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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진민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9월
평점 :
이 단어를 처음 듣고서 독일 사람들은 '저녁이 있는 삶'의 차원을 넘어 '축제가 있는 매일 저녁' 을 보내는 구나 생각했다. 물론 사는 모습이야 어디나 비슷하기에 평일 저녁이 매일 그렇게 축제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런 단어를 만들고 매일 쓰는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 특별하지 않을까? (-17-)
독일에 살면 뭐가 좋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랑스러운 독일 맥주를 제치고 내가 최고로 꼽은 것은 바로 삶의 여유다. 불교신자로서 와불의 존재,그러니까 부처님이 종종 누워 계신다는 점을 특별히 좋아하는 나는 독일에 살면서 격렬히 누워 지낼 수 있어 몹시 기쁘다. (-19-)
독일 남부는 일사에 종교적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제르부스라는 인사말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같은 성서 속 표현에서 기원을 찾는다. (-33-)
원래 평범한 격언이었던 이 말은 1873년에 소설 제목으로 알려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공공사업 스로건으로 내걸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그런데 나치 친위대 중령이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소장으로 악명이 높았던 루돌프회스의 제안으로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유대인 강제수용소 정문에 이 문구가 붙여진 것이다. (-72-)
넷째,화분에 심은 꽃보다 자연에 피어난 꽃이 부리르 더 깊게 내리고 가지르 활작 펴듯,아이들도 가두지 말고 맘껏 뛰놀게 해줘야 한다는 뜻,유치원이 아이들의 정원,즉 '킨더가르텐'이 된 이유다. (-111-)
누구나 공평히 심장에 차고 있는 시계 초침소리가 있다. 그 소리를 마치 카니발의 시작처럼 시끌벅적하게 들을 줄 아는 일.그리하여 깨어날 수 있는 일, 또한 타인의 여린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부드럽게 깨워줄 수 있는 일,아우프베켄이라는 동사는 어느 방향으로 누구를 깨우고, 나는 어느 방향으로 일어서야 하는지 내게 묻는다. (-181-)
언어는 모국어와 외국어로 구분한다. 같은 한자권 언어라 하더라도,일본어, 중국어, 한글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같은 한자권이라 하더라도, 삶이 다르고, 문화가 차이가 나고,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언어의 차이는 존재한다. 즉 영어권 한자라 하더라도,그들이 쓰는 언어의 속성은 다를 수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고,한글 창제와 훈민정음 일화는 널리 알려지고 있다. 반면 영어와 독일어, 이 두가지 언어는 외국어로 통한다. 학교 다닐 적, 독일어 선생님이 영어도 병행해서 가르친 바 있어서, 그 때 당시 독특한 상황을 마주한 적 있다.제 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우지 않았지만, 독일어가 매우 애틋한 감정이 남아 있는 언어다.
독일어를 이해하면, 독일 사람의 삶의 방식과 그들이 추구하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과 다른 차이점은 그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성격 급한 한국인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답답한 상황이기도 하다. 빨리 해야 하는 상황에 할 수 없다는 것만큼 화가 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독일에 가면, 독일의 관습법을 따라야 하는 불문율이 생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일에 사는 철학하는 엄마 이진민의 독일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흔히 독일은 한국에 비해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며, 엄격한 법을 우선하고 있다. 독일어는 독일의 환경과 밀접하게 엮여 있으며,철학자 중에 독일인이 많은 이유를 확인해볼 수 있다. 규칙적이 삶과 마이스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일은 제품 하나하나에 대해서,엄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책에서, 독일교육의 특징을 세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 독일의 유치원 교육이 한국의 유치원 교육에 반영되고 있으며, 유치원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분위기를 조성한 목적 또한 독일의 교육 영향이 크다 말할 수 있다.독일의 역사관은 처절한 반성의 역사다. 전쟁 범죄국가로서, 그들은 히틀러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그들의 죄는 무겁지만,그들이 추구하는 교육 방식을 우리가 배워야 하는 이유다.
말로 친일에 대해 문제 제기하지만, 현실적으로 더 나아진 건 없기 때문이다.독일사회에서, 유럽 난민들 적극 받아들이는 것 또한 독일인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교육 방식에 의한 결과다.한국이라면 난민수용 반대 시위를 하지만, 독일은 난민수용 요구 시위를 한다.그것이 한국과 독일의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