (1402) 이다. (-401-)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총 길이 2,200km 의 오렌지강이 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가장 긴 강이다. 레소토의 드라켄즈버그산맥에서 발원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동서방향으로 관통하여 대서양으로 들어가는 강이며, 조선 태종 2년에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류코쿠본에 남아있다. 책 『1402 강리도』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 ,지도탐험가 김선흥 저자의 20년 역작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는 조선 2대 왕 정종 때부터 3대 왕 태종 때 완성된 지도이며, 정화대함대가 전세계를 항해 하기 전에 만들어졌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원본은 유실된 상황이며, 현재 교토대학 모사본, <강리도> 류코쿠본(171.8 *164cm), 혼코지 본(276*219cm),텐리대본(대명국도, 174 X 135. 5cm),혼묘지본 (169.2 X134.7cm) 가 남아 있으며, 15세기 지도를 가지고,지금도, 파리로 항해를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지도의 정확성은 600년의 시대를 뛰어 넘어 조선의 높은 지도제작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책 『1402 강리도』을 통해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시대적 의미를 재확인할 수 있으며,통상적으로 조선이 통일신라시대 이후, 중국 수나라, 당나라, 명청시대에 종속되지 않은 국가로 존재한다는 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통해서,보여주고 있으며, 중국 땅과 조선 땅의 크기를 서로 비슷하게 그려 놓은 이유다. 일본 땅의 일부가 지도에 있으며 ,아프리카와 이슬람 세계, 중동,아시아와 인도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희망봉 발견 이전에 조선이 그 바다를 지나왔다는 것을 추정하게 된다.



즉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이전의 지도는 지도의 디테일한 면에서 떨어진다. 지금의 지도에서,위도와 경도의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은 지도들이며, 왜곡이 심한 지도 일색이다.지도 제작기슬이 다변화하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15세기 지도의 표본이 될 수 있었다. 21세기 지도의 역사에서, 4개의 지도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 <이슬람 세게지도>,) <카탈루냐 지도첩>, <강리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대한민국에 ‘지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하는 까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콜롬버스가 유럽 대륙을 지나, 인고인 줄 알았던 땅이 신대륙이었음을 밝혀내기 전, 조선의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가 현존하였다. 특히 이 지도의 가치는 15세기 경 유럽과 아프리카 땅의 지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지명에 대한 지리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15세기 이전의 고고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지리학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관점에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가치를 재확인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15세기 당시 유럽인의 지도 중에,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에 버금가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미의회도서관 측에서 『CARTOGRAPHIA>를 통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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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의 빛나는 날들
김선옥 / 유페이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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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생각으로, 감정으로, 음식으로, 혹은 노폐물로 '내 안이 꽉가 차 있는 것처럼' 갑갑할 때, 몸을 흔들어보세요. 털어보세요.

털어낸 후 멈춰서 퍼지는 잔상을 느껴보세요. 울림이 느껴지나요? 우리는 스스로를 울릴 수 있을 만큼, 이미 충분히 비워져 있답니다. (-18-)



핸드폰 속 빠른 화면, 처리해야 할 일,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속도에 익숙하세요?

눈앞의 세계에 집중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몸의 뒷면을 자주 잊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로 등을 만날 수 있어요.눈을 감고 숨을 쉬세요. 그리고 숨에 따라 등이 어떻게 움직이나 느껴보세요.

보이지 않는 등과 가까워진 만큼 바쁜 마음도 쉬어요. (-25-)



수업에서 발가락을 다양하게 움직이며, 강화하는 연습을 했어요.그런데 수련생 분들이 고개를 숙이고 발가락이 잘 움직이나 계속 확인하시는 거에요. 제가 "앞을 보세요!" 라고 말씀드리면, 손과 얼굴에 힘이 잔뜩 들어가 버려서 함께 한바탕 웃었답니다. (-45-)



가슴과 등을 움직이려고 할 때 감각이 잘 안 느껴지거나 잘 못 움직이겠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아요. 숨을 깊게 쉬고 싶은데, 뭔가 갑갑하다는 말씀도요.

가슴과 등은 갈비뼈로 이어져 마치 새장과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답니다. 폐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그래서 목과 허리처럼 움직이기는 어려워요. (-67-)



숨 쉬고, 먹고 ,움직일 수 있으니 '삶'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지구를 벗어나면, 우주는 대부분이 죽어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고 하죠.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들 역시, 본래는 죽은 물질이고요. 

이유도 모른 채 '어쩌다' '잠깐' 모인 원자들이 '생명'을 이루고, 곧 다시 흩어져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89-)



책 『모든 각도에서 빛나는 우리』은 평온한 하루,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힌트를 준다. 우리 삶에서,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치지 않고 싶은 그 마음이 쌓여서, 서로에게 이해 받으려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요가와 명상은 평온한 내면과 나를 긍정하기 위한 수련이며,나에게 선물을 주는 일상이다.마음의 회복을 얻고,마음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오른쪽 왼쪽,위,아래, 모든 각도에서 빛나는 우리들이다. 화장실에서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셀카 모습도 아름답지만, 언제든, 어디에서든 나는 빛나는 존재다. 그건 스스로 사랑하고, 나를 제대로 아끼고,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시작한다. 살믈 스스로 긍정하고, 따스한 일상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나를 위해서, 나의 행복을 위해서,나를 위로하며,나를 치유하기 위한 변화였다. 불행한 삶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멈추는 것, 적극적으로 나를 바꿔 나가는 것, 상처에서 빠져 나오는 것,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나는 나에게 행복을 선물할 수 있다. 그것이 나에게 이로운 삶이 되며, 내 삶의 모든 각도에서, 모든 변화 과정에서, 빛날 수 잇고, 스스로 아끼며 살아간다. 용기 뿐만 아니라, 내가 나를 위로하고,나를 신뢰하며, 나는 타인에게 위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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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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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나는 여섯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죽은 금붕어를 비닐봉지에 싸서 대문 밖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자흔이 떠난 뒤의 나흘동안 그녀의 물고기들은 아침마다 한 마리씩 두마리씩 허연 배를 뒤집으려 수면으로 떠올랐다. 자흔이 하던 것과 똑같이 정성껏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주었지만 나는 그것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11-)



정열적인 아리나는 자흔의 허리와 어깨를 채찍처럼 내갈겼으며,그녀는 묵묵히 그것을 맞으며 맥없는 손과 발을 움직거리고 있었다. 그런 자흔의 얼굴이 너무도 어둡고 외로워서 나는 내심 사람이 저렇게까지 불행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마저 하곤 했던 것이었다. (-37-)



자흔이 떠나기 전날 밤,이가 부딪치도록 차가운 세면장 바닥에 웅크려 앉아 나는 자흔의 앙상한 팔을 붙앉고 애원했었다. 처음에는 "안돼요"라고 또렷이 대답했던 자흔은 "가지 말아요,가면 안 돼요"라고 또렷이 대답했던 자흔은"가지말아요, 가면 안 돼요" 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떨고 있는 나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끌어다 안았다. (-62-)



과연 암고양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점차 발작적으로 경련하고 있었다. 스레이트 지붕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여기저기에 흩어 놓아둔 벽돌 조각들은 암고양이의 등과 배가 닿을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차츰 암고양이의 고함은 처절해졌다. 수고양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엇이 그놈으로 하여금 제 짝의 죽음을 지켜보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84-)



체격 때문인지 동걸은 주량도 상당했다.스무 살이나 스물한살이었던 우리들의 술 모임은 동걸과 나까지 일곱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폭음을 하곤 했는데, 똑같이 잔을 비운 동걸은 좀처럼 행동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146-)



청량리역을 벗어난 열차는 속력을 내고 있었다. 캄캄한 선로를 달리고 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자 문득 선로 옆에 서 있는 집들과 창문과 커튼과 그 속에 오글오글 잠든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오랫동안 가보지 못했던 고향에라도 돌아온 것 마냥 편안했다., 나는 잠들었다. (-178-)



인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들 식구는 시골에 살았다. 인규의 아버지는 사이다병에 담아놓은 농약을 단숨에 들이켜고 죽었다. 어머니의 나이 서른다섯 살,인규는 열 한살, 코질질이 동네 북이던 동생 진규는 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213-)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날만 밝으면 "진규야, 우리 진규우"하고 목을 놓아 울었다. 진규는 겨우 일곱살 난 어린아이였으므로 관을 자지 않았다. 의붓아버지는 거적때기로 진규를 둘둘 말아 등에 지고 산으로 갔다. 봉분도 세우지 않고 진규를 묻었다. 진규의 몸은 유난히 작아서 땅도 아주 조금만 차지했다. (-215-)



그날 아버지는 어머니를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겼다. 광기 등등한 아버지를 말리다가 오히려 표적이 된 정환과 정임은 진달래 능선으로 도망쳤다. 정임이의 뺨은 터서 발간 핏자국이 얹혀 있었다. 정임이는 배가 고프다며 꽃잎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정임이가 지나온 자리는 그 키가 닿는 만큼 표가 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을 때 정임은 검붉든 물이 잔뜩 든 입술을 깨물며 훌적거렸다."배고파 오빠"정임은 기어코 주저앉아 발을 뻗었다. (-252-)



동식은 떠나려 하는 만원 버스에 다려가 매달렸다. 간신히 층계를 올라가 토큰을 떨어뜨렸다. 산소가 부족한 후끈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보다 키가 큰 사내들 사이에서 ,호홉이 가쁜 만큼 가슴과 등이 짓눌리는 것을 느꼈다. 삼십여분의 괴로운 여정 끝에 동식은 땀투성이가 되어 버스에서 내렸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서늘한 골목길에서 그는 환상이 아닌 사내의 모습을 보았다. (-285-)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를 타면서,그녀의 책이 하나하나 독자들에게 팔리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이외에, 우리가 소설가 한강의 『여수의 사랑』을 눈여겨 보아야 할 이유는 20대 중반 1990년대의 정서와 한국인의 일반적이 사고방식 뿐만 아니라,사회적인 흐름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생 한강 작가는 1930년대에 태어난 부모가. 196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다.



1990년대,이제 민주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음울하고, 폭력적이며,예민함이 느껴지는 소설 『여수의 사랑』 에는 소설가 한강 이 『서울신문』 1994년 신춘문예당선작으로 「붉은 닻」 이 소개되고 있으며., 『리뷰』 1994년 겨울호 에 수록되어 있는 「여수의 사랑」 이외에,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 「진달래 능선」이 함께 언급되고 있다. 여섯 편의 단편 소설 속에, 소설가 한강의 이십 대의 삶 뿐만 아니라,문학적인 정체성도 함께 마주하고 있다.



소설 『여수의 사랑』을 읽으면, 1960년대~1990년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이며, 분노로 들끌었는지, 알 수 있다. 이십대 여성의 문학적 가치관 속에는 지금과 다른 아날로그적인 가치관이 살아있다.낡은 기찻길, 통일호와 무궁화호가 지나가던 그 기찻길에는 사람이 모이고,기차에 대한 낭만적인 추억이 존재했다. 소설가 한강은 그 누구보다도 폭력에 대해 극도의 예민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이 우리 사회의 폭력에 대해서,어떻게 대응하고, 자신의 지식과 지혜로 대처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소설가 한강은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해 개정판을 낼 때,문장을 다듬어가는 그 시간들에 대해서, 개정판이 독자들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다.소설가 한강이 생각하는 폭력이란, 육체적인 폭력 뿐만 아니라,정신적인 폭력, 접촉에 근거한 폭력 뿐만 아니라,비접촉적 폭력도 포괄하는 독특한 정서를 추구하는 문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소설 『여수의 사랑』에 여섯 편의 단편 소설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죽음이다. 차가우면서,뜨거운 , 조용하지만,강한 모습들,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 역설적인 가치관이 소설 속에 숨어 있으며,위의 집단적인 무의식을 건드리고 있다. 1993년 10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쓰여진 소설들, 스물 세살에서,스물 네살에, 쓰여진 글들은 한강의 초기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으며, 여수의 사랑의 지흔과 정선, 질주의 인규와 진규 형재, 야간열차의 영현과 종걸, 진달래 능선의 정환과 황씨, 어둠의 사육제의 졍진과 영환에 대해서, 서로가 분신이며,각자 자아의 충돌 뿐만 아니라,분신의 출현과 설정에 대해서, 개인의 실존의 불안정하고,불확실한 모습,자기 분열적인 가능성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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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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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편은 누가 반편입니까. 이장이니 지도자니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방침을 정했으면 그대로 해야지, 양복 입고 자가용 타고 간 사람은 오고, 방침대로 경운기 타고 간 사람은 오지도 않고,이게 무슨 경우냐구요." (-11-)



황만근, 황선생은 어리석게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해가 가며 차츰 신지(神智)가 돌아왔다. 하늘이 착한 사람을 따뜻이 덮어주고 땅이 은혜롭게 부리를 대어 알껍질을 까주었다. 그리하여 후년에는 그 누구보다 지혜로웠다. 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듯 그 지혜로 어떤 수고로운 가르침도 함부로 남기지 않았다. 스스로 땅의 자손을 자처하여 늘 부지런하고 근면하였다. 사람들이 빚만 남는 농사에 공연히 뼈를 상한다고 하였으나 개의치 아니하였다. 사람 사이에 어려움이 있으면 늘 함께하였고 공에는 자신보다 남을 내세워 뒷사람을 놀라게 했다. 하늘이 내린 효자로서 평생 어머니 봉양을 극진히 했다. 아들에게는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였고, 훈육을 할 때는 알아듣기 쉽게 하여 마음으로 감복시켰다. (-38-)



"우리 계원이 모두 열여덟 명인데, 오늘은 열다섯 며이 왔구만. 준수하고 학철이하고 영만이가 빠졌는데 준수하고 학철이는 이따가 온다고 했고 영만이는 개 팔러 갔어."

계의 총무인 혁기가 늘 해오던 방식대로 성원보고를 했다. (-84-)



당숙은 일곱 살이 된 해 어느날 스스로 일어나 자신의 키에 맞는 칸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반의 반은 한자,. 그 나머지가 그림책과 잡지, 한글로 된 책이었다. 한글로 된 책들 중 대부분은 열한 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교과서와 참고서 따위였고 그외의 한글책들은 다른 언어로 된 책들에 비해 수준이 아주 낮고 상태도 좋지 않았다. (-116-)



책의 총수량 추정치 삼만권.아파트 지하에서 책 선반으로 쓰기 위해 조립했던 여섯 단짜리 앵글 열다섯 개.책을 넣어두기로 한 작업실의 공간 가운데 가로 4.5미터, 세로 6미터, 가로 5미터, 세로 6미터 짜리 인 두 방을 쓰기로 하고 큰방에는 앵글을,작은 방에는 책상자를 쌓아놓기로 했다. 일단 이삿짐쎈터와 연락을 해서 짐을 옮겨올 날짜를 정하고 시간은 겨울의 짧은 해를 감안해서 오후 두시로 했다. (-121-)



나는 당숙을 향해 책이 온 모양이라고,나가보자고 했다. 옷을 걸쳐 입고 나왔지만 삽시간에 몸이 떠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삿짐을 어떻게 잡았는지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였다. 그러게 낮에 왔으면 덜 추웠을거 아냐.중얼거리면서 나는 전원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전화기의 통화버튼을 다시 눌렀다. (-132-)



그렇게 쏘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나는 기진맥진해서 내가 아는 안개시의 유일한 술집 '이방인'으로 들어갔다. 프랑스의 실존주의적인 소설을 연상시키는 제목과는 달리 이방인은 뒷골목의 중간 쯤에 자리잡은 허름한 선술집으로 세령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방인에서 실존을 자각케 하는 유일한 장치는 '변소업씀'이라는 계산대 옆의 팻말이었다.말 그대로 변소가 없어서 주변의 아무곳이나 오줌을 갈기면서 '투입=배출'의 실존 공식을 구현하는 스스로의 육체에 대해 자각하고, 단결 빼면 시신이나 다름 없는 골목 주민들의 단합된 욕설을 들으면서,재수가 없으면 물벼락을 뒤집어쓰기도 하면서, 한계상황의 인간조건에 대해 쓰디쓰게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버스가 끊어지고 난 뒤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밤길은 또 얼마나 황량하고 추웠는지. 그럴수록 하늘의 별은 더 또렷하고 공기는 맑았다. (-210-)



소설가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이 책 속에,단편으로 나오는 「책」 속 스토리를 누군가 이야기했었기 때문이다. 책을 나와 인연이 되려면,우연이 필연이 되고,그것이 독자들의 손에 쥐어지게 된다. 누군가 추천하기도 하지만,이 책을 읽은 이가, 책 속에 무슨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게 유혹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책 속에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와 「책」에 눈길이 가게 되었다.



단편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은 황만근이다. 황근근은 황씨 집안으로, 반편이라 부르고 있었다. 황만근의 모습은 공교롭게도 외갓집에 사는 친척을 연상했다. 그 친척은 황만근처럼 반편,바보였다.항상 부모님에게 걱정꺼리였고,결혼했지만, 아내는 도망가 버렸다. 소설 속 황만근이 성실하고,착한 이미지,도시로 경운기를 끌고 가는 그 모습,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착한 바보가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다.



두번째 , 「책」에 눈길이 갔던 것은 내가 가진 책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중에 있는 와중에 , 자인이 이 책을 말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주인공의 당숙이 등장한다. 당숙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리고, 자신의 키에 맞는 책을 고르기 시작하였고,한 권 한 권 읽기 시작했다. 작은 할아버지의 아들을 당숙이라 부르는데, 요즘과 달리 , 그 시절에는 집성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당숙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에 , 책 3만권을 이사하는 과정에서, 이삿잠 쎈터가 어덯게 책을 정리하고,이사동하는지 흥미롭게 말하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하게 느쪄지고 있으며,당숙처럼, 3만권정도의 책을 가진 이들은 공통적으로 책에 대한 욕심이 있고,그 책을 처리하는데 골머리를 안고 있다. 흥미롭게 읽은 책이며, 유투브에도 책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이 요약되어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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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보석과 침묵의 대저택 - 집사TV 오리지널 스토리북 특별판
김지균 지음, 권수영 그림, 집사TV 원작 / 서울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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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집사는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래전 마주친 적이 있는 괴물이었다. 악마 중의 악마를 지키는 괴물들이었고, 그 괴물들과 맞서다가 사로 잡혔던 적이 있었다. 이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불길한 신호였다. 그때 검은 연기에서 길쭉한 송곳니를 드러낸 괴물 하나가 튀어나와 집사를 붙잡으려 했다. (-13-)



집으로 돌아가면 이 두 낭를 집어삼키렴. 그럼 잠을 자면서도 네 할 이를 하는 착한 아이가 될 거야.

감사해요. 잡은 좀 자고 싶었거든요. 선생님 말씀처럼 잠도 잘 자는 착한 아이가 되도록 할게요. (-49-)



푸드럭 유튜브 계정의 실시간 채팅 창에 폭발적으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구독자 수를 보유해서인지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푸드럭이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 치울지 기대했다. (-89-)



중국집을 뛰쳐나온 푸드럭과 아스트로, 저스티스는 오른쪽으로 꺾었다. 송곳니 괴물과 털복숭이도 그 방향으로 따라갔다. 그 뒤르 구루구루, 싸이크라가 쫓아갔다. (-132-)



집사는 구루구루와 힘차게 악수를 나누었다. 구루구루가 뒤돌아 다시 떠났다. 집사는 '잠들지 않는 눈알'을 주머니에 넣고 걷기 시작했다.

서쪽 하늘이 지고 있었다. 도사의 집들에 불이 켜지고 있었고, 거리의 가로등도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150-)



책 『집사TV 오리지널 스토리북4권 대저택의 돈 버는 건 개고생』을 읽었고, 『집사TV 오리지널 스토리북 대저택의 집 나가서 개고생』도 읽었다. 집사 TV에 대해서, 그 재미와 매력을 느낄 수 있다.이번 이야기 『일곱 보석과 침묵의 대저택』에는 악마의 세계 1인자 였던 집사가 그 자리를 루시퍼에게 빼앗기고 난 이후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응 타자기를 통해서,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도록 한다. 타자기 하나로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잇고,내가 의도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집사와 구루구루,그리고 푸드럭과 털복숭이 괴물 뿐만 아니라 송곳니 괴물,저스티스가 어떻게 막마의 세계를 엉망징창으로 만드는지 느낄 수 있다. '잠들지 않는 눈알'을 타자기에 썻더니 싸이크라가 갑자기 집사와 구루구루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싸이크라는 나름대로 알약 두 알을 먹도록 유도 처방을 하고 있다. 그 알약은 악마의 유혹 같은 그런 약이며,가식과 거짓의 도구였으며,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괴물이 세상을 삼키게 하는 위험한 도구였다. 



이 소설은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우리 사회의 선과 악에 대해 이해하고 ,혼런스러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주는지 일깨워주고 있다.특히 유투브로 나오는 푸드럭이 먹방 유부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구루구루에게 접근하고 있는지,그 과정에서,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알수 있다.그리고 저스티스는 집사 TV에서 공정과 상식을 상징한다. 자신과 가깝다 해서,저스티스는 봐주지 않는다.오직 원칙과 절차에 따라서,집사와 구루구루와 함께 악마의 세계에 들어가 세상을 바꾸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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