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란 무엇인가 - 맨날 속는 국민을 위한 진짜 국회 설명서
신상준 지음 / 생각의창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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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란 무엇인가』란 이 책 제목을 보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독자 개인으로선 어렸을 때부터 정치엔 큰 관심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의 범위 자체에 없었다. 집안에 정치하시는 분도 없는 데다 독자 성격상 정치와는 안 맞는다는 스스로의 판단 결과다. 더욱이 그들이 저지른 비리가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는 '정치가 원래 그런 것'이란 생각으로 국회뿐만 아니라 정치인 자체가 싫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다.

민주화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정치 일선에 들어서고 정책적으로 국민의 아픈 부분이나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법 제도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부터다. 군부 독재시절 학교를 다니고 사회 첫 발을 내디딘 많은 분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이라 봐도 무방할 때였다. 군부 독재시절엔 그야말로 순치됐기 때문에 별 희망도 갖지 않아서 그런 장면은 가슴이 설렐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느 교수가 서양 사상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당신보다 더 멍청하고 저질스런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란 말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민주주의는 발전을 거듭해 정착 단계까지 왔다고 대외적으로 인정 받게 됐다.

그런데 민주주의 본산이란 국회는 왜 아직도 서로를 바방하고 심지어 몸싸움에 막말까지 하며 싸우나? 하는 의문이 많이 일었다. 이 책은 그런 의문을 해소해줄 적절한 책이란 생각이다. 부제에 "맨날 속는 국민을 위한 진짜 국회 설명서'라고 쓰여 있다.





『국회란 무엇인가』는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놈이 그놈'이라며 불신하고 욕만 하는 국회에 대한 이야기다.

‘국회를 알아야 나라가 산다’는 사명감으로 저자 신상준이 집필한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헬조선’이라 불리는 곳에서 태어나, 새벽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최저임금의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면서도 생애 첫 선거권 행사에 설레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국회란 어떤 곳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썼다.

‘국회’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문헌조사를 병행해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그만큼 이 책은 전 국민의 인문학적 상식 쌓기를 위한 정치 교양서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했다는 얘기로 읽힌다.





저자는 책에서 자문자답하며 책이 왜 썼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면, 우리는 대답할 수 있을까.

“국회선진화법은 무엇인지?” “패스트트랙은 무엇이고, 연동형비례대표는 또 무엇인지?” “선거권은 어떻게 주어지는지?”

“국민과 국회의원의 관계는 무엇인지?” “대통령은 임기 중 탄핵할 수 있는데, 국회의원도 탄핵할 수 있는지?” “국회의원을 탄핵할 수 없다면 왜 그럴 수 없는지?” “국회는 왜 맨날 싸우는지?”

아마 대다수의 우리는 제대로 된 답을 못하고 진땀이 흐르는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하기 위해 쓰였다.

“국회란 무엇인가?”가 “정치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일 정도로 국회가 곧 정치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큼 국회는 우리 정치에, 아니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실로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그런데 나라의 주인이라는 우리는 어떤가?

국회를 잘 모른다. 아니 모를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관심을 갖지 않은 채 불신한다. 그리고 욕만 한다. “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이 대목에선 독자도 '뜨끔'한다.

이 책은 이런 국회를 알기 위해, 국회의 기원에서부터 역할, 기능 등 우리가 알아야 할 국회의 모든 것을 이론화하고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이 한 권이 정치 교양서로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상식과 지식 쌓기에 도움이 되길 기원하는 저자의 마음을 담아서.





중앙정부의 의회인 '국회'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우리는 매일 국회나 국회의원들이 한 일을 뉴스로 듣는다. 하지만 정확하게 국회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원들이 모여 중요한 국가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곳이다.

이 모든 것은 다수인 국민의 뜻을 대신 전달하기 위한 곳으로 의회의 권한 중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것은 입법에 관한 사항이다.

입법은 법률을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회의 실정은 어떨까? 국회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싸우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국회에서 서로 싸우는 국회의원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서 국회라고 하면 부정적인 것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국민의 대표로 여겨지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있기에 각각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공개된 토론과 거국적 협상을 통해 다양하게 분열된 국민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것이 국회지만 우리나라 국회는 오히려 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민주주의인 대의 민주주의는 공개성과 투명성을 이념적 바탕으로 한다. 특히 대의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자유는 아주 중요하다. 언론기관이 공평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작동이 불완전하기도 하다.

국가가 언론기관의 독과점 현상을 방지하고 자유 언론 제도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을 해소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는 이유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개인의 자유도 보장되고 민주주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가 없다면 정치적으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해 독재의 우려가 있다. 물론 이런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현대는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퍼져있는 가짜뉴스가 오히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일부 매체에 대한 신랄한 지적이다. 지적이 받아들여져 가짜뉴스를 만들어 사익을 위해 쓰는 사람들이 받아들일지는 그래도 의문으로 남는다. 국회의원들이 뉴스를 철저한 검증을 거쳐 국회에서 '진짜 뉴스'만 발언할 정도로 정보와 지식이 있을까도 의문이다.





또다른 의문(과제)을 내놓은 채 이 책은 끝맺는다. 책의 주제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순수하게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를 말한다.

또 국민이 국회와 정치인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도출된 문제들은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제기된 문제에 국민과 정치인들이 각자 관심을 갖고 해결에 뜻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의 집필의도고 국회가 할 일의 첫 지점이다.


저자 : 신상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 법학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은행 법규실, 조사국 등을 거쳐 금융안정분석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8년에서 2010년까지 바젤은행감독위원회, 바젤Ⅲ 개정을 위한 자본 정의 그룹에 참여했다. 한국은행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가족이 있는 삶’을 지향하며 주말 저녁 식사를 직접 마련한 지 15년이 넘었다. 2016년 11월, 대학생 딸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난 뒤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광장에 울려 퍼지던 평범한 주권자들의 외침이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왔던 것이다. 길거리 분식점이나 커피 자판기 앞에서 평범한 주권자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가는데, 이 땅의 수많은 법률가와 정치인, 학자와 엘리트 가운데 그 누구도 민주주의와 공화국과 대통령과 탄핵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갑갑함을 느꼈다. 숭고한 광장의 주권자들과 마음속의 울림에 응답하기 위해 새벽 3~4시까지 숱한 문헌을 뒤적이며 정리한 투박한 공부의 결과로, 2017년 3월 《평범한 주권자의 탄핵공부》라는 책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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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우리를 꿈꾼다 - 예술적 인문학 그리고 통찰 : 심화 편
임상빈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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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어렵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느낀다. 클래식 콘서트에 가서 연주나 노래를 만나도 확 닿는 느낌이 별로 없다.

예술에 직접 참여하는 예술가들을 제외하고 일반 사람들은 '예술은 어렵다'에 쉽게 동의한다. 물론 학문도 문외한에게 느낌이나 감동을 먼저 주지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공감이 가야 비로소 감동도 되고, 아름다움과 숨겨진 메시지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예술은 우리를 꿈꾼다』라는 제목에 '예술적 인문학 그리고 통찰'이란 부제를 붙였다. 독자 입장에서 잘 된 제목이라 생각지 않는다. 제목이야 주어와 목적어가 도치됐더라도 우리와 예술을 동급으로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건 없다. 우리와 예술이 공감대를 이룬다면 문제될 것도 없다.

부제는 더 어렵게 느껴진다. 통찰이란 말도 쉽게 의미가 잡히지 않은 단어인데도 '예술적 인문학'이라니 이 무슨 언어의 향연인가. 독자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서 비롯됐기를 바란다. 만일 '예술이 전공한 사람들만의 전유물, 소수만을 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 편견 말이다.

저자는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지금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예술 엘리트다. 작품 활동도 활발하게 함으로써 예술가로서 위치도 확고한 것 같다. 예술 엘리트인 저자가 일반 대중을 위해 책을 쓰는데 제목부터가 거부감이 드는 무지몽매한 독자들을 어떻게 설득시킬지가 사뭇 관심이 간다.





저자 임상빈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술의 중요성, 인문학으로써의 예술, 자기 계발을 위한 예술의 세 가지다. 결론은 예술적 삶을 살고 예술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1장에서 <예술> <인문> <통찰>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서두를 연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본 작품의 이미지는 우리의 상상과 다르다. 저자는 자유의 여신상이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실제로 봤을 때 훨씬 작았다고 회고한다. 뉴욕의 더러운 길거리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름에 충격이었다고 한다. 작품 자체가 뿜어내는 매력은 좋은 것인데 그것의 유명세에 편승해 유혹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 같다.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을 상상하고 들은 것에 기초해 직접 가서 보면 실망한 점도 있을 것이다. 독자도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그 경험이 정말 있다. 모나리자를 봤을 때 그랬다. 그러나 박물관 규모는 크고 웅장한 것에는 경이롭다고 할 만큼 놀랐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고 가르치며 ‘미술을 막연히 어렵고 멀게만 느끼는 현실, 갇혀 있는 사고방식과 죽은 지식으로 답답하게 전해지는 예술’이 안타까워 선입견을 넘어 예술의 매력을 함께 나눌 예술 인문학 시리즈를 구상했다. 앞서 선보인 첫 책에 이은 심화 편, ‘예술은 우리를 꿈꾼다’에서는 “예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고 드러내는지,” “예술 작품은 어떤 도구와 요소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전시되는지, ” 또한 “예술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를 탐험한다.

이 책은 도입부에 문어체로 화두를 던진 후 ‘사방으로 튀며 생생하게’ 이어지는 다채로운 대화로 구성된다.

저자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인 아내와 딸, 다른 이들과의 대화 상황을 비롯해 여러 담론이 담겼다. 더불어 곳곳에 유년기부터 유학 시절, 현재까지의 삶을 솔직하게 녹여낸 통찰과 생각들을 풀어낸다. 편안한 이야기 속에서 ‘미학, 예술, 역사, 철학, 사상, 사회’ 등 폭넓은 지식을 아우른다.

눈으로 보며 머릿속에서 들리는 그 대화와 함께하다 보면 어느새 미술에 대한 넓어진 시야와 마음에 남는 묘한 여운을 경험하게 된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 많이 봐왔던 것이 꽤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작품에 대해 많은 듣고, 본 것도 있고, 다른 책이나 영상을 통해 배운 것도 있다. '환영'인데 실제보다 생생하게 생각되는 신기한 작품도 있다. 예술은 이렇게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하나 보다.

저자는 '마술적 환영주의'라고 풀이한다. 사실적인 이미지, 느낌 오는 이미지, 다중 감각적인 느낌을 포함한 일종의 '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의 도구적 측면, 즉 작품을 어떤 도구로 만들 것인가? 저자는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아쉽게도 미술학과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그 과목의 이수 학점수를 줄이는 추세여서 안타깝다고 한다. 저자는 입대했을 때 선임들의 자화상을 그린 예를 들고 있다. 재료의 중요성과 함께 작품을 어떤 요소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전시하며 우리는 그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만이 예술품이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누구나 작품을 설계하고 구상할 수 있다. 노래방세서 누구나 가수이듯 예술도 언제 어디에서나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주장에 공감하자 실제로 예술작품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자꾸 정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불현듯 생긴다. 주입식 교육에서 교과서에 실린 미술 작품과 화가들은 나의 생활, 나의 삶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선입견이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면서 천천히 읽다보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자질이나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쯤 되니 저자가 제목과 부제에서 사용한 부조화하고, 어려운 단어를 꿰맞췄다고 잠시 생각했던 독자의 오만하고 잘못된 생각을 고백한다.





독창적인 회화, 사진, 영상, 설치 작품 등 다양한 창작을 이어 온 예술가인 저자는 ‘책’이라는 매체에서도 개성을 발휘한다. 현실감 있는 ‘대화’는 낯설고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마치 예술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흥미롭게 만나도록 돕는다. 나아가 인문학적 지식 전달을 넘어 독자 스스로 능동적인 사고의 주체로 삶을 돌아보며 한결 자유롭고 행복하게 예술을 누리는 계기를 주고자 한다.

이 모든 시도는 사방으로 자유롭게 뻗는 ‘열린 사고와 대화’, ‘멀지 않은 예술’을 지향하는 저자의 순수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독자는 추측한다. 페이지마다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독자들과 마음을 나누려는 진심이 가득하다는 게 오롯이 전해져온다.





『예술은 우리를 꿈꾼다』에서는 다채로운 비유와 의인화한 알레고리를 통해 예술 자신의 속마음과 예술의 절친한 친구로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예술 작품은 경직된 지식과 특정한 방법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저마다 느끼는 대로 누리면 된다는 당부로 미술 감상의 높은 문턱을 낮춘다. 더불어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의 큐레이터이자 비평가, 인생의 감독으로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예술가임을 강조한다. 맥락에 따라 오랜 역사를 가진 고전 작품은 물론, 최근의 현대 미술 작가와 작품들까지 폭넓은 예시들이 언급된다.

그렇게 인류와 함께 수많은 흔적으로 이어져 온 예술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꿈꾸는”, 인간을 위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목차를 살펴보면 독자들이 편하게 저자와 교감할 수 있도록 잘 구성돼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한눈에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며, 어떤 도구를 사용하며 만들어가는지, 그리고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을 설명한다. 물론 저자가 미술가이기에 미술 위주의 설명이 이어진다. 완성된 예술작품이 어떻게 전시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마무리로 책을 전개시킨다. 같은 그림이라도 전시되는 장소에 따라 또 배치에 따라 주는 인상이 달라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본질은 같은데 놓인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찾아가는 작업이 예술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본격 이론들은 기대보다 다소 어렵다.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어려운 대목이 중간 중간 드러나오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가끔 철학 이야기까지 등장하여 당황할 수도 있다. 또 대화식으로 이어지는 미술 이야기에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만 독자들이 인내심을 갖고 읽는다면 마지막 책을 덮을 때는 유명 철학자의 강의보다 저술가의 어려운 말보다 훨씬 예술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는 놀라움을 맛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미술 이야기를 글로, 말로 오래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미술은 시각 예술인데 작품 자체를 보지 않고 얘기를 이어간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자칫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인내심을 조금만 갖고 저자의 예술론을 듣는다면 달콤하고 아름다운 작품 감상의 방법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고.





저자 : 임상빈


1976년 서울 생으로 어려서부터 미술작가가 꿈이었다. 예원학교 미술과,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풀브라이트 한미교육위원단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예일대학교 대학원 회화와 판화과(PAINTING & PRINTMAKING)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티처스칼리지 미술과 미술교육과(ART & ART EDUCATI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여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미국 등 국내외의 여러 기관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더불어, 세상을 살면서 깨우친 자신의 예술적인 통찰을 여러 방식의 글쓰기로 기록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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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교통
정병두 지음 / 크레파스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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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물물교환을 하기 전부터 모여 살았다. 가족 단위가 시간이 지나고 친척, 부족, 국가로 집단화했다.

집단화되면서 집단 간의 잉여생산물(주로 곡식이나 가축, 농기구 등)을 교환해 사용했고, 교환물을 용이하게 운반하기 위해 육로는 물론 강과 바다 등을 수로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물물교환과 수로로 이용되는 곳은 늘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한 번 도시화가 되면 전쟁이나 대규모 감염병, 자연재해를 입기 전까지는 지속적으로 번성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자 이젠 운반을 위한 교통로가 제대로 기능을 하기 어려워졌다. 정책적으로 인구 분산책이나 대체 도시 발전을 꾀하기도 했으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국가는 세금을 많이 내는 상인이나 무역 종사자들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교통 편의를 정책적으로 해결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 계획적으로 도시화가 된 곳도 일정 기간 지나면 늘 교통 문제가 닥쳤다. 쇠퇴해 폐허화된 곳이 아니면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고, 도시화는 결국 교통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 더욱이 산업혁명 이후 지나친 화석연료 이용으로 기후변화가 대두되자 환경문제까지 겹치면서 어느 나라나 국가적 난제가 된다. 교통과 환경은 정반대 개념으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간혹 전쟁이 나면 전략적 이용을 위해 설치된 곳이 전쟁 후 도시화가 되기는 했지만 강 유역이나 바닷가가 대체적으로 상업화되기 쉬운 조건이었다.





이젠 각 나라들은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및 환경보호 요구 등 전 세계적 여건 변화에 발맞추는 도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이것은 관련 분야 관계자들만의 논의가 아니라 모두가 고민하는 과제이자 함께 이루어야 할 ‘모두의 일’이다. 도시 시스템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교통 역시 전공 학생이나 실무자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통’이어야 한다. 이에 교통공학을 전공한 정병두 교수는 세계 곳곳을 돌며, 도시 공간의 특색을 살린 교통에 대한 정보와 함께 자신의 견해를 담아 『도시와 교통』을 펴냈다.

교통수요관리, 교통정온화, 대중교통 중심개발, 간선급행버스체계, 환경친화적인 트램, 보행자 및 자전거와 공유하는 통합가로 등 사람 친화적이며 지속가능한 교통을 구축하기 위한 고민과 해법을 담은 『도시와 교통』.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 새로운 대중교통 르네상스, 스마트모빌리티로 만드는 지속가능한 도시로 구성했으며, 국내 도시재생 활성화와 인간과 환경을 생각한 지속가능한 도시, 미래가치 지향의 사람 중심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한 것을 살펴본다.





1장에서는 환경과 교통의 관계, 지속가능한 교통이란 무엇인지 알려주며, 2장에서는 교통정온화, 최고속도규제, 보행자공간, 교통약자의 이동원활화 등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을 짚어본다. 3장에서 대중교통 중심 개발과 복합환승센터, 간선급행버스, 친환경 교통인 트램, 트랜짓 몰 등 새로운 대중교통 르네상스를 다룬 데 이어 자전거 공유시스템 공용자전거, 승용차 공동이용 카셰어링, 실시간 주차관리시스템 스마트주차, 미래의 모빌리티 서비스 등 스마트모빌리티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여러 방법을 4장에서 다루었다. 이를 통해 교통의 현재를 돌아보고 환경과 어우러지는 교통의 미래를 생각한다. 나아가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할 도시를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을 찾아본다.


1장 :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

환경과 교통 / 지속가능한 교통 / 교통수요관리 / 혼잡통행료

2장 :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통

교통정온화 / 최고속도규제, 존(Zone) 30 / 보행자 공간 / 교통약자의 이동원활화

3장 : 새로운 대중교통 르네상스를 꿈꾸며

대중교통 중심 개발(TOD) 복합환승센터 / 간선급행버스(BRT) / 친환경 교통, 트램 / 트랜짓 몰

4장 : 스마트모빌리티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자

자전거 공유시스템 공용자전거 / 승용차 공동이용 카셰어링 / 실시간 주차관리시스템 스마트 파킹 / 미래의 모빌리 티 서비스


불과 20여년 전에 발표된 교통 문제 해결 논문은 몇 개만 살펴보더라도 대략 노약자와 장애자를 위한 교통시설, 자전거와 자동차, 교통수요관리, 화물수송, 버스, 전철 지하철 및 환승시설, 수운 등에 맞춰져 있던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친환경적으로 바뀌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로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사람을 생각하는 친환경 교통이란 무엇인지,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재생과 창조도시의 지속가능한 교통 역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친환경 교통 시스템과 그 도시만의 고유한 공간과 문화와 어우러진 교통 시스템을 들여다봄으로써 역사와 문화 예술의 도시가 어떻게 교통과 어우러지며, 교통 역시 그 도시만의 색깔을 어떻게 가꾸는지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지속가능하며 모두를 위한 교통 시스템 구축과 관련된 내용들을 국내외 사례를 중심으로 담고 있는 『도시와 교통』.

일반인들에게는 교통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교통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실무자들에게는 지속가능한 교통 시스템의 방향을 짚어줄 것이다. 사람과 환경이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교통, 모두를 위한 교통을 함께 찾아간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온실가스 농도가 가장 많이 증가하여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어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고, 그 원인이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교통부문의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친환경자동차의 보급과 함께, 가까운 곳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로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p. 15>





안전속도 5030 시행으로 사람이 안전한 도로를 만들어나가다

국토교통부는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를 위해 2016년 ‘교통사고 사상자 줄이기 종합대책 시행계획’에서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 수를 OECD 중위권 수준인 1.6명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교통안전 시행계획으로 어린이와 노인 등 보행교통사고 감소를 위해 생활도로구역, 어린이와 노인 보호구역을 확대하고, 통행속도를 30㎞/h 규제 제한 등 최근 경찰청에서 ‘안전속도 5030’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p. 101>


도시개발, 대중교통을 먼저 생각하다

대중교통 중심 개발(TOD)이란 대중교통을 중심으로 보행권과 역세권을 공간 범위로 대중교통 친화적인 공간이 조성되도록 도시를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저밀개발과 도시확산(Urban Sprawl) 등으로 환경과 교통 문제를 경험한 북미 도시에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성장과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개발 등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p. 155>





퍼스널 모빌리티 시대를 열다

근년 친환경 차량 개발 투자와 기술 경쟁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스마트시티 교통서비스에 있어서는 자율주행셔틀 서비스, 퍼스널 모빌리티 등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모든 교통수단을 통합해 하나의 플랫폼을 통해 통합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스(MaaS)가 대중교통 이용 서비스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 본문 중에서>


저자 : 정병두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교통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매년 방학 때마다 전 세계의 특색 있으면서도 시민과 어우러지는 도시들을 찾아가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CITY 50, 지속가능한 녹색도시 교통》을 펴냈다. 특히 도시 공간의 특색을 살리는 교통, 이용자의 편리와 교통 약자를 배려하는 시스템, 환경을 생각하는 교통관리체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크레파스북에서 출간한 《도시와 교통》 역시 이러한 발품과 연구의 결실 중 하나다.

주요 저역서로는 《CITY50, 지속가능한 녹색도시 교통》(2016), 《지구교통계획》(2015), 《공간과 생활〉(2013), 《지구교통계획 매뉴얼》(2013), 《지속가능교통》(2013), 《살고싶은 도시100》(2012), 《가로환경 매뉴얼》(2003)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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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민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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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에세이(essay)는 중수필(formal essay), 미셀러니(miscellany)는 경수필(informal essay)이라 한다.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知的)·객관적·사회 적·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수필을 말하며 후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의미의 수필을 말한다. 요즈은 경중을 가리지 않고 에세이로 불리우는 것 같다. 중수필의 부재 탓인지, 경수필의 확장 탓인지 모르지만.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영어의 essay는 프랑스어의 essai에 그 기원을 둔다.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 또는 '시험'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말은 '계량(計量)하다' '음미(吟味)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엑시게(exigere)'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essai'라는 말을 작품 제목으로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이다. 몽테뉴는 원래 법률을 전공한 법률가였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보르도 법원에서 법관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는 법관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법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지신의 성(城)에 은거하여 사색과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이때 그는 유명한 『수상록(隨想錄)』을 저술하였는데, 바로 이 '수상록'이 불어로 'Les Essais'인 것이다. 그리고 이 'Les Essais'가 이 세상에 처음 나온 때는 1580년이었다.

한편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1597년에 를 초판 발행하는데, 이 후 1612년과 1625년에 각각 수필 작품들을 추가로 수록하여 발행되었다. 그래서 원래는 10편이었던 수필 작품수가 1625년에는 다시 배 이상으로 늘어난 58편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추고(推敲)도 거듭하였다. 베이컨의 에세이는 중수필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





사전 분류에 따른다면 이 책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는 미셀러니에 속할 터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를 떠나 수필의 의미는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다. 좀 의역한다면 '마음 가는 대로'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마음이 독자들의 마음에 얼마나 와 닿느냐는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잘 쓴 수필임에 틀림없다.

'잘 쓴 수필' 하면 20세기 세대는 피천득의 '인연'을 꼽는다. 아사코(일본 여성)에 대한 추억을 담담히 써내려가 독자들의 가슴속에 명작으로 남아 있으니. 이처럼 오늘날 에세이는 경중의 구별 없이 작가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모두 그렇다. 마음이 통한다면 무슨 내용을 담든 글은 매력적이고 궁극적으로 잘 쓴 수필로 남을 터이다.

이 책은 출판사 수필 공모에서 선정돼 출간된 책이다. 당시 심사위원은 심사평을 "우리 관용구 가운데 ‘한 방 먹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소 속된 표현으로 ‘말 따위로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다.’라는 뜻이다. 이 관용구에 나오는 ‘한 방’이라는 낱말을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에 끌어들이고 싶다. 여기의 ‘한 방’을 대체할 적절한 낱말이 안 떠오기 때문이다. 이 수필집 모든 작품에는 ‘한 방’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민혜 수필집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는 해드림출판사에서 수필집으로는 처음으로 공모를 통해 기획한 수필집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50여 권 분량의 작품이 들어왔는데, 민혜 수필가는 곧바로 응모를 하여, 다른 이의 작품보다 제일 먼저 읽게 되었다.

작품을 읽어가면서 ‘발굴’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어쩌면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될지 모른다는 예상을 하였다. 이보다 더 나은 작품이 들어올까 싶을 만큼 공모 의도에 흡족하였기 때문이다. 응모한 작품을 모두 검토한 결과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민혜 수필가의 작품들은 무엇보다 고급스럽다. 사유와 표현력이 뛰어나고, 문장들을 맛깔스럽게 구사한다. 수필이 이처럼 멋진 문학이구나 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여담이지만 수필가로 등단한 작가의 수필집이 출간되면 몇 권이나 팔릴까는 독자로서도 당연한 의문이다. 비교적 오프라인 판매가 많다는 수필(에세이)은 여린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이 많은 게 현실이다. 또 마음의 스트레스 등 상처를 입을 경우 읽으면 심리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힐링'으로서의 책이 많이 나와 있다.

20여 년 출판 관계 일을 한 분이 밝힌 바는 일반 독자가 구매하는 수필집은 1년 동안 채 열 권도 안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혹독한 현실이다. 수필이 얼마나 멋진 문학인지 보여주고 싶어 출판을 기획하고 공모를 통해 책을 펴냈다는 출판사의 고충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독자에게든 특별히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수필집이 필요하였다.

냉정한 독자의 시선과 마음을 유혹해 수필 독자를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는 한 출판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책이다.





"삭막해져 가는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데는 수필만 한 문학이 없다는 생각이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독서’ 하면 수필이라는 신념에도 변함이 없다. 수필이 국민문학이 될 때 대한민국은 행복지수 1위 국가가 된다는 것을 자신한다.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인연, 문단의 연륜이나 지위 등은 냉정하게 외면한 채 오로지 작품만 보았다. 따라서 이번 도전이, 독자들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며 수필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독자의 지성과 감성을 오지게 자극하며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살가운 동반자가 될 줄 안다."

판매를 자극하는 출판사 측의 말이라 감안해도 수필문학에 대한 자신감과 사명감, 그리고 우리 출판업계의 앞날에 희망적이라는 점에서 독자도 적극 공감한다.

가곡 ‘아마릴리’는 사랑을 호소하는 노래로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 마음속 소망의 여인이여…

내 가슴을 열면 심장에 쓰인 것을 볼 수 있으리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내 가슴이 작은 나뭇잎처럼 떨린다. 작곡자 카치니와 그 노래를 영원으로 승화시킨 베냐미노 질리에게 선망을 느끼며 나도 같은 호소를 올리려 한다.

“내 마음속 소망의 독자여, 벗이여, 제 책을 열면 제 심장에 쓰인 것을 볼 수 있어요. 저와 함께 웃고 울지 않으실래요?”

- <작가의 말> 중에서





살아온 흔적들을 돌아보며 새삼 울컥했다.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듯 작품에 투영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만나 함께 울고 웃는 시간들이었다.

삶이란 결국 저마다의 위치에서 웃고 우는 일이 아니던가. 눈물이란 슬퍼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감사해도 감격해도 아름다움을 느낄 때도 나는 눈물이 난다.

출간 문제를 놓고 십여 년 넘는 세월을 고심했다. 작품은 넘치는데 갖은 이유들이 태클을 걸어왔다. 만인이 작가인, 수필집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내 작품을 내놔야 하는 명분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나는 자기 글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약한 편이다.

이는 작가로서의 겸손일 수도 있고 보다 높은 고지에 닿고 싶은 갈망일 수도 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이 누군가 손 내밀며 출판해 주겠다면 모를까 자비출판은 안 하고 싶다는 거였다. 정 섭섭하면 몇 부만 인쇄해 자신에게 헌정할 생각이었다.

그럴 때, 그 절묘한 시점에, 제1회 기획수필집 원고 공모 메일이 날아왔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 낭보가 들려왔다.

그 소식에 십여 년 앓던 통증이 다 사라졌다. 이 출판사가 내겐 의사였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기회를 안겨준 것이다.

한 권의 수필집이 작가의 마음을 활자에 담아 오롯이 전해질 독자들에게 작가는 간절한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나는 지금 알약을 손에 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나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유난했기에 왠지 남편의 혼백이 아직 내 곁을 떠돌고 있을 것만 같다. 들통 난 비밀에 민망해 할까 봐 보이지도 않는 그를 향해 짐짓 웃음을 보낸다. 내 마음을 못 읽을까 소리 내어 농도 건넨다.

“당신, 나한테 딱 걸렸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 놀랍거나 불쾌하진 않았거든. 되레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근데, 난 이 약의 용도가 날 의식한 건 아니었을 것 같네. 그건 육감이자 심증 같은 거지만 뭐, 그래도 상관은 없어.”

비아그라 두 알, 이 작은 알약이 주는 파장이 크다. 오만 상념의 발기가 도무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일련의 음습하고 통속적 연상은 새털처럼 날아가는데 한 존재의 가슴에 드리웠을 내밀한 욕망과 외로움의 무게만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색정이란 삶의 본령이자 에너지 같은 것, 그는 꺼져가는 자기 육신을 이 마법의 알약을 통해 되살리고 싶었던 걸까. 비아그라, 비아그라, 헌 물건 내줄 테니 새 물건 내어다오. 그런 주문이라도 토하며 자신의 남성성이 아직 살아 있음을 어떻게든 확인받고 싶었던 걸까. 무릇 생명 지닌 존재는 그 생명성(生命性)으로 소멸의 과정이 이렇듯 애처로운가 보다.

그 욕망의 간절함과 순수함이라니, 대상이 누구이든 그게 무슨 대수랴.

서산에 어둑발이 내리고 있다. 그와 나는 한 지붕 아래의 작은 두 섬이었나보다. 이제 섬 하나는 사라졌다. 서산 너머,

자춤거리던 잔광마저 집어삼킨 아득한 몽리(夢裏)의 저편 세계로 그는 가버렸다. 남편의 영정 사진을 다시 가슴에 품는다. 명치가 끊어질 듯 아파온다.

- 「비아그라 두 알」 중에서





저자 : 민혜


서울에서 평생을 살고 있다. 네 살 때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년 대표로 교내 미술대회에 나가봤고, 교지에 내 작문도 실렸다. 4학년 때는 학교 합주부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며 클래식에 맛 들였다. 그 세계가 내 삶의 기저를 이룬 셈이라 전 생애를 그 안에서 헤엄치며 살아간다.

1992년 〈창작수필〉로 등단. 초기엔 〈한국 문학〉지를 비롯해 단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학의 현실 참여를 위해 1990년대엔 재소자들에게 편지쓰기 봉사를 했고, 1995년~2002년까지 신경정신과 환자들의 재활 프로그램인 ‘문예치료’ 담당자로 일했으며 디지털 조선일보에 〈힐링 에세이〉를 연재하기도 했다.

수상경력으론, 2013년 목포문학상 수필 본상 수상. 2014년, 2015년에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2회 수상. 2018년 〈가톨릭출판사〉 신앙서적 독후감 공모 우수상 수상. 2020년 월간 〈좋은 생각〉 문예공모 금상 수상. 2020년 〈해드림 출판사〉 제1회 기획 수필 원고 공모 당선. 저서로는 2002년에 개인 수필집 『장미와 미꾸라지』를 상재했고, 5인~12인이 함께한 공저 『꿈꾸는 역마살』 『내가 지나가는 소리』 『우리 기도할까요』 등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에세이스트 문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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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살인 1
베르나르 미니에 지음, 성귀수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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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소설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강력한 장치로 도입부 처음 장면에 엽기적 범죄 장면을 묘사하거나 일상의 평범한 생활 속의 느낌을 강하게 하기 위해 음험한 분위기 묘사를 즐겨 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독자는 작가 베르나르 미니에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작품은 물론 매스컴에 주목 받은 사실도 몰랐다. 이 소설도 읽기 전 소설 스토리를 보고 엽기적 범죄 장면 묘사에 끌렸기 때문이다. 특히 '말러의 음악이 흐른다'는 부분이 크게 인상적이었다. 잔잔하다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현장 분위기를 돋구어 주는 음악. 책을 펼쳐 들면 바로 사건 현장이 나타난다.

"장대비가 퍼붓던 날 마르삭고교의 여교사 클레르가 고급주택가의 자택 욕조에서 밧줄로 온몸이 꽁꽁 묶인 사체로 발견된다.

헌병대에 최초로 신고한 사람은 이웃집 노교수이다. 그 집에 내려다보면 살해된 여교사의 저택과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체의 목구멍에 손전등이 불이 켜진 채 끼어 있고, 정원의 풀장 수면에는 19개의 인형이 떠있다. 집안 가득 볼륨을 최대한 높인 말러의 음악이 흐른다. 약에 취한 듯 정신이 혼미한 청년 위고가 풀장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학창시절의 추억이 녹아들어 있는 마르삭의 사건현장으로 출동한 세르바즈 경정은 피해자의 집에서 2년 전 겨울 치료감호소를 탈출해 사라진 연쇄살인마 쥘리앙 이르트만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저택의 전등이 환하게 불을 밝힌 가운데 풀장의 수면 위에서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흔들리는 인형들, 욕조에서 공포에 질린 눈을 미처 감지도 못하고 익사한 여교사의 사체, 집안 가득 울려 퍼지는 말러의 음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르트만이 과거에 남긴 행적과 닮아 있다. 끔찍하고 엽기적인 현장을 둘러보고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한 세르바즈 경정은 매우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그의 딸 마르고가 마르삭고교에 다니고 있고, 현장에서 체포된 청년 위고는 딸과 같은 반이고, 위고의 엄마 마리안은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기 때문이다.

주네브 고등법원에서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무려 40여 명의 여성을 납치 살해한 쥘리앙 이르트만이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치료감호소를 탈출한 이후 프랑스 경찰은 특별수사팀을 편성해 18개월 동안 추적했지만 결국 검거에 실패하는 한편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이르트만은 뛰어난 머리로 교묘히 수사망을 빠져나가며 연쇄살인을 저질러온 인물이기에 그의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된다. 그의 범죄대상은 언제나 여성이었고, 피해자의 시신은 단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다. 세르바즈 경정은 사건 현장을 꼼꼼하고 분석하고 나서 범인을 검거하기 위한 수사에 매진한다.





왠지 모를 음산한 흥분감이 밀려왔다. 그건 어떤 익숙지 않은 일이 일상을 뒤흔들 때 느끼는 감정으로, 올리버는 이 나이에 이르러 처음 그런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풀장을 중심으로 정원을 훑었다. 정원 끝자락은 마르삭 숲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그 너머 2,700헥타르에 달하는 나무와 오솔길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쪽으로는 벽도 철책도 없었고, 빼곡하게 열 지은 나무와 덤불들이 자연스러운 담장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비교적 최근 축조한 방갈로가 풀장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올리버는 다시 풀장으로 주의를 돌렸다. 폭우로 인해 수면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보이는 저것은…

수면에서 인형 여러 개가 연신 기우뚱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틀림없는 인형들인데…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소용없었다.

그걸 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인형들이 서로 부딪치며 춤추는 가운데, 빗방울 통통 튀는 수면 위로 희부연 인형 옷자락이 넘실대고 있었다. < pp. 20~21 >





프랑스의 특수반을 비롯해 각국 경찰이 쥘리앙 이르트만을 체포하기 위해 특별수사본부를 편성해 검거에 나섰지만 하나같이 실패했다. 연쇄살인마의 귀환인가, 아니면 수사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트릭인가?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와 비견되는 연쇄살인마 쥘리앙 이르트만이 《눈의 살인》에 이어 다시 세르바즈 경정과 2차전을 벌인다. 한편 살인현장에 남아 있던 여교사의 제자 위고, 피해자와 은밀한 만남을 해온 국회의원 폴 라카즈, 여교사와 오랜 친구이자 한때 연인이었던 반 아케르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저마다 살인동기와 혐의점이 있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드러나지 않는다. 용의자들을 중심으로 전개해오던 수사는 끝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면서 점점 더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든다.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피레네산맥 인근 지역은 작가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고, 아름다운 숲과 호수, 짙은 안개, 계곡을 흐르는 물, 호수와 숲 언저리에 위치한 전원주택으로 유명한 곳이다. 작가는 그 지역 출신답게 실제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숲길, 불길한 느낌을 자아내는 먹구름, 천둥과 번개, 쉴 새 없이 퍼붓는 비는 이 소설의 또 다른 배경이다. '물의 살인'이라는 제목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정신이 들었을 때 오디오세트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무슨 특별한 음악이었나?”

“그게…….” 소년이 깊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제가 그 집에 있을 때 클레르는 종종 음악을 틀어놓곤 했는데 그런 음악은 처음이어서…….”

“어떤 음악이었는데?”

“고전음악이었어요.”

세르바즈는 위고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고전음악이라면? 등골을 따라 기어오르는 소름이 느껴졌다.

“그녀가 평소에 듣지 않는 음악이었나?”

위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제가 아는 한 그래요. 그녀는 재즈 아니면 록을 들었거든요. 심지어 힙합까지도. 그날 저녁 이전에는 다른 음악을 들은 기억이 없어요. 그래서 정신이 들자마자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딘가 모르게 음울한 음악소리가 들려오는데, 집은 인기척 없이 휑하더군요. 정말이지 평상시와는 달랐어요.”

어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세르바즈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희미하고, 넓게 퍼져나가는 무엇. < pp. 109~110 >





이르트만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혹시 성형외과의 힘을 빌리진 않았을까? 머리와 수염을 기르거나 염색을 하고 콘택트렌즈를 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몸무게를 불리고, 말투와 걸음걸이까지 바꿔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을까? 이르트만을 떠올리자니 수많은 궁금증이 밀려들었다. 세르바즈는 만약 그가 완전히 다른 복장을 하고 얼굴에 분장까지 하고 나타나면 과연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인파 속에서 그 스위스인이 몇 센티미터 앞을 지나친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온몸을 훑었다.

세르바즈는 CD를 담은 투명봉지를 감식반원에게 돌려주며 투광기 때문에 두 눈을 깜빡였다. 별안간 뱃속이 쓰렸다.

쥘리앙 이르트만이 아내와 정부를 살해한 저녁 선곡한 곡이 바로 <킨더토튼리더>였다. 세르바즈는 초동수사와 이웃 탐문조사가 정리되는 대로 여러 곳에 전화해 몇몇 사람들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오래전 사랑했던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형사생활 중 가장 끔찍했던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어떻게 하나의 범죄현장에 모일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알 듯했다. 그 자신, 검찰의 위임을 받은 수사관일 뿐 아니라 직접 이 사건에 연루된 입장이라는 사실. < pp. 121~122 >





“그중에서 단연 흥미로운 케이스가 있었는데, 고속도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사람의 증언이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이 자기 주유소에 와서 기름을 넣고 신문을 사갔다는 거예요. 모터사이클을 탔는데, 머리를 염색했고, 턱수염을 길렀고,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틀림없이 그 자라는 거죠. 온라인상 사진 중 하나를 빼박았고, 신장과 체격이 일치하고, 어딘가 모르게 스위스 억양이 살짝 실린 말투였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번엔 운 좋게도, 주유소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로 영상까지 확보했다는 거 아닙니까. 주유소 주인 말이 사실이었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그 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한 일이에요.”

세르바즈는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심장이 박동했다.

“주유소 위치가 어딥니까? 언제 그랬다는 거예요?”

“2주 전입니다. 경정님한테는 잘 된 일일 겁니다, 위치가 몽토방 북쪽 고속도로 A20, 두르 숲 구역이거든요.”

“모터사이클은 영상으로 찍혔나요? 번호는 조회해봤어요?”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터사이클을 세워두더군요. 하지만 툴루즈 방향 좀 더 남쪽에 위치한 톨게이트에서 다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진 않은데 번호는 처음 몇 개만 확인했고, 계속 조사 중입니다. 이제 경정님의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겠죠? 문제의 그 바이커가 진짜 이르트만이라면 현재 그는 경정님의 관할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 pp. 209~210 >





“그중에서 단연 흥미로운 케이스가 있었는데, 고속도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사람의 증언이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이 자기 주유소에 와서 기름을 넣고 신문을 사갔다는 거예요. 모터사이클을 탔는데, 머리를 염색했고, 턱수염을 길렀고,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틀림없이 그 자라는 거죠. 온라인상 사진 중 하나를 빼박았고, 신장과 체격이 일치하고, 어딘가 모르게 스위스 억양이 살짝 실린 말투였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번엔 운 좋게도, 주유소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로 영상까지 확보했다는 거 아닙니까. 주유소 주인 말이 사실이었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그 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한 일이에요.”

세르바즈는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심장이 박동했다.

“주유소 위치가 어딥니까? 언제 그랬다는 거예요?”

“2주 전입니다. 경정님한테는 잘 된 일일 겁니다, 위치가 몽토방 북쪽 고속도로 A20, 두르 숲 구역이거든요.”

“모터사이클은 영상으로 찍혔나요? 번호는 조회해봤어요?”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터사이클을 세워두더군요. 하지만 툴루즈 방향 좀 더 남쪽에 위치한 톨게이트에서 다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진 않은데 번호는 처음 몇 개만 확인했고, 계속 조사 중입니다. 이제 경정님의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겠죠? 문제의 그 바이커가 진짜 이르트만이라면 현재 그는 경정님의 관할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 pp. 209~210 >





“말씀드렸다시피 익사한 경우 사망 원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다보면 좀 더 확실한 추정이 가능하겠죠. 예컨대 혈액 내 스트론튬 농도가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혈액 안에 존재하는 스트론튬 농도가 여자가 발견된 욕조 물에 근접한 수준을 보일 경우 욕조에 잠겨 익사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음…….”

“사체의 푸르죽죽한 색조도 마찬가집니다. 침수현상은 그런 색의 형성 자체를 지연시키지요. 조직검사도 해봤지만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이 말이 세르바즈의 심기를 상당히 건드렸다.

“손전등은요?”

“네? 손전등이요?”

“그 문제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글쎄요. 해석은 그쪽 일이고, 저야 팩트를 다루는 데 만족해야죠. 여자가 패닉 상태였던 건 분명합니다. 심하게 몸부림을 쳐서 몸을 묶은 끈이 살점을 깊이 파고들었어요. 문제는 어느 시점에 그랬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아마도 두개골에 치명타가 가해졌다는 가설은 논외로 쳐야할 겁니다.”

세르바즈는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법의학자의 말투에 슬슬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물론 델마는 아주 꼼꼼한 전문가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러하기에 더욱 조심스러워한다는 점 역시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내가 얻고자 하는 건 뭔가 좀 더…….”

“딱 떨어지는 결론 말이죠? 분석이 낱낱이 행해지고 나면 아마 그런 게 나올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자가 산 채로 욕조에 빠져 익사했을 확률이 95퍼센트에 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정도면 그리 모호한 결론이라고 할 순 없죠, 안 그렇습니까?” < pp. 304~306 >





“한 가지 충고하겠습니다. 당신은 말할 때마다 은연중 ‘제가 생각하기엔’이랄지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같은 표현은 쓰는데 좀 자제하세요.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개인적 의견 따위는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건 행동과 사실입니다.” 까칠한 말투였다.

이 대목은 묘하게 머릿속에서 맴돌며 사라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2권이 기대된다.


저자 : 베르나르 미니에(BERNARD MINIER)


세관직원으로 근무하며 단편과 중편소설을 써오다가 50대에 첫 장편 『눈의 살인』을 발표하며 늦깎이로 데뷔한 작가이다.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산맥 근처 베지에에서 태어났고, 인근 몽레조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녔다. 주로 고향인 피레네 산맥 인근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다. 늦은 데뷔였지만 중단편 소설 을 습작으로 써오면서 쌓은 실력이 탄탄해 첫 소설 『눈의 살인』부터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2011년 장편소설 『눈의 살인』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작인 『눈의 살인』은 코냑추리소설대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M6텔레비전에서 6부작 드라마로 제작돼 최우수 TV시리즈상을 받았다. 현재 파리 교외 지역에서 거주하며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 생생한 대화, 탁월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그의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의 살인 LE CERCLE』은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 한 작은 대학 도시 ‘마르삭’에서 발생한 여교사 살인사건을 다룬다. 『눈의 살인』에 이어 마르탱 세르바즈 형사가 다시 사건 해결을 위해 소환돼 어느 한 비극적인 사건에서 비롯된 연쇄살인의 비밀을 파헤친다. 주요 작품으로 『눈의 살인』, 『자매 SOEURS』, 『밤 NUIT』, 『빌어먹을 이야기 UNE PUTAIN D'HISTOIRE』, 『불을 끄지 마』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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