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을 쏘았다
호레이스 맥코이 지음, 송예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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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호레이스 맥코이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 실제 체험한 경험적 사실을 모티브로 쓴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출간 초기 대중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1940년대 중반 장 폴 사르트르, 앙드레 지드, 앙드레 말로 등 프랑스 작가들을 중심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소설을 가리켜 “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유럽에서 맥코이는 윌리엄 포크너, 존 스타인벡,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작가로 주목받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무명 배우 글로리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만난 삶은 끝없이 견뎌야만 하는 악몽이었다. 마침내 그것이 자신의 삶에 내려진 형벌임을 깨달은 글로리아는 자신의 파트너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삶의 의미와 공허함을 보여준다.

서정적이면서 음울한 이 소설은 섬세하고도 적나라하게 삶의 아이러니와 공포를 그려내 맥코이 작품 세계의 정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학적이리만치 적나라한 이 작품은 그 시절 사람들의 시대 인식이 진지하지 못했다는 오해를 바로잡아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오락거리처럼 구경하는 이 작품의 플롯은 토머스 홉스와 찰스 다윈의 머리에서 나왔을 법한 설정으로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연상시키며, 맥코이는 여기에 살인, 성폭력, 낙태와 같은 주제를 과감히 덧붙인다.

인물들의 삶은 실로 끔찍하고 혹독하며 허무하다.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열정과 힘은 찬사받아 마땅하다. 이 소설은 작가가 샌타모니카에서 벌어진 마라톤 댄스 대회의 경비원으로 일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1시간 50분 동안 춤을 추고 단 10분만 쉴 수 있는 마라톤 댄스가 실제로 있었던 행사라니 쉽게 믿기지 않는다. 지금 TV 리얼리티 쇼처럼 PPL(영화나 드라마에서 특정 제품을 노출시켜 광고 효과를 노리는 간접광고)이 그때 이미 있었단 것도 흥미롭다. 당시 마라톤 댄스 대회에 참가한 커플들이 후원사 이름이 크게 적힌 스웨터를 입고 춤을 췄다니 당시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미국의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가는 이 소설은 현대 사회에도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글로리아와의 인연은 조금 우습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때 그녀도 나처럼 어떻게든 영화판에 들어가려 애쓰는 신세였다. 그 만남이 아니었다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 그녀를 보러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혼과 근친 성폭력 등 비참한 삶을 살아온 글로리아. 우연히 놓친 버스의 정류장에서 로버트를 만나게 되고 둘의 운명은 시작된다.

대공황 시절이라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도 힘겨운 암울한 시기. 배경이 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곤 삶의 단조로움과 무료함, 그리고 죽음뿐이다. 그곳에서 댄스 마라톤이라는 명목하에 참가자들이 수개월 동안 마지막 커플이 남을 때까지 원형 경기장을 끝없이 도는 행사가 열린다. 이 대회에 참가하면 숙식이 제공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글로리아는 로버트에게 한팀이 되어 출전할 것을 제안한다.





글로리아의 제안으로 로버트는 그녀와 함께 댄스 마라톤 대회에 커플로 참가하게 된다.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춤을 추고, 대회 중간중간 마라톤 경주도 한다. 남녀 한 조가 커플이 되어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춰야 한다.

잘 수도 없고, 쉴 수도 없고, 오로지 10분의 휴식 시간에 세면과 식사, 수면을 해결해야 하는 광란의 대회. 심신이 피폐해진 버려진 영혼 같은 젊은이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삶의 목적이나 꿈도 상실한 채 오로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그들을 이용하여 온갖 쇼와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흥행업자. 동물원처럼 우리에 갇힌 비참한 동물들을 구경하고 즐기기 위해 입장한 관객들. 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총체적인 비극은 끝을 알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이 기괴한 댄스 마라톤 대회는 인생의 무작위와 불합리, 그리고 무의미를 완벽히 보여주는 삶의 축소판이다.

대회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글로리아는 끝없는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그런 그녀를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로버트도 함께 절망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암울한 현실의 터널 끝에서 작고 소박했던 그들의 꿈은 점점 사치로 변질한다. 소망하는 작은 평범한 삶조차도 버거운 그들에게 희망이 피어날까? 아니 헛된 꿈이라도 품어 보기는 한 걸까?

“나는 가만히 바다를 내다보며 할리우드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그곳을 가본 적이 있기는 했던가. 혹시 이 모든 게 꿈이어서, 곧 아칸소 집에서 깨어나 배달할 신문 더미를 안고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건 아닌가.”





대회가 진행될수록 극도의 피로감에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추악한 인간의 욕망이 치부를 드러내며 처절하게 이어지던 대회는 몇 발의 총성으로 또다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죽어야만 끝날 것 같은 이 대회는 역설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황망하게 끝이 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우리의 삶처럼 이 대회는 막을 내리게 되고, 더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는 글로리아. 그녀는 로버트에게 총을 건네고 마지막 부탁을 한다.


판사가 내 앞에 앉아 안경 너머로 날 바라보며 뭔가를 말하고 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안경을 관통하는 그의 시선처럼, 그의 말도 나오는 족족 내 몸을 관통해버린다. 판사의 안경이 그의 시선을 잡아두지도 가둬두지도 못하는 것처럼, 내 귀와 머리는 그의 말을 좀처럼 담아두지 못한다. (p. 176)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바깥공기는 축축했지만 상쾌했다. 마치 내 폐가 맑고 묵직한 공기 덩어리를 한 입 베어 무는 느낌이 들었다. (p. 197)





마라톤 댄스 대회는 한때 해상 유원지의 무도회장으로 쓰인 대형 건물에서 열렸다. 바다에 말뚝을 박고 세운 다리 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건물 아래로는 파도가 밤낮으로 철썩였다.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듣는 것처럼. 나의 두 발이 파도의 솟구침을 느낄 수 있었다. (p. 30)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고 손님들은 신이 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라톤 댄스 대회에서는 언제라도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겨난다. 뭔가 일이 벌어지면 장내는 순식간에 들썩거린다. 이런 점에서 마라톤 댄스는 투우 경기와 비슷하다. (p. 51)


마리오가 살인죄로 체포되었을 때는 참 많이 놀랐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착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착한 사람이 살인자일 수도 있다는 게 이제는 이해가 간다. 나는 누구보다 글로리아에게 친절했다. 결국엔 그런 내가 총을 쏴 글로리아를 죽이고 말았지만. 그러니 착하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p. 58)





바닥에 드리운 삼각형의 햇살 조각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마침내 삼각형이 작은 덩어리로 뭉개져 내 다리에 달라붙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내 몸을 타고 위로 올라왔다. 그 작은 덩어리가 턱까지 올라왔을 때, 나는 그것이 내 얼굴에 최대한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발뒤꿈치를 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창밖 태양을 똑바로 응시했다. 하나도 눈부시지 않았다. 순식간에, 햇빛은 자취를 감췄다. (p. 64)


새로운 경험이란 건 없다. 어떤 일을 겪어본 적 없다거나 생전 처음 겪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에 불과하다. 무언가를 보거나 냄새를 맡고, 듣거나 느끼는 순간, 처음인 줄로만 알았던 그 경험을 과거에 이미 겪어보았음을 깨닫게 된다. (p. 80)





저자 : 호레이스 맥코이


미국 테네시주 인근의 가난한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주 방위 공군에 입대하여 프랑스에 파병되었다. 소설가가 되려고 신문사에 들어가 스포츠, 범죄 취재기자로 일했으나 부유층과 교류하면서 지나친 소비와 방탕한 삶을 보내며 가산을 거의 탕진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맥코이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마라톤 댄스 대회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 〈그들은 말을 쏘았다〉를 완성해 출간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소설을 가리켜 “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유럽에서 맥코이는 포크너, 헤밍웨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작가로 주목받았다. 새 소설을 집필하던 중 1955년 12월 쉰여덟 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내는 그가 모아둔 책과 재즈 앨범을 팔아 겨우 장례식을 치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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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과 역설 - 본질을 알면 모순이 보인다
천공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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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과 역설』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통찰'과 '역설'의 뜻을 미리 숙지해야 한다.

통찰이 담고 있는 철학적, 이념적 뜻은 '역설'이라는 문학적 용어와 잘 어울릴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책 전체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는 사전적 의미라도 정확히 해두는 게 좋다는 의미에서 여기에 적어둔다.

두 단어 사이의 뜻에 혼란이 올 경우 책의 취지를 오해하는 우를 범해 저자 집필 취지에 반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통찰(洞察, insight) : 생활체가 자기를 둘러싼 내적·외적 전체 구조를 새로운 시점(視點)에서 파악하는 일. 문제 해결이나 학습의 한 원리이다. 시행착오와 대비되는 단어다. 통찰이 가능하려면 주위의 상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고쳐보는 것(知覺的 再體制化)이 필요하다고 한다.(두산백과사전)

역설(逆說, Paradox)참된 명제와 모순되는 결론을 낳는 추론. 표면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즉 자기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해석의 과정을 거쳤을 때 그 의미가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는 진술, 곧 진실을 담고 있는 진술을 말한다.(문학비평용어사전)





이 책의 저자 천공의 이력이 사뭇 서먹해 미리 밝혀둔다. 어릴 때 고아원에서 자랐다. 33세 때 경남의 신불산으로 들어가서 무려 17년 동안 수행하다가 50세에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이후 정법시대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사회 전반에 걸친 부조리와 잘못된 관습을 무너뜨리기 위해 유튜브 강연을 시작, 6년 동안 무려 1억 8,000만 뷰를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그의 강연은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 미국, 호주, 이탈리아 등 한인사회에 깊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 『통찰과 역설』은 상식에 갇혀서 삶의 해법을 찾지 못하고 딜레마에 빠져 있는 국가와 사회, 개인에게 선견과 지혜를 던져준다.

테크노 사이언스가 발달한 산업사회에서 개인의 삶은 외롭고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 속에서 인간은 마음의 안식과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만 멀게만 느껴진다. 과연, 내가 찾고자 하는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그 삶의 해법을 풀어주는 현자(賢者)가 마침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누구나 그렇듯이 인간은 시련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한다. 그런 과정에서 어떻게 나를 계발하고 성장시킬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다.

이 책에는 어려움에 빠진 지금의 나를 극복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알차게 제시되어 있다.





도대체 그의 강의에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말 속에는 일반적인 상식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생각의 오류를 바로잡는 날카로운 통찰과 비판적인 힘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나름대로의 해법을 찾을 것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그의 강의는 주로 인간관계, 부부관계, 좋은 인연을 맺는 법, 운과 복을 부르는 행동, 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잘못을 꼬집는 통렬한 비판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의 강의는 결코 거창하지 않으며 또한 공허하지도 않다, 다만, 그 울림이 매우 강하고 독특해서 하루 종일 그의 유튜브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엄청나다. 그만큼 그의 강의 주제들은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매우 매력적이다.





책에 따르면 누구나 사회적인 증오, 혹은 대인관계의 갈등이나 원한을 풀 수 있는 것은 개인이 아닌 공적인 관계로 풀어보려 한다. '법대로 하자'가 바로 그것이다. 개인간 갈등이 심해지면 화해 에너지가 사라지고, 정신과 마음이 현실과 따로 노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에너지를 모으면 작은 볼록 렌즈도 불꽃을 일으킬 수 있고, 모든 일은 사람의 에너지가 모여서 좋은 기운을 이뤄 성공의 핵심이 된다. 가족과 사람들, 조직간에도 에너지 흐름은 있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매일을 인사하면 좋은 하루를 보내자고 하지 않는가.

좋은 운이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부단한 시간과 노력이 투영된 것이란 저자의 주장도 설득력 있다.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겸손하기 위해 축하에 대한 답례일 뿐이다.

"본질을 알면 모순이 보인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는 본질을 보려 하지만 주변의 아우라에 휩쓸리거나 자신의 선입견 때문에 시야가 가려 그 본질을 못 볼 때가 많다.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면 어떤 노력과 환경에 처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를 '대자연의 7가지 법칙'이라 칭한다.

1, 사람을 만날 때는 그 사람에게만 집중한다.

2. 타인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라.

3. 타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려라.

4. 일등보다 중혀한건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이다.

5.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해라.

6 사기꾼과 도둑이라도 배울 것은 배워라.

7. 자신의 진짜 얼굴은 오십부터 드러난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약속했다면 그에 대한 과거의 정보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만나라. 그래야만 그에게 집중할 수 있다.

"과거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며, 한 사람의 과거는 때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도 있으며 보통 우리는 사람에 대해 판단할 때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에 더 끌리기 마련이라 항상 이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그래서 먼저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될 때는 일단 선입견 없이 만나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올바른 기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성껏 기도하면서 거기에 상응하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기도만 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하는 건 진실한 종교가 아니라 거의 사이비 종교에 가깝다.

- p.229

가장 헛된 말이 ‘남을 용서한다.’는 말이다. ‘용서’의 반대말은 ‘복수’인데 원래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대자연만이 할 수 있다.

어리석은 인간의 지혜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분별력으로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복수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 p.263





‘인복’이 진짜 많은 사람은 자신이 삶의 중심을 잃고 헤맬 때 바른 길을 가라고 귀싸대기를 올려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그런 이가 곁에 많은 사람이다.

술을 잘 사주거나 선물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스스로 인복이 많다고 착각하지 마라.

- p.268

교수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선생님, 여여함은 어떤 상태를 말하고 깨달음은 무얼 말하는지요?”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저녁에 잠드는 것이 여여함이요, 이게 인생임을 느끼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교수는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선생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입니다.”

- p.286





사람은 기억의 동물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치지 않는다는 건, 자신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자신이 한 실수나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불교의 참회나 기독교의 회개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다.

- p.320

진정한 깨달음은 무속이나 점이나 신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먼저 마음의 지혜가 열려야 하는데 진정한 수행자는 마음을 스스로 정화시켜서 지식을 통해 지혜를 증득한다. 따라서 진정한 깨달음은 신통이 아니라 청정(淸淨)한 마음에서 오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 p.326

스님에게 삼배를 하지 마라.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사람은 바로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이다. 그러므로 삼배는 자신의 부모님에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 p.32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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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백범
홍원식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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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는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로, ‘독립운동’ 하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생각하게 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하면 ‘백범 김구’를 떠올린다.

그만큼 독립운동을 초지일관 전개하며 주도하였고 그 중심 기관으로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 임시정부 활동을 하던 김구는 어린 자식들에게 유서를 남기고자 장편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백범일지』의 시작이다.

일종의 유서였던 『백범일지』 〈상권〉은 1929년에 완성되었고, 이어 1942년 『백범일지』 〈하권〉을 완성했으며, 해방된 후 1947년 국사원에서 단행본 형태로 처음으로 『백범일지』가 출간되었다. 이후 백범일지를 바탕으로 백범 김구에 대한 연구가 해방 75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백범의 사상은 독립뿐만 아니라 통일의 측면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남북한이 공통으로 존경하는 민족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백범맨'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백범 김구를 연구해 온 저자 홍원식이 혼신을 다해 썼으며, 『백범일지』를 '미래지향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평등과 화합을 주장한 백범의 사상과 정신을 자연스럽게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백범일지』에서 못다 한 이야기, 백범 김구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소설 백범』에 담아냈다.

이는 백범을 최측근에서 모셨던 분들과의 인터뷰와 각종 사료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우리가 몰랐던 백범을 실감나게 재현해 냈다.

문화의 힘을 키워 독립적인 국가의 건설을 그토록 꿈꾸었던 백범 김구. 『소설 백범』은 그가 살았던 시대 상황과 당시 김구의 위상을 디테일하고 흡인력 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저자 홍원식은 지난 2000년 동학군 애기접주의 파릇파릇한 첫사랑. 아버지를 여의고 맞은 여옥과의 옥과 같은 사랑. 안창호 선생의 여동생과의 혁명가적 사랑. 평생의 반려자일 줄 알았던 아내와의 뼈아픈 사별. 피신의 세월, 장막이 되어 주었던 이국 여인의 백범 사랑. 환국 후 충실한 조언자였던 오주경의 신앙적 사랑. 민족제단에서 순교하기까지의 영원한 겨레사랑. 백범 김구의 못다한 사랑과 위대한 역사를 그린 장편소설 『소설 백범 김구』(상, 하)를 펴낸 바 있다.

당시는 백범 김구의 사랑과 역사에 초점을 맞춰 백범정신의 위대함을 그리는 게 집필 의도였다. 이때 쓴 소설을 토대로 전문가 인터뷰와 자신의 사료 연구를 더하여 한 편의 소설로 압축하고 새로 밝혀진 것을 보충해 다시 펴냈다.





백범 김구의 아명은 김창수다. 적군인 동학 토벌군의 수령인 안 진사(안태훈, 안중근의 아버지)가 동학군으로 활동하는 어린 창수를 보고 담대한 기개를 높이 평가해서 어린 나이에 동학군으로 활동하다가 목숨을 잃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인재라는 판단으로 설득했다.

그때 안 진사와 어린 동학군 창수는 '나를 치지 않으면 나도 치지 않는다'는 불가침협정과 함께 '어느 한쪽이 불행에 빠지면 서로 돕는다'는 공동원조동맹을 맺었다는 일화도 소개한다.

이후 사형수로 수감됐으나 집행 직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고 애국지사들과 함께 민중 교육사업을 한다. 하늘을 우러러 나라와 민족 앞에 부끄럼 없는 삶을 다짐하며 그 길로 백범 김구로 이름을 바꾼다. 3.1독립운동을 계기로 김구의 삶은 상해임시정부와 함께 최전선에서 독립 투쟁을 지휘한다.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하는 장면도 담아내고, 일본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침략과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힘쓰는 장면을 문학적 감각을 더해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도록 재구성한다.





백범이 광복군을 무장시키고 대일본 공격에 미군과 함께 참여하려 했지만 일제가 예상치 않게 이른 시점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무장 광복군의 대일 전쟁 길이 막히는 안타까움과 앞으로 다가올 우리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를 예상하는 듯한 모습도 그려낸다.

그러나 백범은 해방 후 남북분단이 고착화되기 전 통일 국가를 세우지 않으면 남북한간 전쟁을 예고하며 당시 분계선인 38선을 넘나들며 북한 집권층과 통일에 대한 남북간 단합이 필요하다며 설득하지만 끝내 이념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이념의 벽에 막혔지만 사실 강대국의 이익에 의해 저지된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백범의 독립과 통일 이외에는 아무 욕심이 없는 진정한 민족 지도자상을 부각시키는 대목에서 독자들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머무르던 경교장에서 남한 정부 정적 앞잡이에 의해 암살되면서 백범 김구의 삶은 마감한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정신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살아가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 점을 되살리고자 저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소설이다.





김창수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그의 범 같은 기세에 압도되어 어느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틈에 창수의 발밑에 밟혀 있던 왜놈은 몸을 빼내어 잽싸게 칼을 거머쥐었다. 그러고는 칼날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김창수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칼을 용케도 피하며 왜놈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자가 ‘억’하는 소리를 내며 거꾸러졌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동학군의 접주로 활약하며 민족무예 택견으로 다져진 창수의 몸엔 기선을 제압할 웅기(雄氣)가 서려 있었던 것이다.

김창수는 다시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칼자루를 쥔 왜놈의 손목을 밟아 눌렀다. 언 땅에 칼이 떨어졌다. 옴짝달싹 못한 채 씩씩거리고만 있는 왜놈을 바라보는 김창수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 「치하포 의거」 중에서


김구는 하늘을 우러러 나라와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리라 다짐하면서, 결단코 변절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심장에 새기고 싶었다. 그러한 결심의 표시로 김구는 이름과 호를 바꾸었다. 그렇게 바꾼 이름이 구(九), 호는 백범(白凡)이었다.

‘백(白), 범(凡), 김(金), 구(九).’

그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이름을 ‘구(龜)’에서 ‘구(九)’로 고친 것은 일제의 민적(호적)에서 이탈하겠다는 강한 의지이기도 했다. 그는 백범 김구로 다시 태어났고, 이 이름은 곧 그의 인생이 되었다.

- 「백정범부(白丁凡夫)로 다시 태어나다」 중에서





백범은 거무스름한 눈자위가 움푹 패이고 거죽뿐인 볼이 오목해진 아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뼈만 앙상한 손마디와 더욱 작아진 두 어깨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수건에 물을 적셔 쩍쩍 갈라진 입술을 닦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들이 너무 늦어 버린 것만 같아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렇게 보내면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백범은 애써 외면하려 안간힘을 썼다. 회한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가족에게 드리워진 그림자」 중에서


백범은 밤사이 가흥을 빠져나와 엄항섭, 안공근과 함께 남경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고 진과부의 명에 의해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던 요인들이 백범 일행을 숙소로 안내했다. 이튿날 밤 백범은 진과부가 제공한 차를 타고 통역을 해 줄 박찬익을 동행하여 장개석의 자택으로 갔다. 안내해 주는 이를 따라 들어간 방에는 장개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개석은 환하게 웃으며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 아주 반갑게 백범을 맞이했다.

- 「장개석과의 정상 회담」 중에서





당시 일반 노동자의 한 달 급여는 30원 정도였다. 그런데 백범 한 사람 에게 걸린 현상금은 자그마치 60만 원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를 백범의 목에 내걸 만큼 백범에 대한 일제의 두려움과 경계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던 것이다. 곳곳마다 백범의 얼굴이 벽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일제의 감시는 치밀하고도 집요하게 백범의 활동 반경을 조여 왔다. 어딜 가나 정탐꾼들이 득실거렸다. 백범의 신변은 어디서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 「상해 탈출」 중에서


“빛과 어둠 중 지금 우리는 흑운이 짙게 깔린 어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어둠의 마수가 영원할 줄 알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의 피를 빨아 살아가고 있는 ‘어둠의 자식들’이 많다는 것은 고국 생활에서 보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인아, 신아, 잠 못 이루던 밤에 경험해 본 적이 있겠다마는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은 머지않았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시절의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의로운 이들에게 머지않아 찬란한 광명은 비춰 오게 되어 있단다. 어느 시대에나 두 부류의 사람이 있지. 어둠의 자식들과 빛의 사자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참된 승리는 반드시 빛의 편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란다. 훗날 너희들의 눈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야. 내가 들려주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역사는 빛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역사다.”

- 「가족과의 재회」 중에서





집무실 안에 정오의 햇살이 가득 차고 있었다. 안두희는 분노도 위협도, 하다못해 두려움조차 없는 백범의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기다릴 테니 떨지 말고 내 가슴을 쏴라! 그래야 산다!”

백범의 육중한 음성이 나직이 울렸다. 안두희는 눈동자의 초점마저 상실한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던 안두희는 자신의 왼손에 쥐어져 있는 권총을 쳐다보았다.

- 「내 가슴을 쏴라!」 중에서


저자 : 홍원식


<통일헌법 이념으로서의 백범사상>을 연구하여, 국내 최초 백범 전공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중학 졸업 이후 3년 동안 청소년 노동자 생활을 했던 저자는 ‘우리 민족이 인류 행복을 선도하는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백범 정신’에 큰 영향을 받아 학업을 시작해 독학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 및 경기대정치전문대학원 외래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남북공동 백범추모행사와 도서 6,000권의 북한 보급 등을 위해 15회에 걸쳐 남북을 왕래하면서 남북관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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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운명의 상대를 ‘DNA 매치’ 기술로 찾아준다. 『당신이 사라진 순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유명한 소설가 존 마스는 이 흥미로운 설정을 바탕으로 운명의 연인을 찾는 다섯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 『더 원』이다. 하지만 모두의 매치 결과가 뜻밖이다.

결혼을 앞둔 남자에게 동성의 연인을 추천하고 심지어는 연쇄살인범에게 경찰을 매치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인위적 사랑의 가능성과 어쩌면, 그 ‘한계’에 대해 말하려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스릴러다.

머리카락 한 올, 입속에 넣었던 면봉 하나만 있으면 완벽한 행복을 보장하는 연인과 연결해주는 가상의 사업 ‘DNA 매치’가 소설의 핵심 소재다. 올 하반기에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10부작이 공개될 예정이다. 소설 속 ‘DNA 매치’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관계로 추앙받지만 주인공들이 반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매치되지 않은 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해야 과학과 ‘DNA 매치’를 탓하지 않고 가장 인간다운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고뇌한다.

책은 어쩌면 인간이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순정에 대한 이야기다.





‘DNA 매치’가 발달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스릴러 『더 원』. 사랑에 대한 이 기발한 상상은 굿리즈 4.2점, 영국 아마존 4.5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기록하며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았다. 또한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2018년 최고의 SF소설’, BBC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더 원』은 참신한 소재, 기존의 어느 작품과도 닮지 않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파고든 심리 묘사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웰메이드 스릴러다. 장르적으로는 당장 한 페이지 뒤의 일도 예측할 수 없는 서스펜스 스릴러에,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는 로맨스, 언뜻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사실 디스토피아라고도 할 수 있는 입체적인 세계관의 SF까지 환상적으로 버무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추리소설 종합 세트를 완성한다.

작가 존 마스는 데뷔작 『당신이 사라진 순간』을 출판사들에게 거절당한 뒤 자비로 출판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며 독자들에게 먼저 인정을 받았다.





사랑의 성공률은 100%, 실패율은 제로. 더 이상 실연으로 고통받을 일도, 고독에 몸부림칠 일도 없이 운명의 짝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더 원』 속 세계는 ‘DNA 매치’가 발명되어 상용화된 지 10년이 지나 이미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매치를 찾아 기존의 배우자 또는 연인을 떠났거나, 자신의 매치를 따라 대륙을 가로질러 이주했거나, 매치를 찾기 위해 유전자를 제공한 뒤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다.

이혼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대신에 결혼 역시 신경 쓸 거리도 안 되는 시대, 매치를 찾았다는 것만으로 결혼을 통해 무엇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시대, 매치에 대한 신뢰가 인종 차별과 각종 혐오를 무너뜨리는 시대.

『더 원』은 ‘DNA 매치’를 통해 운명의 연인을 만나지만,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하고 마는 다섯 커플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아이를 낳고 싶은 이혼녀 맨디는 매치를 만나러 달려갔지만, 그는 이미 죽고 그의 냉동 정자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런던 전역을 공포에 빠트린 연쇄살인범 크리스토퍼, 그의 매치는 놀랍게도 그의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다.

결혼을 앞둔 닉이 여자친구의 권유로 마지못해 받은 테스트에서 지목된 그의 매치는 어느 잘생긴 남자다. 매치를 찾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간 제이드를 맞아준 연인은 앙상한 몸의 시한부 환자다. 절대적인 ‘영혼의 짝’을 갈구하던 이들이 빠진 딜레마. 예측할 수 없는 연애 블록버스터가 펼쳐진다.





소설 속 ‘DNA 매치’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도구적 장치가 아닌, 사랑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 인간 본성을 잘 드러내는 설정으로 활용된다. ‘DNA 매치’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관계로 추앙받지만, 인물들이 거기에 반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아기를 갖는 게 꿈이던 맨디는 매치인 리처드를 찾은 뒤 매일같이 그의 SNS를 염탐하며 자신보다 열 살은 어리고 건강한 육체를 엿본다.

리처드가 죽고 냉동 정자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우성 유전자를 타고났을 그의 아기를 선뜻 갖기로 한다. 제이드는 케빈이 자신의 매치라는 사실을 알지만, 앙상하고 머리가 벗겨진 그에게 이성으로서의 설렘이 일지 않는다.

또한 연쇄살인범 크리스토퍼는 경찰인 에이미가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는 데 희열을 느끼며, 그녀를 예비 희생자와 조우하게 하는 장난을 친다.





그러나 존 마스가 서로 다른 욕망과 결핍을 지닌 인물들을 시니컬하게만 그려내는 것은 아니다.

인물들은 각자 결핍을 채우려 하는 한편으로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갈구한다. 매치된 사람끼리의 관계든 매치되지 않은 사람끼리의 관계든, 자신의 감정과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까지가 사랑임을 실감한다.

책 속에는 5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맨디’ ‘크리스토퍼’ ‘제이드’ ‘닉’ ‘앨리’이다. 각 인물들마다 특징이 있다.

우선 ‘맨디’는 37살 이혼녀이고 두 번의 유산을 경험했다. 그녀는 자신의 DNA 매치인 리처드 테일러 라는 젊은 남성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만나기도 전 그는 이미 사고로 죽음을 당해 추도 예배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녀는 한번도 보지 못한 자신의 짝을 알고 싶은 마음에 그곳을 가게 된다. 과연 그녀는 무엇에 이끌려 그곳에 가는 걸까? 그녀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두 번째 ‘크리스토퍼’는 33살 사이코패스다. 살인을 즐기며 자신이 목표로 세운 30명의 여성을 죽이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며 한 명씩 계획 살인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자신의 DNA 매치인 31살 ‘에이미 브룩뱅크스’여성을 만나 새로운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직업이 경찰관이라는 소식을 접한다. 그는 그녀와의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자신의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끼지만 목표로 했던 살인 계획을 취소하지는 않는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언제까지 지속 될 수 있을까? 그는 과연 목표한 살인을 성공 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제이드’는 많은 빚에 허덕이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 이다. 그녀에겐 아직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한 지구 반대편 호주에 살고 있는 ‘케빈’이라는 남성이 DNA 매치 이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직접 보기 위해 빚을 내서 과감히 여행에 오른다.

과연 그녀가 바라고 원하는 이상형의 남성 일까? 그는 왜 그녀에게 오랜 시간 연락을 하지만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까?

네 번째 ‘닉’은 결혼을 약속한 ‘샐리’가 있는 건실한 청년이다. 그는 DNA 매치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지만 그녀가 결혼 전 확인차 해보자는 끈질긴 권유 끝에 하기로 한다. 하지만 너무나 생뚱맞게 그의 DNA 매치는 남성으로 나왔다.

동성애적 기질을 전혀 느끼거나 생각해본 적 없는 ‘닉’은 불같이 화를 낸다. 그의 약혼자 샐리는 한 발 더 나가 한 번 직접 만나 확인해보자고 한다. 결국 그녀의 성화에 못이겨 ‘닉’은 자신의 DNA 매치인 마사지 사인 ‘알렉스’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한다.

과연 ‘닉’은 DNA 매치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 할까? 100% 확률을 자랑하는 DNA 매치는 왜 ‘닉’에게 남성을 추천 한 것일까?





다섯 번째 ‘엘리’는 DNA매치의 유전자를 발견한 과학자이자 4천명의 직원을 둔 CEO이다. 그녀는 자신의 발견한 것으로 초일류 기업을 키웠지만 사람들의 원망과 분노로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고립된 생활을 자초하고 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자신의 연락처로 처음 DNA 매치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녀는 ‘티모시 헌트’라는 38살 시스템 분석가을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과연 그녀는 자신이 계발 한 대로 DNA 매치는 오류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제 건물 속에 갇혀 살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 수 있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다섯 명은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결함이 있고 헛점이 있다. 그것을 용인하며 용납하고 포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며 이웃이며 친구인 듯 하다. DNA매치라는 것은 이러한 우리의 일상적이고 상식적이며 통념적인 개념을 완전히 무너트리고 100% 신뢰라는 무기로 우리의 나약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 헤어지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부부가 갈라서고 심지어 죽은 사람과의 매치로 그의 냉동 정자를 받아 자녀를 낳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 충고, 위로는 귀에 들어오지 않은 채 DNA 매치라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일컬어 지는 것을 맹신하게 된다.

사이코패스였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사랑하는 이를 만나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 연쇄살인범을 사랑하게 되고 그를 이해해주고 용납해주는 원천은 바로 DNA 매치 바로 ‘단 한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나약함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 된다고 하니 기대 해 봐도 좋을 듯 하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순식간에 읽었던 좋은 스릴러 책이다.

전반적으로 참신한 소재와 설정의 매력이 돋보이는 재미진 작품이다. 스릴러적 감성도 나쁘지 않다. 작가의 문학적 역량에 바탕이 됐으리라 추측해본다.

이 소설은 특히 인간의 감성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랑이라는 관점의 상호작용에 대한 스토리도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고 집중력도 높인다. 단순히 흥미로운 관점에서 대중적인 자극만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딜레마들을 상당히 잘 적용시킨 작품이다.





저자 : 존 마스


독자들이 먼저 인정한 천부적인 스토리텔러. 존 마스는 프리랜서 작가 겸 기자, 자유기고가로서 데뷔 소설 『억울한 아들들(THE WRONGED SONS)』이 출판사 수십 곳에서 거절당한 뒤 자비로 출판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두었다. 이 소설은 2017년에 『당신이 사라진 순간(WHEN YOU DISAPPEARED)』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이후 『어디에 계시든 환영합니다(WELCOME TO WHEREVER YOU ARE)』, 『더 원(THE ONE)』, 2018년에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선한 사마리아인(THE GOOD SAMARITAN)』, 경찰 수사 스릴러 『그녀의 마지막 움직임(HER LAST MOVE)』과 무인 자동차를 소재로 한 SF스릴러 『승객들(THE PASSENGER)』 등 여러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존 마스는 또 지난 20년간 전국단위 신문과 잡지에 조니 뎁, 비욘세 등 연예계 유명 인사들의 인터뷰를 실어왔다.

≪가디언 가이드≫ ≪허핑턴 포스트≫ ≪인디펜던트≫를 포함한 열 곳 이상의 정기 간행물에 글을 기고했다. 현재는 『그녀의 마지막 움직임』의 성공으로 전업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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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독자의 기억으로는 중고교 때 페르메이르는 몰랐다. 그러나 〈진주 귀고리 소녀〉는 미술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다.

미술 시간에 미술선생님이 페이메이르를 가르친 적도 없지만 〈진주 귀고리 소녀〉 그림이 교과서에 실렸던 것은 분명하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국내 많은 전시회에도 다녔지만 페이메이르전(展)은 없었다.

사실 이 책을 읽고자 했던 것도 이 그림 때문이다. 많이 봤던 그림이라고 생각했고, 미술 교과서에 실렸던 기억을 되살려냈다.

이 책에서 표현한 바는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울 정도로 유명한 그림이라고 한다. 페르메이르에게 '거장'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데 한몫을 했을 터다.

페르메이르는 좁은 땅에 1천여 명의 화가들이 활동하던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페이메이르는 고요하고 내밀한 작품 세계와 베일에 싸인 생애 때문에 ‘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해서 더욱 흥미를 끈다.





클래식 클라우드 21 『페르메이르』는 수수께끼 같은 페르메이르의 작품들과 그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그의 삶을 다루며 페르메이르가 빚어내는 평온한 빛의 세계로 안내한다. 저자인 전원경 작가는 세심한 눈길로 페르메이르의 작품 전작(全作)을 살펴보고 유려하지만 치밀한 필체로 델프트(사진 위)와 암스테르담, 헤이그에서 빈과 런던까지 거장의 흔적을 따라나선다. 페르메이르의 모든 작품을 수록한 친절하고 깊이 있는 안내서이자 가장 최근의 연구 성과까지 빠짐없이 다룬 전원경 작가의 이번 책은 마법 같은 페르메이르의 작품 세계를 다룰 뿐 아니라 일상의 빛나는 찰나를 포착하는 그의 눈을 통해 우리의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독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간 적이 있지만 운하나 주변 경치, 멋진 집, 웅장한 건축물에 눈이 팔려 박물관도 못 들렀다. 아니 아예 일정에 넣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크게 후회했다. 준비 없이 갔다가 아무것도 못 본 채 돌아왔다는 마음에서다.





작가의 안내대로 네덜란드 헤이그로 간다. 헤이그에는 10대 후반의 한 소녀가 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이 소녀는 “막 미소가 사라지고 있는 듯한 찰나의 표정과 눈망울, 입술의 생기 어린 느낌”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그는 바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된 〈진주 귀고리 소녀〉 속 인물이다.

누구나 한 번 보면 빠져드는 이 작품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칭송받지만 정작 이 작품의 화가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진주 귀고리 소녀〉를 그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생전 델프트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당대엔 주로 그 지역에서 이름을 얻었고 사후엔 거의 완벽하게 잊히다시피 했다.

그러다 19세기 말에 '재발견'되어 20세기 미국을 중심으로 차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연구자들은 델프트에 남은 페르메이르의 흔적을 찾아내 화가의 삶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동안 잊혀 있던 탓에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아서 페르메이르 연구의 선구자이자 페르메이르를 ‘재발견’한 미술사학자 겸 비평가 테오필 토레뷔르거는 그를 두고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 평할 정도였다.





1632년에 태어나 1675년에 죽은 페르메이르는 일평생을 네덜란드의 소도시 델프트에 살았다. 가난한 직물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메이르는 스무 살에 델프트의 유복한 지주 집안의 딸인 카타리나 볼너스와 결혼하고, 같은 해 12월에 예술가 조합인 델프트 성 루가 길드에 가입해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독특하게도 이미 ‘아트 마켓’이라고 할 만한 시장이 형성되어서 1천여 명에 달하는 화가들이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등 자기 전문 분야를 정해 그림을 그려 시민들에게 직접 판매했다.

그래서 대개 화가는 1년에 십여 점 이상 작품을 그려야 생계유지가 가능했지만 페르메이르는 처가의 경제적 지원과 그의 그림을 꼬박꼬박 사들이는 후원자 덕분에 한 해에 최대 서너 점 정도만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고급 재료들로 신중하게 공을 들여 한 점 한 점을 완성해나간 덕분에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의 세계가 완성되어가는 것을 눈에 띄게 확인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초기작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온 예수〉 〈디아나와 님프들〉에서 이미 빛을 활용한 공간 분할이라는 그의 특기가 엿보였고, 〈뚜쟁이〉에서부터는 실내 풍속화로 자신의 장르를 정했음을 보여준다. 1659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열린 창 앞에서 편지를 읽는 여자〉에서는 작은 방에 여성 한 명이 있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그를 비추는 모습을 그려 페르메이르의 트레이드마크인 ‘빛’, ‘방’, ‘젊은 여성’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이후 전성기의 문턱에서 그린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는 단순히 눈앞의 모델을 그대로 그리는 평범한 실내 풍속화를 뛰어넘어, 범속한 일과를 보내는 하녀의 모습을 통해 노동의 신성함, 일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낸다.

이 시기 페르메이르는 〈델프트 풍경〉 〈골목길〉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 〈레이스를 뜨는 여자〉 등 환한 빛에 싸인 고요하고 온화한 실내, 신실해 보이는 젊은 처녀, 빛과 그늘의 효과에 대한 치밀한 설계 등 ‘페르메이르다움’이 여실히 드러나는 중요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아마도 페르메이르의 그림 중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자 “영원히 살아 있는 350년 전의 소녀”인 〈진주 귀고리 소녀〉는 그가 다다른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며, 대범한 붓질과 특유의 ‘빛의 방울’들로 이루어진 그만의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의 매력은 시간이 지나도 쇠하지 않아 1999년에는 이 그림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 출간되고 2003년에는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페르메이르가 가장 아낀 작품이자 화가의 명함과도 같은 〈회화의 기술〉 역시 탄생한다.

〈회화의 기술〉은 푸른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담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그림에서 스스로를 드러낸 적이 거의 없고 남아 있는 자화상도 없지만 이 작품에서 등을 보이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페르메이르로 보인다.

화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네덜란드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담긴 이 그림을 페르메이르는 죽을 때까지 팔지 않았고, 유족도 어떻게든 남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지키려고 했으니 의미가 깊은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후 그린 작품들은 그에 미치지는 못했고, 페르메이르는 천재성을 소진한 듯 기울어간다.

게다가 1672년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한 사건은 페르메이르의 삶은 물론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전쟁이 벌어지자 네덜란드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페르메이르 집안 역시 경제적 곤란을 겪게 됐다. 문화 관련 소비도 극도로 줄어, 궁지에 몰려 생계를 모색한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페르메이르 역시 모든 재능을 짜내 팔릴 만한 그림을 그려냈지만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1675년 페르메이르는 경제적 압박 속에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사후 빚 청산을 위해 열린 경매에서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유럽 곳곳으로 흩어진다.

이름은 잊히고 작품은 흩어졌어도 페르메이르의 진가는 결국 되살아났다. 전원경 작가는 페르메이르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 분위기까지 아울러 짚으며 페르메이르라는 화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독자가 어떤 루트로 암스테르담, 헤이그, 델프트를 돌아보면 좋을지 실용적인 정보 역시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페르메이르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죽은 뒤 300년 가까이 잠들어 있다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이야기, 페르메이르 작품들이 겪은 굴곡과 최근에 발표된 연구 성과까지 차곡차곡 담아 페르메이르의 삶과 작품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런데 페르메이르는 이 벽이 실은 빛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라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 벽에는 못이 박혀 있거나, 못을 뺀 구멍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바닥 가까이에는 세월의 흔적인 얼룩과 때가 보인다. 바닥과 벽 사이 걸레받이 부분에는 델프트 타일이 붙어 있는데 역시 오래된 듯 지저분하다.

이 벽은 빛과 그늘이 만들어낸 놀라운 드라마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여염집의 부엌, 초라한 부엌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마법처럼 반짝거리는 그림’인 동시에 ‘일상에 가장 가까운 장소와 평범한 여자를 그린 그림’이라는 점이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경이로운 면모다.

- 「4장 일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 암스테르담」 중에서


플랑드르 화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네덜란드 화가들은 그림의 모든 요소들을 예외 없이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렸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 페르메이르는 이러한 전통에 조용히 반기를 든다. 화가는 빛을 받은 부분과 그늘에 들어가 있는 부분, 또 빛과 그늘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을 모두 다르게 그렸으나 그 ‘다름’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인식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합해져 이 작은 그림, 평범한 주제를 그린 그림을 보석처럼 빛나게 만들고 있다.

- 「4장 일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 암스테르담」 중에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자. 〈진주 귀고리 소녀〉는 왜 보는 이를 대번에 매혹시키는가? 이 이유를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그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다. 어둠 속에서 홀연히 떠오른 소녀의 얼굴은 살아 있는 듯한 생동감으로 빛난다. 금방이라도 보는 이들에게 입술을 달싹여 말을 걸 듯한 분위기다. 이 그림의 탁월한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동시대 네덜란드 화가들은 그림의 모든 요소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그렸다. 페르메이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골목길〉에서 낡은 벽돌집을 그린 솜씨는 거의 사진을 연상케 할 정도다. 유독 이 〈진주 귀고리 소녀〉에서만 화가는 최소한의 터치와 최소한의 색감을 사용해 그림을 완성시켰다. 여러 겹으로 색을 겹쳐 칠하긴 했으나 우리 눈에 뜨이는 색감은 검정, 흰색, 노랑, 파랑 정도뿐이다. 이 단순함과 대범함이 오히려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 「5장 미소 속에 담긴 수수께끼 - 헤이그」 중에서


최근에 〈진주 귀고리 소녀〉에 관해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그림의 검은색 배경은 화가가 원래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2년간 이 그림을 꼼꼼히 연구한 결과를 2020년 4월에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진주 귀고리 소녀〉의 배경에는 짙은 초록색 커튼이 쳐져 있었다. 그림 왼편 상단에는 페르메이르의 서명도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배경의 초록색은 점점 더 검게 변색되어갔고 그 와중에 커튼과 화가의 서명은 사라지고 말았다.





페르메이르의 모든 그림들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페르메이르 기념관의 자원봉사자 에벨리너의 말을 빌리면, 페르메이르 그림의 가장 큰 특징 두 가지는 ‘내밀함’과 ‘이야기’에 있다. 그러나 이 〈회화의 기술〉처럼 페르메이르 본인의 이야기를 풍부하고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은 없다. 이 그림은 단순히 화가와 모델을 그린 게 아니라 페르메이르의 생각과 가치관 자체를 담고 있다. 그 증거는 여러 군데서 눈에 띈다.

- 「6장 화가의 내밀한 고백 - 빈」 중에서


천문학자는 미지의 영역인 하늘을, 지리학자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림을 주문한 이가 이 두 가지 주제를 다룬 한 쌍의 그림을 원했고, 페르메이르는 이 거창한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빛이 가득한 방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두 학자)으로 소화해낸 것이 아니었을까?

어떤 쪽이든 간에 두 그림을 주문한 사람은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아예 주문자 본인이 그림의 모델을 자처했을지도 모른다.

- 「7장 화가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 - 런던」 중에서





우리의 삶이 덧없는 이유 중 하나는 행복이나 사랑, 희망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열흘 피어 있는 꽃이 없듯이, 좋은 것들은 우리 곁에 그리 길게 남아 있지 않는 법이다. 한때 영원히 우리에게 머무를 듯했던 젊음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그 뒤에는 긴 회한과 아련한 기억만이 남는다. 그러나 류트를 조율하며 연인의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 그림 속 처녀처럼, 누구에게나 영롱하게 빛나는 젊은 날은 있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보여주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순간들이 우리의 손에 쥐여졌던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덜 쓸쓸해지고 조금 더 안온해진다.

- 「7장 화가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 - 런던」 중에서


오사카와 암스테르담, 헤이그와 런던과 빈에서 페르메이르의 그림들을 보며, 그리고 화가가 길지 않은 생을 살았던 델프트의 운하 옆 길과 마르크트 광장을 걸으며 내 머릿속을 내내 떠나지 않은 구절은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 “사랑은 가도 과거는 남는 것”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지만 기억은 간직할 수 있다.

예술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큰 이유는 그 예술 작품이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바로 그러한 부분, 아스라하게 사라져가는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는 17세기 델프트에 살고 있지 않은 우리도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힘이 위대한 예술 작품의 능력이라면,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바로 그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전원경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런던 시티 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비평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월간 『객석』과 시사주간지 『주간동아』의 문화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글라스고 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 산업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사이버대학교 외래교수이며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국립중앙박물관의 강의와 수원 SK아트리움, 울산 문화예술회관의 그림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200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를 비롯해서 『예술가의 거리』,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 『런던 미술관 산책』, 『클림트』, 『예술, 역사를 만들다』 등 예술과 역사, 문화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양한 책을 썼다.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동경했던 예술 작품들의 세계를 말과 글로 전달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을 늘 감사하고 있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와 『예술, 도시를 만나다』의 뒤를 이어 뛰어난 예술 작품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예술, 인간을 말하다』(가제)까지 ‘예술 3부작’을 계획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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