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 - 윤동주 전 시집과 반 고흐 그림 138점
윤동주 글,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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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독자가 윤동주와 반 고흐의 콜라보 시화집을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의 기억을 좀 더 정확히 더듬어본다면 고흐의 아몬드나무 그림의 책 표지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 책도 윤동주와 고흐의 시화집 형식을 띠었다. 그 책 표지에 선택된 아몬드꽃은 독자로서는 처음 본 것이라 기억에 더 남았던 것 같다. 우리가 간식용으로 먹는 게 그 아몬드나무의 열매이다. 반 고흐가 아몬드 나무를 즐겨 그렸다는 것도 나중에 책을 통해서 알았다. 아몬드는 땅콩처럼 생긴 편도나무 열매다. 왜 고흐가 아몬드나무와 꽃을 좋아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조카에게 선물로 준 그림이 아몬드나무를 그린 작품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추위에 잘 견디거나 혹은 자손 번성을 위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라는 표제어를 가진 이 책은 우리의 광복80주년이자 윤동주 시인이 서거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특별 제작판이다. 올해 2025년이다. 국내외에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추모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전한다. 특히 윤동주가 다녔던 일본의 도시샤대학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명예학위 증정’이라는 예외 규정까지 만들어 학장단 회의에서 열여섯 분 전원 찬성으로 서거일인 2월 16일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독자가 신경을 쓰지는 못했지만 이 서평을 쓴 날 기준으로 이미 행사는 끝났으리라). 고하라 가쓰히로 도시샤대학 총장은 “우리는 자유를 탄압하는 군부에서 윤동주를 지켜내지 못한 분함이 있다. 명예박사 학위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윤동주 시인은 80주년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국, 일본, 중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의 수많은 단체에서 추모하는 세계적 시인이 되었다. 따라서 날이 갈수록 인기를 더해가는 윤동주 시인의 추모 열기는 올해인 2025년에 최고에 달할 것이다.

그림에서 자화상은 자기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말한다. 시인 윤동주는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시로 남겼다. 이 시는 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재학 때 쓴 시로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의 현실 속에서 부끄럽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처 보듯, 우물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 자아성찰의 상징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독자의 기억으로는 생애 10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유명한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은 병원에서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책을 통해 들은 바 있다. 고흐는 걱정하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보다는 초상화가 내 상태를 더 잘 보여줄 거라고 믿는다."며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의 자화상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이에 굴복하지 않고 창작에 대한 열정이 그의 눈빛에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별'에 대한 갈망도 두 예술가의 영혼을 교차하게 만든다.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라는 절창을 남겼다.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한다. 나는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 갈 수는 없는 것일까.”라고 쓴 별에 대한 글에서 두 사람이 닮아있는 것을 너무도 생생히 느끼게 한다.

이 시화집을 보면서 독자는 두 예술가의 모습을 그려본다. 시공간이 다르지만 저변에 흐르는 감성과 예술혼은 순수하고 맑다. 우리 민족 최대의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일제강점기는 윤동주의 출생과 서거와 겹쳐 있다. 당시 한국인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나라 없는 엘리트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 참담함을 넘어 참회록으로 점철돼 있다. 

일제 강점기 시집은 정음사에서 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년 초판, 1955년 증보판, 1979년 증보판 그리고 윤동주 탄생 100주년기념으로 전 작품이 담긴 스타북스의 2017년 출간된 『윤동주 전 시집』으로 나뉜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이에 따르면 윤동주의 시집은 그가 죽고 3년 뒤 1948년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윤동주 시집으로는 최초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는 윤동주가 후배인 정병욱에게 맡긴 19편과 릿교대학에서 친구인 강처중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 5편과 그 외 7편을 더 찾아 총 31편이 실려 출간 된 시집이다. 그 후 1955년 정음사에서 윤동주 서거 10주년을 기념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증보판이 나왔다. 증보판에는 초판본에 더해 시와 산문 62편이 추가되어 총 93편이 실렸다. 추가된 시와 산문은 1948년 12월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이 서울로 남하하면서 고향집에 있던 오빠의 모든 원고와 즐겨보던 책 등 유품을 가지고 와서 공개된 작품들이다.(당시 윤혜원은 감시가 심해 사진 앨범은 가져오지 못했다. 잘못하면 감시원에 발각되어 소중한 원고까지 빼앗길까 봐 앨범은 나중에 찾을 계획으로 친척집에 보관해 둔 채로 왔는데 사정이 생겨 찾지 못했다. 윤혜원은 두고두고 이를 아쉬워하며 가슴 아파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79년 정음사의 마지막 증보판에는 윤혜원이 용정에서 가져온 시들과 새로 발견된 윤동주의 작품 중에서 그동안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수록을 보류했던 23편이 추가되어 116편이 되었다. 정음사가 없어지고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미완성이거나 원고에서 삭제 표시한 시를 포함해 기존 윤동주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 8편을 더해 124편 전 작품을 수록한 『윤동주 전 시집』이 탄생했다.

이번에 출간된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은 영혼과 정서가 가장 닮은 두 별이 시대를 넘어 한 공간에서 만나 감동을 주는 가장 아름다운 콜라보 에디션의 시화전 북이다. 따라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위로와 함께 격조 높은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정서가 닮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명작 중의 명작 138편을 시와 가장 잘 어울리게 디자인하여, 보는 즐거움과 함께 독자들의 영혼에도 별이 반짝일 것이다.

반 고흐는 얼마 전 3월 16일 끝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대표작 70여점이 전시됐다. 반 고흐 전시회는 우리나라에서 익숙하다. 그만큼 우리의 명화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는 화가이고 작품이다. 짧은 생애, 그것도 빈곤과, 거의 정신적 이상 증상을 보이는 가운데 불태운 예술혼이 살아 있는 작품이어서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는 반 고흐 전시답게 뜨거운 열기 속에 108일간 열렸다. 고흐는 살아생전에 그림이 팔리지 않아 고독과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작품성이 인정돼 현재는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로 우뚝 서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은 천문학적 가치를 기록하며 경매장에서 팔렸다고 해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2007년 '불멸의 화가 반 고흐', 2012년 '반 고흐 in 파리' 전시 이후 12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고흐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책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에도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은 거의 모두가 실려 있다. 고흐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영혼과 정서가 너무 닮은 윤동주와의 콜라보를 이룬 시화집이다. 두 천재의 시와 그림이 만나 시화전을 펼치는 내용으로 시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시가 된다. 이 책에는 윤동주의 전 작품 124편과 반 고흐의 그림 138편을 담았다. 두 사람의 작품 속에 담긴 별, 자화상, 고향, 해바라기, 그리움, 부끄러움, 그리고 희망과 자아성찰의 영혼은 너무 닮아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의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이 시화집에 실린 한 편, 한 점 감상하면서 두 사람이 너무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장 〈흰 그림자〉, 3장 〈밤〉, 4장 〈팔복〉, 5장 〈산울림〉, 6장 〈식권〉, 7장 〈산문〉, 8장 〈나중에 발굴된 시〉 등이다. 각 장은 제목 앞에 '#' 표시를 한 것은 시나리오 장면처럼 시각화를 암시하는 듯해 편집의 묘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프롤로그〉에는 윤동주의 시 「서시」와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바람」이 나란히 실려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함께 놓고 읽고 보고 감상하면 독자는 마치 파리의 밤 어딘가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쓴 윤동주의 싯구가 당장이라도 읊조릴 수 있을 것 같다.

고흐가 남프랑스 생레미의 「생폴 정신병원」을 그린 그림과 윤동주의 「병원」이 나란히 놓여 있다. 독자로서는 부끄럽게도 윤동주의 시에 「병원」이라는 제목의 시를 처음 알았다. 아를에서 귀를 자르는 사건 이후 반 고흐는 1889년 5월 3일 생레미의 생폴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곳에 입원해 있던 1년 동안 고흐는 자주 심각한 발작을 일으켰고, 발작이 멈추었을 때에는 또다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1889년 가을과 겨울에 반 고흐는 생레미 정신병원의 실내와 정원을 그릴 수 있었는데, 이때 고흐에게 그림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존재를 지탱해 주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었다고 후세 평자(評者)들은 말한다.

그림 앞쪽으로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옆에 남자가 한 명 있다. 뒤쪽으로는 병원 건물의 전경이 보이고, 병원 입구의 문앞에도 한 사람이 서 있다. 소나무와 땅의 거친 붓터치가 두드러져 보인다. 그림 왼쪽에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는 이미 단순한 나무가 아니고, 뒤편의 건물들과 그 위의 하늘도 눈에 보이는 대로의 사물이 아니다. 나무와 하늘, 집, 인간, 땅 등 모든 것들은 그림 속에서 하나의 움직임 속으로 끌려들어가면서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힘을 뿜어내고 있다. 


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려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어 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포기를 따 가슴에 꼽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그 자리에 누워본다.(P.30) -윤동주 「병원」 전문(全文)

시와 그림의 절묘한 조화는 분명 각기 다른 시공간의 사람들이지만 영혼이 통했을까. 이 시화집에 나온 시와 그림은 마치 시인과 화가가 한 시대, 같은 곳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시화집을 내기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하모니를 이룬다. 그것이 몇 편, 몇몇 그림에서 발견되더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이 책의 시와 그림은 마치 시인과 화가가 같은 사람이거나 동시대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인 것처럼 조화롭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는 이미 우리에게는 유명한 시다. 일본 땅(남의 나라) 어느 하숙집 밤비가 속살거리며 내리는 다다미 방(육첩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자신의 소회를 적은 시로서 윤동주 문학의 특징 중 하나인 '참회'의 느낌을 담고 있다. 옆의 그림은 고흐가 아를에서 자신(「작업하러 가는 화가」)를 그려 자신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내주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각자의 영혼에는 이처럼 애절한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는 사실에 독자로서는 다시 한 번 놀란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은 남의 나라,//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한 줄 시를 적어 볼까,//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대학 노-트를 끼고/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시 : 윤동주(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그림 :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영혼의 화가’로 불리는 네덜란드 인상파 화가. 불꽃같은 열정과 격렬한 필치로 눈부신 색채를 표현했으며, 서양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 북쪽의 작은 마을에서 엄격한 칼뱅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69년에서 1875년까지는 미술품 매매점의 점원으로 일했고, 1877년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실패한 후 전업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881년 12월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1890년 7월 29일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두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리고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다. 37년이라는 생애 동안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늘 고독했던 고흐는 그의 후원자이자 동반자였던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와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68통이나 되고 그 밖에 어머니, 여동생 윌, 동료 화가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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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의 뿌리를 찾아서, 민주주의가 경제다
이병훈 지음 / 굿모닝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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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 서울. 갑자기 TV에서 청천벽력의 말이 들려왔다.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TV 방송 계엄령 선포는 낯설었지만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전쟁이 났나 보다"라는 불안감을 억누른 채 알 만한 지인들에게 정확한 소식을 알아내기 위해 전화기에 매달렸다. 방송을 켜 놓은 채다. 늘 북한으로부터의 전쟁 위협에 시달려온 국민들은 '진짜 전쟁?' 하며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눈으로는 연신 TV를 주시했다. 

아까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는 TV 뉴스에서는 전쟁은커녕 어떤 조짐도 없었다. 그저 일상의 저녁이었다. 국가 비상 사태로 계엄령을 내릴 이유는 분명 없었다. 전쟁이 아니라면 이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질 낌새는 전혀 없었다. 아닌 밤중에 웬 계엄령? 지피는 데가 전혀 없었기에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차분하게 가족들과 대화를 도란도란 나누거나, 아니면 혼자만의 시간을 조용히 즐기는 시민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자정이 못된 시간이었기에 12월 유흥가나 식당 밀집지역엔 송년회 등으로 불야성이겠지만 일반 가정은 모두 잘 준비를 서두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민들이 진위를 파악하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금 진정된 후 TV에서 다시 계엄령 선포 순간이 리플레이되어 나왔다. 이번에는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히 듣겠다고 귀를 쫑긋 집중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유에는 북한의 남침 이야기가 없었다. 폭동 이야기도 없었다. TV는 선포문에는 적힌 '종북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다고 격한 어투로 적시하고 있었다. 전쟁이 아니란 점에 우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숨을 돌린 후 "그렇다면 왜 계엄을 선포했을지" 궁금해졌다. TV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TV는 곧 이어 국회의사당으로 비추었다. 비상계엄 선포에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이 국회 진입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시민들과 섞인 전투복 차림의 경찰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그날의 비상계엄은 시작됐다. 비상계엄이란 단어를 들은 지 40년이 훌쩍 넘은 터라 아직도 실감하지 못한 시민들이 많았다.

TV 화면은 국회 본청 안과 밖을 번갈아 비추고 있었다. 국회 앞 광경을 TV가 방영하고 있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는 모습도 보였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가려는데 막는 경찰이 어딨느냐?는 어느 국회의원의 호통에 머쓱한 경찰의 모습도 TV에 잡혔다. 진입하려는 사람과 제지하는 공권력은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헬리콥터에서 내리는 군인들이 의사당 본청 건물로 진입하려는 듯 본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본청을 사수하던 국회 내 직원과 의원 보좌관 및 비서관들과의 몸싸움에 밀려 진입에 실패하자 건물 옆으로 돌던 계엄군은 급기야 유리창을 깨고 진입을 시도했다. 

국회의사당 본회의실에는 저지선을 뚫고 들어온 국회의원 상당수가 계엄 해제 의결을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삼삼오로 모인 채 계엄 해제 의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로 야당 의원들이지만 몇몇 여당 의원들도 보였다. 의결 정족수가 차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 본회의실 쪽으로 뛰어들어가다 일단의 저지력에 맞섰다. 물리력으로 제지선을 뚫으려던 게엄군은 세 부족을 느꼈는지 다른 출입문을 찾는 듯 뒤로 물러났다. 막으려던 사람들은 소화기 분말을 분사하기도 했다. 국회는 자정을 넘긴 1시를 막 넘어설 무렵 계엄 해제를 의결하고 국회의장이 해제할 것을 선포했다. 즉시 해제 의결안은 대통령실로 보냈다.

그날의 기억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것은 이날 계엄 선포부터, 1호 포고령, 국회 의사당 해제 의결, 선거관리위원회 침탈 모습, 선관위 직원들에게 고압적 자세를 보이는 계엄군의 모습이 생중계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이 계엄 해제를 발표한 것은 새벽 4시 반쯤으로 기억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잤을 것이다. 계엄군의 진입 시도와 철수 등이 생중계되었다. 이후 국회는 여야 별로 조사단을 구성하고 계엄 선포 자초지종에 특별위원회 조사에 들어갔다. 많은 증인들이 불려나왔다. 대부분 계엄군의 장성들이었고, 실무 영관급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국회 특별조사단의 분위기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계엄 선포를 감싸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의 계엄 이유를 담화가 발표됐다. 짤막한 내용에 사과는 없었다. "밤에 국민들을 놀라게 한 점은 미안하다"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계엄령 선포 이유를 강변했다. 위헌 ·위법의 계엄령이 아니라 정당한 계엄령 선포였고, 야당의 정도를 넘치는 탄핵소추, 중요 정책 예산안 삭감 일괄 통과 등 거대 야당이 국정 운영을 방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회를 통해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으로 보았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는 계엄령 당시를 생중계로 지켜보았던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협상이나 협의도 하지 않고 군대를 동원해 물리력으로 야당 의원의 운영을 마비시키고, 일부 극렬(?) 의원들은 체포하려 했다니. 민주 국가에서 해서는 안 될, 그래서 헌법에도 적시한 위헌 행위가 분명한데도 계엄령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 고도의 통치 수단으로 말하고 있었다. 야당 의원들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고 했다. 증거로 TV 중계한 내용과 포고령을 내밀었다. 뿐만 아니라 국회 운영을 침탈했고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했으며, 헌번 기관인 선관위도 침탈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또 선관위는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점검했으며 국회의원 체포는 지시한 적 없다고 발뺌했다. 

이건 무슨 소린가? 여당 의원들은 야당의 몽니와 국정 운영을 못하게 할 정도로 탄핵소추를 남발해 계엄의 원인을 야당 의원들의 횡포로 계엄령을 내렸다니. 이건 위헌·불법 행위임을 자인하는 것 아닌가. 협치의 대상인 야당을 종북 반국가 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정부 전복의 시도로 매도하다니. 아무리 앞뒤를 꿰맞춰도 잘 들어맞지 않는 궤변의 연속이다. 당연히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다. 이젠 탄핵 인용에 절차가 잘 이뤄지리라고 서서히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변수가 발생했다. 11차례의 변론기일을 마칠 때까지 민심을 거스리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가 발생했다. 구속 재판을 받언 윤석열 대통령에게 구속 취소 결정이 중앙지법에서 내려졌다. 즉시 항소권이 있는 검찰은 항고하지 않았고, 일주일 내에 항고하는 권한마저 포기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다시 되살아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재대로 된 재판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게 아닌가. 허술한 기소는 곧바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도 나오는 것 아닌가? 우려와 불안의 눈들이 일제히 윤석열 구치소 석방 모습에 쏠렸다.

국민들의 집회가 지지자 측과 탄핵 찬성 측으로 갈려 연일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극우가 주도하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도가 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의 막말뿐 아니라 여당 국회의원들이 "헌재를 때려부수자"는 있을 수 없는 지지 연설을 거듭하고 있다. 또 헌법재판관의 이름을 거론하며 비속어 등으로 인격 살인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집회 현장에서 쏟아내는 막말은 언론에서도 스크린 처리를 하느라 애쓸 정도로 지나치다. 지난 구속영장 발부 때 서부지법으로 몰려간 폭도들의 난동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젠 그 분노는 헌재로 향하고 있다. 헌재의 평의가 예전에 비해 늦어지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는 대다수 국민들은 다시 혼란 속으로 몰리고 있다. 이번 주에는 평결을 끝낼 것이란 의견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지만 어떤 평결이든 상대적으로 판단하는 말만 난무할 뿐 국민들은 혼란스러운 만큼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특히 전례없는 경제 추락에 외교적 저평가, 많은 악재에 시달릴 게 뻔한데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일반 국민들의 생각일 터다. 어떻게 쌓아올린 경제이고, 국방이고, 외교인가. 폐허 위에서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에 매진한 결과다. 70년 세월을 말이다. 

이 책 『내란의 뿌리를 찾아서, 민주주의가 경제다』는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내란의 뿌리, 내란 숙주 세력을 파헤친다. ‘더 단단한 민주주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다. 책의 저자 이병훈은 윤석열 정부 2년 8개월,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 직전이라고 지적한다. 탄핵심판 변론기일이 끝나고 최종 평결만 남은 상태인데 내란은 형식적으로 종식된 듯 보이지만 내란 숙주 세력이 자행하고 있는 역사쿠데타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현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한 채 식민사관에 절어 있는 역사쿠데타 세력은 일제 강점기를 한국 근대화의 필수 과정으로 미화하고, 일제 통치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논리로 역사 왜곡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에 대한 저자세 외교를 꼬집는 대목이다. 이를 이끄는 세력은 바로 뉴라이트 세력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경제 부문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재임 중 경제 성장률은 1% 미만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부자 감세 정책을 밀어붙여 나라 살림은 빚더미에 앉았다는 것이다. 국가 채무는 1000조 원을 넘어섰다.(이 대목은 윤석열 정부 재임 중 쌓인 부채 전부는 아니라 누적 적자인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빚내서 나라 살림 막으려다 공적 기금을 마이너스 통장처럼 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독자로서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에 대해서는 '살인적'이란 표현에 동의한다. 독자는 그 시기를 지금 어렵게 넘기고 있는 소시민이기 때문이다. 이후 경제 문제, 특히 국민 경제 부분은 서민층에서 절감하고 있다. 실질임금이 줄어들었는데 최저임금은 찔끔 올랐다.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각 가정의 부채도 심각하게 늘었다.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출산율도 바닥 수준이다. 청년들은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한국의 성장 엔진이 꺼져가고 있는가?

저자는 이 모든 원인이 정권 내내 ‘(가짜) 자유민주주의’라는 깡통을 소란스럽게 두드리며 철 지난 이념으로 이념전쟁을 일삼은 세력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12·3 내란의 뿌리를 캐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산다. 민주주의가 경제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가 멸종을 직감하는 공룡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들의 목에 스스로 혁신자의 방울을 달아야 할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현재 국제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때임을 강조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사실 정치체제의 하나로 생겨나고 기능했지만 경제 부분에서도 서민들의 부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그래야 나라가 강해지고 민주주의 목적에 가깝게 다가선다. 공산주의 원조이자 모국이었던 소련이 무너진 것은 민주주의와의 경제 제도 차이에서다. 노예 신분이나 다름없는 노동자·농민들에게 땅과 일자리를 공평하게 나눠주고 똑같이 분배해서 먹고 사는 사회라는 선전은 그럴 듯하다. 이 선전은 어쩌면 지금도 먹혀 들어가고 있을 정도로 솔깃한 이야기들 아닌가. 그러나 공산주의가 100년을 넘지 못하고 붕괴된 이유는 정치적 잘못이 아니라 경제 제도로서의 허점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 성장의 촉진제다. 민주주의가 단단할수록 통치의 투명성은 높아지고 부패가 설 자리는 좁아진다. ‘더 단단한 민주주의’가 작동할 때 정치가 투명해지고 기업 환경도 투명해진다.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 가능성도 높아진다. 보수 정권은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 타령을 해왔고 지금도 여전하다. 도대체 누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정한단 말인가. 매국적 극우 권력이 민주주의에 ‘자유’를 덧칠한다. 정권 안보를 위한 명분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념 상품으로 잘 포장되어 반대 세력 탄압용으로 유통되고 정당화된다. 극우 지지층은 그런 상품에 열광하며 수호해야 한다고 외친다. 반대 진영을 향해선 증오와 혐오의 애국심을 키운다. 반대 진영에겐 반국가세력이란 낙인 딱지가 붙는다. 이때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다. 한국 정치사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유보하고, 정적을 제거하고, 인권을 박탈하는 형태로 진행돼왔다. 극우사대주의 세력이 권력 중독에 빠질 때 내란은 불가피하다. ‘자유’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자들이 ‘자유’를 가두는 일이 발생한다.

새로 등장하는 정치 지도자는 국민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고뇌하고 또 고뇌해야 할 것이다. 우리 헌법은 사회적 기본권인 ‘사회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명시적이다. 그래서 역대 보수 정권은 사회권을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 정도로 여겼다. 이제는 우리 국민이 사회권을 직접 요구하고 요구한 만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더 많은 민주주의’일 것이다. 저자의 논리에 일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아마 독자가 처음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대체적으로 독자에게 민주주의와 경제 부분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저자 : 이병훈


대학 시절에 독문학, 철학, 사회과학을 공부했으며, 20대 후반 《미제국주의 침략사》를 써냈다. 시민단체 ‘환경운동연합’이 발간하는 생태환경잡지 《함께 사는 길》의 기자로 활동한 후, 줄곧 인문사회과학 분야 출판사에서 편집장을 지내며 백여 종의 책을 기획 출간했다. 2017~2022년 네이버(주)로부터 <네이버 지식백과사전> 콘텐츠 제작을 의뢰받아 ‘세계 대학 사전’, ‘세계 기업 사전’ 부문의 공식 필자로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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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새로운 독서법
와타나베 야스히로 지음, 최윤경 옮김, 서승범 감수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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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이 책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새로운 독서법』의 저자 와타나베 야스히로는 독자들의 마음을 잘 아는 분 같다. 독자가 책을 읽을 때 느꼈던 많은 감정과 이성적 판단을 궤뚫어보듯이 책에 적시하고 있다. 책의 맨 앞에 "모처럼 샀는데 끝까지 읽을 수 없다. 집중력이 지속되지 않아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구입한 책이 자꾸 쌓여서 적독(積讀)*이 된다. 열심히 읽었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빨리 읽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p.4)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독서법'은 어렵지 않다. "다 못 읽어도 된다. 집중은 끊어져도 된다. 적독해도 된다.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된다. 읽는 속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 점을 실천하고 습관화할 수 있다면 곧 새로운 독서법이 자신의 것이 되고 독서는 더 즐거워진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경우 사물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어느 새 인생이 바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매우 싫어했던 적도 있어, 대학 입시에 두 번이나 실패했다고 한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20살에 간다 마사노리 씨의 책을 만나 이후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인생이 크게 변했다. 벤처기업 창업에 관한 일을 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80억 원의 매출을 이루었다. 독립 후 최신 뇌과학, 행동경제학, 인지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독서법 ‘공명 리딩’을 만들어냈다. 이 독서법은 실제로 일본 전국에서 10살부터 91살까지 3,500명 이상이 실천하고 있다. 연간 독서량은 비즈니스서 2,000권, 문예서, 실용서 포함 연간 3,000권 이상으로, 일본 톱 5에 어김없이 들 정도의 독서가다. 

출판사 측이 소개한 저자 약력이나 그의 독서 능력은 아마 일본 내에서 정평이 나 있을 정도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책을 좋아하는, 또 다른 한명의 독자로서 본받을 만하다는 점도 인정이 된다. 단 한 가지 연간 독서량(일년에 읽는 책의 평균 권수)이 3,000권이 넘는다는데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루 8~9권의 책을 읽는다는 게 가능할까? 속독법을 터득했을까? 아니면 비법이 있을까? 사실 '새로운 독서법'보다 '다독법(多讀法)'부터 배우고 싶다.

* 적독(積讀) : 책을 사서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것(역자 주)

독자들의 마음속을 궤뚫고 있다는 듯 저자는 「앞으로 펼쳐질 독서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차분한 설명을 해나간다. 간결한 문장과 처음부터 끝까지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글의 전개가 기억속에 오래 남을 듯하다. 특히 저자는 12페이지에 걸친 〈프롤로그〉를 소주제로 나눠 깔끔하게 설명한다. 6개의 소주제로 분리 정리한다. ① 혹시 독서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가? ② 70년마다 찾아오는 시대의 전환기에는 상식이 뒤바뀐다! ③ 책은 저자의 생각을 체험할 수 있는 도구다. ④ 새로운 시대에는 답을 알기보다 물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⑤ 독서는 앞으로의 세상에 필요한 두뇌로 길러준다. ⑥ 독서 상식을 뒤엎는 '신 독서법' 등이다.(번호는 독자가 임의로 붙였다.) 

'독서에 대한 죄책감'을 첫 번째 단락에 넣었다. 저자는 독서의 정의를 내리는 듯한 단호한 결언을 내세운다. "독서의 의미는 '마음을 울리는 한 문장을 만날 수 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이 강렬한 문장을 첫 번째 소주제로 삼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은 마음을 울리는 한 문장을 만나게 됨으로써 생겨난다. 그래서 한 권을 읽는 데 몇 시간씩 들일 필요가 없다. 저자는 주장을 이어간다. '이 책을 더 읽고 싶다', '이 책의 내용을 알고 싶다'라고 생각되는 책도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 권에 몇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 저자는 독서는 '자유'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우리는 종종 독서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자신의 경우를 빗대어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죄책감'은 사전에 가진 의무감과도 깊이 연결된다. 앞선 방법으로 여기에 독자가 임의로 번호를 붙인다. 

① 한 권 전부 다 읽어야 한다. ②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며 제대로 읽지 않으면 안 된다. ③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 ④ 빨리 읽고 싶지만, 속독은 부자연스럽고, 그렇게 빠르게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도 오래 걸려서 안 된다. ⑤ 독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고 집중해야 한다. 손에 쥐면 바로 다 읽어야 한다(적독은 부끄럽다). 저자는 차분한 자세로 주장을 정리한다. "이 책은 그런 독서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고 최신 뇌과학, 인지심리학 등의 학설부터 지금까지의 독서 상식과 삶에 대한 시각까지 바꾸는 한 권이다. 지금까지의 독서 접근법과는 전혀 다른 부분도 있기에 '신(新) 독서법'으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앞서 서술된 6개의 소주제 중 두 번째는 일본 역사에 대한 이야기라서 우리와는 별도의 이야기다. 또 세 번째 '책은 저자의 생각을 체험할 수 있는 도구다'는 일반적으로 독서에 대한 정설이기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항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독서법'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내용이다. 이를 테면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의 경험을 유사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작가의 시각이나 견해와 같은 , 자신과는 다른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큰 이득이다."라는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시대와 앞으로의 시대는 무엇이 가장 다를까? 저자의 이 질문은 세 번째 소주제의 내용이다. 즉 새로운 시대에는 답을 알기보다 물음을 찾는 것이 중요핟다는 말이다. 질문의 속성은 "답이 이미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사회적으로 큰 변동이 생기면,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해도 정해진 답은 없다. 그 답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야 한다. 이미 있는 답을 아는 것보다 '새로운 물음'을 찾아 나름의 답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신조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로운 물음을 고찰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세상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지금까지의 상식과는 다른 사실을 발견해내서 물음을 통해 다른 사람과 공명하며 행동할 수 있는 스킬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무릇 책이란 저자의 경험을 대리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저자가 어떻게 묻고, 어떤 답을 도출하며 그 책을 만들어냈는지 체험할 수 있다. 독서는 그 과거의 사고 과정을 배우는 동시에, 자신과는 다른 사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은 동서고금의 공통된, 아주 오래된 책에 대한 정의이기도 하다.

이어 다섯 번째 소주제는 독서가 미래에 필요한 두뇌를 기르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 조항에서는 동양의 현인 공자(孔子)의 말이 생각난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옛것을 복습하고 새 것을 알면 가히 스승이 될지니라)고 가르쳤다. 독서는 옛것을 통해 새것을 알게 되는 작업이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사람을 가르칠 위치에 설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 와타나베 야스히로의 네 번째 조항은 이 공자의 가르침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독자는 판단한다. 세상이 발전한다는 것은 사회에 나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는 우수한 두뇌가 필요하다. 즉 세상을 이끌어가는 창의적인 인재를 말한다. 이런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곧 책이고, 독서다.

마지막 소주제가 '신 독서법'이다. 〈프롤로그〉의 결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신(新)'이라는 접두사는 우리말 '새, 새로운' 등으로 쓰이는 단어다. 일본에서 이 단어를 자주 쓴다고 알려져 있다. 한자어지만 일본어에 많이 들어가 마치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글자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독서의 새로운 상식'이란 어떤 것인지 소개하고자 '신 독서법'이라 이름 붙였다. 가장 먼저 '적독'을 언급한다. 새로운 상식으로는 적독은 전혀 문제가 없다. 잠재의식에는 정보를 전달하는 효과도 있고, 간단한 해결 방법도 있다. 다음으로 한 번 읽으면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역시 내용을 읽고 잊어버려도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기억해내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읽은 후,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해도 언제나 도중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괜찮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 처음 읽을 때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부터 읽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뇌는 '올바른' 것보다 '도움이 되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지금까지의 독서 이미지가 죄책감을 느끼게 한 부분도 있다. 그러한 죄책감을 최신 뇌과학, 인지심리학의 학설을 기반으로 한 '신 독서법'으로 싹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독서가, 인생이 더욱 즐거울 수 있도록 이야기하려고 이 책을 썼다. 〈프롤로그〉의 마지막에 저자가 독자들에게 한 가지 더 제안하는 내용은 '메모'다. 책을 읽으면서 실천하면 좋을 것 같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메모를 해 책 사이에 꽂아두면 된다. 이 메모는 언젠가 이 책을 다시 펼쳐든다면 꽤 유용한 자신만의 것이 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신 독서법 10가지를 소개한다.

① 독서는 3분 정도밖에 하지 않아도 OK. ② 다 읽지 않아도 된다. 독서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 ③ 대각선으로 읽는 것도 괜찮다. 키워드 연결 독서법은 디지털 사회의 독서법이다. ④ 꼭 긴 시간이 아니어도 좋다. 휴식 시간에 잠깐! ⑤ 손가락을 이용하면 더 집중할 수 있다. ⑥ 저자와 공명으로 다양한 견해를 취할 수 있다. ⑦ 책 읽기 전 호흡과 수분 섭취로 뇌를 활성화시킨다. ⑧ 저자의 생각은 '~란'으로 찾아 접속사 등을 통해 예측하면서 읽는다. ⑨ 독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피드백이 필수다. ⑩ '~란', '굳이', '라고 한다면'에 숨겨진 마케팅을 읽어낸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새로운 독서 지식’〉, 2장 〈창의적인 능력을 길러주는 ‘신 독서법’〉, 3장 〈논리적인 사고력을 기르고 머리가 좋아지는 ‘신 독서법’〉, 4장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나가기 위한 ‘신 독서법’〉 등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서승범 나홀로비즈니스스쿨 대표는 신 독서법의 가장 큰 매력은 '독서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다도 좋고,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읽거나 관심 가는 부분에만 집중해도 된다."고 밝혔다. 즉 자유롭게 독서하는 '신 독서법'의 첫 번째는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끝까지 다 읽어야 하고, 다 읽지 않는다면 안 읽은 것만 못하고 시간만 낭비한다는 의무감이나 죄책감을 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1장에서 「독서의 새로운 상식」①로 '책은 다 읽지 않아도 된다'를 꼽았다. 저자에 따르면 책을 한 번만 읽고 저자의 생각을 100% 이해한다는 것은 천재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렇게 읽지 않는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책 전체를 다 읽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읽는다.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읽는 것이다. 독자를 조금이라도 행동하게 했거나, 한 줄이라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 책은 꽤 괜찮았다고 할 수 있다. 

「독서의 새로운 상식」③도 독자에게는 인상적이다. "한 번 읽으면 잊지 않을 거야. 그 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싶어." 이런 느낌이나 생각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 같다. 독자 역시 수없이 반복했다. 특히 시험 공부에 쫒겨 공부한 책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열심히 확실하게 몇 시간이나 걸려서 읽었음에도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몇 페이지의 느낀 점조차 말할 수 없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읽는 내용은 잊어도 된다. 지금부터 새로운 상식의 독서법으로 바꿀 것을 저자는 주문한다. 

저자는 우선, '내용을 잊어버릴 정도의 책은 오히려 잊어서 다행인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라고 귀띔한다.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뇌과학에서 뇌의 기능을 설명에 덧붙인다. 기억에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다. 뇌에 들어간 정보가 저장될지는 해마가 판단한다. 해마에서 대뇌피질로 정보가 전송되어 저장된다. 설레거나 편안할 때는 세타파가 나온다. 그때 해마는 정보를 저장한다. 외우겠다고 극도의 부담을 느끼는 것보다 재미있다고 느끼거나 릴렉스한 상태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의 새로운 상식」⑦도 독자에게는 깊숙이 저장됐다. '손가락을 사용하면 빨리 읽을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책을 더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가져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속독을 하려면 어려운 트레이닝이 필요하고, 그렇게 읽어서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속독을 위해 따로 배울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일 것 같다. 저자는 속독을 부정하는 가장 최근의 학설을 하나 소개한다. 2016년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팀이 과거 145년의 연구 데이터로부터 '속독은 가능한가?'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읽는 속도를 높이면 읽었다는 생각만 들 뿐, 내용의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에 이상한 부분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속독과 관련이 있는 '뇌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학습에서는 뇌파가 중요한데, 이 연구팀에서 한 조사는 '뇌파'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즉 연구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이에 저자는 앞서 「독서의 새로운 상식」①과 ④에서 이미 언급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저자의 이 주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고, 저자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기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읽는 것이 앞으로의 독서의 새로운 상식이자 '신 독서법'이라고 역설한다. 빨리 읽을 수 있어도 독자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이해하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속독 트레이닝에 대해 이 대목에서 언급한다. 이에 따르면 예전부터 '안구식 트레이닝'을 활용한 속독이 있다. 사실, 이것은 문자를 빨리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뇌파를 컨드롤하기 위해서 진행된다. 알파파, 세타파가 학습에 좋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뇌파는 일상에서 일어나 있는 상태=배타파(12~23Hz), 심신을 편안하게 하고 높은 집중력도 가져와 학습에 최적인 상태-알파파(8~12Hz), 심신을 편안하게 하고 해마를 활성화하며 기억력, 영감과 통찰력, 창조성도 높여주는 상태=세타파(4~8Hz)의 3가지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능력 개발의 권위자 폴 R. 쉴리 박사의 포토 리딩이라는 속독법도 안구와 호흡을 이용한 뇌파 컨트롤이 사용되고 있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그 효과가 널리 인정돼 있다. 


저자 : 와타나베 야스히로(渡邊康弘)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매우 싫어했던 적도 있어, 대학 입시에 두 번이나 실패했다. 20살에 간다 마사노리 씨의 책을 만나 이후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인생이 크게 변했다. 벤처기업 창업에 관한 일을 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80억 원의 매출을 이루었다. 독립 후 최신 뇌과학, 행동경제학, 인지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독서법 ‘공명 리딩’을 만들어냈다. 이 독서법은 실제로 일본 전국에서 10살부터 91살까지 3,500명 이상이 실천하고 있다. 연간 독서량은 비즈니스서 2,000권, 문예서, 실용서 포함 연간 3,000권 이상으로, 일본 톱 5에 어김없이 들 정도의 독서가다. 이 방대한 독서량으로 비즈니스, 역사, 과학, 예술, 영성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독서 스킬을 통해 전문 지식을 실무에서 활용해 단기간에 놀라울 정도로 레벨이 향상되는 연수 프로그램이나 개인의 자기 실현 프로그램 등을 연달아 개발했다. 상장기업이나 벤처기업, 지방 유력기업에서 강연하기도 하고, 기업 컨설턴트도 맡고 있다. 독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돕고, 독서를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 독서문화 확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말의 힘을 높이면 꿈이 이루어진다》 등이 있다.


역자 : 최윤경

지독한 방구석러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도서, 영상 등의 문화를 좋아해 1년에 10번은 일본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현재 편집자 겸 경제·경영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작품으로는 『진짜 부자들의 돈 쓰는 법』, 『주식 차트 실전 비법』, 『입소문 전염병』, 『일의 힌트』, 『말의 힘을 높이면 꿈이 이루어진다!』, 『1권에 20분, 읽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대단한 독서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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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맛있게 먹는 7가지 방법
송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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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맛있는 그림'이란 표현이 재밌다. 미술 감상에 관한 이야기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 교육에는 꽤 어울리는 말이다. 이 책 『그림을 맛있게 먹는 7가지 방법』의 저자 송주영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소문 난 한국일보에 2년 동안 칼럼을 연재한 미술칼럼니스트다. 이 책에 나온 글들은 대부분 신문에 게재되었던 칼럼을 다듬고 묶었다. '그림'을 '맛'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린이 교육 상 매우 적절하다고 독자는 공감한다. 저자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즈음부터 아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그림 수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맛그림' 수업은 6년 동안 60명이 넘었다고 「그림을 맛있게 먹는 7가지 방법」이란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귀띔한다. 표제어와 서문의 제목이 같다. 이 책은 저자의 첫 번째 글모음집이다. 미술교육자이자 디자인 이론가로 활동 중인 저자의 『그림을 맛있게 먹는 7가지 방법』은 이제껏 맛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그림 식당이다. 

책은 7부로 이뤄져 있다. 저자는 그림 감상 7가지 방법을 각 부에 하나씩 소개한다. 단순히 그림 감상법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유명한 미대 출신의 저자는 그림을 직접 그리는 것보다 학생들 교육을 위해 실기보다 이론에 더욱 매진했다고 한다. 물론 미술 교육에 더 관심이 갔다고 미대 출신이 할 일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니다. 의사도 법률가도 자신이 실제 유명한 의사와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 의지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더 선호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실패한 예술가 지망생'이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된 것일 게다. 더욱이 자본주의에 잠식된 현대예술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회고하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책은 1부 〈개인 취향 존중 시대의 그림 감상법〉, 2부 〈오래전 미술 다시 보기〉, 3부 〈반전 있는 그림 보기〉, 4부 〈근현대 미술 다시 보기〉, 5부 〈동시대 미술 다시 보기〉, 6부 〈그림 속 여자, 그림 그리는 여자〉, 7부 〈내일을 위한 미술교육〉 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에는 한국일보에 2년 넘게 게재된 미술칼럼 43개 중 28개를 선별해 실었다. 저자는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1부부터 7부까지 순서대로 맛보는 것, 그림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고 촘촘히 읽어줄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미술 감상을 하듯 책을 읽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란 조언이다.

이 책의 각 글들은 예술과 미술에 관한 깊고 풍부한 이야기들이 탁월한 필치로 맛깔스럽게 전개된다. 저자가 신문에 실은 것 중 테마별로 나눠 그림과 함께 풍부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200여점의 그림 수록으로 독자들의 감상과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120여 개가 넘는 풍부한 주석은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지 않아 독자들이 일일이 찾아보는 불편함을 크게 줄였다. 맛있는 음식은 오감을 모두 만족시키는 법이다. 하나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맛은 그만큼 혹은 훨씬 더 좋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특장점은 오감을 자극할 뿐 아니라 '영감'을 주는 것이다. 즉 읽고 그림을 보고, 다시 읽고 그림을 다시 보는 촘촘한 독서가 이루어지면 미술, 그림, 화가, 스스로 가장 선호하는 그림 분야 등이 느껴질 것이다. 말 그대로 삶의 기억에 남을 '맛있는 식사'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1부에서 저자는 현대인들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은 보통 두 가지로 흐른다고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몰라도 느낄 수 있다'는 두 방향의 협업에서 감상은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그림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 상황, 창작자에 대한 정보 등 그림을 이루고 있는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그림에 대한 감상은 깊어진다. 그러나 아무런 사전 정보나 배경지식이 없어도 놀라운 감동으로 남는 그림이나 예술 작품을 만나는 일이 우리 삶에서는 흔히 일어난다. 성실하게 학습하고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몰라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의외로 작품 감상에서 큰 부분을 담당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과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 얼마만큼 잘 담겨 있는지가 중요하다. 대중적 콘텐츠일수록 '몰라도 느낄 수 있는' 지점이 필요하다. 특정 언어와 경계를 넘어 수용횔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신념처럼 가진 그림 감상관(觀)이다. 

저자는 또 아무리 유명한 예술 작품도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술이 어렵거나 예술이 부담스러운 분, 미술 분야로 진로를 탐색하는 청소년, 잠시 예술 입맛을 잃은 분들에게 이 책이 우연히 만난 괜찮은 식당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미술 감상의 즐거운 미각이 되살아났던 저자의 경험처럼 독자들에게도 간이 잘 밴 나물 같은 맛이 느껴지면 좋겠다는 소망, 생명과 건강을 위해 먹는 한 끼 식사처럼 맛있는 그림 보기로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는 그림 감상 하면 으레 서양화를 떠올린다. 그만큼 서양 미술은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독자는 우리 그림이나 동양의 그림에 대해 무지(無知)에 가깝다. 왜 우리 것보다 남의 것을 더 좋아할까?(좋아한다는 말은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아마 한국 현대사의 불행 때문일 것으로 독자는 짐작한다. 현재까지 우리가 '학교'를 다닌 지는 불과 100년 조금 지났을 터다. 조선시대에는 서당이라고 해서 간단한 한자의 뜻이나 예절에 관한 책을 읽고 또 읽고 외우는 것이 전부였다. 예체능 교육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근대화된 교육은 나라 문호 개방부터 시작됐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정책의 첫 피해국인 조선은 시간이 갈수록 조선말, 조선글을 가르치지 못하게 되었다. 해방 직전에는 우리말 시간 자체를 학교에서 없앴다. 그러다가 갑자기 해방을 맞았고, 다시 한국전쟁을 겪었다. 우리 것이라 해도 조선시대의 산물 정도일 것이다. 이 책 1부 〈개인 취향 존중 시대의 그림 감상법〉에서 조선시대 김홍도의 〈노상파안(路上破顔)〉이라는 작품을 텍스트로 삼아 눈길을 끈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 작품의 감상은 어느 한쪽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감상자 개인의 경험이 더해지는 과정이다. 이 사이를 조율하는 감상 테크닉이 있다. 바로 상상력, 즉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은 이미지에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는 미디어 리터러시 감도가 빠른 사람일수록, 즉 이미지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상식에 기초를 두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림을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실행하는 첫 번째 과정이다.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가의 시선으로 그림을 뜯어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김홍도의 〈노상파안〉을 첫 사례로 설명한다. 김홍도는 정통 궁정화가이자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조선시대 최고의 '스타 아티스트'였다. 〈노상파안〉은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중 하나다. 밑도 끝도 없이 '길 위에서 미소짓다'는 제목만이 이 그림에 대한 정보의 전부다. 그저 조선시대의 한 풍경일 뿐 구체적으로 전해지는 지식이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오히려 정해진 이야기가 없기에 우리는 마음껏 상상해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그림을 보며 마음속으로 감상하는 방법과 순서를 기술하고 있다. ① 먼저 그림 속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핀다. ② 몇 가지 지식들을 덧붙여 정황을 파악한다. ③ 그림 속 주인공의 스토리를 상상한다. 

이처럼 저자는 김홍도의 〈노상파안〉은 예술과 역사에 대한 풍부한 상식이 있어도 좋지만, 아는 것이 적어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다. 좋은 그림이란 무릇 사전 지식이 있어도 즐겁고, 몰라도 상관없이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책의 1부 2장(章) 「형식과 내용으로 그림 보기」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는 어린이들도 쉽게 관심을 가질 정도로 쉬운 이야기 형식으로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형식’이라는 남성과 ‘내용’이라는 여성이 있다. 이들은 서로 사랑에 빠졌고, 여느 커플과 마찬가지로 깨소금 쏟으며 좋다가도 폭풍우 치는 밤처럼 싸우기도 한다. 둘은 함께 있을 때만 서로의 존재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싸우다가도 화해하고 평생을 붙어 다니며 그렇게 해로한다. 흔한 말로 둘은 천생연분인 셈이다. 형식 군과 내용 양은 헤어질 것도 아니면서 맨날 서로 투덜거리지만 결국 함께 붙어 다니는 커플이다. 예술 작품 안에는 이러한 형식 군과 내용 양의 러브스토리가 있다.(p.22)

그림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형식과 내용을 보는 것이다. 모든 예술 작품에는 반드시 형식과 내용이 있다. 형식은 작품을 이루는 외형, 윤곽, 형태나 구조를 뜻한다. 내용은 그 형태 사이로 배어 나오는 생각, 정신, 이념이나 이야기를 이룬다. 작품 안에 담긴 형식과 내용은 철학적인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도식적으로 아름다움(美, 형식)은 선(善, 내용)이기도 하고, 선이 아니기도 한다는 내용으로 풀이한다. 그림 실례로는 16세기 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린 〈아테네 학당〉은 고대 철학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품 한가운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플라톤은 오른손을 높이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진리는 저 높은 곳에 있다'는 형이상학을 상징한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손으로 땅, 즉 자연 세계를 가리키며 '진리는 현실과 경험에 있다'는 형이하학을 대변하는 모습이다. 서양철학의 가장 큰 두 흐름은 모두 여기에서 출발하고 정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세계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지금도 이 두 개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아테네 학당〉에서 함께 나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엄격히 말하면 같은 세대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플라톤은 BC 427년에 태어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BC 384년에 태어났으니 43년의 차이가 있다. 스승과 제자쯤으로 한 공간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저자가 미술 감상으로 〈아테네 학당〉을 택한 이유는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바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을 감상하는 태도를 비교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책에 따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델레스의 영향권 안에 있는 서유럽인들은 '아름다움'이란 곧 '선'이라고 여겼다. 르네상스 이후 근대로 접어드는 18세기에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이러한 고전 미학을 야무지게 정리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칸트는 인간의 경험을 '내용'으로 보앗다. 그리고 경험과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식 능력이 있는데, 이것이 예술의 경우 '형식'을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다. 절대신과 상관없이 인간은 스스로 내용을 형식으로 창조해 아름다움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판단력이 있고, 쾌락으로서 '미'를 판단(감상)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칸트는 예술이란 관조의 대상일 뿐 과학을 통해 아름다움을 분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예쁜 아이의 얼굴은 누구에게도 예쁜 아이로 보이기 때문에 이걸 따져 묻지 말라는 말과 비슷하다. 이때까지 작품의 형식과 내용은 서로 반목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이러한 칸트 미학에 새로운 질문들이 제기됐다. 당시 과학 발전의 영향을 받은 일부 학자들은 예술 작품을 관조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삼고 예술심리학, 형태이론, 예술사회학, 실험미학, 정보이론 등 다양한 이름으로 해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예쁜 아이 얼굴이 왜 예쁘게 보이는지, 누가 어떻게 왜 예쁘다고 여기는지 과학적으로 따져 묻자는 생각이다. 본격적으로 작품의 형식과 내용은 사이가 좋았다가 싸우기도 하는 커플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예술 작품 안에서 형식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룬 연구가 바로 형태이론, 형태심리학이다. 내용과 관련해서는 예술 작품의 맥락적 의미를 파고드는 예술사회학, 예술심리학에서 다뤘다. 이러한 연구들은 결과적으로 예술을 '탈신비화'하고 인간과 예술 사이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저 높은 곳에 있는 예술'이 아니라 '실제의 삶 속에서 의미가 있는 예술'을 만나려는 노력이다. 예쁘거나 아름답지 않아도 예술이 되고 작품이 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예술 감상의 대상은 늘 예술 작품이다. 그것을 예술 작품이라고 규정 짓는 것은 예술가이고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다. 때문에 시대에 따라 예술이나 미적 감각이 달라지고 탐구 대상도 달라진다. 또 묘사 방법이나 농담(濃淡), 색, 선, 문자, 음표(소리) 등 도구에 따라 달라지고 분야별로 나뉘기도 한다. 신화시대의 그림과 중세의 그림, 또 르네상스 이후의 그림이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 결국 인간의 삶을 인간이 표현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분화, 발전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7개 테마로 나뉘어 감상법을 설명하지만 독자들은 어떤 시대 어떤 그림이 가장 좋은지, 가장 인상적인지 하나 하나 꼽아보며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독자의 경우 가장 최근의 전쟁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묘사하는 그림을 그린 러시아 예술가의 이야기가 무척 감명 깊다. 그가 86세의 나이에도 벌금을 내면서까지 반전(反戰)벽화 이야기가 무척 감동적이다. 

2023년 12월 〈뉴욕타임스〉는 「손에 붓을 든 러시아 벽화가, 자신만의 전쟁을 벌이다」라는 타이틀로 블라디미르 옵치니코프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모스크바에서 토목공학자로 살다가 1998년 은퇴 후 모스크바 인근 칼루츠카아주 브롭스크에 머무르며 2000년부터 벽화를 그렸다. 그는 '브롭스크의 뱅크시'라고 불리는 잘 알려진 그래피티 아티스트(벽화 예술가)다. 그러나 그는 이 별명이 못마땅하다. "나는 뱅크시처럼 숨어서 벽화를 그리지 않는다. 벽화에 내 이름을 남기고 벌금을 내고 또 그럴 것이다." 폭격으로 부서진 우크라이나 건물에 벽화를 남긴 익명의 뱅크시는 안전하게 세상의 주목을 받지만, 같은 메시지를 담은 블라디미르의 벽화는 벌금이 부과되고 지워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소녀의 모습을 담은 벽화로 그는 징역 5년형에 준하는 3만5,000루블(당시 한화 약 53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심지어 전쟁을 지지하는 마을 주민으로부터 눈덩이를 맞기도 했다. 이 86세의 예술가는 묻는다. "평화를 요구하는 그림이 왜 범죄가 되는가?"라고.(p.225) 


저자 : 송주영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한 후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대학을 거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The Ohio State Univ.)에서 미술교육학 석사를 마쳤다. 재정경제부 국제언론홍보실, KBS 2TV 작가, 월간 [디자인] 기자, 갤러리현대 큐레이터, 디자인하우스 전시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캐나다 앨버타대학(Univ. of Alberta)에서 교육학 박사과정을 시작했으나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 후 번역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맛그림 미술교육’을 운영했다. 한국화학공학회 [NICE], 한국일보에 ‘맛있게 그림보기’ 칼럼을 연재했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독서IN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한국의 예술가와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미술교육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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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심리학 - 예술 작품을 볼 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성주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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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자는 코로나 팬데믹 발발 이후 미술 감상을 위한 책이나 서양 미술사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최근 5년 동안 미술에 관한 책을 10권 가까이 읽은 것 같다. 덕분에 멀게만 느꼈던 미술 감상이나 화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서양 미술사의 흐름에 꽤 접근한 것 같다. 물론 그림 문외한이었던 탓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듯 읽은 것은 아니지만 서양 미술에 대해 초보 단계는 벗어났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어떤 책에서도 '예술 심리학'이란 학문이 있다는 말은 듣거나 읽지 못했다. 이 책 『감상의 심리학』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 오성주에 따르면 예술을 심리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는 학문인 ‘예술심리학’은 역사가 100년 이상이 되었다. 예술 심리학은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예술을 실험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서울대에서 약 10년 동안 학부생을 대상으로 예술심리학 강의를 진행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예술 심리학의 흥미로운 실험과 결론을 소개하면서, 예술가와 예술 작품의 뒷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낸다. 

예술 심리학이란 용어가 낯선 것은 '예술'이란 철저히 주관적이고, 예술 작품은 창작자의 영감이나 광기, 시대적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의 관념 탓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창조의 영역인 예술에 대해 과학의 영역인 심리학으로 분석하거나 감상을 돕기는 부적절하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말로 독자에게는 읽히는 부분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의 집필은 예술 감상이나 이해를 위해 심리학적 분석이란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저자는 예술 심리학이 예술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통해 일반 감상자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통찰을 줄 수 있고,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이 책을 통해 강조한다.

심리학 자체도 과학의 영역에 들어간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듯하다.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의 한 분야로 정의한다. 인간과 동물의 행동이나 정신과정에 대한 다양한 질문의 답을 찾는 과학 중의 하나가 바로 심리학이라는 뜻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심리학이라는 단어는 영혼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psyche와 어떤 주제를 연구한다는 의미의 logos가 합쳐진 것으로, 초기에는 심리학을 ‘영혼에 대한 탐구’라고 했다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현대 심리학이 과학의 영역에 들어간 것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 카를 융, 아들러 등이 원조들이다. 카를 융이 창안한 분석심리학은 의식과 무의식간 관계를 확립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이트(Freud)로부터 무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영향을 받은 융은 무의식의 개념을 확장하여 체계적 이론을 구축하였다. 상담심리학은 아들러(Adler)가 창안하고, 그의 후계자들이 발전시킨 분야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개인심리학 초기 정신역동적 심리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한 아들러는 9년간 〈비엔나 정신분석 모임〉에서 프로이트(Freud)와 함께 정신분석을 연구했지만, 입장 차이로 결별한 이후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성격을 자아, 초자아, 원초아로 구분하고, 인간은 이러한 부분들 간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본 것과 달리, 아들러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여 자신의 이론을 개인의 분리불가능성(indivisibility), 즉 나눌 수 없는(in-divide) 전인이라는 의미를 넣어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이라고 명명하였다. 여기서 개인이란 내담자 한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는 뜻이 아니라 따로 나눌 수 없는 전체성을 의미한다.

개인심리학은 기본적으로 정신역동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주의적 상담의 이론적 기틀을 조성하였다. 이는 현대 상담 및 심리치료이론가에게 방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아들러는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개인심리학의 인간관은 전체적 존재(사람의 행동, 사고, 감정을 하나의 일관된 전체로 봄), 사회적 존재(인간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사람의 행동은 사회적 충동에 의해서 동기화되므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봄), 목표 지향적·창조적 존재(목표, 계획, 이상, 자기결정 등이 인간행동에서 매우 실제적인 힘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목표를 지향하는 인간은 자신의 삶을 창조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으며 자기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또한 인간은 제3의 힘, 즉 창조력이 있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목표를 향해 도전할 수 있다고 봄), 주관적 존재(현상학적인 관점을 수용하여 개인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주관성을 강조한다. 인간을 단순한 반응자가 아닌 창도자로 봄)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적으로 심리학을 더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분야가 카를 융과 아들러의 이론을 계승한 제자나 학자들에 힘입은 바 크다. 예술 심리학도 예술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보다 논증적인 이해를 하자는 의미에서 시도되었다고 본다. 물론 작품뿐만 아니라 화가의 심리도 포함된다. 개인심리학의 특징은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목적을 분석하고(목적론), 인간을 분할할 수 없는 전체로서 파악하여 이성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 등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고(총체론), 객관적 사실보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주관적 의미부여 과정을 중요하게 보고(현상학적 관점), 내적 정신세계보다 대인관계를 분석하고(대인관계론), 주체적 결단능력을 중요시한다(실존주의)는 것이다. 주요 개념으로는 열등감과 보상, 우월추구, 생활양식, 허구적 목적, 공동체감과 사회적 관심, 가족구도와 출생순위, 삶의 과제 등이 있고, 변화를 위한 핵심 요인으로 격려를 강조한다. 

아들러의 분석 심리학을 구체적으로 여기에 적는 이유는 예술 심리학이 대체적으로 예술과 작가의 심리적 접근을 꾀하기 때문이다. 저자 오성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술관에 가면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지만, 막상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이 온다. 제목과 설명을 읽어도 어렵고, 어린아이 낙서처럼 보이는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려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때로는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유명 화가의 그림을 보면서 “이게 좋은 그림인가?”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누군가에게 물어보기 민망해서 질문을 속으로 삼키기도 한다. 이렇듯 미술 감상이 어렵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면, 『감상의 심리학』이 그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예술 심리학의 개요와 이 책의 집필 취지가 제대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최근 미술 감상의 기회가 많이 늘어나면서, 시중에는 미술 전문가들이 쓴 다양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책은 작품의 역사, 시대적 배경, 화가의 생애를 중심으로 미술을 설명하는데, 이러한 접근법이 감상의 전부일까? 

책에 따르면 연극의 3요소로 ‘희곡’, ‘배우’, ‘관객’을 말하듯이, 미술의 3요소를 꼽는다면 ‘그림’, ‘화가’, ‘감상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미술책의 주인공은 보통 화가와 작품이다. 화가의 심리 상태나 그림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분석은 많이 접할 수 있지만, 감상자의 마음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설명을 찾기는 어렵다. 감상자가 없는 미술은 무의미함에도 그렇다. 강미정(미학 박사, 서울대학교 미학과 강사)는 〈추천사〉를 통해 "우리의 시각 체계는 0.1초만에 눈앞의 장면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색채보다 형태를 먼저 지각하며, 얼룩이나 다름없는 이미지에서 친숙한 대상을 알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 오성주는 헤르만 폰 헬름홀츠, 루돌프 아른하임, 대니얼 벌린 같은 저명한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그림 감상의 도우미로 삼는 한편, 몬드리안이 수직, 수평의 구도를 선호한 이유를 해명한 연구를 포함하여 여러 심리학 실험들을 소개한다. 저자의 친절하고 유쾌한 설명은 미술 지식이 없는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객관적인 그림 보기의 길로 인도한다."고 평가했다. 또 이 책은 의문의 여지없는 심리학 서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리학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는 않다고 강미정 박사는 강조한다. 

이 책이 쓰인 배경에는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인 AI의 역할이 광범위하게 확대되면서 인간을 넘어서는 창의력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인간의 우려가 확대되고 있어서 명확한 분석을 통해 AI의 창작과 인간의 창작의 비동일성을 강조하는 데까지 나아가길 독자로서 희망해 본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그림을 대신 감상해줄 수는 없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미래에 최첨단 인공지능이 그림을 창작하고 평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림 앞에 서서 감상하고 있는 감상자의 마음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그림을 감상하고 분석한다고 치더라도 그림 감상 자체는 타인 또는 다른 존재와 절연된 감상자만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먼 미래에 자신은 집에 가만히 누워 있고 자신의 아바타가 미술관에 가서 감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결국 감상의 느낌은 그 아바타가 아닌 집에 있는 '나'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그림 감상은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두 12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눈과 감상〉, 2장 〈감상의 과정〉, 3장 〈집단화와 구성〉, 4장 〈과장과 정점 이동〉, 5장 〈풍경화와 생태적 감정〉, 6장 〈색, 마티에르, 공감각〉, 7장 〈몸으로 감상하기〉, 8장 〈인물화와 그로테스크〉, 9장 〈움직임과 리듬〉, 10장 〈문제해결로서의 감상〉, 11장 〈이상한 그림과 기대 오류〉, 12장 〈성격, 사회, 문화〉 등이다. 제목이 『감상의 심리학』으로 표현돼 있듯 이 책은 감상자가 주인공이 되는 미술 교양서다. 이 책은 미술 감상을 감상자가 그림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감상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능동적인 심리적 과정으로 본다. 이에 따라 지금껏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던 감상자의 경험에 주목하면, 다양하고 흥미로운 질문들이 제기된다. 사람들은 그림 세계와 실제 세계를 다르게 인식할까?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은 그림을 얼마나 오래 볼까? 왜 사람들은 풍경화를 좋아할까? 어떤 그림을 볼 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인상주의 그림이 인기가 있을까? 정지된 그림에서 역동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림을 볼 때 몸은 어떤 역할을 할까? 왜 어떤 그림들은 역겨울까? 그림에 대한 지식, 제목, 설명은 감상에 도움이 될까? 

책에 따르면 한 심리학 연구팀은 제목과 설명이 그림 감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밝히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여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눴다. 세 그룹은 각각 아무런 정보 없이 그림만 감상하는 그룹, 제목과 함께 감상하는 그룹, 제목과 설명문을 보면서 감상하는 그룹이었다. 참여자들은 그림을 보면서 그 그림을 얼마나 이해하고 의미를 파악했는지를 스스로 평가했다. 실험 결과, 그림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제공될수록 감상자는 그림이 더 의미 있다고 평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경향은 그림이 추상적일수록, 그리고 제공되는 정보가 작품과 직접적으로 연관될 때 강해졌다.

예술심리학의 실험은 어떻게 해야 그림 감상 경험과 관련한 유용한 영감을 준다. 앞선 실험 결과를 예로 들면, 전시 기획자와 큐레이터는 관람객의 그림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어떤 정보를 제공해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림과 직접 연관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특히 추상화와 같이 무엇을 표현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일 때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추천사〉에서 짧게 설명했지만 미술관 관람객의 행동을 분석한 심리학 연구들을 보면 미술관에서 어떤 감상 전략을 취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인지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그림을 0.1초만 보고도 상당히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처음 접하고 10초 이내에 그림을 더 볼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절반 이상의 관람객이 그림을 한 번씩 쭉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그림으로 다시 돌아와 재감상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저자는 심리학 연구들을 검토하면서, 아주 짧게 휙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끄는 그림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그 그림들만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저자는 감상자들이 예술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도구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집필 취지를 밝히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미술과 심리학을 모르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저자는 전문적인 용어나 어려운 개념을 최대한 배제하고, 친근한 어조로 설명하며, 자신의 경험과 감상을 곁들여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미술과 심리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그림과 심리학을 좀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의 감상 방식과 생각을 더욱 깊이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감상의 심리학』은 예술을 사랑하는 누구나, 감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미술 감상과 이해법이다. 


한국의 옛 그림에서도 점묘법을 찾아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은 금강산을 그리면서 점을 찍어 숲의 농도를 달리했다. 그림에서 산 능선은 진한 점을 찍고 그 사이에서는 점진적으로 점을 줄여나갔다. 또한 왼쪽 작은 산은 훨씬 밝은 점들로 숲의 무성함을 표현하여 원근감을 높이고 있다. 점으로 숲의 농도와 깊이를 표현한 기법은 그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의 실험 정신이 얼마나 투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p.104)


저자 : 오성주


2011년 이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지각심리학, 예술심리학, 로봇심리학 등을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 주식 투자와 관련한 수업인 주식심리학을 개설했다. 착시와 게슈탈트 심리학 연구에 관심이 있다. 전북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교(Rutgers-Newark) 심리학과에서 지각심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에 오기 전에는 경남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전임강사로, 전북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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