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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편지
이머전 클락 지음, 배효진 옮김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저거 들려" 이쯤 되면 온 세상이 다 들었을 터였다. "아빠가 숟가락으로 식탁 두들기는 소리야. 벌써 한 시간반째, 그만하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숟가락도 안 내놔.오빠, 솔직히 나 이제 더는 버틸 자신이 없어." 눈물이 왈칵 차오르는 것을 느끼지만, 아빠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입술을 꽉 깨물며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11-)
언니 우르술라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하자 언니는 피식 웃었다. 어떻게 나가겠는가? 갈 곳이 없는데. 애니는 맞받아치며 프린톤 온 시에 있는 해변 오두막에 대해 설명했다. 순간 우르술라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더올랐다. (-28-)
마이클과 카라는 집 안에만 갇혀 있어 놀거리가 거의 바닥났다. 집에서는 모든 것이 다 규칙이고 그들이 놀 수 있는 곳 역시 정해져 있다.마이클의 방은 거실 바로 위에 있어서 뛰거나,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심지어 큰 소리로 이야기라도 하면 즉시 계단 아래에서 아빠의 불호령이 들려온다. (-58-)
애니는 팔짱을 더욱 꽉 낀다. 우르술라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조에 대한 마음은 화고했다. 그가 청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심지어 애니는 미리 거울 앞에서 놀란 듯 기뻐하는 표정을 연습하기까지 했고, 그래서 어느날 밤 반짝이는 눈으로 그가 퇴근하는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그녀 역시 준비가 되어 있었다. (-109-)
"아니야, 오빠 .아니라고. 1987년이든 언제든, 앤 페런스비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사망진단서가 없어.그게 엄마 이름이 아니라며 몰라도, 엄마는 죽지 않았어. 그리고 엽서는? 엽서도 엄마가 살아 있다는 증거 아냐? 비록 떠났지만 우리를 사랑한다는 걸 알려주려고 엽서를 보낸 거잖아.수백장이라고, 오빠.수백장." (-150-)
아빠는 또다시 소리친다. 사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아빠는 항상 엄마에게 호통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지적한다 가끔은 마이클이 끼어들어 엄마를 편들고 싶어서 할말을 생각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지만, 엄마는 그의 생각을 읽은 듯 늘 그나 입을 데기도 전에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시킨다. (-241-)
우르술라는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느낀 듯 고개를 들었다가 나를 발견한다. 잠시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응시한다. 나는 부어오른 눈이 신경 쓰이지만 그녀 역시 조금은 전날 저녁을 울면서 보내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갑작스러운 등장은 일종의 속죄일까? (-367-)
"그날 밤 네 아빠가 자물쇠를 바꿔버렸고 다음 날 나를 들여보내주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았어. 난 몇 시간이고 문을 두드렸어. 안에서 네가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그 사람은 문을 열지 않았어.우편함에 대고 네 이름을 불렀지만 집에 라디오를 너무 클게 틀어놔서 네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 집 밖으로 나온 이웃들은 구경만 할 뿐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어. 나는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앉아서 네 이름을 부르며 울부 짖었단다." (-489-)
소설가 이머전 클락은 상법 전문 로펌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이후 법조게를 떠나, 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남편, 아이들과 함께 영국 요크셔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 곁에 다가온 소설 『낯선 편지』은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무덤 속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이 존재한다.
소설 『낯선 편지』의 주인공은 카라와 미이클 남매다. 둘은 어려서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아빠와 함게 살았고,집안에서 엄격한 아버지로 인해, 일상에 제약이 있었다. 아빠의 말이 곧 법이었던 1987년 당시, 자물쇠로 잠겨진 집안 다락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아빠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것이다. 절대 들어가서는 안되는 다락방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망진단서가 없었고,출생증명서도 없었다.
비밀은 그렇게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절대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는 그 진실, 엄마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이모 우르술라는 알고 있었다. 카라는 런던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오빠 마이클을 호출하였고,우르술라 이모를 직접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이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오해와 착각으로 살아왔던 30년간의 세월 속에 숨어있는 엄마의 인생이 노출되고 만다.
이 소설은 무겁지만, 우리가 진실을 마주하는 그 순간 내 삶이 바뀔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그 진실, 그 진실을 아빠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다락방에는 그 진실이 존재했다. 자신을 억압하였던 존재, 갑작스럽게 사라진 엄마에 대해서, 그 내막을 찾아가게 되었고, 편지 속 T 가 누군지 알고 싶었다. 그 진실을 마주한 순간, 엄마에 대한 불신이 꺼질 수 있었고,그동안 30년 동안 아바가 두 남매을 억압햇던 이유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