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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그 화석이 된 흔적들
홍긍표 지음 / 반달뜨는꽃섬 / 2024년 8월
평점 :
점심시간에 벤또라 부르던 도시락을 먹을 때였다.
밥이 차가운데 난로가 없었으니 이른 봄이나 늦가을쯤 일 것이다.
여자 짝꿍의 노란색 양은도시락 뚜껑 속 밥이 뭔지 궁금했다.
힐끗 보니 밥이 아니고 밀개떡에 보리쌀이 적당히 박혀 있다.
내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지금도 전혀 설명할 수 없는 행동으로,
다른 애들이 볼까 재빠르게 나의 쌀밥을 절반이나 퍼 주고,
그 아이의 보리쌀 섞인 밀개떡을 한 움큼 뚝 떼어 가져왔다.
숟가락으로 썰 듯 떼서 한 입 먹어보고는 바로 후회했다.(-17-)
뒤처리로 70년대 중반까지는 신문지도 고급이었는데, 지금은 롤 화장지를 쓰고 비데를 사용한다. 그 시절엔 가마솥이나 연탄불에 물을 데워야 목간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의 화장실은 용변은 물론 언제라도 머리 감고 샤워를 할 수 있으니,아이들한테는 몽달귀신의 공포가 아니라 콧노래를 부르는 행복한 공간이다. (-67-)
딸이 3월부터 당직을 포함해서 36시간 연속 근무는 물론 주당 100시간을 기본으로 일해야 한다고 투덜대기에 버스 안내양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독인다. 그 당시에는 야근할 수 있는 직장을 선호했다. 내 몸이 부서지고 망가지더라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야근이라도 해서 수입을 올려야 했다.지금이야 '복지'가 우선이지만,그때는 '생존'을 위한 노동으로 열악한 근로환경은 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152-)
교훈'낙토건설(樂土建設)'이 바로 새마을 운동의 취지와 딱 들어맞고,이런저런 명목으로 각종 정비사업의 교부금 지원 기회가 생길 때마다, 교훈을 내세운 송악중하교의 사업계획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지원금이 내려오면 교정조회 때마다 교훈을 언급하니 자연스레 귀에 박혔다. (-224-)
옛날에는 면 단위로 술도가가 있어 면민들에게 시큼한 밀막걸리를 제공했다.그 당시에는 면에서 양조장 주인이 제일 일직 일어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는 사실이다. 일꾼은 자더라도 주인에게는 술이 익으면서 점검할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문회장 역시 서울에서 새벽에 내려오거나 3층에서 잠자다가 숙성통을 살핀다. (-304-)
가난과 추위, 배고픔은 추억으로 남기고, 삷의 흔적처럼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누구나 내 삶에 대해서 아련한 기억들 하나는 간직하며 살아간다. 수많은 인생 편린들 중에서,나에게 긍정적으로 남아 있었던 어떤 기억의 꼭지 하나는 남겨질 수 있다.특히 어릴 적 기억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작가 흥긍표. 1962년생이며, 35년째 교편행활을 하고,퇴직을 앞두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자 하는 의지를 책 한권의 수필에서 엿볼 수 있었다.가난에 대한 추억은 꽁보리밥에 남아 있다. 같은 반에서 짝꿍의 도시락을 보면서,자신의 도시락과 바꿔 먹었던 건, 어쩌면, 차가운 보리쌀밥을 씹어 삼켜야 하는 모습에서,연민을 느꼈을 것이다.난로조차 없었던 그 당시에, 봄이 되면, 점심시간,차가운 뻰또 도시락이 감당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내 기억 속에 있는 그 추억이 누군가에겐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놓치며 살아간다.
비석거차기,구슬 따기, 고무줄놀이,술래잡기, 넷플릭스 영화, 오징어 게임 속의 추억의 게임들이었다. 놀 거리 없었던 그 당시에도 아이들은 찾아서 놀 거리,재미꺼리를 만들었다. 100만 명이 한해에 태어났고, 화장실을 공유했으며, 좁은 그 공간에서,이를 하나하나 잡아야 했으며, 구충제를 먹어야 했던 그 시절, 버스 안내양은 낡아 빠진 버스위에 올라타서,승객을 대신 생존과 마주해야 했다. 공순이,공돌이가 존재하였고, 학교 수업은 2부제 수업이었다. 60명이 한 교실에서 수업 받았던 그 기억이 있다. 어릴 적 기억은 아련하다. 하지만 소중하다. 그 때의 가난,배고픔, 추위가 없었다면,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롤 휴지 대신 날짜 지난 신문지를 모아서, 강제로 부드럽게 쓰기 위해서,꾸깃구깃했던 그 시절이다. 모나미 볼펜을 다 쓰면, 몽땅연필을 모아서,모나미 볼펜에 끼워 쓴 기억은 누구나 있다. 지금처럼 학용품을 언제 어디서든 살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지금의 편리함이 우리 사회가 점점 삭막한 사회,나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회로 바뀐게 아닌까 자조섞인 이기적인 마음을 엿볼 수 있다.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고, 우리 앞에 있었던 과거의 추억과 향수.,선생님이 학생 수에 비해 태부족이었기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이들이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던 그 모습이 생생하다.그때느 그렇게 살았다.그것이 추억의 흔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