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라는 착각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정표
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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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당면한 기후변화 등 수많은 위기의 근원을 찾는다. 인류가 문명 사회로 접어든 이후 단 한 번도 계획한 적 없는 ‘탈성장‘ 정책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풍요와 부의 대가로 우리 삶의 가치가 무너졌고, 삶터인 지구마저 망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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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착각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정표
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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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50년 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를 발전시킨 나라였다. 2021년, 유엔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다. 한국은 천연자원이 없어도 대대적인 인적 자원 투자로 성공을 거뒀다. (중략) 세계 각국은 한국을 경제 모범생이라고 평가했다." 위 글은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각』의 〈서문〉의 첫 문장이다. "2014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시대를 연 한국 경제의 4만 달러 돌파 시점이 시야에서 더 멀어진 데는 미국발 관세전쟁의 영향이 크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제 충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 것이다. 여기에 국내 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내수 부진과 고환율도 겹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기존 2.0%에서 1.0%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는 선진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일본(0.6%)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25일(현지 시간)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브리핑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관세 충격에 크게 노출됐으며, 다른 지역보다 그 충격이 크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 내용은 동아일보 2025년 4월 25일자 보도이다.

1인당 GDP 4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열심히 일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은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부끄러운 성적표를 내밀지도 모른다. 이 같은 경제 지표가 우리 국민이나 국가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앞서 동아일보 보도가 지적했듯 미국발 관세 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전 세계 시장의 불황 등 많은 요인이 겹쳐져 산출된 것이다. 한국은행은 저성장 기준인 3.0% 수준까지 목표치를 내려잡았다가 이마저도 날이 갈수록 내려가고 있다. 이젠 아예 마이너스 0.1%라는 암울한 예측을 내고 있는 상태다. 동아일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제 충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여기에 국내 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내수 부진과 고환율도 겹쳤다고 우리나라의 저성장 요인으로 덧붙이고 있다. 왜 내수가 부진했는지, 그리고 고환율이 되는 동안 국가가 방어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적시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의 경제 정책과 비상계엄 때문일 것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이 알기 때문이라고 독자는 판단한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 한국. 하지만 2024년 기준 세계 행복도 순위는 52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20년 넘게 바뀌지 않았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 또한 자살이다. 이 모순된 수치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단지 ‘성장이 부족해서’일까?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각』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성장 담론을 뿌리부터 재검토한다. GDP, 수출 실적, 기술 혁신 등으로 포장된 성장주의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공동체와 인간의 삶을 파괴해왔는지 살핀다.

저자 안호기는 언론인으로서 30년 넘게 한국 사회를 적극적으로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성장률이 아닌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성장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번영이 아니라 파편화된 삶이다. 이 책은 불평등, 기후 위기, 돌봄의 붕괴, 금융 과잉 등 성장주의가 낳은 현실을 사례 중심으로 고발한다. 성장이 인류를 구원할 거라는 믿음을 거두고, 이제는 삶의 질과 분배, 공동체의 회복이 진짜 해법임을 강조한다. GDP 상승이 곧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계와 현실을 통해 정밀하게 짚는다.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각』은 GDP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도 성장 부진을 탓하지 않듯이 단순히 성장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탈성장’이라는 구체적 전환의 방향을 제시하며 당면한 여러 위기의 근원을 ‘고장 난 성장 시스템’에서 찾는다. “더 많이 가졌지만 더 공허하다”는 한국 사회의 집단적 불행은 성장만을 추구한 결과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즉 고령화, 저출산, 기후 위기, 돌봄의 위기 등 우리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사회문제가 이 왜곡된 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기술 혁신, ESG, 그린 뉴딜마저도 자본의 탐욕을 감추는 포장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공존과 분배, 공동체의 회복이 진짜 해답임을 강조한다. 그러고는 몇몇 예로써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등 유럽 도시들의 정책 실험, 커먼 포레스트 운동, 공유경제 모델 등을 제시한다. “성장 위주의 삶에 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저자는 “더 늦기 전에 ‘그만 자랄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상대적 개념인 공산주의 사회보다 훨씬 이전부터 정착돼 온 국가 경제 개념이다. 공산주의 사회의 논리보다 수천 년 전부터 공동체 사회에서 자리 잡은 개념이다. 왕조 시대든 제국 시대든 경제적 측면에선 모두 자본주의 개념에 충실하게 유지돼 왔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단점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소득, 재산 불평등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모순을 안고 있다. 이로 인해 자유 경쟁이라는 시장 경제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이고, 실제 생산자들인 노동자는 연명하는 수준의 분배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은 이 같은 경제 논리를 더욱 확대시켰다. 기계 문명이라는 제1차 산업혁명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퇴출시켰고, 참다 못한 노동자들은 기계파괴운동(Luddite Movement, 1811~1817)을 벌였다. 결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욱 낮아졌고, 자본가들에게 돌아간 몫은 많아졌다.

이런 논리를 앞세우면 우리 사회나 문명 발전을 반대하자는 말로 들리기 쉽다. 그러나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각』은 성장을 멈추자는 책이 아니다. 그동안 왜, 어떻게, 누구를 위해 성장해왔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모든 성장 중심 담론이 결국 자본의 이익 구조에 귀속되었다고 비판한다. 대신, 유럽 도시들의 탈성장 실천 사례, 공유경제와 자급적 공동체 실험 등을 통해 ‘성장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는 상상 이상으로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미래를 합리적으로 설계한다. “GDP가 아니라, 우리가 돌보고 싶은 삶의 총량을 키우자”는 이 책의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성장 이후의 시대, 한국 사회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책은 마치 선언처럼 말한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다.” 탈성장은 유토피아도, 극단주의도 아니다. 이미 시작된 현실이며, 우리가 감당해야 할 미래다. 저자는 성장 중심 사고가 만든 것은 계층 간 분열, 환경 파괴, 삶의 불안정화라고 강조한다. 지금 필요한 건 성장률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지역화, 공유경제 확대, 생태와 문화적 전환 등을 통해 덜 쓰고도 행복해질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장이라는 착각』은 공동체, 공공재, 기본소득 등 그동안 주변부에 머물렀던 논의를 전면에 끌어올린다.



이 책은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란 제목의 〈서문〉에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아비지트 배너지(Abhijit V. Baerjee)·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lo) MIT 교수 부부의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2019)을 인용한다. 이들 수상자는 경제학자들이 유용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해 "어떻게 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책에 따르면 과잉 생산이 불가피한 성장 추구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부추겨 지구를 병들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성장하지 못하면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성장에서 벗어나 시민이 행복해질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근의 저성장 국면은 성장 패럴다임의 변화를 꾀할 기회다. 분배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공공재를 확충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성장이라는 괴물의 노예로 살아갈 수는 없다.

또 전 세계는 성장에만 매달린 결과, 지구 환경과 경제 현장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난무하고 있다. 서구 학자들은 현재 지배적 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가 한계에 이르러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본을 확대 재생산해 이익을 늘려가며 성장하는 자본주의는 무분별한 채굴로 지구 천연자원 고갈을 초래한다. 화석연료를 비롯한 자원의 채굴과 사용을 줄이지 못하면 인류는 조만간 생사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p.13)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 현실은 어떤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는 가장 빠른 시간에 선진국에 들어선 모범적 경제국가이다. 우리의 산업화 시간 동안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잘사는 나라를 따라가려면 부지런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원도 없고 국가의 부는 더 없는 나라가 잘사는 길은 '사람' 자원밖에 없었다. 이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새벽별 보고 출근해 새벽별 보며 퇴근한다는, 끝없는 일을 해야 했다. 이때 생긴 유행어는 '빨리 빨리' 문화였다. 노동자들은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자식 공부도 시키고, 그나마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우리 민족성은 부지런했다. 자신이 병들고 더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일하더라도 자녀들에겐 더 나은 삶을 열어주는 길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치열하게 일했다.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빨리 빨리'를 한국인들의 특성이라고 말할 정도다.



지금 우리는 나라 성장이 멈출 정도로 위기라고 진단되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경제 부국의 위치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새로 들어선 정부도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전을 제1의 과제로 꼽고 있다. 그런데 '4.5일 근무제'라는 상반된 개념의 노동을 말하고 있다. 경제 회복이나 민생 안정은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치열하게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전제로 이만큼 쌓아올린 결과다. 그러나 근무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모순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휩싸인다. 당연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 구조 변화와 성장 동력을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춘다면 노동이 담당할 몫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기업의 의식 변화가 없다면 양립하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은 노동시간이 짧아진 만큼 임금은 줄여야 한다는 논리로 맞선다. 얼핏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은 예전에 비해 노동력 투입이 적어도 산출 효과는 예전과 같거나 그 이상이 가능하다. 기업의 생산, 인력, 품질 등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생산이나 경영의 모든 분야에서 AI의 도움을 안 받을 수 없다. 이 논리에 반대할 기업들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노동자를 위한 저성장을 말하지 않는다. 노동자만을 위한 탈성장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 구조와 정책 변화로 조금씩 덜 성장해도 괜찮다는 의식의 개선을 먼저 요구한다. 이 책에 나온 논리는 급속한 성장이 인간의 욕망,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한없는 돈에 대한 욕심 등을 지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자본주의는 한계를 미리 예고하고 발전되어온 경제 구조다. 돈을 많이 번 기업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 노동자는 물론, 지구 환경, 인간성의 파괴 등은 전혀 고려치 않는다. 오늘날 기후변화도 결국은 산업 발전 속에 자라난 지구 최악의 환경 오염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책은 100% 완벽하게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인정할 것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현안인 고령화, 저출산, 기후 위기, 돌봄의 위기 등 우리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사회문제가 이 왜곡된 성장 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기술 혁신, ESG, 그린 뉴딜마저도 자본의 탐욕을 감추는 포장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공존과 분배, 공동체의 회복이 진짜 해답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저자는 몇몇 예로써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등 유럽 도시들의 정책 실험, 커먼 포레스트 운동, 공유경제 모델 등을 제시한다. “성장 위주의 삶에 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저자는 “더 늦기 전에 ‘그만 자랄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경향신문 경제부장, 경제 에디터, 논설위원, 사회경제연구원장을 지냈다. 현재 경향신문 논설위원이자 경제 에디터로서 탈성장을 주제로 한 포럼을 준비하면서 세계 석학들을 만나 견해를 듣고, 책과 각종 자료를 통해 다양한 논의를 접했다고 밝힌다. 이들에게서 도출된 공통된 의견은 현재 지구와 인류가 위기에 처했으며, 현행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고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사를 통해 일부 내용을 전했지만, 빙산의 일부였다. 매체를 통해 알리지 못한 부분과 추가로 취재한 내용을 담아 현상과 위기, 대안으로 나눠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각』에 담았다.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도 행복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고장 난 시스템’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신념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 책이 삶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청년 세대, 성공보다 공존과 분배에 관심 있는 정책 입안자 및 연구자, 경제․생태․돌봄 문제에 관여하는 활동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는 모든 사람에게 매력적인 통찰과 울림을 줄 것으로 믿고 있다.

디카프리오가 시상식에서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해 언급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기후변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재활용품을 사용하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다.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대신 금속 빨대를 사용하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해 재활용을 늘리면 기후변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이 횡행한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걱정하지 마. 재활용만 열심히 하면 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양적 성장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발생한 문제를 개인적으로 대응해 해결하려는 사례다. 이래서는 근본적인 기후 위기 극복이 불가능하다. 파텔 교수는 “사회적 문제에 지극히 개인적인 해결 방안만을 반복하며 걱정 말라는 분위기는 매우 우려스럽다. 기후변화에 대한 체계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만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사람이다.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및 기타 온실가스가 지구 온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아워월드인데이터’의 연도별 지구 평균 기온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 그래픽을 보면 상관관계가 뚜렷하다.(p.96)

저자 : 안호기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경향신문 기자다. 경제와 환경 분야에 관한 기사와 칼럼을 많이 썼다. 경제부장, 경제 에디터, 논설위원, 사회경제연구원장, 편집국장 등을 거쳤다. ‘경향신문 SPC 사태’ 수습 과정과 코로나19 팬데믹 때 편집국장 직책을 수행했다. 네 차례 경향포럼을 기획하면서 힐러리 클린턴, 반다나 시바, 리처드 하스, 누리엘 루비니 등의 인터뷰를 추진했다. 산에서 텐트 치고 잠자기와 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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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클러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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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소설 『리사이클러』는 지금부터 약 100년 후인 대한민국 '뉴소울시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명칭은 멋진 신세계처럼 '뉴소울시티'이지만 국가 공동체가 해체된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도시 단위로 살아남은 유일한 공동체이다. 표제어 '리사이클러'란 쓸모없는 하층민의 뇌속에 프로그래밍 된 칩을 심어 메뉴얼대로 움직이는 '재활용 인간'을 의미한다. 인간 육체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 지배층의 생존을 돕는 생체로봇인 셈이다. 하층민들의 삶은 젊고 건강한 몸으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는 매혹적인 지배층의 술책 뒤에 숨겨진 야만적 지배 논리에 매몰된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경제적 효용성 간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저자 이기원이 창조한 미래 세상이다. 서기 2120년 '뉴소울시티'는 지금의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극대화된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으며, 1구역과 2구역이라는 물리적 경계로 구분짓고 있는 사회다.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는 양 구역 사람들이 불평등을 받아들임으로써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명백한 지배층의 필요에 의해 조작되고 관리되는 디스토피아 세상이다.

전세계를 덮친 멸망의 파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도시 서울. 서울의 통치권을 거머쥔 ‘전국기업인연합(전기련)’은 새로운 형태의 도시국가 ‘뉴소울시티’를 세우고 철저한 계급통치의 시작을 알린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영원불멸의 생을 누리는 1구역과, 1구역 보위를 위한 한낱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린 2구역. 공고해진 계급 차이만큼 두 지역 사이의 장벽도 높아졌다. 응급 상황 시 출동해 사고를 수습하는 ‘비상 대응 특수팀’의 복무 강령을 보면 ‘우리’로 대표되는 2구역 사람들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전기련을 완벽하게 보위한다.

둘째, 우리는 전기련의 자산을 보호한다.

셋째, 우리는 전기련의 지시에 복종한다.(p.7)



이 소설 작품은 전작 『쥐독』과 『사사기』를 발표하며 한국형 디스토피아의 새로운 초석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은 이기원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다. 『리사이클러』는 영원한 건강과 행복을 누리는 1구역과, 1구역 보위를 위해 삶뿐 아니라 죽음까지 착취당하는 2구역이 장벽 하나를 맞대고 살아가는 미래도시 ‘뉴소울시티’가 배경이다. 마치 천국과 지옥처럼 나뉜 도시 안의 두 구역 가운데, 이 소설은 죽음이 임박한 2구역 청년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극단적 사건을 다룬다. 전세계가 궤멸한 후 유일하게 남은 도시국가 뉴소울시티를 배경으로, 기술의 혜택이 권력의 도구로 쓰이는 기형적 미래 세계를 고찰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지만, 『리사이클러』는 세계보다는 인물에 몰입해 개인의 욕망과 죄의식을 조망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생존에 대한 욕망. 그러나 살아서는 이용되고 죽어서는 재활용되는 2구역 노동자에게 그러한 욕망은,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는 죄악과도 같은 것이었다.

저자 이기원은 〈작가의 말〉을 통해 "내 작품의 시작은 늘 질문이었다. 그리 내놓을 만한 믿음 없는 기독교도인 나는 사후세계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늘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품고 살았다. 우리 인생에 죽음 말고 약속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어느 유명인의 말처럼, 죽음은 절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니까."라고 트릴로지 작품의 구상을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첫 작품 『쥐독』은 '만약 죽음이 없다면'이란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죽음이 없는 세상은 정말로 낙원일까? 또 인간의 불신으로 무너진 정의에 대한 해답은 인공지능밖에 없는 걸까? 인공지능이 완벽한 정의를 이뤄낼 수 있을까?란 질문에 수사물이라는 옷을 입힌 두 번째 작품 『사사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사회 시스템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질문을 갖고 시작한 것이 세 번째 작품 『리사이클러』이다. 저자의 묵직한 질문은 ‘삶은 이용되고 죽음은 재활용된다’라는 말로 압축된다. 그리고 소설의 첫 문장에는 100년 후 서울의 모습이 나타난다.

"구 대한민국의 10대 기업으로 이루어진 연합체인 ‘전국기업인연합’, 속칭 '전기련'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도시인 서울의 통치권을 넘겨받았다."(p.6)



여덟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던 뉴소울시티는 극심한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1구역과 2구역, 이렇게 두 구역으로만 나뉘게 되었다. 두 구역 사이에는 장벽이 세워졌다. 장벽은 빈부의 격차만큼이나 나링 갈수록 높아졌다. 의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죽음 없는 영생을 얻게 된 1구역은 찬란하게 번영했고, 2구역은 전기련과 뉴소울시티의 존속을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면서 어두운 운명의 굴레만이 반복되는 황폐한 지역이 되어갔다. 한편 전기련은 뉴소울시티 내에 벌어지는 응급 상황에 대응하기 이해 비상 대응 특수팀(Emergence Response Task-force Team)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줄여서 '에르트(ERTT)'라 불렀다.

에르트의 출동 목적은 1구역과 1구역의 거주자들을 지키는 것이었다. 도시의 모든 시스템은 1구역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1구역 시스템은 거의 완벽했기에 비상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자체가 드물었고 오히려 시스템이 낙후된 2구역에서 이런 상황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2구역에서는 화재나 붕괴, 폭발 같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출동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렇기에 2구역에서는 대부분의 비상 상황에서 인명 사고도 함께 일어났다. 에르트가 2구역으로 출동하는 경우는 전기련의 자산이나 인력 손실이 포함되는 상황이었다. 전기련의 인력에는 연구원이나 기술자 등도 포함되었지만, 에르트 직원들은 속해 있지 않았다.

이 소설 작품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8개의 장(章)으로 구분된다. 작품 무대와 사건 전개의 변화에 맞춰 장을 나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을 위한 변화 이외에는 색다른 무대 변화는 없기에 일관된 저자의 스토리 구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각 장(章)마다 하나의 단어나 짧은 문구 정도로 제목이 붙어 있어 각 장의 구별이 주제별로 구분되는 데 기여한다. 특히 각 장의 맨 앞에 인용된 문장은 각 장의 성격을 암시하는 것이어서 독자들의 독서와 이해를 쉽게 하고 있다. 1장 「15센티미터에 달린 인생」은 "고약한 악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의 운명에 코뚜레를 달아 끌고 가는 착취의 컨베이어 벨트라는 악몽 말이다." - 아바리치아 95년. 콜필드 선언문 중에서"(p.12)

'아바라치아'는 이 소설 1장에 등장한다. "영생은 전기련의 의장사인 아바리치아의 회장 류신의 집착이 이뤄낸 성과이자 의학 기술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였다. 영생이란 건 전기련을 위시한 1구역 거주자들에게 절대적 우월감을 주었고, 2구역 거주자들에게는 그들이 더이상 종말의 방주에 함께 탄 승객이 아니라 노를 저어야 하는 노예이자 무임 승선을 한 자들이라는 걸 일깨워주었다. 이후 전기련은 노예들을 장악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했다."(p.25~26)

영생을 누리는 1구역 사람들에 비해 2구역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스스로 생존해야 했다. 그들이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길은 1구역에 기생하듯 복종하는 것뿐이었다. 지금 동운(주인공) 앞에 앉아서 심드렁하게 모니터 패널을 들여다보며 하품을 하는 재수 없는 의사도 1구역의 지시에 충실한 톱니바퀴일 뿐이다. 여기서 2구역 의사의 존재가 나오는데 의사가 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상위 1%의 상류사회의 직업군이지만 아바리치아(영생 인간) 시대로 변한 100년 후 뉴소울시티 2구역 세상에선 단순한 기술직 정도로 추락됐음을 알 수 있다. 2구역 의사는 동운의 남은 수명을 '길어야 6개월'로 진단하고 있다. 췌장암 4기의 동운에겐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순간이다. 이 지점에서 장의 제목인 「15센티미터에 달린 인생」의 의미가 밝혀진다.

"15센티미터. 얇디얇은 복막에 붙어 있는 지방 덩어리와 분간도 안 될 정도로 보잘것없는 생김새. 행여나 잘못 건드렸다간 순식간에 바스라질 유약하고도 예민한 췌장이란 놈이 동운의 삶을 잠식하게 된 건 일 년 전쯤이었다.



아무래도 1장에서는 1구역과 2구역으로 나뉜 뉴소울시티의 모습과 각각의 구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게 해주는 소설 전개 과정 상 주로 2구역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2구역 사람들은 모두 '리사이클러'들이며 전기련은 유토피아에서 새로운 삶을 얻은 존재처럼 홍보한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리사이클러를 만드는 재료도 채무자의 육체로 메꿔야 한다는 전기련의 노골적인 논리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동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정받은 장애인, 시한부 환자, 뇌사자 등을 재료로 삼았다. '너의 뼈가 사라져도 채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전기련의 압박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리사이클러가 되는 것에 동의했다. 그것도 모자라 리사이클러 지원까지 받았다. 도시에서 살면서 지게 된 채무를 일부 탕감해준다는 조건이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리사이클러는 대부분 사람들이 꺼리는 위험한 업무를 떠맡는다. 주로 건설 현장에서 자재를 나르거나 외벽 설치, 송신탑 수리, 화재 현장에서의 인명 구조나 화재 진압, 도시 외곽에 흐르는 폐수의 강에서 벌이는 수중 작업, 용광로에서의 업무 같은 것들이었다. 또 리사이클러의 업무 배치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들이 직접 구매해서 업무를 맡기는 방식이다. 때문에 근로자들은 자신의 안전과 업무 할당량 충족을 위해 리사이클러를 구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 작품은 뉴소울시티에는 1구역 영생계층, 2구역은 수명이 다하면 다른 사람 육체를 빌려 뇌속에 이미 프로그래밍 된 칩을 심어 생명의 연장을 꾀하는 리사이클러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때문에 2구역 사람들의 생존은, 직업(하는 일)은 모두 1구역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일만이 자신의 생명이 연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 구조는 저자 이기원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회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이고 균형도 맞지 않는 발전을 거듭해 의학 기술로 영생을 얻은 계층은 1구역에 살고 나머지 노동자 계층은 영생의 혜택에서 제외돼 평생 노예의 삶으로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를 형상화한 것이다. 물론 형상화 과정에서 비논리적인 부분은 저자의 구상이나 독자들의 상상으로 메꿔야 할 부분이지만···.



며칠 뒤 동운은 낡은 리사이클러를 처분하고 새 리사이클러를 구매했다. 어차피 6개월밖에 안 남은 인생, 병원비와 약값을 충당하기도 버거웠지만 리사이클러가 없으면 진짜 목숨을 걸고 일해야 했기에 방법이 없었다. 동운은 살고 싶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오래오래. 삶에 대한 욕망과 의지를 번뜩이던 동운은 새 리사이클러에게 ‘쓸모 있는 시간’이라는 뜻의 ‘기한’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검은색 슈트를 입고 얼굴 전체를 덮는 헬멧을 쓴 기한은 여느 리사이클러와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유난히 고된 화재 진압을 마치고 화마가 휩쓴 건물을 빠져나가던 어느 날, 그가 내뱉은 한마디는 동운의 피를 얼어붙게 했다. 그것은 기한 앞에서 흘린 적도 없고 지시한 적은 더더욱 없는, 오로지 동운 자신만 알고 있던 과거 추악한 악행과 관련된 말이었기 때문이다. 동운과 기한을 태운 헬기가 죽음의 아수라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동운은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심장이 요동치는 아찔함을 느꼈다.

인간은 죽음의 굴레를 벗어던질 욕망을 참아낼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다. 하물며 삶에 대한 집착만큼 강한 본능이 있을까?(p.165)

헌대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지배계층은 늘 불평등함을 강조하는 셈법으로 피지배 계층을 지배해왔다.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의식, 육체적으로 우월하다는 의식, 지능적으로 우수하다는 우월의식 등이 교묘한 논리로 위장돼 피지배 계층을 노예처럼, 또는 태어날 때부터의 차별 의식을 주입시킴으로써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유럽에서 가장 앞선 문명인임을 강조하는 것이 인종 차별, 신분 차별, 성별 차별로 이어져왔다. 같은 인종은 생태적 한계를 신분 차이로 억누른다. 왕이나 귀족 계급이 일반 국민이나 노예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하는 논리다. 이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백인종의 유럽 문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공산사회주의 등장으로 위협받았으나 100년도 가지 되지 않아 내부로부터 무너진 소련 사회를 무너뜨렸다. 노동자·농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노동자·농민의 세상은 이론상으로 그럴 듯했으나 인간의 욕망에 부응한 자본주의 체제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공산사회주의 이론 자체가 잘못 된 것이라고 지적받지는 않는다.



뉴소울시티도 전기련에 대항해 모든 시민들의 평등을 주장하는 저항세력의 활동이 더욱 과감해지며 도시는 날로 흉흉해진다. 전기련은 ‘저항세력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감사팀을 파견해 동운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을 면담하기 시작하고, 동운은 기한과의 대화 기록으로 인해 괜한 트집을 잡히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고 면담에 임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감사팀 선임대리는 동운의 병명과 그에게 남은 기간 등, 그의 개인적인 비밀들을 열거하며 그것을 볼모로 동운이 차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비상 대응 특수팀으로 위장한 저항세력의 일원을 ‘확실한 증거’와 함께 찾아오면 동운의 육체를 새로운 육체로 바꿀 수 있는 ‘착복식’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 착복식이라는 말에 동운의 눈빛이 바뀐다. 착복식만 하면 지긋지긋한 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젊고 건강한 몸으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심 가는 동료가 있다. 지금 동운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삶이다. 착복식의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이대로 죽어서 리사이클러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잠든 그날 밤, 동운은 준비를 마치고 동료의 집으로 향한다.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네가 우리 계획을 망쳐놨어. 우린 이 도시에 삶과 죽음을 공평하게 되돌려 놓으려고 했어. 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그런데 네가 다 망쳐놓은 거야. 너만 살고 싶다는 그 욕심이, 모두가 이 썩어빠진 뉴소울시티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를 망친 거라고!”(p.194)

저자 : 이기원

타인과의 대화, 누군가와의 접점, 무언가와의 연결고리가 모두 끊어진, 때론 외롭고 때론 두려운 공백의 시간 속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시간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작가 이기원에게는 그런 시간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과 맞닿아 있는 연유다. 담배 연기와 짜장면 냄새 가득한 만화방에서 만났던 우라사와 나오키, 추운 겨울 춘천 시내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비디오테이프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인디아나 존스]를 만났던 1985년의 여름날 같은 순간들. 그리고 그런 생각 안으로 죽음에 대한 사유가 비집고 들어왔다. 죽음이 사라진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거기서 우리는 진정한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을지, 수많은 고민과 반문 끝에 마침내 『쥐독』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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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의 시대를 말하다
배현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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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마약 청정국'의 위치였다. 간혹 마약류를 이용하다가 검거돼 뉴스의 인물로 떠오른 적은 있지만 일부 일탈의 행위로 보았을 뿐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상되지는 않았다. 대검찰청에서 발표한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2023년 마약 사범이 2만 7,611명으로, 우리나라도 역대 최초로 마약 사범이 2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로나 접했던 '마약'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현실로 다가온 국가적 난제로 떠오른 셈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마약이 들어온 것은 청나라 말기인 19세기 무렵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전에는 소량이 약재로만 사용되었을 뿐 우리 국민들은 마약의 마수에 빠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일본이나 서양 제국주의가 우리에게 마수를 뻗치면서 서서히 마약이 우리 사회에 침투해 들어왔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것도 아니라 아마 문호 개방 이전까지는 얼씬도 하지 못하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문이 열리면서 청으로부터 마약이 함께 유입되었던 것 같다. 

얼마 전 미국의 마약 문제를 다룬 시사 프로그램을 TV로 통해 시청하다가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기억에 펜실바니아주 필라델피아였다. 도시를 걷는 사람들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걸음걸이(걸음이라기보다 곧 넘어질 듯 위태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마약 중독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한때 영화에서 붐을 탔던 '좀비'의 걸음걸이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마약 중독자들은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아 영상으로만 보여지는 환각에 시달리는 모습만 보았지, 약 기운이 떨어진 환자들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으며, 마약의 무서운 폐해 실상을 줘 큰 충격을 받았다. 많은 국민들이 보았는지 어느새 '필라델피아 좀비'란 별칭까지 퍼져 있었다.

이 책 『마약, 중독의 시대를 말하다』는 우리나라 마약 사용 실상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널리 퍼져 있는 데서 예방 차원에서 집필된 것으로 보인다. 이젠 실제 마약 범죄자를 잡아들여 처벌함으로써 마약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저지선이 무너진 데서 출간된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이젠 어떤 유명인의 일탈이나 의학적 이유에서 사용되는 범주를 벗어난 것으로 관계자들은 진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흔히 회자되는 아편, 필로폰 등 강력한 중독성 물질로 분류되는 마약에 대해 쓰고 있다. 그러나 최근 마약이 더 강력한 독성 물질로 진화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마약 중독 증세를 보이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어서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사회적 문제를 넘어서 국가적 문제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서 사태의 심각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커피, 담배, 술도 모두 중독성 약물로 분류된다. 한번 접하기 시작하면 뇌에 작동하는 주도권이 약물에 넘어가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중독성 약물의 특징이다. 커피, 담배, 술은 다른 중독성 약물을 사용하는 게이트로 작용할 수 있어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른 약물을 사용하는 허들이 낮아지고, 마약류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마약류의 상호 상승 작용에 노출되어 있다는 현실을 바탕으로 마약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지켜내야 하는 국가적 사업으로 다루어져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아 독자로서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일상을 파고든 중독성 약물〉, 2장 〈의료용 마약이 더 위험하다!〉, 3장 〈나도 모르는 사이 노출될 수 있는 불법 마약류〉, 4장 〈마약, 이제는 정말 끊어내야 할 때입니다〉 등이다. 1장에서는 일상을 파고든 중독성 약물인 커피, 담배, 술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커피, 담배, 술은 우리가 일상에서 죄의식 없이 상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물론 중독성 물질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심각한 상황은 일으키지 않은 데서 불법화하지 않은 물질들이다. 그러나 의학계는 이들 중독성 물질에 쉽게 빠지거나 현재 중독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약 중독에도 쉽게 빠질 수 있다고 밝혀냄으로써 국가적 유해 물질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마약 중독 상태로 쉽게 전화될 수 있는 요건에 노출된 사람을 사전에 마약으로부터 차단하는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2장에서는 수면제, 식욕억제제, 진통제 등 의료용 마약의 위험성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 노출될 수 있는 불법 마약류, 즉 헤로인과 코카인, 필로폰, 대마 등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마약류에 관한 처벌 및 예방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중독성 약물을 제대로 알아야 마약의 유혹이라는 더 큰 함정에 빠졌을 때 확실히 벗어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아직도 대한민국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우리나라 마약 사용자는 얼마나 되는지 산출해 낸다. 이때 전문가들은 정확한 사용자 수는 파악할 수 없지만 대략이라도 알기 위해서는 '암수율'을 적용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마약 사용은 범죄이기 때문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범죄 단속반은 마약을 사용하는 것을 숨기려 하고, 실제 체포 직전에 어떤 수단을 써서 체포되는 것을 피하려 한다. 누구든지 감옥에 가는 것을 싫어할 때니까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마약에 아직 취해 있는 자는 검거에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붙잡는다고 알려지고 있다. 극한의 상항에서는 죽음도 불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의 경우 마약 사용자는 개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삶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어 주위 가까운 사람도 고발을 하는 등 적극적 대응보다는 미온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체포의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쉽게 추정된다. 

전문가들이 암수율을 적용해 산출한 우리나라 마약 사용자는 마약류 범죄로 10명이 잡혔다면, 실제로는 범죄자가 286명이 존재한다는 심각한 결론에 이른다. 2019년 한 조사팀이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 측정에 관한 질적 연구」에 따르면 마약류 범죄 암수율이 28.57배로 밝혀졌다. 이 암수율을 적용시켜 앞서 286명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이 암수율을 2023년 대검찰청이 밝힌 〈마약류 범죄 백서〉에 의한 2023년 마약 사범 2만 7,611명을 적용하면 우리나라 마약 사용자는 78만 8,846명으로 추산된다. 이 백서는 우리나라 마약류 사용자 검거 사상 역대 처음으로 2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철저한 조사와 연구, 계획 등을 세워 국가적 차원에서 예방과 검거, 치료에까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판단이 독자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뿐 아니라 비만 치료제인 펜터민까지, 구하고자 하면 마약류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중독성 약물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마약 중독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우리의 이야기다. 제대로 알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이 책이 쓰여져야 하는 이유와 우리나라의 마약 사용자 실태, 날로 진화되는 마약의 종류,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마약류에 대한 보다 철저한 관리 등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는 필요에 의해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늦출 수도, 늦춰서도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기라는 마약 문제를 관리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담겼다. 또 호기심의 대상이 아님을 청소년들에게 주지시키는 합목적성에도 충실하게 집필된 책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독자가 마약에 워낙 무지해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두 번째 문제로 미뤄놓더라도 심각한 우리 사회 실태를 적확하게 짚어냈다는 데 필요한 책이라고 전폭 공감한다. 특히 다른 중독성 물질인 커피, 담배, 술 등과의 연관성이나 중독되는 과정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독자들에게 빠르게 이해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독자는 판단한다. 

이를 테면 2장 〈의료용 마약이 더 위험하다!〉에서는 「마약류는 무엇일까요?」「마약성 진통제가 마약 중독을 유발한다고요?」「진통제가 마약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요?」「뼈말라족이지만 식욕억제제를 끊을 수 없어요」「연예인들은 왜 프로포폴에 빠질까요?」「집중력을 높이려고 약을 먹는다고요?」「감기약에 마약류가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마약류인데 마약이 아닌 약이 있다고요?」 등의 세부 항목에는 진솔하게 서술함으로써 마약류에 대한 무지뿐만 아니라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독자들로부터 큰 설득력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세부 항목 「마약류는 무엇일까요?」에서 저자는 마약류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함으로써 독자들의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마약을 사용하고 나면 몸으로 느끼는 통증이 줄어들고 운동 신경은 무뎌지며, 환각작용 등으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다. 얼마 전 유튜브를 뜨겁게 달궜던 '필라델피아 좀비'를 떠올린다면 이 뜻이 더 잘 이해될 것으로 생각한다. (중략) 아편은 뇌를 억제하며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류이다. 그 때문에 아편을 사용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 몸이 마비되는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그 추한 모습을 사용자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겠지만, '마약'과 'narcotics'는 말이 처음에 사용되었을 때는 아편과 같이 진정과 환각작용이 있는 약물을 말했을 것이다. 혹자는 아편이 진정한 '마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약은 단순히 몸만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의존을 일으키면서, 경제적으로 생산 활동을 할 수 없게 하면서, 사회적으로 공동체를 파괴함으로써 마비를 일으킨다.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사용한 '마약'은 결국 인생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p.71~72)


「뼈말라족이지만 식욕억제제를 끊을 수 없어요」에서 저자는 다이어트하는 데 필요한 약인 식욕억제제는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데서 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환기시킨다. 분명 식욕억제제는 체중을 감량하는 데 매우 좋은 효과를 보인다. 이 때문에 한번 약에 의존해서 체중을 감량한 사람들은 약을 끊은 뒤에도 체중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다시 약을 먹고 체중을 줄이고 싶어 하게 된다. 힘들게 운동하는 것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함정이다. 

저자는 알코올 중독의 무서움을 말하면서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약 중독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 중의 하나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알코올 중독이 무서운 것은 술을 어디에서든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인데, 디에타민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앞선 통계에서 식욕억제제를 1인당 1년에 161정을 복용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양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약국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식욕억제제 복용 환자 중에 굉장히 마른 체형의 환자가 있었는데, 약사가 이 환자에게 약을 주면서 식욕억제제를 복용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등을 말해줬는데 환자는 한숨을 쉬며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환자는 '약을 중단하면 무기력하고 의욕이 상실되며 너무 몸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다. 약을 계속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더라는 것이다.

저자는 문제는 많은 사람이 마약이나 향정신성 약물 등 중독성 약물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마약은 스스로 끊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법적 처벌로 끝날 게 아니라, 치료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방 교육이다. 철저한 예방 교육만이 마약의 전파를 막을 수 있다. 기초적인 예방 정보는 수없이 많다. 또 원한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것은 확실한 예방뿐이라는 점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졸피뎀 역시 벤조디아제핀류로 가바 수용체에 작용해 수면 효과를 내는 약물입니다. 수면 유도 효과가 매우 빠르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숙취 현상(잠이 덜 깨고 어지러운 현상)이 덜하므로 많은 불면증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어요. 하지만 졸피뎀의 큰 문제가 있는데, 바로 내성이 쉽게 생긴다는 것입니다. 내성은 처음 약물 양보다 더 많은 양을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말하죠. 처음에 잠이 좀 잘 안 와서 약을 복용 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약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강한 의존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졸피뎀을 복용하고 난 뒤 단기 기억이 없어지는 증상은 정말 심각할 정도입니다.(p.111)


저자 : 배현


2010년부터 10년 넘게 분당에서 밝은미소약국을 운영 중인 현직 약사. 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 예방교육위원회 위원장, 약국한약제제연구회 회장, 헬스경향 자문위원, 약사OTC연구모임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헬스경향>, <건강다이제스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네이버 포스트>, <경기도약사회지> 등에서 칼럼을 연재했고, 약사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약물·건강 강의도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를 통해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약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약사는 약 전문가로서 대중의 약 선택과 복용의 헬퍼 역할을 해야 하며, 올바른 정보 전달과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몸을 위한 최선 셀프메디케이션』, 『알면 약이 되는 약 이야기』, 공저로는 『약사가 말하는 약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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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 서울 이야기 - 우리가 몰랐던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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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자는 이 책 『우리가 몰랐던 옛적 서울 이야기』를 읽기 전 '서울'이란 지명을 언제부터 사용했느냐는 점에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수도'라는 의미라고 배웠지만 언제부터 '서울'로 부르게 됐는지는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우선 인터넷 네이버를 통해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다. 여러 백과사전이 있고, 서울이라는 우리말의 어원이나 서울의 기원 등에 대해서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막상 우리가 지금의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을 서울로 부르게 됐는지는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다시 국어사전을 뒤졌다. 두 개의 풀이가 있다. ①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곳. ② 지명: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 한강 하류에 위치하며, 북한산·도봉산·인왕산·관악산 따위의 산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룬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부로 불리다가 1945년에 서울로 명명되었고, 1949년에 특별시로 승격되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따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을 비롯하여 탑골 공원, 어린이 대공원, 남산 타워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면적은 605.39㎢.로 돼 있다. 

독자가 서울에 대해 사전을 찾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국어사전을 통해 뜻풀이를 찾아볼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영어사전은 사전이 때묻고 닳아 아무데나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정도로 이용했는데 '왜 서울을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을까?' 내심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서울이란 명칭과 기타 다른 정보를 조금 더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다소 심적 보상이 되었다. ‘서울’이라는 단어는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보이는 국호의 서라벌, 서벌(나라, 도성의 뜻)과 동의라고 한다. 이후 우리 역사의 모든 기록은 한자로 했고, 한자가 국가 공용어로 사용됐기 때문에 주로 한자음이 지역별로 다른 점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말하는 일종의 사투리로 발음됐던 것 같다. 중국 본토에서도 한자는 문서 작성에 공용으로 쓰였지만 막상 발음하는 것은 통일 왕조였을 때도 지금의 우리 '표준말'처럼 통일 발음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역시 비슷한 정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독자가 이처럼 추정하는 것은 가장 최근 왕조인 조선시대에도 한자만 사용했고, 일반 백성이나 사회 활동이 제한돼 있는 부녀자들은 한자를 따로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정부 고위관료 등에서는 책을 읽을 정도의 한자 교육을 가정에서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더욱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널리 쓰이기를 바랐으나, 사대(事大)를 국시로 했던 조선에서 다른 언어를 만들어 쓴다는 것은 중국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생각해 한글은 정부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벼슬을 하지 못하는 일반 백성이나 부녀자들 사이에 한글은 쉽게 퍼져 그런 대로 명맥은 유지했을 것이다. 편지를 쓴다거나 최소한의 뜻을 펴기에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가능했으니까 필요한 일부 부녀자들은 배우기도 했을 터였다. 조선 중기 이후 한글소설도 발표되고, 또 배우기가 쉬워 필요한 이들은 배우기도 했을 터였다.

조선시대에도 우리나라 수도는 당연히 한자로 표기했다. '한성(漢城)' 혹은 '한양(漢陽)'으로 표기했을 터다. 그러나 발음도 '서울'로 하지는 않았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국한문을 혼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도 한성이라 표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글학자도 거의 없는데다 한글 전용으로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때였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식으로 '경성(京城)'으로 표기했다. 일제 강점기 내내 경성으로 사용하다가 해방 후 비로소 '서울'이 대한민국의 공식 명칭이 됐다. 표기법은 다르지만 조선시대 수도로 된 이후 지금까지 서울은 우리나라의 중심지였다. 이 책 『우리가 몰랐던 옛적 서울 이야기』(이하 『옛적 서울 이야기』)의 저자 배한철도 〈서문〉에서 19살 때 처음 상경해 서울역을 나서며, 마주했던 역앞 건물(대우빌딩, 현 서울스퀘어)을 보고 적지않은 충격을 표현하고 있다. 고향에서 기껏해야 2~3층의 건물을 보다가 압도적 위용의 건물 앞에 놀랐다는 이야기다. 저자는서울살이를 하는 동안 알게 됐던 서울의 각종 역사, 기억, 기록들이 무척 재미있고, 한편으론 변화무쌍한 산업화 시대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많은 기억을 되살려 보고자 이 책의 집필했다고 밝힌다. 

"송파구 잠실 일대의 한강은 더욱 변화무쌍한 역사가 있다.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우뚝 선 잠실이 애초 한강의 북쪽 편 뚝섬(광진구)의 땅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잠실은 조선 제11대 중종대 한강의 홍수로, 뚝섬 한가운데에 물길이 만들어지면서 섬으로 분리된다. 원래의 이 일대 한강의 명칭은 송파강이었으며 홍수로 새로 만들어진 물길은 신천으로 불렸다. 송파구 신천동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한강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잠실섬을 육지화하고 송파강은 막아 인공호수를 조성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석촌호수다."(p.7)



이 책은 2부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조선의 서울, 한양〉, 2부 〈한양의 사람, 삶의 이야기〉이다. 1부엔 「낯선 조선, 뜻밖의 서울」「지옥보다 못한 최악의 헬조선」「혼돈과 격동의 역사」「발길 닿는 곳마다 명승지」 등 4개의 장과, 2부에 「조선의 주인, 경화사족」「같은 듯 서로 다른 인생」「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오백년 사직 지킨 이데올로기」 등 4개의 장으로 각각 구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양은 조선 왕조의 수도로서 자리 잡았다. 흔히 왕과 신하가 오가던 정치의 무대로 기억되지만, 실제론 그보다 더 넓고 복잡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얽힌 도시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서울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옛적 서울 이야기』는 그동안 따분하게 배워왔던 정치사나 왕조 중심의 조선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도시 한양의 진짜 얼굴을 골목과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낸다고 저자는 밝힌다. 궁궐이 아닌 주택가, 왕이 아닌 백성들의 내밀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조선시대 한양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어 과거의 한양을 시간 여행하듯 돌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1부 〈조선의 서울, 한양〉에서는 도시의 구조, 경제, 명소, 위기와 같은 큰 이야기를 다룬다. 선입견과는 달리 한양은 소고기 소비량이 엄청났던 미식의 도시였다고 한다. 또 왕궁이 있는 도시이니만큼 독특한 내시들의 사회와 복잡한 신분 질서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지금처럼 주택 광풍과 부동산 가격 폭등이 벌어지는 등, 한양은 정치 무대를 넘어선 생동감 넘치는 도시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2부 〈한양의 사람, 삶의 이야기〉에서는 역사책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노비, 무당, 군인, 상인, 여성 등의 시선을 따라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추적한다. 청계천이 거대한 도시 하수도로 쓰였고, 지금의 이태원과 한남동은 공동묘지였으며, 왕십리와 서대문은 서울의 식자재를 공급하는 배추와 미나리 밭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역사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서울 도심은 곳곳이 역사 이야기의 보고다. 당연히 나라의 도읍지로 518년을 지속했고, 조선이 멸망하고도 115년이 지난 수도 서울은 조선시대 수도로 지정된 지 700년이 훌쩍 넘었다. 세 번의 외침과, 일제에 의해 망국의 한을 품고, 강대국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분단시키고 또 자신들이 싸우느라 납북간 전쟁까지 일으켰다. 서울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폐허을 딛고 민주국가로서의 발돋움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고,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를 위해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온 도시다.


서울의 고갯길은 우리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를 꺼낸다. 저자에 따르면 서울은 외사산(바깥 4개의 큰 산), 내사산(안쪽 4개의 큰 산)에 둘러싸여 있고 여기에서 발원한 물길이 한데 모였다가 다시 한강으로 흘러나가는 지형이어서 무수한 구릉지와 고개가 존재했으며 현재도 그 흔적이 어렵지 않게 찾아진다. 종묘 오른편의 종로4가 일원에는 난전인 이현(梨峴)시장이 존재했다. 이현은 순수 우리말로 배오개(배고개)라고 했다. 고갯길 주변으로 배나무가 많이 심겨 있다고 해서 이렇게 지칭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이곳에서는 상인들이 돈과 물건을 노리는 도둑떼가 활개를 치는 무법지대였다. 따라서 대낮에도 100명이 모여야 고개를 겨우 넘어갈 수 있는 지경이었다. 이상한 것은 배오개가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한적한 지역이 아니라 관허시장인 종로시전에 인접한 번화가였다는 점이다. 

"허가를 받지 않은 상인들이 워낙 부자여서 도적들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강도질을 감행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시기 서울 인구는 3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이로 인해 각종 도시문제가 불거지고 살인 등 강력범죄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조선 조정은 엄벌주의 사형제를 시행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한복판에서 중대 범죄자를 잔인하게 처형했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사형 장면을 볼 수 있도록 해 일번백계의 효과도 얻고자 했다. 한양도성의 가장 번잡한 거리인 종로 시전 일대와 도성 밖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서소문 밖 네거리는 끔찍한 방법으로 죄수를 죽이는 한성부의 대표적인 사형장으로 악명을 떨쳤다.

오늘날 부촌으로 각광받는 한남동과 옥수·금호동, 마포, 광희문 밖 신당동이 무덤으로 가득한 공동묘지였다는 것도 매우 낯설다. 산 전체를 빼곡하게 뒤덮은 묘지를 보고 외국인들은 "천연두 흉터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묘지는 오늘날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인식돼 화장장만 들어서도 인근 주민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결사반대를 외친다. 그러나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은 과거 '무덤의 도시'였으며 서울 사람들은 묘터 위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또 죽어서는 그 자리에 묻혔다. 

조선시대 하면, 극소수 양반들만 모든 권리를 독점해 떵떵거리며 살고 일반 백성들은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지레짐작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물질적으로 낙후되고 궁핍했다는 것 흔한 인식이라고도 말한다. 이런 고정관념은 일제강점기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해 조선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는 역사의식을 주입한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에 다시 한 번 반일의식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내시는 가난과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는 방편으로 자발적으로 거세하고 자원하는 사례가 많았다. 고종 34년(1897) 대한제국 성립기 직전까지만 해도 여의도에 움막으로 된 고자 시술소가 영업했다고 구전된다. 내시는 생식기능이 없었지만 어엿이 부인과 자녀를 거느렸다. 아내가 죽으면 재혼했고 첩까지 있었다. 생활고에서 벗어나고 왕실과 줄을 대기 위해 평민뿐 아니라 양반 가문 규수들도 서로 내시의 아내가 되고자 했다.(p.283)


종로구청 옆 이마빌딩은 궁중에 필요한 말을 기르는 사복시가, 청계천 마전교에는 말과 소를 빌려 주거나 매매하는 세마장이 위치해 말의 배설물이 그대로 하천으로 유입됐다. 나라에서도 굳이 단속하지 않았다. 세종 때 “도읍은 인가가 번성하고 그곳의 개천도 더러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어효첨의 주장을 받아들여 오물투기를 방관했다. 동물 사체, 유아의 시체까지도 밤중에 몰래 버렸으며 종종 살인사건도 발생했다.(p.314)


이 책은 서울을 주제로 한 역사 교양서지만, 기존의 도시사와는 결이 다르다. 정치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의 자리에서 조선을 들여다보며, 현재 서울의 도시성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생활사 기반의 인문 콘텐츠다. 서울의 현재는 조선의 골목 위에 있다. 『옛적 서울 이야기』는 그 오랜 시간의 지층 위로 다시 한번 걸어보게 만드는 책인 셈이다.


저자 : 배한철


박물관과 유적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문화재 기자. 발품을 팔아 얻은 생생한 체험으로 문화재와 역사에 관한 칼럼을 쓰고 관련 책을 꾸준히 출간했다. 대학에서는 이와 전혀 무관한 경영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서 정책 기사를 주로 써왔다. 하지만 학창시절 관심분야였던 문화재와 역사 공부를 꾸준히 이어온 덕분에 2011년부터는 문화재 분야를 취재하며 못다 이룬 역사학도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국보에 깃든 고유한 아름다움뿐 아니라 국보가 간직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역사서와 고문헌을 깊숙이 탐독하고, 전국 유적지를 구석구석 답사하며 이 책을 썼다.

현재 〈매일경제신문〉과 네이버에 한국사와 고미술, 고전 등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을 쓴다. 저서로 《한국사 스크랩》(2015년 세종도서 선정)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책 선정, 2017년 세종도서 선정)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등 베스트셀러 역사 교양서가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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