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전, 최강국의 탄생 -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가른 해양패권 흥망사
폴 케네디 지음, 이언 마셜 그림,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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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 해군과 전략적으로 관련된 전체적인 풍경이 적어도 네 방향으로 크게 변했다. 첫째, 이탈리아와 독일과 일본의 해군이 소멸됐고,그보다 일찍 프랑스의 함대가 힘을 상실함으로써 1930년대를 특징짓던 다국적 균형이 사라졌다.둘째, 대포를 장착한 군함, 즉 전함과 중순양함의 시대가 끝나면서 그 대부분이 고철 처리장으로 옮겨졌다. 셋째, 원자폭탄이 도래하며 전통적인 육군과 해군 및 정규 공군의 효용성과 역할에 의문표가 던져졌다. 끝으로는 미국이 인류 역사상 어떤 제국보다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새로운 질서가 구축됐다. (-17-)



영국과 일본과 미국은 워싱턴 조약을 준수하기 위해 주력함의 수를 조절해야만 했을 때 폐기하는 게 나았던 전투 순양함을 대대적으로 개조해 긴 비행갑판을 만들어내며, 항공모함의 발전에서 다음 단계를 이루어냈다. 영국 해군은 글로리어스호, 커레이저스호, 퓨리어스호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했고, 일본 해군은 아카기호를,미국 해군은 거대한 전투 순양함이던 렉싱턴호와 새러토가호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했다. (-87-)



하지만 주된 교전국은 1914년 이후로 숙적 관계이던 영국과 독일의 해군이었다. 전략적으로는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은 듯 했다.네덜란드와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다시 중립을 선언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도버 사령부의 군함들이 영국해협을 차단했다. 독일의 기뢰 부설함들이 헬골란트섬과 그서쪽까지 기뢰를 대대적으로 설치했고, 영국의 기뢰 부설함들은 독일 항구들과 섬들의 앞바다에 기뢰를 던져두었다. (-178-)



한편 영국은 변함없이 독일 타도를 제1 목표로 삼았다. 이탈리아는 도전자는 여전히 부차적인 적으로 여겨졌고, 극동에는 더 낮은 순위가 매겨졌다. 따라서 처칠 정부는 바다와 공중과 지상에서 벌이는 독일과의 전투를 항상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독일을 상대하는 데 대영제국의 전투 자원을 대거 투입했다. 이즈음 영구이 항공기 생산에 할당한 막대한 투자에서 이런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고, 이런 투자는 전쟁을 런던에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는 데 둘째로 중요했던 군사적 변화였다. 1941년 중반전, 영국 공군은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250-)



일본의 공격은 크고 분명한 표적, 즉 미국 전함에 집중했다.하지만 많은 역사학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곳이 공격을 받지 않았다.잠수함 기지와 잠수함 사령부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고, 중요한 석유 저장 시설과 항공유 저장고도 고스란히 남았다. 하지만 원유를 잔뜩 담은 저장고가 화염에 휩싸였다면 진주만은 다시 함대 기지로 기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해군 수리 조선소, 크레인, 용접 공장, 전력선과 송유관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301-)



이론적으로 보면, 연합군이 도쿄에 반격할 수 있는'다섯 번 째' 선택안이 있었다. 북태평양을 곧바로 가로지르는 방법이었다. 그 방법에 내재한 유일한 문제라면 끝없이 휘몰아치는 폭풍이었다. 그 경로에 위치하는 섬들은 양측 모두에게 전략적 유용성이 거의 없었다. 1942년 6월, 일본 원정군이 일류샨열도에 속한 애투섬과 키스카섬을 점령했다. 끝없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두 섬은 미국 영토에서 적의 손에 떨어진 유일한 곳이 됐다. 그러나 그 점령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433-)



강대국들이 부담한 군비를 비교해 측정해보면, 1943년에 영국은 국민소득의 55퍼센트를 군사비에 지출했고, 소련은 60퍼센트 이상, 나치 독일은 동서 양쪽의 이웃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자원을 약탈했는데도 70퍼센트를 지출했다. 미국은 다른 모든 강대국보다 훨씬 많은 돈을 전쟁에 쏟아부었지만 , 군사비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한 비율은 42퍼센트에 불과했다. (-499-)



태평양 전쟁을 마무리 짓는 해에 미국과 일본은 실질적으로 세 종류의 교전을 치렀다. 각 교전은 규모도 달랐지만 전투가 전개된 속도도 달랐다. 첫 번 재 교전은 이오시마와 오키나와 및 궁극적으로 일본 본토를 침공하기 위한 준비와 관련된 세 번의 해군 작전이다. 두 번째 교전은 일본 경제를 옥죄기 위한 목적에서 미국 잠수함이 일본 상선 활동을 방해하고, 마리아나 제도에서 출격한 제20공군의 전략적 폭격이란 다른 형태의 경제전쟁이었다. 그러나 세번 째 형태의 교전은 상당히 비도적적인 충동이었다.상륙하는 미군을 보호하는 군함이나 미군이 상륙한 지역에 대한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의 공격은 상당한 규모도 무척 오랫동안 계속되며, 양쪽 모두가 커다란 피해를 안아야 했던 군사작전이었다. (-584-)



따라서 1960년 이후에도 미국 해군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 예산의 지원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항공모함 함대로 세계 곳곳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됐다. 진주만 공습을 받은지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엄격히 말하면, 미국 대서양 함대의 자부심이던 텍사스호가 유화정책이 한창이던 때 잉글랜드의 포츠머스를 의례적으로 방문하고, 22년이 지난 때였다. (-660-)



1939년 이전 전세계 해군력을 보유한 주요 구가 6개국으로 영국과 미국, 일본과 프랑스,이탈리아와 독일이 있었다. 세계최강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과 영국에 비견되는 미국이 있었으며, 두 나라를 이기기 위해서, 일본,이탈리아, 독일이 새로운 해군력을 지닌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세 나라가,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며, 대서양과 태평양, 양대 해양을 둘러싸고,미국과 전면전을 치루었다.



1921~1922년에 채결된 워싱턴 조약이 있으며, 6개의 대함대가 있었던 그 당시 6개국은 이 워싱턴 조약을 준수해야 했다. 해군 규제시대의 대함대로 이루어진 해군이 존재하였으며,전쟁을 앞두고 해군 전력을 재정비할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은 유보트 부대가 있었으며, 일본은 가미가제 특공대가 존재했다.이 두 나라가,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때, 지리적 조건과 경제력을 우선하여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영국의 해양 군 전력은 독일에게 처지는 상황에 놓여지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석유 자원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진주만 공습에 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해군력에 쫒아가야 했던 일본이, 선택한 것은 일본 본토와 중국 만주를 거점으로 한 군수 물자 공장을 준비하는 것에 있었다.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에 끌려가서, 군수 생산 기지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노동을 했으며, 탄광에서, 철광석과, 석탕를 캐내는 중노동을 시작하였다.이 과정에서, 조선인 노동자가 다수 죽었으며,일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미쓰비시 기업이 운영하였던 군함도가 대표적이다.



일본이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철 생산량을 극대화하였다. 그다음 구축함, 순양함, 항공모함, 어뢰, 전함, 유조선, 군인수송함 을 건조하는데 전 국력을 쓰는데 올인하였다.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시행되었던 됭케르크 철수 작전이 있었으며,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였다.그러나 일본과 독일은 끈질기게 연합군의 공세를 무력화하기에 이르렀으며,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공군력을 우선하였다.항공모함이 바다 위에 뜨고, 뒷받침이 되는 것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항곰모함을 건조하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일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으며, 하와이 진주만에 가미가제 특공대를 이용하여, 미국의 해군력을 약화시키는데 올인하였다.



일본은 진주만의 주요한 거점을 건드리지 못하고, 일본 본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두 발로, 일본은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이 책을 통해서, 10년 간 동아시아, 유럽 뿐만 아니라, 필리핀, 싱가포르 , 인도차이나 반도 등등 영국의 식민지가 존재하였던 그곳을 침공하여, 일본의 식민지로 삼았던 그 당시의 모습 뿐만 아니라, 바다와 하늘, 지상을 움켜쥐기 위한 전재의 순간들의 어떻게 이어지고 있었는지 확인시켜주고 있었다.이 책의 뒷부분에 있는 <도표 12>에는 <인과관계의 사슬:수리남과 보크사이트 광산에서 서태평양의 승전까지 , 1943`1944> 가 나오고 있었다. 보크사이트 광산, 광석 운반선, 너벅선, 알코아제련소, 프랫 앤 휘트니 공장, r-2800 엔진, 그러먼 공장, 헬캣, 미국 항공모함 에식스호, 마리아나 칠면조 사양까지 , 10년간 미국이 일본과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햇던 전쟁의 인과 사슬 속에서, 제2차세계대전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으며, 패전과 승전보가 반복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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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노이즈
전여울 지음 / 키다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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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곳곳에 숨겨진 세대 차이는 서로의 간극을 좁히는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갈등과 차별, 혐오로 이어지고 있었다. 10대 청소년에게 이해와 공감,위로와 치유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고,대화와 소통의 장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쓰여진 책 『너와 나의 노이즈』에는 10대 청소년 한정원이 학교 생활에서 ,마주하고 있는 관계의 어려움,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서,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갈등과 혐오를 학습하는 10대 청소년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느끼고, 고민할 수 있도록 사고력을 키워주고 있다.




김두나 선생님 시간에 잠들어 있는 한정원, 지금은 체벌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두나 선생님은 말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벌점으로 아이의 학교 생활을 점수화 한다. 무소속 상태인 정원은 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에 빠져들어가다가 수업시간에 잠들게 되었고, 그 모습을 못마땅해 하는 두나 선생님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전에, 문제를 성급하게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정원의 머릿 속에는 어떻게 하면, ASMR을 일상 속 소리들을 하나하나 담아내어서,ASMR을 만들 것인가 고민할 뿐이다. 










정원의 마음 속 아픔은 동생 한영원 때문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 10대 청소년의 내면속 상처를 느낄 수 있다. 정원이 ASMR을 만들어 가는 건,자신의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ASMR을 만드는 과정 하나 하나가 다른 일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다. 학교 선생님 김두나 선생님은 자신의 언니 김하나 원장이 운영하는 양로원 명함 『고요한 양로원 원장 김하나』으로 정원이 자신의 문제를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꼐 생활하고,봉사활동을 통해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양로원에서 본 까칠한 미스터 킴과 대면하고,개성강한 노인들을 대하면서, 나와 너, 확실하게 선긋기를 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부끄러움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키다리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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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김의 심리학 - 정신의학 전문의의 외모심리학 이야기
이창주 지음 / 몽스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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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9일 '미녀 대학생을 만나다' 에서, 출연자들은 180cm 이하 남자는 루저다 라고 자신의 비뚤어진 이성관을 드러냄으로서, 출연한 대학생의 루저 파문으로 ‘미녀들의 수다’ 존폐기로에 선 바 있었다. 한국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를 그대로 나타났으며, 그 때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었다. 외모와 능력을 중시하는 대한민국에서,외모 컴플렉스, 외모 스트레스가 심각하며, 성형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쌍꺼풀 수술 등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이유이며, 외모 비하가 신체 이미지 왜곡 현상으로 잘 드러나고 있었다. 우울증, 비만, 자기 비하로 인해, 사회생활에 대해 고민과 고뇌를 안고 있는 현대인이 늘어나고 있다.



외모 비하로 , 외모와 관련한 별명이 있다.축구 선수 손흥민 또한 외모 비하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상대 축구 선수의 외모 비하에 저돌적으로 들이댄 바 있다.

'저팔계, 돼지, 가가멜, 아즈라엘 등등 별명이 그 사람의 외모를 상상하게 해주고 있으며, 얼굴이 못생기거나, 비만, 키가 작거나, 피부 트러블에 시달리며,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여기는 모습이 고정되어 있으며, 획일화된 외모가 고정되어 있다. 결국 작가는 고등학교 때 경험했던, 탈모 스트레스, 전두 탈모증으로 인해 신체적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자신의 신체 이미지와 심리치료를 위해 『못생김의 심리학』를 쓴 이유다.



외모는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자신감,당당한 사람은 외모가 '성형= 인생역전=성공'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등등 미디어 공간 안에서, 외모가 '좋아요''팔로워' 점수로 매겨지고 있다. 내 인생이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 너머에는 외모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그것이 현실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 '외모 스트레스 =여성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그건 여성이 사회생활에 필수 미덕으로 외모를 첫번째로 손꼽히고 있는 이유다. 합리적 정서행동치료를 통해서, 비합리적인 생각과 왜곡된 인식 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긍정적인 신체상을 형성하기 위해서, 당위적 사고를 반복적으로 가치치기하는 작업이 지속되어야 한다. 특히 직장생활,사회생활에서, 일이 풀리지 않을 대,자신에게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취업 준비생일수록 면접 준비에 있어서, 외모 관리를 첫번째로 손꼽히며, 외모, 메이크업, 옷차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유다. 결국 외모가 첫인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못생김의 심리학』에는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상처를 씻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작업 중에서, 개인사 파악 뿐만 아니라,나이, 직업, 종교 같은 기본 정보, 개인의 방어기제, 가족 관계, 학창 시절, 성장과정 하나하나 살펴 보고 있었다.개인마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것은 바로 외모의 변화가 정서적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학교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책 『못생김의 심리학』은 작가가 경험한 외모 컴플렉스를 심리적 치유를 통해서, 부정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사고를 얻기 위해서, 쓰여졌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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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걷다 -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이야기
이만근 지음 / 스타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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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독립협회가 해산되자 필대은은 곧 평양에 내려와 서양 선교사의 어학 교사로 일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필대은이 당시엔 불치병이던 폐결핵에 걸려 투병하였다. 안창호가 몇 달간 밤낮없이 극진히 간호하였는데도, 결국 필대은은 1900년 25게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33-)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잠시 뜻을 얻었노라 까불대는 이 시운이

나의 등을 내밀어서 너를 떠나가게 하니

이로부터 여러해를 너를 보지 못할지나

그동안에 나는 오직 너를 위해 일하리니

나 간다고 설워 마라 나의 사랑 한반도야.

도산은 같은 해 6월에 이갑, 이종호, 유동열 등이 먼저 북경에 도착하였음을 알고 배로 천진을 경유 다시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갔다. (-133-)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미국에 도착한 도산은 1926년 다시 중국으로 갈 때까지 약 13개월간 미국에 머물며 동포의 형편을 보살피는 일에 성의를 다하였다. 이번 미국 방문은 가족 상봉은 물론이고 서재필을 만나서 새로운 독립운동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자 하였다. (-220-)



한흑구의 삶과 문학이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서 귀중한 의미를 생성한 시기는 1929년 3월부터 1934년 3월까지 5년동안의 미국 유학과 방랑, 그 기간에 창작한 문학 작품과 행동 자, 그리고 그때의 공부와 체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평양에서 발표한 문학 작품과 문학적 활약 등이다. 그는 동광, 개벽 등에 흑인의 시를 최초로 번역, 소개한 대표적인 전신자로 일컬어진다. (-317-)



192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 북캘리포니아에서 법인을 만들어 농업 관련 사업을 운영하였으나 농사일의 힘듬과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382-)



도산 안창호는 독립운동가의 대부였다. 안창호의 업적은 그의 막내 아들이자 미국에서 배우로 활동하였던 안필영에 의해서, 아버지의 독립 운동에 대해서, 그 시대의 사명이었다고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으며, 가족 모두 안창호의 독립운동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 받아들였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탄생될 수 있었다.



작가 이만근은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 후, 흥사단 본부 조직 홍보부장이다. 1964년부터 흥샤단 운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으며, 『흥삭단교본』, 『흥사단운동 70년사』, 『흥사단 100년사』, 『흥사단인물 101』 등의 집필과 편찬에 참여한 바 있다. 안창호 애국지사는 1878년 순흥 안씨 유교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개신교 (장로회) 로 전향하였으며, 도산(島山) 이라는 호를 짓게 되었다.



책 『도산 안창호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걷다』의 특징은 도산 안창호의 업적 뿐만 아니라,그가 살았던 60년의 생에 동안 안창호의 민족주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인물 혹은 안창호를 롤모델로 삼아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특히 필대은의 업적을 추종하었던 안창호는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읽고 , 자신만의 인생을 나아갈 수 있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조선 땅이 아닌, 해외에서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흥사단 운동을 조직하여, 혁명사상, 독립욷동, 애국활동,계몽사상을 시행함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조선인 스스로 의식을 계몽하는데 힘써왔다. 그 다음 , 안창호 애국지사는 한국독립단 창단 멤버이면서, 흥사단 인맥을 한국독립단 창당 멤버에 많이 앉혔으며, 한국 독립에 큰힘을 써왔으며,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 폭탄을 던진 훙커우 의거에서 윤봉길 의사 의거의 배후에 배후에 안창호가 조직한 흥사단 운동이 있었다.



특히 이 책은 그의 독립운동의 역사 뿐만 아니라, 흥사단 원동 임시위원보 출범(1924. 2.7~8) 에 힘써왔으며,연해주 독립운동을 이끈 안태국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었다. 명예,지위, 권력,이 세가지를 모두 내려놓았던 안창호 애국지사가 보여준 독립운동의 시간 속애서, 도산 안창호 가계도 안에는 안창호와 아내 이혜련 사이에 태어난 2남 3녀(안필립, 안필선, 안수산, 안수라, 안필영) 이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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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빅 - 크게 꿈꾸라
밥 고프 지음, 에제르 옮김 / 블레시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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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에 있는 더 깊은 열망을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라. 굳이 추측하자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여기 있는 이유다. 당신은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굳이 정의하지 않아도 당신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삶을 넘어서는 그 무엇' 이며 당신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대담한 꿈으로 끌어당긴다. 그것은 한 때는 원했으나 지금은 흥미를 잃게 된 직장을 두고 고민에 빠지게 되었을 때 당신을 괴롭힌다. (-35-)

변호사로서,나는 가족을 부양하면서 일부는 기부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돈을 벌었다.그리고 그 돈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변호사가 되려 했던 나의 초기 포부는 훌륭하고 올바르며 도움이 되는 것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을 도우려는 나의 새로운 포부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앞질러버렸다. (-72-)

보다 중도적인 방법이 있다. 포부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희생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포부를 '시도'하는 것이다. 집을 사는 대신 임대해 보는 것이다. 당신의 포부에 시간을 투자해 보라. 함께 공원에 가서 무릎을 맞대보고, 해변을 거닐며 손을 잡아 보라. 함께 주변을 드라이브해 보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포부 하나를 다른 포부와 비교하고 가장 좋은 포부를 선택하라. 포부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애물이 현실에 기인한 것인지 두려움에 기인한 것인지 분별하라. (-134-)

나는 투명 자뭀쇠를 구입하여 종이 클립을 넣고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자물쇠 내부의 일곱 개 핀을 볼 수 있도록 해서 배웠다. 투명 자물쇠를 통해 내부를 들여다 보면서 자물쇠를 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내부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물쇠르 따려면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것을 연습하려고 나는 투명 자물쇠를 테이블 아래에 놓고 연습했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물쇠를 따려면 숙련된 자물쇠 따는 사람의 기술이 필요하다. (-191-)

'포부' 라는 단어의 뜻은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희망' 이다. '포부가 크다.' 라는 문장 속에서, 일론머스크가 먼저 떠올랐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놓으며, 생각,가치관,시념에 대해서, 불변을 변화로 전환시켰으며, 크게 꿈꾸는 자가 크게 얻을 수 있다.

즉, 꿈과 포부는 함께 간다. 열정을 가지고 성장을 꾀하며, 그 성장이 내 삶을 버티는 힘이 될 수 있었다. 드림이란 행동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구슬이 서말이라고 꿰어야 보배다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 밥 고프는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힘듦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포부가 큰 사람은 그것을 견딜 줄 알고, 어떻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자다.포부가 큰 사람은 크게 버리고, 크게 희생할 줄 아는 자다.

어떤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응원하고,지지해 주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이 세상 그 어떤 꿈도 혼자서 해낼 순 없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열세 개 딴 선수들 조차도 자신의 꿈을 혼자서 이룬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선수들 면면의 숨어 있는 꿈은 세계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강함 포부에 있었으며,그것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동기는 언제든지,어디에서든지 작동하고 있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느지 아는 자가 꿈을 이룰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건, 스스로 꿈을 찾아가는 등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헤맬 것이다. 꿈을 왜 원하는지 항상 생각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꿈을 꾸는 것만 중요하다. 그 꿈을 왜 가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포부가 크다는 말 속에는 내가 꾸는 그 꿈을 왜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 만이 가능하다. 최근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 안세영 선수 또한 자신이 왜 금메달을 따기를 원하는지, 금메달을 따고 어떻게 할 것인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마치 준비한 듯, 금메달 수상 후 술술 나오는 말 한 마디 한마디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꿈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크게 꿈꾸는 자만 할 수 있고, 그 꿈이 드림 빅 Dream Big(크게 꿈꾸라!) 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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