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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소담 클래식 3
제인 오스틴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5월
평점 :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상당한 재력을 갖춘 미혼의 남자라면 틀림없이 결혼을 원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나 다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p.8)
이 소설 작품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이다. 번역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 문장은 위대한 첫 문장으로 꼽히고 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전개 방향과 당대의 사회적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나 평자들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또 위대한 첫 문장으로 꼽히는 소설은 독자의 일천한 지식으로는 다 알지 못하지만, 톨스토이의 꽤 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이다. 많은 독자들이 들어봤을 법한 문장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은 첫 문장이 좋다는 것은 그 책에 대한 관심도가 굉장히 높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오만과 편견』과 『안나 카레니나』는 모두 굉장히 긴 소설이긴 하지만 짧은 첫 문장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역할에 가장 탁월한 작품들로 손꼽힌다.
『오만과 편견』의 다음 문장으로 곧바로 눈길을 안내한다. "이런 조건의 남자가 이웃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 그의 성격이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이런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이웃 사람들은 자기 딸들 중 누구와 잘 어울릴지, 천생베필은 누구일지 떠들썩해지기 마련이다." 『오만과 편견』은 서양의 리전시 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이 1813년에 발표했다. 리전시 시대란 서양의 19세기 실내장식 경향으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뒤 나폴레옹이 고대 로마 양식에 고대 이집트의 장식을 가미한 호쾌하고도 단순한 앙피르 양식(Empire style)을 채택했고, 영국에서 리전시 양식(regency style), 독일에서는 비더마이어 양식(Biedermeierstil)이라고 불리면서 각국에서 유행했다. 이 시기는 서양 각국이 세계의 거의 모든 대륙에 걸쳐 식민지를 개척(?)해 졸지에 나라의 부와 번영을 누리기 시작하는 예고된 시대다. 이 소설의 배경인 영국은 조지 3세 말년,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황태자였던 조지 4세가 섭정을 하던 때다.

식민지 미국에서는 독립 전쟁이 일어나고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등장해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등 유럽은 한창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대의 물결은 민병대가 도시 곳곳에 주둔하는 등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소설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소재는 바로 ‘결혼’이다.
영국 교외에 거주하는 베넷가는 시골 지주로, 이들은 젠트리 계급(영국에서 중세 후기에 생긴 중산적 토지소유자층)이며 상류층은 아니지만 여유롭게 사교계 생활을 할 정도로 넉넉한 재산을 지닌 가문이다. 그러나 아들이 없는 관계로 아버지인 베넷 씨가 사망하면 모든 재산은 가까운 남자 친척인 사촌 콜린스에게 돌아가고 딸들은 거주할 곳을 잃게 된다. 어머니인 베넷 부인은 다섯 딸의 불투명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딸들의 결혼 문제에 매달린다. 이 시대엔 결혼은 교양은 있지만 재산은 없는 젊은 여성에게는 품위를 잃지 않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계준비고, 그 행복은 장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상의 대비책이었다고 출판사 측은 작품 소개글에서 밝히고 있다.
작품 속에서도 콕 집어서 말하듯 당시 여성은 결혼을 통해서만 안락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은 형제나 친척들을 전전하며 불안정하게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기에, 여성들에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이라는 의미보다는 불안정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단이었다. 우리의 조선 시대와 비슷한 모양으로 생각하면 거의 틀림이 없을 듯하다. 조선 시대 역시 양반 사대부 집안에서 비슷한 관습이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출판사 측은 이러한 배경을 인식하고 『오만과 편견』을 읽는다면,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모욕적으로 굴었다는 이유로 다아시의 청혼을 거절한 엘리자베스가 재해석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베넷 가의 옆으로 이사오는 다아시는 영지의 주인인 데다 연수입도 베넷가의 몇 배나 되는 상류층 계급이다. 이보다 더 좋은 신랑감이 나타날까 싶을 정도로 신분으로도, 재산으로도 완벽한 사람이었지만 엘리자베스는 자신과 가족들을 존중하지 않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을 수 없다며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는 메리턴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이웃들은 너무나 서로의 가정에 대해 잘 안다. 다아시가 이사오는 걸 기념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파티가 벌어진다. 책에 따르면 이 무도회에서 다아시는 엘리자베스가 별로 예쁘지 않으므로 같이 춤을 출 마음이 없다고 함으로써, 그녀의 자존심에 손상을 입히며 시작된다. 그 후부터 그녀는 다아시에 대해 편견을 갖고 적대감을 키우게 된다. 반면 다아시는 그녀에 대해 차츰 감탄하게 되고, 그녀의 재치와 기지에 매혹당해 그녀를 마침내 사랑하게 된다. 다아시의 청혼과 그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거절은 두 사람이 서로 길러 온 오만과 편견을 절정에 다다르게 한다. 그 후 다아시는 겸허한 태도를 보이고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없앰으로써, 그들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게 된다.
역자 임병윤은 〈작품 줄거리 및 해설〉에서 두 사람의 마음의 변화의 포인트를 '편지'에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엘리자베스의 마음이 달라진 건 다아시의 편지를 받으면서이다. 엘리자베스는 오만하다고만 생각했던 다아시를 자신 또한 편견에 가득찬 눈으로 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다아시의 청혼과 엘리자베스의 거절은 두 사람이 길러온 오만과 편견이 절정에 다다르는 동시에 해소되는 역할을 한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의 거절에 자신이 오만했으며, 자신의 신분이 오히려 그러한 오만을 인정하고 부추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태도를 고친다. 엘리자베스는 그간 자신이 다아시에 대한 편견으로 눈을 가려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서로의 단점이자 약점이 사라진 후 그들은 이상적인 한 쌍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게 된다.
"전 어떤 위선도 증오합니다. 그래서 전 제가 솔직하게고백한 감정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옳은 일이니까요. 그럼, 당신 집안의 지위가 낮다고 해서 제가 즐거워해야 하는 겁니까? 생활 여건이 저보다는 형편없이 낮은 집안과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제 자신을 자축이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p.283)

주인공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외에도 이 소설 『오만과 편견』에는 여러 유형의 부부와 사랑의 유형이 등장한다. 사랑보다는 정으로 함께 사는 베넷 부부(엘리자베스 부모), 선량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마지막에 극적으로 결합한 빙리와 제인(엘리자베스 언니), 아내감을 원했던 콜린스와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인 샬럿 루카스. 이 여러 쌍의 부부는 영국 사회에서 결혼이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결혼이 이상적인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베넷 가문의 안주인 베넷 부인은 5자매를 부유층 집안에 시집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 당시 상속법에 따라 여자는 집안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휴양을 위해 롱본으로 이사한 찰스 빙리는 연간 5,000 파운드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를 사윗감으로 점찍어 둔 베넷 부인은 무도회를 개최해 이웃에 사는 빙리 일가를 초대한다. 베넷 가문의 첫째 딸 제인은 유머러스한 빙리에게 호감을 보이고, 아름답고 온화한 제인을 보고 빙리는 사랑에 빠진다.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품으로 진정한 사랑에 대한 낭만을 품고 있다. 그녀는 빙리의 친구로 함께 무도회에 참석했던 다아시가 베넷 집안을 무시하는 발언을 듣게 된다. 다아시는 연간 1만 파운드의 재산을 소유한 귀족 출신의 가문이지만, 재력이나 신분이 아닌 사람 자체를 보고 평가하는 엘리자베스는 그를 '오만'한 인물로 여기고 반감을 가진다. 다아시의 집안에서 일꾼으로 자랐던 바람둥이 장교 위컴이 엘리자베스에게 접근해 다아시를 악독한 지주로 모함하고, 위컴의 거짓말은 엘리자베스의 다아시에 대한 '편견'에 일조하게 된다.
무도회 이후로 제인과 빙리는 교제를 시작하지만 제인은 조신한 여성상을 지키며 빙리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고, 소심한 성격의 빙리는 그런 제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결혼을 서두르는 속물적인 베넷 부인의 태도와 달리 소극적인 제인의 모습으로 인해, 다아시는 그녀가 빙리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 빙리가 일방적으로 제인을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게 한다.

결국 빙리와 제인의 사이가 소원해지게 만든 다아시를 더욱 증오하는 엘리자베스. 하지만 다아시는 총명하고 자유분방한 엘리자베스에게 매력을 느끼고,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다아시는 고민 끝에 신분의 장벽을 뛰어넘어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이미 다아시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았던 엘리자베스는 신사답지 못한 그의 오만함을 비난하며 청혼을 거부한다.
저자 제인 오스틴의 글은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 아닌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으로서 발견할 수 있는 작고 섬세한 부분을 조명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저자의 의도와 더불어 수없이 많은 프레임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이 명작은 250년 동안 사랑받아 왔으며 여전히 전 세계 독자들에게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번역본 출판사인 소담출판사도 '소담 클래식' 세 번째 책으로 『오만과 편견』이 선택했다. 전 세계에서 2,000만 부 이상 판매된 작품이자, BBC 조사 결과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책 2위에 선정된 이 소설은 현대 로맨스 소설 전개의 모태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속된 욕망과 생활의 논리(짝짓기와 돈)를 건전하고 합리적인 시각에서 훌륭하게 묘파하면서 재기발랄한 위트와 유머, 경쾌한 현실 풍자와 비판까지 곁들인 빼어난 작품이다. 정작 저자 오스틴 제인은 평생 독신이었고, 당시로서는 아주 드물게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녀가 적지 않은 편수의 소설은 거의 다 구혼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으로 올라서면서 상류사회와 서민들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는 상황에 처해 있다. 『오만과 편견』은 결혼과 돈이라는 함수관계를 소설로 풀어낸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적용될지 이 작품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이 소설의 유일한 흠이라면 문장이 길다는 것이다. 그 시기는 긴 문장을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현대인은 긴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역자 임병윤도 문장만큼이나 길게 돌고 돌아가면서, 자신의 지적인 내면을 한껏 즐기다시피 하는 오스틴의 그 '잘난' 문체의 묘사들은 원어로 음미하기에도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p.579)고 지적한다.

"결혼만이 교양은 있지만 재산이 없는 젊은 여성에게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계 준비였고, 비록 행복을 장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상의 대비책이었다. 그녀는 이제 그 대비책을 확보해 놓은 것이다."
저자 :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영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며,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로 손꼽히는 작가다. 1775년 12월 16일 영국의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과 어머니 커샌드라 사이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폭넓은 독서 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습작을 하다가 열여섯 살 때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스물한 살 때 첫 장편 소설을 썼다. 1794년에 서간체 단편소설 『레이디 수전』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1795년에는 『엘리너와 메리앤』이라는 첫 장편소설을 완성했는데, 1797년 이 소설은 개작되어 『이성과 감성』으로 재탄생한다.
1796년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혼담이 깨지는 아픔을 겪는 와중에, 훗날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된 소설 「첫인상」을 집필했다. 그러나 출판을 거절당하고 다시 꾸준히 작품을 개작했다. 그러다 1799년, 후에 『노생거 사원』으로 개제하여 출간된 「수전」을 탈고하고 1803년 출판 계약을 맺는다. 180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어머니와 함께 형제, 친척,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1809년 아내를 잃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의 권유로 햄프셔 주의 초턴이라는 곳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이 기간에 『이성과 감성』(1811)을 익명으로 출판하였고, 『첫인상』을 개작한 『오만과 편견』(1813)을 출간하였으며, 『맨스필드 파크』(1814), 『에마』(1815) 등을 출판했다. 이 책들은 출간 즉시 큰 호응을 얻었고 그녀는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1816년 『설득』을 집필하면서 건강이 나빠졌고, 1817년 『샌디턴』을 집필하던 중 병세가 깊어져 그해 7월, 42세로 생을 마감했다. 『노생거 사원』과 『설득』은 오스틴이 죽은 후 오빠인 헨리 오스틴이 작가 소개를 덧붙이며 1818년에 출판되었고, 후에 그녀의 습작과 편지 들, 교정 전 원고와 미완성 원고가 출판되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출간되고 영화화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삶의 미묘한 이면을 포착하고, 재치 넘치는 위트와 은은한 유머를 담아 젠트리 계층의 사교 생활과 결혼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히 그려낸 그녀의 작품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높이 평가되었다. 또한 오스틴은 영국 BBC 선정 ‘지난 천 년간 최고의 문학가’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에 오르는 등 가장 사랑받는 여성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작으로는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엠마』, 『노생거 사원』, 『Sanditon』, 『설득』, 『맨스필드 파크』 등이 있다.
역자 : 임병윤
부산가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 국내의 소장 영미문학학자들이 주도한 좋은 번역을 찾아서 2차 프로젝트에서는 번역서인 『동물농장』(소담출판사)이 최고 추천 등급의 번역본으로 선정되었다. 그동안 출간한 책으로 『영어로부터의 자유』, 『전치사 혼내주기』 등이 있으며, 주요 영미문학 및 인문학 번역서로는 『동물농장』, 『오만과 편견』, 『더블린 사람들』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