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비트겐슈타인 - 20세기 천재 철학자의 인생 수업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임재성 지음 / 유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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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마흔에 읽는 비트겐슈타인』은 시사주간지 〈타임〉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꼽힌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철학과 사상을 저자 임재성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썼다.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이 왜 '천재 철학자'로 칭송되는지, 서양철학사를 뒤흔든 대단한 철학자로 추앙받는지에 대해서부터 그의 저서를 중심으로 꼼꼼하고 세밀하게 분석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철학자로서 그의 행보는 남달랐다. 책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비트겐슈타인은 유태계 독일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거대한 철강회사 주인이었으며, 브람스, 말러 등 일급 음악가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유체 역학을 공부하러 맨체스터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점차 수학의 기초에 대한 철학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당시 세계의 석학 러셀과 함께 수학과 논리학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1913년 돌연 케임브리지를 떠나 오두막집을 짓고 은거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쟁에 자원 참전하였지만 포로로 잡혔고 감옥에서 그는 『논리-철학 논고』의 원고를 작성했다. 『논리-철학 논고』를 완성한 후, 1920년엔 철학을 떠나 오스트리아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1929년 초 자신의 철학을 재검토하면서 『철학적 탐구』의 모체가 되는 생각을 발전시킨다. 비트겐슈타인이 생전에 간행한 저서는 1922년에 출판된 『논리-철학 논고』이다. 『철학적 탐구』는 1953년 유고로서 나왔다. 비트겐슈타인 사후 그의 강의록과 유고가 『청갈색책』, 『공책』, 『확실성에 관하여』 등으로 출판되었다.

자신의 생전에 단 한 권의 책만 출판했는데 왜 그에게 ‘책 한 권으로 철학사를 뒤흔든 이단아’란 칭호가 붙었는지 언뜻 이해가 어렵다. 그토록 엄청난 저서였을까? 저자 임재성은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했던 “생각하는 힘이 인생을 사는 힘”이라고 말에 집중한다.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말로서 이해되는 부분이다. 이 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인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마흔 살'이라는 단어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나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가 상징적 의미로 붙인 단어로 읽힌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마흔 살'은 꽤 주목 받는 나이다. 공자는 2,500년 전 '불혹(不惑)'이라 했고,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마흔 살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흔 살쯤 되면 사람의 얼굴에 그동안의 삶이 나타난다고 링컨은 보았다는 말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지나치게 난해하여 대중의 언어로 정리된 책이 드물다고 한다. 저자 임재성은 인생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시기에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단 한 권의 책 『논리-철학 논고』를 만났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오랜 시간 이 복잡한 문장들과 씨름하며 그 숨은 뜻을 이해했고, 마침내 이를 마흔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어로 다시 썼다. 이렇게 탄생한 책이 이 책 『마흔에 읽는 비트겐슈타인』이다.

저자는 책의 〈서문(시작하며)〉에서 "인생을 후회하는 사람은 나보다 남이 결정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남이 만들어 주는 인생'이 끝나는 시점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시점은 바로 내가 나에게 이 본질적인 질문을 시작할 때다."라고 말한다. 이어 저자는 '마흔', 이제는 타인이 만든 인생이 아닌 자신이 만드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에 답할" 것을 주문한다. "자기 자신과 정직하게 마주해 보라. 지금까지는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설령 기회가 있었다 해도 대부분은 피상적인 자기 탐색에 그쳤을 뿐이다. 하지만 마흔부터는 인생의 유한함을 진지하게 실감하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p.5)

저자는 이와 함께 마흔의 자기 성찰은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결국 우리를 진정한 자유로 이끈다."고 말한다. 외부의 영향과 기준에서 벗어나 내가 나에게 양분과 기준을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마흔의 문턱에서 자신이 세운 철학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길을 걸은 철학자를 소개한다. 철학사의 이단아이자 전설적인 천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다. 


“철학은 건축과 비슷하지만, 본질은 자신을 세우는 데 있다.”

“더 나은 인간이 되려면 말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계속하라.”

“삶이 버거울 때 우리는 먼저 상황을 바꾸려 한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변화는 태도를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이처럼 비트겐슈타인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본질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마흔에 읽는 비트겐슈타인』은 각 장에서 무엇이 내게 가장 중요한지, 어떻게 우리가 쓰는 언어가 세계를 넓히는지, 얼마나 깊이 생각해야 하는지, 언제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인생이 의미 있는지 논한다. 이 책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이 던지는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이 선택한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귀띔한다.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가? 다른 사람에게 인생을 바치는 기분이 드는가?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스러운가?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하는 이같은 질문들은 생각하는 힘을 통해 인생을 사는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에는 인생의 중간 지점 마흔쯤에 깊이 성찰하고 사유하여 지금껏 외부에서 주어진 기준과 평가에 따라 인생을 살아왔던 점을 되돌아볼 것을 저자는 권유하고 있다. 특히 우리는 3년여 동안의 남겨진 폐허 위에서 쉬지 않고 목표만 바라보며 달려왔다.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지만 살제 개인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이후로도, 심지어는 다음 세대들에게도 삶의 본질을 찾는 일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럴 여유도, 그런 경계도 할 겨를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을 상징적으로 내세우며 “이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이 아니었구나” 하는 사고의 전환을 꾀해야 함을 자신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삶의 본질에 대해 사유할 것을 주문한다. 정신없이 일에 몰두해 치열하게 싸우다보면 누구나 관계는 복잡하고, 감정은 쉽게 흔들리며, 작은 결정 하나에도 몸과 마음이 지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단단하게 살아갈 나만의 기준이라고 저자가 강조하는 까닭이다. 이를 위해서는 삶을 깊게 사유하는 힘이 필요하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천재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간 철학자라고 한다.



마흔을 사는 우리에게 비트겐슈타인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고 그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를 통해 묻는다. 그리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인생을 사는 힘이 된다고 답한다. 저자는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일하며 외부의 기준에 맞춰 성실히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꼈고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뭘까?”라는 질문이 그의 내면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고민과 방황 끝에서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과 만났다. 이 책 『마흔에 읽는 비트겐슈타인』은 저자가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에서 배운 삶을 살아가는 힘을 담고 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36가지 실천적 조언으로 풀어내며 마흔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이 책은 저자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마흔의 삶에서 즉각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녹여 냈다. 저자의 해석이 그저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넘어 마흔이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순간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기준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 책은 모두 36개 항목, 다섯 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마흔, 무엇이 내게 가장 중요한가_비트겐슈타인의 내면〉, 2장 〈얼마나 깊이 생각해야 하는가_비트겐슈타인의 언어〉, 3장 〈얼마나 깊이 생각해야 하는가_비트겐슈타인의 사유〉, 4장 〈언제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가_비트겐슈타인의 통찰〉, 5장 〈어떤 인생이 의미 있는가_비트겐슈타인의 삶의 의미〉 등이다. 1장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이 강조한 내면의 단련을 다룬다.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의 목소리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 2장에서는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삶과 언어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이야기한다. 

3장은 “내 머리에 씌울 모자는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다”라는 그의 말을 중심으로,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4장에서는 “인생의 문제는 직접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 그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라는 말처럼,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깨달음을 풀어낸다. 5장은 죽음을 앞두고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 주시오”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조명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불안과 혼란한 세상에서 방향을 찾고 싶지만 넘쳐 나는 정보와 모순된 주장 속에서 무엇을 따라야 할지 막막할 때마다 도움을 준다. 비트겐슈타인은 혼란이 본질적으로 언어와 사고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규정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며, 명확하지 않은 언어는 명확하지 않은 사고를 낳는다. 그리고 혼란한 사고는 결국 혼란한 삶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마흔의 비트겐슈타인도 이와 같은 전환점에 서 있었다. 그는 『논리-철학 논고』에서 제시한 자신의 초기 철학을 부정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이처럼 우리도 지금까지 따라온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모색할 것을 저자는 우리에게 권유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 혼란을 극복할 수 있을까?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에게 다섯 가지 철학적 조언을 남겼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다섯 가지의 제목만 여기에 적는다.

①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물어라. 

② 언어를 정리하고 인생을 선명하게 밝혀라. 

③ 문제의 근원을 마주하라. 

④ 타인의 생각이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라. 

⑤ 삶의 의미를 찾아라. 

마흔 이후의 삶은 단단함이 필요한 시기라고 한다. 하지만 그 단단함은 다른 누군가가 키워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길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 『마흔에 읽는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쉬운 말로 철학과 현실의 거리를 좁혔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언제 침묵해야 할까?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상에서 접하는 가벼운 질문들이 쌓일 때 비로소 단단한 삶을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고 저자는 제시하고 있다.


저자 : 임재성


진로·인문·고전 교양 작가. 전자 계산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작가이자 강연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삶의 전환점은 ‘질문법’에 있었다. 책, 영화, 다큐멘터리 등 마주하는 모든 것에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현상이 아닌 본질을 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찾아낸 삶의 정수와 지혜를 독자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일을 즐기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아 성찰, 내적 치유, 리터러시 능력 향상, 인생 설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돕는 책을 쓰며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저서로는 『십대, 나를 위한 진로 글쓰기』, 『태도의 힘』, 『십대, 4차 산업혁명을 이기는 능력』, 『진짜 원하는 인생을 사는 43가지 방법』, 『인간이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어른이 되기 전 꼭 읽어야 할 삶의 지혜』, 『질문하는 독서법』,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등이 있다.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끌고 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답이 아닌 ‘질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십대의 질문법』을 집필했다. 특히 이 책에는 질문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를 주도할 진짜 지능을 키우는 비결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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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걷기
박산호 지음 / 오늘산책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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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다르게 걷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과 '삶'을 정의해낸 10명 인물들의 인터뷰집이다. 이들 10명의 인터뷰이는 각기 다른 직업들을 갖고 수많은 모호함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대로 삶을 일궈온 사람들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해 자신에게 끝없이 묻고, 자신이 내린 선택에 매진함으로써 어느 정도 일과 삶을 확보한 사람들이라고 저자 박산호는 전제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화려한 성공담이 없다. 이 책에 등장한 인터뷰이들은 '성공했다'는 형용사를 덧붙여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왜 이들의 삶이 '성공적'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 의문은 독자의 생각이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 너무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운 대로 말하자면 '성공'의 개념은 '돈 잘 버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는 아니다. 이 인터뷰이들처럼 자신의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마침내 목적한 바에 이르는 것을 가리킨다. 

독자는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이란 개념이 살아온 만큼 오염됐다는 지적에 변명할 핑계거리를 찾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자마자 남북 간 다른 이념으로 전쟁마저 겪었다. 종전 후 폐허에서 먹을 것도, 잘 곳도 없는 상태에서 미국 등 선진국의 원조로 허기를 채웠고, 잠은 겨우 바람 막을 정도의 가건물 혹은 움막 같은 곳에서 해결했다. 그래도 한마음 한뜻으로 불과 수십 년 만에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정도로 우리는 부지런했고, 치열하게 살았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24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달려 들었다. 교육열은 과거 왕조시대부터 있었던 유전적 요인에다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이 더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젠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풍요로운 나라의 대열에 줄을 맞췄다. 이유는 간단했다. 결과적인 판단이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성공했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즉 땀 흘려 번 돈이 자신의 돈이라는 확신 때문에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는 일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이란 개념이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쟁취하고자 하는 목적물이다. 자본주의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돈'이 성공과 거의 같은 의미라는 사횡서 오랫동안 살아와 독자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다르게 걷기』를 읽기 전 자본주의에 대해 확실히 알고자 네이버 백과사전을 찾아봤다. 이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노동력을 사서 생산 활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다양한 생산양식이나, 이를 토대로 형성된 경제구조 또는 사회 제도를 표시하는 용어이다. 한편으로 자본주의는 단순한 화폐경제를 의미하기도 하고, 생산품을 생산하여 이윤을 획득하려는 경제 체제로도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 단어는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독점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후기자본주의' 등의 다양한 수식어가 붙음으로써 그 개념은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① 자신의 사용이 아니라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한, 상품생산이 이루어진다. ②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③ 모든 재화에 가격이 성립된다. ④ 재화의 가치는 대부분 화폐의 중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⑤ 노동이 상품화되는 계약관계를 지니는 노동력 시장이 형성된다. ⑥ 자본의 소유주에 의해서 생산과정에 관여한 모든 사항이 통제된다. ⑦ 사회주의의 계획 경제에 비해, 무계획적이다. 이를 애덤 스미스(Smith Adam)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움직인다고 설명한다.(문학비평용어사전)

독자가 자본주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찾아 지식으로 머릿속에 새긴 것은 "개인적인 아픔, 반복되는 실패와 외로움의 시간을 통과하며 자신만의 철학과 삶의 세계를 구축해낸 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성공담보다 눈부시다."고 쓴 소개글을 읽고서다. 저자 박산호는 책의 앞 부분 〈저자의 말〉을 통해 인터뷰이들의 공통점을 한 줄의 글로 정리한다. "회사라는 틀 안에 들어가지 않은, 혹은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자기만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 이들은 '일'을 스스로 정의하고 손수 빚어낸 사람들이고 모두 거창한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자기다운 삶을 원했다. 결국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했다.(p.5~6)


저자는 그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일궈온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 세월 프리랜서로 살아온 나도 영감을 받고 싶었고, 동지애를 느끼고 싶었고, 덜 외롭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저자는 무엇보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실질적인 증거들을 모으고 싶었다고 밝힌다. 1년 넘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들이 하나같이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던 사람들은 아니라는' 점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그들도 시작은 불안했고, 두려웠다. 생계의 어려움도 실패도, 좌절도 겪어야 했다. 사회가 그들의 작업을 이상적으로만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정직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그들은 자신만의 철학과 세계를 쌓아 올렸다. 방식과 모양은 저마다 달랐지만 모두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 누군가의 곁에 서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수많은 역경을 해치며 자신의 자리에 다다른 이 특유의 내공도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이 이룬 가장 큰 성취요 자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실천을 선택하고 이어온 사람들. 인터뷰하는 내내 이들의 언어에서 조심스러운 용기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삶의 강각을 배울 수 있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면 좋겠다고 귀띔한다. 조금만 더 용감하게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살아가고 싶은 인생이 무엇인지 질문해보기룰 권유한다. 사회가 정하고 용인하고 허락하는 틀 안에서만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 자유로운 상상이 누군가에겐 삶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이 역할은 충분하다고 집필 취지와 바람을 은근히 내밀고 있다.

타인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에게 정직하기 위한 몸짓에서 나온 그들의 언어는 그 어떤 지적 성취보다 단단하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단순한 직업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고민하게 되고, 삶을 구성하는 시간과 태도, 감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편 한 편 생의 온도와 속도를 조절해주는 뭉근한 사유의 기록이며 통찰 깊은 인문학 강의이다.


이 책에는 인터뷰의 대가 김지수, 특수청소 전문가 김완, 지식 큐레이터 전병근, 이집트 고고학자 곽민수, 티베트 불교 전파자 용수스님, 웹소설 작가 최영진, 성교육 강사 심에스더, 인권위 조사관 최은숙, 도시 연구가 정수경, 그리고 인권 활동가 변재원이 인터뷰한 내용이 들어 있다.

1년 넘게 이어진 인터뷰는 저자의 치열한 호기심과 사람을 향한 세심하고 따스한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번역가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저자는 대상자의 말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깊은 고민이 담긴 질문을 통해 인터뷰이 스스로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맥락을 길어올리기도 했다. 그는 시종 성공의 외피가 아니라 선택의 내면을, 결과가 아닌 과정을 마음으로 듣고 담아내려 애썼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 이 책은 단순한 인터뷰집을 넘어 삶을 감각하는 성찰의 텍스트가 되기를 바랐고 바람대로 이어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러나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증거를 차곡차곡 쌓아 우리 앞에 성실히 펼쳐 보이는 것이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불투명한 앞날 앞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스스로의 방향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하나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20, 30대는 무대에서 날아다닐 수 있는 온갖 기술을 연마한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쓴 글이 ‘나 글 잘 쓴다’라고 과시하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치열하고 최적화된, 간절한 글쓰기입니다. 굳이 비교한다면 저는 지금의 글이 좋습니다. 나를 구원하고, 독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그것에 항상 최적화된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p.17) - 「인터뷰의 대가 김지수」 중에서


이 책의 인터뷰이들은 각기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독자는 이 가운데 '특수청소 전문가' 김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읽은 소설에서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나와 감동적인 내용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소설 속 주인공은 '유품 정리사'란 명칭의 직업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직업이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초고령 사회를 우리보다 30년 이상 먼저 진입한 일본에서는 지금은 꽤 유망한 직업으로 정착돼 있다고 한다. 인터뷰이 김완 역시 이 직업을 갖게 된 게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듯하다. 제목은 「진자리에 선 사람」이다. 글 맨 앞에 저자 이름 아래 짧은 소개가 있다. "출판과 트랜드 산업 분야에서 일했다. 몇 년 동안 일본에 머물며 취재와 집필을 하면서 죽은 이가 남긴 것과 그 자리를 수습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수 청소 전문가로 일하며 죽음 현장에 드러난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직업명에서는 별 거리낌이 없지만 막상 하는 일은 쉽게 적응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특수청소 전문가 김완에게 "어지간한 멘탈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죽은 사람의 진자리를 보면서 내가 죽었을 때 남는 흔적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다 보니 공감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렇게 고인과 나의 거리감이 좁혀지다가 어느새 나왁 고인을 동일시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지요. 이런 것들이 이 일을 10년째 하게 되는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돈, 즉 경제적 요건도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요."(p.37) 


저자 : 박산호


영어로 쓴 소설을 한국어로 옮기고, 에세이와 칼럼을 쓰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한다. 한양대학교 영어교육학과에서 공부하고 영국 브루넬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영화 ‘툼스톤’의 원작 소설 『무덤으로 향하다』 번역을 시작으로 번역가로 데뷔. 이후 스릴러의 거장인 로렌스 블록의 소설 시리즈, 영화 ‘월드워Z’의 원작 소설인 『세계대전 Z』, 영화 ‘차일드 44’의 원작 시리즈, 여성 첩보원 시리즈 ‘레드 스패로우’의 원작 소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의 원작 『토니와 수잔』, 그래픽 노블 『사브리나』, 『양들의 침묵』을 쓴 토머스 해리스의 『카리 모라』 등 다수의 스릴러 명작들을 20년 가까이 번역하면서 스릴러 문법과 구조를 익힌 스릴러 매니아. 최근에는 스릴러, 청소년 등 장르를 넘나들며 소설을 집필해 많은 독자를 만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오늘도 조이풀하게》《너를 찾아서》《소설의 쓸모》《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공저)《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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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경성 - 식민지 경성은 얼마나 음악적이었나
조윤영 지음 / 소명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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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음악에 대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우리와 일본인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감상하고 즐겼다. 이 책은 박사학위 논문을 저자가 각종 자료와 신문, 잡지 등을 보완해 식민사관을 벗어나 당시 경성 풍경을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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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경성 - 식민지 경성은 얼마나 음악적이었나
조윤영 지음 / 소명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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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한일 강제병합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압도적 통감 정치를 펼친 일본 제국주의는 3·1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 정치'를 실시했다. 3·1운동은 중국에서 외세를 내쫒아야 한다는 5·4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일본 총독부는 지나치게 조선을 압도하는 정치가 오히려 반발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하나씩 점령해가던 시절이어서 예전 정치로는 조선에 발목이 잡히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병탄 초기 동화정책을 기본으로 삼았던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한국민의 반항을 막기 위해 헌병과 경찰을 통합하여 중앙의 경무총장에 헌병사령관, 각도의 경무부장에 헌병대장을 임명하여 이른바 헌병경찰정치를 통해서 철저한 무단탄압정책을 강행하였다. 1919년의 3·1운동을 계기로 극악함이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헌병경찰은 보통경찰체로 바뀌고 총독부의 정책도 이른바 문화정치로 전환하였으나, 경찰제도는 여전히 총독부의 한국통치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여 비대하여만 갔다.

총독부의 중앙부서는 ‘문화정치’ 이후 내무·재무·식산·법무·학무·경무의 6국으로 개편하였고, 총독관방도 서무·토목·철도의 3부로 개편하였다. 지방제도에서도 도장관을 지사(知事)로 개칭하고, 민선으로 구성되는 도평의회 및 부·면협의회 등 자문기관을 두었다. 이들 자문기관은 도·부·읍회로 개편되어 지방자치제로서의 결의기관으로 발전시켰으며, 중앙의 중추원도 개편하여 고문·찬의·부찬의를 참의로 통합하고, 정원도 65명으로 정하였다. 한국인의 관리임용에서도 그 범위를 넓히고 대우를 개선하였으며, 언론·집회·출판에 대한 종래의 탄압정책을 완화하는 등 회유책을 썼으나, 이것은 모두 표면상의 정치적 제스처이었을 뿐, 음성적인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다고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다. 이 기간 1920년부터 1935년까지의 '문화 정치' 때 ‘음악회’는 식민지시기 경성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 ‘최고의 유행물’이었다고 이 책 『음악적 경성』의 저자 조윤영은 밝히고 있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당시 경성인들의 일상을 면밀히 살펴보고, 음악문화 형성의 중심지였던 종로와 혼마치(지금의 충무로 일대)의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진 근대 음악회를 정치적, 사회문화적 맥락을 통하여 알아보기 위해 집필 이유를 적시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는 일제의 문화정치와 일본 유학을 시도한 젊은 음악가들이 귀국하는 시점이 맞물려 음악적으로 중요한 시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1920년대에는 다양한 전공의 양악전문가들이 출현하고 양악을 향유하려는 조선인들이 증가하면서 음악회에 참석하는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것. 같은 시기 총독부의 문화정치와 함께 다수가 모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종로와 혼마치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가 박사학위 논문에 사용될 목적으로 연구하고 수집했던 자료가 대부분이어서 책으로 내기 위해 이 기간에 출간된 다수의 출판물, 즉 신문, 잡지, 음악회 공고문 등의 자료를 통해 수정 보완됐다고 밝힌다. 이 기간에는 다행히 문화정치로 전환하고부터는 일제가 우리의 신문, 잡지, 기타 각종 출판물의 자격과 기준 제한을 크게 낮추었던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역사 서술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영역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우리의 삶과 밀접한 음악사회에 대한 출판을 기획했다. 독자들 가까이에 식민지 일상의 음악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의 출간 의미를 두고 누구나 편하게 열어볼 수 있게 쓰고자 노력했다.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이제는 우리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이 식민지라는 환경에 의해 너무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특히,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세계를 휩쓴 아이돌 그룹이나 성악가 조수미,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같은 국제적 음악 인재들이 나올 수 있는 기반에는 우리가 100여년 전 새롭게 익혔던 서양음악이 현대 한국인들의 이중 음악적 모국어로 형성될 수 있는 근간이었음을 독자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처럼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던 일상적인 것에도 우리의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처럼 구멍 나 있는 역사의 퍼즐을 맞추어나가는 과정은 앞으로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p.7~8)

이 책은 경성시대 음악 사회를 분석한 저자의 박사논문이 바탕이 돼 출간되었으며, 조선인과 일본인의 생활공간을 가로지르며 음악이 문화정치적으로 담당한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근대도시 경성의 음악문화와 일상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네 가지 양상을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① 식민지조선의 모던도시 경성이 근대적 문화도시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개괄하고 조선인 중심의 종로와 일본인 중심의 혼마치문화를 비교하여 분석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서구화된 일본의 문화를 탐닉하는 조선인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본다. ② 조선인들에게 문화의 상징성을 내포한 공간이자 종로의 대표적 공간에서 열린 음악회를 구체적으로 조사하여 조선인 중심의 음악회 유형과 특성을 밝힌다. 그리고 일제의 지배하에 놓인 이중도시 경성의 이면을 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들의 문화와 혼마치의 대표적 음악회장 위치와 역할, 그리고 성격 등을 파악하여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던 식민/피식민, 중심/주변, 고급/저급의 음악사회를 탐색한다. ③ 음악회를 구성하는 다양한─청중, 음악가, 주최자─입장을 다각도로 조망하여 식민지권력과 자본주의 아래에서 근대적 도시 경험인 음악회라는 문화를 수용하는 모습을 분석한다. ④ 조선인들에게 음악회가 어떻게 ‘최고의 유행물’이 되었으며 ‘음악광시대’로 확산되어 가는지, 그들의 담론을 통해 조선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식민지경성에서 펼쳐진 음악회의 의미를 그려본다.

이에 따라 기술된 이 책 『음악적 경성』은 지금까지 들여다보지 않았던 음악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 조선인들에게 음악회에서 서양음악을 듣고 본다는 것이 어떠한 근대적 경험인가? 제도권 밖 음악문화의 저변층 확대를 둘러싼 의문을 풀어본다. 둘째, 식민지 상황에서 재조일본인들의 영향력과 그들만의 음악문화가 일상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식민지 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기에, 교육과 정책 연구에서 확인되지 않는 일반적 적용 사례를 찾아본다. 셋째, 그로 인해 조선인들이 받은 영향과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는가? 일본을 통해 굴절된 서구 근대화가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제국에 의해 한꺼번에 들어와 음악문화를 주재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혼재하는 경성이라는 도시의 음악 문화를 근대적 상징인 '음악회'에 집중해서 분석한다. 저자는 음악회를 중심으로 보는 이유는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시간예술 장르인 음악이 음악회와 관견된 다양한 자료물을 기록으로 수치화할 수 있어 어느 정도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모던도시, 그리고 이중도시 경성(京城)〉, 2장 〈경성의 서양식 음악회 1920년부터 1935년까지〉, 3장 〈이중도시 경성의 음악회 특징과 음악적 경성의 면모〉, 4장 〈도시와 음악 문화〉 등이다. 1장에서는 「모던도시로 재탄생한 경성」「이중도시 경성에서의 문화탐닉-종로(鐘路)와 혼마치(本町)」 등 2개의 테마로 분석한다. 2장은 「야외에서의 음악」과 「실내에서의 음악」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3장은 「조선인의 문화-종로의 음악회」, 「재조일본인, 그들만의 문화-혼마치의 음악회」로 각각의 특징과 다른 점을 집중 분석한다. 마지막 4장에서는 「조선인의 음악 담론 “음악광시대”」와 「경성 안 두 민족의 음악회」 등 2개의 소제목에 따른 흥미로운 내용이 전개된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사실 식민지경성이 근대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음악의 역할이 중요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음악 활동에 관한 중요성을 간과하여 근대의 일상에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특히 재조일본인들의 음악활동을 살펴본 데에는 경성인으로 함께 살아갔던 그들의 활동을 살펴보며 심층적으로 접근하여 근대 초기 경성의 음악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로써 근대 음악회의 수용과 그 중심지인 경성을 개괄하고 그동안 잊혀 있던 ‘음악과 일상’의 담론을 어떠한 형태로든 복구하여, 현재 우리의 음악문화와 일상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기를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내려 가다 보면 낯익은 이름과 다소 낯선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경성의 음악과 음악회, 음악인들 뿐만 아니라 타 분야에서 활동하는 조선인 인사들도 책에 이름이 들어 있다. 그만큼 경성의 음악과 음악회는 음악인들과 음악향유층의 관심의 높았고, 대중적 인기도 높았기 때문으로 독자는 풀이한다. 또 서양음악과 서양음악인들의 이름도 자주 나온다. 경성의 음악은 이른바 '서양 클래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홍난파는 "우리 사회에는 음악회란 것이 일대 유행물"(1925. 1. 1)이었다고 하나 당시 경성은 주체적으로 음악회를 열어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음악홀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실내 음악회는 근대식 건물의 다목적 공간인 공공 강당에서 개최되었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한국 서양음악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홍난파(1898~1941)는 또 뒷날 1940년 5월 19일자 신문 칼럼에 "그때 음악회란 음악전문가들의 예술적 연주회가 아니라 서양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어릿광대들의 소기(素技, 꾸밈없는 기술)에 지나지 못했던 것···"이라고 썼다. 여기서 '그때'란 1915~1920년을 말한다. 그때는 근대음악이 우리 땅에 이식되던 시기라고 볼 때 적절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경성은 일본이 추종했던 서구 음악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혼마치(지금의 명동·필동 일대)의 악기상과 레코드 가게, 음악다방 등을 통해 도시는 점차 음악에 젖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문화충돌이 없던 건 아니다. 마당놀이 같은 야외 연회에 익숙했던 조선인들에게 실내 음악회는 생경했다. 음악회장 연주를 배경 삼아 춤추거나 소리 지르고 담배 피우는 일도 허다했다. 관람에티켓 지적이 늘자 양악은 점차 대중과 멀어졌다. 그럼에도 현진건의 단편 「피아노」가 그려내듯 '피아노만 들여놓으면 신식 가정이 될 것 같은 착각'이 1920~1930년대 경성인을 자극했다. 

책에 따르면 경성에서 열린 대부분의 음악회는 종로의 기독교청년회관과 혼마치의 경성공회당에 집중되어 있었고, 지정학적으로 조선인 중심지와 재조일본인 중심지로 나뉘어 있었으므로, 이 두 공간의 음악회를 비교하면 종로와 혼마치 음악회의 특징과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종로의 기독교청년회관 음악회는 초기에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이지만 192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급격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 종로에서 열린 음악회의 인기가 시들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혼마치의 경성공회당 음악회는 공회당이 설립된 1920년부터 차차 음악회가 열리기 시작하더니 192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큰 변화 없이 꾸준히 개최되는 모습을 보인다.(p.146)

식민지배자인 일본인과 피식민자인 조선인의 근대에 대한 사고 차이는 음악문화가 형성되는 음악회 현장을 크게 두 범주로 구분했으며, 이 이중성은 음악적 근대도시 경성의 면모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던 것은 확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경성의 음악회는 공연장이 있는 지역에 따라 조선인과 재조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철저하게 구분되었다. 종로의 공연장은 조선인들의 공간으로 서구식 공연의 시작 단계에 있었으며, 일본인들의 거주지인 혼마치에서는 전문음악인들이 참여하는 격 높은 공연들이 기획되었다.(p.149)



제3장 〈이중도시 경성의 음악회 특징과 음악적 경성의 면모〉 「조선인의 문화-종로의 음악회」에서는 식민지배자인 일본인과 피식민자인 조선인의 근대에 대한 사고 차이는 음악문화가 형성되는 음악회 현장에서 두 범주로 갈라진 상황을 자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경성의 음악회는 공연장이 있는 지역에 따라 조선인과 재조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철저하게 구분되었다. 1920년대가 될 때까지도 예배당이든 술집이나 기생집이든 찬송가가 유행하였기에 음악회 곡목은 찬송가나 유행가가 주요 레퍼터리였고, 악기 외에 톱도 등장했다고 한다. 톱을 그어 소리를 내는 톱 연주를 악기 연주라 할 수 없지만 안대선(W. J. Anderson)이나 호아재경의 톱 연주는 조선인 중심 음악회에서 종종 공연되었다. 초기의 음악가는 "음악을 전문공구(專門功究)하는 인(人)은 아니요, 흔이는 부업으로써 다소간 이 방면에 소양과 취미를 남보다 더 가졌"(ghdsksvk, 1925. 4)던 사람들이었고, 음악을 생업으로 하는 음악가들도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장기를 선보이며 청중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김형준은 작사·작곡, 성악, 나팔까지 섭렵했으며, 김영환은 피아노, 바이올린, 작곡을 겸했다. 박용구는 이를 분업화의 문제로 지적하였지만 당시 소수였던 음악가들이 현실적으로 음악계를 지탱해 나가기 위한 도전과 노력이기도 했다.

근대 유행물인 음악회는 사교의 공간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도 당시 작가 현진건의 소설에 나타난 내용을 인용해 저자는 강조한다. "현진건의 소설 「까막잡기」를 보면, 전문학교에 다니는 상춘은 학수에게 여학교 주최로 열리는 청년회관 춘기 대음악회에 가기를 권한다. 음악을 모르니 가지 않겠다는 학수에게 상춘은 하이칼라 여학생은 다 올 것이니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자며 일등표까지 사주고 데려간다. 이 소설 속 음악회는 남학생이 여학생을 만나기 위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현진건의 또 다른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도 여학생에게 기숙사로 남학생의 편지가 오면, 삭람은 '학교에서 주최한 음악회"에서 만났나며 문초하였다. 경성인들에 음악회란 남녀가 만날 수 있는 공개적인 연애 장소로 인식되었다."(p.153) 이에 반해 연극이나 영화처럼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문화 생활에 반해, 음악회는 남녀가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쾌락이자 여흥이나 오락 격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일 원이나 이 원의 고가의 입장료를 선선히 내는 청중들"은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일석의 유흥기분으로 이것에 만족"(홍난파, 1940. 5. 19)하며 음악회를 다녔다.


저자 : 조윤영


호서대학교 강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음악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근대 음악사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에 「조선인 중심의 음악회장, 경성(京城) 기독교청년회관」 「왜 식민지조선 음악가들은 관현악단을 만들고자 했는가: 경성방송(JODK)관현악단의 출현과 그 의의」 「식민지조선 음악단체 중앙악우회(中央樂友會) 정체성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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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6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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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육체노동자』는 표제어에서 드러나는 이른바 '블루컬러'로서의 노동자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프랑스 소설인 데다 저자 클레르 갈루아의 가 해온 일과 그가 쓴 작품들의 성향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문장 속에서 건축노동자처럼 힘든 육체노동을 의미하지 않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주인공 크리스틴이 사랑하는 남자인자 동성애자인 빅토르 때문에 표제어에서 나타나는 '육체'는 사랑의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크리스틴은 10년을 빅토르만 바라보고 살지만 27명의 애인을 만난다, 그럼에도 빅토르를 사랑했고, 지금도 돈만 많은 중년의 남자를 만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빅토르는 죽게 되고 그를 묘지에 안장하기 위해 크리스틴은 길을 떠난다. 그러다 밤이 오면 그가 추울까 관 옆에서 밤을 보낸다. 10년동안 그를 사랑했지만 죽고난 후 처음으로 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크리스틴은 손수레 위에 앉아, 빅토르 옆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 추위를 꾹 참고 견디리라 마음먹는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을 혼자 내버려두지는 않을 테니까, 절대로."

그러고 나자, 어떤 한 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나는 갑자기 웃고 싶어였다.

- 우리가 함께 보내는 최초의 밤이군요.(p.243~244)

이 소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프랑스에서의 남녀 혹은 동성간 사랑에 대한 사회적 눈길과 또 법률적 판단,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사랑'의 개념이 충돌함을 느낀다. 소설이 결코 길지는 않지만 전개되는 내용에서 쏟아내는 마음의 방황은 길고 길다. 복잡하다는 뜻과도 같은 맥락이다. 자칫 프랑스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동성애에 거리낌없는, 또 이상한 연애로 생각지도 않는 사회 분위기 탓일까 하는 의심도 가져본다.


앞서 언급한 크리스틴의 독백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을 표현하는 내용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에서의 연애는 굉장히 개방적이고 한없이 자기 주관적이라는 독자의 개인적인 선입견 때문일까? 아니면 당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 탓일까? 사랑이 노동이라고 해석하는 저자 클레르 갈루아의 사랑관(觀) 때문일까? 프랑스 소설을 많이 읽지 못한 독자가 프랑스 문화에 서툰 탓일까? 작품의 전개에도 어렵고 관념적인 내용의 단어, 우리와는 다른 사랑관(觀), 또 독자와 저자의 다른 성별 때문일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난해하다는 느낌이다. 책의 뒷 부분에 이 책의 역자 오명숙의 〈옮긴이의 말〉에 눈길이 간다. 

"몇십 년 만에 눈이 쏟아지기 시작한 파리의 이른 아침, 크리스틴은 빅토르와 여행을 떠나기 위해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하지만 그 여행은 멋진 차를 타고 아름다운 고장으로 향하는 여행이 아니다. 다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영원한 이별을 향한 여정이다. 이 소설은 크리스틴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코르뒤레에 도착하기까지 하루동안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하루 안에는 그녀가 빅토르를 사랑해 온 10년의 시간이 오롯이 녹아 있다. 이미 예술가의 손을 떠난 그림처럼, 더 이상 덧칠할 수 없는 남자 빅토르. 그녀는 그를 사랑했지만 한 번도 그의 시선을 온전히 독차지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 크리스틴은 사랑이든 아니든 간에 스물일곱 명의 애인을 만났고, 현재는 아쉴이라는 중년의 남자와 함께하고 있지만, 빅토르는 여전히 견디고 싶은 무게, 살갗을 벗겨 내야만 지울 수 있는 아름다운 문신처럼 그녀 안에 남아 있다."(p.245~246)

역자에 따르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빚어 내는 상처투성이 감정들의 파노라마는 감동적이다. 상처가 많아 위험하지만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사랑과 배려와 안타까움과 믿음은 물론이고 시기와 원망과 비웃음과 분노까지도 그렇다. 심지어는 죽음으로 가는 길마저 아름답다.


역자의 시선은 이어진다. 그리고 작품을 보고 느낀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사랑하는 남자의 마지막 편지를 가슴 위에 반창고를 붙여 고정시킨 한 여자가 그를 땅에 묻기 위해 눈덮인 길을 달린다. 그리고 그를 만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온밤을 꼬박 지낸다. 그의 주검과 함께." 역자는 주인공 크리스틴의 10년을 충분히 이해한 듯하다. 앞서 언급한 빅토르의 주검과 마지막 밤을 함께 지내는 크리스틴의 심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며 충분히 공감한다.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크리스틴의 마음 상태에 동화된 듯하다. 역자는 책을 읽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들이 책을 덮는 순간 모두 이해한 듯하다. 

"책을 읽는 동안 짧지만은 않은 삶의 순간순간들을 되짚어본다. 많은 것들이 기억난다. 좀 헐값에 샀다 싶은 것도 없고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치렀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다. 현재의 삶을 무차별 공격하며 인기척 한번 없이 다가와 슬며시 팔짱을 끼는 추억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니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르고 나서야 얻어 낸 값비싼 녀석이었다. 살아가는 데 공짜란 없다. 크리스틴의 할머니 말처럼. '인생이란 일종의 대형 백화점과 같다. 일단 그 안에 들어서면 물건을 구입하고 값을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 클레르 갈루아의 『육체노동자』는 열림원이 기획한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이 소설작품은 “사랑이라는 거대한 착시 안에서 겨우 간신히 버티는 자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글에 적었다. “절망적인 특권”으로 주어진 관계 속에서 “파괴로 완성된 사랑”을 끝내 사랑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인물, 크리스틴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빅토르라는 단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조롱하며 다른 애인들의 목록을 계속해서 늘려나간다. 크리스틴의 빅토르를 향한 모든 몸짓들은 모순된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진실한 감정이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육체노동자』가 실패한 방식으로만 사랑할 수 있는 어떤 여성의 절규라면, 자신의 몸을 기억과 고통의 형식으로 보존하는 그녀에게 육체는 사랑을 향한 노동이자 증언의 매체이라는 출판사 측의 서술은 독자들에게 이해를 줄까? 혼동을 가져올까?


이 소설 작품 소개글에 따르면 사랑과 증오, 예술과 노동, 숭배와 모욕의 은밀한 경계를 통과하여 “비로소 춥고 깊은 밤에 도달한 이야기”는 “아이러니로 가득한 인생의 기억과 헐벗은 듯 진실한 내면”을 파헤친다. 『육체노동자』는 아름다움과 파괴, 집착과 애도의 감정이 어떻게 한 사람의 몸과 언어를 변형시키는지에 대한 치열한 기록이자, 규범 바깥에서 말해지는 사랑, 그 해체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놓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한 비문법적인 고백이다." 사랑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 “다만 깨닫게 될 뿐이다. 그녀를 지켜보는 불안과 초조함마저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크리스틴이 빅토르에게 그랬듯 나 역시 기꺼이 그녀의 ‘명예스럽지 못한 증인’이 될 것임을.” 출판사 측의 소개글을 읽으면 서서히 작품 이해에 가까워진 듯하다. 

저자 갈루아는 1965년에 발표한 『나의 유일한 욕망』 이후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온 1970년부터 20년간 〈마리 클레르〉, 〈엘르〉, 〈르 피가로〉 등 잡지에서 활발한 문학 비평을 했다. 1986년부터는 페미나 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작품에서 갈루아는 병으로 고통받는 어느 동성애자 빅토르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 크리스틴, 그리고 이 두 사람을 둘러싼 복잡 미묘한 인물들의 관계를 간결하고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다. 『육체노동자』는 예민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정상 범주 바깥에 자리한 욕망과 여성의 시선을 포착하며, 프랑스 문단에서 클레르 갈루아를 독보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사실 독자로서 느낀 감정은 "감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이 고통스러운 실험"을 고백한다. 독자와 프랑스, 독자와 저자, 독자와 사랑관이 다른 탓인지 매우 난해했다. 그러나 독자 스스로의 선입견을 배제한다면 이 소설은 깊은 사랑의 감정에 대한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크다. 한마디로 독자에게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빅토르는 신경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에 걸렸을 뿐 아니라 고집스럽고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크리스틴에게 헌신적이고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하지만, 크리스틴에게 그는 “감당하고 싶은 무게, 살갗을 벗겨내야만 지울 수 있는 아름다운 문신”(〈옮긴이의 말〉) 같은 존재다. 두 사람을 둘러싼 세베로, 라이오넬, 아쉴, 자크 등의 비규범적인 관계는 세간의 시선으로는 쉽게 인정하기 어렵지만, 그들만이 만들어 나가는 복잡한 사랑을 통해 우리는 상징과 은유가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프랑스 소설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빅토르의 죽음을 앞두고, 그가 머물던 장소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공간을 따라가는 크리스틴의 짧은 여정은 “다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영원한 이별을 향한” 움직임이 된다. 이 여정은 과거와 현재, 사랑과 상실, 욕망과 체념이 끊임없이 겹쳐지는 기억의 궤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은 크리스틴이 이른 아침 집을 나선 것으로 시작해, 늦은 밤 목적지인 코르뒤레에 도착할 때까지, 하루 동안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두 사람 사이의 10년을 병치시킨다. 살아 있음과 죽음 사이, 관계의 유효성과 무력함 사이, 말해지는 것과 끝내 말해지지 못하는 것들 사이에서 이 이야기는 열린 문턱 위에 선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빚어 내는 상처투성이 감정들의 파노라마는 감동적이다.”(p.246) “사랑과 배려와 안타까움과 믿음은 물론이고 시기와 원망과 비웃음과 분노까지도 그렇다. 심지어는 죽음으로 가는 길마저 아름답다.”((p.246) 이 소설 『육체노동자』는 사랑을 말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랑 소설과도 다르다. 이 작품은 감정의 심연에 침잠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사랑을 사랑이게 하는가? 누군가를 욕망하고 동시에 증오하며,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감정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크리스틴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 자체를 온몸으로 살아낸다. 그녀의 서사는 균질적인 언어로는 번역되지 않으며, 그녀의 고백은 잔혹하리만치 솔직하고, 절망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단지 육체로 겪어야만 했던 어떤 사랑의 방식, 그리고 그것이 남긴 흔적의 무게를 이야기하며, 이 소설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감당하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그곳엔 잿빛의 거리도, 도시도, 세간의 쑥덕거림도, 비굴한 타협도, 성가신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창백한 흐린 하늘 끝엔 언제나 고운 먼지가 깔린 꼬불꼬불한 작은 길과 푸른 언덕이 끝없이 펼쳐졌다. 타는 듯 대기가 뜨거워지면서 축축한 습기가 몸을 감싸면 우리는 그 길을 달렸다. 그 작은 길은 잿빛 그림자를 드리우는 포도밭과 올리브밭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며 노송나무 숲을 감아 돌았고, 노송나무 숲은 큼직한 돌들로 눌러 고정시킨 붉은 기와지붕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등나무가 자라는 작은 기와 벽을 가벼운 화장이라도 시킨 듯 뿌옇게 만들었다.(p.108~109)


어리석은 일이긴 하지만 내겐 타인들에게 내 삶에 관해 주절주절 떠드는 버릇이 있다. 그러고 나면 언제나 궁지에 몰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도 말이다. 날 잘못 판단하고 있는 그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빅토르는 닮은 구석이 아주 많다. 우리는 어떻게 손써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미지의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얘기를 털어놓으며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면서, 그들의 난처함에 대해선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증인을 찾아 헤매는 일종의 유희이다. 우리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가지고 훈련을 시키긴 하지만 결코 우리를 속박하지는 않을 그런 증인들을 찾는 유희. 사람들은 우리가 모든 것을 얘기하고 있다고 믿지만, 정작 우리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진정한 비밀은 슬픔이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은 척할 뿐이라는 것을.(p.128)


저자 : 클레르 갈루아


1937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965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0년부터 1990년까지 20년간 『마리 클레르』 『엘르』 『마리 프랑스』 『르 피가로』 『파리 마치』 등 여러 잡지에서 문학 비평을 집필했다. 또한 페미니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주요 작품으로 『나의 유일한 욕망』 『양팔 가득 장미꽃을』 『흰 실로 수놓는 소녀』 『예레미야의 밤』 『인생은 소설이 아니다』 『네 개로 조각난 가슴』 『만약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라면』 『위험한 시간들』 등이 있다.


역자 : 오명숙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시적 모험』 『폭력적인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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