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
마틴 에드워즈 지음, 성소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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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을 때부터 가슴이 설렜다. 책읽기 연한은 오래됐지만 추리소설은 읽기 시작한 지 겨우 1년이 된 독자로서는 '고전' 추리·범죄소설 창고를 뱔건한 느낌이었다. 추리·범죄소설 목록 중 '고전'이라 할 만한 소설을 저자가 엄선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 책의 저자 마틴 에드워즈가 이미 범죄소설 작가로서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다. 그의 안목으로 엄선된 추리소설들은 독자가 추리소설을 계속 읽어갈 작정이어서 훌륭한 목록을 확보해 놓고 독서를 즐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목록뿐만 아니다. 50년간의 비교적 짧은 시기에 나온 추리소설 중 명탐정, '대저택', 런던 범죄, 살인 조롱하기, 범죄 심리, 과학 수사 등 테마별로 정리해 100편을 뽑았기 때문에 머릿속에 쉽게, 오래 기억될 것이고, 소설과 소설 제목, 작가, 연대 등 그물처럼 잘 짜인 추리소설 안내서다. 추리소설 문학적 평가에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은 20세기 전반에 출판된 추리·범죄소설의 고전을 담고 있다. 장르의 재미와 다양성을 독자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고전 범죄소설에 정통한 전문가인 저자가 아서 코난 도일의 '배스커빌의 사냥개'를 시작으로 흥미로움, 문학적 업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추리·범죄소설 100편을 추렸다.

고전 추리·범죄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베스트셀러 작가뿐 아니라 잊혔지만 매혹적인 보석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01~1950년에 출간된 추리·범죄소설에는 뜻밖의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저자는 이 50년 동안 장르가 발전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아주 까다롭게 작품을 고르고 추려 이 책에 담았다. 하지만 이 책은 20세기 전반기 ‘최고’ 작품의 목록이 아니다. 또 저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목록도 아니다. 이 책의 목표는 그저 고전 추리·범죄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추리·범죄소설의 주목적은 독자를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다. 또 최고의 추리·범죄소설이라 함은 거기에 인간 행위를 꿰뚫어 볼 통찰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야망과 성취까지 자랑한다. 그러나 아무리 뻔뻔한 상업적인 시시한 추리소설이라도, 과거를 이해할 실마리와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세상을 들여다볼 창되어 줄 수 있다. 과거 세상은 결함투성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이것은 또 추리·범죄소설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폭넓은 개방성 덕분에 전 세계 독자의 마음을 잡아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셜록 홈스, 브라운 신부, 제인 마플, 에르퀼 푸아로 등 우리에게 친숙한 탐정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밀실 살인, 대저택이나 휴가지에서 생긴 사건, 과학 수사 등 호기심이 생기는 주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 이런 장르에서 발견되는 패턴을 강조하기 위해 주제에 따라 장을 나누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에 포함된 작품 중 상당수가 기존에 출간되었던 선집 하나 혹은 그 이상에 실렸다. 하지만 이 책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고전 범죄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는 일이 매우 즐거운 법이기 때문이다. 또 장르의 다양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자에게서 잊힌 책 가운데 일부는 정말로 잊힐 만한 이유가 있어서 잊혔다. 다들 책을 펼치자마자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엉성하고 조잡한 작품이라고 해도, 심지어 저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인물이나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되어준다.

그래서 문학성을 향한 포부를 숨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탁월한 업적까지 자랑하는 대가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평범한 작가들의 작품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알지 못했던 재밌는 작품과 끌리는 작가를 찾아보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추리 스릴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두뇌 플레이는 물론 어느 작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사회, 문화, 인간의 내면 심리들을 쫄깃쫄깃한 심장 두드림을 선사하는 맛에 읽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시작된 추리의 시작은 언제쯤이며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쏟아내는 작품들의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이 책은 이 시작점에서 출발하기에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독자도 이 점의 매력에 끌렸다.

이 책은 단지 책 제목을 읽고 100개의 추리 작품을 엄선해 보인 것이 아니라 20세기 전반기부터 출간된 작품들을 다루면서 소제목의 주제로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단순히 추리 작품의 내용만을 다뤘다고 보긴 어려운 책이다.



1장인 '새 시대의 여명'에서 등장하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유명한 작품인 베스커빌가의 사냥개에 얽힌 탄생비화를 비롯해 본격적인 작가들의 대세 작품들이 등장하는 황금기의 도래 부분들에선 젊은 작가들의 끊임없는 열정, 에너지, 대담함이 곁들여진 결과물이란 사실이 돋보인다. 지금까지의 고정 패턴처럼 여겨지는 흐름의 시작이 되는 작품 소개까지 다른 묘미들을 선보인다.

요즘의 시리즈물에 나오는 형사의 인격 형성이나 성장 배경들이 사건에 집중되면서 개성 있는 캐릭터로 잡아가고 있듯 책에서 보인 여러 주인공의 탐정들의 모습은 완벽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는 점을 그린 반대 개념의 캐릭터 탄생, 여성 탐정으로서 활약하는 주인공들, 각 해당하는 작품들에 등장하는 추리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접할 수가 있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작가의 비화에 얽힌 이야기와 작품이 지금까지 유명한 것이 있는가 하면 바로 사라져버린 작품들의 내용까지를 범위를 확장해가며 읽을 수 있다.

추리소설의 기본이 되는 후더닛의 꼼꼼한 배경과 설정들, 많은 추리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겐 접해보지 못했던 작가들의 이름들도 들어있을 것이고, 이미 낯익은 작가들을 접한 독자들이라면 그들의 작품의 탄생 배경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독특함은 '100선'에 대한 설명에 앞서, '고전'이란 단어의 설명을 먼저 하자면, 저자가 선택한 책들, 즉 고전의 시대적 범위를 20세기 초반으로 삼았다. 즉 1901년에서 1950년 사이에 출간된 장편소설이나 단편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범위를 한계 짓는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출판된 ‘최고’의 작품들을 뽑은 걸까? 이 역시 '아니다'. 저자는 분명하게 밝힌다. 20세기 전반기에 출간된 책들 가운데 ‘최고’ 작품의 목록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자가 개인적 취향에 맞는 애정 작품 목록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럼 어떤 작품들을 선별한 걸까? 이 시기, 즉 50년 동안 장르가 발전한 과정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작품들을 고르고 추렸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이 가운데는 유명하지 않은 작품도, 때론 금세 독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작품들도 있다는 점은 앞서 밝힌 대로다. 게다가 여기에 실린 작품은 거의 대부분 영국 작가의 작품들인 점 역시 이 책이 스스로 정한 한계임도 기억해야 한다.(그래서인지 그 유명한 『아르센 뤼팽 시리즈』 역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무튼 추리소설, 범죄소설의 황금기라 불리는 시기에 출간된 작품들의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책 속에 수록된 102편에 대한 저자의 소개는 작품에 대한 소개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작품 하나에 대한 소개보다는 그 작품의 작가에 대한 소개, 작가에 의해 창조한 캐릭터들에 대한 소개에 더욱 치중하고 있는 느낌이 있다. 그런 면에서는 어쩌면 102편에 대해 저자가 성심성의껏 작성한 서평 모음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역시 코난 도일의 작품이 제일 먼저 소개되는데, 어쩐지 코난 도일의 업적 중 가장 뛰어난 업적은 셜록 홈즈라는 탐정을 만들어낸 것보다는 왓슨이란 보조자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점은 언제가 어떤 평론가가 이미 한 말로 기억된다. 수많은 후배 추리소설작가들이 왓슨과 같은 보조자를 탐정 소설의 틀처럼 내세웠으니 범죄추리 소설의 전형이 된 셈이다.



두 번째 책의 소개 역시 개인적으로 재미나게 읽은 바 있는 『네 명의 의인』, 그리고 그 작가 에드거 윌리스가 소개된다. 이 작품에 얽힌 재미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된 것도 큰 수확 중의 하나다.

G. K. 체스터턴, 애거사 크리스티, 존 딕슨 카, 엘러리 퀸 등과 같이 익숙한 작가들과 작품을 만나는 반가움도 있었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대다수의 작가와 작품은 생소하다. 독자의 추리소설 독서 이력 짧고 보잘 것 없는 탓이리라. 그러나 이 책에서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다. 

일부 작품과 작가는 익숙하긴 하지만 의외성을 발견하는 놀라움도 있었다. 예를 들어 『곰돌이 푸우』의 작가가 탐정소설을 썼다. 

상상도 못한 부분이다.(그의 작품은 책에서 소개하는 제목인 『붉은 저택의 비밀』이 아닌 조금 더 친근한 느낌의 『빨강집의 수수께끼』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다. 

차례대로 정독하는 것도 좋겠지만, 관심 있는 부분이나 작가를 찾아 읽는 것도 괜찮다. 이렇게 102편의 작품과 100명에 가까운 작가들에 대해 알아 가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에 들어가 작품명을 쳐보며 번역 출간된 작품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까지 발전할지도 모른다.

한 번 이 책의 효용가치를 평가하자면 추리소설 마스터 플랜을 짜기에도 적당하고,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는 전문가 수준까지 올라갈 정도의 안내를 받는다. 아무튼 이 책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은 작품 및 작가에 대한 종합선물세트 같이 귀한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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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 - 영혼을 파고드는 무의식 세계와 페르소나 탐구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심리학 3대 거장
칼 구스타프 융.캘빈 S. 홀 지음, 이현성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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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은 '사려 깊은 감수성과 지적 성찰로 환자를 돌본 의사다. 학교 다닐 때부터 프로이트와 함께 배운 기억이 있다. 두 사람의 정신분석 이론은 너무 어려워 더 이상 접하지 못했다. 이후 대학에서는 다른 전공학과를 다녀서 공부할 겨를도 없었다. 다만 책으로 두 사람의 이론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도 주로 프로이트에 관한 것이었고, 후학인 칼 구스타프 융은 그렇게 나와 인연이 없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요즘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호소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관심이 생겨 그의 이론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다.

특히 BTS의 앨범에 융의 영혼의 세계가 도입되면서 그의 정신분석이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흥미로웠다.

영혼과 페르소나(가면을 쓴 인격) 개념을 창시하여 프로이트, 아들러와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칼 구스타프 융은 아버지가 정신병원 상담 목사였고 그는 정신과 의사였기에 유독 정신질환에 지대한 관심과 연구로, 분석심리학의 창시자로 통한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융은 후대에 거장이란 명칭을 얻었으나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융이 직접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에서 자서전적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융은 환자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려 깊은 심리학자였다. 틀에 박힌 방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경계했으며 개인에 대한 개별적 이해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권위보다는 환자를 생각했고 환자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면 다른 학파의 방법도 개의치 않았다.

융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목회자가 많은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하면서 그는 일치하지 않는 모순들과 오랜 시간 싸워야 했는데, 그 모순을 덮어 버리지 않고 답을 찾기 위해 끈질기게 공부하고 토론하고 성찰하였다.

이와 같은 성장 배경은 융이 환자를 인격적으로 배려하면서 치료하고자 한 신념이 되었고, 반복적으로 자기성찰을 하며 자신만의 사상 체계를 확립해 가도록 이끌었다. 융이 연금술에 몰두하게 된 배경도 여기에서 나왔다 하겠다.






이 책의 공동저자 캘빈 S. 홈에 따르면 이 책의 후반에 실린 ‘융이 직접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에는 이처럼 유년기와 청소년기 시절 겪은 융의 갈등과 방황이 내밀하게 드러나 있다.

또한 어떻게 정신의학에 발을 내딛게 되었는지부터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 그리고 그 이후 자기만의 정신분석학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가 창시한 분석심리학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정신분석학에서 융이 갖는 의의와 위치를 소개하는 1~6장을 읽은 뒤 이 융의 자서전을 읽으면 심리학자의 삶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는 색다른 경험을 함과 동시에 그의 사상 세계 또한 더욱 쉽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융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가 인간의 마음에 커다란 관심을 두고 심리학자로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배경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융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그 외에도 집안에 목회자들이 많아서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대화, 신학적 논의, 설교를 듣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융은 매일 밤 기도를 하며 마음의 안식과 위로를 얻었지만 집안 어른들의 대화에는 융이 납득하기 힘든 모순이 있었다. 신학자인 그들의 말이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고 느낀 융은 집에 있는 아버지의 신학 관련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지만 그래도 불신을 극복할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그가 유년기에 느낀 불일치는 부모의 불화,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맞닥뜨린 누이동생의 출생,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한 채 신앙인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내적 모순, 세상에 나가 깨닫게 된 경제적 격차 등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융은 자아가 분리되는 경험을 해야 했으며, 이는 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심리학의 주제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간 융은 내적 분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연과학, 인문과학, 철학, 신학을 아우르며 탐구하였고 그 과정을 거쳐 의학자로서의 길을 결정하게 된다.

융은 그중에서도 정신의학을 자신의 전공 분야로 선택한다. 융이 이 길을 자신의 숙명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당연하게도 느껴진다. 융은 스스로를 감금하듯 정신의학 연구에 몰두하며 치료의 열쇠를 찾고자 노력했다.



책에 따르면 융은 환자의 정신 치료와 분석을 함에 있어 환자 개개인을 우선시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진전되도록 배려했다. 융은 언제나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했으며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었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것이 어느 학파의 방법이든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환자의 치료였다. 융은 피분석자들을 자신과 대등한 인격체로서 대하며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 가운데 대다수가 융의 제자가 되어 몇십 년이 지난 뒤에도 친분을 유지하였다.

융은 자신의 성장기를 통해, 아동기와 청년기에는 부모와 교육자가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일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환자를 치료할 때면 각각의 상태에 따라 상담하는 횟수를 달리했으며, 환자 스스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볼 때 그의 미래 계획과 목표까지 고려하며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진심을 다하였다.

이처럼 융은 여러 관점을 갖고 환자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되도록 다양한 지식을 쌓고자 했다. 학자로서의 융은 그렇게 콤플렉스, 집단무의식, 내향형과 외향형의 성격 유형 등의 이론을 정립하고 분석심리학을 창안하였다. 또한 신화의 해석, 기독교에 대한 분석도 손 놓지 않고 진행해 자기 인생의 해답을 얻고자 하였다.



회사원은 하루 8시간 동안 회사에서 가면을 쓰고 있지만 직장에서 나온 순간 그것을 벗어 버리고, 더 큰 만족을 위한 활동에 임할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 저명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생각난다. 그는 낮에는 성실하게 상해보험국에서 일하고, 밤에는 저술과 문화적 활동에 집중했다.

근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여러 번 호소했지만 그의 상사는 착실히 일하는 카프카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많은 사람이 페르소나에 지배된 생활과 심리적 욕구들을 채우는 생활로 이중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가면을 쓰는 사람도 많다.

직장에서 쓰는 것과 다른 탈을 가정에서 쓸지도 모른다. 골프장에 가거나, 친구와 포커를 하고 있을 때도 제3의 가면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가면을 총괄한 것이 그의 페르소나이다.

- 「집단무의식」 중에서



그렇지만 융은 하나의 이론에만 치우치는 일을 경계했듯 한 방법에만 지나치게 기대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리학적 이론은 매우 번거롭다. 지향과 발견의 단서를 잡기 위해서는 일정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보조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인간의 정신에 관한 연구는 충분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정도로 진보했다고 생각하기는 이르다. 정신 현상학의 경험적 범위조차 못 정하면서 어떻게 일반 이론을 꿈꿀 수 있을까? 아마 이론은 부족한 경험과 무지를 가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가면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하며 완고함, 괴팍함, 천박함, 학문의 파벌 등 참담하고 슬프다.”

- 「융 심리학의 의의」 중에서



융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의 정신과 의사 생활이나 환자들에 대한 배려나 태도 등에 관여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버지의 죽음도 그에게는 그의 분석심리학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참 뒤에 나는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어머니를 찾아 옆방으로 뛰어갔다. “아버지가 죽어 가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방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 어머니가 충격을 받은 듯 말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지나가는구나.”

그 후 며칠 동안은 괴롭고 우울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적당한 시기에 돌아가셨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었다. 즉, ‘두 사람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너의 방해자가 됐는지도 모른다.’ 이런 말이 나로서는 어머니의 제2의 인격에 맞다고 생각했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몹시 아프게 느껴졌다. 지난날은 그때 완전히 끝나 버렸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 남성스러움과 해방감이 내 안에서 움텄다. 그 후 나는 아버지의 방으로 옮기고 집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했다.

- 「아버지의 죽음」 중에서



저자 :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의 원장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심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자극어에 대한 단어 연상 실험을 연구하면서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을 입증하고 이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1907년 이후 프로이트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 에너지라 하여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내적으로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독자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연구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믿고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또한 각 개체의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학, 연금술,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다. 196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 : 캘빈 S. 홀(CALVIN S. HALL)


1909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나 1985년 사망했다. 워싱턴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1933년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 오리건 대학교, 웨스턴리저브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융 심리학 입문(A PRIMER OF JUNGIAN PSYCHOLOGY)』 『성격 이론(THEORIES OF PERSONALITY)』 『꿈의 내용 분석(THE CONTENT ANALYSIS OF DREAMS)』 『꿈의 의미(THE MEANING OF DREAMS)』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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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성격의 심리학 - 단 1초에 상대를 간파하고 자신을 변화시킨다!
포포 포로덕션 지음, 황명희 옮김 / 성안당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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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 삶 곳곳에서 우리에게 던져진다. 색이 그만큼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색을 알면 그 사람의 성격, 심리까지 파악이 가능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색채학이나 색채 미학에서나 들을 질문을 그동안 왜 그렇게 많이 받았을까.

이 책 『색과 성격의 심리학』을 보니 곳곳에서 우리는 심리 테스트를 받은 것이다. 좋아하는 색ㆍ싫어하는 색을 알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색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인 듯하다.

대인관계나 연애 패턴,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 성격의 강점과 약점, 상대를 움직이는 포인트, 자신을 변화시키는 포인트 등 색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 책은 담고 있다.

색은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실은 무척 신기하고 강한 힘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색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색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사람을 움직이고 자신의 성격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약간의 의문도 생기지만 저자의 색에 관한 연구와 지식은 독자들이 거부할 수 없게 설득력을 갖고 있다.



전 세계에는 색과 성격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가 많이 있을 것이다. 색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미술계일 듯하지만 사실은 상업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연구하고 사용하는 듯하다. 소비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선행 연구 데이터에 포포 포로덕션이 자체적으로 수행한 오랜 연구 데이터를 가미해서 색과 성격에 대해 다루었다고 저자(포포 포로덕션)는 밝힌다. 저자는 제조 및 디자인 현장의 최전선에서 얻은 데이터도 추가했다. 또한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거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이 책은 언뜻 내용이 가벼워 보이지만 이론과 근거를 기반으로 만든 알찬 내용으로 꾸며졌다. 색은 복잡한 효과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컨트롤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많이 사용하냐 적게 사용하냐에 따라서도 실로 복잡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색은 매우 복잡하지만, 그렇기에 재미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색이 가진 신비하고 재미있는 효과와 힘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론과 근거를 기반으로 한 심도 깊은 색의 원리를 다뤘다.



저자는 이 책의 구성을 세 개의 장으로 나눴다.

1장 색의 취향과 성격의 관계

2장 사람을 간파하고 움직이는 심리학

3장 색의 힘으로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정작 독자가 마음을 쏘옥 빼앗긴 것은 프롤로그, 불가사의한 색의 힘, 색에 관한 이러저런 얘기로 꾸며진 책의 앞 부분이다.

특히, ① 역사에 숨겨진 색의 비밀 ② 색은 사람의 감각을 변질시킨다 ③ 모르면 손해보는 색과 돈의 관계 ④ 살이 빠진다? 잠이 온다? 신체에 영향을 주는 색 ⑤ 성격을 바꾸고 인생까지 바꾼다 등 다섯 개의 소제목 항목은 흥미로워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이 책에 대한 몰입도를 증가시킨다.



이 책은 내용의 성격상 색을 엄청나게 많이 사용해 제작했다.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하려는 취지로 읽힌다.

지루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들이 간간히 등장한다. 독자에 대한 배려인지, 인지의 혼란을 지우려는 취지인지는 모르지만 나쁘지 않다.

앞서 밝힌 대로 우선 목차는 3개의 장으로 나뉜다.

첫번째 장에서는 색, 취향, 성격의 관계를 다루는데, MBTI식의 색깔-성격 유형 진단이 있다. 원색 뿐만 아니라 감색, 갈색, 금색, 연보라색 같은 색깔들을 자세하게 나누었다. 색의 삼원색이나 빛의 삼원색이 아니다. 성격 분석과 함께 색깔 자체를 분석하기도 하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파란색에 많이 노출시켜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파란색은 집중력과 구심력을 높여준다는 것. 독자는 기본적으로 싫어하는 색은 없다.

특히 삼원색이나 무지개에 나오는 일곱 가지 색뿐만 아니라 색을 혼합해 나오는 색도 좋다. 다만 유일하게 싦어하는 색을 말하라면 잿빛, 회색이다.



다음 2장에서는 이런 색채를 심리에 활용하는 법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앞서 말했던 "무슨 색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사람의 반응, 좋아하는 색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색으로 유추해보는 사람의 특징, 선호하는 옷과 스마트폰 케이스의 색깔로 보는 성격 등등이 있다.

'컬러 미러링 효과', '오렌지 셰이크핸드', '핑크 디스클로저', 드 임프레션'과 같은 전문 용어가 다소 생경했지만 저자의 설명에 바로 설득된다. 직장 생활이나 자영업할 때도 사용하면 매출 올리는 데 큰 효과를 볼 듯하다.

마지막 3장에서 저자는 색의 힘으로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약간의 의혹이 들지만 이 역시 거부감은 저자의 설명으로 간단하게 제거된다.



책에 따르면 물건을 고를 때도 별 생각 없이 고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행동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람은 마음 상태, 사고 회로에 대해 특정 색상을 찾게 된다. 색의 취향과 성격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색을 알기만 해도 상대가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있다.

흥미와 재미로 읽기 시작한 색이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 분석하고 성격을 알아내고, 심리 상태를 유도하고 하는 데 모두 관여하기 때문에 잘 알면 돈도 벌 수 있고 좋은 상대를 고를 수 있다는 말에는 약간의 의심을 갖지만 두려움마저 생긴다. 저자의 연구가 철저했는지, 색에 대한 분석과 그것을 구별하는 인간 심리 상태 파악까지 모두 한 것은 우리 삶 곳곳에 적용된다는 말에 마치 색에 의해 조종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생기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벗겨내고 저자와 함께 색의 말을 듣고 있으면 우리 삶에 긍정적 영향을 엄청 미친다고 생각하니 친근감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신(神)이 준 선물'이라는 느낌이다.

저자의 말을 믿고 이 책의 대강을 훑어만 봐도 좋은 지식을 쌓고 휴식하는 마음으로 독서를 즐긴다면 책 한 권으로 삶의 중요한 부분을 배운 만족감과 행복감에 젖을 수 있다. 우리의 국보인 고려 상감청자를 감사하는 느낌으로...



저자 : 포포 포로덕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재미있고 즐거운 조은 책을 만들자'는 정책으로 삼고 놀이 감각을 담아 기획하고 영화, 게임, 오락, 패션, 스포츠 등 다양한 업종과 관계를 가지면서 도서를 제작하고 있다. 색채심리와 인지심리를 전문으로 하고, 심리학을 활용한 상품 개발이나 기업의 컨설턴트 등도 진행한다. 저서로는 『색채와 심리의 재미있는 잡학』 『다이와쇼보』 『만화로 아는 색의 재미있는 심리학』 『만화로 아는 인간관계의 심리학』 『만화로 아는 행동경제학』 『이상 SV Creative』 『팬더 선생님의 심리학 도감』 『PHP 연구소』 등이 있다.


역자 : 황명희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단행본과 교과서 기획 및 편집 업무를 진행했다. 이후 기술 전문 잡지사에서 잡지 및 단행본 번역 업무를 했고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에는 『TOEIC 영문법 교과서』 『중ㆍ대규모 태양과 발전 시스템』 『와인 실력 테스트』 『사회학 용어 도감』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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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칼 - 시대의 질문에 답하는 두 가지 방식
임해성 지음 / 안타레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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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일본은 각각 여행한 경험이 있어 그곳의 정치가들이 함께 나란히 비교하는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나 노부나가의 나고야 인근은 방문한 적은 없지만 그곳의 문화에 대한 기본적 지식은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다닐 때부터 두 사람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군주론'과 '앵무새 울리기'로 책과 일화가 유명해서일 것이다. 두 인물의 당시 고민이 어디에 있었고, 왜 그렇게 했는지는 이 책에서 충분히 설명하면서 설득력을 얻는다.

이 책 『말과 칼』을 읽으면서 두 곳의 지리적 상황과 정치 환경, 문화, 두 사람의 삶과 정치 철학까지도 엿볼 수 있어 엄청 즐거운 독서가 됐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 활동했지만 열정과 패기, 절망과 좌절 등은 상당히 공통점을 갖고 있어 독자 머릿속의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주는 것도 숙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정도로 압축적이 주제에 충실한 책이어서 다 읽고 난 다음 보람도 크다.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의 이야기를 맛있는 햄버거의 패티와 그외 식재료의 조합처럼 사이사이 끼워넣은 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저자의 글솜씨를 볼 수 있어 무척 즐겁고 행복한 책읽기의 맛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서두에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말처럼 빠른 전개에 잠시 혼란스럽기도 했으나 몰입감에는 오히려 큰 역할울 해주었다. 중후반을 넘어가서야 속도감을 즐길 수 있도록 책이 내용이 압축적이고 글솜씨는 독자를 주눅들게 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이 책을 만난 건 여러 가지 이유를 대도 '행운'이다.







『말과 칼』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말’과 오다 노부나가의 ‘칼’이라는 두 가지 상징을 통해 인류 역사가 중세의 굴레를 벗어나 근세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살피는 책이다. 아울러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를 비교 서술한 최초의 저작이다. 이들은 각자 역사의 전환기 격동의 시대 한복판을 살았고, 각자 유럽과 일본의 근세를 여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관찰해 의문을 품었으며, 그 해답을 얻고자 세상에 없던 생각으로 스스로의 삶을 열어나갔다. 또한 두 사람 모두 현대에 들어 재평가와 재조명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에 ‘말’과 ‘칼’이라는 다른 방식,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낡은 생각과 관습을 파괴하겠다”는 같은 목적으로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던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의 이야기는,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을 헤쳐 나가는 현대인들이 귀감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동서양을 비교해가며 하나의 공통된 주제로 접근해나가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우리가 정서적 유대감을 갖고 있는 쪽(동양)의 이해를 근저에 두고 태생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쪽(서양)을 끌고 들어와 ‘교집합’을 만든 뒤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융합’을 시도하는 작업은 즐겁고 유용하다는 판단이다.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가 그 시대에 어떤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무엇을 과제로 삼았으며, 그 과제를 달성하고자 어떻게 행동했는지 들여다봄으로써, 물리적 시공간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삶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임해성은 세계 역사의 한 지점에 주목한다. 다름 아닌 중세에서 근세로 전환하던 시기다. 인류가 원시 공산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세와 근대 자본주의 단계를 밟아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리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믿음은 한국사와 중국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역사에서 관철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유럽과 일본만 비슷한 역사적 궤적을 밟았다. 이 탐구 과정에서 저자는 유럽의 역사가 중세에서 근세로 이동하는 중간 지점과 일본이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을 살았던 두 인물을 재발견했다.

바로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다.




이 책의 제목인 ‘말(words)’과 ‘칼(sword)’은 서양의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동양의 ‘오다 노부나가’를 은유하는 단어이자,

‘시대의 질문에 답하는 두 가지 방식’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흥미롭게도 ‘6월 21일’이라는 같은 날에 죽은 이들 두 사람은 15세기와 16세기의 연결선상에서 살아간 인물들이며, 같은 질문에 관해 각기 다른 대답, 즉 ‘말’과 ‘칼’이라는 방식으로 시대적 과제에 묻고 답하고자 노력했다.

이들은 인류 역사가 중세에서 근세로 전환하던 격동의 시대 한복판을 살았고, 각자 유럽과 일본의 근세를 여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를 통해 역사에서 또 다시 동서양이 ‘공통적 대안’을 모색하는 시기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급격한 중앙집권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변화,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거치면서 야기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두 사람이 찾아낸 공통적 대안은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 대안은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구심력이 아니라 자신의 외부 세계에 대한 적극적 참여와 개입 그리고 주도적 역할로 모순을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원심력이었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를 관찰했고, 의문을 품었으며, 그 해답을 얻고자 세상에 없던 생각으로 스스로의 삶을 열어나갔다.






역사는 역설적인 모습도 보여주는데, 훗날 ‘암흑의 중세’로 평가받으며 왕권을 넘어선 교권의 전횡으로 침체됐던 유럽과, ‘전국 시대’라는 미명 아래 왕권을 넘어선 무사들의 싸움으로 어지러웠던 일본과 달리, 세계의 중심과 그 변경으로서 또 다른 역사의 흐름을 이끈 중국과 조선은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침체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오히려 유럽과 일본은 이 시기에 웅비를 시작해 새로운 시대, 즉 중세에서 근세로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중국과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렸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 『말과 칼』에서 이 반전의 드라마를 생생하고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 시작은 중국 명나라 영락제(永樂帝) 때 펼쳐진 정화(鄭和)의 대규모 해외 원정이다. 이를 심도 깊게 다룬다. 유럽이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중세를 끝내고 근세로 전환하는 데 큰 변수로 작용해서다.

저자는 정화의 원정과 그 직후의 쇄국이 ‘잠에서 깨어나는’ 유럽과 ‘겨울잠에 들어가는’ 중국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됐다고 설명한다.

정화가 어떻게 『아라비안 나이트』 ‘신밧드의 모험’의 신밧드가 됐는지에 관한 흥미진진한 설(說)도 소개한다. 그런 다음 동로마 제국 멸망 후 분열된 유럽 대륙을 ‘중세의 균열’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서양과 동양의 두 인물로 연결된다.





유럽 역사가 근세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중앙집권국가들의 패권 경쟁에 이탈리아가 뒤처지지 않도록 하고자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써내려간 ‘말’을 파헤친다. 또한 마찬가지로 전국 시대의 혼란을 끝장내고 일본의 근세를 엶과 동시에 새로운 중앙집권국가를 세우기 위해 오다 노부나가가 목숨 걸고 휘두른 ‘칼’을 추적한다.

역사적 사실로만 바라보면 살아생전 마키아벨리의 ‘말’과 노부나가의 ‘칼’은 모두 실패했다. 『군주론』으로 대표되는 마키아벨리의 ‘말’은 그가 그토록 귀기울여주기를 바랐던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외면당했으며, 전국 통일을 눈앞에 둘 때까지 힘차게 휘둘러졌던 노부나가의 ‘칼’은 결국 배신자의 칼끝으로 돌아와 그를 몰락시켰다. 그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이름은 모두 후대에 불한당의 대명사가 됐다.

저자는 르네 지라르(Rene Girard)의 ‘희생양 메커니즘’을 인용해 이들 두 사람이 ‘모방적 욕망’에 의한 희생양이라고 분석한다.

지라르에 따르면 인간의 갈등은 서로간의 ‘다름’이 아닌 ‘같음’ 때문에 일어난다. 다른 것을 보고 다르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보고 다르다고 한다는 것이다. ‘같은’ 욕망을 위해 ‘모방적’ 경쟁을 벌일 때 ‘갈등’이 발생한다. 서로를 닮게 만드는 동시에 갈등을 유발한다.

욕망에 대한 모방은 경쟁심을 낳고 그 경쟁심은 또 다시 모방을 낳는다. 이런 식으로 갈등과 폭력이 점차 격화되면 공동체에 위기가 찾아온다. 그러면 공동체는 그 위기를 초래한 책임과 비난을 하나의 대상에게 떠넘김으로써 공동체의 통합을 꾀한다. 이때 폭력이 집중되는 하나의 대상, 그것이 바로 ‘희생양’이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가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와 후대 사람들의 ‘모방적 욕망’에 의한 ‘희생양’이었다고 설명한다. 두 사람을 그런 이미지로 만든 주도 세력은 ‘교황’과 ‘천황’이었으며, 이른바 당대의 ‘대제사장’에 의해 희생양이 된 것이다. 아직 중세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 시대의 가치 판단 기준을 넘어서버린 이들은 집단으로부터 악마화됐다.

여기서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은 어떤가. 이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현대에는 더 이상 희생양이 없을까? 피를 보지 않을 뿐 누군가가 차별받고 배제되고 억압당하는 경우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때로는 집단적 히스테리에 사로잡힌 다수가 소수를 향해 분노와 폭력을 분출한다.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적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팽배하다. 여전히 희생양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가 좋은 수단만으로는 결코 좋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명확히 인식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데 당시 이들이 처했던 현실과 오늘날을 비교해봐도 별반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지금도 우리는 ‘경제’라는 전쟁과 ‘기업’이라는 사회에서 ‘전략’과 ‘전술’이라는 군사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며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양상’이 달라졌을 뿐 ‘본질’은 같다. 우리가 인식해야 할 현실도 동일한 것이다.

현재에도 공동체의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의 긴장이나 분쟁이 폭발 직전에 있다고 해도 틀린 관점은 아닐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현실이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를 재조명하게 만들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전제적 왕권이든, 종교적 권위든, 집단적 압박이든 간에 외부로부터의 압력에는 ‘말’과 ‘칼’을 따로 또 함께 사용하며 맞서면 된다고 역설한다.

외부 세계와의 싸움에는 ‘말’도 수단이요 ‘칼’도 수단이기에 ‘말’로 싸울 수도 있고 ‘칼’로 싸울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마키아벨리의 ‘말’과 노부나가의 ‘칼’은 글자 그대로의 말과 칼이 아니다. 세상을, 시대를, 상대를, 스스로를 바꾸고 변화시키는 두 가지 ‘삶의 무기’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이야기할 때 흔히 동양은 ‘순환적’이고 서양은 ‘직선적’이라는 식으로 설명해왔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융합되기 어렵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세계화의 물결 속에 동서양의 문화가 빠르게 뒤섞이고 정치적·경제적으로 한 배를 타게 되면서 그 ‘정신적 이질감’은 희석됐다.

더욱이 동서양을 비교해가며 하나의 공통된 주제로 접근해나가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우리가 정서적 유대감을 갖고 있는 쪽(동양)의 이해를 근저에 두고 태생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쪽(서양)을 끌고 들어와 ‘교집합’을 만든 뒤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융합’을 시도하는 작업은 즐겁고 유용하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작업의 일환으로 쓰였다.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시대의 질문에 ‘말’과 ‘칼’이라는 다른 방식,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낡은 생각과 관습을 파괴하겠다”는 같은 목적으로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던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의 이야기는,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을 헤쳐 나가는 현대인들이 귀감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역사는 ‘데자뷰’를 제공한다.

세계사 평행 이론처럼 역사의 시간과 공간의 다른 지점에서 같은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듯 보인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가 죽음의 저편에 서서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마키아벨리와 노부나가가 그 시대에 어떤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무엇을 과제로 삼았으며, 그 과제를 달성하고자 어떻게 행동했는지 들여다봄으로써, 물리적 시공간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삶의 가치를 되새겨야 할 충분한 이유다.






저자 : 임해성(林海星)


글로벌비지니스컨설팅(GLOBAL BUSINESS CONSULTING, GBC) 대표이사. 인덕대학교 교수 역임. 한국능률협회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을 거쳐 GBC에 이르기까지 25년 넘게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해외 우수 기업의 선진화된 경영 도구와 혁신 사례를 국내에 전파하고 있다.

《토요티즘》 《남자라면 오다 노부나가처럼》《도요타 VS. 도요타》 《워크 스마트》 등의 책을 펴내 경영혁신, 인문학적 소양, 리더십에 관한 통찰력을 나누고, 《빵과 서커스》 《위험한 일본 경제의 미래》 《내가 하는 일 가슴 설레는 일》 《세계 1%의 철학 수업》 《회사의 목적은 이익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 《세상에 읽지 못할 책은 없다》 《전략의 본질》 《퍼실리테이션 테크닉 65》 등을 우리말로 옮겨 경영전략, 조직문화, 제4차 산업혁명 등에 필요한 지식과 노하우를 전달해왔다. 이 책 《말과 칼》은 저자의 인문 분야 저술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과거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타산지석과 반면교사 삼아 오늘의 지혜로 재조명한 결과물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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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파도 속으로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세연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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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대전 말 침몰한 일본 배에 어마어마한 금괴가 함께 수몰됐다는 소문을 찾아 나선다는 사건이 있었다. 정확하게 시점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기시감이 드는 내용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예전에 관련 내용으로 한 번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또 최근엔 러일전쟁 때 침몰된 일본 군함이 동해에서 인양한다는 소식과 정식 인양 요청을 당국에 신고했다는 한 회사가 주식 사기 사건으로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적도 있다. 이 책은 당시 실제 사건을 밑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입혀 한 편의 드라마로 엮어낸 긴장감 높은 해양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다.

“이차대전 말기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한 일본군 731부대 병원선에서 어부들이 건져 올린 것은 금괴뿐만이 아니었으니….”라는 한 줄 로그라인에서 예상할 수 있듯 『삼각파도 속으로』의 인물들은 금괴 ‘+α(알파)’를 만난다. 그리고 그 알파가 사람 속의 사람을 드러내도록 작동한다.

또 최근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목숨을 건 한계상황에서 이드(id)를 만나는 셈인데, 이 소설의 백미는 그 이드가 각 등장인물마다 다른 모습으로 표출된다는 데 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건 꿈,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의 안녕,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넘어서는 물욕,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식욕…… 등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욕망을 좇아 마린보이호에 오른 인양팀은 산소통 하나에 목숨을 맡기고 오묘하고 기묘한 비밀을 찾아 깊이 더 깊이 내려간다. 이들이 찾는 것은 75년 전에 침몰한 일본군 731부대 병원선에 실린 금괴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패전을 예상한 일본은 아시아 일본군 점령지 전역에서 금은보화를 약탈해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비밀 작전인 ‘황금백합작전’을 펼쳤다. 1945년 5월, 중국에서 약탈한 28톤의 금괴를 싣고 일본으로 가던 중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한 일본군 731부대 병원선 ‘초잔마루[長山丸]’. 엄청난 양의 금괴를 싣고 어느 날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려 보물사냥꾼들이 끊임없이 찾아 헤매던 초잔마루가 시골 어부에게 발견된 것이다.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을 안고 일확천금을 꿈꾸던 인양팀은 마침내 731부대의 병원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배에서 건져 올린 것은 비단 금괴뿐만이 아니었다. 금괴를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마린보이호는 곧 엄청난 공포에 휩싸인다. 사람들이 의문사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그들의 시체를 뜯어먹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이다.



1945년 5월, 중국에서 약탈한 28톤의 금괴를 싣고 일본으로 가던 중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한 일본군 731부대 병원선 ‘초잔마루[長山丸]’. 엄청난 양의 금괴를 싣고 어느 날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려 보물사냥꾼들이 끊임없이 찾아 헤매던 초잔마루가 시골 어부에게 발견된 것이다.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을 안고 일확천금을 꿈꾸던 인양팀은 마침내 731부대의 병원선을 발견한다.

난데없이 침입한 해적, 기름이 떨어져 운행을 멈춘 배, 28톤의 금괴, 해저에서 발견한 약탈 문화재, 선상에 버려진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알, 끔찍한 것들의 부화, 사라지는 시체, 그리고 자살하는 사람들…….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는 공포와 ‘기어이 살아서 부자로 살리라’, 혹은 ‘목숨만 건지겠다’는 현재의 욕망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가운데 하나둘 드러나는 끔찍한 과거의 욕망들. 마린보이호의 인물들은 과연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인가? 가슴 떨리고 숨 막히는 이야기 『삼각파도 속으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깊은 바다에서 키조개를 채취하는 최순석은 재래식 잠수부다. 어느 날 친한 어부인 최동곤이 전설의 보물선 ‘초잔마루’를 발견하고 그 소식을 문자로 순석에게 알린다. 하지만 그날 밤 누군가가 최동곤을 살해한다. 순석은 여러 단서를 조합하여 장소를 알아내고 초잔마루를 찾기 위해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평생 바다를 뒤지던 이도형과 협업을 약속한다. 이렇게 해서 금괴를 인양할 팀이 꾸려지는데 그중에는 뜻밖에도 이윤정이 포함되어 있다. 얼마 전 순석이 바다에서 그녀의 아버지 시체를 인양해주었던 일로 알게 된 여자다.

초잔마루를 수색하던 금괴 인양팀은 유골함처럼 생긴 항아리를 여러 개 찾아내 인양하고 백금괴로 추정되는 것을 찾아내 기뻐하지만 그날 밤 중국 해적들에게 급습 당한다. 인양팀이 내부의 누군가가 금괴를 독차지하려고 해적들을 불러들인 것 같다며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해적들은 인질들을 위협하며 금괴 인양작업을 시킨다. 한편 해적들은 침몰선에서 인양해 보관 중이던 항아리들을 차례로 깨보는데 거기서 나온 것은 뜻밖에도 일본어가 빼곡하게 적힌 두루마리와 괴생명체 표본, 그리고 물고기 알처럼 생긴 작은 알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양팀은 금괴를 발굴하지만 남중국해 공해상에서 기름이 떨어져 표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작가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와 이유를 설명한다.

“실제로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침몰한 배에 금괴 28톤이 실려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든 오류든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2차 대전 때의 금괴나 보물을 찾는 이야기는 흔한 편이어서 소설의 소재로는 식상해 보였다. 그런데 다량의 금괴를 싣고 가다가 침몰한 ‘초잔마루’라는 배가 인간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의 위장 병원선일 가능성이 크다는 글을 보는 순간 ‘바로 이거야!’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흥미진진한 소설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낯설고 괴기한 분위기의 미스터리 소설 말이다.”

미스터리, 서스펜스, 로맨스 장르를 아우르는 [미스티 아일랜드] 시리즈의 아주 특별한 소설 『삼각파도 속으로』가 출간됐다. 인간 종에 대한 깊은 애정과 융숭 깊은 유머로 극찬을 받는 작가 황세연의 신간이다. 황세연은 26세에 단편 추리소설 「염화나트륨」이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가 짧지 않은 외도 끝에 다시 펜을 잡은 ‘돌아온 이야기꾼’이다.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대상, 한국추리문학상 신예상,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수상이라는 놀라운 꼬리표들이 그의 역량을 방증한다. 『삼각파도 속으로』는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망망대해를 무대로 펼쳐지는 해양소설이다.

그러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같은 오락용 어드벤처가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들이 ‘같아 보이는’ 목적을 가지고 모여 깊은 수심만큼 어둡고 음침한 비밀에 다가서는 ‘미스터리스릴러’이자 ‘욕망과 본능이 충돌할 때 사람들은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를 거침없는 필치로 담아낸 수작(秀作)이다. 선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일기처럼 기록함으로써 독자들이 마치 표류 중인 마린보이호에 오른 당사자인 듯 긴박감을 조성한 점 또한 이 소설의 장점이다.



(항아리가 깨질 때 종이와 글자가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는 부분)

…고장 났던 배의 엔진이 수리되었다. 밤이 되자 배가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는 다시 얼마 가지 못하고 엔진이 멈췄다.

누군가가 또 고의로 엔진을 망가뜨린 것이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으나 용의자는 지난번보다 크게 줄어 있었다. 창고에 갇혀 있는 누군가가 밖으로 나와 엔진을 고장 냈을 리는 없었다. 범인은 몸이 자유로운 사람 중에 있었다.

선장은 이곳이 배를 정박하기에 위험한 지점이라고 판단했는지 배가 조류를 타고 흘러가도록 놔뒀다. 배는 밤새 조류를 타고 북쪽으로 흘러가 어느 무인도 인근에 도달했다. 우리는 그 섬 인근에 닻을 내렸다.

엔진을 고장 낸 범인을 잡기 위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선원들이 한 명씩 장교들 앞으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단체로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집단 간의 의심과 갈등만 증폭될 뿐 범인은 드러나지 않았다.

5월 16일 밤,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참수를 당한 다나까의 배를 가르고 장기 일부를 가져갔다. 배 안에 인육을 먹는 괴물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항아리가 깨질 때 종이와 글자가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는 부분)

…사람들이 모두 미쳐가고 있다. 아니 세상이 미쳤다. 마루타의 저주가 아니고는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우리가 죽인 자들이 괴물이 되어 우리를 지옥으로 잡아가고 있다….

- 「초록」 pp. 206~207



“아침 식사하셔야죠!”

박미경이 오랜만에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순석 씨. 저 고기 자루 건져서 이 고무통에 좀 놔줘.”

순석은 다이빙덱에 묶여 있는 밧줄을 잡아당겨서 무거운 자루를 물 위로 끌어 올렸다.

“잠깐, 잠깐! 다큐멘터리 찍어야죠. 얼굴 이쪽으로 돌려요!”

김성실이 달려와서 순석을 향해 캠코더를 들이댔다. 오랜만의 촬영이었다.

순석과 박판돌이 돌고래 고기가 든 자루를 갑판으로 끌어올려 고무통 속에 내려놓았다.

박미경이 자루 입구를 묶고 있는 밧줄을 풀었다.

“고기 냄새가 신선하네요…. 어? 아악!”

“아아악!”

자루를 벌리던 박미경과 자루 입구로 캠코더를 들이밀던 김성실이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왜? 왜 그래유?”

순석은 고래 고기를 먹기 위해 자루 속에 뱀장어라도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급히 자루 안을 들여다봤다.

“어헉!”

순석 역시 기겁을 하며 주춤 뒤로 물러났다. 자루 속에 상괭이가 아닌 사람의 토막시체가 들어 있었다.

비명을 듣고 다가온 사람들이 번갈아 자루 속을 들여다봤다.

“헉! 도, 도대체 이게 뭐여? 누, 누구여?”

남자의 토막시체는 얼굴이 자루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런 씨팔!”

안길식이 자루로 다가가 자루 밑을 잡고 위로 확 들어 올렸다. 자루 속의 토막시체가 고무통 속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칼자국이었다. 시체는 팔과 다리가 잘려져 있었고 알몸이었는데 몸통 일부의 살이 잘려나가고 없었다.

- 「파랑」 중에서



“언젠가 실제로 그런 사건도 있었잖여. 비행기가 안데스산맥의 설산에 추락하고 생존자들이 칠십여 일을 버티는 동안 생존을 위해 죽은 사람들의 사체를 먹었던 사건…. 그들이 생존해 돌아왔을 때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잖여. 우리도 지금 그들과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거잖여.”

이하민은 정말 시체를 뜯어먹기라도 할 기세로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김성실의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그건 동물이 아니라 사람요, 사람! 김성실!”

순석이 어둠 속에 대고 소리쳤다.

“시체를 먹고라도 살고 싶은 사람은 시체를 먹는 거고, 시체를 먹느니 그냥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죽으면 되는 거여. 이건 생존과 직결된 일이니, 그 누구도 타인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는 겨. 아니, 살 수도 있는 사람을 시체를 못 먹게 해서 굶어 죽게 했다면 그거야말로 살인행위지…. 아닌감? 나는 우리가 살려면 저 시체를 먹어야 할 것 같은디, 윤정이 생각은 어때?”

“그, 글쎄요.”

이윤정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순석은 이하민의 말보다 이윤정의 대답이 더 큰 충격이었다. ‘안 돼요.’가 아니라 ‘글쎄요.’라니?

순석은 빈혈 같은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뒤로 비틀비틀 물러나 벽에 기대고 앉았다. 무슨 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온몸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체력에 한계가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이하민과 이윤정은 왜 나보다 더 멀쩡한 것일까?’

- 「검정」 중에서



저자 : 황세연


충남 청양의 칠갑산 밑에서 태어나 자랐다. 지금은 서울 촌놈이다. 교도소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경영학과 재학시절, 세 문제가 인쇄된 세 시간짜리 회계학 시험지를 받아들었는데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었다. 그대로 시험장을 나오는 것이 창피해 한 시간 동안 시험지에 꿈과 미래에 대해 적어보다가 시험지를 구겨 들고 나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6세에 단편 추리소설 「염화나트륨」이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전업작가가 되었다. 소설 몇 권을 출간한 뒤 삼성전자 휴대전화 시리즈 광고의 스토리를 쓰는 등 영화계와 방송계를 기웃거리다가 등 떠밀려 들어간 출판사에서 꽤 오래 편집기획자로 일했다. 다니던 회사가 대기업 계열사에 합병되며 잘린 것을 기회 삼아 다시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대상, 한국추리문학상 신예상,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국정원 추리퀴즈 모음집 『IQ 추리퀴즈 프로젝트』, 『EQ 추리퀴즈 프로젝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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