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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스트리트
제니 잭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7월
평점 :
사샤의 집에 있는 방 하나는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입구였고, 그 차원은 1997년 이었다. 이 방에서 사샤는 파란 플라스틱 껍질에 싸여 있는 달걀 모양의 아이맥 컴퓨터, 딱딱한 종이로 만들어진 리프트 티켓이 지퍼에 잔뜩 매달려 있는 스키 재킷, 무더기로 쌓여 있는 쭈글쭈글한 비행기 탑승권,그리고 서랍 안쪽에 숨겨진 가느다란 담배 파이프와 낡은 노란색 라이터를 발견했다. 사샤가 남편에게 시누이의 고등학교 시절 잡동사니들을 상자에 넣어 치워버리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남편은 눈알을 굴리며 기다리라고 했다.
"시간이 되면 알아서 챙겨 가겠지." (-15-)
김 가와 스톡턴 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김순자와 김영호는 1960년대 후반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고, 스톡턴 가는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건너왔다. 김씨 부부는 빈손으로 와서 자수성가했다. 영호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약사로 성공했고, 달리의 아버지는 자기 아버지의 재산과 사업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김씨 부부는 허심탄회하고 다정하며 실리적이었다. 결혼 후 순자와 영호가 달리에게 자신들을 이름으로만 부르라고 했을 때 달리는 망설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친구들을 부를 때면 그들의 성에 꼬박 미스터 혹은 미세스르 붙였다. (-58-)
조지애나가 아는 그들은 좋은 사람이었다. 리나와 크리스틴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길바닥에 드러눕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친구였다. 그들은 민주당에 투표했고 가족계획연맹에 기부금을 냈으며, 박물관 회원권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가족은 이런저런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고, 자선행사에 참석하고, 팁을 후하게 주었다. (-134-)
브래디가 죽었다. 그의 몸, 주근깨투성이의 등, 잘 때 발목을 꽉 움켜쥐었던 발가락들 전부 조지애나가 한 번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어딘가에서 잿더미가 되어벌였다. 다시는 그를 안지 못하리라. 그의 얼굴을 보지도, 그의 입에 키스하지도, 심지어 그녀가 그토록 열렬히 숭배했던 몸을 바라보면 애도하지도 못하라. 그녀는 어린 시절 집의 돌계단을 휘청휘청 오라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199-)
사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 사샤의 형제들이 낚시하러 나갔다가 세 시간 늦게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노를 선창 밖으로 던져 버린 적이 있기 때문에 다들 어머니의 협박을 건성으로 듣지 않았다. (-276-)
달리는 돈을 가진 사람들의 한 가지 성향을 알아챘다. 그들은 대단한 결속력으로 똘똘 뭉친다. 타고나기를 천박하거나 물질주의자거나 속물이라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면도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돈이 그들을 마우 걱정없이 주말에 친구를 버뮤다 제도에 초대하고, 아무 걱정 없이 몬트리올 항공편을 구하고, 아무 걱정 없이 차를 대여하고 비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재킷에 넥타이 차림으로 클럽에 갔다. 그들의 친구들도 같은 수준으로 빚없이 살아가고 있을 터였고 그들끼리는 돈을 대신 내주거나 턱시도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하는 것도 ,금요일에 급료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전혀 거북한 일이 아니었다. (-330-)
작가 제니 잭슨이 사는 곳은 브루클린 하이츠이며, 소설 『파인애플 스트리트』의 배경 또한 브루클린이다. 대한민국의 부촌이 'OO동','OO 아파트' 로 대표한다면, 미국의 부촌은 '파인애플 스트리트' 및 'OO 스트레트'거리로 대표하며,도로를 가로질러서, 부자와 빈자로 구분하고 있다. 도로를 중심으로 정책이나, 정치인들이 달라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소설을 이해하기 전, '파인애플 스트리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소설 주인공은 사샤 로시다. 그녀는 스톡턴 가(家) 에 코드 스톡턴에게 시집갔으며, 스톡턴가의 시아버지,시어머니 칩과 틸타는 새로우 대저택으로 이사감으로서, 각자 세대가 분리되었다. 부동산 사업으로 돈을 벌었던 스톡턴 가(家)의 대저택은 내 상상을 뛰어 넘는다. 1997년 과거에 머물러 있었으며, 버리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시누이의 짐을 빨리 치우고 싶었던 사샤 로시는 남편이 협조하지 않아서, 실행으로 옮길 수 없다.
스톡턴 가는 장남 달리, 차남 코드, 막내 조지애나가 있다.이 세사람의 행동,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 부자들의 사고방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 21세기판 상류층의 삶을 그린 ‘베버리힐즈의 아이들'을 연상하고 있으며, 막내 조지애나는 비영리기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돈에 대한 개념없이 살아가고 있으며,유부남과 사귀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누리고 있다.
사샤가 걱정하는 일상과 조지애나가 걱정하는 잉상은 너무나 차이가 났다. 사샤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조지애나는 쉽게 해결하지 못한다. 돈과 관련된 문제들은 조지애나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반면, 사샤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돈 문제에 있어서,계획적인 사샤와 그렇지 못한 조지애나의 일상,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1995년 재벌 3세 정용진에게 결혼했지만, 8년 뒤 이혼했던 미스코리아 고현정이 생각난다. 사샤는 스톡턴 가에 들어왔지만, 혼자 무인도 위에 살고 잇는 기분이 들었고, 그들에게 도리어 꽃뱀 취급 당하고 있었다. 정작 꽃뱀은 사샤가 아닌, 조지애나라 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 언론에서,재벌가들이 저지르는 부정 부패가 발생할 때,미국 상류층을 본받아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으며,빌게이츠처럼 초상류층의 기부해위를 대한민국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상류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정신 말이다. 하지만, 그들도 속물적이며, 사회에 기부하고,자선행위를 하는 것 또한 의도적이며, 목적을 분명하다.그들은 사회에 자신이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기부하는게 아니었다.부자가 되어서, 가난한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면서,자칫 묙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 모면할 수 있는 길은 노동보다 돈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김씨 부부의 삶을 동경한다. 조지애나의 사고방식을 보면,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를 본다면, 사샤에게 돈은 선택과 결정을 확항하게 해주는 인생의 약이 되지만, 스톡턴 가 차녀 조지애나에게 돈은 자신에게 세상의 모든 이에 대해 무임승차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인생의 독으로 작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