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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한국사 2 - 근현대편 ㅣ 시민의 한국사 2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돌베개 / 2022년 6월
평점 :

19세기에 이르면. 조선은 이양선이라 일컫는 서양 선박의 출몰과 통상 요구, 천주교도의 출현을 계기로 서양을 위험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조선 집권층은 천주교를 왕조의 통치이념인 유교를 배격하고 (진산사건),서양을 끌어들여서 왕조를 멸망시키려는 존재(왕사영 백서사건) 로 판단했다. (-21-)
대한제국 수립 이후 근대화를 추진해가는 과정에서 고종 황제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경찰력과 군사력의 강화였다. 개항 이래 군사력을 앞세운 열강의 압력과 국내의 잦은 정변으로 인해 국가의 자주독립과 군주의 신변이 계속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71-)
1895년 5월, 전면적인 지방행정구역 개편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부 목 군 현 등의 불균형한 지방구획 334개를 통폐합하고, 23개의 부를 새로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행정구역은 아관파천 직후 다시 개정돼 13도 체제로 바뀌었고, 이때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이 오늘날처럼 남북으로 나뉘게 된다. (-134-)
3.1 운동은 민족운동사에서 가장 큰 의의를 지닌 일대 사건이었다. 3.1 운동에서 한국인은 신분,계급, 지역, 종교 등의 차이를 넘어 하나로 였고, 이 경험은 이후 국내외 독립 운동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3.1 운동에서 활약했던 지식인 청년, 학생,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민중은 여러 단체를 만들어 대중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11-)
산미중식계획은 식민지 지주제가 더욱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계획 기간에 지주들은 총독부로부터 받은 각종 특혜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한 자금을 활용해 토지를 사들이거나 농민을 대상으로 고리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259-)
조선총독부는 한국인의 신앙을 종교와 유사 종교로 구분해 통제했다. 신도, 기독교,불교 만을 종교로 분류했다. 식민지기에 신흥종교로서 교세가 강했던 천도교,. 보천교 등은 정치색을 띤 종교, 즉 유사 종교로 분류하고 경찰 업무를 맡은 경무국이 담당하도록 했다.하지만 총독부의 이러한 구분법이 실제로 한국인 사이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313-)
10월 19일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넘기 시작했다. 중국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을 내세워 참전했는데,여기에는 미국의 공격을 북한 지역에서 사전에 막아내려는 목적이 자리했다. 국경을 넘어 만주를 직접 공격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다른 한편 중국 국공내전 과정에서 공산군 편에서 함께 싸워준 한인들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있었다. (-363-)
1989년 노태우 정부는 택지 소유 상한제, 토지 초과 이득세, 개발 부담금 추징 등 토지 공개념 관련 3대 법안을 통과시켰다. 곧이어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을 공표했다. 택지가 부족한 서울시 대신 서울 외곽의 그린벨트를 풀어 분당, 일산,산본,중동, 평촌 등에 5개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474-)
1860년대 , 중국에서는 양무 운동이,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이 전개됬다. 서양의 산업혁명으로 ,수공업 산업이 기계화 되었으며, 잉여자원이 발생하였다. 서양의 사회적 문제는 팽창과 확장에 있다.그들이 생산한 제품을 누군가 사주길 원하였으며,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그들은 동아시아가 기회의 땅이었고, 중국과 일본을 표적으로 삼았다.
일찌기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졌으며, 주변 나라와 다르게, 남다른 기술력과 자본으로 힘을 길렀다. 반면 조선과 중국은 문호를 닫아버린다. 그 과정에서,일본은 육지로 진출할 계획을 세웠고,일본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로,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중국은 일본 뿐만 아니라, 영국도 원했다. 그들이 추구하였던 외교 전략은 중국에 인프라를 깔기 시작하였다. 근대화를 위해 철도를 깔기 시작하였으며, 철도망은 전국토의 자원 수탈과 침락을 위해서, 쓰여지게 된다. 근대화는 과거의 전쟁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으며,그 가공할 무기의 힘, 핵무기가 등장하였으며,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다.
책 『시민의 한국사 2』 은 19세기 중반부터, 2021년까지 다루고 있다. 문재인 정부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일제가 조선을 삼키기 위해서, 조선총독부가 만들어졌고, 그 조선총독부 건물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서, 철거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또 다른 업적으로 금융실명제가 있으며, 1998년 김영삼 정부 다음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관계 회복으로 노벨 평화상 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2024년 소살가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대한민국은 두명의 노벨상을 배출하였다.
책 『시민의 한국사 2』은 역사적 흐름에 대해,인과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전쟁은 하루 아침에 뚝딱 진행되지 않는다. 한국은 오랫동안 내전이 있었고,외침아 있었다. 약소국으로서,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졌다. 1988년 한국은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연이어, 2002년 한일 월드컵,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개최함으로서, 스포츠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미래에 마주할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이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22세기를 어떻게 쌓아야 할지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