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조 사회 2 - 바스키아의 검은 고양이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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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는데 지금 얘길 듣다 보니 생각났어요.모조 사회에서는 아름답게 조경된 식물들만 봤지 큰 나무는 보지 못한 것 같아서요."
"역시 예리하시네요.맞아요.거기 나무들은 구시대 형태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는 뭐가 정상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식물의 형태로 청정 지역을 구별할 수는 있어요.그게 딱 한 군데뿐이라서 그렇지.아무튼 지구에서 딱 거기만 그렇게 청정 지역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그래서 대재난 이후 분명히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된 거고요." (-54-)


노박은 반도에 도시 문명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귀족이었던 가문의 혈통이었다.지배 계급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으므로 지배 계급이 아닌 것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가문의 후손이었다.이제까지 지속해왔던 도시 연호에서 순혈이 아닌 자의 이름이 채워진다는 것을 노박과 노박의 무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들에게 그것은 잃어버린 세월, 지워버리고 싶은 암흑 시기나 다름 없었다. (-170-)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가령 정탄 씨가 모듈에서 어떤 사물을 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면 신경회로 컨트롤러가 재빠르게 감지하고 보기 바로 직전에 초확장 현실로 그 사물의 형태를 갖춥니다.정탄 씨는 그 후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거고요.그전에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은 무의 세계로 존재합니다.피코초보다도 더 빨리 이루어지는 과정이라 인간은 그 차이를 느낄 수 없어요."(-291-)


모조의 가슴속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올랐다.마치 이 세계에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물질을 발견한 과학자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전투는 중요하지 않았다.어차피 테라포밍은 거의 다 마무리되었고 저들이 왜 콘클라베를 공격하는지도 알았다.저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주면 그만이었다.지금 단계에서 저들과 싸울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저들이 도시를 통째로 원한다고 해도 다 넘겨줄 수 있었다.식민구역을 해방하든 신경회로 컨트롤러를 해체하든 다 저들이 알아서 할 바였다. (-373-)


도선우의 <모조사회>는 두권으로 이뤄져 있다.두 권 모두 700페이지가 넘는 두께를 자랑하고 있으며, 장르는 SF 소설이다. 즉 이 소설은 제4차 산업 혁명 시대가 도래한 이후의 세계,우리의 자화상을 작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지금 현재 우리의 삶과 미래의 삶을 상호 비교해 볼 여지를 전달하고 있다. 여기서 보면 지금 우리의 세계는 여전히 디스토피아다.그리고 앞으로도 디스토피아 세계를 구현할 거라 보여진다.인강의 욕망이 만족을 하지 못하고,한계를 깨려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인간의 힘으로 안 되니,이제 기계의 힘과 과학의 힘을 동원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소설은 여기치 않는 세상을 구현하게 되었다.


세상은 파괴되었다.지진인지 , 무언지 알지 못하는 것, 그로 인해 소설 속 주인공 셋 중 하나는 의식과 무의식,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다.나와 너 사이의 피아의 차별적인 요소조차 검증하지 못하고, 인간이 당여하게 생각하는 자아의 개념조차 불분명하다. 은수가 자신에 대해서 또다른 복제품 '수'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여기서 소설은 바로 그들의 흔들리는 존재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그 저항과 항거 사이에서 사람들은 점차 적응해 나가게 됨을 보여주고자 하였다.나노봇과 인공지능,딥러님과 인간의 신경회로 복제, 인공지능 기반 법률 서비스와 법적인 문제까지,전반적으로 새로운 기술들이 입점해 있으며, 그 과정에서 기존의 관습과 문화가 파괴되고 말았다.인간은 배움을 통해 성숙해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나가게 된다.그러나 나노봇과 인공지능은 그런 절차들을 생략하고 있다.공동체의 개념조차 의미가 없어졌으며, 사람들은 각가 자신의 독립적인 개체로서 살아가고 있었다.노박과 노박의 무리들은 그런 사회에 대해서 불신하고 있다.기존의 관습과 문화를 지키고 싶었고,회복하고 싶었다.노박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테러를 자행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소설은 바로 우리의 죽음에 대한 실체에 애해서, 죽음이 중지된 상태가 도래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여주고 있다.세상이 과학기술로 인해 달라진다 하여도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욕망, 더 나아가 권력에 대한 집착은 지금도 그러하고,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보여졌다. 즉 여전히 우리 사회는 ,우리 세상은 디스토피아적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유토피아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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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사회 1 - 존재의 방식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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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허물어지고 있었다.모래 바닥으로부터 피어오르는 강렬한 열기가 신기루처럼 도시의 윤곽을 흔들어 허물고 있었다.그러나 신기루가 아니었다.건의 시선 속에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실존의 도시였다.도시는 거대한 사막 위에 섬처럼 박혀 있었다. 소리가 들리고서야 소리가 존재하디 않았다는 사실을 건은 깨달았다. (-9-)


믿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도 건은 이것이 여전히 현실이라고 믿겼고,그렇게 믿는 자신을 다른 인격처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자아를 느꼈다.미쳐가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건의 머릿속은 마치 폭풍 뒤 팬 도로 같았다.생각이 앞으로 나아갈 것 같다가 진창에 빠진 바퀴처럼 헛돌았고, 다른 쪽으로 다시 튀어 나갈 것 같다가 재차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87-)


"그 끈이 안정벨트에요."
수가 "네"하고 여자를 보자 여자가 멘 물건이 의자 모양으로 바뀌고 있었다.수의 동공이 또다시 확대되었다.의자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등을 따라 내려오다 이윽고 엉덩이까지 감쌋다.여자가 편안한 표정으로 다리를 들자 그대로 그 위에 앉은 모습이 되었다.여자가 수를 보며 자기처럼 양 어깨끈을 잡으라는 몸짓을 보였다.(-120-)


랭에 말에 다라 파로가 무언가를 조정했고.이어 화면이 달라졌다.공간은 그대로였으나 아빠의 모습이 좀 더 초췌해진 듯 보였다.어린 수는 여전했다.수의 아빠가 긴 숨을 한 번 내쉬었다.다 했어? 다 됐어? 라며 어린 수가 방방 뛰자, 그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소년의 몸에 설치된 장치들을 모두 제거했다.(-191-)


"은수 씨의 '은'이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성이잖아요? 우리는 그게 없습니다. 필요성이 없으니까.자연히 사라졌습니다.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는 그 순간부터 자기 삶의 독립된 주체로 살아가는 거지,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 그런 식으로 이어지지 않아요.우리가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그 아이의 삶을 좌지우지하지도 않고요.혈육이 강요의 울타리가 되지 않습니다.그냥 하나의 가족으로서 연을 맺고 서로를 보살피며 사는 거죠."(_297-)


소설가 도선우의 <모조 사회>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디스토피아적 사회를 구현하고 있다.유토피아와 다른 디스토피아 사회는 우리의 세상을 암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인간의 노동력이 축소되고, 기술과 과학에 의존한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여기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들여다 보면,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은 필요 충분조건에 따라서 만들어진 사회시스템이다. 구성원간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규칙과 안전망이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관습과 문화로 발전하면서,인간의 삶의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 관습과 문화는 강제성은 없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불이익이기 반드시 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우리 스스로 순종의 길로 이끌어나가고 ,그것에 대한 불평이 있어도 그들은 복종하게 된다.


그러나 도선우 작가의 <모조 사회>는 그러한 관습에서 탈피하고자 한다.지진이 일어났고,도시는 파괴되었다.그 과정에서 수학교서였던 수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서 다시 한번 따져보게 되고, 자신이 실제 의식이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아서 혼란스럽다.그건 소설 속 또다른 주인공 프랑스 용병 류건이나 정신과 의사였던 정탄도 마찬가지였다.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혼란과 미혼란이 오고가게 된다.


이 소설은 독특히다.혀싨과 비현실을 오가고 있다.이야기는 때로는 허무맹랑한데,무언가 설득되는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다.즉 인간이 여전히 과학적으로 풀지 못하고 미해결 상태에 있는 것들이 소설 속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구현되고 있다.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과학의 힘으로 극복하고, 유토피아로 나아가고 싶어하지만,현실은 역설적이게도 디스토피아를 추구하고 있다.그건 인간의 욕망이 바로 역설의 실체였고, 우리가 지금 상상 속에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이 소설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딥러닝은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고, 인간의 발달된 의료기술은 인간의 신경회로를 복제하려고 한다.더 나아가 법과 제도는 이제 인간의 힘과 능력이 필요없어졌다.판사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 판사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그럼으로서 기존의  우리의 물리적인 세계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성'이 가지는 기본적인 가치조차 무시된다.은수가 '수'로 불리는 이유, 류건이 '건으로 불리는 것, 정탄이 '탄'으로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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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조전 10 - 군웅의 삼국 쟁투, 적벽대전
왕샤오레이 지음, 하진이.홍민경 옮김 / 다연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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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속에서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하며, 이목구비가 뚜렷한 20대의 젊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갑옷을 대충 걸쳐 입고, 투구조차 쓰지 않았으며, 전포를 밧줄처럼 허리에 묶고 있었다.더구나 목에 작은 방물을 달고 있어 움직일 때마다 방울 소리가 딸랑거렸다.
장령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 그곳에 지난해 귀순한 형주 항장 감녕이 서 있었다.감녕은 본래 섬기던 주인을 배신한 적이 있는 자로, 격식에 구애받는 것을 싫어했다. 늘 아무 때나 끼어들어 참견하는 통에 ㅈ방령들 사이에서 미운털이 박힌 인물이었다.(-57-)


유표는 지금까지 유비를 신임한 적이 없었으며, 조조를 막는 데 그의 힘을 이용할 뿐이었다.그런데 지금 유비가 주둔하고 있는 신야는, 양양에서 비교적 먼 거리에 있었다.만약 유비가 문제를 일으키면 ,아직 어린 유종이 그를 제어할 방도가 없어질 것이다. 유표의 입장에서 보면 방비책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었다.'한수 연안의 개간'은 남쪽으로의 대대적인 철수이자,양양의 감시하에 드는 일이었다.또한 유비와 유기의 물리적 거리를 벌여놓는 방책이기도 했다. (-122-)


"자네 말이 맞네.'봉추'는 방통, 방사원으로 방덕공의 조카라네.원래 이곳 공조였으나 유표가 죽고 난 후 과직을 버리고 도망쳤고, 지금은 그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네.'와룡'의 진짜 이름은 제갈량이고,자는 공명이지..지금은 유비의 휘하에서..."
사실 채모는 제갈량의 이름을 거론하고 싶지 않았다.제갈량의 장인 황승언이 채모의 누이와 결혼했고,이런 관계가 자칫 조조와 적대관계를 만들 수 있으므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230-)


"조조,그 늙은 도적은 한나라를 없애고 스스로 천자가 되려 하고 있소,그자는 원소,원술, 여포,유표를 경계해왔으나 이미 모두 죽고 나만 호로 남았소.맹세컨대 늙은 도적과 나는 절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존재요! 겨의 말은 반드시 조조를 정벌해야 한다는 것이고,그것이 바로 나의 뜻이기도 하오! 이제 강동의 위아래가 모두 합심하여 기필코 조적과 자웅을 겨울 것이오!" (-298-)


조조는 당당하게 큰소리쳤다.
"친구 자격으로 가서 그자를 만나보게.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라고 이치를 밝히고 인정에 호소해 설득해보게.손바닥만한 강동을 근거지로 중원에 대항하다간 결국 패하고 말 걸세.그처럼 뛰어난 인재가 공명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지면 아깝잖나? 투항하면 제후의 자리를 보장해준다고 하게.손권이 믿는 게 주유의 용병술 아닌가? 주유만 항복시키면 강동을 얻을 수 있을 게야.유비 그놈이야 세력이 미약하니 단번에 평정할 수 있고!" (-454-)


조조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진수의 정서 삼국지를 기반으로 쓴 소설 왕샤오레이의 <삼국지 조조전>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와 차별화를 두고 있다.물론 소설 속 인물 이미지는 진수 <정사 삼국지> 보다는 삼국지연의에 가까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조조는 원소가 죽었고, 원술마저 죽은 뒤 중원의 패권을 얻게 된다.저물어가는 한나라의 명운이 이제 조조에게 달려 있었다.한편 유비는 조조를 배신하고, 유비,관우, 장비가 서로 도원결의 하게 된다. 위촉오 세나라간에 치열한 자리다툼이 예상되는 형주땅은 건안 12년 (207년), 유비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리고 유비는 유표가 불편한 동거동락을 하게 되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이지만 ,언젠가는 유비가 자신에게 칼을 거둘거라는 생각을 유표는 기억하고 있다. 한번 배신한 자는 또다시 배신한다는 논리가 유표에게 먹혀들게 된다. 그래서 유표는 조조를 견제하기 위해 유비를 이용하지만, 자신의 측근으로 가까이 두지 않는 치밀함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삼국지 조조전 10권은 조조의 오만함과 위선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중원을 장악하면서,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 조조는 드디어 강동을 차지하고 있는 손권으로 향하게 된다.손권과 주유,젊기에 조조는 두 사람을 얕보고 있었다. 조조의 이러한 행동이 이상할 이유가 없다.원소마저 죽은 뒤에 자신을 위협할 만한 존재가 없다고 생각한 거였다. 그러나 역사에서 언제나 복병은 있었다.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패권을 차지하고,권력을 차지하는게 한두번이었던가, 조조는 육지전에 강하였지만, 수전에 약하였다.하지만 손권은 반대였다.그 지리적 잇점이나 강점을 고려하지 않는 조조의 출전은 보다시피 적벽대전에서 처참하게 깨지고 만다.조조의 첫째 아들이 죽고, 이제는 조충마저 죽임을 다하게 된다.또한 조조의 곁에서 있었던 책사 곽가의 병으로 인해 조조는 상심에 잠기고 말았다.스스로의 패착이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 조조 스스로 느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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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가 일본 사무라이를 만날 때
임태홍 지음 / 하움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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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최한기와 일본의 선비 니시 아마네를 비교하고 있다. 19세기 조선과 일본에 살았던 두 사람은 두 나라의 문화의 특징을 서로 비교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특히 이 책에서 보듯이, 일본은 한국과 너무 흡사한 가치관, 사회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선비이면서, 무사였던 최한기와 니시 아마네는 그 시대의 분위기,정치적인 상황,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서로의 사상을 다르게 추구하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였던가,두 사람은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사상을 그 시대에 고스란히 반영시키고 있다.상강오륜적 가치를 중시했던 조선과 손자병법, 사무라이 정시늘 강조했던 일본은 도덕에 대해서 서로 다른 관점을 추구하게 된다.충을 중시했던 일본의 도덕은 그 충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조선은 덕의 관점에서 도덕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개인을 넘어서 국가까지 도덕의 범부를 확대하고 있다.더군다나 하급 사무라이였던 니시 아마네는 서양의 문물을 습득하는데 용이하였고, 상대적으로 사대부였던 최한기는 같은 지식인 계층임에도 불구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니시 아마네는 번역을 통해 언어적 확장을 꾀하였고, 최한긴느 그렇지 못하였다. 그건 두 나라의 사회적인 구조를 비교하고, 조선인의 사고방식과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비교하는데 유용하게 쓰여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두나라의 과거는 현재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일본은 여전히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그들의 개인적인 삶의 규칙은 한국과 다르다.즉 일본인은 서양문물을 흡수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였고,조선은 중국에 기대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또한 일본인의 사고 기준으로는 상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한국인의 기준으로 보면 혐오감을 느낄 수 있고, 추악하게 바라보는 이유도 이 책을 통해 검증해 볼 여지가 있다. 손자 병법과 삼강오륜,일본과 조선 추구했던 서로 다른 세계관은 선비이면서,무인이고, 지식인이었던 최한기와 니시 아마네를 비교하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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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라고 당당히 말해요 -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외침 라임 틴틴 스쿨 15
다니엘레 아리스타르코 지음, 니콜로 펠리존 그림, 이현경 옮김 / 라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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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 키릴로스는 그녀를 내심 두려워했다.사실 히파티아의 용기와 지식에 깜짝 놀란 터였다.그래서 그녀를 공격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는 한낱 '여자'가 그렇듯 자유롭고 대담하게 자신의 지식을 과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42-)


그런데 앨프리드의 친밀한 교제가 그의 아버지 킨즈베리 후작을 몸시 노하게 만들었다.마침내 후작에게 동성애자라는 죄목으로 고소당하기에 이르렀다.친구들이 프랑스로 도피하라고 충고했지만, 그느 자신의 예술 세계에 종말을 고할 때가 왔다는 걸 믿을 수 없다며 태연스럽게 거절했다.결국 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107-)


그날 이후 그는 각종 서류를 낱낱이 조사했고, 증언들을 일일이 인터뷰했으며, 나치 범죄자들에 대한 증거를 빠짐없이 수집했다.실제로 나치들에게 안전한 은신처를 제공해 줄 만큼 세상은 넓지 않았다.비젠탈은 그들을 찾아내서 한 명씩 재판에 넘겼다. (-136-)


그들은 남아 있는 근육에 감지기와 근육 수축을 기록할 미세 장치를 부착했다.근육이 수축될 때마다 컴퓨터가 클릭되었다.일정한 수의 클릭이 바로 글자로 변환되는 것이었다.컴튜터는 문자를 인식하고 그것을 일일이 기록했다. (-201-)


복종,모순, 인권 유린,종교 탄압,독단주의, 반계몽주의, 사형제도, 인간 중심주의, 노예제도,제국주의, 동성애 혐오, 성차별,검열,파시즘, 전쟁범죄자, 핵무기 개발, 인종 차별, 흑인 차별, 성폭력,인종 분리 정책, 환경 파괴,독제 정권, 교육 차별, 체념, 부당함.앞에 나열한 단어들은 차별과 혐오, 공격과 파괴와 관련한 단어들이다.인간이 가장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실체이며, 차별과 비차별의 경계를 구별하게 된다.특히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칙이나 시스쳄은 기존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진실을 찾아나서기보다는 진실을 묻어 버리려는 성향이 강하다.좋은 게 좋은 거라는 비합리적인 논리가 개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억울하면서도 그것을 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 곳곳에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예스맨이 많아서였다.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 곳곳에 노(NO)맨보다 예스(YES) 맨이 많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조직이나 사회에서 배척되고,외면당학, 사회에서 버림 받게 된다.그래서 그들에게 스스로 비난받을 용기,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삶과 교차시켜보았다.우리 사회는 과거에 비해 여성의 인권이 나아지고 있다.동성애에 대한 인식 변화, 사회적 배려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나 직장 안에서 성희롱,성차별,성폭력이 나타나고 있다.더군다나 남자와 여자 사이에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워서 여성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다.그래서 여서은 자신의 피해를 노출시키는 것보다 묻어 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일을 키우는 것보다,좋은게 좋은 거라고 혼자 희생하면, 주변 사람들이 편안해진다는 논리였다.세월호 문제도 그러했고, 우리 사회의 미투운동도 그런 거였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저항의 역사였다.과거 학교 내에서 체벌이 있는 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였다.아니라고 말하는 그 순간 체벌이 멈추기는 커녕 체벌이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았다.1990년대 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런 장면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기성세대도 많이 있다.하지만 시대의 변화, 혁신을 위해서는 예스 보다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여전히 필요하다.비리를 묻어버리는 것보다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들, 누군가 아니라고 말할 때 그들을 보호해줄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여전히 사회는 갈등과 분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사회 내부에서 아니라고 용기내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 스스로 연대와 의식 고취를 통해 바꿔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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