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
미아우 지음 / 마카롱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다. 정조의 ‘비밀 편지’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역사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그 이면의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얼굴에 드러나는 미세한 변화만으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과연 위기의 조선을 구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패
미아우 지음 / 마카롱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 22대 왕 정조는 '비밀 편지 정치'의 개혁 군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300통을 묶은 것과 겉봉투 6권이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어 '정조 어찰첩'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 편지들은 정조가 죽기 전 마지막 4년 간인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5일 사이에 신하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것이다. 이 유물은 편지가 총 300통에 달하며 겉봉투을 6권으로 장첩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겉봉에는 수신자인 심환지의 이름을 직접 쓰지 않았으며 심환지를 암시하는 표현이나 심환지가 살고 있던 삼청동을 언급하는 표현으로 대신하였다. 일부 편지에는 정조가 사용한 봉함 인장이 찍혀 있다. 대부분의 겉봉에는 아침, 오후, 저녁, 밤, 식후 등 편지를 보낸 시간이 적혀 있어 정확한 수신 시점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정보들은 수신자인 심환지가 후대에 남길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 내용 중에는 정조가 심환지에게 편지를 읽자마자 없앨 것을 요구한 대목들이 있는데, 이를 통해 정조가 심환지에게만 비밀을 전달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정조가 심환지와 정치적으로 반목 관계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때로 민감한 사안을 함께 의논하는 입체적 관계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조와 편지를 주고받던 심환지는 1800년(순조 즉위) 순조가 어린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여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수렴청정하게 되자, 영의정에 올랐다. 원상(왕이 병이 나서 정무를 보기 어렵거나 어린 왕이 즉위할 때 왕을 보좌하던 원로대신)으로서 정권을 장악하고 스스로 세도를 진정시킬 것을 자임했다. 치적은 볼 만한 게 없지만 청렴한 생할을 함으로써 칭찬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정조의 어찰에는 편지의 구체적인 주제는 인사 문제, 산림의 여론과 동향에 대한 탐색, 상소의 처리 문제, 조정 인사들의 인물평 등 대부분이 정사(政事)와 관련된 것들이어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책 『낭패』를 읽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어찰' 외에 표제어로 쓰인 '낭패(狼狽)'에 대해서도 뜻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랑(狼)'은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고, '패(狽)'는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길어 그 두 짐승이 나란히 걷다가 서로 떨어지면 넘어지게 되므로 당황함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인다. 두 마리의 짐승은 실존 동물이 아니라 상상 속의 동물이라 한다. 이는 일의 도중에 실패하는 것,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몹시 딱한 형편을 의미한다.

‘낭’과 ‘패’는 서로 도와 공생하다가도 뜻이 맞지 않으면 심각하게 틀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낭’과 ‘패’ 모두는 걸을 수도 없고 사냥을 할 수도 없게 된다. 먹이를 사냥할 수 없으니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뒷다리가 없는 ‘낭’과 앞다리가 없는 ‘패’가 틀어져 둘 다 곤경에 빠져 있는 상태가 ‘낭패’이다. ‘낭패’가 ‘낭’과 ‘패’가 곤경에 빠져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 상태를 뜻하므로, 이를 근거로 ‘계획한 일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무슨 일이 어그러지다’는 비유적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

‘낭패’라는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인다. 그것도 주로 ‘보다’, ‘당하다’와 어울려 ‘낭패를 보다’, ‘낭패를 당하다’와 같은 형식을 취한다. ‘낭패를 보다’와 ‘낭패를 당하다’는 어떤 일을 도모했을 때 고약하게 꼬이거나 실패로 돌아간 경우를 표현하는 데 이용된다. “일을 그런 식으로 하면 낭패 보기 십상인데······”와 같은 표현이 아주 자연스럽다. 낭패를 보고 낭패를 당하기 전에 서로 돕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자칫 실수하여 ‘낭판(계획한 일이 어그러지는 형편)’이 떨어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낭패』는 저자 미아우의 독보적인 상상력으로 직조해낸 팩션(Faction, 팩트+픽션)으로, 역사 속 인물인 ‘정조’를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내며 사실적 기록에 다채로운 스토리를 덧입히고 있다. 주인공 ‘재겸’은 상단에서 일하던 중 대행수 길평의 계략에 빠져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행수를 찾기 위해 한양의 투전판을 뒤지던 ‘재겸’은 얼굴의 표정 변화로 상대가 가진 것이 좋은 패인지 나쁜 패인지 읽어내는 범상치 않은 실력으로 투전판을 휘어잡는다.

그런 특별한 능력으로 정조의 ‘비밀 편지’를 전달하는 팽례로 발탁된 ‘재겸’은 임금과 뜻을 같이하겠다는 노론 벽파의 수장인 심환지의 복심(腹心)이 진실인지 아닌지 밝혀내기 위해 그를 찾아간다. 하지만 얼굴의 반쪽이 마비되어 표정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는 심환지로 인해 재겸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오히려 그로부터 진정으로 야심을 숨긴 채 조정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임금인 정조라고 전해 듣게 된다.

“자네는 그저 수많은 팽례 중 하나일 뿐이야. 야심한 시각에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겠나? 떳떳하지 못한 일. 감춰야 하는 일. 정도를 벗어나 어그러진 일.”(p.134)

이 작품은 ‘진실’과 ‘거짓’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독자들에게 ‘과연 무엇을 믿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접근시킨다. 재겸은 진실을 알기 위해 사람들을 시켜 궁궐을 나서는 ‘팽례’들의 뒤를 몰래 쫓게 하지만 그들 모두 알 수 없는 죽임을 당하거나 실종된다. 그리고 혼란에 빠진 재겸 앞에 자신의 정체를 숨긴 의문의 사내가 나타나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하고 덧없는 것인지 깨닫게 한다.

 

 

재겸은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낭’과 ‘패’처럼 임금의 ‘팽례’로서 마지막 임무까지 완벽히 해낼 수 있을까. 서로를 속고 속이는 급진한 상황의 연속을 통해 독자들은 왕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음모를 추적하는 긴장감과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고뇌했던 정조의 인간적인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겹쳐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는 정조의 가장 믿을 만한 신하이며, 대 학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도 등장한다. 정약용이 소설 전면에 부각되지 않지만, 신분의 차이가 극과 극이지만 주인공 재겸과 임금 정조가 서로를 도우며 각자의 장기를 발휘한다면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 나라를 보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진 다산이기에 저자가 정약용을 배경으로 등장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사실 모험 소설에서의 주인공은 대체로 극단적인 역경을 겪고 큰 원한을 품기도 한다. 특히 역사소설에서는 정치적 힘겨루기에서 밀려나 억울하게 죽은 대신의 아들 등이 주인공으로 적절하다. 이는 결말이 역사 속에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 스토리를 끌고 가는 과정에서 작가의 상상력의 무한 발휘될 시공간이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재겸은 어렸을 때 끔찍한 일을 겪고 내내 누명을 쓰고 떠도는 신세이다. 그 과정에서 대단한 능력 하나를 키웠는데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마음을 읽어내는 놀라운 재주이다. 우리가 감정 변화를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이들을 이른바 '포커페이스'라고 하는데 도박판에서 나온 용어라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도박판에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이길 수 있다고 한다. 주인공 재겸은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얼굴이나 상반신 근육이 보이는 미세한 변화를 잡아내 그 사람의 속마음이나 감정 동요를 알아내는, 비상한 재능의 소유자다. 소설 속에서 그는 감각적으로 결론을 내는 게 아니라 과정의 이론화까지 가능할 정도로 '표정 읽기'의 달인이다.

 


 

이 재주를 통해 형사 난제 사건을 하나 해결한 재겸은 당시 벼슬이 '참의(정3품 관직)'인 정약용의 주선을 통해 정조의 손발 노릇, 즉 '팽례'의 일을 맡게 된다. 이 과정이 무척 재미있다. 정조의 서찰을 읽는 표정, 또 거기에 대해 답신을 쓰는 품을 보고 그의 속내를 알아채는 게 맡겨진 일이다. 서신을 주고받는 상대는 대사헌 심환지(나중에 이조판서)인데, 이 소설에서 매 챕터 제사로 인용되는 구절들이 역사상 그들 사이에 실제 오갔던 편지들에서 발췌한 것들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정조 어찰'이다. 정조의 편지는 내용을 읽어보면 그저 안부를 전하고 군신간의 그윽한 정을 확인하는 수단이 아니다. 거꾸로 상대의 속을 읽고 타격을 주거나 이용할 구석을 캐내는, 소름끼치는 소통 방법이다. 상례적이지만 점잖은 어투로 인사말을 나누고, 그 속에서 상대를 이용하거나 제압할 구실을 찾는 게 정치인들의 편지인 듯하다. 물론 정조만 했다지만. '길평'이라는 단주에게 끔찍한 음모의 희생양이 되어 평생을 망치다시피한 재겸은 혼자 힘으로 진상을 알아내고 재능을 키웠다는 것이지만 조금은 뜬금없는 일이어서 작품 구성의 인과성이나 유기적 구성에 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대목이다.

재겸에게도 약점은 있다. 뿌리 깊은 피해 의식 때문인지 남을 잘 믿지 못한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왜 정조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심환지, 혹은 그 외의 당사자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지 재겸이 이해되지 않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 나오듯 죽을 고생을 여러 번 하고, 윗사람한테 지독한 배신을 당한 과거가 있기에 설득력 있는 인물 설정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이런 인물은 자신의 삶이나 운명을 단순히 운에 맡기거나 맹목적인 충성으로 일관하는 사람보다 확실히 소설 인물로는 적합하리라고 독자는 믿는다. 너무 똑똑해서 자기를 과신하다 일을 그르치는 역사 속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면 소설 속 등장인물인 재겸이 훨씬 매력적이다. 다만 재겸의 인식이 정교한 기술 체계를 넘어 그 이상의 학문적 정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소설의 불완전함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는 하다.

 


 

남의 표정을 읽는 달인이라고 해서 자기 표정을 남한테 안 읽히는 데 능하지는 않다. 그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읽는 능력은 정조와 심환지가 재겸만 못하지만, 안 읽히는 능력은 두 사람이 훨씬 낫다. 아무튼 이 소설은 '정조의 비밀 편지'를 소설로 엮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뒷받침되어 우리에게 전달됐다. 독자들은 정치 이면의 술수나 이해 관계에 집중할 필요 없이, 주인공으로 내세운 재겸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이면 이 소설을 더욱 재미 있게 읽게 된다. 역사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낭패』의 주인공인 재겸도 사람과의 신뢰에 깊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 모습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중략)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감정에 휩싸여 원치 않는 실수를 하는 우리처럼. 오랫동안 쌓아 올린 노력이 무너지는 건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관계 또한 그렇다. 나 혼자뿐이고 주위에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라 불평하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항상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중략) 내가 먼저 움직여야만 나의 동반자가 되어줄 ‘낭’과 ‘패’를 발견할 수 있다.(p.297~298)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 미아우

 

악몽을 모으는 이야기 수집가. 독일에서 거주하던 중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7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인 『크리스마스까지 100일』을 출간했다. 그 외에도 ‘2021 컴투스 글로벌 콘텐츠문학상’에 『당신의 꽃』이, 제1회 ‘창작의 날씨 서치-라이트 공모전’에 『나는 살해당할 것이다』가 당선되었다. 『낭패』로 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홀과 우주론 - 블랙홀 박사가 들려주는 우주학당 강의 노트
박석재 지음 / 동아엠앤비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리 어려운 우주과학도 원리만 알면 생각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 이 책은 초점을 맞춘다. 우리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우주 원리를 설명하는 이 책은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이후의 모든 천재 과학자들은 쉬운 원리를 탐구하고 결국 끊임없는 연구 노력으로 공식화한 결론을 얻어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홀과 우주론 - 블랙홀 박사가 들려주는 우주학당 강의 노트
박석재 지음 / 동아엠앤비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과학 서적이 정말 괜찮다. 변명 같지만 독자는 학교 다닐 때 과학 과목과 친하지 못했다. 다른 과목에 비해 유독 과학과 수학이 약했다. 결국 대학도 문과를 갔고 이후 사회 생활도 수학과 물리와 상관 없는 인문 지식만으로 하는 곳에서 하고 있다. 학교에서 친하지 못한 과학이나 수학이 뒤처지자 직장 생활하면서 책으로 보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부족한 과학 실력은 영화를 볼 때, 또 요즘 쏟아져 나오는 SF 소설을 읽을 때마다 걸림돌이 됐다. 작가들이 아무리 쉽게 풀어쓴다 할지라도 중력이나 우주의 물리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상만으로 그치니 그마저도 그냥 눈으로만 읽고 말게 된다. 그러니 흥미도 떨어지고 몰입도 안 된다. 과학을 쉽게 이해하도록 쓴 책을 찾다보니 청소년 대상 과학책부터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요즘 과학책은 굉장히 알기 쉽고, 재밌게 기술되고 있다. 이 책 『블랙홀과 우주론』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펴낸 책이니만큼 이 정도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읽게 됐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블랙홀이 표제어 속에 포함돼 있다. 아마 블랙홀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독자 역시 들어는 봤지만 설명해봐라 하면 우물쭈물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고서야 천천히 조금씩 깨우치게 됐다. 책은 블랙홀이란 엄청난 중력으로 인해 빛도 시간도 왜곡된다는 상식 밖의 존재로 설명한다. 특히 블랙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학의 법칙이 성립되지 않는 기묘한 공간이라고 한다. 또 외부 관측자가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다는 이 ‘이벤트 호라이즌’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치면 넉넉 잡고 두세 시간이면 블랙홀 개념 정립해 성공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블랙홀 박사로 유명한 저자가 평생 연구해 온 블랙홀 자료 중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만 집약해서 담았다. 하지만 블랙홀의 개요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행복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직접 그리고 작곡한 삽화와 노래를 길잡이로 삼아 독자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청소년은 물론 어른까지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화를 통해 우리 할아버지 모습의 신령들이 우주를 여행하듯 다양한 우주론과 별의 일생, 블랙홀의 구조와 성질, 우주의 신비를 하나하나 풀어냈다. 다가오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대비해 우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둬야 할 책이다. 이 책을 읽다가 보니 몇년 전 TV 케이블방송에서 봤던 영화 〈인터스텔라〉가 생각난다. 사실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으나 큰 관심을 끌고 화제가 될 정도로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라고 해서 참고 보았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가까운 미래, 전 지구적 규모의 식량난과 환경 변화에 의해서 인류가 멸망하는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는 상황 설정부터 시작된다. 이 상황에서, 어느 중요임무의 수행자로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환영받지 못하는 엔지니어이자 과거 우주선 조종사였던 사람이 발탁된다. 멀지 않은 미래의 지구는 인류의 잘못으로 황폐한 땅으로 변해 버렸다. 병충해가 심해져서 작물이 차례대로 멸종의 길을 걷고, 기껏해야 옥수수를 재배하는 일이 유일한 희망으로 남았다. 식량 문제와 더불어 고갈되는 자원이 인류의 재앙으로 떠오른다. 각국의 정부와 경제가 무너진 상태이고, 피폐해진 사회에서 벌어지던 약탈은 간신히 진정 국면을 맞았다.

딸과 아들을 지키려는 주인공은 아버지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꿈이 좌절되자 공허함을 느낀다. 세계는 기근을 해결하고자 농업을 다시 활성화하려 노력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해체되면서 우주여행은 불필요한 분야로 잊혀져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상 중력 현상으로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하던 NASA팀을 발견한 주인공은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태양계의 토성 뒷면에 '웜홀'이 생성되었고, 이를 통해 다른 은하계로 가는 인류의 탈출구를 찾는다는 계획이었다. 절멸의 과정에 놓인 인류의 미래를 위해 쿠퍼는 자녀를 두고 우주로 나아간다. 그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인류는 쿠퍼의 말처럼 '늘 그랬듯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인터스텔라〉를 보면 중력 이상과 시공간의 왜곡으로 인한 시공간여행이 나온다. 물론 블랙홀 속에 사람이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는 없겠지만 영화적 허용으로 받아들이고 넘긴다. 중요한 것은 블랙홀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수천 년간 쌓아온 학문과 상식으로는 그 실체를 가늠하기 힘든 현상이라는 점이다. 영국의 소설가 아서 매컨이 창시한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는 인간이 감히 맞설 수 없으며 이해의 범주를 까마득히 넘어선 존재에게서 오는 무력함과 무가치함을 소재로 한다. 특히 우주에서 인류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그로 인한 압도적인 공포를 느끼게 해준다. 마블 영화에서 조금씩 언급되는 셀레스티얼 같은 우주적 절대자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블랙홀 역시 이러한 코즈믹 호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존재이다.

이 책 『블랙홀과 우주론』을 읽으면 읽을수록 신비로 가득한 우주와 블랙홀에 대해 경외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인간의 지식으로 가늠하기 힘든 우주와 블랙홀의 실체를 다양한 각도와 방법으로 접근해 과학적으로 파헤치려는 저자의 노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얻은 지식의 정수를 우리 모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때로는 재미와 함께 공유하려 하는 노력에 박수로써 응원한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생명체라고 한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불안과 공포로 다가온다. 그러나 마냥 겁에 질려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전부 읽었을 때쯤이면 독자는 우주와 블랙홀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누구보다도 더 박식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면 두렵지 않다.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그게 인류가 발전하고 살아온 방식이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상대성이론이란 무엇인가」, 2장 「미운 오리 새끼 블랙홀」, 3장 「우주의 구조」, 4장 「별의 일생」, 5장 「백조가 된 블랙홀」, 6장 「우주의 진화」 등이다. 책을 읽다보면 3개의 「코스모스 군도 여행」이 나온다. 과학책 하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어 독자처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은 사람이 꽤 많은가보다. 저자는 과학책에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작중 인물로 등장할 경우 서양 과학자 모습을 한 것도 어렵다는 선입견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스스로 '신령'으로 등장한다. 이 책에는 모두 세 명의 신령이 있다. 저자는 직급이 가장 낮은 '지구 신령'이어서 이 책의 설명을 맡았다. 쉽고 친근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신령으로 설정했다. 저자는 먼저 앙케이트 문항을 제시하고 두 항목 이상 해당한 독자는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독자는 당연히 두 항목이 훨씬 넘는다. 저자는 책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의 장치를 더 책 속에 집어넣는다. 「코스모스 군도 여행」이다. 책 중간중간에 끼워넣었지만 본문보다 더 어렵게 느낄 독자들을 위해 일부러 하와이 비슷하게 섬들을 배치했다고 밝힌다. 조금이라도 더 집중해야 할 일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물리학이나 우주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특히 원자폭탄 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오는 전쟁 다큐멘터리 등에는 그의 이름이나 이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은 두 개의 이론을 아우르는 말이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 그것이다. '특수'자가 붙은 이론이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정반대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 혼자만의 이론은 아니지만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됐다고 저자는 알려준다. 쉽게 표현하자면 '버스가 내 앞을 지나갈 때 그 버스 안에 흐르는 시간과 내 시간은 같은가?' 정답은 '다르다'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공간'의 이론이다. 물질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독립돼 있지 않고 항상 같이 변한다고 한다. 이를 묶어 시공간이라 한다. 또한 3차원 공간에 1차원 시간이 합쳐졌다는 개념으로 4차원 시공간이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특수상대성이론의 결과로 유명한 공식은 E=mc2('2'는 거듭제곱<자승>)이다. 여기서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광속을 의미하므로 에너지는 질량으로, 질량은 에너지로 서로 전환될 수 있다. 광속의 제곱이 곱해지므로 작은 질량이라도 큰 에너지를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제조하고 있는 원자폭탄, 수소폭탄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공간+물질'에 관한 이론이어서 훨씬 어렵다. 물질은 해, 달, 별, 은하와 같은 천체를 이루며 중력을 행사하므로 일반상대성이론은 새로운 중력이론이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뉴턴의 중력이론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해 중력장이 형성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뉴턴의 중력이론에서는 물체가 천체의 중력에 이끌려서 천체를 향해 떨어진다고 해석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물체가 천체의 중력이 휘어 놓은 시공간 안에서 운동한 결과로 천체에 떨어진다고 풀이한다. 예를 들어 얇은 고무 막에 무거운 구슬(천체)을 올려놓으면 고무 막은 휘게 된다. 무거운 구슬에 의해 휘어 있는 고무 막에다가 작고 가벼운 구슬(물체)을 또 굴리면 구슬은 큰구슬 쪽으로 돌면서 굴러 떨어지게 된다. 중력장 주변에서 빛이 휘는 현상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뉴턴 이론에서는 빛(광자)은 질량이 없으므로 중력에 의해 영향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에서는 빛이 휜 시공간을 진행하면 저절로 궤적이 휘게 돼 아무런 문제가 없다. 빛은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를 여행하는 데 휜 시공간에서 그 궤적은 직선이 아니다. 빛이 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는 일반상대성이론의 결과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던 중 1919년 에딩턴이라는 영국의 천문학자가 주축이 된 일식 관측 팀이 개기일식을 완전하게 관측할 수 있는 아프리카에 갔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보름달이 떠 있는 밤처럼 어두컴컴해지고 밝은 별들이 보인다. 이때 별들의 겉보기 위치는 아인슈타인과 슈바르츠실트가 옳다면 실제 위치보다 해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에딩턴은 이런 현상을 실제로 관측해서 해 주위에서 빛이 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블랙홀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외부 관측자가 볼 수 없어. 이는 우리가 지평선 너머에 있는 물체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지. 이런 뜻에서 블랙홀의 표면을 ‘사건의 지평선’, 영어로 ‘event horizon’이라고 불러. 사실 사건의 지평면이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관용적으로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 거야. 따라서 블랙홀의 표면이라는 말도 단순히 사건의 지평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해, 거기에 어떤 바닥이 있는 게 아니야. 그런데 블랙홀 내부 구조는 의외로 간단해. 중앙에는 특이점, 영어로 ‘singularity’라고 불리는 밀도가 무한대인 점이 있고, 다른 곳에서는 물질을 찾아볼 수가 없어. 왜냐하면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 들어온 물질은 결국 모두 중앙의 특이점으로 끌려 들어가기 때문이지. 특이점에서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떠한 물리학의 법칙도 성립하지 않아.(p.33)

 

전화나 전보가 없던 조선시대 두 전령이 평양과 전주로부터 그 당시 가장 빠른 운송 수단인 말을 타고 최대한 빨리 달려와 임금에게 올린 정보가 완벽하게 똑같다면 이해가 갈 수 있어? 이런 수수께끼의 해답으로서 미국의 구스(Guth)는 인플레이션(inflation) 우주론을 도입했지.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은 태초 어느 순간 우주가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을 의미해. 즉 처음에는 느리게 팽창하다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부쩍 더 빨리 팽창한 후 다시 느린 팽창으로 돌아갔다는 말이야.(p.129)

 

저자 : 박석재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대학교에서 블랙홀 천체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천문학 서적과 소설을 집필하는 등 천문학 대중화에 헌신했고 2005년부터 2011년까지는 한국천문연구원 원장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는 원리』, 『이공대생을 위한 수학특강』, 『개천혁명』, 소설 『개천기』 시리즈 등이 있다. 현재 역사광복을 추진하는 사단법인 대한사랑의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dr_blackhole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인조와 병자호란에 대해 실록 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재조명하고, 어리석은 군주의 권력욕이 불러온 병자호란의 참화와 소현세자의 죽음을 파헤친 역사를 재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